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대 총격사건으로 떠들썩하다. 특히 용의자가 한국계, 정확히 이민 1.5세대라는 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유학생들이 귀국해야 되지 않는냐, 산업계에 충격이 있지 않겠는냐 등 사건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범행을 저질렀을까에 대한 초점도 흐릿하다. 치정에 얽힌 범행이다, 또는 우을증과 같은 개인의 병리석 성격탓이다는 등 이유도 많다.

2002년에 제작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콜롬바인>을 떠올려야 할 필요가 있을 성싶다.

과연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였다면 이런 무차별 살인사건이 일어났을까라는 질문도 필요하다. 즉, 치정이든 우울증이든, 한국계든  중국인이든, 아프리카계든 아시아계든 다른 조건을 똑같이 부여했을 때 이런 대규모의 살인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냐는 것이다.

이 사건이 단순히 1,2명의 사망으로 끝났다면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키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고 그런 사건으로 치부됐을 터니 말이다. 사회면 가십거리로 가끔씩 등장하는, 하지만 절대 일어나서는 안될 그런 류의 살인사건 말이다. 즉 문제의 핵심은 대량살인에 있는 것이고, 그것의 원인을 다큐 <볼링 포 콜롬바인>이 어느 정도 설명을 해준다는 점에 있어 새삼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볼링 포 콜롬바인에서도 이런 총격사건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끊임없이 질문한다.  TV를 보니 콜럼바인 참사건의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헤비 메탈이죠. 폭력 영화. 사우스 파크. 비디오 게임. 마약. 마릴린 맨슨, ..." 1999년 미국에서 벌어졌던 교내 총격사건 콜럼바인 참사를 일으킨 에릭과 딜란의 집에서 마릴린 맨슨의 CD가 발견됐다고 하던데, 정말 마릴린 맨슨 때문일까? 그 사건을 수사 중이였던 '스티브 데이비스' 보안관은 "걔들이 그 날 아침 볼링을 했대요. 그거 밖엔 몰라요!"라고 말한다.
얼마 후 감독인 무어의 고향 미시간주 플린트시에서 참혹한 총격사건이 또 하나 터졌다. 살던 집이 철거되는 바람에 엄마랑 삼촌 집에 얹혀살던 뷔엘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삼촌의 총을 학교에 들고 와서는 같은 반 여자아이를 쏜 것이다!

연간 총기 피살자 수. 일본 39명, 호주 65명, 영국 68명, 캐나다 165명, 프랑스 255명, 독일 381명, ... 미국 11, 127명. 도대체 왜 미국만 이렇게 총기 사고가 많은가? 감독은 사건의 원인을 찾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미국 전역과 캐나다를 누빈다. 행복을 추구하는 미국인의 욕구가 왜 이리 폭력으로 얼룩져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간절히 희망하면서.

이번 버지니아대 참사의 용의자 조승희도 권총을 굉장히 쉽게 구입했다고 한다. 영주권자에 특별한 전과기록도 없어 자연스럽게 총을 팔았다는 판매상 또한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고 말한다. 하기야 누가 그걸 미리 알고 범행 예상자에게 총을 안팔수 있겠는가.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신변안전을 위해 총 소지가 가능한 미국의 경우 오히려 밤에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것이 쉽지않다. 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안전하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나 일본의 경우엔 굉장히 위험한 나라일 터이다. 하지만 치안 상태는 오히려 그 반대라 할 수 있지 않은가.

무기판매상과 정치권의 연루, 거짓 공포로 대중을 조정하는 정부 등 다시 한번 볼링 포 콜롬바인을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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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7-04-18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엄마는 공장에 가고.. 아무도 돌봐 줄 사람이 없었던 어린 흑인 소년... 저도 볼링 포 콜롬바인이 생각나더만요.
아무리 끔찍한 죄악이라도... 그것이 일어나고말 수밖에 없었던 뿌리를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하루살이 2007-04-18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중파에서 방송 한번 해주면 좋겠죠^^
 

출처 http://blog.cine21.com/eshangel/52489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이 개봉되었는데, 100편 이상을 연출한 또 다른 영화 감독 정보가 궁금하여 검색하다가 2003.2.6자로 씨네21에 게재된 재미있는 기사 (스크린 진기록 대행진)가 눈에 띄었다.

기사는 여러 페이지에 걸쳐 업로드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흥미있는 기사들만 발췌하여 지금에는 맞지 않는 내용엔 약간의 수정을 하여 정리한다.


제목이 긴 한국 영화
(1위의 영화는 그 제목을 알고 있지만 역시 정확하게 기억해 내기는 늘 어렵다. 2위의 '홍반장'은 당시 기사에는 없던 영화인데, 이제 새로이 2위에 오르게 되었다)

1.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 (2000)
(남기웅 감독의 디지털영화. 27자)
2.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2003)
(강석범 감독, 26자)
3. 눈으로 묻고 얼굴로 대답하고 마음속 가득히 사랑은 영원히 (1974)
(장년층들의 이름 외우기 놀잇감이었던 김영효 감독의 1974년작, 24자)
4.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 (2002)
(이무영 감독, 20자)
5. 열아홉 절망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노래 (1991, 강우석 감독),
따봉수사대-밥풀떼기 형사와 전봇대 형사 (1991, 신우철 감독),
내가 성에 관해 알고 있는 몇가지 이야기들 (1933, 양태화 감독).


