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기업을 넘어 영적 기업으로
마르크 건서 지음, 현혜진.최태경 옮김 / 한언출판사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 '큰 틀에서는 동의하지만 불편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기업은 단지 최대한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많은 이들을 고용하고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을 넘어,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어야 하며, 사회적 투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 대체로 공감하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허나, 이 책에서 든 일부 기업들의 사례는 나를 매우 불편하게 한다.  

  저자의 주장대로 품질과 서비스가 기업의 운명을 가르는 시대는 지났다. 도덕적 신뢰가 무너진 기업은 단박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옳은 말이다. 소비자의 감시가 활발해지고, 기업의 사회적 참여와 투자, 윤리적, 도덕적 책무가 강조되는 시점이다. 이는 권장 사항이 아니라 기업이 생존하기 위한 필수 사항이 되었다. (대한민국 기업들을 보면 아직 한참 멀었지만.) 윤리적, 도덕적 책무를 다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는 장기적으로 더 많은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고, 이는 곧바로 이윤 창출로 연결된다. (역시 대한민국 사회는 예외다. 비도덕적인 기업이어도 '경제 위기' 운운하는 말 한 마디면 무사통과다.) 기업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가치인 이윤 추구를 위해서라도 도덕적, 윤리적 책무는 이제 필수인 셈이다.  

  이 책에서는, 각 챕터마다 여러 기업들을 그 사례로 활용하며 지속적으로 윤리적, 도덕적 기업으로서의 책무를 강조하고 있다. 미국 저자가 쓴 책을 번역한 거라 미국 기업의 사례가 들어가 있고, 몇몇은 익히 들어봤지만, 몇몇은 내겐 '듣보잡'이다. 그레이스톤 베이커리, 사우스웨스트 항공, 유나이티드 파셀 서비스, 스타벅스, HP, 스테이스플과 펩시, 맥도날드 등이 긍정적인 예로 등장한다. 유일하게 많이 까이는 회사가 월마트인데, 월마트 뿐 아니라 위 목록엔 내가 알고 있는 회사만 해도 까일 회사가 둘이나 있다. 스타벅스와 맥도날드.  

  다른 회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니 그냥 지나치고,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이 둘을 어떻게 사회적 투자와, 윤리적 도덕적 기업의 예로 활용할 수가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나 저자는 이 책의 어느 부분에서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를 옹호하는 데 상당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데 - 맥도날드에 대해서는 일부 까기도 한다 -, 스타벅스에 대한 저자의 사랑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스타벅스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비판에 대한 반비판까지 해주고 있으니 말 다했다. 성공한(?) 기업은 이렇게 면죄부를 받아도 되는 건가. 우리가 알고 있는 스타벅스의 이미지는 상당 부분 왜곡되고 포장되어 있다.  

  "스타벅스는 저임금을 지불하면서 높은 매출을 기대하는 맥도날드나 월마트를 따라 하기보다는 파트너들과 견실한 유대 관계를 구축하는 길을 선택했다."

  "나는 이러한 몸집 불리기보다는 온갖 오합지졸 비평가들이 스타벅스에 가하는 리스크가 더욱 우려된다."

  "물론 나는 계속해서 스타벅스를 마실 것이다. 그렇다.  스타벅스는 팽창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다. 지구 구석구석까지 자사의 상표를 침투시키려고 한다. 최근에 스타벅스는 비엔나, 마드리드, 파리, 멕시코시티에 가게들을 열었다. 그것은 모든 대기업들이 하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큰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스타벅스 사람들은 종교, 믿음, 영혼, 마음 등에 관해서 얘기하지는 않지만 이 회사는 정신적인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스타벅스는 직원들, 커피 재배인들과 함께 황금률(당신이 사람들에게 대우받고 싶은 것처럼 사람들을 대우하라)을 실천하고 있다."

