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이란 농사로 또는 농촌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고향이 농촌인 사람은 얼마나 될까. 특히 20~30대 젊은 세대들은 대부분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니 돌아갈 농촌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그러니 농사를 짓겠다고 시골을 찾는 사람들을 귀농자라고 부르는 것은 틀린 것이다.

그렇다면 농사를 지으며 살겠다고 시골로 들어온 이들을 어떻게 불러야할까. 당연히 농부일 것이다. 요즘은 농업경영인으로도 부르는데, 농사란 것이 일면 자영업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기존의 농부와 구분지을 필요가 있다면 선농이 어떨까 싶다. '농사를 택한 사람들' 말이다.

어쨋든 농사를 직업으로 선택하고 시골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귀농이든, 귀촌이든, 선농이든 그 형태가 어떻든 도시의 삶을 떠나 새로운 방식의 삶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급자족 방식의 철학적 고민의 결과이든, 블루오션을 노리며 경영을 꿈꾸는 사업적 측면이든 도전은 결코 쉽지 않다. 전혀 연고가 없는 곳에서 생판 모르는 농사를 짓고 살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는 생계조차 장담하기 힘들다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정말 꿈꾸던 시골의 삶을 누리며 행복하게 농사지으며 살 수 있을까.

2012년 도시의 삶을 접고 시골에 들어와 점차 정착해가고 있는 경험과, 각 지역을 돌며 만난 수백 명의 농부들의 이야기를 자양분 삼아 귀농(선농)으로 살아남는 법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농부로서의 도전에 나선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포노 사피엔스 -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최재붕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청소년들의 희망직업 1순위는 유튜버 크리에이터라고 한다. 최근 조사된 통계치에서는 유튜버의 평균연봉이 약 6,000만원, 부업 유튜버는 4,000만원 가량으로 나타났다. 물론 최고수입 유튜버는 억단위를 넘어서니 통계치의 함정에 빠지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즉 상위 10~20% 정도가 수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며, 대부분은 월 몇 만원에서 몇 십만원인 경우가 태반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청소년의 희망직업으로 꼽히는 이유는 경제적 수익구조 너머 다른 이유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포노 사피엔스>라는 책은 인류가 스마트폰 인류로 진화했음을 선언하고, 역진화는 발생하지 않음을 전제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즉 신인류는 스마트폰이라는 문명으로 야기되고 있는 4차산업혁명 속의 인류라는 것이다. 우리가 2차, 3차 산업혁명을 거쳐오듯 다시는 뒤로 돌아서서 갈 수 없음을 주장한다. 또한 스마트폰의 생태계는 자유경쟁시장임을 전제로 하고 있음도 분명하다. 그러니 이런 전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 책은 그저 신인류의 선언문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는데 이만큼 간략하고 명확한 이야기도 없을 것 같다.   

 

이 책에선 2010년 이전까지, 글로벌 시장의 핵심 산업은 <제조, 금융, 에너지>라고 불릴만큼 과거와 대비해 큰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베이비붐세대가 시장을 주도하고 부를 축적하며 사회질서를 결정하는 핵심세대로서의 역할을 하는 게 당연한 상식이었습니다. 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발명 이후 세상은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손에 든 소비자는 선택권을 갖게 되었고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래서 소비자의 권력이 정치권력, 자본권력보다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는 어떻게 제왕이 된 것일까. 그것은 디지털 소비문명이라는 도구의 변화로 야기됐다.

 

디지털 소비 문명에 맞춰 사업을 기획하려면 디지털 플랫폼, 빅 데이터, 그리고 인공지능에 대한 학습이 꼭 필요합니다. 신산업 기획의 3콤보라고 해두죠.

 

이 3콤보로 인해 매스미디어의 힘보다 더 강력한 소셜미디어가 등장했고, 이는 개인의 영향력이, 즉 소비자 개개인의 영향력이 그 어느때보다 강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에게 찍히면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면 성장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의 미움을 받지 않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내가 좋은 것을 만들었으니, 또는 내가 아주 좋은 정보를 갖고 있으니 필요하면 쓰고, 아니면 말아라 식의 접근은 이제 통하기 어려운 현실이 됐음을 뜻한다. 

 

내가 기획하고 준비하고 추진하는 업무들이 포노 사피엔스를 표준으로 봤을 때 어떻게 개선되어야 할지 늘 고민해야 합니다.

 

그 개선의 방법은 킬러콘텐츠와 팬덤의 양상이다.

