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 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 나무의철학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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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란 책은 20대 중반의 한 여성이 미국 서부 3개주(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에 걸쳐 있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4285km를 종단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빌 브라이슨이 애팔레치아 트레일을 종단했던 경험을 담은 <나를 부르는 숲>을 떠올리게 만든다. 빌 브라이슨의 책은 그의 스타일답게 시종일관 유쾌하고 유머로 가득 차 있다. 그러면서도 생태계가 어떻게 훼손돼 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반면 <와일드>는 배불뚝이 아저씨의 유쾌한 모험담과는 달리 진중하고 자뭇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렇다고 해서 책이 무겁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술술 읽힐 뿐만 아니라 다음 내용이 궁금해질 정도로 호기심이 가득찬 이야기다.

 

이 책의 저자 셰릴은 40대였던 어머니를 암으로 잃고, 결혼생활마저 파탄을 맞아 이혼한 후 트레일 종단을 결심하게 된다.

나는 변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그 계획을 세우는 몇개월 동안 나를 밀어붙이는 힘이되었다. (100쪽)

그러나 계획을 세우고 떠난 모험이긴 했지만 젊은 여성 혼자 100일간 산맥을 따라 걷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다.

나는 도저히 내가 질 수 없는 짐을 지고 가는 중이었다. 내 육체적, 물질적 삶이 감정적, 정신적 영역까지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165쪽)

 

발톱이 6개나 빠지는 힘든 길이었지만 그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 근 몇십년 이래 최대의 폭설이 내려 몇몇구간은 우회해야 할 정도로 악천후를 만났지만 말이다.

PCT를 걸어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달려있지, 흉측한 내 발에 달려있지 않았다. 온갖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가려는 강한 의지 말이다. (338쪽)

 

100일 간의 모험이 끝나고 그녀는 어떻게 변했을까. 극한에 가까운 이런 모험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해병대 체험과 어떻게 다를까. 또는 지금 우리 산하에 불고 있는 걷기 열풍과 비슷한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녀가 걸었던 길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극한의 체험과 함께 사람에 대한 믿음을 얻었기에 가능했다. 100일간의 행진 중에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도 그가 느꼈던 감정은 다른 것이었을 테다. 하지만 그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다. 그것은 길을 걸었기에 가능하다. 바로 이 점이 해병대의 체험과 다른 점이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힐링의 경험을 선사하는 올레길, 둘레길과 같은 걷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 또한 여기에 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도움과 배려 속에서 삶의 신비를 깨우친 것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인생처럼 나의 삶도 신비로우면서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고귀한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내 곁에 있는 바로 그것.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 불허의 것인가.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549쪽)

 

3000m가 넘는 산도, 등산화를 잃어버리고 걸어야 했던 자갈투성이 길도, 얼어붙은 산등성이도, 물이 없는 상태로 건너야만 했던 사막도 모두 뛰고 넘고 돌면 끝인 것이다. 뛰고 넘고 도는 바로 그것, 그 행위를 실행해야만 하는 바로 이순간, 이곳이 진정 삶의 신비이지 않겠는가. 그것이 비록 죽을만큼 힘들고 괴롭더라도 말이다. 그 다음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일테이니. 셰릴이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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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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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은 여름에 한번 겨울에 한번 안거에 들어간다. (원래는 여름 우기 한번 뭇생명들을 죽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행해졌다) 이 책은 지허 스님이라는 분이 동안거에 들어가기 전부터 끝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금욕적인 생활의 어려움, 김장 울력, 화두와의 싸움 등등이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보여진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속된 세상을 떨쳐버린 곳에서도 지극히 말초적인 욕망(맛있는 걸 먹고 싶고 잠시라도 잠을자고 싶은 욕망 등)에 휩싸인 이들의 모습 속에서 구도자의 길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짐작케 만든다. 또한 이들의 수행이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결국 그것이 궁극적으로 이타적 존재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과정임을 깨닫게 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이 나에게 '쿵'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다음과 같은 지허 스님의 말씀 때문이다.

