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kg. 29주 만에 태어난 아이치고는 그래도 몸무게가 나간 편이다. 몸무게 만으로 봤을 땐 30주를 조금 넘긴 아이와 비슷할 정도다. 그나마 다행스런 부분이다. 아이의 얼굴엔 산소 호흡기가 달려 있고, 허벅지 쪽엔 주사기를 매단 채 사방으로 호스들이 연결 돼 있다. 숨도 제대로 못 가누는 아이에게 참 미안한 일이다.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얼굴에 쏠리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아내는 아직 몸을 가누기도 힘들 뿐더러, 산소호흡기를 단 아기를 볼 용기를 차마 내지 못하겠다고 한다. 갑작스런 조산 소식에 양가 부모님이 시골에서 올라오셨지만 역시 아기를 볼 수는 없었다. 오직 부모에게만, 그것도 하루 1시간씩 정해진 시간 이외에는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다.  

아기를 보고 나서 담당 의사와 면담을 했다. 아, 그런데 이건 또 얼마나 청천벽력같은 이야기인가. 

"아기의 백혈구 수치가 너무 높아요"  

"..." 

"미숙아들의 보통 수치가 1만 정도이고, 염증이 있더라도 2만에서 2만 5천 정도거든요. 그런데 아기 백혈구 수치가 8만이에요. 이런 경우가 별로 없어서 좀더 면밀한 관찰이 필요할 것 같아요."  

"백혈구 수치가 그렇게 높다는 건 무슨 뜻이죠." 

"혈액암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어요. 그리고 전해질도 다 깨져 있어서 수혈이 필요합니다." 

한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또 한 고비다.  

"혹시 아기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실 건가요. 그렇다면 아기 아빠한테만 경과를 말씀 드릴게요." 

아직 몸도 못 추스린 아내에겐 알리지 말아야 할까. 잠깐 망설였다. 하지만, 결혼 전 아내와 굳건히 약속한 게 있지 않은가. 절대 비밀을 갖지 않기. 무슨 일이든 다 털어놓기. 게다가 이번 일은 아기에 대한 일인데... 

"아니요, 그럴 필욘 없어요. 아내에게도 똑같이 알려주세요." 

아내가 누워 있는 병실로 돌아온 내 표정은 상당히 굳어 있었는가 보다. 양가 부모님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신 후 아내가 물어왔다. 

"뭔가 숨기고 있지. 어서 말해." 

어차피 비밀로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될 수 있으면 최대한 늦게 알리고 싶었다. 아내가 아기를 보러 가겠다고 결심을 하는 순간까지 미루고 싶었다.  

"잘 들어야 해. 아기 백혈구 수치가 좀 높데. 수혈도 하고 항생제도 놓고 했으니 좀 더 지켜봐야 해."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내 얼굴은 잔뜩 찌푸러 있었다. 그런데 용케도 아내는 잘 참아냈다. 나도 힘을 얻는다. '그래, 용기를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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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0-06-04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기 내시고 힘내세요.

비연 2010-06-04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잘 될 거에요...힘내세요, 하루살이님.

하루살이 2010-06-06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들 너무 고맙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힘내고 있어요.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의 염려가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좋은 소식을 꼭 전해드릴게요.

하루살이 2010-06-12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이 조금씩 오르고 있어요^^
 

아이의 맥박은 다시 정상범위 안으로 돌아왔다. 아내의 눈물은 그제서야 그쳤다. 그러나 그 눈물 자국이 채 마르기도 전에 수축이 찾아왔다. 수축이야 계속 있어왔지만 불규칙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빈도도 적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사흘전 병원에 입원할 때처럼 진통이 시작된 것이다. 6~7분 마다 찾아오던 수축은 어느새 4분 마다 진행됐다. 수축 억제제도 더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양수나 태반 쪽에 감염이 있었는가 보다. 의사는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젠 하늘에 맡겨야 할 순간인가. 더이상 욕심을 부리는 건 아이에게도 아내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조용히 아내의 손을 잡았다. 1~2 시간 이었지만 그만큼 더 버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고작이라는 말 보다는 엄청이라는 말이 어울릴 시간이었을 것이다. "힘내"라는 말 밖에는 건넬 말이 없었다. 손을 잡아주는 것 말고는 사랑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실은 내게도 용기가 필요했다. 앞으로 어떤 상황들과 맞닥뜨려야 할지 두려웠다. 하지만 잠시 미래를 미리 생각하는건 접어두기로 했다. 그 모든 생각들은 기우로 그칠 것임을 알고 있기에. 아내의 손을 통해 나도 새로운 기운을 낸다.

