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감추는 사람, 실패를 살리는 사람
하타무라 요타로 지음, 정택상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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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16강은 정말 꿈으로 끝나고 말까? 히딩크 감독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은 최근의 평가전에서 보여준 대표팀의 나약한 모습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감독을 바꿔야 하지 않는냐는 극단적 의견을 포함해 그가 한국축구를 잘 모른다는 비아냥까지 그에 대한 신뢰의 축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원래 우리 축구의 현주소가 이것뿐이었다고 자조하며 16강 보다는 국가 대사인 월드컵 자체를 잘 치루어내야 한다는 타협적 의견도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실패를 감추는 사람 실패를 살리는 사람> 이라는 이 책을 읽으면서 히딩크가 실패학을 전공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다시금 마음 속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게 됐다.

실패학에선 실패란 결코 감추거나 비난받아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그 속에서 지식과 지혜를 얻어내 새로움을 창조해 낼 밑거름으로 쓰라고 한다. 또 품질관리 향상에 맞춘 조직원들의 전문화 이외에 전 부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진짜 베테랑을 육성해야 한다고 한다. 실패를 예방하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는 상황연습과 전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했을 때에야 가능하다.

히딩크 감독이 토털축구를 지향하고 전선수들의 만능 플레이어화에 애를 쓰는 건 그가 항상 말했던 창조적 축구와 일맥상통한다. 즉 아무리 다양한 전략을 짜고 그것을 피나게 연습해 습득하더라도 실제 경기장에선 그 훈련때와 똑같은 상황은 천에 하나 주어질까 말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은 훈련을 바탕으로 상황이 변했을 때 임기응변의 묘를 터득해야 하는데 이는 모든 선수들이 만능플레이어가 되었을 때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수있다. 즉 무턱대고 작전대로만 이행하려는 우둔한 소에서 상황상황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는 여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의 계속된 실패는 우리의 고질적 약점을 보완할 수있는 약이 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다만 그 실패를 거울삼아 지식과 지혜로 다듬을 시간이 충분한가에 대한 의문만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런 실패에 대한 자세의 변화는 꼭 이번 월드컵에서 성과를 드러내지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그 달콤한 열매를 맺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성공은 99%의 실패와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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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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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홀로 서있는 상상을 해본다. 내리쬐는 햇볕, 주위엔 물웅덩이 하나 없다. 모래바람은 예고도 없이 찾아와 또 다른 길을 만든다. 사막을 벗어나는 길은 오직 걷는 길밖에 없다. 사막이 끝나는 지점 또 다른 사막을 만날지라도 난 꾸준히 걸어야만 한다. 그 속에서 난 또 다른 나를 수없이 만난다. 눈물이 난다. 나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책을 읽으며 느낀 소설가의 길을 나름대로 생각해보았다. 피가 끓어오르는 감동을 주어야 하는 소설가의 숙명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에세이는 오직 소설 한길만을 걷고 있는 마루야마 겐지의 무너지지 않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인생 최대의 감동은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미지의 존재이며, 앞으로도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생은 빛을 발하고 충만해지는 것이며, 또한 영원해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펼쳐나가는 강인함이 필요하다. 마음의 명령 따위에 일일이 따를 수가 없다. (P208)

삶이 주는 평온함에 안주하고 있는 나를 반성하게 만든다. '느림'의 미학을 제멋대로 해석해 얼토당토 않은 게으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굼벵이에게 갑자기 내려치는 청천벽력이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형이상의 문제라기 보다는 일상의 자세를 어떻게 다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실천의 문제다.

결코 문학의 거창함이나 소설가의 위대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학권력, 예술권력에 대한 경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소설가가 아니라도 자신의 삶에 얼마나 부단한 채찍질을 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엄격성에 있다 하겠다. 그런 삶이 비록 고단할 지라도 그것이 바로 인생이지 않을까 노소설가는 조용히 자신의 삶으로써 웅변하고 있다. 사막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누구나 건널 수 있는 것이 아닐터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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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핑 포인트 - 생각하는 글들 12
말콤 글래드웰 지음, 임옥희 옮김 / 이끌리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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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성인 남자들이 예비군 훈련에 가면 개가 된다고들 한다. 평소에 그렇게 얌전하고 내성적인 사람도 군복을 입으면 입이 거칠어지고 행동이 난폭해진다. 왜 그럴까? 군복에 마술이라도 걸린 것일까? 올해 초 유난히 금연바람이 거세다. 연초만 되면 많은 사람들의 계획 한 켠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거지만 왠지 올해는 그 기세가 사뭇 다르다. 무엇이 달라졌기에 그 열기가 이리도 지속되는 것일까?

작년 <친구>라는 영화가 관객800만명을 동원했다. 한국영화의 부흥기를 가져온 이 작품의 무엇이 사람을 극장으로 끌고 간 것일까? 이 책은 어떤 현상이 갑자기 돌변해 미풍이 태풍으로 변해가는 그 찰나를 티핑포인트로 지정하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묘사하며 그 이유를 세세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어떻게 하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금연의 성공적 캠페인의 방법을 터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수의 법칙, 고착성, 상황의 힘이라는 세가지 요소중 어떤 것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였으며 따라서 어떤 방법이 가장 신통하게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지를 예측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노하우를 전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태풍의 시초는 미풍에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요, 따라서 우리가 찾는 거창한 운동보다는 보다 작은 생활상의 미소한 태도변화- 거시적 관점에서 이것은 그야말로 미봉책이 될 수 있다-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밝힌점에 있다 하겠다.

