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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의 포구기행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해뜨는 마을 해지는 마을의 여행자
곽재구 글.사진 / 열림원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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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이 도는 책이다. 포구가 가지고 있는 바다의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툭툭 쏟아지는 쓸쓸함이라는 단어때문이기도 하다. 때론 갯벌과 같이 검은 빛을 띠다가도 어김없이 푸른 빛이 감돈다.

여행이 갖는 이미지는 다양하다. 지친 몸을 거두어줄 안식처를 찾는 여행일 수도 있고 그저 낯선 환경을 바라보는 신기함을 즐기고자 하는 여행도 있다. 이런 여행들은 일상을 잠시 탈출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을뿐이다. 곧 일상으로 돌아와야만 한다는 전제로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일상이 따로 없다. 여행에서도 평상의 삶도 모두 여행이기 때문이다. 곽재구가 찾아간 포구들은 낯선 환경이 아니라 낯선 자아를 찾아나서는 여행이었다.

철새가 먹이와 번식을 위해 그렇게도 먼 여행을 한다는 조류학자들의 이야기에 곽재구는 고개를 젓는다.

생각해보라. 당신같으면 단지 부족한 식량때문에 먼 산과 강을 넘어 수천 수만 리의 여행을 하겠는가. 그것도 눈앞에 닥친 기아가 아닌 얼마 후의 미래를 예측하고...... (P115)

정말 생각해보라. 떠나지 않는 철새들을. 마치 텃새마냥 한 곳에 머물러 안주하는 삶을. 날지 않는 철새는 이미 꿈을 잃고 현실에 묻혀버린 인간의 모습과 닮아있음을.

존재의 비상. 그것은 쓸쓸함만이 줄 수 있는 큰 선물이 아니겠는지요.(P176)

따라서 나를 찾아 떠나기 위한 날갯짓은 혼자서만이 가능하다. 그랬을때 바로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한 빛과 체온의 가치를 알 수있다. 따뜻한 손, 포옹의 아늑함은 여행자만이 느낄 수 있는 축복이다.

한참 머뭇거리던 발걸음을 뗄 시간이 왔다. 낯선 나를 만나기를 두려워했던 마음을 벗어던지고 신발의 끈을 고쳐 매자. 질끈 동여맨 신발로 힘차게 걸음을 내딛자.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그 첫발부터 벌써 두근거림을 가져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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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공선옥 지음, 노익상·박여선 사진 / 월간말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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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는 순간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이번 설, 고향에 내려가면 외할머니의 얼굴을 꼭 사진으로 찍어놔야겠다. 공선옥이 첫 여행지서 만난 행상, 지복덕 할머니가, 팔고 다니던 '뇌신'이라는 약을 시도 때도 없이 드시는 나의 외할머니. 어렸을 적 기억에 남아있는 담배연기 뒤로 보이던 주름살들. 그리고 그 옆에 놓여있던 댓병의 소주.

한 없이 친근하면서도 그 담배와 소주의 의미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어린 나이에, 여자는 저런 것 먹으면 안된다는 편견과의 갈등속에서 당황해하던 모습도 얼핏 떠오른다. 나이 서른이 넘은 지금의 나를 아직까지도 똑같은 모습으로 사랑해주시는 할머니. 난 그 사랑을 알지만 그 인생을 알지못한다. 전혀.

하지만 그 소주와 담배의 기억이 이젠 어렴풋이 할머니의 삶을 이해하도록 만든다. 공선옥의 책은 이렇게 내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결코 세상에 잘나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못나서도 아닌, 그저 내 곁에 평범하게, 자신의 갈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만든다.

마흔에 길을 떠난 탓이었을까? 그녀가 가는 길은 신작로가 아니었다. 꼬불꼬불 사람이 밟아가며 만들어낸 오솔길의 느낌, 그 길을 걷다보면 인생을 온 발바닥으로 받아들여 뇌 속까지 파고드는 느낌 그 자체다.

아마도 그래서 어머니가 떠오르지 않고 외할머니가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새와 꽃과 눈과 산만을 담아내고 있던 나의 카메라에 처음으로 사람의 얼굴을 담을련다. 외할머니의 깊은 주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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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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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나서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없다는 공자님 말씀을 떠올린다면, 분명 나는 이 책을 잘 읽은 것이 틀림없다. 저자가 경험한 미국 동부의 3500킬로미터가 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비록 걸어갈 순 없다 하더라도 나는 이곳 나의 땅 한국의 백두대간을 종주하리라는 결심을 굳히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한달에 한번 정도 산을 찾아가는 나에게 있어 백두대간은 그야말로 꿈이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진정한 국토종단의 길을 떠나기 위해서라도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까지 이끈 이 책은 그만큼 사람을 걷게 만드는 매혹적인 힘을 갖고 있었다.

