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고 나서 이틀쯤 지났을까.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갈 일이 생겼다. 오르막을 힘차게 걷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사이에 들어서 있는 건물들에 눈길이 갔다. 저 건물은 과연 행복을 가득 담고 있는가? 주위의 환경과 잘 어울리는가? 어떤 소재와 주제로 지어진 것일까? 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맴돌면서 잠깐 쉬어갈 수 있었다.

참 예쁘다, 라고만 생각했던 건물도 왜 예쁘게 느껴진 것인지 곰곰히 생각하게 만들고, 화려하고 멋부린 건물임에도 왠지 정이 가지 않는 건물 앞에선 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이것은 순전히 [행복의 건축]이라는 책이 준 변화다. 물론 이런 변화가 그리 오래 갈 것 같진 않지만, 꽤 기분좋은 변화임에는 틀림없다. 

꿈 중의 하나는 직접 집을 짓는 것이다. 시골에 내려가 황토집을 짓고 살아보는 게 꿈이다. 물론 현실로 부닥치는 것과 꿈 사이엔 엄청난 괴리가 있을 것이다. 그 괴리는 어차피 몸으로 부닥쳐야 할 일일테고, 단순히 건강만을 생각하고 환경만을 생각하던 것에서 아름다움의 의미도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확대됐다.

존 러스킨은 이런 것보다 더 포괄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건물에서 두 가지를 구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건물이 우리를 보호해주기를 바란다. 동시에 우리는 건물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바란다. 무엇이 되었든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거나 상기할 필요가 있는 것을 이야기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66쪽)

본질적으로 디자인과 건축 작품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그 내부나 주변에서 가장 어울리는 생활이다. 이 작품들은 그 거주자들에게 장려하고 또 유지하려 하는 어떤 분위기에 관해 말한다. (77쪽) 아름답다는 느낌은 좋은 생활이라는 우리의 관념이 물질적으로 표현되었을 때 얻는 것이다. (80쪽) 인간과 동물의 속성 가운데 가장 매혹적이고 의미 있는 것을 환기시켜줄 때 그 작품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88쪽)

집의 기능은 단순히 잠자고 먹고 머무는 곳만이 아니다. 물론 지금 우리의 집은 오직 돈으로만 비쳐질 뿐이지만.

우리는 감정 때문에 부패하고 사회에서 교제하는 바람에 길을 잃고 방황할 위험에 빠진다. 따라서 외부의 가치들이 내부의 갈망을 고무하고 강조해줄 장소가 필요하다. (112쪽) 아름다운 건물은 선해지겠다는 우리의 결심을 보강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122쪽)

하지만 아름답다는 것도 선하다는 것도 늘 같을 수는 없다. 그래서 건축은 변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선과 미는 재(財)에 휩쓸려 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집은 위로만 솟구치려는 욕망의 반대편에 길게 드러누워 있는 모양새도 지닌다.

와비는 아름다움을 허세가 없고, 소박하고, 완성되지 않고, 덧없는 것들과 동일시한다.(280쪽)

나도 이 와비의 아름다움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렇다고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거리를 바라보는 눈과 마음이 한동안 즐거워지리라 믿는다. 비록 마음 편히 뉘울 집 하나 갖고 있지 못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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