제목이 한 글자인 한국 영화
(기억하기에 편해서 좋지만, 이거 제목만으로 인터넷에서 검색하려면 애로가 크다)

<돈>(1958), <흙>(1960), <딸>(1960), <쌀>(1963), <한>(1967), <꿈>(1967), <산>(1967), <나>(1971), <애>(1971), <왜>(1971), <문>(1977), <불>(1978), <요>(1979), <형>(1984), <태>(1985), <뽕>(1985), <단>(1986), <덫>(1987), <업>(1988), <떡>(1988), <팁>(1988), <꿈>(1990), <무>(1990), <뻘>(1991), <맨>(1995), <큐>(1996), <짱>(1998), <까>(1998), <찜>(1998), <섬>(1999), <정> (1999), <폰>(2002) 등.


제목이 긴 외국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의 원제목이 제일 긴 줄 알았는데 더 긴 영화도 꽤 있었네. 지난 해 개봉한 '보랏'의 원제목도 긴 축에 든다. 근데 이들 영화는 어쩌자고 다들 이리 길게 제목을 지었을까? 흥행에도 별로 안좋을텐데..)

1. Night of the Day of the Dawn of the Son of the Bride of the Return of the Revenge of the Terror of the Attack of the Evil, Mutant, Alien, Flesh Eating, Hellbound, Zombified Living Dead Part 2: In Shocking 2-D (1991)
2. The Fable of the Kid Who Shifted His Ideals to Golf and Finally Became a Baseball Fan and Took the Only Known Cure (1916)
3. Homework, or How Pornography Saved the Split Family from Boredom and Improved their Financial Situation (1990)
4. The Lemon Grove Kids Meet the Green Grasshopper and the Vampire Lady from Outer Space (1965)
5.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1964)
6. Revelations of a Sex Maniac to the Head of the Criminal Investigation Division (1972)
7. The Incredibly Strange Creatures Who Stopped Living and Became Mixed-Up Zombies!!? (1967)
8. Borat: Cultural Learnings of America for Make Benefit Glorious Nation of Kazakhstan (2006)
9. Can Hieronymus Merkin Ever Forget Mercy Humppe and Find True Happiness? (1969)
10. Celsius 41.11: The Temperature at Which the Brain... Begins to Die (2004)

가장 짧은 제목의 외국 영화
(26개 알파벳 중 한 글자의 영화 제목이 없는 알파벳은 몇 개 안된다)

파이(원주율 기호) (1998)
A (1964), B (1969) 등 알파벳 문자 다수.


가장 많이 영화화된 소재, 소설, 캐릭터

단연 남원골의 절세미인 춘향이었다. 1935년 문예봉과 한일송이 출연한 이명우 감독의 <춘향전>이 발표된 이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에 이르기까지 이 이야기는 모두 13번에 걸쳐 극영화로 제작됐다. 1999에는 애니메이션으로 <성춘향전>이 만들어지기도 했고, <탈선춘향전>(1960)이나 <그 후의 이도령>(1936) 같은 ‘유사작’도 발표됐다. 멜로드라마에 민족정서를 고루 녹인 이 고대소설이 그동안 가장 각광받았는다는 사실은 1961년 극적으로 표출된다. 당시 설 극장가에서 김지미를 내세운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과 최은희 주연, 신상옥 연출의 <성춘향>이 피할 수 없는 정면대결을 펼친 것. 결과는 신상옥의 압승이었지만, 사실 주가가 오른 것은 춘향 캐릭터였다. 당시 춘향을 연기한다는 것은 최고의 여배우의 다른 표현이었다. 김지미, 최은희 외에도 홍세미, 문희, 장미희 등 그동안의 춘향의 면면을 봐도 이는 입증된다.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은 소재
(아래의 수치는 기사 당시에도 정확할 수 없었겠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 또 변동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내용 자체는 수긍이 간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무려 359편의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그중에서도 <햄릿>이 93편으로 수위를 차지한다. 스크린을 제패한 캐릭터는 아서 코난 도일 경이 창조한 추리의 대가 셜록 홈즈. 1900년부터 1999년까지 모두 225편의 영화로 제작됐으며, 각각 2명의 흑인과 중국인을 비롯해 88명의 배우가 홈즈를 연기했다.


개봉관에서 가장 오랜 기간 상영된 영화
('서편제'가 6개월이 넘게 극장에 걸려 있었던 영화였다니 새삼 더 애착이 느껴진다. 당시 나도 단성사에서 관람한 그 관객의 1인이었다. 인도 영화 '용감한 자가 신부를 얻는다'라는 영화는 10년 넘게 한 극장에서 상영을 하고 있다는데, 우리 영화계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정말 부러운 일이다)