미봉책은 값싸고 편리하며 놀랄 만큼 많은 문제들에 대한 다용도 해결책이 된다. 미봉책의 내력을 살펴보면 이런 전략은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계속 유지시켜주고,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만두고 말았을 테니스,요리, 산택 등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미봉책은 사실상 최사의 해결책이다. 왜냐하면 최소한의 노력과 시간과 비용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P310)

어떻게 보면 이것은 나비이론과도 비슷하다. 홍콩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갰짓을 한 것이 미국에선 거대한 태풍이 되어 나타나는 현상. 티핑 포인트는 바로 그 나비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그래서 우리가 태풍을 만났을 때, 또는 태풍을 만들고 싶을 때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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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봤다 - 작가정신 소설향 8 작가정신 소설향 23
성석제 지음 / 작가정신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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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교수가 주창한 <하수도 문화>는 경건주의 엄숙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일수 있다. 문학이라는 것이 꼭 교훈을 준다거나 지식을 전달할 필요는 없으며 그저 억눌려진 감정의 찌꺼기를 배설하면 그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지녀온 문학의 가치를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경직된 그런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문학에게도 일종의 자유를 심어준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성석제의 이번 <호랑이를 봤다>라는 소설은 하수도 문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갑자기 드는 생각, '그래서?'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거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난 소설을 잘못 읽었음을 알았다. 도대체 이 소설이 뭘 이야기하려 한 것일까 생각한 순간 나는 벌써 소설로부터 멀어져 있었던 것이다. 시골에 사는 할머니가 마실나가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느끼는 감정, 성석제의 소설은 바로 그 감정을 가져다준다. 해학가득한 농짓거리를 한바탕 듣고나서 실컷 웃고나서 집으로 돌아오면 된다. 책 표지의 그림처럼 호랑이의 실체를 파악할 필요는 없다. 그저 꼬리만 보이면 그것만 쳐다보고 오면 된다. 꼬리의 실체를 찾으려 애쓸 필요는 없다. 책으로 행하는 즐겁고 유쾌한 마실을 또 한번 떠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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꾿빠이, 이상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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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영원히 나방을 이해할 수 없다. 정상적인 인간들은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가 가능한 것은 궤도를 이탈한, 비정상적인 인간들끼리다.(P220)

이상은 나에게 신비로운 존재로 다가온다. 신비스럽다는 것은 자신의 이해범주를 뛰어넘은 곳에 거처하고 있어 다가설 수 없이 그저 바라만 보아야만 한다. <꾿빠이 이상>은 이 신비한 세계를 한꺼풀이라도 벗겨보고 싶은 요량에 집어들게 됐다. 그리고 책이 말하고자 했던 진짜와 가짜(책은 이상의 데드 마스크와 오감도 제 16편의 진위여부와 맞물려 이야기가 진행된다)의 사이를 넘어 과연 존재란 무엇인가를 되새김질 하게 됐다.

소설 속 등장인물 중 김태익은 이상의 전집에서 드러나는 단어의 빈도를 통해 독보적인 위치에 선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단어의 빈도에 관심을 갖게 됐다. 특히 책 중간중간 마치 주인에게 잊혀지지 않으려고 애교를 부리는 강아지처럼 쪼르르 나타나는 '변형'이라는 개념에 눈길이 갔다.

데포르마숀(변형)은 원래의 성질이 바뀐다는 것을 말한다. 물이 얼음이 되고 아이가 아버지가 되고 김해경이 이상이 되듯이 (P147)

데리다가 얘기했듯이 우리가 어떤 뜻을 찾기 위해 사전을 찾았을 때 우리는 해설된 말 중 또다른 단어를 사전으로 계속해서 찾아야 하고 그것은 미끄러지듯 유영하다가 결국 처음의 단어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즉 처음 단어의 원래 뜻은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마치 등반에서의 링반델룸과 같다. 귀신에 홀린듯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도는 현상.

기타리스트의 연주는 몇번의 변주를 거치는 동안, 애초의 주제 프레이즈는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변형됐다. 바벨탑을 쌓아올리는 바빌로니아 사람들처럼 애당초 무엇때문에 벽돌을 쌓는지는 잊어버리고 단순히 거기 벽돌이 있기 때문에 벽돌을 쌓는 것처럼(P220)

그렇다. 우리는 지금 무엇때문에 살고 있는지를 잊어버린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생각마저 갖지 못하고 살고 있을지도. 우리가 그나마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돌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위해선 그 첫자리를 기억해야만 한다.

거대한 설계도가 있고 그 설계도의 일부분을 조금씩 변형시킨 것이 <오감도>를 비롯한 이상의 시 작품인 셈이다. (P181)

그렇기에 우리는 인생의 설계도를 기억해내야만 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는 설계도를 쳐다보았을 때야 비로소 알아낼 수 있다. 얼마나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는지를. 그 궤적을 이탈해서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선 이제 새로운 설계도를 구상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다시 그 설계도의 변형에 갇혀 같은 자리에 서 있을지라도 말이다. 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설계도를 그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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