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일지 6월 17일 - 햇빛 쨍쨍

 

15일 한 일 - 하우스 뒤 노지 지지대 박기, 체험단 행사 돕기, 토마토 양분(빛모음, 바이오슘, 방성균), 9번 고추 하우스 파워진달래로 진딧물 방제

17일 한 일 - 방울토마토 곁순 제거

 

지난 토요일엔 흙살림 토종농장에 새로운 식구가 들어왔다. 오리 두 마리, 토끼 여섯 마리, 흑염소 두 마리다. 흑염소는 이사가 싫은지 소리를 지르며 새 우리로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몸을 한바퀴 껑충 뒤집어서 뛰기도 하고, 뒤로 자꾸 버틴다. 새끼들임에도 그 힘이 만만치 않다. 작물만 키우다 동물들을 만나니 너무 반갑다. 하지만 걱정도 든다. 겨울이 되면 먹을 풀도 없어지고 또 다 커서 더 이상 기를 수도 없을텐데... 애완용이 아닌 이상 누군가의 보신용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애정을 안 줄수도 없고... 그래, 애들아,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도록 내 최대한 힘써 주마.

 

 

방울토마토도 익어간다. 머지않아 결실을 맺을 거다. 얼마나 달콤하게 잘 익을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이날은 서울 광진구 도서관의 도시농부 가족들이 토종 모내기 행사를 위해 농장을 찾았다. 아이들에게 모 심는 법을 가르쳐주고 보리 베기를 도와주었다. 오랜만에 사람들 틈 사이에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입가에 미소가 그치질 않는다. 땡볕에도 불구하고 구슬땀에도 아랑곳않고 아이들과 자연 속에 있는 것이 행복하다. 앞으로 내 개인 농장을 꾸려간다면 꼭 아이들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많은 프로그램들을 만들 생각이다. 그것이 삶의 기쁨이 되리라는 것을 느낀다. 이것은 또한 내 딸아이에게 아빠로서 해주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오늘도 난 딸과 헤어져 이렇게 온 몸을 굴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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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일지 6월 14일 - 흐리다 맑음 하우스 최저 19도 최고 43도

 

오늘 한 일 - 신축하우스 토마토 유인줄 걸기, 토종 조와 수수 파종

 

6월은 농가의 수확 시기다. 감자에 이어 보리도 그 결실을 맺었다. 마을 주민의 콤바인을 빌려 보리를 수확했다. 넓은 땅덩어리를 차지하던 보리가 베어지고 그 열매만 늘어놓으니 생각보다 양이 작아보인다. 그래도 이렇게 잘 익어주니 참 고맙다. 이젠 말리는 작업만이 남았다.

 

 

 

오늘은 아침부터 날이 저물 때까지 신축하우스에 방울토마토 유인줄을 맸다. 하우스는 6미터 50센티미터의 폭에 길이는 120미터가 훌쩍 넘는다. 트랙터를 타면서 하우스 골조 위에 줄을 매다는 작업이다. 지난 4월 이후 두번째라 그런지 속도는 빨라졌다. 하지만 단순 반복 작업이다보니 지루하다. 게다가 하우스 한 동이 고장 난 바람에 비닐이 다 올라가지 않아 하우스 안은 완전히 찜통이다.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300여개의 줄을 매달았다. 속옷은 땀으로 젖어 더 이상 빨아들일 능력을 잃어버렸다.

