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코끼리 마늘'이라고 들어보았는지 모르겠네요. 한국의 토종마늘로 왕마늘, 대왕마늘, 웅녀마늘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웅녀마늘은 아마도 단군신화 속 웅녀가 먹었다는 바로 그 마늘이지 않을까 상상하며 붙여진 이름일 것 같다는 추측을 해 봅니다.

 

 

그럼 코끼리 마늘이란 이름은 왜? 6.25 전쟁 때 미국에서 우리 토종 대왕마늘을 가져다 육종하면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코끼리 마늘입니다. 토종마늘이 거의 사라지면서 미국에서 역수입해오면서 알려진 이름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코끼리 마늘은 현재 우리가 먹는 일반 마늘보다 2~3배 정도 큽니다. 마늘보다는 오히려 양파에 가깝다고 합니다. 올 봄 우연히 종근을 얻었두었는데, 이제서야 생각이 나 텃밭에 심어봅니다. 보통 10월 중에 심는데 11월 10일 경에 심었으니 조금 늦은 감이 있습니다. 농사에서는 때가 중요한데, 어찌 될지 두고보아야 겠습니다.
 
 

 

야콘을 캐고 난 자리에 그대로 심었습니다. 마늘도 양분을 요구하기에 퇴비나 비료를 주어야 할 터이지만, 일단 심어봅니다. 대신 그 위에 제멋대로 길게 자란 풀들을 잘라서 덮어둘 요량입니다. 삭아 퇴비도 되고 겨울을 날 때 보온도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 말이죠.

 

 

코끼리 마늘은 생으로 먹기보다는 굽거나 볶아서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구에서는 샐러드용으로도 사용한다고 하는데, 생으로 직접 먹어보질 못해서 뭐라 말할 수 없겠네요. 다만 종근을 얻은 농가에서는 흑마늘로 먹기에 딱 좋다고 하더군요. 이것은 올봄에 흑마늘로 먹어본 경험이 있어 저도 추천해드리는 방법입니다. 알이 굵은데다 당도도 높아 먹는 맛이 좋습니다.

 

 

늦게 심어 다소 불안하기 하지만, 내년 봄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궁금합니다. 땅에 양분이 없어 풀을 덮기 전에 퇴비를 위에 살짝 뿌려볼까 고민 중입니다. 아무튼 올 겨울을 잘 넘겨주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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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8 14: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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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8 15: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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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50보 100보의 차이

 

■ 깡패와 양아치의 차이?

우리나라 영화에서도 가끔씩 나오는 이야기 하나. 깡패와 양아치의 차이는? 아이들을 폭력과 이익의 대상으로 삼느냐. 마약을 거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야말로 50보 100보다. 그럼에도 50보와 100보에는 차이가 있다. 돈벌이에 있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같지만 그 대상을 한정하느냐의 여부가 이 둘을 가른다.

 

■ 마피아의 신구 세력 다툼

영화 <배신자>는 이탈리아 마피아 이야기를 다룬다. 1980년대 마피아 신구 세력간의 다툼에서 벗어나 브라질로 떠난 토마소 부세타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토마소는 브라질에서 경찰에 체포되어 이탈리아로 송환되고, 재판 과정 중에 마피아 세력의 중심인물들과 그들의 범죄행위를 폭로하게 된다. 실제 이탈리아에서 벌여졌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영화는 토마소의 시선으로 즉 내부자의 시선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 

 

■ 명예로운 자의 길

토마소는 스스로를 '명예로운 자'로 여긴다. '명예로운 자'는 새로운 마피아 세력 이전의 구 마피아 집단을 말하기도 한다. 토마소에게 새 마피아 세력은 헤로인을 취급하기에 명예롭지 않다고 여긴다.-하지만 실제 기록되어진 사실은 토마소가 두목급 마약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 그런 생각으로 그는 거침없이 내부고발자의 길을 걷는다. 그의 폭로로 범죄사실과 증거가 드러나면서 수많은 마피아 간부급 인물들이 체포되고, 정치세력과의 연계가 밝혀진다. 죽음을 무릅쓰고 폭로의 길, 즉 배신자의 길을 택한 그는 자신이 결코 배신자가 아님을 주장한다. 자신은 명예로운 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 헤로인을 취급하는 당신들이야 말로 명예를 내팽개친 배신자라고 주장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마피아 가입 초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을 수십년이 지나 자신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재판 과정 중에도 결코 실행해내는 모습을 통해 은연중 보여주고 있다. 자칫 토마소가 정말 '명예로운 자'처럼 보일지도 모르는 위험한 장면이라 생각된다. 반대로 마피아란 정말 용서할 수 없는 범죄집단이라는 증명서로 여겨질 수도 있다.

