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의 논리학 - 말과 글을 단련하는 10가지 논리도구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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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용규는 나에겐 '반드시 사야하는 필자' 리스트에 올라 있는 철학자다. 그의 책을 다 본건 아니지만 몇몇 책을 접해본 뒤로 새 책이 나오는 족족 돈 아끼지 않고 구입하고 있고, 그가 쓰는 한겨레 신문 칼럼 또한 빠짐없이 체크하고 있다. 이쯤되면 그의 팬이라고 해도 괜찮을까. 김용규가 통조림 시리즈 네 권을 통해서 윤리학과 인식론을 쉽게 풀어 설명해주었다면 <설득의 논리학>은 '작업'의 대상을 논리학으로 삼은 책이다. 이로써 철학자 김용규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아주 오래된 고전적인 철학부터 최근의 사조까지를 다 다룬다. 그의 책을 읽으며 재미도 느끼고, 최근의 철학까지 접하는 기회를 얻는다.

  이 책의 제목과 기획은 다분히 출판계의 흐름을 탄 것으로 보인다. 글쓰기와 말하기 위주의 실용서적들이 한참 유행했었고, 이 책은 대놓고 실용서를 표방하지 않음과 동시에 '설득'이라는 유행의 흐름을 타고, 동시에 인문학 독자들까지 끌어들이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곧 실용서의 독자들과 인문학의 독자들 어느 누구도 제대로 잡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책은 결과적으로 양자 모두의 지갑을 털었지만, 실용서 독자에겐 실망을, 인문학 독자들에겐 2% 부족한 만족감을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책의 제목인 '설득의 논리학'에서 방점은 '설득'이 아니라 '논리학'에 찍힌다. 설득은 논리학을 말하기 위한, 이용해먹기 위한 눈길끌기 정도의 역할을 담당한다. 사실상 이 책을 읽은 뒤에 누군가를 설득하는 능력이 길러진다고 보긴 힘들고, 곧바로 써먹기에는 포크로 찍어 바로 먹기 좋게 썰어주는 센스가 부족했다. 그리고 요리를 먹기 좋게 꾸미거나 포장하려는 의도는 애초에 없었던거 같다. 철학자 김용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논리학이었다. 단 그것을 재밌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설득의 논리학>은 기존의 논리학 입문서나 논리학 실용서들과는 그 성격이 많이 다르다. 대학 교재로 쓰이는 논리학 서적같이 구체적이고 세세한 이론을 나열해놓고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실용서처럼 쉽고 간편하게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지도 않았다. 논리학에 관한한 온갖 철학자들과 이론이 등장해 다소 정신없기도 하다. 또한 기존에 논리학을 전혀 접해보지 않은 독자가 읽기엔 난해한 기호논리학 기호들이 별다른 설명없이 불필요하게 등장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책과 영화, 체험으로부터 나온 풍부한 예시와 맛깔난 설명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베이컨, 비트겐슈타인, 파스칼, 쇼펜하우어, 포퍼, 카르납, 퍼스, 한비자 등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논리학에 관한 핵심적인 철학자들을 모두 초대해놓고 간략하게 살펴보며, 그 사이사이에 재밌는 우화와 추리소설, 영화 , 고전 등을 끼워넣는다. 논리학 이론 위주의 책이 아닌 철학의 한 분과인 '논리학'에 몸담았던 철학자들의 "축약된 논리학사"정도로 보면 되겠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에서 배웠던 논리학 입문서에서는 보지 못했던 철학자와 이론도 접할 수 있어 다른 책(포퍼, 로티,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더 찾아보고 싶어졌고, 그간 알고 있던 이론들은 재미난 예시와 설명과 더불어 읽으며 확인하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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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2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런 책 읽기를 겁내는지라, 이렇게 친절한 님의 리뷰로 맛을 봅니다.

