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저기 해님봐봐. 집에 가는게 좋아서 빨개졌나봐."
"아니야, 아빠. 해님이 열이 나서 빨개진거야. 이제 병원에 가려나 봐."
산너머 해가 넘어간다. 빠알갛게.
참 예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고추 모종을 아주심기 할 때 모종간의 거리, 즉 정식거리는 일반적으로 30~40센티미터 정도다. 물론 일반적으로다. 기후나 토양, 재배법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서 정식거리는 달라질 수 있다. 호박은 정식거리가 일반적으로 3미터쯤 된다. 즉 고추의 10배나 되는 것이다.
미국의 도시인들은 일반적으로 46~122센티미터 정도 떨어져서 이야기한다고 한다. 동양인은 이보다 조금 더 가깝다. 일본의 경우엔 친밀감을 유지하기 위한 거리가 25센티미터 정도란다.
적당한 거리를 두지 않으면 말썽이 일어난다. 수박 옆에 바짝 붙여서 오이를 심어놨더니 수박이 열리지 않는다. 오이의 세에 밀려 수박이 힘을 못쓴다.
적절하게 거리를 둔다는 것은 나와 상대방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고추 정식 거리를 3미터로 하거나 호박의 정식 거리를 30센티미터로 한다면 농사 망친다. 사람도 마찬가지일테다. 기센 사람 두 명을 옆에 같다 붙여 놓으면 사사건건 부딪히기 일쑤다. 누군가와 친밀해지거나 또는 평온하게 함께 하고 싶다면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다만 그 적당함은 상대방을 알아야 찾을 수 있다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풍작을 기대한다면 그 품성을 아는게 먼저이지 않겠는가. 그만큼의 수고는 감수해야 할 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웅~"

어스름. 감자를 캐던 밭에 기계소리가 요란하다.

헬리콥터나 탱크같은 육중한 소리다.

그렇지않아도 새를 쫓는 총소리에 신경이 거슬리는데 이건 또...

시골에서도 소음공해가 만만치 않다 생각하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봤다.

커다란 팬이 돌아가며 약을 뿌려대고 있다.

머지않아 수확할 옥수수에 살충제를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하얀색의 살충제는 팬이 일으킨 바람을 타고 몇십미터를 뒤덮는다.

어.... 이런면 안되는데.

옥수수밭에서 멀지 않은 곳이 유기농으로 토종벼를 짓고 있는 논이다. 우렁이와 가끔씩 찾아오는 오리들이 사는 곳. 논에 만들어 놓은 생태둠벙 속에 토종미꾸리와 새뱅이가 넘치는 곳. 하지만 이놈의 농약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지막지하게 퍼져나간다.

그런데 이 농약을 뿌리는 기계가 친환경 광역 살포기다. 대단지 유기농 논에 친환경 약재를 뿌리기 위해 사용하는 기계인 것이다. 아마 지방 정부가 유기농을 지원하기 위해 들여온 것일게다. 하지만 막상 커다란 덩치의 기계를 사용할 곳이 마땅치 않으니 농부들의 민원을 받아들여 살충제나 뿌리고 있는 모양새다. 친환경 지원하겠다는 기계로 친환경 농사를 죽이고 있다. 친환경에 대한 근원적 고민없이 마치 유행처럼 진행되는 정책들이 오히려 친환경 농사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농사.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햇살이 너무 따갑다. 딸내미 선크림 바르고 나가자."
"아빠, 고래도 등에 선크림 발라야지?"
"응?"
아하! 그래, 그래. 고래는 등에다 선크림 발라야겠구나.
우리 딸내미 어떻게 이런 생각을... 창의적(?)인 발상. 기특하다. 기특해 ㅋㅋ
"그래. 고래는 등에 선크림 발라야겠구나. 근데 딸내미. 어디서 이런걸 배웠어?"
"응. 옥토넛에서 나왔어."
으~. 창의성은 만화에서 나온거였군.
딸바보의 행복했던 5초의 착각.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랑과 염원이 지극하다 해서
생명을 지키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간밤에 고양이 새끼들이 잘 지냈는지 궁금했다.
아침에 보자마자 손아귀에 쥐고서 우유를 먹였다.
체온이 떨어져 조금 차가운 것이 불안했다.
그래도 우유를 받아먹는 모양새가 나쁘진 않았다.
아무래도 체온이 걱정되어 햇볕을 쬐게 했다.
조금 있으니 따듯해진다.
야옹~ 야옹~ 우는 소리도 괜찮아 보인다.
꿈틀꿈틀 움직이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가슴 벅찬 마음을 안고 일을 보다 잠깐씩 둘러보았다.
그리고 일 삼매경.
한 호흡 가다듬다 고양이가 생각나 나가본다.
조용하다. 움직이질 않는다.
부드럽던 몸뚱아리가 굳어있다.
이놈들을 꺼내어 다시 땅에 묻으려니 눈시울이 시큰해진다.
손아귀에 느껴지던 부드러움 대신 딱딱함이 가슴을 쳐댄다.
생명을 지켜낸다는 것에도 앎이 필요했을까.

 

어린이집을 끝마친 딸내미가 고양이에게 가자고 한다.
"아빠, 고양이 우유 먹여줄래."
"고양이가 죽었단다."
"왜?"
"잘 모르겠어. 에미가 따듯하게 품어주고 젖도 먹여주고 그랬으면 살았을텐데..."
"어떻게 죽었어?"
"어제, 기어가는 거 봤지. 그 모양으로 죽었어."
"아빠가 고양이 키우는 것 많이 연습했어야지!"
"미안해, 딸내미. 고양이를 죽게 해서."
"나, 고양이 보고 싶단 말이야."
"우리 나중에 아빠가 집을 지으면, 그때 고양이랑 강아지랑 많이 기르자. 미안"
"그럼 그땐 강아지랑 고양이 새끼랑 많이 기를거야. 그리고 강아지 엄마,아빠도. 고양이 엄마, 아빠도 다 같이 키울거야. 어른도 두마리씩 있어야 돼. 그래야 새끼들도 잘 큰단 말이야."
"그래, 알았어. 꼭 엄마 아빠랑 같이 키우도록 하자."

딸내미 말처럼 사랑을, 생명을 키워내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했는지 모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