 

■ 평온한 죽음이 소원

토마소의 소원은 '침대에서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평범한 이들에게 정말 소박한 꿈일 수 있겠지만, 마피아의 길을 걷고 있는 그로서는 원대한(?) 꿈이다. 과연 그는 이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마피아의 뒷면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토마소의 불안한 영혼을 통해 화려해 보이는 그들의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자신을 끝내 명예로운 자로 여기는 모습 속에서 이들의 이중성을 파악한다. 다만 이 과정이 언뜻 토마소를 변호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어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해진다. 어찌됐든 영화적 재미는 생각보다 많다. 지루할 것 처럼 보이는 재판과정도 꽤나 흥미진진하다. 영화 <대부>와는 다르지만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한다면 추천해본다. 

 

오늘도 평온하게 잠을 청하는 일상과 이렇게 늙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영화를 통해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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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도대체 무슨 제목이 이 따위야? 무슨 말이지 알 수가 없네.

[나타지마동강세]라는 영화제목을 보고 맨 처음 떠오른 생각이다. 한자를 한 자 한 자 뜯어보니 '나타라는 어린 마귀가 세상에 내려왔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말도 안되는 환상으로 영화적 재미가 다소 떨어진다 생각한 그렇고 그런 중국 애니메이션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7월 개봉한 이 만화영화는 상영 100일 만에 총 수입 1조원을 넘겼고, 개봉 19일 만에 관객 수 1억을 돌파했다고 한다.

 

 

눈으로 이런 인기의 실체를 꼭 확인해보고 싶었다. 열 살 딸내미와 함께 보았는데, 아빠도 딸도 모두 엄지 척!이다. 중국 애니메이션의 수준은 이제 함부로 얕잡아 보아서는 안된다. 시각적 측면은 물론이거니와 스토리 또한 아이와 어른을 모두 사로잡을 수 있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풍부한 중국 신화를 가지고 있다는 장점을 살리면서도 현대적으로 잘 각색해 풀어내는 이야기 솜씨가 탁월하다.

 

 

[나타지마동강세]의 스토리는 이렇다. 선과 악을 대표하는 구슬의 혼 중 선의 혼을 받아 태어날 아이였던 나타가 악의 혼을 받고 태어난다. 이는 신선이 되고자 했던 한 제자(신공표)의 술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나타는 3년 뒤 벼락을 맞아 죽게 될 운명이다. 그런데 나타는 태어나면서 발동한 악의 기운을 어머니의 사랑으로 어느 정도 억누르게 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선입견과 편견으로 악의 기운이 뻗쳐 악동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럼에도 부모의 진정한 사랑이 나타의 마음을 사로잡아 마을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의 길을 걷는다.

 

 

오래된 신화 속 주인공을 재해석한 나타라는 캐릭터의 모습은 물론 중간 중간 터져나오는 유머코드는 꽤나 현대적이다. 감동과 웃음이 절묘하게 버무러져 있다. 게다가 운명을 피하고자 하지만 결국 운명의 길을 걷게되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비극적 주인공들과는 다르게, 나타는 과감하게 운명과 싸워서 이겨낸다. 내 운명은 '하늘이 아니라 내가 결정한다'는 나타의 목소리는 큰 울림을 자아낸다.

 

 

개인적으로는 이 만화영화가 주는 가장 큰 재미를 다른 곳에서 찾는다. [나타지마동강세]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핵심은 바로 사람들의 편견과 선입견이기 때문이다. 신공표가 아이의 운명을 바꾸는 장난을 친 것도 신선의 편견 탓이다. 신공표는 사람이 아닌 표범이다. 신선의 제자로 열심히 노력하고 실력을 연마했음에도 오직 사람이 아닌 표범이라는 이유로 신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나타가 악동의 길로 접어든 것도 마을 사람들이 나타는 요괴라는 선입견과 편견으로 인해서다. 만화 속에서도 '마음 속 편견은 큰 산이고, 이 산은 뒤집기 어렵다'는 대사가 나온다.

