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주제인 ‘젠더 갈등‘과 ‘세대갈등‘도 상당 부분 ‘공감의 게임‘이다. 흥미로운 건 이 갈등들엔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에 소통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소통 없는 ‘젠더 갈등‘과 ‘세대갈등‘에 소통의 싹이나마 틔우기위해서라도 다정한 편파성보다는 냉정한 공정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달리 말하자면, 다정한 편파성을 양산해내는부족주의에서 탈출하는 게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 P9

조고은이 지적한 두 가지 오해는 어떻게 볼 것인가?
첫 번째 오해와 관련, 나는 한국에선 페미니즘 운동이 너무과도한 게 아니라 운동이 겨냥하는 타깃이 정확하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작 싸워야 할 대상(페미니스트 코스프레‘만 하면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기성세대 남성)은 놓아두면서, 이대남에게 부담이 집중되는 변화만 추구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대남이 그런 전략에 반발하는 걸가리켜 백래시라고 부를 수 있을까?
두 번째 오해와 관련, 나는 페미니스트들이 백래시로보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에선 조고은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그 주목의 목적과 내용은 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모색 역시 투쟁이다.
왜 투쟁을 타도 위주로만 여겨야 한단 말인가? - P33

‘유리천장‘이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일자리 영역에선 사회전 분야에 걸쳐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여성 차별이 심해진다. 은밀하게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차별인지라 정면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차별해소 방안이 장기적·포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세대간 불공정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 차별로 인한 수혜는 기성세대 남성이 보고 있지만, 그 차별을 해소하겠다며 이대남에게 집중된 대책을 내놓고 있는 게 이대남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있는 것이다. - P34

사실 그간 이대남 관련 논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전체 성별 임금 격차의 책임은 이대남이 아닌 기성세대에게따져 물어야 할 것이었다. 여성의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 나이가 들면서 벌어지는 성별 임금 격차의 요인이기 때문이다.  - P50

상징 투쟁과 진영 전쟁은 모든 문제를 흑백 이분법으로 환원* 시킨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무엇이건 상징이 되면 타협이없는 ‘올인 게임‘이 되고 만다. 상징은 늘 편 가르기에 따라
‘성역화‘되거나 ‘악마‘ 되기에 이런 상징투쟁에 타협은없다. - P62

"남성을 규탄하는 여성의 목소리‘는 선대 여성들이억압받아왔다는 역사적 맥락에 의해 언제나 정당했고, ‘이에 반박하는 젊은 남성의 목소리‘는 세상을 어지럽히려는불순함으로 언제나 매도당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선대의 잘못들까지 모두 뒤집어씌운 채 그렇게 입을 다물고조용히 있을 것을 강요했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려 하는 이들은 언제나 여혐주의자, 복고주의자, 극우, 대안우파 따위의 불편한 꼬리표를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오늘날2030 남성들의 분노는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물리적, 물질적인 문제이기 이전에 정신, 문화, 관념적인 억압의 문제입니다."1" - P63

젠더 갈등에서 상징 투쟁이 자주 일어나는 것에 대해 두렵게 생각해야 한다. 상징투쟁은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이미 정해진 모범 답안에서 후퇴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 P74

"20대 남성들은 성평등과 페미니즘을 다른 개념이라고 봐요. 이대남이 생각하는 성평등은 ‘육아? 우리도 할게‘, ‘경력 단절? 보상해야지‘ 이런 식으로 과거에 여성만지고 있던 의무나 페널티를 완화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게 현재 여성들에게 여성 가산점, 여성할당제와 같은 ‘결과의 평등‘을 제공하자는 건 아니에요." - P91

구세대의 관점에서 볼 때엔 1990년대생은 신인류다. 페미니즘을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다르다.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구세대에게 페미니즘은 무조건 지지해주어야 할 당위였다. 여기서 주의해야 한다. ‘무조건 지지해주어야 할 당위‘라는 건 형식적인 시혜 수준의 제스처일뿐, 그것은 실천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는 점이다. 즉, 공적영역에선 남성 페미니스트인 척하지만, 사적 영역에선 전혀 다른 인간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미투 운동‘에서 드러난, 수많은 진보주의자의 성폭력 작태를 통해 질리도록 입증된 사실이다. - P92

반면 1990년대생에겐 그런 이중성이나 위선이 없다.
구세대는 생활은 반페미니즘을 실천하면서 머리로만 페미니즘을 긍정하는 반면, 1990년대생은 출생 이후 생활이곧 페미니즘 그 자체였다. 2008년과 2018년의 통계청 조사 결과를 비교해보자. 2008년엔 가사 분담에 대한 견해를 묻는 항목에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응답이 20대남성은 44.0퍼센트, 20대 여성은 61.3퍼센트로 나타났다. 2018년엔 어떻게 달라졌는가? 놀랍게도, 20대 남성은80.0퍼센트, 20대 여성은 83.0 퍼센트였다.  - P93

1990년대생 남성의 반페미니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자신이 남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과거 세대의 과오에 대해 연대책임을 묻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데, 페미니즘은 ‘남자 대 여자‘라고 하는 전통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다. - P95

맞다. 우리는 ‘관념화된 집단‘으로서 정체성 정치를추구함으로써 사실상 집단 간 증오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는 기존의소통방식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관념화된 집단‘ 이전에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야 한다. 어떻게? 시민단체를 포함해 공익을 위해 일하는 단체나 기관들이 바로 그런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 P124

작가 임명묵은 개딸 현상을 아이돌 팬덤의 문법이 정치 팬덤에 전면 이식된 것으로 보았는데, 이 진단이 의미심장하다. 아이돌 팬덤의 주요 행동강령은 ‘절대적 비타협주의‘이기 때문이다. 오직 오빠를 위하는 일에 타협을 해야 할 게 무엇이 있겠는가? 개딸은 오직 이재명을 지켜야한다는 이유로 검찰 개혁을 외쳤다. 검찰 개혁의 여러 방법론 가운데 ‘절대적 비타협주의‘를 내세우는 민주당 강경파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와 그 리더인 최강욱을 위해서라면 페미니즘에 등을 돌리고 그 영웅인 박지현을 내쫓아야한다는 게 개딸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 P137

문제는 이런 현실주의 페미니즘은 인권운동으로서보편적인 설득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일 게다. 개딸 현상이
‘피해 호소인‘ 사건처럼 ‘정치권력 우선주의‘인지 아니면아이돌 팬덤의 변형일 뿐인지 아직 단언하긴 어렵다. ‘개딸도 모르는 개딸‘이란 말처럼 문화적 현상으로서 아직 형성과정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개딸이 부디 2년 전 민주당여성의원들이 저지른 ‘피해 호소인‘ 사건의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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