  저자가 여기 쓴 내용들이 모두 사실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벅스가 커피 판매 비용을 이스라엘의 (대 팔레스타인) 전쟁 자금으로 댄다는 사실이 변하진 않는다. 경영을 그럴 듯하게 잘 포장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우리가 마시는 커피 값은 팔레스타인을 폭격하는 미사일 값의 일부다. 이 사실이 바뀌지 않는 한 - 혹 그동안 내가 모르는 다른 변화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 스타벅스는 결코 윤리적, 도덕직 기업이 될 수 없다. 맥도날드에 대해서는 이미 관련 영화도 나오는 등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패스.  

p.s. 비추임에도 별 하나가 더 붙은 건 큰 틀에선 바른 소리를 하고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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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09-07-09 0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벅스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아직 딱히 밝혀진건 없습니다. 다만 CEO 인 하워드 슐츠가 꽤 극렬한 시오니스트라는건데.. CEO의 개인적 활동을 그 기업과 연결시키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는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네요.

마늘빵 2009-07-09 07:48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어느 책(기사)에선가 CEO만의 문제가 아니라 스타벅스의 문제로 언급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냥 소문인건가요? 관련 기사나 책을 더 찾아봐야겠군요. 명확한 사실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다락방 2009-07-09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큐 스타벅스』란 책을 보면 스타벅스는 이미 은퇴한 노인을 고용하기도 하구요(표지만 봤는데,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저자가 실제 자신의 삶을 쓴 책이더군요), 스타벅스 매장에 가보면 수입의 일부를 아프리카의 불우한 아동들을 위해 쓰고 있다고 해놨더라구요(물론 자기네가 나쁜짓했다고 매장에 써놓진 않겠지만). 알려진 것 처럼 스타벅스의 커피값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싸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데 욕은 바가지로 얻어 먹고 있죠. 우리는 어쩌면 굉장히 많은 것들을 잘못 알고 있는지도 몰라요.

마늘빵 2009-07-09 09:48   좋아요 0 | URL
으음, 글쎄요. 삼성 같은 경우도 좋은 데에 돈을 많이 쓰기도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삼성의 이면은 또 다르니까요. 스타벅스의 이러한 문화 정책들도 그런 차원이 아닐까도 의심을 해봐야 합니다. 미국 시민단체들이 스타벅스를 까대는 것에 대해서, 저자는 지나치게 옹호를 하는 듯한 인상을 보이는데, 그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틀렸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맥도날드도 역시 마찬가지로 좋은 일 많이 하거든요.
 
보노보 찬가 - 정글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인간으로 살아남기
조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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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년 지성사에서 나온 <성찰하는 진보> 에 이어 두번째 낸 한국 사회 비평서다. 이전까지 조국 교수의 작업이 순수하게 학문적이거나 소재는 현실의 구체적인 사안을 담고 있더라도 그에 대한 법률적 해석과 지향해야 할 바를 심도있게 살피는 것이었다면, 지난 책과 이 책은 한국 사회 현실에 대한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내 맘대로 평하자면 그는 이명박 정부가 하는 짓거리에 단단히 화가 났다. 물론 이전에도 간간히 <아웃사이더>에도 글을 쓰고, 신문 칼럼란에도 짧은 글을 쓰곤 했지만, 정식으로 이렇게 현실 비평 책이 나온 적은 없었다.

  수년 전 접한 조국 교수의 책,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는 이후 내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을 정도로 강했다. '조국'이란 이름으로 도서 검색을 하면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는데, 그 중 이 책이 단연코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후부터 조국 교수에게 관심을 가졌다.  

  진보 진영의 일부 사람들은 조국이 동국대에서 서울대로 옮긴 사실에 대해서 좋지 않게 생각하고, 또 좀더 적극적으로 현장에서 뛰며 부대끼길 바란다. 하지만 그는 충분히 지금 강단과 현장을 오가며 할 만큼 하는 듯 하다. 조국 교수는 자신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이와 같은 시선을 느꼈는지 이 책의 맺음말 '불환과이환불균(不患寡而患不均)'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지역주의의 수혜지역인 경상도 지방에서 남성으로 자라나서, 입시경쟁의 승자가 되어 대학에 들어간 후 '미국 물'까지 먹고 돌아왔으며, 집값 비싼 강남 지역에 거부하면서 '학벌'의 정점이라는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 침팬지 세상의 '승자'가 된 것이다.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식,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에 따르면, 나는 지금 '숭미(崇美) 보수우파'로 활약하고 있어야 할게다."