 

팬덤의 힘입니다. 오직 킬러콘텐츠로 승부하고, 성공하면 팬덤이 형성되고, 팬덤이 확장되면 사업이 된다. 이것이 유튜브 생태계의 사업화 법칙입니다. 그러고 보면 모든 결정권은 팬, 즉 소비자가 갖고 있습니다. 이래서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소비자가 왕이자 절대권력자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킬러콘텐츠는 이건 꼭 경험해봐야 해 라고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권유할 수 있는 상품, 또는 서비스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킬러콘텐츠와 팬덤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앵프라맹스(눈에 보이지 않는 너무나 미세한 차이, 그러나 본질을 바꾸는 결정적 차이)를 찾아내려면 디테일에 집착해야 합니다. 인간은 항상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무한한 잠재력도 갖고 있으며, 대중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개인적입니다. 예측하기 어려워서 매력적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소비자의 특성이라서 앵프라맹스를 찾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렇더라도 그 출발점은 바로 사람입니다. 소비자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기 위한 집착이 디테일을 만들고, 디테일이 완성되면 팬덤이 생깁니다. 인류 문명의 표준이 달라진 만큼 팬덤을 일으키는 앵프라맹스도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즉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텐센트의 창업주 마화텅은 모든 직원들에게 카피하라고 얘기합니다. 단, 카피를 하더라도 다르게 하라고 합니다. 고양이를 보고 호랑이를 그려라. 이게 텐센트의 사훈입니다. 그러나 고객을 생각하는 마음은 카피할 수 없습니다. 킬러콘텐츠를 만드는 디테일은 바로 거기서 나옵니다. .. 데이터는 곧 고객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토대로 삼아 점점 자신의 영역을 키워가고 있는 신산업 기획의  3콤보는 무엇을 자양분으로 삼고 있을까.

 

갤러웨이 교수가 아이폰의 성공 요소로 꼽은 것은 유희에 대한 욕망입니다. 아이팟이라는 제품을 탄생시켜 음악이라는 인류 공통의 소비재를 장악한 애플은 진정한 괴물, 아이폰을 만들어 비디오와 게임도 장악합니다. 거기에 모든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연결해 즐길 수 잇는 앱이라는 생태계를 조성했습니다. 인류는 엄청난 속도로 아이폰과 앱의 생태계에 빠져들며 새로운 방식의 유희에 몰입합니다.

 

책장을 덮고 나면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이제 세상은 게임문명의 신세계관을 갖게 됐다는 것을. 우버나 에어비앤비와 같은 공유경제도 이 책에선 마치 게임처럼 해석을 한다. 참가자가 앱을 들고 우버라는 게임에 동참해 택시를 불러 사용해본 경험을 다른 우버 게임 참가자들과 공유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지금 우리 눈앞에는 인간의 유희에 대한 욕망과 이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앱이라는 공간 속에서 포노 사피엔스라는 신인류가 살고 있다. 기성세대인 나라는 종족은 이 신인류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 책은 우리에게 새로 생겨난 맵을 보여주었다. 우린 이제 그 맵에서 생존해야 한다. 생존의 아이템은 플랫폼, 데이터, 인공지능이다. 아이템을 획득하고 나서의 전략 전술은 바로 콘텐츠다. 자, 이제 새로운 생존게임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복제인간은 왜 필요할까?

먼저 이 질문을 던져본다. 복제동물에 대한 연구로 개와 고양이를 비롯해 다양한 동물들이 복제되고 있다. 이 복제의 최종 목적지는 인간일 것이다. 그런데 왜? 복제를 하겠다는 것일까. 노동력이 필요해서? 그건 자동화 로봇이 대신 할텐데... 그럼 영화 <아일랜드>에서처럼 장기 이식이나 대리출산을 위해서? 하지만 복제를 통한 것보다는 의료기술의 발달로 보다 더 안전하게 출산과 장수를 누리지 않을까? 영화 <AI>처럼 인간의 감정을 만족시키기 위한 대리가족의 역할이 필요해서일까. 아니면 <터미네이터>처럼 전쟁도구로...

뭐, 어떤 것이 됐든 복제인간은 도구로서의 역할일 뿐, 복제인간 자체가 주체적 인격을 가진 생명체로 대접받지는 못할 것 같다. 만약 그런 시도를 한다면 영화 <블레이드 러너>처럼 사냥감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 <레플리카>는 복제인간에 대한 욕망이 꽤나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사고로 아내와 아이들 셋을 모두 잃은 주인공(키아누 리브스). 그는 가족을 다시 살려내기 위해 복제인간기술을 이용한다. 잃어버린 가족을 다시 찾을 수 있다면 시도해볼만 하지 않을까. 그런데 영화는 당혹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복제기술을 이용해 당장 복제 가능한 수는 셋뿐. 네 명의 가족 중 3명만을 복제할 수 있다. 당신이라면 어떤 1명을 제외하도록 선택을 할 것인가? 

