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쉬 스토리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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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최근 읽은 일본 소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이사카 코타로라는 작가 기억해야 겠다. 단숨에 읽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대부분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방식 그 자체의 재미와 함께 소설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에 대한 흥미 두 가지 모두를 잘 잡아나가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소설은 4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물원의 엔진, 새크리파이스, 피쉬스토리, 포테이토칩.

동물원의 엔진은 한밤중 동물원 늑대 우리 앞에서 엎드려 자고 있는 남자와 이를 지켜보는 세명의 남자들의 이야기다. 왜 이 남자는 늑대 우리 앞에서 자고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부터 시작해 최근 일어난 시장 살인사건과 늑대의 우리 탈출이 얽혀 들어간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세상에 대한 냉소로 가득차 있다고 보여진다. 우리로 둘러싸인 세상, 또는 지금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환경이 바로 동물원 우리와 같다고 했을 때, 과연 이 우리로부터의 탈출은 유토피아일까. 소설은 탈출해봤자 별거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예상치못한 위험에 직면하거나 무기력증에 빠질 뿐이다. 이것은 늑대와 늑대 앞에 있는 남자가 말해주고 있다. 반면 우리 안에서 생활하는 것은 안전하면서도 그나마 달콤한 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일까. 우리 앞 남자를 지켜보던 주인공을 포함한 세남자들이 우리 안의 생활 또한 별볼일 없다고 말해준다. 그럼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작가는 말한다. 그래서 어쩌겠냐고.

그런데 세번째 소설 새크리파이스를 보면 또다른 느낌을 건넨다. 20여년전과 현재, 그리고 30여년 전과 10년 후.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오가며 세상이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보여준다. 노래 한 곡이 어떤 인연의 끈을 타고 흘러가 세상을 구하게 되는가 하는 사연이 정말 극적으로 펼쳐진다. 세상은 준비된 자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다. 슈퍼영웅에 대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평범한 사람이 세상을 구하게 된 이야기다. 그것도 아주 평범한 사건을 계기로. 그런데 작가의 시선이 흥미롭다. 세상을 구한다고? 그래서 뭐 어쩔건데라는 듯 소설 속 주인공을 바라보는 것 같다.

두번째 새크리파이스는 본업은 빈집털이범이면서 부업은 탐정인 구로사와라는 남자가 행방불명인 사람을 찾아 오지 마을에 들어가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다. 옛날옛적 산적들로부터의 피탈을 피하고자 이루어졌던 이상한 풍습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풍습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따갑다.

풍습이란 건 다 그런 거 아니겠어. 무엇을 숨기려고 그럴싸한 이유를 갖다 붙이는 거지. 공포나 죄책감 같은 거 말이야. 그리고 욕망 같은 거. 그런거야. 그런 것들을 어영부영 얼버무리려고 풍습이라든가 설화라든가, 그런 게 생기는 거 아닐까.(74쪽)

정보라는 건 진실의 정도나 증거보다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수요에 반응하는 거야.(130쪽)

소설을 읽고나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너무나 당연시받아들이고 있는 풍습 또는 제도에 회의적인 눈길을 보낸다. 정말 이것은 어떻게 해서 탄생했을까, 그리고 지금도 그것은 유효한가.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것, 그리고 회의하는 것,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작가는 이런 것에서도 장난을 친다. 그래서 소설은 즐겁다.

마지막 단편 포테이토칩은 범상하지 않은 듯, 또는 약간 모자라는듯, 하지만 마음만은 너무나도 착한 빈집털이범에 대한 이야기다. 야구선수 오자키의 집을 털려다 문득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서 우연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 하지만 정작 이야기의 중심은 핏줄과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여유롭다. 콩소메맛을 먹고 싶었지만 무심코 집어먹은 소금맛 포테이토칩도 괜찮다고 깨닫는 주인공 여자친구 오니시의 심정과 똑같다.