 

유인줄 매기가 끝난 후엔 달을 보며 토종 강화조와 몽당수수를 육묘트레이에 파종했다. 흙살림에 와서 지금까지 모종을 심기만 했지 직접 씨앗을 파종하긴 이번이 처음이다. 상토를 트레이에 담아 살짝 눌러 공간을 만든 후 씨앗을 뿌리고 다시 복토를 하는 과정이다. 파종 후 물주기가 관건이다. 어떻게 관리를 해야 발아와 성장이 잘 이루어질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서리태처럼 생긴 오가피콩도 파종했다. 잎이 다섯장에 그 맛도 오가피와 비슷하다고 한다. 또 수수 같은 경우엔 뻥튀기를 하면 그렇게 맛이 좋다고 한다. 강정에 많이 사용한다고 들었다. 둘 다 직접 먹어볼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육묘하우스 앞에 고무대야가 놓여져 있다. 그 속엔 연이 심겨져 있다. 외국에서 들여온 종자란다. 그런데 한 주당 가격이 무려 십만원이다. 아무리 관상용이라고 하지만 그 가격이 너무 놀랍다.

물론 억을 호가하는 소나무도 있다. 분재나 난 같은 경우에도 웬만한 자동차 한 대 값인 경우도 흔하다. 이런 관상용 식물들을 지켜볼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과연 세상의 값어치라는 것이 제대로 매겨진 것일까. 이런 생각은 명품으로까지 이어진다. 남들이 쉽게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다는 그 과시욕이 가치을 가치있게 평가하지 못하고 값어치만 올려놓은 것은 아닐까. 진짜 가치와 가짜 값어치를 구별할 수 있는 심미안과, 과시하려 들지 말고 직시하려 드는 마음을 지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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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일지 6월 13일 - 오전 흐림, 오후 햇볕 나다 흐림

 

오늘 한 일 - 감자 캐기, 하우스 돌 치우기, 창고 정리

 

밤꽃이 피었다. 오디가 익어간다. 벌써 여름이다. 장마도 오고 있다. 밤꽃이 피니 가을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한여름이 오지도 않았는데 가을을 생각하다니... 더위가 싫긴 싫은가 보다.

 

 

잠깐 짬을 내어 토종 괴산 쪽파를 채종했다. 쪽파는 마늘처럼 캐내어 말리면 종자로 쓸 수가 있다.

 

감자도 한 두둑 캐냈다. 아직 캐는게 서툴다보니 자꾸 감자에 흠집을 냈다. 호미로 두둑을 파내면서 감자를 캐내는 과정에서 호미날이 감자를 건드는 것이다. 아직 요령이 없어서다. 잠시 요령을 파악한 후 두둑을 좌우로 살며시 걷어내며 파헤치니 상처를 입히는게 조금 덜하다.

 

이렇게 상처 입은 감자들은 상품가치가 떨어지거나 없어진다. 그렇다고 전혀 먹을 수 없는 것도 아닌데. 이런 것들은 따로 골라 생산자가 자가 소비하는 수밖에. 직접 감자를 캐보니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선택이 얄밉게 느껴진다. 내가 소비자였을 땐 모양도 예쁘고 상처도 없고 먹기 좋은 크기로만 고른다고 시간을 많이 썼다. 그런데 생산자 입장에 서보니 그런 소비자가 얄미워진 것이다.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기 위해 버려지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다. 상추도 너무 크거나 작으면 안되고, 낱장을 자르는 과정에서 심이 부서지거나 깔끔하게 따지 못하는 것들은 버려진다. 이번 감자도 마찬가지로 조금만 상처가 나도 진열대에 오르지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너무 안타깝다. 모두 먹을 수 있는 것들인데... 건강한 식품들인데.

못생기고 울퉁불퉁하고 크기가 고르지 못한 것이 바로 자연스런 모습이 아닐까. 누구나 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듯 우리 농산물도 상처를 지닐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상처를 보듬어 안아주는 마음. 꼭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상처는 자꾸 만지면 곪는다. 때론 무시하거나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일 때도 있다. 가끔은 우리 농산물의 상처에 눈감아주기도 해보자. 그리고 내 마음 속 깊은 상처도 자꾸만 들처보지 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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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일지 6월 12일 - 하루종일 보슬비

 

오늘 한 일 - 고추 지지줄 매기, 신축 하우스 돌 치우기, 토마토 양분 공급(구아노, 퀵마그네슘, 미리근, 흙살림 마임-칼슘제)

 

차면 기우는 것이 어디 달 뿐이랴. 사랑도 그렇더라. 그런데 우리가 키우는 작물도 제 열매의 무게를 못이겨 기울더라. 고추가 주렁주렁 달리기 시작하니 쓰러지기 시작한다. 지지줄을 좀 더 일찍 매주었더라면 일도 수월하고 고추도 튼튼하게 자랐을 터인데.