뽀송이 2008-01-29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건가요?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알려주는 게 아니란 말씀이죠?
저처럼 논리적이거나, 철학적이지 못한 이들에게는 어떤가요?

마늘빵 2008-01-29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 이런 책 처음이시라면 많이 생소하시겠지만 천천히 읽어나가다보면 재미도 있답니다. 논리학 책 치고는 책장이 쉽게 술술 넘어가더라고요.

뽀송이님 / '설득'보다는 '논리학'입니다. 논리학을 알면 상대를 설득하기도 쉽다, 라는 결론이겠죠. :) 관심있는 분야가 아니시라면 어렵게 느껴질수 있지만 관심이 있다면 재밌을겁니다.

marr 2008-01-29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사회에서 "논리적으로 설득하려 했다간 잘난 척 한다고 한대 맞을 거 한대 더 맞아요." 언젠가 고딩 한 놈이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논술 광풍에 대학에서도 교양필수로 말하기, 글쓰기 수업이 학생들 사고를 교정시키고(?) 있는데, 우리 사는 방식은 여전히 힘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힘센 놈이 이긴다.
"Money is Power!"
하하, 전 옌스 죈트겐이라는 사람이 쓴 "생각발전소"(북로드)가 재미있었어요. 논쟁에서 확실히 이길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현실에서 여러 사례를 가져와 설명하더군요. 이거 고등학교 논술교재로 생각하시만 오산입니다..쩝

마늘빵 2008-01-30 10:09   좋아요 0 | URL
아 그 고등학생이 제대로 보고 있는거네요. :) 저 대학 다닐 때랑은 참 많이 달라졌어요. 졸업한지 오래 된 것도 아닌데 저때는 그런 글쓰기 교양 과목 같은거 하나도 없었는데 부럽기도 합니다. 요새 대학생들이. <생각발전소> 표지가 꽤 재밌었던거 같은데 저도 찜해놨던 책이에요. 추천해주시니 다시 관심이 가는군요. ^^

2008-01-30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30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두려움 없는 글쓰기 - 나는 항상 글을 쓰고 싶다
로제마리 마이어 델 올리보 지음, 박여명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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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터넷 상에서 블로그를 만들어놓고 자신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재밌게 풀어내는 사람들이 주목을 받다보니,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놓고 다른 이들처럼 글 좀 잘 써보고 싶다, 는 작은 소망을 가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별 것 아닌 이야기를 매우 재밌고 유쾌하게 풀어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시선을 한 곳에 멈추고 깊이있는 자기사색을 늘어놓는다. 이 책은 남들이 포스팅 하는 글을 보면서 나는 왜 저렇게 쓰지 못할까, 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겨냥한다. 하지만, 그들의 고민에 적절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나는 글은 곧 사유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일기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에 대해서 이런저런 기술과 방법을 일러주고 있고, 그저 막연한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술'은 형식일 뿐 내용을 담아내지는 못한다. 무엇보다 어떤 글이건 잘 쓰기 위해서는 사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오늘 아침 출근길 미어터지는 지하철에서의 경험, 삼계탕을 못 먹는데 밥 사주는 선배가 삼계탕 먹으러가자고 했던 경험 등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자기 사유를 시작해야 한다. 기술은 그 이후의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ABC 놀이, 콜라주, 시, 아크로스틱, 마인드맵, 클러스터, 자동기술법 등은 결국 자기 사유를 끌어내기 위한 기법과 장치들이라곤 하지만, 기술을 앞세운 '글훈련'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글은 훈련시키려 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도록 해야 한다. 솔직히, 소개된 여러 기법들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고 있는 것들이다. 일단 무엇이든 머리와 마음에 있는 생각들을 종이에 풀어내라. 반복하다보면 스스로 점점 나아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쓰고 못 쓰고는 글쓰기 기술보다는 내가 얼마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가, 더 적나라하게 구체적으로 풀어내는가, 에 달려있다.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보다 내 마음을 풀어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진 않은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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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08-01-27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계탕을 못 먹는데 밥 사주는 선배가 삼계탕을 먹으러 가자고 했던 경험'에 대해 써보세요. 재밌겠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보다 닭을 먹지 못하는 심정에 대해 풀어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진 않은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셔야 하겠지요? ㅋㅋ