  "그런데 나는 사회적으로 반대성향의 사람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스스로도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 또는 시장만능주의를 버리고 사회민주주의적 사회운영원리를 대폭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벗들은 '생래(生來)적 진보'가 아닌 자가 '의지(意志)적 진보'를 견지, 지향한다고 종종 나를 놀리기도 하는데, 이 글을 빌어 응답을 할까 한다."
  

  그는 그가 말한대로, 그가 처한 모든 조건상 극우 혹은 보수, 우파 진영에 속해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그는 진보 진영의 든든한 버팀목인 법학자이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비롯해 - 여기에는 김두식 교수도 크게 한 몫 했다 - 사상과 양심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기여한 바가 크다. 그가 걸어온 길을 볼 때 그는 철저히 자신의 환경적 계급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 그는 그 이유를 침팬지의 탐욕 유전자가 아닌 보노보의 공감 유전자에서 찾는다. "자신은 안락한 처지에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자신과 전혀 무관한 타인의 고통에 가슴 아프기 마련"이며, "'측은지심'이라는 인간의 본성이 없다면 인류의 지속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조국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이명박에게 보내는 편지, 하나는, 진보 진영에 보내는 편지, 남은 하나는, 장애인, 병역거부자, 성적 소수자, 아동, 청소년, 여성, 한센병 환자, 에이즈 감염인을 비롯한 소수자 혹은 약자를 위한 부분이다. 제 1장 ''정글자본주의'의 시대, 진보의 길 찾기'와 제 2장 '형벌권의 과잉과 남용은 안 된다'는 진보 진영과 이명박에게 보내는 메세지를 모두 담고 있으며, 제 3장 '이 땅의 소수자를 위하여'는 소수와 약자의 인권과 자유에 관한 메세지이다. 모든 꼭지 하나하나 버릴 게 없지만, 그 중 진보 진영에 보내는 조언은 다시 한번 새겨야 한다.  

  "진보진영은 진보의 문제는 단지 고상한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서민대중에게 밝혀야 한다. 서민들의 ‘욕망’을 폄하할 것이 아니라 그 ‘욕망’을 직시하고 진보적 관점에서 재구성하여 그 충족의 전망과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민주, 인권, 공정, 평등, 복지, 연대 등의 가치는 바로 ‘밥’에 대한 문제라는 것, 즉 어떠한 방식으로 ‘밥’을 만들고 어떠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밥’을 나눠 먹을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을 쉽고도 실감 있게 전달해야 한다." (p.83)

  내 자신을 진보라고 말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망설여지지만, 적어도 상식적 가치 - 대한민국에선 상식을 추구하면 진보다 - 를 추구하고자 노력하긴 한다. 그러나 상식적 가치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것을 인간의 욕망과 연계지어 고민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민주, 인권, 공정, 평등, 복지, 연대 모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임은 분명하지만, 진보가 말로 그렇게 떠들어대도 사실상 선거판에서 지지율을 높이지 못하는 이유는, 현장에서 죽어라 부대끼고 뛰어다니면서도 그들로부터 외면받는 이유는, 바로 '밥', '욕망'의 문제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민주'와 '인권'과 '공정'과 '평등'과 '복지'와 '연대'라는 단어가 어떻게 밥이 되는지에 대해서, 밥을 만들기 위해서 그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 어렵긴 하다.  민주, 인권, 공정, 평등, 복지, 연대가 어떻게 밥이 되는지를 설명하는 건, 선거 때 툭 튀어나와 "뉴타운 만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확실히 어렵다. 이미지상 - 순전히 이미지만 - '뉴타운'은 바로 머리 속에 '밥'을 떠올리게 하지만, 민주, 인권, 공정, 평등, 복지, 연대는 밥으로 가기까지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진보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경로를 단축하는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다. 단지 프레임이어서는 안되고, 이러한 가치들이 바로 밥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무슨 자판기처럼 '인권'을 집어넣었더니 '밥'이 툭 떨어지는 식으로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경로를 단축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조국에게 기대하는 바가 많고, 바라는 바가 많아 그가 좀더 열심히 목소리를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사실 지금도 충분하다. 환경적 계급을 배반하고 놀림감이 되면서 진심어린 충고와 조언을 하는 그가 고맙다. 조국은 '들어가는 말'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정글'에는 더 많은 '보노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침팬지에 가까운 환경에서 보노보의 '앞잡이'로 살며 더 많은 '보노보'를 위해 목소리 내는 이 보노보가 진심으로 고맙다. 세상에는 이 같은 보노보가 많아져야 한다. 침팬지가 가득한 대한민국에서 더 많은 보노보가 나타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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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7-03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대한민국에선 상식을 추구하면 진보다 -
에 동의합니다.
장바구니에 담아갑니다.