이 세상은 유한한가, 무한한가, 또 신은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지금 괴로워하고 있는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부처님 교설의 의취입니다. ... 인간은 초월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완성될 수 있고 인간의 조건은 조화될 수 있습니다. 불교는 인간의 완성을 위해 선을 내세웠고, 인간은 선을 통하여 완성을 가능케 하고 있습니다. 선은 신비가 아니고 절대자의 조종을 받는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인간 완성을 위한 길입니다. 즉 열반으로 이르는 길입니다.  108.109쪽 
  

이 글을 읽고 나를 사로잡고 있는 고민 중 세상의 유한성이나 신의 존재성과 같은 고민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즉, 지적 유희에 빠져 허우적대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이 해결되면 과연 인생의 문제도 해결될 것인지 살펴봤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질문인데도, 그리고 그런 생각도 얼핏 몇번인가는 해봤을 터인데도, 이번처럼 크게 와 닿은 건 무엇때문일까. 이 책과 나와의 인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실존적 고민과 동떨어진 고민을 놓아두고, 사고의 유희도 잠시 제쳐두자고 생각해본다. 그러면 나에게 남은 실존적 고민은 무엇인가. 새로운 화두를 스스로 던져본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일이 괴롭다면 그 괴로운 일의 결과물이 다른 이에게 행복을 줄 수 있을까. 괴롭다면서 그 일을 놓치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단으로서의 일이다면 그 목적은 무엇인가. 생계 때문인가. 생계가 삶의 목적인가. 그렇다면 얼마나 비루한 인생인가. 밥벌이의 지겨움을 말한 김훈의 글이 떠오른다. 정녕 입에 풀칠하는 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미소 지으며 마음에 거리낌없이 행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아무래도 나의 올 동안거 화두는 이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있어 열반은 아무래도 이 화두를 깨우치는 것에서 그 길을 열어줄 듯하다. 스님들의 치열한 안거생활처럼 화두를 깨우치기 위해 먼저 게으름과 안주부터 벗어던지고 진정한 나를 찾는 길을 떠나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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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나는 숙명의 객체이지만 운명의 주체이다.숙명은 자기 부재의 과거가 관장했지만 운명은 자기 실재의 현재가, 그리고 자신이 관장하는 것이어서 운명을 창조하고 개조할 수 있는 소지는 운명 직전까지 무한히 열려져 있다. 숙명의 필연성을 인식하면 운명의 당위성을 절감하게 된다.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숙명적인 것을 피하려고 괴로워 할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하며 운명적인 것은 붙잡고 사랑해야 할 뿐이다. 고집의 표상 같은 누더기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선객이야말로 견성의 문턱에서 문고리를 잡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끝내 운명은 타기될 것이 아니라 파지되어야 함은 선객의 금욕생활이 극한에 이를 수록 절감되는 상황 떄문이다.  35쪽 

중생세계에서 보면 필요성을 주장하면 이유가 되고 타당성을 주장하면 독선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방관자가 된 채 그대로 보고 느끼면서 오직 견성에 매달려 중생계를 탈피하려 한다. 자신이 중생에 머물러 있는 한 모든 판단의 척도가 중생심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불가에서는 시비는 터부로 여기지만 그러나 시비가 그칠 때가 없으니 역시 중생인지라 어쩔 수 없을 뿐이다.  39쪽 

사랑하는 사람을 갖지 말라. 미워하는 사람도 갖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자주 만나 괴롭다. 애증을 떠나 단무심으로 살아가라는 교훈이다.  54쪽  