 

 

편견과 선입견은 진화론적으로 보면 뇌의 활동에너지를 줄여주는 정신작동체계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ㅇㅇ는 ㅇㅇ다'가 일반적인 현상일 때, 그것을 하나 하나 다시 검증할 필요없이 곧바로 판단하게 되면 뇌는 판단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 편견과 선입견이 주는 부작용이 있다. [나타지마동강세]가 바로 이 부작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재미와 감동, 그리고 교훈까지. 중국 애니메이션 [나타지마동강세]가 한국에서 개봉되기를 희망해본다. 중국 애니메이션의 놀랄만한 현재 수준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만화영화가 말해주듯 중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또한 여지없이 무너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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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열매를 맺는 계절이다. 올 한 해 나의 삶도 차근차근 열매를 맺어가면 좋을 것을... 열매는 저절로 맺히는 것이 아님에. 뜨거운 태양과 비바람을 견뎌내야만 꽃은 비로소 열매가 된다.

 

 

시골의 한 식당 앞에 고욤나무열매가 맺혔다. 작은 감처럼 생겼는데, 이 나무는 감나무의 대목으로도 쓰인다. 서리가 내려 얼까말까할 이즘에 따먹으면 그럭저럭 먹을만하다. 익기 전에는 감처럼 떫은 맛이 난다. 다 익기 전에 수확해서 겨울내 저장했다 먹기도 한다. 작은 감 모양이 앙증맞다. 한방에서는 고욤을 말려 약재(군천자())로 쓰기도 한다. 

가시오갈피 또는 가시오가피 열매도 꽤나 매혹적이다. 잎과 함께 달린 열매를 따놓고 보니 영락없이 산삼이 생각난다. 오가피의 오가는 잎이 다섯개 달린 것을 뜻하는데 실제 산삼과 모양이나 특성이 닮았다고 한다. 다만 산삼은 풀이요, 오가피는 나무인 것이 다를뿐. 이 열매로 술을 많이 담그기도 한다. 특히 오가피나무 껍질로 담근 술은 요통이나 손발저림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위 사진의 가운데는 인삼열매다. 선홍빛깔의 작은 열매가 꽤나 매혹적이다. 아마 이런 매혹은 새들에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새들이 인삼 열매를 먹고 산으로 날아가 똥을 싸면, 그 씨앗이 산에 떨어져 산삼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야말로 풀과 나무들이 열매를 화려하게 맺는 이유를 잘 설명해주는 사례로 보인다. 씨앗이 잘 영글었을 때에야 비로소 열매를 화려한 색으로 바꾸어 동물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이 씨앗들을 보다보니 법륜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데, 콩을 심고서 팥이 나오라고 소원을 빌어봐야 팥은 절대 나지 않는다는 뜻의 말씀이었다. 종교는 기원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그 기원이 이처럼 불가능한 것이라면, 그 기원은 절대 이루어질리가 없다. 우리가 비는 것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살펴보자.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면 빌 이유가 없다. 빌어서 될 일도 아니고, 노력해서 될 일도 아니다.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놓아버려야 한다. 다만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면 즉 콩 심고서 건강하고 풍성한 콩을 바란다면, 그 바라는 심정, 비는 마음을 바탕으로 건강하고 풍성한 콩을 수확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우리가 빌고 있는 그 마음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에 온 정성을 쏟으면 될 일인 것이다. 기원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기원의 힘을 갖는 것이다. 열매를 거두며, 내년에 또 어떤 씨를 심을지 고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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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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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선생 책의 재미는 곁가지에 있다. 책의 중심테마를 이야기하면서 뻗어나가는 곁가지가 풍성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곁가지가 너무 지나쳐 간혹 중심테마를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다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번책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는 반야심경을 해제한 것이 중심테마다. 반야심경을 풀이하고 이야기하기 위해 스무살 때 화장실에서 보게된 반야심경과의 인연에서 시작해, 조선시대 불교사의 중심인물을 훑고 내려온다. 

 

그러면서 뻗쳐내려가는 곁가지 중 주의깊게 새겨들을만한 구절들이 있다.

 

30년 동학의 민중조직건설의 비결은 다름 아닌 콜레라와의 전투였습니다. 희한하게도 괴질귀신은 동학도들을 피해간다는 소문이 전국에 유포된 것이죠. ... 하여튼 19세기 조선에 상륙한 콜레라는 한편으로 동학혁명의 기초를 구축시켰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선불교의 정신혁명을 촉발시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항상 동일한 국면을 놓고도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한 테마를 전개해나가는 것이죠. 59쪽

 

 

 

새로운 선불교를 선보였던 경허 또한 콜레라에 걸린 마을을 지나치며 느낀 생사일여의 무너짐을 통해 용맹정진의 계기를 갖게 된다. 이처럼 어떤 한 사건이 운명을 쥐고 흔들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 사건 단 하나의 조건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처럼, 수많은 원인들이 쌓여서 그 하나의 큰 사건이 운명을 촉발시킨다. 하지만 그런 큰 사건을 맞이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사건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결코 변화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사건과 그것에 대한 반응이 어떻게 행동으로 나타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지금, 그곳에서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그 사건이 운명적 사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눈과, 그것에 대해 행동할 줄 아는 손발을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을 넘어 환경이나 배경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삶에 대한 시선의 차이도 있다.  

