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식씨의 <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를 읽고 우키요에에 대해 좀 알아보고 싶어 일본인 오쿠보 준이치의 <우키요에>를 읽었다.
부제가 모네와 고흐를 사로잡은 일본의 판화인데 책 내용과 아무 상관이 없다.
이 책을 선택한건 일본인이 보는 우키요에의 역사와 관점인데 한국인인 이연식씨가 쓴 책과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아 그다지 도움이 되거나 한건 없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일본인이 쓴 책이다보니 일본식 용어들이 해석되지 않고 굉장히 많이 그대로 쓰인다.
예를 들면 자시키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건 뭐지 하고 찾아보니 다다미다.
문제는 이런 단어가 너무 많이 그대로 나와서 읽다가 단어검색을 해야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는 것.
이건 사실 역자나 출판사에서 한국 독자를 배려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은데 세심함이 좀 많이 부족했달까?
책 속에서 나름 좋았거나 인상적이었던 우키요에 몇가지 기록만 남기기로 한다.
우키요에에서 흔한 소재였던 미인도는 각각의 시대에 존재했던 여성미의 이상향을 그렸으므로 여성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어떤 우키요에 화가가 일단 그 시대 여성에 대한 이상적인 미인화 양식을 만들어내어 화단의 총아가 되면 당대의 다른 우키요에 화가들도 그 양식을 따라서 미인화를 그리는 것(52쪽)
그러나 어디에나 반항하는 인간은 있게 마련인것.
기타가와 우타마로라는 화가는 모델이 된 여성의 용모의 특징을 구분해서 그리고 있다. 또한 인물 표정의 미세한 차이와 손, 손가락의 움직임, 상반신의 동작 등의 차이를 통해 인물과 인물이 자리잡은 공간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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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모델은 당대 최고의 오이란(상급유녀)인 오기야 하나오기의 막 목욕을 마친 모습이다.
흐트러짐없는 우아한 포즈, 아주 은밀하게 드러나는 유혹의 빛 등 미인화로서 손색이 없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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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우타마로의 작품인데 이 인물은 하급유녀의 모습이다. 앞의 최고 오이란과 다르게 목욕을 마친 뒤 뭔 가 칠칠치못한 모습, 고혹적이기보다는 뭔가를 계산하는 듯한 날카로운 눈매, 이쑤시개로 입을 찌르는 모습 등이 앞의 미인도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하지만 어쩐지 정감이 가지 않나? 하급유녀로서의 삶이 평탄할리 없을테고, 그 힘든 삶을 헤쳐나가는 어떤 의지와 힘같은게 배어나오는 분위기라 전형적인 미인도보다 오히려 현대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마 위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올들조차도 자기 주장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우타마로 이후에 이런 미인도는 사라졌다.
역시 거장은 따로 있는 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부키 배우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야쿠샤에라고 한다.
이 부문에서는 도슈샤이 사라쿠와 우타가와 도요쿠니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사라쿠는 한 때 우리나라의 김홍도였다는 얘기도 나왔던 그 화가다. (물론 신빙성은 그다지 없어보인다)
지금은 사라쿠가 도요쿠니라는 화가보다 훨씬 뛰어난 화가로 인정받지만 당대에는 오히려 반대였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야쿠샤에라고 하는 장르는 요즘으로 치면 인기 배우의 브로마이드라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개성을 과장하면서도 미화라는 조작을 절대 잊으면 안되는 것.
그런데 사라쿠는 '너무 닮게 그리려다 보니 오히려 진실이 아닌 모습이 되었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같은 배우를 그린 아래 그림을 보면 둘 중 어느 것이 사라쿠가 그린 그림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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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화에서는 가쓰시카 호쿠사이와 우타가와 히로시게가 쌍벽을 이룬다.
둘의 그림체는 상당히 다른데 이 책에서는 호쿠사이의 풍경화를 구축적이고 이지적이라 표현하고, 히로시게의 작품은 스냅사진과 같은 느낌을 주면서 서정적이라고 표현한다.
대체로 이 표현은 맞다고 생각하는데 아래 그림들을 보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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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에 어느 것이 호쿠사이의 것인고 어느 것이 히로시게의 것인지 이 글을 보는 분들도 구분하실 수 있을 듯.....
다만 나는 히로시게의 그림도 상당히 좋아하는데 그것은 색감때문이다.
그라데이션 기법을 굉장히 능숙하게 사용하면서 서정적인 색감을 자랑하는 히로시게의 그림은 우키요에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했다는 느낌이다.
때로는 굉장히 장난스럽고 독특한 그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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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미인도로 유명했던 기타가와 우타마로의 <요괴가 나오는 꿈>이라는 작품인데 만화의 말풍선이 벌써 저때부터 활용되고 있는게 재밌다.
심지어 저 말풍선의 내용은 "밤에 또 가위에 눌리게 해주어야지." " 어머니가 깨우지 않았더라면 더 괴롭힐 수 있었을 텐데."란다.
이 그림은 단품이 아니고 꿈에 요괴를 보고 무서워하는 아이를 주제로 다룬 <악몽집>이라는 시리즈물 중 한 점이라고 하니 우키요에의 소재 범위가 정말 광범위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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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가와 구니요시의 <보기와 달리 좋은 사람>이라는 작품이다. 사람의 인체로 사람을 표현한 발상이 정물로 사람을 표현했던 이탈리아의 화가 아르침볼도와도 닿아있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이런 독특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고, 그로써 예술이 풍부해지고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이런 우키요에 작품들은 대량생산성으로 인해 그렇게 비싸지 않아 일반 서민의 집에도 우키요에 한두점쯤은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에도에 다녀오는 사람들은 우키요에 여러장을 사서 기념품으로 다른 선물과 함께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하니 그 대중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예술이 에도 시대가 끝나고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카메라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 역시 근대화로 인해 얻은 것과 잃은 것들이 있을 테고 그 잃은 것 중의 하나가 우키요에인듯하다.
서양에서 인상파들이 우키요에에 열광하기 시작한 것과는 별도로 일본에서는 우키요에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마지막 보너스 그림은 아리따운 고양이 아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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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가와 구니요시, <고양이의 뱃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