훌륭한 선객일수록 훌륭한 보건자이다. 견성은 절대로 단시일에 가능하지 않고 견성을 시기하는 것이 바로 병마라는 걸 잘 알기 떄문에 섭생에 철저하다. 견성이 생의 초월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생의 조화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선객은 부처님처럼 위대해 보이나 병든 선객은 대처승보다 더 추해진다. 화두는 멀리 보내고 비루와 비열의 옷을 입고 약을 찾아 헤멘다. 그는 이미 선객이 아니고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인간폐물이 되고 만다. 身外가 無物. 차원 높은 정신성 속에서 살아가는 선객일수록 유물적이고 속한적이라고 타기할 게 아니라 화두 다음으로 소중히 음미해야 할 잠언이다.  78쪽 

인간이란 과거의 사실만을 위해 서있는 망두석이 아니라 내일을 살려고 어제의 짐을 내려놓으려는 자세가 있기에 비로소 인간이라고. 93쪽 

불교의 중도는 역의 태극이나 자사의 중용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에도 상통한다. 상극의 초극이야말로 진실로 인간의 가장 긴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비로소 인간의 순화, 지상의 정화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개인의 마음에 달려 있을 뿐이다. 개인의 순정한 마음 없이 사회의 복지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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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을 찾아서
박정석 지음 / 민음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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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떠나고 싶다. 라고 하루에도 수십번 되뇌인다. 떠나고 싶은 이런 강한 욕망에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밥벌이라는 핑계를 대고 숨는다. 안주한다. 소심하게도. 대신 여행책이나 읽으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제길, 나도 이렇게 떠나야 하는데... 이 책 쓴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여행을 시작했을까. 밥 먹고 살 걱정은 없는걸까. 엉뚱하게도 저자에게 화풀이 한다.  

누군가는 여행은 돌아올 곳이 있기에 참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휴가야 말로 최고의 여행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일상을 포기하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길고 긴 여행을 다녀온 후 그의 일상은 새로이 만들어져야만 한다. 사람들은 후자를 꿈꾸어도 용기를 내지 못한다. 휴가라는 짧은 여행에 만족할 뿐이다. 그래서 휴가는 항상 계획이 동반된다. 그 계획마저 귀찮은 사람은 패키지를 떠난다.  

이 책의 저자는 인도네시아 남동쪽 현지인들이 오라라고 부르는 코모도 드래곤을 찾아 여행을 시작했다. 일종의 도마뱀 종류로 인도네시아인들조차 일부러 찾는 곳은 아니다. 패키지와는 완전히 상반된 자유 여행이다. 그 와중에 패키지 여행자들을 마주치지만 그는 이들을 결코 얕보지 않는다. 여행가로서의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머나먼 과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 이분법적인 사고가 횡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편견이라는 기제가 인간의 작고 가엾은 뇌에 가능한 무리를 적게 주는, 주어진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동시에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두뇌의 구동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즐겨 편견을 갖는 것은 그것이 자동 엘리베이터만큼이나 편리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단추를 누르는 대신 가파른 계단을 걷고 걸어 목적지인 결론에 닿으려고 하는 사람은 다리 근육 유지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소수뿐이다. 여행과 관광을, 배낭족과 트렁크족을 굳이 구분하려고 하는 시도 또한 워낙에 분류 - 주어진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데 필수적인 전제이다 - 를 좋아하는 인간 본성에 이분법의 편리함이 중첩된 결과이리라. 한 인간이 지적인 훈련을 쌓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미덕이라면 선명한 검은새과 흰색의 양극단 사이에 다양한 층층의 회색빛을 띤 스펙트럼의 영역을 일구어 내는 것이다. 뇌의 구조를 본래와는 다르게, 자체 내의 효율이 아니라 타자의 눈을 닮은 합리성을 추구하도록 바꾸어가는 것. 우리 몸에 각인처럼 새겨진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 마침내 중력을 이겨내는 것. 193쪽  

코모도 섬으로 가기 위해선 자바, 발리, 롬복, 숨바와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저자는 발리, 롬복, 우붓, 메단에서 머물다 목적지인 코모도에 가지 못한다(않는다?). 하지만 후회하는 모습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코모도 섬으로 떠날 수 있는 바닷가 민박집 앞에서 만난 프랑스 할머니의 말이 그의 심정을 헤아리게 만든다.  


