최근 4살된 양자 매덕스를 데리고 파리의 한 공원에서 산보를 즐기는 이들 커플의 다정한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졸리는 검은색 옷에 선그라스를 끼고 피트는 야구 모자를 쓰고 트레이닝복을 입은 모습이었다.

졸리는 이미 불룩해진 배를 감추려고 애쓴 모습이었다. 하지만 연신 행복한 미소를 잃지 않는 졸리의 모습은 누가봐도 피트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차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피터 일가족의 다정한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들의 모습을 지켜 본 사람들은 "피터는 마치 매덕스의 친아버지마냥 자상하다. 무선 조종 자동차를 갖고 아이처럼 즐겁게 놀아주는 모습을 보니 부럽기도 하다. 나무에 장난감 자동차가 부딪히자 피터와 매덕스는 한바탕 장난스럽게 웃으며 즐거워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행인들도 "피터 가족은 보는 사람까지도 덩달아 행복해지게 한다. 피터는 양자인 매덕스를 자신의 친아들마냥 아껴준다. 이들 부자지간은 이미 막역한 진짜 부자지간이나 다름없다"며 부러워 했다.

이와 함께 졸리의 뱃 속에 든 아이가 여자아이인지 남자아이인지에 대한 갖가지 추측도 난무하고 있다. 어쨌거나 연예계는 이 커플의 자식은 분명 '미녀'이거나 '미남'일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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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첫 코끼리 조련사 `별이 된 소년`


칸느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았던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주연 야기라 유야(17)의 눈빛은 서늘하다. 많은 사연을 머금고 있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겠다는 듯한 차가운 이미지는 오히려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야기라 유야는 2005년 여름 새로운 영화로 다시 한번 일본 열도를 울렸다. 일본 최초의 코끼리 조련사 테츠무의 이야기를 실화로 한 영화 ‘별이 된 소년’의 주인공으로 열연해 200만 관객의 눈시울을 적셨다.

<아기 코끼리 란디와 별이 된 소년>(페이지. 2006)은 20살의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코끼리 조련사 테츠무(1972~1992)의 어머니 사카모토 사유리가 써내려 간 아들에 대한 슬픈 기억이다. 2004년 ‘가쓰우라 코끼리 낙원’을 세워 코끼리들을 돌보고 있는 어머니는 `별이 된 소년`을 추억한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동물을 좋아했던 테츠무. 어머니는 아들이 동물과 접촉할 때 놀라운 장면들을 여러번 목격했다. 막 주워온 들고양이가 테츠무의 말에 재주를 부리기도 했고 참새가 머리에 앉는 일도 있었다. 동물들과 신비한 교감을 나누던 테츠무는 아기 코끼리 란디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다고 한다.

“정말 들렸어요. 란디는 몇 번이나 나한테 말을 걸어 왔어요. 아무도 믿어주지 않겠지만요”

사람의 말을 할 수 없지만 다른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지능을 갖춰 의사소통이 가능한 코끼리. 테츠무는 10 옥타브를 넘나드는 울음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는 코끼리를 이해하고 사랑했다. 어린 나이에 태국의 ‘첸다오 코끼리 훈련 센터’ 유학을 결정했던 테츠무는 1년 반의 유학생활 동안 `사람과 동물이 다르지 않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

어머니는 보통 5년이 걸린다는 조련사 교육을 단기간에 끝내고 돌아온 테츠무가 자랑스러웠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동물 프로덕션의 정식 사원이 된 테츠무는 정규 교육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던 소년이었기에 그 감격은 아들못지 않았다. .

남편과 이혼으로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게 해준 것만으로도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던 어머니는 아들의 꿈을 도왔다.

불의의 교통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아들과 함께 코끼리를 돌보며 노후를 보내고 싶던 어머니에게 아기 코끼리 란디를 어루만지며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이던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테츠무의 장례는 불교식으로 치러졌다. 코끼리가 불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테츠무가 사랑한 코끼리 란디, 미키, 미니스터, 요코도 장례식에 참석했다.

<아기 코끼리 란디와 별이 된 소년>는 짧은 분량이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책이다. 일본문학의 섬세함과 실화가 주는 진정성이 어우러진 감동 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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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에 빠진 이여, 이 책을 읽어보라!
[오마이뉴스 정민호 기자] 열다섯 살의 어린 아가씨, 에바. 그녀는 외롭다. 학교에서도 혼자고 집에서도 혼자다. 또래 친구들이 남자친구들을 사귀며 데이트를 하고 춤을 추러 다닐 때, 에바는 집에서 영어단어를 외우고 짜증을 낸다. 같은 반 친구들이 서로 어제 일을 이야기할 때, 에바는 그 자리를 피한다. 일부러 학교도 늦게 가고, 옷을 갈아입을 때도 일부러 굼뜬 모습을 보여서 아이들을 피하는 것이다.