아내는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수술실 너머로 멀어져가는 아내의 침상을 바라보며 기도를 했다. "부디 굽어 살펴주소소. 지금 이순간 아내와 아이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소소."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같은 층에 있는 신생아 중환자실과 임산부 병실 앞을 서성거렸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다가가 확인했다. 이렇게 반복하기를 1시간이 조금 넘었을까. 작은 아기를 실은 인큐베이터가 나타나 쏜살같이 신생아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정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우리 아기임을 알아챘다. 2초 정도 스쳐지나간 아기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렸다. 가슴이 아팠다. 그때 수술이 끝났다는 휴대폰 문자가 왔다. 하지만 마취가 풀릴 때까진 시간이 더 필요했다. 1초 1초가 너무 더디다. 요즘 나에게 있어 시간은 바이러스에 걸린 컴퓨터같다.  

1시간을 더 넘게 기다린 끝에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퉁퉁 부어 오른 얼굴을 보니 너무 안쓰럽다. 10여 년 전 어머니가 수술을 받은 후 마취가 잘 깨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랐는데...  

아내는 아이의 상태를 궁금해했다. 안아주기는 커녕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중환자실로 이동해 버린 아이. 아빠인 나로선 탯줄조차 끊어주지 못했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인공 엄마 뱃속과 다름없는 인큐베이터와 친해져야 할 아이. 그 아이의 모습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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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10-06-0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힘 낼게요.
 

"선생님,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지켜보죠"  

태아의 맥박이 40까지 떨어졌다. 보통 150정도를 유지하던 것이 이렇게까지 떨어졌으니 무척 위험한 상태다. 담당의사는 수술 준비를 지시했다. 아이는 이제 임신 29주 째다. 세상으로 나오기엔 너무 이르다. 다급하게 부탁했다. 아이의 맥박이 한번 더 급격하게 떨어지면 그 때 수술하자고. 의사는 태동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그래프를 다시 한번 되돌아 봤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조금 더 지켜보자고 했다. 다행이다. 일단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고위험산모 병실로 다시 들어서니 아내는 울고 있었다. 의사의 수술 지시로 수술복이 전달돼 있는 상태였다. 또한 제왕절개를 위해 제모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울컥 목이 메인다.  

'안된다, 나라도 강해져야 한다.' 

"여보, 일단 수술은 지금 안해도 돼. 한번 더 지켜보기로 했어. 힘내, 자긴 잘 버텨낼 수 있을거야. 31주까지만 버텨보자. 응?" 

임신 30주를 넘어서면 하루하루가 금쪽같다. 29주차는 이제 폐가 서서히 만들어져 가는 시기다. 32주는 되어야 폐가 완성된다. 태아가 아기로서 제대로 틀을 갖추는 37주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엄마 뱃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첫번째 목표였던 34주는 이미 멀어져갔고 31주 정도까지만 버텨주기를 우리 부부는 바라고 있었다.  

사흘전 새벽. 아내는 전날 밤부터 시작된 수축의 고통을 더이상 참아내지 못했다. 4~5분 마다 찾아오는 진통은 그야말로 지옥 같았을 것이다. 결국 구급차를 불렀다.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아내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그래도 그녀의 마음만큼 괴로웠으랴.  

병원에 도착한 아내에게 수축 완화제와 수액이 투여됐다. 다행히 진통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누군가에게 계속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나 초음파 검사 결과는 최악에 가까웠다. 탯줄이 태아와 자궁 사이에 끼여 있었다. 수축이 올 때마다 아이의 머리가 탯줄을 눌러 맥박이 줄어든다. 160에 가깝던 숫자가 순식간에 80... 70... 60으로 떨어지면 머릿속이 하애진다. 하지만 다행이도 수축이 끝나면 아이의 맥박은 곧바로 160을 되찾았다. 기계가 가르키고 있는 숫자에 이토록 울고 웃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렇게 사흘을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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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10-05-31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해 1차 고비는 넘겼답니다. ^^ 모두 건강해질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 고맙습니다
 

결혼식장에 가서 주례사를 귀담아 듣는 일은 별로 없다.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결혼식을 한다고 하더라도 주례는 여전히 흘려듣기 십상이다.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친구들이나 친척들과 수다를 떠는 일이 훨씬 즐겁기 때문이다.  

지난 달 지인의 결혼식장에 갔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냥 밥이나 먹고 수다나 떨고 오자는... 그런데 주례를 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이 예사롭지 않다.  

"지금 여기 오신 하객분들은 신랑.신부를 축복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결혼식이 끝나고 나면 오히려 신랑.신부를 갈라놓으려 애쓰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귀가 솔깃했다. 