서두를 필요는 전혀 없어. 그건 과업도 아니고 뭣도 아니니까. 여행은 의무나 목적이 아니고 오로지 즐거움이야. 집에서는 미처 모르던 것을 길에서 찾는 일이지. 너무 조급해하지만 않는다면, 시간만 넉넉히 둔다면, 너는 어디든지 갈 수 있을거야. 원한다면 세상 끝까지라도. 280쪽
 

호숫가 생활이 평화로운 이유는 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바다에서와는 달리 서핑도, 다이빙도 할 수가 없었다.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는 것 이외에는 산책과 낮잠, 독서와 수영이 전부였다. 흙냄새가 풍기는 민물고기 요리와 꿀처럼 달콤한 망고를 까먹기에 지친 나는 이만 호수 마을을 떠나 북쪽의 메단으로 가기로 했다.  220쪽  

맞다. 여행은 즐거움이다. 저자가 걱정하고 있지만 사고의 편의를 위해 나도 조금 분류를 해봐야 겠다. 여행의 종류는 크게 역사, 자연, 문화를 맛보는 세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개성이나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것이 다를 것이다. 사람을 만나고 시장풍경이나 생활상을 엿보는데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은 문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산과 바다, 강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자연, 나와 다른 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문명을 발전시켰는지를 알고 싶은 사람들은 역사를 중시할 것이다. (휴양은 자연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인도네시아 여행에서 이 세가지를 단 한방에 해결해버린다. 오랜 여행의 공력이다.  

낯선 시간과 공간을 오가며 현기증을 느끼는  몇 초의 순간이야말로 내가 알고 있는 극도의 쾌락과 사치의 정점이었다. 252쪽 
 

 역사, 자연, 문화 모두 그 낯섬의 대상일 뿐이다. 때론 여행을 하는 순간 여행자 자신이 바로 낯선 모습이 될 수도 있다.

환경은 인간을 바꾼다. 모범생인 G는 표정마저 이전과는 달라진 것 같았다. 따분한 내가 아닌 다른 어떤 인간, 실제보다 훨씬 더 멋지고 자유로운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이 발동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실재란 개인과 환경 간의 지속적인 관계가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한 것일까. 내가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을 때 G는 들릴락말락 아주 가느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행복에 겨운 사람처럼. 115쪽 

그래서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며, 그 탈출을 통해 즐거움을 얻게 된다. 그런데 일상이 즐거움 그 자체라면 어떨까. 일상이 여행같다면 어쩔까. 헛된 꿈일까. 하나의 망상일 뿐일까. 

사람들은 용을 일컬어 이 세상에 없는 상상 속의 동물이라고 말한다. 용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은 모두들 단 한 번도 그 동물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없는 것이라고, 세상 어느 구석진 곳을 찾아가면 혹시 있을지도 모르지만 흔히들 없다고 믿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중국인 루쉰의 말대로 희망과도 같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땅 위의 길과 같아서, 사실 땅 위에는 애초 길이 없으나 걸어가는 사람들이 생기면 곧 길이 되는 것이다.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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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도 좋은 여행이 있단다.