그 매혹의 중심에선 저자의 유머감각이 있다. 중간중간 피식 웃음을 흘리거나 박장대소하지 않고는 페이지를 넘길 수 없을만큼 재미가 있다. 또한 자연의 파괴에 대한 가시돋힌 비판을 큰 목소리로 외치지 않아도 얼마나 현실이 안타까운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예찬만으로 가득찬 책은 결코 아니다. 문명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자연의 아름다움을 드러냄으로써 그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자연만의 또는 인간만의 세상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고산준봉, 맑은 호수, 사나운 곰과 독이 가득찬 방울뱀, 별을 보며 잠드는 비박 등등 마치 동물의 왕국과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다가도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한다. 트레일의 즐거움이나 싫증, 괴로움을 결정하는 것은 자연 그 자체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사람에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메리 앨런이라는 여자를 만나면서 느끼는 짜증과 한 부자를 통해 행복감을 맛보기도 한다. 특히 자신과 동행한 고교동창생에 대한 그의 감정의 변화는 따뜻한 인간미를 엿볼 수 있다.

주인공 일행이 비록 완주에는 성공하진 못했지만 그들이 그 험한 트레일을 시도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나에겐 흥분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발걸음 발걸음 하나하나가 바로 행복한 걸음걸이였음을 확신한다. 나도 분명 그런 행복한 걸음을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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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고, 오르고, 또 오른다 - 위대한 등반가에게 배우는 9가지 마케팅 원칙
카이 페르지히 & 슈테판 글로바츠 지음, 유영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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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해보지 못하지만 그 기분만은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모험에 관한 책들을 들쳐보게 된다. 간접체험만으로도 풍부한 느낌을 선사받을 수 있는 행복감. 이번엔 남극탐험이다. 게다가 보너스로 이 탐험을 통한 마케팅적 요소를 배울 수 있다니.그런데 이 책을 통해 느낀 것은 남극탐험의 스릴과 장쾌한 풍경묘사보다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존엄이다. 슈테판 글로바츠는 프로 클라이머로서 산에 대한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돈의 노예가 돼 버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가 무엇때문에 산을 오르는지 이해하는 순간 이 비난은 그저 질투심일 뿐이다는 것을 알게된다.

내가 좋아서 그저 기뻐서 하게 되는 일.그에겐 바로 산에 오르는 일이다. 누군가 상을 준다고 해서,또는 벌을 내린다고 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일이 좋아 할 수 있다는 것. 흔히 우리가 말하는 당근과 채찍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려는 것들이 얼마나 인간을 비하하는 것인지에 대해 깨닫게 만드는 순간이다.
비록 이것이 이상일련지 모르지만 인간행동의 원칙이 결과에 대한 어떤 기대로 인해 이루어지기 보다는 그 행동자체로 인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새삼스레 생각하게 만든다.

또 이책은 산과 인간을 대하는 방식이 어떻게 서로 닮아 있는가도 보여준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그것에 대한 이해는 지독한 탐구, 공부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만든다. 상대에 대한 배려는 그를 알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될 수 있다. 오만과 무관심이 끼어드는 순간 관계는 깨어지게 된다. 현실을 돌아보고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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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 - 산이 만든 책, 책 속에 펼쳐진 산
심산 지음 / 풀빛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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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나에게 있어 개인적으로 절대고독을 의미한다. 언제 어느때 누구와 함께 산에 오르든 언제나 산은 나에게 수없이 많은 나를 마주치도록 강요함으로써 고독을 배우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그 고독은 결코 우리가 피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다. 오히려 괴롭고 힘든 도시의 삶과 인간관계로부터 벗어나 고요함과 평화를 맛보게 하는 고독이기에 그 고독이 그리워 산을 찾아간다.

하지만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를 읽는 순간 산은 또다른 의미로 다가섬을 느낀다. 10권이 넘는 산서에 대한 리뷰를 읽다보면 산은 얼마나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 새삼 알게 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고독한 산행을 즐기는 클라이머가 있는가 하면 어느새 산은 우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로 바뀌어 있다. 자일 파티라는 이름의 동반자는 자기희생과 믿음이 따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산은 나보다도 더 소중한 그 누군가가 있음을 가르쳐준다. 그러나 그 가르침을 깨우치는 순간 그 산은 또 다시 인간의 추악함을 드러내준다. 자신의 목숨마저도 바치는 자일파티의 반대편에 제발 나를 죽이지 마, 죽어도 같이 죽자라는 비열함이 떡 버티고 있다. 상대방만 없으면 난 살수 있는데, 저 놈이 날 버려두고 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고 마음을 병들게 만든다. 살고자 하는 욕망을 이겨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욕망에 갇힌 이기적인 모습의 인간 또한 산은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 산은 또 다시 역사적 산으로 자리를 옮긴다. 지리산의 산사태는 역사적 희생양이 되어버린 빨치산들의 원혼이 내지르는 사자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산이 지니고 있는 거대한 시간에 겸손함을 배우게 된다. 산은 흔히 무상의 목적을 지닌 행위로 보여져 그 속에서 순수함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산을 오르는 행위가 돈과 직결되 있음을 알게 되고 또한 그것이 꼭 피해야만 할 그 무엇이라는 선입관에서 벗어나게 된다. 가난한 클라이머의 고된 산행이 가져다 주는 명예 또한 어찌보면 산이 주는 상일수도 있다.

산은 그렇게 그곳에 서 있는데 그것을 오르는 사람은 왜 이리도 다른 것일까? 오늘 또 다시 산에 오를 것을 계획하는 나는 이제 그 산에서 어떤 모습의 나를 만날지 궁금해진다. 산은 그렇게 지긋이 벌거벗은 나에게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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