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순양함 무적호 민음사 스타니스와프 렘 소설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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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우주순양함 콘도르호가 레기스 3 행성에 착률 후 실종된다.

무적호는 바로 그 콘도르호를 찾고 레기스 3행성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우주 순양함이다.


소설은 굉장히 영화적이다. 물론 헐리우드 감성과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나라면 솔라리스보다 이 우주순양함 무적호를 더 영화화하고 싶었을 듯한데...

첫 장면 레기스 3 행성에 도착한 우주선의 선내가 깨어나는 장면의 묘사는  sf영화의 시작 장면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승무원들은 동면 상태에 있고, 중앙 모니터의 제어 콘솔 불빛들이 하나 둘씩 깜박이기 시작하고, 프로그램들이 구동되는 소리가 웅웅거리기 시작한다. 온갖 기계들이 슬슬 작동을 시작하며 갖가지 진동과 소리들이 울리기 시작하면서 동면상태의 승무원들이 하나둘씩 깨어나기 시작하는..... 진짜 영화에서 많이 봤던 장면인데 이 소설이 1964년 출간된 작품이니 아마도 영화들이 그의 소설에 빚졌다고 보는게 맞을 듯하다.


레기스 3 행성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콘도르호는 왜 행방불명이 되었으며 100여명의 승무원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걸까?

불안감을 안고 레기스 3에 도착한 무적호는 서서히 이 알 수 없는 행성에 대한 탐사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오토마톤 기계들이라든가, 로봇이라든가에 대한 묘사들, 새로운 행성의 모습에 대한 묘사, 무적호 내부의 각양각색의 구성원들의 역할과 생각 등등이 종횡무진으로 펼쳐지는데 작가의 천재성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순간이다.

스타트렉이 처음 방영된게 1966년, 아폴로 11호가 달착륙에 성공한게 1969년, 스타워즈가 처음 나온게 1977년이니 우주에 대한 상상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와 맞물리고 있다.

그러면 뭔가 묘사가 어색하거나 촌스럽거나 하는거라도 있었는데 어찌나 세련된지 이 소설이 1960년대 작이라걸 도저히 실감할 수가 없다. 


탐사대원들은 드디어 콘도르호를 찾아내고 승무원들까지 찾아내지만 진실은 더더욱 미궁이다.

발견된 승무원들 중 일부는 살아있으나 기억과 지능을 모두 잃어버리고 완전히 갓 태어난 어린아이 수준으로 돌아가있다. 

일부 승무원들은 우주선 내에 식량을 산처럼 쌓아놓고도 굶어죽었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바다쪽에만 약간의 생명체가 존재하고 육지쪽에는 생명체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누가 콘도르호를 공격한걸까?

계속 조사를 계속하던 중 불행히도 콘도르호의 승무원들에게 일어난 일과 똑같은 일이 무적호 승무원들에게도 나타난다.

순간적으로 지능을 잃어버리는 사태.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사태에 대해서 무적호 내의 과학자들의 가설 싸움이 벌어진다.

과학자들의 의견 전쟁, 행성탐험에서 고군분투하는 승무원들, 미지의 적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

이 모든 것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동시에 우리가 아는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를 보여준다. 

책에서는 은하계 중심설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는 우리 은하계를 우주의 중심으로 여기는 우주관이라고 설명된다. 

바로 딱 감이오는게 인간 중심설의 우주판이다. 

이 세계의 중심을 인간으로 보는 세계관의 폐해가 지금 지구를 죽이고 있는걸 목도하는 이 순간, 그 우주판 쌍둥이인 은하계 중심설을 만나는 마음은 착잡하다.

하지만 작가 렘은 은하계 중심설에 대해 단호하게 비판한다.


인간과 비슷하거나 이해 가능한 것만을 추구하라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몫이 아닌 일, 즉 인간과 관계없는 사안에 간섭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우주의 빈 공간은 차지해도 무방하지만, 수백만년 동안 이미 생존의 균형을 이루어 실재하는 대상을 공격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방사력과 물질력을 제외하고 누구한테도,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는 이 행성의 활발하고 적극적인 존재는, 동물이나 사람이라고 불리는 단백질 복합체와 비교해서 월등하지도, 그렇다고 열등하지도 않다. (253쪽)


이 행성의 주인은 오래전에 멸망한 생명체들이 버리고 간 기계들.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계들이 스스로 진화하고 변신하면서 이 행성에 거주하게 된 것이다.

기계의 진화라니? 인간의 도움없이 어떻게 기계가 진화한다는거지?

이 황당한 가설을 또 설득력있게 제시하는 것은 역시 작가의 능력이다. 


렘은 기계의 진화와 존재를 통해 인간 역시 따지고 보면 단백질 복합체 아니냐고? 다른 존재와 비교해서 뭐가 그리 월등하냐고 인간 중심주의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이런 주제의식은 <솔라리스>의 주제의식과 닿아 있다.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는 엄청나게 넒고 깊게 펼쳐져있고, 그것은 이 지구안에서도 마찬가지다.

