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에 대한 공포가 떠돌고 있다. 어떻게 전염이 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데서 그 공포감은 배가 된다. 구제역으로 인해 도살된 소와 돼지는 그 숫자를 헤아리기도 힘들다. 구제역에 걸린 소, 돼지 뿐만 아니라 근경 3킬로미터 이내에 있는 소와 돼지도 그 대상에 포함된다.  

뉴스 화면 속에 비쳐진 도살된 소와 돼지는 그저 고깃덩어리로만 보인다. 더군다나 농장에서 길러진 소와 돼지는 일종의 상품으로 여겨진다. 누군가의 머릿속에서는 소와 돼지가 도살되는 것으로 인해 입게되는 경제적 손실만이 숫자로 어른거릴 지도 모른다.  

그런데, 농가 한 곳 한 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와 돼지는 피 흘리는 생명체가 된다. 적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십년이 넘도록 함께 살아간 그들은 가족과 다름 없다. 독립영화 워낭소리의 소처럼 말이다.  

다른 농가들과 다름없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만 살고 있는 집. 7년이 넘게 함께 해 온 소가 한 마리 있다. 그런데 인근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할아버지 집까지는 3킬로미터 정도 거리. 도살 될 것인지, 그냥 넘어갈 것인지 경계선에 있다. 하루하루가 할아버지에겐 1년 2년 처럼 길게 느껴진다. 옆에 농가들 소와 돼지는 살처분 됐지만 운좋게도 할아버지 소는 살아남았다. 그래서 농사를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사람들이 몰려온다. 실수로 명단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한다.  

"사람들은 아프면 병원에 가 치료를 하고 낫기 위해 애쓰면서, 왜 동물들은 이렇게 다 죽여야만 하느냐" 

수백만 수천만 마리(대한민국에서만)를 헤아리는 현대소비사회의 가축들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상품과 똑같다. 이들이 공산품 취급을 받지않고 생명체로서 대우 받는 세상이 오지 않는 한 아마도 치료제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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