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꾿빠이, 이상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영원히 나방을 이해할 수 없다. 정상적인 인간들은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가 가능한 것은 궤도를 이탈한, 비정상적인 인간들끼리다.(P220)
이상은 나에게 신비로운 존재로 다가온다. 신비스럽다는 것은 자신의 이해범주를 뛰어넘은 곳에 거처하고 있어 다가설 수 없이 그저 바라만 보아야만 한다. <꾿빠이 이상>은 이 신비한 세계를 한꺼풀이라도 벗겨보고 싶은 요량에 집어들게 됐다. 그리고 책이 말하고자 했던 진짜와 가짜(책은 이상의 데드 마스크와 오감도 제 16편의 진위여부와 맞물려 이야기가 진행된다)의 사이를 넘어 과연 존재란 무엇인가를 되새김질 하게 됐다.
소설 속 등장인물 중 김태익은 이상의 전집에서 드러나는 단어의 빈도를 통해 독보적인 위치에 선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단어의 빈도에 관심을 갖게 됐다. 특히 책 중간중간 마치 주인에게 잊혀지지 않으려고 애교를 부리는 강아지처럼 쪼르르 나타나는 '변형'이라는 개념에 눈길이 갔다.
데포르마숀(변형)은 원래의 성질이 바뀐다는 것을 말한다. 물이 얼음이 되고 아이가 아버지가 되고 김해경이 이상이 되듯이 (P147)
데리다가 얘기했듯이 우리가 어떤 뜻을 찾기 위해 사전을 찾았을 때 우리는 해설된 말 중 또다른 단어를 사전으로 계속해서 찾아야 하고 그것은 미끄러지듯 유영하다가 결국 처음의 단어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즉 처음 단어의 원래 뜻은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마치 등반에서의 링반델룸과 같다. 귀신에 홀린듯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도는 현상.
기타리스트의 연주는 몇번의 변주를 거치는 동안, 애초의 주제 프레이즈는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변형됐다. 바벨탑을 쌓아올리는 바빌로니아 사람들처럼 애당초 무엇때문에 벽돌을 쌓는지는 잊어버리고 단순히 거기 벽돌이 있기 때문에 벽돌을 쌓는 것처럼(P220)
그렇다. 우리는 지금 무엇때문에 살고 있는지를 잊어버린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생각마저 갖지 못하고 살고 있을지도. 우리가 그나마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돌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위해선 그 첫자리를 기억해야만 한다.
거대한 설계도가 있고 그 설계도의 일부분을 조금씩 변형시킨 것이 <오감도>를 비롯한 이상의 시 작품인 셈이다. (P181)
그렇기에 우리는 인생의 설계도를 기억해내야만 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는 설계도를 쳐다보았을 때야 비로소 알아낼 수 있다. 얼마나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는지를. 그 궤적을 이탈해서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선 이제 새로운 설계도를 구상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다시 그 설계도의 변형에 갇혀 같은 자리에 서 있을지라도 말이다. 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설계도를 그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