마늘빵 2008-01-27 09:46   좋아요 0 | URL
-_- 흐음... 안먹으러갔어요. 다른 핑계대고. 점심 약속이 있다 하고선. 삼계탕을 어떻게 먹어요. 공짜로 사줘도 안먹어요. ㅋㅋㅋ

바람돌이 2008-01-27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에서 사유의 깊이가 묻어나고 그러면서 글 자체도 맛갈지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둘다 안되는 사람은 기술이라도 익혀야 할까요? ㅎㅎ

마늘빵 2008-01-27 09:47   좋아요 0 | URL
다소 주관적인 생각을 피력했습니다. 전혀 아무 것도 안 되고, 막막한 분들은 그나마도 그게 도움이 되겠지요. :) 저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책이 전혀 도움이 안됐고, 한 한 시간만에 읽게 됐어요. 일일히 정독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소제목 보면 무슨 내용인지 아니까 넘어가고 넘어가고 하다보니 어느새 책장을 다 넘겨버렸다는.

프레이야 2008-01-31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려움없는글쓰기,를 택했다는 건 아프님의 두려움을 극복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깔린 건데.. 그부분을 잘 짚어주지 못했나 보군요. 그런데 답은 이미 아프님이
잘 알고 계신 것 같아요.^^

마늘빵 2008-01-31 16:05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이 책을 구입한건 아니고 그냥 누가 줬어요. ^^ 그래서 손에 들어본건데 별로였어요 ^^ 전 별로 두려움은 없어요.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 철학을 내 것으로 만드는 "생각 교과서"!
김민철 지음 / 그린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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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논술 붐이 일면서 - 각 대학들이 논술 폐지를 선언하는 시점이라 과거형인 '한때'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철학을 비롯한 인문/사회과학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더불어 출판사도 열심히 좀 더 쉽게 쓴 청소년용 철학서적들을 내놓으며 이에 부응하기도 했다. 여전히 대중화 작업은 진행 중이지만 인수위의 일방적인 교육 선언이 국민들의 합의없이 그대로 실천된다면 서서히 사그라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논술'을 핑계삼아 나오는 철학서적들 중에 괜찮은 것들이 꽤 많았는데 이런 책을 골라 읽어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대중적인 철학 서적이라면 대략 두 가지 정도로 분류가 된다. 그리스 아테네부터 시작해서 현대 프랑스와 미국, 독일에 이르기까지의 현대 유럽 철학까지를 간단히 소개하고 풀어놓는 철학사 책이 있는가 하면, 이런저런 장르들과 연합하여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텍스트들을 통해 철학적 사고를 이끌어 내는 책들이 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책들이, 어떤 철학사적 지식과는 별개로 자신의 사유를 그대로 풀어놓는 책이다. 일명 철학 에세이인데, 김민철의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라는 책 또한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는, 생각하기 위함이다. 타인의 삶을 꾸준히 모방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추구하는 행복에 이르는 길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의 행복의 길을 걷고자 하기 위함이다. 나와 나의 묻고 답하기는 점차 '나'에서 '사회'로 시선을 넓혀가며 나를 넘어선 주변의 것들, 그리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 지구상의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의문을 제기한다.

  김민철은 철학이란 '따져묻기'라고 말한다. 우리가 살면서 추구해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이고, 그에 따르면 지혜란, "지식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체득하여 그와 관련된 상황이 주어질 때 최선의 판단을 도출해 내는 정신적 능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한 암기를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모든 지식을 그 원리에서부터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거기에는 '따져묻기'가 필수적인 것이다." 현재 어린아이부터 취업준비생을 넘어 승진시험을 보는 이들에 이르기까지 국민 모두가 '많이 외우기'에 몰두하고 있다. 지식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식이 합격과 불합격의 판단의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키워야 할 것은 텍스트(지식)에 대한 자신의 해석(지혜)이다.