개발도상국을 여행함으로써 인류의 행복과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여행을 통해서 현지에 도움을 주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로 현지에서 달러를 씀으로써 곤궁한 현지인들의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운영하는 숙소나 교통수단의 이용을 가급적 피하고, 거대한 공룡과도 같은 다국적 기업이 운영하는 곳 또한 가능한 한 이용하지 않는 편이 바람직하겠다. 즉 현지인들이 소규모로 운영하는 곳에 돈을 쓰자는 말이다. 여행으로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두 번째 방법은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덜 알려진, 혹은 왜곡되게 알려진 지역을 여행하고 이해함으로써 그간의 몰이해와 편견을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며, 현지인과 대화를 해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아무리 수줍은 여행자라고 해도, 가장 보수적인 여행지라고 해도, 낯선 이와 대화할 기회는 종종 찾아오기 마련이다. 일부러 피하지만 않는다면. 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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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지음, 이다희 옮김 / 섬앤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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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학생들의 졸업빵이 뉴스의 주된 소재가 되고 있다. 갈수록 도를 넘어서고 있는 졸업빵은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비판도 많다. 전통 또는 관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의 부당성을 보여 주는 한 사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비리 또한 이런 이름으로 치장되어진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당사자들은 자신이 행한 일들이 마땅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정당한지 부당한지를 가늠하지 못한다.  

<사막의 꽃>은 세계적인 슈퍼모델 와리스 디리의 자서전적 셩격의 책이다. 소말리아에서 태어나 런던으로 건너가 세계적인 모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 책은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여성 할례의 처참함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소말리아의 사막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와리스 디리는 어른이 된다는 통과의례로서의 할례를 빨리 받고 싶어했던 철부지였다. 그러나 나이 든 남자와 결혼하게 될 처지에 놓이자 집을 나와 도시로 무작정 떠나고, 다시 친척이 있는 런던까지 흘러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델이라는 일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되고, 드디어 모델 일에 나선다. 가짜 여권에 가짜 결혼 등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점차 이름을 떨치게 된 그녀는 자신이 여자로서 꽃피우기 위해선 할례의 상처를 씻어야만 한다는 걸 깨우친다. 소말리아 사막에서의 삶을 뛰쳐나와 자유롭게 자신의 뜻대로 살다보니 자신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아버지도 으례 마땅한 일이라 여겼던 할례가 얼마나 큰 상처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와리스 디리는 세상 모든 여성들이 할례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도록 운동에 나선다.    

유목민 사회에서 병에 걸리면 죽거나, 살거나 두 길 뿐이다. 중간이란 없다. 사람이 살면, 그건 다행이다. 우리는 병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의사도 약도 없으니,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도도 없다. 사람이 죽으면, 그것도 괜찮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계속 살아나가기 때문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늘 인샬라의 정신이 우리네 삶을 지배한다. 신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리라. 우리는, 생명은 선물이고 죽음은 거역할 수 없는 신의 선택임을 받아들인다.  157쪽 
  

와리스 디리는 마땅하고 당연한 일을 한 발 떨어져 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질 수 있게 되는 순간 정당함과 부당함의 구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땅함이 비교될 수 있는 공간에 놓여지면 정당과 부당의 길 중 하나였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인샬라의 정신은 이런 정당성과 부당성의 구분을 불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또한 삶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철학이기도 하다.  

나는 삶을 체득했다.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의 삶이었다. TV에 나오는 남의 인생을 지켜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그런 인위적인 삶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내겐 생존본능이 있었다. 나는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느꼈다. 행복은 소유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하기만 했으니까. 살아오면서 가장 귀중했던 시간은 식구들과 함께 지낸 때였다. 저녁 식사를 하고 모닥불 가에 앉아서 별 것도 아닌 것에 웃던 밤들을 떠올리곤 한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생명이 다시 깨어나면 잔치를 벌이던 것도 생각난다.  