서편제 (1993): 194일, 단관 최다 관객동원(84만6427명)
<서편제>의 성공은 일종의 신화다. <쉬리>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영화 흥행의 한계치’라는 12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았고, 1개관에서 개봉하던 당시 가장 오랫동안 상영되며,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사실, <장군의 아들> 시리즈로 큰 수익을 올렸던 태흥영화는 이 영화에서 상업적 성공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임권택 감독의 예술성을 보여주려 했을 뿐이다. 하지만 1993년 3월10일 첫 기자시사회가 열리자 태흥 모든 직원의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영화를 본 기자들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에 또 칭찬을 했고, 다음날 열린 평론가 시사회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쏟아졌다. 태흥은 빗발치는 요청 때문에 당시로선 이례적으로 연일 시사회를 열며 개봉일인 4월10일의 ‘대박’을 기대했다. 아뿔싸, 개봉관인 단성사의 첫날 결과는 객석점유율 60%대인 3102명이었다. 일요일에는 3500명 정도가 들었지만, 월요일이 되자 1897명으로 뚝 떨어졌다. 기준 스코어 아래를 맴돌면 영화 간판을 내려야 했던 상황이었기에 바짝 긴장할 수밖에. 그러자 이 영화를 칭찬하는 기사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두 번째 주말 스코어는 3847명과 3929명. 첫주보다 월등히 올라간 결과였다. 문화부 장관이 봤다는 소식과 함께 관객의 입소문이 퍼지면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개봉한 지 12일째 되는 4월21일 4280명의 관객이 극장에 몰린 것이다. 그것도 금요일에 말이다. 결국 세 번째 주말에는 6천명에 가까운 관객이 몰리며 매진사례를 기록했다. ‘<서편제> 신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매진행렬은 주말에 이어 평일로 이어졌고, 오전 9시대에 ‘특회’를 빼도 전회 매진은 여전했다. 5월1일에는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시사했고, 그동안 극장에서 보이지 않던 중년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서편제>를 모르면 대화에서 소외될 지경이었으니 양복 차림의 중년 남성들도 홀로 객석을 차지하곤 했다. 전회 매진 행진은 8월24일까지 계속됐고, 이후에도 부분적으로 매진을 기록하며 10월22일 단성사에서 종영할 때까지 84만6천여명을 동원했다. 단성사에서는 막을 내렸지만, 10월 초 씨네하우스 등 8개관에서 확대개봉했기 때문에 12월 말까지 12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게 된다. 비공인 기록을 추가한다면 <서편제>는 입소문으로 서울 100만 기록을 깬 최초의 영화이며, 관람객 평균 연령대가 가장 높은 영화였으며, 가장 성공한 판소리영화.


한국영화가 가장 사랑한 작가는 이광수, 최인호

간발의 차로 이광수가 최인호를 앞섰다. 지금까지 이광수의 작품이 영화화된 것은 21번. 1925년 이경손 감독이 <개척자>를 스크린에 옮긴 이후 김기영, 전창근, 강대진 감독들이 뒤를 이었다. 1960∼70년대 여러 감독들이 다들 한번씩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무래도 문예영화 제작 붐과 관련이 있다. 14편 중 특히 <무정> <유정> <사랑> <흙> 등은 2번씩 영화화됐고, <꿈>은 배창호 감독이 1번, 신상옥 감독이 2번 모두 3번씩이나 영화화됐다. 하지만 이광수보다 최인호의 작품이 영화화된 게 하나 더 많다. 최인호는 <바보들의 행진> <적도의 꽃> <겨울나그네> <황진이> 등 15편이, 21번 영화화됐다. 필모그래피 중 배창호 감독과의 작업이 압도적으로 많다. 1976년 <걷지말고 뛰어라>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세계 영화가 가장 사랑한 작가
(에드거 월러스는 누구지?)

의심의 여지 없이 셰익스피어. 영국과 미국, 독일에서 적어도 179편 이상의 영화에 원작을 제공한 영국 작가 에드거 월러스 역시 ’20세기가 가장 사랑한 작가’라 할 만하다. 그의 생전에만 50편 이상이 영화화되면서 저작권료와 각본, 연출로 돈을 벌었음에도 월러스가 31만5천달러의 빚을 안고 죽은 사실은 미스테리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쓴 시나리오 작가
(시나리오 작가나 지망생이라면 기억해 둬야 할 이름이고, 작품 편수이겠다)

정종화씨에 따르면 유한철씨다. 1959년부터 1980년까지 <아낌없이 주련다> 등 모두 250편 넘는 작품을 썼다.


한국 최초의 만화 영화

1926년 이필우 감독의 <멍텅구리>. 1924년 10월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심선 노수현 화백의 네컷 만화 <멍텅구리>를 각색해 만든 코미디영화.


영화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한 왕

정종화씨는 <대원군>(1968) 등 24편의 영화에 등장하는 고종 황제라고 밝힌다. 왕관만 따지면 50편에 등장하는 빅토리아 여왕. 왕으로는 35편에 등장한 헨리 8세.

(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한 역사적 인물은 프랑스의 황제였던 보나파르트 나폴레옹(1769~1821)이고 163편에 등장했다고 하며, 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한 대통령은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1809~1965)이고 128편의 영화에 등장했다고 한다- 여기서의 작품 편수는 꽤 오래 전의 어느 시점의 수치로서 지금에는 변동되어 수치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


최초의 키스신
(기억해 둘만한 영화다)