하지만 여기까지. 굉장히 철학적일 수 있는 질문을 던지며 출발한 영화는 점차 오락영화로서의 길을 걸어간다. 그렇다고 CG나 액션이 눈길을 끌만큼 화려하거나 멋지게 펼쳐지진 않는다. 다만 복제된 가족을 지키려는 주인공과 이 기술을 이용하려는 세력간의 추격전이 긴장감을 주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다소 아쉽긴 하지만 킬링타임용으론 그럭저럭 볼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인터넷을 하다보면 신기하게 느껴질 수도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어디에선가 관심이 있어서 클릭 한 번 해본 상품이 어느 사이트를 가든 주위에서 알랑알랑 거리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데이터 수집을 통한 인공지능으로 관심이 가는 상품을 알려주는 서비스일 것이다. 예를 들어 유기농 녹차에 관심을 갖고 오픈마켓에서 검색을 한 이후에는 다른 사이트에서도 유기농 녹차와 관련된 광고들이 따라붙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이런 서비스가 우리나라에선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의 수준은 아닌듯하다. 일단 내가 관심을 갖은 그 상품을 구매했는지 여부를 전혀 알지 못하고 광고가 따라붙는다는 것이다. 이미 구입했다면 별로 소용이 없는 정보가 될텐데 말이다. 게다가 이 광고에서 나온 상품이 나에게 만족을 줄 정도의 것인지 여부는 중요하게 생각지 않아보인다. 그저 광고료를 가장 많이 지급할 의사가 또는 능력이 있는 기업의 제품이 광고가 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또하나, 내가 의도를 가지고 클릭한 것이 아니라 컴퓨터 버그로 인해 잘못 눌러진 경우엔 구매 의도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클릭이 됐다는 것만으로 관련광고가 계속해서 따라온다는 것이다. 즉 소비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준의 지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1회성 클릭인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서 검색 등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서 클릭하는 시간의 간격이 얼마나 되는지 정도까지만이라도 데이터로 갖고 분석을 한다면 어느 정도 구매의사의 여부를 알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말이다. 

우리 삶의 편의를 위한 관심상품과 추천상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인공지능의 발전을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연필로 쓰기 - 김훈 산문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훈의 글은 단어 하나 하나를 꼭꼭 씹어서 읽게 된다. 그렇게 읽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읽을 수밖에 없다. 가령 다음 글을 한 번 보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야 보던 것이 겨우 보인다. (76쪽)

 

징검다리를 건너듯 한 단어 한 단어를 디디고 건너가야지, 자동차를 타고 씽~ 지나가듯 읽어낼 수가 없다. 혹여 그렇게 술술 읽다보면 갑자기 무슨 글을 읽었는지 영문도 모른채 지나치게 된다. 그러다 아차차! 하며 다시 술술 읽었던 부분의 처음을 찾아 꼭꼭 다시 씹어 읽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불편함? 또는 이런 섬세함이 바로 김훈의 글맛이라 할 것이다.

 

또한 김훈의 글은 단순한 감상으로 끝나는 것이 거의 없다. 기자 출신의 글쟁이들의 직업병마냥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쓰여진다. 이번 책의 <밥과 똥>을 한번 보자. 그 글 속에서는 다양한 출처가 쏟아져나온다.

 

국립생태원 소식지, 삼국유사, 일본 메이지 유신 분뇨 취급규칙, 고양 화장실 전시관의 전시자료. 동의보감, 정약용 <민보의>, 정약용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구약성서 신명기, 정의도 논문 <청동숟가락의 등장과 확산>, 유기영 논문 <저탄소 지비용형 서울시 분뇨처리권역 재설정기법 개발연구> 2012, 대가람의 뒷간 도록.

 

여기에 더해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담이 살을 붙인다. 출처라는 뼈와 경험이라는 살이 더해져 글은 생명력을 뿜어낸다. 글의 출처들이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뻐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글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주는 물과 같아 글 곳곳에 잘 스며들어간다. 

 

아무튼 이번 책 또한 삶의 현장을 많이 노래하고 있다. 그의 글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속담에서 <이승이 좋다>가 아니라 <개똥밭에 굴러도>에 방점을 찍는듯이 보인다. 삶의 주름과 눈물을 이야기하면서 또한 미소와 흥을 노래하기도 한다.

 

이번 책에서는 유독 <전환>이라는 말이 눈에 띈다. 단어를 선택하는 데 있어 신중한 그가 변화나 진화라는 단어를 선택하지 않고 전환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일단 전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부분을 살펴본다.      

 

오이지 항아리 속 전환의 진행방향은 그 놀라운 단순성인데, 오이지는 단순성을 완성해가면서 깊어지고 깊어져서 선명해진다. (222쪽) 오이지를 먹으며 중

 

생명은 그 자비없는 시간에 쓸리면서 시간이 가져오는 변화를 받아들임으로써 저 자신을 전환시키는데, 저 자신을 전환시키지 못하는 것들은 모조리 멸종해서 그 생명을 미래에 전할 수 없다. 이  전환이 건너뛰기 식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고, 수백만 년의 시간 속에서 수많은 멸종들의 무덤을 딛고 서서히 이루어진다. (449쪽) 고래를 기다리며 중

 

전환 속에는 분명 진보나 발전이라는 개념은 없다. 변화는 수동과 능동의 형태가 모두 가능하다. 하지만 전환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힘으로 바꾸어야 벌어지는 것들이다. 책 속에서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통해 그의 심정을 이해해가는 부분에서도 이순신의 전환을 말하고 있다. 삶의 위대함은 또는 위대한 삶이란 바로 이 전환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일까.변화를 요구하는 시대, 진화가 필요한 시대에서 우리는 전환을 도모해야 할련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