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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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은 여름에 한번 겨울에 한번 안거에 들어간다. (원래는 여름 우기 한번 뭇생명들을 죽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행해졌다) 이 책은 지허 스님이라는 분이 동안거에 들어가기 전부터 끝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금욕적인 생활의 어려움, 김장 울력, 화두와의 싸움 등등이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보여진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속된 세상을 떨쳐버린 곳에서도 지극히 말초적인 욕망(맛있는 걸 먹고 싶고 잠시라도 잠을자고 싶은 욕망 등)에 휩싸인 이들의 모습 속에서 구도자의 길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짐작케 만든다. 또한 이들의 수행이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결국 그것이 궁극적으로 이타적 존재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과정임을 깨닫게 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이 나에게 '쿵'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다음과 같은 지허 스님의 말씀 때문이다.

이 세상은 유한한가, 무한한가, 또 신은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지금 괴로워하고 있는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부처님 교설의 의취입니다. ... 인간은 초월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완성될 수 있고 인간의 조건은 조화될 수 있습니다. 불교는 인간의 완성을 위해 선을 내세웠고, 인간은 선을 통하여 완성을 가능케 하고 있습니다. 선은 신비가 아니고 절대자의 조종을 받는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인간 완성을 위한 길입니다. 즉 열반으로 이르는 길입니다.  108.109쪽 
  

이 글을 읽고 나를 사로잡고 있는 고민 중 세상의 유한성이나 신의 존재성과 같은 고민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즉, 지적 유희에 빠져 허우적대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이 해결되면 과연 인생의 문제도 해결될 것인지 살펴봤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질문인데도, 그리고 그런 생각도 얼핏 몇번인가는 해봤을 터인데도, 이번처럼 크게 와 닿은 건 무엇때문일까. 이 책과 나와의 인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실존적 고민과 동떨어진 고민을 놓아두고, 사고의 유희도 잠시 제쳐두자고 생각해본다. 그러면 나에게 남은 실존적 고민은 무엇인가. 새로운 화두를 스스로 던져본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일이 괴롭다면 그 괴로운 일의 결과물이 다른 이에게 행복을 줄 수 있을까. 괴롭다면서 그 일을 놓치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단으로서의 일이다면 그 목적은 무엇인가. 생계 때문인가. 생계가 삶의 목적인가. 그렇다면 얼마나 비루한 인생인가. 밥벌이의 지겨움을 말한 김훈의 글이 떠오른다. 정녕 입에 풀칠하는 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미소 지으며 마음에 거리낌없이 행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아무래도 나의 올 동안거 화두는 이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있어 열반은 아무래도 이 화두를 깨우치는 것에서 그 길을 열어줄 듯하다. 스님들의 치열한 안거생활처럼 화두를 깨우치기 위해 먼저 게으름과 안주부터 벗어던지고 진정한 나를 찾는 길을 떠나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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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나는 숙명의 객체이지만 운명의 주체이다.숙명은 자기 부재의 과거가 관장했지만 운명은 자기 실재의 현재가, 그리고 자신이 관장하는 것이어서 운명을 창조하고 개조할 수 있는 소지는 운명 직전까지 무한히 열려져 있다. 숙명의 필연성을 인식하면 운명의 당위성을 절감하게 된다.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숙명적인 것을 피하려고 괴로워 할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하며 운명적인 것은 붙잡고 사랑해야 할 뿐이다. 고집의 표상 같은 누더기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선객이야말로 견성의 문턱에서 문고리를 잡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끝내 운명은 타기될 것이 아니라 파지되어야 함은 선객의 금욕생활이 극한에 이를 수록 절감되는 상황 떄문이다.  35쪽 

중생세계에서 보면 필요성을 주장하면 이유가 되고 타당성을 주장하면 독선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방관자가 된 채 그대로 보고 느끼면서 오직 견성에 매달려 중생계를 탈피하려 한다. 자신이 중생에 머물러 있는 한 모든 판단의 척도가 중생심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불가에서는 시비는 터부로 여기지만 그러나 시비가 그칠 때가 없으니 역시 중생인지라 어쩔 수 없을 뿐이다.  39쪽 

사랑하는 사람을 갖지 말라. 미워하는 사람도 갖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자주 만나 괴롭다. 애증을 떠나 단무심으로 살아가라는 교훈이다.  54쪽  

훌륭한 선객일수록 훌륭한 보건자이다. 견성은 절대로 단시일에 가능하지 않고 견성을 시기하는 것이 바로 병마라는 걸 잘 알기 떄문에 섭생에 철저하다. 견성이 생의 초월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생의 조화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선객은 부처님처럼 위대해 보이나 병든 선객은 대처승보다 더 추해진다. 화두는 멀리 보내고 비루와 비열의 옷을 입고 약을 찾아 헤멘다. 그는 이미 선객이 아니고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인간폐물이 되고 만다. 身外가 無物. 차원 높은 정신성 속에서 살아가는 선객일수록 유물적이고 속한적이라고 타기할 게 아니라 화두 다음으로 소중히 음미해야 할 잠언이다.  78쪽 

인간이란 과거의 사실만을 위해 서있는 망두석이 아니라 내일을 살려고 어제의 짐을 내려놓으려는 자세가 있기에 비로소 인간이라고. 93쪽 

불교의 중도는 역의 태극이나 자사의 중용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에도 상통한다. 상극의 초극이야말로 진실로 인간의 가장 긴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비로소 인간의 순화, 지상의 정화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개인의 마음에 달려 있을 뿐이다. 개인의 순정한 마음 없이 사회의 복지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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