<운명의 손>(1954): ‘혁명’이었다. 이전까지 러브신이라 해봤자 하염없이 바라보다 덥석 두손을 마주 잡거나 와락 껴안는 것이 고작이었으니. 외국 배우들이야 ‘필’만 꽂히면 입술을 부벼댔지만서도, 이를 본 관객이 금발의 연인들을 제몸처럼 여기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운명의 손>이 건드린 표현 금단의 영역은, 그래서 ‘조선’ 관객에겐 달콤하기 그지 없었을 것이다(5초가량 슬쩍 입을 맞댄 것에 불과했지만). 하지만 한형모 감독의 ‘결단’이 뜻대로 진행되기 위해선 거추장스러운 몇 가지 의례가 요구됐다. 일단 카바레 마담 정애 역의 윤인자와 국군 대위 영철 역의 이향의 키스 도중 ‘부적절한’ 감정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차단해야 했다. 두 사람의 입술에 셀룰로이드 재질의 비닐(담뱃갑의 비닐을 활용했다는 설이 있다)을 입힌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질병 전염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일석이조. 이와 관련해 사회적으로 질병예방 체계가 허술했던 전쟁 직후의 상황에서 택할 수밖에 없었던 방책이라는 분석도 있다. 처음 시도하는 키스이니만큼 당시 제작진은 만반의 준비를 기했는데, 윤인자의 남편을 세트로 데려와 그의 입회하에 촬영을 진행한 것도 그중 하나다(방송작가였던 남편이 고소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는 아래 에피소드와 뒤섞여 잘못 적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회적인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개봉 이전에는 기본적인 설정 이외에 영화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등 비밀 마케팅으로 일관했다. 효력은 상당했다. 12월14일, 서울 스카라극장의 전신이었던 수도극장에서 개봉해서 5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영화들이 키스장면을 끼워넣는 것은 보지 않아도 당연한 일. 하지만 잡음도 없지 않았다. 첫 번째 키스를 성공적으로 마쳤던 이향은 <인생역마차>(1956) 촬영 도중 노경희와의 키스장면이 신문광고에 버젓이 등장하는 바람에 몸을 사려야 했다. 노경희의 남편이자 배우였던 전택이가 주머니 칼을 소지하고 그를 찾아 충무로를 헤맸기 때문. 결국 감독이었던 김성민이 살벌한 협상테이블을 중재한 뒤에야 촬영이 재개될 수 있었다 한다. 이러했으니 여배우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강대진 감독은 <외나무 다리>(1962)를 두고, “주연배우였던 김지미와 최무룡이 당시 열애 중이라 실감나는 장면을 뽑아낼 수 있었다”며 회고하기도 했다.

세계 영화 사상 최초의 키스신으로 기록된 장면은 1896년 연극 <미망인 존스>에서 필름으로 찍은 메이 어윈과 존 라이스의 입맞춤. 클로즈업으로 촬영된 이 장면은, 당대의 저널 <더 채프 북>에서 "절대적으로 역겹다"는 평을 듣기도.


한국 최초의 누드 <전후파>(1957)

윤인자
최근작 :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 호스티스 역을 맡은 윤인자의 목욕장면. 1950년대 윤인자는 국내 여배우 중엔 광범위한 팬을 확보하고 있던 마릴린 먼로의 독주에 제동을 걸 만한 이로 손꼽혔다. 같은 해에 선보인 <그 여자의 일생>(1957)에서도 윤인자의 샤워장면을 볼 수 있는데, 실제 이 장면 촬영시엔 두 번째 남편이었던 고설봉씨와의 협의 끝에 감독과 촬영, 조명감독만 입장이 가능하도록 세트장 출입을 통제했다고 한다. 물론 그들이라고 그녀를 훔쳐볼 순 없었다. 큰 수건으로 맨몸을 둘둘 말았기 때문이다. 한때 세속의 때를 벗기 위해 출가하기도 했던 윤인자는 83년 환속한 뒤 연기를 계속했다. 쉽사리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에서 노스님을 눈여겨볼 것.


가장 많은 작품에서 주연한 배우
(주연급은 아니지만 최다 출연 배우는 '최남현'으로 700 여편에 출연했다는 정보도 있다. 5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상대한 여자 배우가 100명이 넘는다는 사실이 가장 부러운 일이다)

신성일
최근작 : 태풍
한국: 신성일 (536편)- 한해에 가장 많은 영화에서 주연한 배우(45편, 1968년), 가장 많은 여자배우를 상대한 남자배우(104명)

