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애와 루이, 318일간의 버스여행 1
최미애 지음, 장 루이 볼프 사진 / 자인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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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파리까지, 그리고 다시 파리에서 서울까지 버스로 다녀온 4만킬로미터의 여행길. 한국인 최미애와 프랑스인 루이, 그리고 그들 사이의 아들 딸 이구름과 릴라, 그리고 애견 꼬꼿은 죽을 고비를 숫하게 넘어가며 지난한 여행을 계속한다. 보통 이런 여행은 돈 많은 사람이나 꿈꾸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들은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을 털어놓고서도 계속 금전적인 문제에 부딪히면서 여행을 계속해 나간다. 그리고 한국과 프랑스의 대사관을 통해서 두 나라의 문화와 국력의 차이도 슬쩍 엿보게 만든다. 특히 이 여행이 재미있는 것은 미애와 루이가 계속해서 투닥거리면서 이혼까지 생각하지만 결국 화해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여행이란 바로 이런 사랑의 확인이며 성숙의 자양분임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루이의 사진은 왠지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여행기를 읽다보면 국경을 넘나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가난한 나라를 통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때문에, 또는 그들의 황당한 요구에, 때론 목숨까지 위협받는 상황등의 묘사는 도대체 이런 여행을 왜 떠났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들고, 나 또한 이런 여행이라면 그렇게 떠나고 싶지 않은걸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미애는 서울로 돌아와 다시 여행을 꿈꾼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토록 떠나게 만드는 것일까?

맨처음 여행을 계획했을때의 미애의 말을 한번 들어보자

그냥 떠나자. 지금 떠나지 않으면 다시는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질 수 없을지도 몰라. 무뎌지는 것처럼 나쁜 건 없는 거야. 돈 벌자고 사진 찍고 메이크업 한다면 당장은 여유로울지 몰라도 나중에는 삶이 너무 지루해질거야. (1권 P36)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그는 수많은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그 상처만큼이나 커다란 깨달음도 얻는다.

인도의 가난한 삶, 특히 구걸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고, 질책하게 했고, 또 슬프게도 만들었다. 하지만 티베트 사람들의 가난을 접해보고는 오히려 삶의 희망을 느꼈다. (중략)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영혼이다. (중략) 그들은 가난해도 행복해 보였고,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2권 P266)

그리하여, 처음의 지루하지 않는 삶의 대한 열망이나, 일에 대한 열정을 꿈꾸웠기에 떠난 여행은 이제 새로운 목적을 얻는다.

여행을 끝내고 나니까 패션 쪽 일은 별로 관심이 없어.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그리고 내가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얘기를 들려주고 싶어. (2권 P284)

여행은 영혼을 만나는 것이리라. 자연이든 사람이든 그것에 깃든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 그 영혼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 정화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여행을 떠나고 돌아온 자들에게선 그 영혼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투명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여행은 영혼의 부름이리라. 그 부름에 미쳐 사람들은 그렇게 떠나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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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벌어지는 농구시합. 아직 입사이후로 우승을 한번도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준우승 2번에 3등 2번. 올해도 여전히 연습경기 한번 못하고 나간다. 다른 팀들은 몇번씩 경기장을 빌려 손발을 맞추는데... 그래도 올핸 다행인 것이 젊은피가 한명 수혈되었다는 것. 하지만 다른 팀들은 젊은피들로 구성되어있다. 우리 팀의 평균나이는 40줄에 가까우니.

아무튼 결전의 날. 예선 2경기를 가뿐히 통과했다. 그래도 우린 역량있는 팀 아닌가? 그런데 아뿔싸, 나의 몸이 이상 신호가 왔다. 교통사고 후유증. 허리가 뽀개질듯 아프다. 8강전선 쉬었다. 나의 믿음대로 4강까지 진출.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4강팀은 아무리 약체라 하더라도 만만히 볼 수 없는 팀 아닌가? 뛰고 싶었지만 몸이 허락지 않는다. 전반이 끝나고 후반 중반에 가면서 우리 팀이 뒤처지기 시작한다.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다. 몸은 아프지만 마음은 오히려 펄펄 날아다니고 있다. 결국 선수교체. 코트로 뛰어간다. 실은 뛰어가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꼭 우승하고 싶다고... 그러나 나의 허리는 받쳐주지 못한다. 점프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아프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뛰었다. 정말 말 그대로 부상투혼이다. 그러나 끝끝내 우리팀은 패배했다. 마음이 아프다. 몸도 아프다. 마음은 나의 욕심때문이요, 육체는 그 욕심을 쫓아가지 못하니 너무너무 아프다.

부상투혼에 박수치지 마라. 부상자는 그저 얌전히 있어라. 재활에 신경쓰라. 부상자의 투혼은 결코 나의 사기도 동지의 사기도 끌어올리지 못한다. 그저 부상투혼이라는 말만 번지르하다. 투혼은 몸을 갉아먹는다. 다음날 병원으로 직행이다. 골반이 틀어져 있단다. 몇개월의 치료는 불가피할듯하다.