 
ⓒ2006 낭기열라
이유가 뭘까? 에바는 스스로 '코끼리'라고 말할 만큼 뚱뚱하기 때문이다. 한창 예민한 시기인 사춘기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에바, 그녀는 자신이 뚱뚱해서 외롭다고 여긴다. 날씬한 청바지를 입는 친구들은 주름치마를 입는 자신을 창피해한다고 생각해 일부러 그들을 피하는 것이다.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먼저 그들을 외면하는 것인데 문제는 아무리 그렇게 한들 에바의 외로움은 전혀 가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대체 에바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미리암 프레슬러의 <씁쓸한 초콜릿>은 청소년이라면, 아니 굳이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바로 '외모'에 대한 것이다. 에바는 고민하는 이들 모두 그렇듯 먼저 무작정 안 먹는 방법으로 살을 빼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쉽게 될 리가 없다. 사흘 만에 2kg을 빼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자신도 모르게, 뒤늦게 후회하지만, 에바는 결국 또 하나의 냉장고가 되어 뱃속에 온갖 음식들을 집어넣는다. 몰래 배고파하다가 몰래 먹는 악순환을 거듭할 뿐이다. 게다가 이런 일이 생길수록 자신을 한심스럽게 생각하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원망할 따름이니 에바의 '병'은 날이 갈수록 깊어진다. 다이어트를 안 한 것만 못한 결과를 얻은 에바, 먹는 것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먹지 않는 것에도 스트레스를 받는 감수성 짙은 어린 아가씨, 그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이어트가 계속해서 실패하던 때, 에바에게는 두 명의 친구가 생긴다. 첫 번째는 미헬. 사는 환경이 다른 친구지만 에바는 그에게 호감을 느낀다. 미헬도 그렇다. 에바가 놀랄 정도로 미헬은 뚱뚱한 에바를 창피해하지 않는다. 덕분에 에바는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사귀고 데이트도 하게 된다. 물론 그 와중에도 뚱뚱하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기는 하지만.

두 번째 친구는 프란치스카. 새롭게 전학 온 친구로 에바의 옆에 앉는다. 배고픈 에바가 먹고 싶은 욕망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가느다란 허벅지를 지닌 여자아이다. 짝이라고 해서 모두가 친한 법은 아니다. 에바와 프란치스카도 그렇다. 에바의 그 성격 때문에 둘은 있으나 마나 한 소원한 사이다. 그런데 프란치스카가 에바 때문에 곤경에 처하게 되고 에바는 미안한 마음에 수학공부를 도와주겠다고 말하고 그때부터 '마법'이 일어난다.

마법이란 무엇일까? 에바가 변할 수 있게 되는 걸 뜻한다. 신데렐라처럼 외양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면이 변화하게 되는 것인데 에바는 미헬과 프란치스카 덕분에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는 걸 차츰차츰 깨닫게 된다. 사실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이라면 뚱뚱하고 말고는 큰 의미가 없다. 프란치스카의 말처럼 뚱뚱한 사람도 있고 날씬한 사람도 있을 뿐인데 에바는 그것을 몰랐을 뿐이다.

에바, 그녀는 자신이 뚱뚱해서 외롭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실은 뚱뚱해서 외로울 것이라고 생각한, 자격지심이 만든 외로움이었다. 에바는 뒤늦게야 그것을 깨닫고 생각을 바꿔 먹는데 그 '변화'가 의미심장하다.