마늘빵 2009-07-04 00:28   좋아요 0 | URL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가 전체적으로 보수적이란 말이기도 하고, 그 보수들이 실제로 '보수'라고 볼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머큐리 2009-07-03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없다면서도 항상 책을 손에 놓지 않는 아프님땜시,,,자꾸 게으름을 한탄하게 한답니다..ㅎㅎ 저도 장바구니로...

마늘빵 2009-07-04 00:28   좋아요 0 | URL
책은 손에서 놓지 않는데 집요함과 사유는 예전만 못하네요. ^^
 
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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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두식 교수가 또한번 '사고'를 쳤다. <헌법의 풍경>과 <평화의 얼굴>로 이미 사고를 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가 감당해야 할) 충격(?)이 그나마 덜하지 않을까 싶은데, 사안이 사안인만큼 '업계'의 비난과 압력이 은근 들어오지 않을까도 생각한다. <불멸의 신성가족>은 베일에 싸인 법조계의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뒤집어 깐 책이다. 신영철 대법관의 이메일, 전화 사건에 대해 수많은 판사들이 모여 잘못되었음을 이야기했지만, 법원은 꿈쩍도 않는다. 꼭 누구 같다. 지적하고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얼마든지 마음대로 하세요,하는 태도. 이 정부 들어 자주 목격한다.  

  김두식은 희망제작소 '우리시대 희망찾기'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기독법률가회 사무국장으로 있는 김종철과 함께 판사, 검사, 변호사, 법원 일반직 공무원, 경찰, 변호사 사무실 직원, 신문기자, 교수, 철학자, 시민단체 간사, 결혼소개업자, 비정규직 노동운동가, 각종 소송 경험자 등 모두 스물세명을 만나 인터뷰하고, 책으로 엮었다. 이 프로젝트는 애초 사법부와 법조계를 까는 것이 아닌, 단지 현실 상황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겠지만, 결과적으로 사법부와 법조계를 까는 책이 되었다. 드러내놓고 알려진 바가 없다해도 이미 한국 땅에 살고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법조계를 불신한다는 것은 여러 차례 통계를 통해서도 드러난 바가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결국 문제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제도로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다. 그러나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제도를 만들어도 다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게 된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이 모두 온전히 사법부와 법조계의 개혁을 주장하진 않는다. 어쩔 수 없죠,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에요, 관행이에요, 라고 말하면서 문제 있어 보이는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오히려 옹호하기까지 하는데,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한 이들도 이러한데 집단 안에서 똘똘 뭉치는 이들은 오죽 하겠나 싶다. 

  서로 각을 세워야 할 검사와 판사, 변호사는 돈, 상품권, 골프 회원권 등 뇌물을 주고 받으며 "우리는 남이 아니에요", "선배님, 후배님" 하며 재판이 열리지도 않은 사건을 두고 사전에 협의(?)해서 일찌감치 판결문을 내고, 뭣도 모르는 피고와 원고는 그들에게 열심히 돈 갖다 바치며 잘 봐 주십사 손바닥을 비빈다. 하긴 대한민국에 딱 정해진 수수료만 줘서 통하는 데가 어디있나. 심지어 운전면허학원에 가서도 얼마라도 현금을 쥐어주면 말투가 바뀌는데. 그들에게 추가 비용 갖다바치며 잘 봐주십사 하는 시민들보다는 그걸 안주면 재판이 원하는대로 안될 것처럼 구는 변호사, 판사들이 문제다.