  "사실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해석뿐이다." (니체, 권력에의 의지) 이 책은 지식이 아닌 지혜를 추구하고 있는, 사실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해석을 가하는 김민철만의 철학 에세이이다. 그는 이 책 곳곳에서 지식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지식은 주인이 아니다. 이 책의 주가 되는 것은 지식이 아닌 김민철의 해석이다. 그의 해석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는 없으며, 그것은 그가 익히고 배워온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자기해석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철학이 왜 '따져묻기'인지를 알려주고, 지식이 아닌 지혜를 추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본보기이자 표본이라는 점에서 교과서라 칭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에서 접하는 고리타분하고 일방향적인 교과서가 아니라 자기 생각이 주가 되는 '생각 교과서'라는 점에서 '교과서'의 일반적 정의와는 멀리 떨어져있다고 봐야 한다.   

 p.s.  ○○, ○○○하다. 라는 식의 제목은 이제 많이 식상해졌는데 제목을 지을 때 좀 더 신선하게 지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김민철의 철학에세이'라고 하면 이 책에 딱 적절한 제목이겠으나 김민철 이라는 이름을 내세우기엔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생각 교과서'라고 해도 될 것 같지만 '철학'이 빠져버리면 내용과 뭔가 맞지 않고, '철학 교과서'라고 하기엔 너무 고리타분해 보이고 나름 고심해서 나온 결과인지 모르겠다만, 솔직히 제목은 별로 눈길을 끌지 못했다. 요런 좋은 책들은 제목도 같이 확 끌어줘야 한다. 참, 철학적 지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이 책은 적절한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하는 법, 철학하는 법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 책이 입맛에 잘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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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8-02-11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보에 갔다가 생각나서 구입해서는 읽고 있는 중인데, 정말 쉬우면서도 재미있더군요. 그렇다고 그냥 모양만 흉내낸 건 아니고... 좋은 책인 것 같아요.^^

마늘빵 2008-02-11 09:18   좋아요 0 | URL
:) 어떤 걸 요약하고서 쉽게 풀어 쓴 책이라기보다는 그냥 저자 자신의 생각을 펼쳐놓은 '에세이'느낌입니다.
 
지식 e - 시즌 2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2
EBS 지식채널ⓔ 엮음 / 북하우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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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권의 좋은 책은 열 갈래 다른 독서의 시작"이라는 뒷날개의 김주하 아나운서의 코멘트가 이 책의 성격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특정한 하나의 지식이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여러 짧은 지식들을 축약해 제시하는 이 책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각 꼭지에 소개된 여러 다른 책들을 자발적으로 살펴보는 동기를 마련해준다. 좋은 책이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답은 여러가지로 나올 수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좋은 책은 '그 책을 통해 다른 책을 손에 들게 만드는 책' 이라는 대답이다. 사실, 각 꼭지 말미에 소개된 책들은 묵직한 제목과 대중적(?)이지 못한 주제 때문에 관심없는 사람이 쉽게 손에 들지 못하는 책들이다. 하지만, 지식e 를 통해 그 책의 존재를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된다면 <지식e>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얼마전 1권을 읽었고 바로 2권을 손에 들었다. 1권이 마음을 겨냥했다면, 2권은 머리를 겨냥한다. 하지만 1권과 2권이 각각 마음과 머리를 독점하지 않고, 1권은 '마음에서 머리로', 2권은 '머리에서 마음으로', 적잖은 충격을 준다. 나열된 어떤 사실에 대한 담담한 서술과 제시된 객관적인 지식에 대한 요약은 사실을 인지하고 지식을 습득하게 하지만, 그건 과정이고 수단에 불과하다. 궁극적으로 사실과 지식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을 좀 더 넓게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시야와 마음의 움직임이다. 知識으로 시작했지만 우리는 智識을 얻게 된다. 이 책을 떠나서, 우리가 知識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함일 것이다. 우리가 공부를 한다함은 내 앞에 놓여진 텍스트를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텍스트를 통해 내 사유를 확장해나가기 위함일 것이다. 