한국영화 80여년사를 대표하는 최고의 배우다. 신필림의 오디션에 합격한 뒤 강신영이라는 본명을 버리고 ‘뉴페이스 넘버원’이란 뜻의 신성일로 다시 태어난 그의 출발은 짐작과 달리 초라했다. 평소엔 사무실에서 전화수 역할이나 복사일 등을 했고, 영화에 출연한다 해도 단역만을 전전했다. 이강천 감독의 <사랑의 역사>에선 육체파 배우 김혜정의 ‘몸받이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가 1957년 <로맨스 빠빠>를 통해 정식으로 데뷔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전화를 잘 받아서였다. 평소 전화 심부름을 하던 그와 자주 대화를 나눴던 작가 김희창의 추천 덕에 이 햇병아리 배우는 김승호, 주증녀, 김진규, 최은희, 남궁원, 도금봉, 엄앵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이후 흥행과 비평에서 대성공을 거둔 유현목 감독의 62년작 <아낌없이 주련다>를 통해 각종 상을 받은 신성일은 드디어 스타덤에 오른다. 63년만 해도 <가정교실> 등 10여편에 출연했을 뿐인 그는 64, 65년에는 30여편씩 출연하더니 66년에는 40편대를 돌파하고, 67년에는 50여편에 출연하기도 했다. 주연작의 개봉 기준으로 볼 때, 1968년은 최절정의 해였다. 신성일은 이 해에 개봉된 212편 중 20%가 넘는 45편에 주연이었다. 자연 납세순위에서도 두각을 발휘했다. 66년엔 195만원(총소득 645만원) 납부로 연예인 1위를 차지했고, 67년에도 총소득 965만원 중 339여만원의 세금을 내며 이 자리를 지켰다. 신성일에 따르면 1967년 65편에 출연했는데, 하루 18편에 겹치기 출연한 적도 있었다고 하니, 홍길동이나 손오공도 흉내낼 수 없을 ‘둔갑술’을 보여준 셈이다. 잡지에서는 “신성일의 아성은 언제 무너질 것인가”라는 기획기사가 다뤄지기도 했다. 그가 그토록 많은 영화에 나온 것은 당시 영화의 큰 돈줄이었던 지방 흥행업자들이 그를 강력히 원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가 주연하지 못하면 이름이라도 포스터에 넣게 해달라고 생떼를 부리기도 했다. 그를 짝사랑한 것은 흥행사들만이 아니었다. 그가 제주도의 한 관광호텔에 묵었을 때, 창 맞은편에 자리한 여고에서 수업이 안 된다며 교감이 방으로 찾아오기까지 했을 정도로 그는 모든 여성의 우상이었다. 당연 남성들, 그중에도 젊은 남성의 질투는 심했다. 서울대 문리대학생회가 그에게 ‘최악우상’을 수여한 것도 어쩌면 이런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부인 엄앵란은 ‘상을 받는다’는 소식에 수상식장에 왔다가 난망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아무튼 가장 최근작인 <아찌아빠>(1995)까지 신성일이 출연한 작품은 모두 536편. 그중 주연작은 495편이었다. 상대한 여자배우는 104명이었다.

외화의 경우, 최다 주연의 주인공은 인도의 여성 코미디언 마노라마. 1958년에 데뷔한 이래 30편을 동시에 찍곤 했다는 그녀는 1985년에 이미 1천 번째 영화를 선보인 바 있다. 할리우드 스타 중에서는 존 웨인이 153편의 출연작 가운데 11편을 제외한 전작에서 주연을 맡은 기록을 갖고 있다.


최다 연출 한국 영화감독
(씨네21 기사에서는 아래와 같이 김수용 감독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한국영상자료원 정보에 따르면, 고영남 감독이 110편을 연출하여 최다 연출자라는 설도 있고, 비공식이긴 하지만 한국의 에드 우드로 불리는 남기남 감독이 130 여편을 연출했다고도 하는데, 정확한 정보는 어디에 있을까? 어쨌거나 100편의 임권택 감독을 비롯하여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다)

김수용
최근작 : 침향
김수용 감독: 109편. 이쯤되면 백팔번뇌도 저리 가라다. 1958년 <공처가>로 데뷔한 김수용 감독. 1999년 <침향>까지 40여년 동안 109편의 작품을 낳았다. 1967년에는 <어느 여배우의 고백> <길잃은 철새> <애인> <산불> <빙점> <고발> <안개> <사격장의 아이들> <까치소리> <만선> 등 무려 10편의 영화를 내놓았다. 빚었다기보다 토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 <중광의 허튼소리>(1986)가 공연윤리위원회에 의해 난도질당하자 메가폰을 던지고 10년 넘게 공백기를 가졌던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연출 편수다. 신기한 것은 태작들 중에 수작이 끼어 있다는 것이다. 1967년 <영화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빨리 촬영이 완료된다는 건 캐스트의 일치와 진행상 차질없는 완전한 계획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그만큼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편 그는 86년 <…허튼소리> 이후 13년만에 <침향>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가장 오랜만에 컴백한 감독이며, 데뷔 이후 41년간 감독생활을 하고 있는 최장수 감독이기도 하다 (이제, 임권택 감독이 1962년에 데뷔하여, 올해 45년째에 이르고 있으므로 현존하는 최장수 감독이 되었다. 한편, 지난 해 타계한 고 신상옥 감독은 1952년에 데뷔하여 2004년까지 감독 작품을 내놓았으니 52년간 감독 생활을 한 최장수 감독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영화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감독은 스페인의 헤수스 프랑코. 섹스와 피의 향연을 앞세워 1950년대 후반부터 무려 200편 이상의 저예산영화를 만들어왔고, 그중 100편에 가까운 작품들이 비디오로도 출시돼 있다. 가장 오래동안 활동한 감독은 1908년생으로 현존 최고령이기도 한 포르투갈의 거장 마뇰 드 올리베이라 (이 감독은 1908년생으로 거의 100살인데도 올해에도 영화를 찍고 있다고 하니 정말 놀랍다). 1929년 자신의 고향 오포르토의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두루 강에 대한 습작>으로 데뷔한 뒤, 2001년 칸영화제에 출품된 <나 집으로 돌아가리라>까지 꾸준히 영화를 찍어 왔다.


최연소 데뷔 감독

한국에선 <검은도시>(1990)로 데뷔한 최야성 감독. 1969년생이니 21살에 ‘입봉’한 셈이다.

외국에선 직접 제작, 각본, 출연까지 겸한 <천재 강아지 렉스>(1973)로 13살의 나이에 데뷔한 네델란드의 신동 시드니 링.


