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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논리학 - 말과 글을 단련하는 10가지 논리도구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김용규는 나에겐 '반드시 사야하는 필자' 리스트에 올라 있는 철학자다. 그의 책을 다 본건 아니지만 몇몇 책을 접해본 뒤로 새 책이 나오는 족족 돈 아끼지 않고 구입하고 있고, 그가 쓰는 한겨레 신문 칼럼 또한 빠짐없이 체크하고 있다. 이쯤되면 그의 팬이라고 해도 괜찮을까. 김용규가 통조림 시리즈 네 권을 통해서 윤리학과 인식론을 쉽게 풀어 설명해주었다면 <설득의 논리학>은 '작업'의 대상을 논리학으로 삼은 책이다. 이로써 철학자 김용규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아주 오래된 고전적인 철학부터 최근의 사조까지를 다 다룬다. 그의 책을 읽으며 재미도 느끼고, 최근의 철학까지 접하는 기회를 얻는다.
이 책의 제목과 기획은 다분히 출판계의 흐름을 탄 것으로 보인다. 글쓰기와 말하기 위주의 실용서적들이 한참 유행했었고, 이 책은 대놓고 실용서를 표방하지 않음과 동시에 '설득'이라는 유행의 흐름을 타고, 동시에 인문학 독자들까지 끌어들이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곧 실용서의 독자들과 인문학의 독자들 어느 누구도 제대로 잡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책은 결과적으로 양자 모두의 지갑을 털었지만, 실용서 독자에겐 실망을, 인문학 독자들에겐 2% 부족한 만족감을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책의 제목인 '설득의 논리학'에서 방점은 '설득'이 아니라 '논리학'에 찍힌다. 설득은 논리학을 말하기 위한, 이용해먹기 위한 눈길끌기 정도의 역할을 담당한다. 사실상 이 책을 읽은 뒤에 누군가를 설득하는 능력이 길러진다고 보긴 힘들고, 곧바로 써먹기에는 포크로 찍어 바로 먹기 좋게 썰어주는 센스가 부족했다. 그리고 요리를 먹기 좋게 꾸미거나 포장하려는 의도는 애초에 없었던거 같다. 철학자 김용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논리학이었다. 단 그것을 재밌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설득의 논리학>은 기존의 논리학 입문서나 논리학 실용서들과는 그 성격이 많이 다르다. 대학 교재로 쓰이는 논리학 서적같이 구체적이고 세세한 이론을 나열해놓고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실용서처럼 쉽고 간편하게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지도 않았다. 논리학에 관한한 온갖 철학자들과 이론이 등장해 다소 정신없기도 하다. 또한 기존에 논리학을 전혀 접해보지 않은 독자가 읽기엔 난해한 기호논리학 기호들이 별다른 설명없이 불필요하게 등장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책과 영화, 체험으로부터 나온 풍부한 예시와 맛깔난 설명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베이컨, 비트겐슈타인, 파스칼, 쇼펜하우어, 포퍼, 카르납, 퍼스, 한비자 등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논리학에 관한 핵심적인 철학자들을 모두 초대해놓고 간략하게 살펴보며, 그 사이사이에 재밌는 우화와 추리소설, 영화 , 고전 등을 끼워넣는다. 논리학 이론 위주의 책이 아닌 철학의 한 분과인 '논리학'에 몸담았던 철학자들의 "축약된 논리학사"정도로 보면 되겠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에서 배웠던 논리학 입문서에서는 보지 못했던 철학자와 이론도 접할 수 있어 다른 책(포퍼, 로티,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더 찾아보고 싶어졌고, 그간 알고 있던 이론들은 재미난 예시와 설명과 더불어 읽으며 확인하는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