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다닐 때는 집에서 쉬면 시간이 좀 많을 줄 알았다.
하지만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잠시 실감나기도....
진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할 시간이 없다.
그나마도 읽는건 그저 즐거우니까 틈틈히 짜투리 시간에라도 읽게 되는데
글을 쓰는건 항상 뭔가 각잡고 앉아서 머리 싸매며 쓰야 하는데 아 진짜 잘 안된다.
쓴다 해봤자 이런 잡문일 뿐인데말이다.
천생 작가는 못되겠구나.
웃기게도 리뷰를 쓰든 페이퍼를 쓰든 함량미달인 글 인건 똑같은데도 늘 리뷰를 쓰는게 더 어렵다.
리뷰는 왠지 뭔가 나름의 형식을 갖추어서 꼭 적어야 할 말을 선별하고, 나름 깊이도 넣고자 노력하고, 하여튼 뭔가 제대로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그러면서 그 형식이 뭐냐고 하면 정해진게 하나도 없고, 글의 깊이랄 것도 없고, 그러므로 더더욱 제대로라는 느낌은 하나도 안생기면서 말이다.)
그런데 페이퍼로 장르를 바꿔버리면 훨씬 부담이 덜해진다.
그야말로 내 맘대로 쓰지 뭐 이런 마음이 드는 것.
그 마음가짐 하나만으로도 시작부터 가벼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서재지인들 중 어떤 분들은 페이퍼가 굉장히 명품인 분들이 많아서 아마도 나와는 또 다른 마음으로 페이퍼를 쓰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최근에 읽은 3권의 책은
모두 참 좋은 책이었고, 책 읽는 동안 시간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아요 외에 뭔가를 쓰기에는 그런 책들.
오랫만에 김봉렬씨의 책이 새로 나왔다.
아니 벌써 1년전에 나왔는데 내가 놓치고 말았던 책이다.
나라면 이 책에는 부제를 붙였을 거 같은데... <건축의 시간, 영원한 현재 - 고인돌에서 ㅡDDP, 사유원까지> 뭐 이런식으로....
하늘을 향한 가야인들의 사후 세계관은 무덤의 위치에서도 잘 나타난다. 낮은 평지에 무덤을 둔 신라나 고구려와 달리 마을 앞의 높은 구릉 위에 무덤을 만들었다...... 존귀한 영혼은 높은 곳에 묻혀 높은 집에서 살며 높은 그릇으로 식사를 해야 한다고 믿었다. 지상의 낮은 것들이 일상이라면 높은 것들은 존귀한 영원의 세계에 속하다. - 39쪽, 가야, 집모양 토기편
텅 빈 누각을 통해 낙동강 물줄기가 들어오고 지붕 위로 병산이 펼쳐진다. 누각 아래로는 입구가 있어 사람들의 출입을 알 수 있다. 누각의 존재는 자연경관을 산, 강, 사람의 천지인 경관을 수직으로 나눈다. 이는 성리학자들이 자연을 이해하는 태도이고, 이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는 서원의 주인인 원장이 앉는 자리다. - 159쪽, 도산서원과 병산서원편
사유원은 자연 속의 단독자로서 인간의 의미를 묻고 고독을 공유하며 어울려 생각하는 건축적 장소다. 여기에서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앞서 실존적 생명체로 존재하며, 자신의 내면을 응시해 근원과 영혼을 맞닥뜨릴 것이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가 영원히 안 올지도 모르는 미래를 예측하는 건축이라면, 사유원은 태초로 돌아가 변치 않을 본질을 담은 건축이다. 과거가 오래된 미래라면, 미래는 새로운 과거일 수 있다. 근원과 본질은 여전히 중요하다. - 309쪽, 군위 사유원편
잡지에 연재되었던 글을 다듬어 낸 책이라 어렵지 않게 고인돌에서부터 현대의 DDP 그리고 군위에 있는 사유원까지 대표적인 건축들을 소개하고, 그것들에 표현된 시대정신을 짚어낸다.
전통건축에 대한 그의 글이 무조건 우리 것은 좋은것이여가 아니어서 좋고, 건축을 기술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사람과 어울리는 매개체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유추할 수 있게 해서 좋다.
책을 읽다보면 그곳에 살던 사람 또는 거쳐갔던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순간들을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아 그러고 보니 또 있구나
올 가을 찬 바람이 좀 더 불면 책에 소개된 곳 중 한 곳쯤은 나들이가고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그런데 여기 실린 대부분의 곳이 한번 이상 갔다온 곳인데 처음 듣는 곳이 마지막에 있다.
바로 군위 사유원이 그곳인데 내가 좋아하는 승효상씨의 건축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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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사유원 홈페이지에서>
이곳을 가는데 유일한 장애는 엄청난 입장료.
무려 평일 1인 5만원, 주말 6만5천원.
우리집 식구가 주말에 같이 여길 갔다 오려면 무려 26만원.
우리집 애들은 이런 곳 가는건 또 절대 안 놓치고 가고싶어하는지라 같이 가기엔 엄청난 가격이다.
살짝 남편과 둘이서만 가볼 묘수를 짜보는 중..... ㅎㅎ
한국의 전통 건축에 대해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어디 갈때마다 다시 읽으며 감탄하는 책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 김봉렬씨가 쓴 <김봉렬의 한국 건축 이야기> 1-3권이다.
꽤 오래전에 나온 책이지만, 그럼에도 한국 전통건축에 관한한 아직까지도 내게는 최고의 책이다.
아 진짜 이 좋은 책에 알라딘 소개 너무 성의 없다.
1-3권까지 인데 표지를 1권 표지로 전부 도배하다니....