  달달 외워 머리 속에 아무리 많은 지식을 채워넣어봐야 다 쓸데 없다. 나 이 정도 안다, 며 누군가를 향해 자기지식을 자랑하고 내세우는데는 유용할지 모르겠지만, 그것 뿐이다. 나는 수많은 지식을 암기하고 시험치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청소년들과 온갖 시험준비생들을 볼 때 안쓰럽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국가적 시선에서 바라봤을 때도 - 난 이런 관점을 싫어하지만 -  이건 지나친 국력 낭비다. 고등학생들은 시험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무언가를 암기하고 있고, 공무원 시험, 사시, 행시, 기술고시, 임용시험, 언론시험 등등의 시험준비생들 역시 매일매일 두꺼운 수많은 책들을 암기하고 있다.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기 힘들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암기왕을 뽑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건 변명에 불과하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쓰여진 글자가 아니라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 사이의 행간읽기다. 창의력을 강조하면서 공부법과 선발방식은 여전히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읽어내야 할 것이,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에둘러 꼬집고 있는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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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1-20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자는 1권보다 2권이 못하다..하기도 하지만 전 2권에서 만난 사실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더군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다보니요.

다락방 2008-01-20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2권은 1권과는 다르게 충분히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프락사스님의 리뷰도 좋으네요.
:)

마늘빵 2008-01-21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권 둘 다 좋았습니다. 짦은 글과 사진이 마음을 動하게 하더라고요.

2008-01-22 1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8-01-24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2권은 아직 안 봤는데, 아프님 리뷰 읽으니까 안 읽을 수 없겠는데요. 아프님 리뷰 너무 잘 써. -_-

마늘빵 2008-01-24 21:55   좋아요 0 | URL
아핫, 요새 귀찮아서 그냥 생각나는 것만 쓰고 아니면 말고 식이에요. 잘쓰긴요, 귀찮아서 그냥 끄적이는걸로 족하고 있어욤. 전만큼 리뷰에 욕심이 안나요. 다른데 신경써서 그런건지.

수아빠 2008-06-09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e>에 관한 설문조사로 도움을 받고 싶은데요
http://blog.naver.com/image2two 에 오셔서
내용을 확인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지식 e - 시즌 1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1
EBS 지식채널ⓔ 엮음 / 북하우스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이 한참 팔릴 때가 대략 1년전인거 같은데 - 책 생일이 2007년 3월이니 1년은 안 됐구나 - 이제와서 읽고 감동받은 나는 참 느리다. 매주 일간지 토요일자 신간 서적란을 확인하고, 온라인 서점이나 오프라인 서점을 가끔씩 돌아댕기는 나는, 이 책을 무지하게 많이 접하긴 했다. 표지와 제목은 너무나 익숙하다. 그런데, 유명세에 서점에서 대략 훑어본 결과 - 오른손으로 책 전체를 빠르게 쭈루룩 넘겨봄 - 에이 별로 내가 원하는 책은 아닌 거 같다. 그냥 기획용 상품으로 딱 팔아먹기 좋게 나왔네, 하는게 당시의 내 반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책은 그렇게 훑어보면 안 되는 거였다. 한 꼭지씩 천천히 읽다보니 이 책이 보여지는 것 이상으로 꽤나 큰 마음의 움직임을 이끌고 온다는 사실을 알았고, 손에 쥔 채로 끝까지 다 읽어버린 몇 안 되는 책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빨리 읽지도 않았고 꽤나 시간을 들여 읽었음에도 각각의 장들이 내게 주는 감동이 너무나 다채롭고 강렬하여 놓을수가 없었다. 때로는 분노케 하였고, 때로는 어느 글 한 줄이 나를 울려버렸다. 펑펑 눈물 쏟고 운건 아니지만, 닭똥같은 눈물 뚝뚝 흘린 것도 아니지만,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가에 촉촉한 방울이 맺히곤 했다.

