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용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먼저 이 책을 거칠게 평가하자면, 흥미진진하지만 다소 투박하다라고 해야할 듯싶다. 기대되는 끝없는 상상력, 하지만 어딘가 모를 비약과 다급한 결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현재 지구처럼, 환경오염과 전쟁, 기아가 끊이지않고, 권력에 대한 투쟁과 자본에 대한 끝없는 탐욕 등으로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지구를 탈출하고자, 파피용이라는 우주선을 만든다. 이 우주선은 새로운 인류를 시험하기 위해 14만 4천명을 선발해 태우고, 새로운 은하계의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행성으로 1200년을 넘게 항해한다. 세대가 거듭되면서 결국 마지막에 남은 세대 중 남녀 두명만이 새로운 행성에 도착하고, 인류의 역사는 다시 시작되려 한다.

소설의 재미는 과연 폭력적이지 않은 사람들로 구성된 파피용에 올라탄 사람들이 유토피아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사회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또 변해가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꽤 흥미롭다. 이 과정에서 베르나르의 풍자가 돋보이기도 한다.

제 생각에 꼭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정치인, 군인, 목사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정부도 군대도 종교도 없는 최초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권력과 폭력, 신앙 이 세가지야말로 대표적인 의존 형태지요.(98쪽)

하지만 정작 우주선의 사회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이 세가지에 휩싸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기폭제가 된 원인은 바로 치정에 의한 살인이었다. 그전까지 범죄 한 건 발생하지 않으면서도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던 사회는 이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가 도입되면서 급격하게 지구의 현 모습을 닮아가기 시작한다.

사람들에게는 노예 기질이 있으니까. 사람들은 자유를 요구하면서도 정말로 자유가 주어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어. 반대로 권위와 폭력 앞에서는 안도감을 느끼지.(중략) 그게 바로 인간이 지닌 역설이야. 더군다나 사람을 세뇌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공포라고.(216쪽)

지구와 닮은 사회로 나아가다 행성에 도착한 단 두명의 남녀. 과연 이들은 지구와는 다른 새로운 지구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들은 인간이라는 종족의 번식을 이루어내지 못한다. 물론 인공수정이라는 다른 방법으로 해내기는 하지만. 그것도 아담을 연상시키는 갈비뼈의 세포를 통해서 말이다. 이것은 순전히 창세기를 연상시키는 의도적인 장면들이다.

어쨋든, 파피용이라는 우주선에서 최초의 범죄와 제도가 등장하게 된 계기가 치정이었던 것처럼, 새로운 지구의 첫 인류가 아이를 낳지 못한 이유도 그들의 사랑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때문이다. 거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거대함의 시발점을 남녀간의 사랑에 두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반면 거대담론에서 내비치는 인간에 대한 관점도 대비되고 있어 흥미롭다. 고통이야말로 인간을 진보시키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욕망이야말로 인간을 파멸시키는 것인줄 알면서도 억제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쉽게 긍정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그야말로 아담과 이브, 야훼에 대한 창세기가 우주 어디에선가 계속 되풀이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설정이다. 상상력에 놀랍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그는 인간이 개미와 쥐 사이에 놓여있는 사회라고 보고 있다. 이타적 혼연일체의 개미와 이기적 개인주의의 쥐는 지구에서 가장 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하는 동물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그 둘 사이에 존재하면서도 스스로를 파멸시키려는 폭력적 유전자를 지닌 종족인가?

유토피아를 꿈꾸면서도 유토피아를 산산조각낸 파피용이라는 소설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세에서 계속 머물러야만 하는 종족이 바로 인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서글픈 생각이 든 것은 왜일까. 새까만 우주 속에 푸른 빛을 띠는 지구. 세상은 어둠 속에서 그렇게 빛을 발할 수 있을까. 왠지 지금과 같은 현실은 파피용을 어디에선가 만들어봐야 겠다는 상상을 자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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