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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예보: 수고인류의 시간 ㅣ 시대예보
송길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6년 9월
평점 :
시대예보: 수고인류의 시간
직접 하고, 발행하고, 이름을 거는 사람들
송길영의 '시대예보' 시리즈 네 번째 책입니다. 『핵개인의 시대』, 『호명사회』, 『경량문명의 탄생』에 이어 이번에 내놓은 단어는 '수고인류'입니다. 앞선 책이 가벼워진 조직과 그 안의 개인을 그렸다면, 이 책은 가벼워진 세계에서 사람이 무엇으로 자기 가치를 증명하는지를 묻습니다. 저자의 답은 수고입니다. 다만 그 수고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생'과 다릅니다.
헛수고에서 출발하다
저자는 한 유튜버의 실패담으로 이야기를 엽니다. 공공기관의 의뢰를 받아 만든 유튜브가 망한 사연입니다. "모두가 엄청난 고생을 했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생은 '헛수고'로 소진됩니다." 저자는 이를 '선한 엇갈림'이라고 부릅니다. 의도가 좋고 노력이 성실해도 본래 목적을 잊으면 결과는 엉뚱한 곳으로 흐릅니다.
수고인류는 희망만 담은 단어가 아닙니다. 저자는 이 말이 "행위와 노동의 진정한 가치를 새롭게 실현해 나갈 수 있다는 희망과, 사회 변화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한다는 우려, 그 명과 암을 동시에 담고 있는 관측"이라고 밝힙니다. 또 수고인류를 "AI 전환으로 인해 기업에서 떠밀려 나갈 수많은 구성원들을 위한 지침"이라고도 말합니다.
사본인간에서 원본인간으로
이 책의 핵심 구도는 사본인간과 원본인간입니다. 산업화와 분업의 시대에 "예전 원본이었던 장인은 사본의 직장인으로 복사되었습니다." 관리자는 일을 설계하고, 대행자와 조력자가 그 일을 나눠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AI가 대행과 조력의 자리를 빠르게 대신하면서 "관리자가 곧 실행자가 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했던 일을 AI 도구로 직접 해내는 사람, 송길영은 이들을 원본인간이라고 부릅니다.
저자는 이 변화를 분업의 되감기로 설명합니다. "여러 명의 손으로 잘게 흩어졌던 공정들은 다시 한 사람의 손으로 모입니다. 설계와 실행과 검수가 여러 사람에게 분리되어 실행되던 것이, 한 명의 원본인간과 그를 돕는 지능 개체 간의 협업으로 완결됩니다." 사본은 무한히 복제할 수 있지만 원본을 설계하고 보증하는 사람은 하나뿐입니다. 그래서 복제가 쉬워질수록 판단하고 책임지는 개인의 값은 오히려 올라갑니다.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가가 아니다
수고라는 말에는 고통이 따라붙습니다. 송길영도 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수고인류는 "편리함을 거부하고 일부러 고생을 자처하는 인간은 아닙니다." 이들은 "불필요한 고생은 기술에 기꺼이 넘기되, 자신이 의미 있다고 판단한 일에는 책임과 수고를 스스로 짊어지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수고인류의 반대편에는 누가 있을까요. 저자는 이를 가짜 수고나 헛수고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부르면 그들이 남긴 노력 전체를 깎아내리게 된다고 봅니다. 대신 두 가지 상태를 듭니다. 왜 하는지 모른 채 절차와 형식만 되풀이하는 '형식적 공전', 그리고 거대한 피라미드의 부품으로 익명으로 기능하는 '이름이 사라진 노동'입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기준은 네 가지 질문으로 정리됩니다. "무엇을 자신의 일로 선택했는가, 그것을 얼마나 직접 수행했는가, 실패와 시행착오를 얼마나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았는가, 그리고 그 결과가 자신의 이름과 의미로 쌓여가고 있는가." 노동 시간이나 고생의 양은 이 목록에 없습니다. 자동화가 수많은 수고를 덜어내는 시대이기에, 사람이 스스로 골라 감내하는 수고가 더 또렷하게 보인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입니다.
딸깍의 시대, 숙련은 어디서 오는가
AI에 프롬프트를 넣고 버튼을 누르면 몇 초 만에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옵니다. 저자는 이 즉시성을 가리키는 '딸깍'이라는 말에 주목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프롬프트를 넣으면 비슷한 수준의 결과가 나옵니다. 그 안에는 아직 미숙해 실패한 어제도, 실패를 딛고 다시 시도한 오늘도, 그리고 꾸준히 성장해 좀 더 완숙해질 내일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딸깍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반면 숙련은 "오직 겪어야 할 시간을 온전히 다 겪어내야만 비로소 그 무늬가 새겨집니다."