   변호사들이 판사에게 돈을 갖다주는 건 일상적인 '관행'이지만, 돈을 받지 않은 판사가 돈을 준 판사를 고발하는 경우는, 불행히도 없다. 왜냐. 돈을 안받는 것만해도 이상한 데, 돈을 주는 변호사를 고발하는 건 또라이 짓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또라이가 되지 않으려면 판사는 돈을 받지 않았어도, 분명 부정의를 멀쩡한 두 눈으로 목격했으면서 해당 변호사를 신고하지 않는다. 판사가 또라이로 낙인 찍히는 순간, 그는 더이상 판사복을 입을 수 없을 뿐더러, 변호사를 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변호사 이 바닥도 서로들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어 따돌림 당하기 십상이다. 판사복 벗은 것도 억울(?)한데, 변호사도 못 해먹으면, 그는 정말 갈 데가 없다. 그냥 삼성 비리 고발해서 새된 김용철 변호사처럼 빵집이나 차려야 한다.  

  변호사와 판사들에게 삼성은 든든한 미래의 직장이다. 삼성을 비판한다는 건 나 빵집 차리겠소 선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김용철 변호사, 노회찬, 심상정 다 달려든 삼성 사건이 이모냥으로 판결나지 않았겠나. 삼성과 김앤장은 대한민국의 절대 강자요, 판검사들의 미래의 희망 직장이다. 내가 몸담아야 할 곳을 어찌 감히 비판할 수 있겠나. 김앤장은 삼성을 변호하고, 삼성은 판검사에게 떡돌리고, 판검사는 삼성을 감싸주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만사 오케이다. 이들은 절대로 서로에 대해 각을 세울 필요가 없다. 바로 '신성가족'에서 추방당하는데 그 누가 감히 그럴 수 있겠나.  그러니 아무리 의식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갈 각오를 하지 않으면 내부 비판을 할 수 없다.

  문제는 다시 한번 사람이다. 법조계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거나 사람이 통째로 바뀌지 않는한 지금의 관행은 절대로 깰 수 없어 보인다. 가장 좋은 방법은 법조계 내부의 누군가가 혹은 어느 집단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외부에서 아무리 비판하고, 들춰내봐야 소용 없다. 자기들끼리 더 똘똘 뭉치기만 한다. 명박이식 소통(?)은 사람 힘 빠지게 만든다. 더 이상 희망조차 가질 수 없게 만든다. 루쉰은 "희망이 있어서 걷는 것이 아니다. 걸을 수 밖에 없으니 걷는 것이고, 걷다보니 길이 생기는 것이다. 걸을 수 있는 동안에는 걸을 따름이다." 라고 말했지만, 걸을 만한 땅이라도 보여야 걷지, 걸을 땅을 무너뜨려버리면 갈 수조차 없지 않겠나. 다행히 신영철 대법관의 잘못된 언행에 대해 소장 판사들이라도 들고 일어났으니 희망이라도 가져본다.  

  "‘거절할 수 없는 관계’란 누군가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내는 순간 마치 모래더미처럼 스르르 무너져 내리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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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6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6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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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년 6월 민주 항쟁. 내겐 아무런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 1학년, 신문이나 뉴스도 안 보던 시절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이에 대해 내게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기억엔 없지만 경찰이었던 아버지는 당시 무척 바빴으리라 생각한다. 자라면서 아버지로부터 경찰 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를 거의 들은 바 없다. 가끔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 시대를 살아오며 경찰로서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원하지 않는 대답이 나올까 두려워 묻지 않는다. 혹시라도 내가 그를 미워하게 될까봐. 다행인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현장을 뛰는 쪽에 소속되지는 않았다는 것.  

  8살, 내가 알고 있는 세계는 집에서 학교로 이어지는 십여분 거리의 골목이 전부였다. 8시면 냉큼 일어나 세수하고 밥먹고 전날 시간표대로 싸두었던 책가방을 들고,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며 집을 나섰고,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방과 후엔 친구의 책가방 뒤를 붙잡고 기차놀이하며 집으로 왔다. 방 안에서 숙제를 하고, 레고를 가지고 놀다, 아버지가 빌려온 비디오를 보다 잠드는 게 전부였다. 내게 87년 6월은 그냥 긴팔 옷에서 반팔 옷으로 갈아입는, 조금 더워지는 시점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이후에도 한참 동안 나는 87년 6월에 관심이 없었다. 그건 그 누구도 내게 그 일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대학에 오고 나서도 87년 6월은 얼핏 들은 것도 같지만,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그게 87년 6월이었는지, 80년 5월이었는지, 60년 4월이었는지 알 수 없는 무참히 피터진 시민, 경찰이 곤봉으로 내려찍고 짓밟는 사진 몇 장을 정말, 얼핏, 본 것이 전부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배웠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당시 역사 교과서에는 87년 6월을 싣지 않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의 중고등학생들은 그나마 암기의 대상으로서 87년 6월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87년 6월은 대학을 졸업한 뒤에나 알게 된 '숨겨진 진실'이다.