 

 

고조선 고구려문명의 테마가 생이고, 인도문명의 테마가 고라고 한다면 중동문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테마는 역시 죄입니다. 사막에서의 삶은 공동체의 영역이 매우 좁으며, 대자연의 순환이라는 생생지도에서 단절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대지를 생명의 근원으로 인식할 수 없으며, 땅에 대한 애착과 신념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늘을 수직적 관계 속에서 초월적 존재로서만 인식되고, 우주의 순환이라는 시공범주를 벗어나 버리죠. 그런데 사막의 사람들이 이 하나님이라는 존재자에 대하여 갖는 의식은 죄라고 하는 한계상황을 통해 매개됩니다. 126쪽

 

지금의 나를 이루는 것은 나 혼자만의 독단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처한 환경과 역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그렇기에 절대적인 그 무엇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곁가지를 지나 불교와 반야심경에 마주친다. 

 

 

 

누구든지 석가모니를 생각하고 석가모니를 본받고 석가모니의 말씀을 실천하기만 하면 석가모니가 될 수 있다. 그러한 각성, 자각이 든 사람을 보리살타, 즉 보살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죠. 보살은 보리를 구현한 존재, 보리를 향한 존재, 보리의 실현이 그 본질인 사람, 보리가 체화된 사람이라는 뜻이지, 비구보다 더 낮은 단계의 사람도 아니고, 스님을 섬겨야만 하는 공양주보살도 아닙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불교라는 전체체제에 엄청난 변화를 주게 되었습니다. 비구중심의 승방정사에서 탑중심의 거대한 가람으로 불교중심이 이동하게 되는 것이죠.  173쪽

 

싯달타가 보리수 밑에서 깨달은 것은 연기 하나입니다 연기라는 것은 이 우주의 모든 사태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무수한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계망 속에서만 이벤트, 해프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연이라는 것도 인은 주원인이고, 연은 그 주변에 묻어 있는 수없는 보조원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이 사라지면 존재는 소리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그것이 공입니다. 213쪽

자, 그래서 반야심경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사법인(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 열반적정)과 연기(유전연기 - 고제(과) 집제(인) 와 환멸연기 - 멸제(과) 도제(인)), 대승의 실천원리 6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등을 통해 삶의 지혜를 건네고 있다. 뜬구름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먼저 부를 찬양하고, 물질적 소비를 권유하며, 쾌락에 탐닉하는 시대의 정신을 알아챌 필요가 있을 성싶다. 그리고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정신으로 삶을 향유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인지를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반야심경 또한 이런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 것이기에.

 

 

 

 

 

 

 

경허스님 법문- 삐뚤어진 나무는 삐뚤어진 대로 곧고, 찌그러진 그릇은 찌그러진 대로 반듯하며, 불량하고 성실치 못한 사람은 그대로 착하고 성실함이 있느니라.

불교의 경직된 계율주의를 본질적으로 거부. 우리를 짓누르고 있던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해탈을 구가하는 자유로운 영혼. 96쪽

한국의 불교는 불교의 원래의 모습을 통째로 보전한 통불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경허 같은 사람이 고뇌하고 있는 것은, 훌륭한 선사가 되기 위한 노력이 아닐, 단지 불교가 가르쳐준 근본 진리를 통해 참다운 인간이 되고자 하는 아주 보편적이고,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인간학의 과제상황이었습니다. 113쪽

선이니 삼매니 요가니 하는 말들이 뭐 대단히 어려운 철학적 용어가 아니라 정신집중 정도의 아주 비근한 인도말의 다양한 표현일 뿐이라는 것이죠. 116쪽

종교는 기원(빔)입니다. 화를 피하고 복을 비는 것은 인간의 지극히 평범한 심원이고 종교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죠. 탑돌이도 기원의 문화입니다. 170쪽

금강경이 말하는 벼락은 나와 대상 사이의 집착에 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내려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멸집이다. 193쪽 그림 풀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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