자, 외모 때문에 고민하는 이들을 생각해보자. 언제나 단점에 연연한다. 단점이라 생각 안 해도 될 것을 남들과 비교하다가 더욱 큰 자괴감에 빠지게 되는데 <씁쓸한 초콜릿>은 그 해결책으로 단점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당장 쉽지는 않을 터, 그렇다면 차라리 장점에 연연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야만 당사자가 '행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열등감을 느낀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일 텐데 그것에 대한 답을 알고 싶다면 <씁쓸한 초콜릿>을 깨물어보자. 초콜릿 특유의 달콤함을 찾는 비결을 알 수 있을 테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다루는 주제가 주제인 만큼 누구나 상관없다. 열등감을 느끼는 이라면 누구나 위로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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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함 통해 엿보는 다양한 '인간군상'
[오마이뉴스 정아은 기자] 장편소설이 한 작가의 내면을 속속들이 파고 들어가는 깊은 거울이라면 단편소설은 작가의 단면을 조금씩 드러내 보여주는 맛깔스러운 삽화와도 같다. 한 작가가 여러 시기에 발표했던 단편들을 골라 묶은 단편집은 작가의 의식이 미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여러 가지 사회 현상에 대해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종합선물세트와도 같다.

 
▲ 은미희, 만두 빚는 여자
ⓒ2006 이룸
60년생인 작가 은미희의 작품집 <만두 빚는 여자>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자잘한 일상들을 기반으로 하여 그 일상들이 머금은 쓸쓸함, 사회적 기제, 개인적 실존을 조근조근한 언어로 속삭이고 있다. 화려하거나 세련되지 않은, 다소 평이한 문체의 작품들의 문을 조심스럽게 따라가다 보면 혼자 사는 중년의 여성, 만두를 팔며 쓸쓸하게 인생을 지탱해가는 만두가게 주인, 장애인, 북한 출신 노인 등 우리 사회의 한 귀퉁이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이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중년, 그 쓸쓸함에 대하여

은미희의 작품은 굉장히 사실적이다.

...수박 접시를 사이에 두고 대칭으로 앉아 있는 둘 사이에 무거운 기류가 파고들었다. 법의 보호 장치를 차입해 오는 것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신하는 결혼한 여자와 제도 자체를 거부하며 관계 사이에서 유랑 같은 삶을 거듭하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 사이에서 드리워져 있는 알력, 갈등, 길항들이 서로를 서름하게 만들었다. 결혼한 여자답게 수컷의 냄새를 직감으로 알아차린 혜경의 태도에 은숙은 적이 당황했다. -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결혼하지 않은 중년여성 은숙과 결혼했지만 남편의 바람으로 이혼하게 되는 혜경이 서로의 상황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는 장면이다. 중년이란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 더 이상 환상이나, 환상에 기반을 둔 애정을 가질 수 없는 쓸쓸한 시기인 것일까. 결혼한 여성은 결혼했다는 이유로, 미혼인 여성은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약자로 만들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사회적 모순을 중년여성의 일상의 쓸쓸함으로 담아내는 작가의 솜씨가 노련하다.

그러나 작가의 시선은 단지 여성에만 머무르고 있지 않다. <편린, 그 무늬들>이나 <새벽이 온다>에서 등장하는 남성화자들은 가장으로서 가정경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과도한 책임감과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고 과음하는 것으로 도피하곤 하는 무기력한 중년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정과 사회 양쪽에서 책임의 한가운데 서있는 중년 여성과 남성들에게 가해지는 관습의 무게가 독자에게 그대로 전해져오는 듯, 마음 한켠이 묵직해진다.

일상의 관계에 내재해 있는 폭력성에 관한 고찰

'어쩌다 그가 생을 버렸는지 알 수 없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단편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일상에서 우리가 영위해가는 관계에 얼마나 많은 폭력성이 내재해 있는지,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말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타인의 삶을 파괴할 수 있는지를 우화적으로 보여주는 빼어난 수작이다.

어느 날 '종수'라는 옛 친구가 화자에게 찾아온다. 종수는 부잣집 아들로 어마어마한 부를 누리고 살며 친구들에게 흔쾌히 자신의 부를 나누어주었던 친구이다. 가난했던 친구들은 종수의 부를 당연한 듯 나누어 가지면서도 늘 '가진 자'의 부조리를 비판했고, 종수는 그들의 비판을 달게 받아들이며 기꺼이 그들의 물주가 되어주곤 했다. 결국 친구들의 농간에 의해 알거지가 된 종수는 이 친구 저 친구를 찾아다니며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친구들의 야비함에 화자는 치를 떨게 된다.

어느 날 전해들은 종수의 부고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친구들과 함께 장례식장으로 가는 화자. 그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던 종수의 진짜 죽음. 이 단편을 읽으면 지극히 일상적인 장면과 건조한 문체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극적인 반전을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다양한 계층의 약자에게 보내는 관심

<나의 살던 고향은>은 이산가족 상봉 대열에 끼지 못한 북한 출신 노부부에 관한 이야기이다. 파지를 주워 하루하루를 연명해가는 가난한 할아버지는 십 년 전 같은 북한 출신 할머니를 만나 결혼했다.