최고령 데뷔 감독

<돌아이4-둔버기>(1988)로 데뷔한 방규식 감독. 60년대부터 제작부에서 활약했고 기획자, 제작자로 이름을 알렸던 방 감독은 <돌아이> 시리즈의 4편에서 이두용 감독 대신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53살이었다. 인도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알려진 막불 피다 후세인. 인도 여성들의 역할에 대한 뮤지컬 <가자 가미니>(2001)로 85살에 데뷔했다.


한국 최초의 특수효과영화
(당시의 영화 기술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영화라 할 수 있겠다. '대괴수 용가리'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불가사리>: 한국 영화계에 특수효과라는 개념을 가져온 작품은 1962년 광성영화사에서 만들어진 김명제 감독, 최무룡, 엄앵란 주연의 <불가사리>였다. 고려 말기에 역적들의 손에 의해 억울한 죽임을 당했던 한 청년이 원한에 사무쳐 쇠를 갈아 마시는 불가사리라는 괴물로 환생, 원수를 갚는다는 내용의 괴기물인 이 영화는 1985년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같은 제목의 영화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불가사리>로 불붙은 특수효과영화는 <옹고집>(1963), <대괴수 용가리>(1967), <우주괴인 왕마귀>(1967) 등으로 이어진다. 일본 기술진의 도움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 <불가사리>의 특수효과는 지금은 물론이고 당대 기준으로도 그리 ‘특수’한 느낌의 ‘효과’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괴수 용가리>가 만들어지던 66년 당시 <영화잡지>는 “방화 사상 최초로 본격적인 특수촬영영화가 제작되고 있다. <불가사리>란 영화가 선을 보인 적이 있으나 역시 기술적인 부진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트릭’과 ‘미니어쳐’ 등을 사용한 특수촬영을 방화계에서 급격히 서두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기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옹고집>에 관한 내용. 허장강, 도금봉, 황정순 등이 출연한 이 작품은 조선시대 소설인 <옹고집전>을 영화로 옮긴 것. 옹진에 살던 못되먹은 옹고집이라는 양반이 한 스님이 만들어낸 또 다른 옹고집 때문에 고초를 겪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잡지>는 “여기서 허장강은 1인2역을 했는데 둘이 맞붙어 싸우는 장면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장면들이다. 따라서 국산영화로서 특수촬영을 성공시킨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아무튼 한국영화에서 “본격적인 특수촬영”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대괴수 용가리>는 일본 기술자 10여명이 들여온 200여종의 장비를 이용해 만들어졌고, 훗날 한국 SFX영화의 모태가 된다. 그 적자(嫡子)가 심형래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최초의 발성영화
(헐리우드에선 1928년작 '재즈 싱어'란 영화가 최초의 유성 영화로 알려져 있다)

<춘향전>: <춘향전>(1935)의 야심은 ‘유성’에만 있지 않았다. 이필우는 1931년 디스크에 사운드를 따로 녹음하는 방식의 유성영화가 수입되자 4년 연구 끝에 필름에 직접 소리를 입히는 방식의 P.K.R 발성장치를 만들어낸다. 형인 이명우가 연출과 촬영을 맡고, 이필우가 조명과 녹음을 맡은 <춘향전>은 애초 동시녹음까지 욕심냈던 것. 하지만 현장은 머릿속의 구상을 헤집어놓았다. 처음 써보는 시스템이라 작동이 서툴렀고, 새벽 두부장수 소리부터 자동차 소리까지 덤벼드는 노이즈를 어찌할 수 없었다. 후시녹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현상과정까지 거치고 나니 버려야 할 필름만 4만척. <농부가>를 집어넣으려 하였으나 충분한 경비를 얻지 못해 포기한 뒤 양악으로 대체한 것은 이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었다. <춘향전>이 놓친 최초의 동시녹음영화의 타이틀은 이듬해 <홍길동전>(1936)이 가져갔다.


한국 최초의 컬러영화
(처음으로 색채 영화를 경험했을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홍성기 감독의 <여성일기>(1949)로 16mm 필름을 사용했다. 35mm 영화로는 <선화공주>(1957)가 최초.


한국 최초의 장편애니메이션

신동헌 감독이 연출한 <홍길동>(1967). 아우인 신동우의 <풍운아 홍길동>을 원작으로 제작비 5400만원과 하루 400명씩 동원해 <홍길동>을 제작했다. 이때 그린 그림은 가로길이로 3759km에 이르렀고, 장수도 12만5천장에 달했다. 신동헌 감독은 60년 ‘야야야, 차차차’로 유명한 진로 소주의 애니메이션 CF를 제작하기도 했다.


최초의 여성 감독

한국:
박남옥
최근작 : 묘녀
, “아기 업고 영화 만든” 감독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보라고 그래. <미망인>(1955)을 내놓으며 ‘여성 감독 1호’라는 수식을 얻었던 박남옥 감독. 산후 조리도 채 끝내지 않고 촬영장에 선 그는 네오 리얼리즘영화에 경도되어 감독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한다. 필모그래피는 16mm로 찍은 데뷔작이 전부지만, 홍은원, 최은희, 황혜미 등으로 이어지는 초기 계보뿐 아니라 이후 활동을 시작했던 여성 감독들에게도 시원으로서의 영향력을 여전히 발휘하고 있다.

