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에 사는 아리라는 여자아이. 자기 몸에 손 댄 사람은 모두 저주에 걸린다며 겁을 준다. 하지만 조강은 겁이 나지만 도망치지 않는다. 아리와 조강은 점차 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아리와 손을 잡은 날 심한 열병에 걸려 학교를 못 나가게 된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간 날, 아리는 없다.
10년 후 고2. 조강은 아리가 있는 절에서 공부를 한다. 둘은 오랜만에 만났지만 계속 만나온듯 정겹다. 아리에 대한 감정이 어느덧 사랑으로 자리잡은 조강은 서울로 돌아가기 전날밤 아버지가 운영하는 횟집에서 맛있는 초밥을 가져온다. 그리고 한번의 키스. 조강은 또 다시 독감에 걸린다. 아리는 사라졌다.
8년 후, 아리가 10년전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 은행원이 된 조강. 아리는 느닷없이 찾아온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미국으로 떠난다는 아리. 하지만 진실은 따로 있다.
진실이야 어떻게 보면 뻔한 것이다. 흔히 로맨틱한 영화에 나오는, 또는 드라마의 단골 소재. (밝히면 스포일러라...) 조강은 그런 아리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아리는 자꾸 미안하다고 한다.
영화는 아리의 비밀이 갖고 있는 충격보다도 조강의 믿음에 시선이 꽂힌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믿을 수 없는 아리의 이야기들을 평생 믿어온 조강.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동화같은 이야기로부터 거짓을 걷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조강은 아리의 이야기를 반신반의 하는 듯 보인다. 자신이 어른이 됐다며. 하지만 아리를 위해서 조강은 다시 온전하게 아리의 이야기를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을 위해 당치도 않은 일을 벌인다. 하지만 영화는 그게 당치도 않은 일이 아니라고 암시한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한 것은 영화가 종반부에 들어가기 전부터 <동화>라는 단어였다. 동화라는 단어가 갖는 이미지 자체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그냥 하념없이 아름다운 이야기, 불가능하지만 꼭 이뤄졌으면 하는 소망들이 동화 속에서는 펼쳐진다. 사람들은 동화는 동화일뿐이라고 생각한다. 동화가 동화다워야 동화지일까?
얼핏 왜 사람들은, 그리고 나는 동화같은 이야기를 현실로 끌어들이지 못할까 생각해봤다. 한번이라도 동화같은 삶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본 적이 있었던가? 에이,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이야? 라고 지레짐작해버리고, 아무런 시도도 않은채 포기한 삶. 정말 동화같은 이야기는 불가능한 것인가? 현실 속에 동화를 그려낼 수는 없는 것인가? 또 다시 먹고 살아야 하는, 목구멍이 포도청인 삶의 틀에 갇혀 동화는 창살 밖에 두어야만 하는 걸까?
동화같은 삶을 위해 한번쯤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벗어나 숲 속으로 들어가보고 싶다. 딱 한발자국만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