저자는 여기서 도제의 붕괴를 걱정합니다. 도제에는 명시적 지식뿐만 아니라 암묵적 지식을 전하는 기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AI가 누군가를 돕는 업무를 지우면서 그 통로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이미 능력을 갖춘 이에게 AI는 더없이 좋은 도구이지만, 아직 기초를 쌓지 못한 이에게는 성장의 사다리를 치우는 유혹이 됩니다."
저자가 인용하는 한 문장이 이 문제를 압축합니다. "생각은 외주화할 수 있어도, 이해는 외주화할 수 없다." AI가 대신 생각해 줄 수는 있어도, 그 결과를 검사하고 보증하려면 스스로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원본인간이 "전체 과정상의 오류를 검사하고, 최종 산출물에 대해서 보증"할 수 있는 이유도 과정의 원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직접 하고, 발행하고, 이름을 건다
송길영은 수고인류가 되기 위한 원칙 세 가지를 내놓습니다. 직접 합니다. 발행합니다. 이름을 겁니다. 첫째는 쪼개진 분업을 거슬러 처음부터 끝까지 해내는 역량입니다. 둘째는 만든 것을 세상에 내놓아 검증받는 일입니다. 셋째는 그 성취를 자기 이름 아래 남기는 일입니다.
발행에 대한 저자의 기준은 엄격합니다. 만든 것을 혼자 안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발행해서 역량을 검증받아야 정체성을 공인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아무것이나 올린다고 발행이 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의 글을 필사하거나 사적인 일기를 매일 써서 올리는 챌린지와 같이, 자신의 정체성과 고민을 담지 않고 온라인에 게재하는 것이 발행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족한 시작이라도 결과를 내고, 피드백을 받고, 고쳐 나가는 과정 전체가 발행입니다.
이름은 혼자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저자는 수고의 가치가 그것을 들인 사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 수고를 알아보는 다른 사람이 나타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래서 수고인류의 시대에 필요한 능력은 두 가지입니다. 자신의 수고를 깊게 만드는 능력, 그리고 다른 사람의 수고의 두께를 알아보는 능력입니다.
모두가 원본인간이 될 수 있을까
읽다 보면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원본인간이 될 수 있을까? 저자 스스로도 "기회는 만인에게 열리지만, 그 정점의 위치는 여전히 소수의 몫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씁니다. "소수의 원본 인간이 전체 큰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새로운 협업의 방식"도 예고합니다. 그렇다면 원본인간이 되지 못한 다수는 어디로 가는가. 저자는 이 책을 "기업에서 떠밀려 나갈 수많은 구성원들을 위한 지침"이라고 했지만, 그 지침은 대부분 개인의 각오에 머뭅니다. 조직에 있는 동안 '월급 루팡'의 유혹에 굴복하지 말고 홀로 서는 연습을 하라고 합니다. 개인이 각성하고 깨닫고 자기쇄신을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원본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수고경제가 성립하는 조건도 따져 볼 만합니다. 저자는 최저가 경쟁의 출발이 "최저가를 원하는 소비자"라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수고경제는 바로 그 소비자가 수고를 알아보고 값을 치르는 소비자로 바뀌어야 굴러갑니다. 저자가 든 환대의 사례도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지고 있습니다"라는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수고에 값을 치를 여유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서 수고경제는 어떻게 작동할까요.
배움의 비용도 같은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저자는 새로운 도제가 "수혜자가 직접 비용을 내는 식으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라고 예측합니다. 사다리가 치워진 자리에 유료 사다리가 놓인다면, 숙련의 기회는 지불 능력에 따라 차등됩니다. 저자도 조직 차원에서는 "결정할 권한은 주지 않은 채 주도성을 요구하고, 실패하면 책임을 묻는 구조"를 비판합니다. 같은 질문을 사회 전체로 넓히면, '개인에게 수고를 요구하기 전에 수고할 조건을 누가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쓰는 인사입니다. 저자는 아무도 시키지 않은 한 걸음을 내디딘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당신의 수고에는 이제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회사의 명함도, 부모의 후광도 아닌 오직 당신의 손끝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서명을 마주한 사람들이 "위가 아니라 나란히 선 자리에서" 이렇게 화답할 것이라고 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퇴근길에 습관처럼 주고받던 이 말을 저자는 인정의 언어로 바꿉니다. 수고는 고생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누군가 알아봐 줄 때 완성되는 가치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 인사를 건넬 여유와 그 인사를 받을 기회가 모두에게 고르게 돌아갈지는 개인의 숙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