  솔직히 당시 상품용 책이네, 하고 지나쳤던 이 책을 다시 주목하게 된 건, 지인이 올린 게시물 때문이었다. 그 게시물에는 이 책의 서문(?)이 담겨있었는데, 그 글은 이러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은 암기하는 정보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입니다. 현학적인 수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메세지입니다. 빈틈 없는 논리가 아니라 비어 있는 공간입니다. 사고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지식은 엄격히 구분짓는 잣대가 아니라 경계를 넘나드는 이해입니다. 말하는 쪽의 입이 아니라 듣는 쪽의 귀입니다. 책 속의 깨알같은 글씨가 아니라 책을 쥔 손에 맺힌 작은 땀방울입니다. 머리를 높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낮게 하는 것입니다."

  이 시구절같은 대구를 이루는 짧은 문구들은 내 마음을 움직였고, 이 책을 간절히 원하도록 만들었다. 여기 적힌 짧은 문구는 내 삶에서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내 마음을 열어보여준 것 같은 느낌이다. 누군가 내 마음을 열어서 살펴보고 그걸 멋드러진 글로 옮겨놓은 듯한. 특히나 "암기하는 정보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입니다"라는 부분이 그랬다. 서문(?)의 문구들 답게 본문의 내용들은 매우 짧지만 강렬했고 그 글들은 '지식'보다는 분명 '생각'에 닿아있는 것이 확실했다.  

  이 책은,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 책을 읽고 싶어하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 혹은 생각하지 않고 타인의 삶을 복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면 딱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매우 유용한 책이다. 앙드레 지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 권의 책을 책꽂이에서 뽑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꽂아 놓았다. 그러나 이미 나는 조금 전의 내가 아니었다." <지식e>는 거기에 딱 들어맞는 생각과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책이다. 이렇게 마구 찬사를 늘어놔도 지나치지 않은 책이다.


* 책 서문을 뻬빠로 작성해주신 라주미힌님께, 이 책을 선물해주신 웬디양님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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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1-13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지난 추석 때 이 책 100권을 선물했다니까요~ ㅋㅋㅋ
(물론 회사용으로 한거지만 ㅋㅋ)

Mephistopheles 2008-01-13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지식공감은 짤막하게 EBS에서 방송해줍니다. 그것도 한 번 보세요.
2. 이 책의 가장 장점 중 하나는 책 속의 책이라고 보고 싶어요. 책 속에 주석으로 달린 책들 또한 호락호락 가볍게 볼 수 있는 책이 한 권도 없어보이더군요.^^

웽스북스 2008-01-13 02:27   좋아요 0 | URL
흐흐 저 막 리스트도 만들어놨다니까요

마늘빵 2008-01-13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청님 / 아 이거 짧게 그냥 대충 끄적이기만 하고 자려고 했는데 한번 쓰기 시작하면 끝을 모르는군요. -_- 내가 이 시간에 깨어있는건 흔한 일이 아닌데...

웬디양님 / 넵 100권. 웬디양님 혼자서 - 다 산건 아니지만 - 이 책을 엄청나게 팔아주셨군요. 북하우스에서 감사편지라도 보내야겠는걸요.