제발 제발 부상투혼자들을 욕해라.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는자들일 뿐이다. 자신의 상황을 파악못하고 그저 욕심대로 행하는 못난이들이다. 게다가 자신만이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오만으로 가득찬 자일 뿐이다. 부상자는 벤치에 누워라. 남아있는 자들에게 기회를 줘라. 재기를 기다려라. 마음을 다스리라. 오만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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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홍콩영화를 무지무지 좋아하는 후배녀석을 만났다. 특히 주성치라면 입에 침을 튀겨가며, 또는 손이 부르터라 자판을 두들기며 이야기해대는 그 녀석이 류승완 얘기와 성룡 얘기를 하다 어느새 홍콩 느와르를 거쳐 영웅본색 이야기까지 흘러갔다. 오우삼에 대한 그의 애정만큼의 크기를 나 또한 가지고 있기에 현재 할리우드에서의 그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술잔을 부딪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머리속에선 성냥개비를 꼬아 문 주윤발의 모습이 떠올랐다.

롱코트를 휘날리며 선글라스를 끼고서 총알 사이로 초연히 걸어가는 남자. 그는 자제보다는 분노를, 희망보다는 좌절을 알고 있기에 친근해진 영웅이다. 그의 모습에선 언제나 푸른 빛이 감돈다. 선글라스 뒤에선 그의 눈물방울을 볼 수 있을듯 하며, 롱코트에는 수많은 상처를 감추고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오우삼처럼 할리우드로 날아가버린 주윤발은 이제 푸른 빛을 잃고 회색빛을 띠고 있다. 분노보다는 자제할 줄 아는 동양의 신비감을 가진 남자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방탄승>의 모습은 바로 그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주윤발은 영원한 영웅본색의 영웅이요, 첩혈쌍웅의 쌍웅이다. 그의 슬픔을 가득 안은 미소는 절대 잊혀지지 않을 아름다운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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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빛
강운구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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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순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찰나의 빛이 선사하는. 똑같은 풍경이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빛의 성격이 달라져 똑같은 감응을 일으키지 않듯이 말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면(정말 아무 것도 모르지만) 그 빛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특히 디지털이 아닌 필름을 들고서 찍을 때면 한번의 셔터를 누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여기 강운구라는 작가가 어렵게 어렵게 눌러온 셔터의 흔적들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책이 있습니다. 메밀꽃의 하얀 색에, 저물어 가는 분홍빛에, 버들강아지의 황토빛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의 눈은 아름다움을 아름다움 그 자체로 바라보고, 그의 사진 또한 어떠한 의지도 갖지 않기에 사물의 본질마저 꿰뚫는 듯 합니다. 아니, 오히려 관조적인 그 시선에 보는 이의 마음은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의 시선이 어떤 필터도 갖고 있지 않음은 그의 글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력으로 삼기 위하여 꼭대기나 탐하는 사람들을 서양에서는 '피크 베거 '(산정 구걸꾼)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이 산 저 산에 그런 거지가 많다. (P51)

난 정말로 순수하게 자연을 좋아해 산을 올랐는지 돌아보게 만듭니다. 어떤 산을 올랐다는 명함을 내민다거나 몇시간만에 올랐다는 자랑을 위해 올랐었는지, 내가 진정 그 산을 사랑했는지 반성하도록 만듭니다. 순수함은 그래서 아름다운가 봅니다. 그의 사진과 글의 순수함이 자꾸 저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순박한 메밀밭을, 메밀밭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서보다는 한 소설의 무대로서 바라보기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봉평 아닌 다른 곳의 메밀밭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것은 그저 보통 메밀밭일 뿐이다. (P129)

알려졌다는 것은 어찌보면 검증되었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행을 자주 할 수 없기에 실패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택하는 것이 유명한 곳들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느끼는 감정 또한 어찌보면 관광지 안내 책자의, 또는 영화 속의, 소설 속의 감정을 그대로 베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감정을 베껴내지 않고 진정한 그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해선 우연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빛이 흘러가서 만드는 그 시간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나와 그 어떤 대상의 만남. 겉치례를 털어낸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아름다움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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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구 <시간의 빛>중

밤은 고슴도치 모양으로 서슬 푸르게 열매를 지킨다. 그러나 다 여물면 스스로 벌리고 알밤을 내어준다. 다 익을 때까지만 접근금지이다.

 

우리는 흔히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한다. '내가 이렇게 속내를 보이는데 너도 적어도 이만큼은 보여줘야지' 하면서. 하지만 끝끝내 쉽게 자신을 내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아마도 밤과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다 여물었을때 접근금지를 풀어주는 이들.

그러니 너무 닥달하지 말자. 그들이 스스로 가시를 걷어들일 때까지 기다려주자. 그리고 나도 가끔씩 나를 충실히 여물게 하도록 시간을 갖자. 그리고 다 여물었을땐 활짝 마음을 열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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