SF의 공간을 현실로 가져온다면 결국 타인과 자연세계에 대한 우월성을 기반으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 대한 경고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무적호의 항해사 로한의 마지막 읊조림


모든 것이, 모든 장소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야. 그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316쪽)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어쩌면 이것이 다일지도.....

인간의 오만이 닿을 수 있는 비극의 순간을 실감나게 그리며, 다른 세계의 존재를 손에 잡일 듯 보여주는 렘의 세계의 다른 번역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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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6-26 16:2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뭔가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의 리뷰네요 ~!! 이 책이 쓰여진 시기룬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거 같아요 ^^

바람돌이 2022-06-27 10:20   좋아요 1 | URL
책 자체가 굉장히 영화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다만 헐리웃 액션 느낌이 아니니까 영화로 만들어도 돈은 안될듯요. ㅎㅎ요즘 요 책 모티브로 게임도 만들어졌더라구요. 렘 책은 읽을수록 이 사람은 지금 사람이 아닌가 착각하게 돼요 ^^

페넬로페 2022-06-26 20: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뭔가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기묘한 느낌이 드는데요. 이 작품이 1964년에 씌여졌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솔라리스도 읽고 싶은데 책이 차곡차곡 쌓여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겠어요 야호!

바람돌이 2022-06-27 10:22   좋아요 1 | URL
굉장히 신비스럽고 기묘해요. 페넬로페님 정확하게 읽으셨네요. ㅎㅎ 인간이 전혀 알지 못하는 행성의 묘사가 굉장히 디테일해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솔라리스보다는 쉽게 읽혀요. 재밌기로는 이욘 티히의 우주일지가 최고고요. ^^

그레이스 2022-06-26 20: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요즘에는 상상이상의 sf소설이 막 쏟아짐요
작가들의 능력이 대단합니다.

바람돌이 2022-06-27 10:22   좋아요 0 | URL
전에는 안 읽던 sf장르까지 읽어야 하니 읽을 책이 진짜 막 쏟아지네요. 세상에는 훌륭한 작가가 왜이리 많은지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2-06-27 08: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렘은 일찍부터 미래를 내다본 작가같아요~ 생각할수록 경이롭고 신기합니다. 얼마 전 구입한 우주일지 읽어볼 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ㅎㅎ 재미날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2-06-27 10:23   좋아요 1 | URL
우주일지 실망하지 않으실거에요. 진짜 재밌어요. ㅎㅎ
렘 아이큐가 180이라는데 아이큐가 저정도 되면 이런 책을 쓸수도 있구나하고 그냥 수긍해버릴렵니다. ㅎㅎ

mini74 2022-06-27 0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타니스와프 램 전도사 바람돌이님 ㅎㅎ 전 바람돌이님따라 우키요에랑 우주일지 읽고 있어요 ~ 재미있네요 *^^*

바람돌이 2022-06-27 10:25   좋아요 1 | URL
와 저 진짜 램 너무 좋아서 이제 다 읽은 3부작 말고 오래전에 출간된 다른 책들 찾고 있어요. 다행히 우리 동네 주변 도서관들에 다 한권씩 있네요. 절판된 책이 도서관에 있을 때 기쁨이란...... ㅎㅎ 미니님 같이 읽어주셔서 완전 완전 감사해요. ^^

레삭매냐 2022-06-27 1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나온 렘 시리즈 중에서
이 책은 안 샀네요.

다다음달에 중고책으로 풀리게
되면 땡겨 올라구요 :>

<솔라리스>는 예전에 읽었고,
다른 책은 사두긴 했는데 못 닐고
있습니다.

바람돌이 2022-06-27 11:50   좋아요 2 | URL
좋은 책은 넘쳐나니 어떤 책을 먼저 읽을까 항상 고민이지요. ㅎㅎ
이욘 티히는 솔라리스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라서 처음 읽을 때는 이거 같은 작가 맞아 했었어요. 하지만 가장 재밌다는....
우주순양함 무적호는 솔라리스와 같은 계열인데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었어요.

희선 2022-06-28 02: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계가 스스로 진화했다고 하다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마란 법은 없겠지요 지구에서도 사람이 가장 대단한 건 아닌데, 그렇게 생각해서 지금 이렇게 된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기후변화가 너무 심해졌어요 몇해 사이 더 그런 것 같아요 이러다 인류만 사라지는 거 아닐지...


희선

바람돌이 2022-06-28 10:28   좋아요 2 | URL
우주는 넓고 넓으니 무슨 일인들 못일어날까요. 그걸 또 문학으로 상상해내는 작가들도 대단하고 과학자들도 대단하고요. 또 한편으로 우리가 살아갈 이 지구를 계속 망가끄리는게 또 우리라서 슬프고 그렇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