절망으로 빠지지 않은 세상에 대한 냉소. 그렇다고 장밋빛 희망으로 넘쳐나 있는 것도 아니다. 세상은 그저 SO WHAT일뿐. 즐거울수도 슬플 수도 있다. 때론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희망은 지속되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은 돌고 우리는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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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우연히 TV에서 [한국사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신숙주와 성삼문이라는 두 인물에 대한 재평가가 주된 내용이었다. 프로그램의 도입부를 보지 못한 채 중반부터 나름대로 집중해서 지켜봤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끝나고 타이틀이 뜨기 시작하는데 당황스러웠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핏빛 향연을 펼치다니...

상품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포장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포장을 아마도 매주 대해야 한다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실루엣으로 표현되어진 역사적 장면들. 하지만 왜 그리도 칼로 사람을 치는 장면이 많은가. 더군다나 검은 그림자에 선홍색 피가 뿌려지는 장면은 너무 자극적이다. 아마 제작자 입장에서는 실사가 아닌 실루엣이 주는 간접성이 잔인함을 누그러뜨릴 것이라 생각했는지 모르나, 결코 그렇지 않다.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했던 [씬시티]라는 영화는 실루엣은 아니지만 모노톤으로 그려진다. 희미한 기억으로 피도 빨간색이 아니라 노란색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19세 관람가였을 것이다. 물론 이 이유때문만은 아니지만 그 표현이 너무 노골적이다보니 모노톤임에도 불구하고 잔인함은 전혀 바래지않는 것도 한 이유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우리 역사 중엔 반혁, 음모와 숙적 제거를 위해 칼과 독을 치켜들었던 것은 사실이나 타이틀 배경화면은 유독 그런 표현이 짙다. 더군다나 피가 뿌려지는 장면이 몇장면 계속되는 것은 아무래도 눈에 거슬린다. 주말 8시라면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또는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이 접할 수 있는 시간대다. 자극적 화면에 무뎌진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아니었겠지만, 제작자가 수용자의 감수성을 너무 무디게 만들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폭력적 영화나 만화로 인한 폐해를 말하기 이전에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이런 조그만 것들부터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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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07-07-09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처음 봐서 아직 그 내용에 대해선 판단을 못하겠구요 ^^;;
암튼 타이틀에 허걱! 놀랐더랍니다. 그날 따라 내가 예민해져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트랜스포머의 화려한 영상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야말로 최고다. 시시껄렁한 농담들도 웃어넘길만하다. 뚜렷한 선과 악의 대립과 명확한 스토리가 단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숨막히는 로봇간의 대결장면과 변신 장면은 모든 것을 다 씻고도 남는다.

다만 한가지, 영화를 보면서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혹시 이 영화가 미국 무기상들의 홍보 전략이 개입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 촬영 때 미국 국방부의 전폭적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트랜스포머에 등장하는 로봇들이 절대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천하무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갖추어진 무기 체제로도 로봇과의 대결은 가능하다. 그리고 그 무기는 미군이 가지고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무기는 공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A-10 썬더볼트2, 에어포스원, F-117과 미군의 최신 전투기 F-22다. 또 블랙호크라는 헬기를 비롯해 정찰기와 다양한 총기류도 등장한다.

특히 F-22는 샘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적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F-22는 록히드마틴에서 제작한 21세기 미 공군의 주력 제공기다. 최고속도 마하 2.42에 순항속도 마하 1.5, 탁월한 공대지 능력을 갖추고 있다. 외국에 수출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는 등 아무래도 이것이 세계 최강임을 알리는 교묘한 홍보전략으로 보인다. 영화는 이 홍보에 한몫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뭐, 이렇게까지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야 없겠지만, 이상하게도 로봇보다 첨단 무기에 관심이 쏠리는 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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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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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을 좋아한다. 쉬는 날이면 배낭을 메고 산으로 간다. 산에 오르면 가슴이 확 트이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땀으로 끈적끈적한 몸은 막걸리 한 잔과 파전, 두부 한 모면 다 잊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면 몸은 노곤하지만 마음은 천국에 가 있다. 라고 산행일지를 쓰지만 이 글에는 엄청나게 많은 부분이 빠져 있다.