외국: 고몽영화사를 설립한 레옹 고몽의 비서 출신인 알리스 가이. 1896년, 혹은 고몽의 카탈로그에 따르면 1900년 <양배추의 요정>을 연출했다. 최초의 장편영화를 만든 여성감독은 미국 최초의 여성감독이기도 한 로이스 웨버. 1914년 <베니스의 상인>으로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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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
모리 히로시 지음, 안소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고독과 외로움은 닮은듯 다르다. 고독은 한없이 스스로에 침잠하는 한편 외로움은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고독은 군중 속에서도 느낄 수 있다. 외로움은 군중 속에서 처절해진다. 고독은 스스로 고독해지지만 외로움은 타인으로부터 심리적 격리다.

소설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는 고독에 대한 찬가다. 고독이 얼마나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지 특이하게 말하고 있다. 친구의 실종, 갑자기 떠오른 실종된 친구의 추천 식당. 간판도 장소도 일정한 곳이 없는 식당. 오직 전화번호만 알고서 그때그때 바뀌는 장소로 찾아가는 곳. 그곳의 메뉴는 조금 특이한 아이와 조금 더 특이한 아이, 아주 조금 특이한 아이, 그리고 조금 특이한 아이, 더더욱 조금 특이한 아이, 그저 조금 특이한 아이, 아직도 조금 특이한 아이 등이 있을뿐이다. 식당은 절대 혼자서만 가야한다. 그곳에서 함께 식사를 해주는 여인이 있다. 사적인 질문은 일절 금지. 그 메뉴에서 주인공은 위안을 얻는다. 삶의 힘을 얻는다. 그리고 어느새 그도 그의 친구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그가 이 식당에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던 동료가 이 식당을 찾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특이한 아이는 원상 회귀다.

그래서 추측한다. 주인공과 그 전에 사라진 친구는 어디로 갔는지를. 고독을 추구하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홀연히 산속으로 사라져간 것일까. 그들이 어디로 사라졌을지는 분명 중요하지 않다. 오직 그 자리엔 고독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건 허무와 다르다. 허무는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진다. 고독은 세상 속에 있되, 세상과 떨어져 있다. 그런 기분을 소설은 차분히 이야기한다.

부끄럽지 않도록 사는 건 상당히 어렵지만 그것만이 인생의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몹시 개구쟁이였던 내가 이렇게 온화한 사람이 된 이유를 가만 따져보니 아무래도 세상에는 부끄러운 게 너무나도 많다는 결론에 다다른다.(44쪽)

맞다. 고독은 수줍다. 그 수줍음이 사람을 온화하게 만든다. 버럭 소리한번 지르지 못한다. 그래서 쉽게 고독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원래 대화라는 건 모두 그때뿐이다. 상대의 인간성이나 배경이란 정보가 축적되어 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소한 인상 하나로 그 정도의 축적은 싹 변할 수 있다. 날마다 다른 사람을 만나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과 결국 종이 한 장 차이다.(55쪽)

이것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다. 정말 쉽지않다. 친분이라는 속성이 대화를 끈끈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친분이 비밀을 폭로하게 만들고, 또는 뱉어내도록 유도하고, 그 비밀의 공유가 서로를 얽어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순간 한꺼번에 사라져버릴 수 있다. 관계의 거리를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거리는 항상 적당하도록 유지된다. 그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감이 고독을 쉽게 찾아오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고독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은 의사소통을 원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시적으로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죠...그래서 왠지 모르게 자신의 내면을 조금은 공개해야 한다는 기분이 들어요. (64쪽) 다정한 배려는 상대를 향한 것뿐만이 아니라 단순히 나 자신이 원만하게 지내고 싶었던 이기심 때문은 아니었나.(68쪽)정보는 얼마든지 날조할 수 있다. 우리는 평소 그런 정보에 얼마나 마음을 빼앗기고 있을까(88쪽)예술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은 첫째, 인간이 이룬 것이어야 하고 둘째, 쓸데없는 소비여야 한다는 점이다.(93쪽)조용함은 즉 관계없음의 축적이고, 몇가지 영향을 하나씩 정성 들여 차단해서 마지막에 가까스로 얻을 수 있는 고립이다.(104쪽)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이 사람 앞에서는 이런 식의 나로 있어야겠다고 일찌감치 역할을 결정해버려요.(120쪽)우리는 장식된 것, 만들어진 것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으므로.(148쪽)사는데 가치가 있는게 아니라 살아있음으로써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에서 가치를 발견해내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만(169쪽)내 안에 바로 지금 존재하는 의식이, 현재의 나를 의견에 따라 움직이게 할 뿐이고 사실은 변하지 않는 덩어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와 잠시 닿은 손 때문에 나는 이미 변화하고 있다.(192쪽)옆에서 보기에 무리한 일을 하는듯해도 자기 자신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달리고 있다.(221쪽)서로 마음이 맞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서, 타인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자신의 세력을 조금이라도 넓히려고, 이 사람에게 빌붙으면 손해는 없겠군, 일단 지금은 고개를 숙여두자고 생각하며 그저 웃는 얼굴일 뿐이다. 그런 웃는 얼굴의 집합을 즐거움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240쪽)

두서없이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그었던 부분을 써봤다. 무엇이 떠오르는가.