메피스토님 / 그거 한번 봐야겠어요. 한번도 안 봤는데 언제 하는건가요. 저도 각 장마다 끄트머리에 적혀있는 책 목록을 봤는데, 묵직한 것들이더군요. 이 책을 보고나서 그 책들을 하나씩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Mephistopheles 2008-01-13 02:30   좋아요 0 | URL
책을 꼼꼼히 읽으셨다면 아마도 언제 방송하는지 나올텐데요..이히힛..
(빨간책에 나오나..??)

웽스북스 2008-01-13 02:30   좋아요 0 | URL
것두 그렇지만 이런 따뜻한 지식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읽게 해서 좋았어요 그 사람들이 다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ㅋ 근데 아프님 진짜 이시간에 안주무시는 거 오랜만이다, 오늘 늦잠잤죠? ㅋㅋ

마늘빵 2008-01-13 02:33   좋아요 0 | URL
어제 11시에 집에서 나가서 신천에서 친구들이랑 술마시다가 기절해서 택시타고 새벽에 4시쯤 들어와 자곤 아침에 10시쯤 일어나고 안 잤는데...

웽스북스 2008-01-13 02:38   좋아요 0 | URL
저도 이제 불 끄고 컴퓨터 끌건데요, 살청님이나 메피님이야말로 정말 언제 주무시는지, 특히 메피님은 참, 신기하더라는, 혹시 가수면 상태에서도 알라딘 들어오시는 거 아니죠? ㅋㅋㅋㅋ

아프님 그나저나 신천에서 집까지 택시 탔으면, 택시비좀 나왔겠는데요? ㅋ

Mephistopheles 2008-01-13 02:40   좋아요 0 | URL
그니까 웬디양님은 저를 신기한 것 투성이로 보는 것이 분명하군요.

마늘빵 2008-01-13 02:41   좋아요 0 | URL
근데 술 값은 누가 냈는지... -_- 저는 택시비만 냈다는.

얼음무지개 2008-01-13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아직 못 읽었고, EBS에서는 방송하는 건 종종 보고 있어요. 처음 보자마자 마음을 사로잡았던 방송이었죠. 짦은 5분도 채 되지 않는 분량인데두요. 저런 방송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인지...

다락방 2008-01-13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시즌2도 지하철안에서 읽다가 막 눈물이 고였어요. 시즌2의 전태일이 울렸고, 스티비원더가 울렸고,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 울렸고, 마지막 편집자의 말들도 울렸구요.

마노아 2008-01-14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여기 나온 책 목록 전부 마이리스트로 옮겼어요. 맨 처음 이 책 소개해준 분이 메피스토님, 전 메피님께 감사를,책 선물해주신 멜기세덱님께 감사를.. ^^

꼬마요정 2008-01-14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네요..
행복하다고 해야겠죠?
언제부턴가 책을 읽지 않는 나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어요~
뭐, 그런 때도 있는 거겠죠.. ^^;;
첫 시작을 이 책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마늘빵 2008-01-14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음무지개님 / 방송은 아직 못봤는데 한번 보고 싶네요 저도. :) 매우 강렬했습니다. 짧은 글들이. 영상도 그렇겠죠?

다락방님 / 저도 어느 부분에선 분노가, 어느 부분에서 눈물이...

마노아님 / 이 책 꼭지 끄트머리에 써있는 책들 또한 무시할 것들이죠. :)

꼬마요정님 / 읽을 책은 많은데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편안히 책을 읽을 날이 빨리 왔음 좋겠습니다.

바람돌이 2008-01-14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송시간 모르셔도 검색어 지식채널e 찾아서 EBS들어가면 늘 공짜로 전체 프로그램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www.ebs.co.kr/homepage/jisike 홈페이지는 여기고요. 아 회원가입은 하셔야 되고요.

마늘빵 2008-01-15 08:04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다락방 2008-01-15 10:55   좋아요 0 | URL
이건 저도 감사합니다. :)

웽스북스 2008-01-15 13:03   좋아요 0 | URL
어 이건 저도 감사합니다 ;)

수아빠 2008-06-0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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