이 책도 오래된 책인데 내가 가진 건 더 구판! 그래도 오랫만에 꺼내서 먼지 털고 사진 한 번 찍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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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기나 전통 건축에 대한 책은 많고 많지만 그 중에서도 김봉렬씨의 책은 특별하다.
그 이유는 그가 건축을 건축만으로 보지 않고, 그것이 나타나게 되는 시대정신을 같이 보기 때문이다.
지금의 아파트가 보여주는 시대정신이 있듯이 어떤 시대도 당대의 건축에는 당대의 시대정신과 사람들의 마음을 담기 마련이다.
그럼으로써 이 책은 전통건축에 대한 책이자, 우리 역사의 중요 사상의 건축을 통한 구현을 이야기하는 인문서로서의 역할 역시 하고 있다.
마침 9월 18일 오전 10시 30분 차이나는 클라스에 김봉렬씨가 출연한다.
다음은 예고편
(224) 차이나는 K-클라스 7회 예고편 - YouTube
조언은 힘이 세다. 그런데 그 힘은 조언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는 사람에게 발휘된다. 고양감이 올라가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쪽은 조언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는 사람이다. 조언의 내용이나 조언을 받는 당사자의 반응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 25쪽
무엇이 나에게 중요하고 내 삶에 힘이 되고 더 유리한지에 온 신경을 쏟는다. 어떤 것이 사실이 아니며 진실이 아니라 한들 경우에 따라선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지 않는 건 이제 내 삶이 그런 믿음에 기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 뿐이다. - 101쪽
인간이란 참으로 자기 중심적이다.
사실상 모든 판단과 좋다의 기준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심지어 그 사람 성격이 참 좋다의 기준도 나랑 비슷해서, 아니면 나랑 달라서 등 내가 좋아하는 성격이 좋은 성격이 되고 좋은 사람의 기준이 된다.
그것을 심리학자인 저자는 심리학의 입장과 함께 본인의 무수한 전남친들과의 경험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는데 원래 남의 연애 이야기는 재밌는데다가 이걸 심리학으로 풀어나가니 더 재밌을 수 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전남친이 참 많았구나 하며 부럽다가, 임상심리 자료를 얻기 위해 여러 남친을 만났나 의심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부러운건 부러운것.
뭐 본인의 사례든, 타인의 사례든 어쨌든 우리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례들로 풀어가는 이야기는 쉽고 재미있게 사랑의 본질, 관계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의 주제인 '젠더 갈등'과 '세대 갈등'도 상당 부분 '공감의 게임'이다. 흥미로운 건 이 갈등들엔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에 소통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소통 없는 '젠더 갈등'과 '세대 갈등'에 소통의 싹이나마 틔우기 위해서라도 다정한 편파성보다는 냉정한 공정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 9쪽
우리는 '관념화된 집단'으로서 정체성 정치를 추구함으로써 사실상 집단 간 증오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는 기존의 소통방식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관념화된 집단'이전에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야 한다. 어떻게? 시민단체를 포함해 공익을 위해 일하는 단체나 기관들이 바로 그런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 124쪽
어쩌면 강준만씨 같은 분이 페미니즘에 대해 글을 쓰는건 어떤 식으로든 손해이다.
그는 남성이고, 기득권세대이고 어떤 식으로 쓰든 모든 진영에서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쓴건 최근의 젠더 갈등을 보면서 얼마나 답답했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항상 어떤 세력을 분리하고, 그 분리를 부추기는데는 기득권 세력의 음모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금의 정치권에게 이대남/이대녀의 분리는 손해될게 없다.
적절히 서로 싸우게 하고 그동안 그들은 적당한 자신의 표를 끌어모으면 된다.
기득권 정치인들에게 두려운건 이대남/이대녀들이 같이 공통의 요구를 모아 정치권에 요구하고 진보를 요구하는 것이지 국민의 어떤 세력이든 갈라져서 자신들끼리 싸우는건 어떤 식으로든 괜찮다.
그러므로 지금의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지금의 이 젠더갈등을 해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한 그들 중 일부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은 입으로만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척 하면서 그들의 공적 사적 영역에서는 철저하게 가부장적이며 그로 인해 생기는 이익을 모두 가져가는 세대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로 인해 생긴 문제들 또는 불평등으로 인해 생긴 차별을 모두 젊은 세대에게 책임을 지우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지금의 이대남부터 10대까지의 남자아이들은 사실상 우리 사회에서 처음으로 가정과 학교에서 남녀가 평등하다고 배우고, 그것이 실현된 환경에서 자라온 세대다.
대부분 남자라고 해서 손해를 봤으면 봤지 이익을 본게 없는 세대.
그런데 자꾸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너의 죄를 알아라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들의 억울함에 대해 이 책은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있고,
그래서 정말로 싸워야 할 대상은 누구이며, 대화를 해야 할 상대는 누구인지 호소하고 있는게 이 책이다.
또한 지금의 젠더갈등의 양상이 위험할 정도로 서로가 일방적인 대화/공감이 없는 자기 말만 하는 현실에 대해 제발 대화를 하자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진다.
이 책을 읽는 중에 신당역 살인이 일어났고, 그 얼마전에는 아파트 엘리베이트에서 어린 여학생을 납치하려던 남자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내가 그 지역 주민이었다면 페미니즘이 아니라 딸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바로 그 판사 있는 법원 앞에서 1인시위라도 할 판이다.
강남역 사건이 있고도 우리 사회의 수많은 법들, 제도들은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신당역에서 또 한 여성이 죽었다.
이 상황을 같이 바꿔야 할 이들은 누구인가?
결국 여성과 남성 모두이다.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폭력적 대응을 했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부모의 심경이 어떻겠나라고 말하는게 지금의 한국의 정치인 수준이다. 대부분이 그러하다. 여당이든 야당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