  흔히 대학에서 '교양'이라 하여 선배들이 후배들을 강제로 데려다 앉혀놓고 가르치던 때도 아니었고, 운동권이 서서히 대학에서 사라지고 노는 동아리들이 많아지던 때, 딱 주식 동아리나 재테크 동아리 등이 생기기 바로 전에 학교를 다녔다. 시위나 집회는 당연히 나간 경험이 없고, 오히려 보도에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노점상을 보고 왜 이렇게 길을 다 막아놓은거야, 불평불만을 하던,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재수없는 녀석이었다. 불과 십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나는 많이 변했다. 더이상 노점상을 걸어다니기 불편하게 만드는, 치워야 할 것으로 생각지 않고, 철거민을 불법 폭력 집단으로 보지도 않으며, 머리에 빨간 띠 두르고 집단적으로 구호를 외치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거부감을 갖지도 않는다.      

  87년에 그랬듯이 여전히 국가에게 철거민은 국민이 아닌 불법 폭력 분자이고, 사회 구조로 인해 비관 자살하는 이들은 그냥 우울증에 걸린 좀 안쓰러운 시민일 뿐이다. 퇴근길 촛불 한 자루 들고 시청 광장에 모인 이들은 할일 없는 촛불 좀비들이고, 대규모 상경해 가투를 벌이겠다는 화물 연대 노동자들은 그냥 큰 트럭을 가지고 거리를 막고 나라 경제 파탄내는 주범일 뿐이다. 그들은 모두 국민이 아니다. 국가는 그렇게 국가가 하는 일에 반대하는 이들,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 시위와 집회에 참가하는 이들을 국민과 비국민으로 나누고, 비국민을 싹쓸이의 대상으로 치부한다. 이 모든 것에 화가 난다. 불과 1년 사이 우리 사회의 온도는 끓는 점을 향해 가고 있다. 
 
  한숨에 읽어나갔다. 최규석의 6월 항쟁 본편을 읽으며 몸이 뜨거워졌다. 본편도 본편이지만, 이 만화책이 지금 사람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본편이 아닌 부록에 있다. "그래서 어쩌자고?" 시민교육센터 강사로 활동 중인 이한 선생님의 '청소년을 위한 민주주의 강의 교육안'을 만화로 그린 이 부록은, 청소년뿐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든 시민들이 봐야 한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어떤지 알고, 이 현실을 바꿔나가기 위해 공부할 것을 권장한다. 이한과 최규석의 말마따나 "이렇게 민주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최상의 방법이 아닐까." 

  99도씨. 지금 우리의 마음은 99도씨다.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는다. 이 만화 속의 누군가의 말처럼, 그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조금만, 조그만 더 가열하면 우리 가슴은 100도씨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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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6-23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당시엔 파출소도 습격하고 했습니다. 그래야 병력이 분산되니까요. 파출소 앞마다 철망을 가득 가렸고, 그래도 툭하면 불타곤 했지요.

마늘빵 2009-06-23 10:31   좋아요 0 | URL
촛불 집회 게릴라전과 비슷하네요. 경찰들 분산시키려고 여기 번쩍, 저기 번쩍.

머큐리 2009-06-23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수없는 녀석이 이렇게 멋지게 변할 수도 있군요...명박이한테 감사해야 하나?...ㅎㅎ

마늘빵 2009-06-23 10:30   좋아요 0 | URL
깜짝이야! ^^a

2009-06-23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3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06-24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진지하고 충실한 리뷰에요, 아프락사스님. 추천 하나 더해 화제의 서재글로 보냅니다.

마늘빵 2009-06-24 20:52   좋아요 0 | URL
아 부끄럽게... 리뷰를 띄엄띄엄 써서...

