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길었던 여름 탓인지 농사를 짓는 하우스에서는 병해충 피해가 심한 듯하다. 특히 벌레들의 피해가 커서, 노지에 키우는 배추와 무에도 성한 것을 찾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집에 들어앉아 방에 앉거나 누워 있을 때 이 벌레들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집 안에서 이 벌레들을 발견하는 것이 어려울 뿐더러, 설령 이 벌레들이 있다고 한들 사람을 괴롭힐 일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집에 있으면 벌레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여름밤 잠을 청하려 누우면 어디서인지 몰래 다가온 모기의 날갯소리에 잠을 설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여름이 지난 지금은 파리가 성가시게 군다. 책이라도 한 장 읽을라 치면, 이제 막 집중해서 문장을 쉬이 쉬이 넘나들려는 찰나 귓가에 날갯소리를 드리우거나 눈 앞에 어른거려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모기처럼 피를 빨아 먹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모른 척 하면 가끔 자리를 떠 다시 평온을 되찾지만, 이 평온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또다시 찾아와 내 몸의 오감이 미치는 범위 안으로 침범해 들어와 자극한다. 결국 책을 읽는 등의 하던 일을 멈추고 파리채를 집어 든다. 내가 원하지 않는 오감을 자극한 벌로 쫓고 쫓기는 관계로 바뀐다. 파리는 날래어서 쉽게 잡히지는 않지만, 모기만큼은 아니다. 계속 날아다니거나 어디 숨어버리지 않고, 어딘가에 내려앉는 경우가 많아 파리와의 추격은 결국 파리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 경우가 많다. 파리가 불러온 간단한 사건 사이에는 이성이 들어갈 틈이 없다. 신경을 거스린다는 나쁜 기분은 곧바로 응징을 결정한다.
혹시 지금 우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갖가지 변명이나 설명으로 치장되어져 있지만, 파리와의 관계처럼 즉각적 응징으로만 대처하는 일은 없는 것은 아닌지 살펴본다. 누군가의 죽음으로만 끝을 맺을 수밖에 없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