쉬는 날 일어날까 말까 하는 고민, 일어나고 나서도 하늘을 쳐다보며, 날이 좋지 않으면 안갈테야 하는 주저하는 마음, 멀리가지 말고 가까운 곳으로 갈까 생각하며 천천히 몸을 움직이다, 결국 등산화를 신기까지의 과정은 완전히 생략되어 있다. 정상에 서서 아~ 좋다라는 단 한마디를 위해 느껴야 하는 다채로운 감정들, 그리고 또 수없이 들어오는 시각과 청각, 후각 정보들이 깡그리 생략되어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이런 것부터 이야기하고 있다. 데제생트라는 인물을 통해 여행이란 꿈꾸던 것과는 전혀 다른 현실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가방을 준비하고 역사까지 갔지만, 결국 집으로 돌아와버린 인물을 이 책의 맨 처음에 소개하고 있는 것은 충격 요법일 듯싶다.

예술 작품에서도 상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단순화와 선택이 이루어진다. (26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행을 꿈꾼다. 그림을 보고, 사진을 보고, 그곳을 향해 떠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여행의 목적지보다도 떠난다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보들레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52쪽)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은 휴게소나 공항 자체가 오히려 더 낭만적일 수 있음을 말한다. 떠난다는 꿈을 꾼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이미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몇천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날아와 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 그 자체만으로도 낭만은 묻어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여행은 현실적 문제와 맞닥뜨려야 하지만, 그래도 즐거운 것이다.

이국적인 것에 대하여, 호기심에 대하여, 시골과 도시에 대하여, 숭고함에 대하여,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하여,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 습관에 대하여로 나뉜 각 장은 말 그대로 여행의 기술을 가르쳐준다.

특히 여행은 여행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고,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일상의 것들을 유심히 바라봄으로써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잘 이야기해주고 있다. 일례로 데생을 하기 시작하면 그 사물 하나하나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고, 어떤 풍경에 대해 내가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어디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나아가 숭고함을 통해 고양될 수 있는지를 말한다. 여행의 기술에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데생이라고, 또는 정밀하게 들이대는 카메라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데생이나 카메라를 통한 이런 관찰은 놓치기 쉬운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기술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기술을 터득한다면 굳이 먼 곳을 향해 떠나지 않아도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장 자체가 여행지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여행은 마음의 문제요, 또한 기술의 문제이기도 했음을... 일상이 여행이 되는 그 순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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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카파는 보도사진기자다.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너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실제로 그 자신 전쟁터에서 항상 군인들보다 더 가까이 현장에 접근했다. 그의 기자정신으로 '카파이즘'이라는 말이 탄생되기도 했다. 그는 마흔 한 살의 젊은 나이에 베트남에서 취재를 하다 지뢰를 밟고 숨졌다.

그의 사진 중 가장 유명하면서 또한 그가 종군기자로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된 것은 1936년 스페인 내란에서 총탄을 맞아 쓰러지는 병사의 모습을 찍은 사진 덕분이다. 도저히 인위적인 설정으로는 불가능한 숨막히는 순간을 담아냈다.
또 그를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라는 사진이다. 1944년 6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담은 것으로 핀트가 맞지 않은 사진이다. 하지만 전쟁의 절박함을 오히려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큰 감동을 주었다. 

그런데, 그 전

후사정을 살펴보면 인생이란 참 우연이라는 것이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만든다. 노르망디에서 찍은 파카의 사진은 총 106장이었다. 그런데 '라이프' 암실 직원의 실수로 대부분 소실되고 겨우 10장 정도만 남는다. 이 사진들이 라이프에 실리면서 오히려 빛을 발하게 됐다.

소실된 사진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모른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보건대 발표되지 못한 96장의 사진 중엔 제대로 포커스가 맞고 구도가 잡힌 사진이 몇 장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렇게 잘 나온 사진이 보도자료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살아남은 사진은 흔들리는 촛점의 사진. 그 뒷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순전히 상상을 해본다. 편집자는 무척 고민을 했을 것이다. 초점도 맞지 않는 이런 사진을 실어야만 할 것인가. 사진은 실렸다.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라는 이름으로. 사진은 이 제목 하나로 더 큰 힘을 얻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인생은 때론 실수가 실패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행운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린 좌절할 필요가 전혀 없다. 물론 그의 흔들리는 사진은 목숨을 걸고 찍은 것이라는 것은 잊지 말아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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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7-06-28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좌절하지 않을랍니다.

하루살이 2007-07-01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TL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