무해한모리군 2009-06-24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처럼 올리신 리뷰 잘 읽었습니다.
그렇죠 우리 또래에겐 머리론 알아도 마음으로 느끼기 쉽지 않은 사건이지요.
작가도 그랬기에, 촌스러울 정도로 정공법으로 이 만화를 그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나저나 99도가 아니라 80도쯤 되는듯해 큰일 입니다 --;;

마늘빵 2009-06-24 20:53   좋아요 0 | URL
네, 마음으로도 잘 느끼지 못하고, 머리로도 잘 알지도 못해요. 최규석은 그래도 이 만화를 그리면서 공부라도 했겠지만, 저는 이제 공부를 해야죠.

rumie0201 2010-06-09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어쩌다 들르게 됐는데 진지한 글 반갑네요.
우리세대는 87년 한복판에 섰던 세대들이고,
살면서 잊지 않으려 애쓰며 열심히 살고자 하는데,
아직도 그렇게 살아?란 동기의 말을 들을때 가슴이 싸해지지만,
그래도 뜨겁게 자기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그들이 있기에 세상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100도라....그 뜨거운 삶의 열정을 다시 지피고 싶어집니다.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
마비쉬 룩사나 칸 지음, 이원 옮김 / 바오밥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두 번의 재임시기 동안 세계를 지배하고 흔들었던 부시가 물러나고 미국 역사상 최초로 놀랍게도 흑인인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바마는 대선 당시 관타나모 기지를 폐쇄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주변의 압력 때문인지 관타나모 기지를 폐쇄하지 않았다. 오바마는 이슬람을 향해 화해의 메세지를 보내고, 이슬람은 오바마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만, 손짓과 메세지만 있을 뿐, 사실상 현실적으로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를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다. 여전히 여기 쓰인 관타나모는 진행 중이다.  

  마이애미 대학 로스쿨 여대생인 마바쉬 록사나 칸은 2006년 1월부터 관타나모에 갇힌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보고 듣고 느낀 내용을 담담하게 써나갔다.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의 피를 가진 미국인이다. 태어나기 전, 의사인 그녀의 부모님이 잠시 미국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떠난 것이, 영원히 미국에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외형은 아프가니스탄인이지만, 몸에 뵌 습관이나 사고 방식,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그녀는 철저히 미국인이다. 그녀는 왜 관타나모로 가게 되었고, 관타나모에서 무엇을 보았던 걸까? 

  록사나는 로스쿨에서 법을 공부하는 정의로운 법학도로서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인 일들에 분통을 터뜨렸고, "불평만 하지 말고 직접 뭐라고 해보는 게 어때?"라는 약혼자의 말에 자극받아 통역봉사를 자원했다. 세상은 이렇게 말만 하지 않고 행동하는 자들에 의해 조금씩 변화한다. 언제나 말은 쉽지만 행동은 어려운 법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록사나는 그걸 몸으로 실천에 옮겼고, 이 책은 그 행동의 결과물이다.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누가 갇혀 있을까? 쉽게 상상해볼 수 있듯 테러리스트들도 있겠지만, 그 못지 않게 일반 시민들도 많다는 사실. 따지고보면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테러리스트이고, 누구는 처음부터 일반 시민인 건 아니다. 주어진 상황이 그를 테러리스트로 만들뿐. 실제 폭탄을 들고 뛰어드는 이와 물품을 대는 상인 등 어디까지를 테러리스트라고 볼 건지도 의문이다. 또, 명백히 테러리스트라고 해도 우리가 그들을 마치 짓눌러 죽여야 할 해충인양 취급할 권리도 없다. 누구나 최소한의 인권은 지켜줘야 한다. 다시 한번 묻자. 여기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아프가니스탄의 염소치기, 소아과 의사,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오가는 무역 회사 사장, 관타나모에 수감된 이들이 갇히기 전에 가졌던 직업이다. 미국은 양치기와 의사와 무역 회사 사장을 왜 가두었을까? 서로 관련도 별로 없어보이고, 미국이 딱히 이용할 만한 가치도 없어 보인다. 정치인도 군인도 아닌 이들이 왜 여기에 있을까?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일단 조사를 받기 위해 나섰다가 수년 간 이곳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어떤 경로로, 왜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탈레반을 없앤다는 이유로. 미국은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수천 장의 전단을 살포했고, 전단지엔 어느 누구라도 알 카에다와 탈레반 일원들을 신고하면 5,000달러에서 25,000달러를 준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2006년 아프가니스탄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300달러라고 한다. 이건 분명 로또 이상의 거액이었다. 사람들은 돈에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었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알 카에다 조직원 혹은 탈레반이라고 신고하였다. 이후 미국은 자세한 조사를 하지 않고 그들을 모두 관타나모로 데려갔다. 염소치기와 소아과 의사와 무역 회사 사장은 이렇게 순식간에 테러리스트로 둔갑했다.  