소말리아에서 크면서, 우리는 사소한 것들에 감사할 줄 알았다. 비를 반갑게 맞은 이유는, 비가 오면 물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물 걱정 하는 사람은 없다. 부엌에서는 물을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기도 한다. 언제든지 필요하면 쓸 수 있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곧바로 나온다. 부족함을 알아야 감사할 줄도 안다. 아무 것도 없던 우리는 매사에 감사했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사소한 것들을 소중히 여긴다. 나는 호화로운 집을 때로는 한 채도 아니고 여러 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차, 보트, 보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매일 만난다. 그러나 그 서람들은 더 많은 걸 원한다. 다음으로 구입 할 것이 마침내 행복과 마음의 평온함을 가져다 줄 듯이 말이다. 그러나 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 이제 사고 싶은 걸 다 살 수 있는 능력이 된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인생의 가장 가치있는 재산은 인생 그 자체이고 그 다음은 건강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온갖 하찮은 일에 안달하면서 귀중한 건강을 망친다.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나라지만, 국민들은 모두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낀다. 사람들은 돈도 모자라지만 시간도 모자란다. 모두가 시간이 없다고들 한다. 전혀 없단다. 거리는 여기 저기 바쁘게 쫓아다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무얼 쫓아다니는지, 그건 하늘만이 안다. 나는 두가지 삶의 방식, 소박한 삶과 바쁜 삶을 모두 경험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을 매우 감사히 여긴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아프리카에서 보내지 않았다면 소박한 삶의 방식을 즐기지 못했을 것 같다. 348~349쪽

우리는 풍습, 또는 관례라는 이름 하에 얼마나 부당한 일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또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소말리아의 여성 와리스 디리는 우리에게 잔잔한 미소를 띠며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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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은 세상을 제압한다. 순결한 처녀로 키우기 위해 늙은 여자의 손을 빌려 먼저 칼질을 낸 다음, 정숙한 아내로 살기 위해 오로지 남편의 칼이 그곳을 다시 갈라낸다는 이 엽기적인 상상력!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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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기출문제집 - 대한민국 이십대는 답하라 인생기출문제집 1
안철수 외 지음 / 북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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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61쪽

내가 의도하고, 계획하고, 진정성을 담아서 철저히 만든 것이 아닌, 행운에 가까운 행복은 진짜 행복은 아니죠. 젊음이 있다면 공짜로 굴러오는 행운을 기대하기보다,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0쪽

어느 일본 작가가 쓴 책에 미래를 위해 오늘을 견뎌내지 말고, 미래를 위해 오늘을 즐겨라라는 글귀가 있어요. 참 맞는 말 같아요. 

103쪽 

송호창 변호사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매력을 최대한 발현하면서 살 수만 있다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사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 반대로 가고 있는 듯합니다.개인은 자신의 매력엔 아무 관심이 없고, 다른 사람의 매력엔 더더욱 관심이 없습니다. 

144쪽

시작이 두려웠던 건 끝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기 떄문이다. 오늘이 힘들었던 건 내일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148쪽

너에겐 다른 사람을 관찰하려는 의지가 없어. 타인의기분, 느낌, 생각 같은 걸 전혀 이해하지 못해... 소통할 수가 없는 거야.... 부분을 기억하고 전체를 이해하는 것, 그게 소통이라는 거야. 

212쪽

자기 자신을 만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스스로가 어떤 마음으로 사록 있는지,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이다. 그런 방향으로 자신이 잘 나아가고 있는지 성찰해보는 것이다. ... 인생은 남이 사는 것이 아니다. 결국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이는 자기 자신이다. 

임오경 

258쪽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두 눈을 뜨고 당당하게 마주하여 극복하는 것입니다. 이겨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 컨트롤도 함께라면 더욱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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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정원 2010-08-1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북하우스 출판사 박정우 입니다.
님께서 쓰신 인생기출문제집 리뷰 잘 읽었습니다.

이번에 인생기출문제집2권이 새로 출간되어서
홍보도 할겸 이벤트 소식도 전할겸해서 이렇게 글 남깁니다.

지금 우리 까페에서 인생기출문제집2권과 mp3플레이어를 드리는 이벤트 진행중입니다.
한번 들르셔서 이벤트 참여도 하시고 책 이야기, 사는 이야기도 함께 나누면 좋겠습니다.

날씨가 많이 무덥습니다. 감기도 더워도 조심하셔요~
아참 저희 까페 주소는요
http://cafe.naver.com/myfirstbook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