차면 기우는게 자연의 법칙이라면, 그 기우는 것을 막고자 애를 쓰는 것이 인지상정이렸다. 옛사랑을 그리워하거나 사랑에 집착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이지 않겠는가. 사람의 욕심으로 자신이 감당못할 고추를 주렁주렁 달게 된 고추야 기울어지는 게 당연한 일. 그것을 막고자 사람은 또 지지줄을 맨다.

 

봄에 꽃을 피웠던 매자나무에서도 열매가 맺혔다.

 

꽃이 떨어진 자리엔 열매가 맺히는 법이다. 차면 기울고 기울면 또 차는 법. 기울어진 사랑도 다시 찰 수 있으려나. 기울어진 고추도 다시 꼿꼿이 일어서 자랄 수 있으려나. 달이야 놔 두어도 차고 기울고 하겠지만 고추는 놔 두면 쓰러져버린다. 그렇다면 사랑은 어찌해야 하나. 그냥 놔 두면 다시 차려나, 아니면 지지줄을 매듯 애를 써야 돌아오려나. 자연과 인위 사이에서 쩔쩔매는 게 사람이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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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일지 6월 11일 - 오전 흐림 오후 흐리다 비 오락가락

 

오늘 한 일 - 토마토 곁순 제거 및 유인줄 매기, 흙살림 22주년 기념행사 준비 및 참여

 

보리가 누렇게 다 익었다. 조만간 보리베기를 해야할 듯 싶다.

옥수수는 키가 가슴높이까지 자랐다.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에 흐믓한 미소가 절로 생긴다.

노지에 심어둔 가지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방치하다시피 했는데도 필요한 시기에 비가 내리니 잘 크고 있다. 골에 깔아둔 볏짚 덕분에 제초작업도 할 필요가 없어 한결 수월하다. 병이나 해충에 잘 견뎌내주길 기원해본다.

드디어 오늘 하우스 5개 동에 있는 방울토마토의 곁순을 모두 제거하고 유인줄을 다시 매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마치 어지럽게 자라난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잘라낸듯 개운해 보인다. 덥수룩한 수염을 밀어낸듯 시원해 보인다. 일을 마무리하면서 느끼는 기쁨은 바로 이런데서 찾아오는 것같다.

 

오늘은 흙살림이 생긴지 22년이 되는 날이었다. 괴산군수를 비롯해 외부인사들도 많이 참여한 가운데 기념행사를 가졌다. 농민운동으로 시작한 것이 이제는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경찰들의 따가운 시선과 협박 속에서 시작한 모임이 어엿한 유기농의 선도자로 자라난 것이다.

지금 몸으로 농사를 지어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22년의 세월을 흙과 농민과 사람과 생명을 살리는 유기농업을 위해 한눈 팔지 않고 달려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항상 초심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흙살림도 흙과 생명을 향한 사랑의 정신을 잃지 않고 계속 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유기농업을 통해 미래의 희망을 키워갈 수 있다면 좋겠다. 공존이라는 단어가 그냥 입밖으로 내뱉는 말로 그치지 않고, 이념의 허울에 갇혀 머리속에서만 맴돌지 않고, 손으로 만지고 맨발로 밟을 수 있는 흙을 통해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그래서 사람들이 남보다 한 발 더 앞서기 위해 자신을 내다 팔아버리는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 서로 손을 맞잡고 감정을 나누며, 나의 경제력이 아니라 생명력을 키워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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