목사님의 말씀은 이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혼 초기에 상대방을 휘어잡아야 한다고 충고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들의 결혼 생활이 결코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남들이 잘 사는 것을 두눈 뜨고 보기에는 아니꼬와서, 시기, 질투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것이 남편을 또는 아내를 손아귀에 휘어잡기 위해 하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신혼부부를 유혹한다는 것이다. 결혼생활은 오히려 그 반대였을 때, 즉 서로 양보하고 배려했을 때 행복해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쓰레기 없는 국토’를 만들겠다며 ‘정토회’라는 실천공동체를 만들고 탈북자를 도운 공로를 인정받아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던 법륜 스님의 2001년도 주례법문도 이와 비슷한 뜻이 담겨 있다.

전략 

서로 이렇게 좋아서 결혼하는데 이 결혼할 때 마음이 어떠냐, 선도 많이 보고 사귀기도 하면서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이것저것 따져보는데 그 따져보는 그 근본 심보는 덕 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 돈은 얼마나 있나, 학벌은 어떻나, 지위는 어떻나, 성질은 어떻나, 건강은 어떻나, 이렇게 다 따져 가지고 이리저리 고르는 이유는 덕 좀 볼까 하는 마음입니다. 손해 볼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그래서 덕 볼 수 있는 것을 고르고 고릅니다. 이렇게 골랐다는 것은 덕 보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내는 남편에게 덕 보고자 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덕 보겠다는 이 마음이, 살다가 보면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아내는 30% 주고 70% 덕 보자고 하고, 남편도 자기가 한 30%주고 70% 덕 보려고 하니, 둘이 같이 살면서 70%를 받으려고 하는 데, 실제로는 30%밖에 못 받으니까 살다 보면 결혼을 괜히 했나 속았나 하는 생각을 십중팔구는 하게 됩니다. 속은 것은 아닌가, 손해 봤다는 생각이 드니까 "괜히 했다"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덕 보려는 마음이 없으면 어떨까? 좀 적으면 어떨까요? "아이고 내가 저분을 좀 도와 줘야지, 저분 건강이 안 좋으니까 내가 평생 보살펴 줘야겠다. 저분 경제가 어려우니 내가 뒷바라지 해줘야겠다, 아이고 저분 성격이 저렇게 괄괄하니까 내가 껴안아서 편안하게 해줘야겠다." 이렇게 베풀어 줘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면, 길가는 사람 아무하고 결혼해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덕 보겠다는 생각으로 고르면, 100명 중에 고르고 고르고 해도, 막상 고르고 보면 제일 엉뚱한 걸 고른 것이 됩니다.
  

후략 


덕 보려는 마음, 내 입맛에 맞추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정말 결혼생활은 행복해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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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에 대한 공포가 떠돌고 있다. 어떻게 전염이 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데서 그 공포감은 배가 된다. 구제역으로 인해 도살된 소와 돼지는 그 숫자를 헤아리기도 힘들다. 구제역에 걸린 소, 돼지 뿐만 아니라 근경 3킬로미터 이내에 있는 소와 돼지도 그 대상에 포함된다.  

뉴스 화면 속에 비쳐진 도살된 소와 돼지는 그저 고깃덩어리로만 보인다. 더군다나 농장에서 길러진 소와 돼지는 일종의 상품으로 여겨진다. 누군가의 머릿속에서는 소와 돼지가 도살되는 것으로 인해 입게되는 경제적 손실만이 숫자로 어른거릴 지도 모른다.  

그런데, 농가 한 곳 한 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와 돼지는 피 흘리는 생명체가 된다. 적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십년이 넘도록 함께 살아간 그들은 가족과 다름 없다. 독립영화 워낭소리의 소처럼 말이다.  

다른 농가들과 다름없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만 살고 있는 집. 7년이 넘게 함께 해 온 소가 한 마리 있다. 그런데 인근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할아버지 집까지는 3킬로미터 정도 거리. 도살 될 것인지, 그냥 넘어갈 것인지 경계선에 있다. 하루하루가 할아버지에겐 1년 2년 처럼 길게 느껴진다. 옆에 농가들 소와 돼지는 살처분 됐지만 운좋게도 할아버지 소는 살아남았다. 그래서 농사를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사람들이 몰려온다. 실수로 명단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한다.  

"사람들은 아프면 병원에 가 치료를 하고 낫기 위해 애쓰면서, 왜 동물들은 이렇게 다 죽여야만 하느냐" 

수백만 수천만 마리(대한민국에서만)를 헤아리는 현대소비사회의 가축들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상품과 똑같다. 이들이 공산품 취급을 받지않고 생명체로서 대우 받는 세상이 오지 않는 한 아마도 치료제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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