  이들은 관타나모에 와서도 왜 갇혀있는지 설명을 들은 바도 없고, 재판조차 받을 수 없었다. 어쩌다 재판이라도 하면, 형식적으로만 재판을 했다뿐, 오히려 재판을 안하니만 못한 결과를 얻었다. 한 번 재판을 하고나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회를 박탈 당하고, 영원한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히며 이곳에서 죽어가는 것이 그들에게 남은 운명이다. 부모와 아내와 자식은 그들이 관타나모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멀리서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관타나모에 수감되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기뻐한다. 적어도 어디에 있는지, 살아있는지는 알게 되었으니까. 현실이 이렇다.  

  록사나의 인터뷰와 방문 일지가 <워싱턴포스트>에 커버스토리로 게재되면서 미국은 록사나의 출입을 한때 막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라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의외로 록사나에게 몇몇 주의만을 주고서 여전히 방문을 허가해줬다. 록사나는 규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그곳에서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계속 글로 썼다. 미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관타나모의 실상을 알게 되었고, 위에서 언급한 일부 수감자들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수년간 그들이 그곳에서 당한 강간과 폭력 등 수치스러운 일들에 문제제기하지 않고, 조용히 돌아가게 된 것만으로 감사한다. 다시 부모 형제, 처 자식과 만난 것만으로도 신에게 감사한다. 

  록사나는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화도 났겠지만, 록사나는 그곳에서 경험한 바를 담담히 기술해 수많은 미국인들이 알 수 있도록 했다. 록사나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고, 워싱턴포스트는 언론이 해야 할 제 역할을 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록사나의 책을 이렇게 읽을 수 있고, 관타나모의 현실을 정확히 알 수 있다. 록사나와 워싱턴포스트가 제 할 일을 다 했다면, 이제 남은 것은 많은 이들의 분노와 행동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관타나모의 현실을 알리고, 미국 정부가 외치는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한국 땅에도 관타나모만큼이나(관타나모보다) - 관타나모는 적어도 순수 미국인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 끔찍한 국가보안법이 있지만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에 없애지 못했다. 오바마가 지금 주저하고 있지만, 오바마 시절이 아니라면 관타나모는 폐쇄하기 힘들 것이다. 미국의 관타나모 폐쇄를 위해 당장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 여러 곳에 관타나모의 현실을 알리는 것 외에는 - 오바마를 대통령 자리에 앉힌 미국인들이 관타나모 폐쇄에도 일조하길 희망할 뿐이다. 길 한복판에서 신부가 말 그대로 짓밟히고 사복 경찰이 나타나 아무 말도 없이 순식간에 사람을 연행하는 대한민국 사회보다는 희망을 가져봐도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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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9-06-22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 관타나모를 배경으로 한 스토리를 읽으면서..이 책이 매우 궁금했더랍니다. 꼼꼼한 리뷰에 감사.

마늘빵 2009-06-22 23:42   좋아요 0 | URL
아프가니스탄계 미국 여성의 눈으로 담담하게 서술해나갔습니다. 아무래도 워싱턴포스트지에 연재되는 글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감정적으로 쓰기보다는 침착하게 보고 느낀 바를 옮겨놨기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6-25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이 사회문제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쓰면 이런 식으로 담담하게 잘 쓰실텐데 ^^
요즘 리뷰 러쉬군요 ㅎㅎ

마늘빵 2009-06-25 20:48   좋아요 0 | URL
리뷰는 한번 쓰면 계속 쓰게 되고, 한번 안쓰면 계속 안쓰게 돼요. 이게 머리가 '리뷰 모드'가 되면 그 다음 리뷰도 그냥 자연스럽게 따라오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