가식없는 대화의 어려움, 고정불변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조차도 항상 변한다는 진리, 일정하면서도 지속적인 관계맺기가 가능한 것인지 등등 책을 읽는 자체를 고독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다. 그리고 깨닫게 한다. 세상은 혼자라는 것을. 하지만 절대적 고독이 아니라 언제나 상대적 고독임을. 그래야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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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2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7-07-04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 아니 보긴 봤지만 너무 빨리 지나쳐 인식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분명 시각의 대상이지만 대상으로 뇌에 입력되지 않은 것들을 '본다'는 것은 경이다.

KBS <스펀지>에서 등장하는 초고속카메라를 생각해보라. 과연 풍선터지는 모습이, 화살이 날아가는 모습이 저러했던지 놀라울따름이다.

영화 <300>은 철저히 이런 시각적효과를 노리고 있다. 스파르타와 그리스, 페르시아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따지는 영화가 아니니, 이것에 대해 논하는 것은 재미없을듯 하다. 물론 잘못된 고정관념이나 편견, 선입견이 있다면 따져볼 일이다. 그건 역사에 관심많은 다른 이들에게 맡기자. 아니, 영화를 본 이 기회에 공부 한번 해보는 것도 괜찮을지 싶다.

본론으로 들어가 <300>은 눈이 즐거운 영화다. 잔인한 화면들이 가끔 눈에 비치지만, 만화를 원작으로 했던 <씬시티>에 비하면 오히려 덜하다. 이런 눈의 즐거움에 굳이 베드신을 덧붙일 필요가 있었는지 하는 부분이 아쉽다면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

근육질의 남자들, 절대 열세라 불리는 상황, 굴하지 않는 정신, 목표를 향한 냉철한 전진의 자세는 근육질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슬로우 모션으로 진행되는 전투장면은 그림 한컷한컷이 된다. 전투는 힘과 스피드의 절묘한 결합임을 이 느린 화면 속에서 깨우친다. 특히 중간에 두명의 전사가 호흡을 맞춰 싸우는 모습은 무용을 보는듯 즐겁다. <매트릭스>의 빠른 손발놀림과 반대되는 이런 느린 장면들은 얼마나 많은 호흡을 맞추어, 또는 NG속에서 장면을 찍었을까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다. 분명 블루스크린을 뒤에 두고, 혹시 쓰러지는 적군조차 디지털로 형상화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다면 더욱 놀라울 일이다. 보이지 않는 적을 대상으로 공중에서 손짓 발짓을 했을터니, 정말 한편의 무용이지 않은가?

원작 만화의 컷을 그대로 옮겨온듯한 화면들. 만화의 장점 중 하나는 그 컷과 컷 사이의 빈 시간을 상상력으로 메꾸는 것도 있다. 영화는 이 상상력을 충분히 채워주고도 남는다. 정말 눈이 호강한 영화다. 아름다운 근육과 아름다운 육체의 몸짓, 더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걸로 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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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7-04-09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상평도 눈부셔요!

하루살이 2007-04-09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얘기 얼굴에 머금은 미소가 더 눈부셔요.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오늘의 일본문학 5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인간 거짓말 탐지기 나루세, 최고의 달변가이가 괘변가 교노, 오차율 0%의 생체내 시계를 지닌 유키코, 소매치기의 천재이자 동물애호가 구온. 이렇게 4인방이 모여 은행을 턴다. "이 시대 로망을 위하여"라는 외침과 함께. 그리고 이들의 은행털이는 실제로 로망이다.

이 4인조 은행털이단의 만남부터 비겁한 은행차량털이 잭인 갱과의 두뇌싸움 등이 재미있게 펼쳐진다. 숨가쁜 전개와 잘 짜여진 얼개가 쉽게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은행털이범이라는 범죄집단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갖게 만든다는 점에서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알 수 있다.

 아무 연관이 없는듯하던 인물들이 모두 한 그물안으로 들어오는 쾌감은 통쾌 그 자체이다. 추리소설에서 최초의 우연은 허용되지만 그 이후의 우연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한편,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고 말하는 주인공 사이에 충돌이 없다는 것도 재미있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는 나루세와 괘변을 펼치는 교노의 말 덕분이다.

더군다나 가끔씩 뱉어내는 독설은 따끔한 충고가 되거나 비수를 찌르는듯한 아픔을 건넨다.

인간은 후회는 해도 마음을 바로잡을 줄은 몰라.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하지.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은 그런 인간들의 속성에 대한 변명이야.(227쪽)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얼마나 속아 넘어갈까(368쪽)

제복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 진짜 총 하나만 있으면 가짜 총도 모두 진짜로 여겨지는 것. 힘이란 속성은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힘과 주변을 둘러싼 가짜 힘들의 총합으로 말이다. 즉 1+30개의 0은 1이 아니라 31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내면에 감추어진 비겁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비겁함의 진수는 유키코의 전남편으로 표현되어진다.

돈에 대한 풍자도 엿볼 수 있다. 소설 속에서 은행을 터는 것이 범죄가 아니라 로망일 수 있는 것은 돈이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갱의 돈이 맡겨진 은행의 비밀금고는 결국 우리 돈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4인조 엽기드림팀의 생각에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고정관념, 정치가와 공무원, 부시와 권력 남용, 은행과 보험의 관계 등등에 대해 마음대로 주무르는 작가의 재치와 위트에 감탄한다. 그리고 로망을 위해 은행 속으로 들어간 드림팀처럼 우리 인생의 로망,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난 재미로운 삶은 어디에 있을지 상상해본다. 유쾌, 통쾌, 발칙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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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2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7-07-04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