양쪽 다 북한에 배우자와 자식을 두고 온 처지라 늘 마음은 그 곳에 가 있다. 파지를 모아서 판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저금해서 고향에 두고 온 처에게 줄 금반지를 마련하는 것을 생의 기쁨으로 알고 살아가는 할아버지. 이에 서운해 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는 하면서도 그는 그 습관을, 북에 있는 처자에 대한 그리움을 차마 접지 못하고 그대로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가 앓아눕게 되자, 자신에게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되는데….

작가의 시선은 북출신의 노인, TV에 나오는 이산가족 상봉 대열에조차 끼지 못하는 이중소외의 설움을 안고 살아가는 가난한 노인들의 삶까지 훑고 있다. 혼자 살기에는 너무 쓸쓸한 노년의 삶. 서로 동반자가 되기로 약속하고 함께 살지만, 서로의 마음에 내재해있는 북쪽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 일상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단편은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을 떠올리게 하는 재치 있는 작품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의 일상과 만나게 된다. 타인들의 자잘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데에서, 그 쓸쓸한 내음을 맡는 데에서 내 삶에 대한 의욕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는 것은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들만이 맛볼 수 있는 역설적인 묘미. 작가는 쓸쓸한 일상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삶을 이어가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통해 삶이 숭고한 것임을 토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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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 도대체 너는 누구냐?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영화 ‘아이덴티티’(2003.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진짜 공포는 모든 사실을 깨닫고 난 이후에 온다.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지각 하는 순간 삶은 또 다른 공포로 돌변한다. 영화가 조명하는 주요 사건은 모텔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이지만 플룻의 이중구조 속에는 사형선고를 받은 다중인격 살인자가 있다.

자신 안에 여러 인격이 있다고 믿는 복잡한 인물은 배수아(41)의 소설집 <훌>(문학동네. 2006)에도 등장한다.

표제작 ‘훌’은 인명을 지칭한다. 특이한 점은 훌이라는 인물이 ‘친구 훌’과 ‘동료 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화자’ 로 나뉜다는 사실이다. TV프로그램 ‘미인에게 청혼하다’ 와 ‘보리스 고두노프’를 둘러싼 문제들은 서로 다른 기호와 취향 때문에 일어난다. 작가는 훌이 사는 곳과 시대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기호와 취향이지 주소와 시간이 아니다.

“친구 훌은 연속극 보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그는 침대 발치에 누워 연속극이 진행되는 사이에 가판대에서 사가지고 온 신문을 읽었다. 그러나 동료 훌은 그의 그런 면까지는 자세히 모르니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본문 중)

‘친구 훌’은 연속극을 좋아하지 않고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한다. ‘동료 훌’은 연속극을 좋아하고 외출을 좋아한다. 작가가 훌이라는 존재를 친구와 동료로 나눈 이유는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에서 만나는 두 사람에게 화자 ‘훌’의 내면과 외면을 각각 대입시키기 위해서다. 묘하게 엉켜 있는 인물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훌이 바라보는 타자가 결국 자신의 다중적인 모습이었음을 알게 된다.

대부분의 소설들이 이름, 주거지, 소속, 시간을 드러내는 것과 달리 배수아는 반대 지점에서 그것을 파괴하려 달려든다. 시공간을 명확히 정의내리지 않고, 어느 한 나라의 언어가 아닌 전 세계의 언어 ‘에스페란토어’를 등장시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작가는 화자 훌이 친구인가 동료인가의 문제보다 나와 다른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 에 주목한다. 단편 `훌`은 연속극, 외출, 음식, 악수 등 삶의 파편들을 대하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등단한지 13년째지만, 배수아식 문체는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 범국민적 작가가 되기보다는 열성팬들의 환호를 즐기는 컬트적 성향이 만들어낸 7편의 단편을 즐기는 재미가 있다.

김미정 문학평론가는 “이들은 당연히 전체의 상을 보여주지 않을 뿐 아니라, 고정된 하나의 정체성이나 동일성으로 귀결하지도 않는다. 공간을 택하고 여행을 통해 기존의 정체성을 지웠으므로 당연히 다시 동일성과 정체성을 가진 ‘나’들이란 어불성설일 터. 따라서 우리는 소설 속의 어떤 틈새와 중첩들을 살펴야 한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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