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일지 6월 13일 - 오전 흐림, 오후 햇볕 나다 흐림
오늘 한 일 - 감자 캐기, 하우스 돌 치우기, 창고 정리
밤꽃이 피었다. 오디가 익어간다. 벌써 여름이다. 장마도 오고 있다. 밤꽃이 피니 가을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한여름이 오지도 않았는데 가을을 생각하다니... 더위가 싫긴 싫은가 보다.
잠깐 짬을 내어 토종 괴산 쪽파를 채종했다. 쪽파는 마늘처럼 캐내어 말리면 종자로 쓸 수가 있다.
감자도 한 두둑 캐냈다. 아직 캐는게 서툴다보니 자꾸 감자에 흠집을 냈다. 호미로 두둑을 파내면서 감자를 캐내는 과정에서 호미날이 감자를 건드는 것이다. 아직 요령이 없어서다. 잠시 요령을 파악한 후 두둑을 좌우로 살며시 걷어내며 파헤치니 상처를 입히는게 조금 덜하다.
이렇게 상처 입은 감자들은 상품가치가 떨어지거나 없어진다. 그렇다고 전혀 먹을 수 없는 것도 아닌데. 이런 것들은 따로 골라 생산자가 자가 소비하는 수밖에. 직접 감자를 캐보니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선택이 얄밉게 느껴진다. 내가 소비자였을 땐 모양도 예쁘고 상처도 없고 먹기 좋은 크기로만 고른다고 시간을 많이 썼다. 그런데 생산자 입장에 서보니 그런 소비자가 얄미워진 것이다.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기 위해 버려지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다. 상추도 너무 크거나 작으면 안되고, 낱장을 자르는 과정에서 심이 부서지거나 깔끔하게 따지 못하는 것들은 버려진다. 이번 감자도 마찬가지로 조금만 상처가 나도 진열대에 오르지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너무 안타깝다. 모두 먹을 수 있는 것들인데... 건강한 식품들인데.
못생기고 울퉁불퉁하고 크기가 고르지 못한 것이 바로 자연스런 모습이 아닐까. 누구나 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듯 우리 농산물도 상처를 지닐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상처를 보듬어 안아주는 마음. 꼭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상처는 자꾸 만지면 곪는다. 때론 무시하거나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일 때도 있다. 가끔은 우리 농산물의 상처에 눈감아주기도 해보자. 그리고 내 마음 속 깊은 상처도 자꾸만 들처보지 말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