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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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 흐려지면 사람은 반드시 병든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게 팩트다.- P39

오랜 경력의 인부들도 힘들어하는 그랜드 피아노를 혼자서 옮기는 전문 이사꾼이 있단다. 피아노의 어느 지점에 집중적으로 힘을 모아야 피아노가 중심을 잃지 않고 들리는지를 몸으로 익힌 사람이다. 이는 피아노의 구조와 무게 중심을 오랜 경험을 통해 몸으로 체득해서 가능한 일이다.
그랜드 피아노를 혼자서 들어올리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철옹성 같기도 하고 안개 같기도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정확한 한 지점도 그랜드 피아노처럼 분명히 존재한다. 그걸 알면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 지점이 바로 한 개별적 존재로서 그 사람의 고유한 ‘자기’다.- P46

심리적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어지지 않고 계속 공급받아야 하는 산소 같은 것이 있다. ‘당신이 옳다’는 확인이다. 이 공급이 끊기면 심리적 생명도 서서히 꺼져간다.- P48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옿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저 사람은 지금 내가 산소가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시키는 인증 작업일 뿐이다. 호흡이 가빠 산소 호흡기가 필요한 사람에게 양념치킨을 시켜준다면 고마운 일도 아니고 도움이 될 리도 없다.
- P50

내 상처가 ‘나’가 아니라 내 상처에 대한 나의 느낌과 태도가 더 ‘나’라는 말이다.
내 느낌이나 감정은 내 존재로 들어가는 문이다. 느낌을 통해 사람은 진솔한 자기 존재를 만날 수 있다. 느낌을 통해 사람은 자기 존재에 더 밀착할 수 있다. 느낌에 민감해지면 액세서리나 스펙 차원의 ‘나’가 아니라 존재 차원의 ‘나’를 더 수월하게 만날 수 있다. ‘나’가 또렷해져야 그 다음부터 비로소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P105

누군가 고통과 상처, 갈등을 이야기할 때는 ‘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화가 시작된다. 충조평판은 고통에 빠진 사람의 상황에서 고통은 소거하고 상황만 인식할 때 나오는 말이다. 고통 속 상황에서 고통을 소거하면 그 상황에 대한 팩트 대부분이 유실된다. 그건 이미 팩트가 아니다. 모르고 하는 말이 도움이 될 리 없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안다고 확신하며 기어이 던지는 말은 비수일 뿐이다.- P106

사람의 감정은 항상 옳다. 사람을 죽이거나 부수고 싶어도 그 마음은 옳다. 그 마음이 옳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기만 하면 부술 마음도, 죽이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다. 비로소 분노의 지옥에서 빠져 나온다.
만약 그녀가 실제로 부수고 누군가를 해코지했다면 그래도 옳은가. 자해하는 행동을 했다면 그래도 옳은가. 사람의 마음은 항상 옳으니 그녀의 파괴적 행동과 판단도 옳은가. 아니다. 사람의 감정은 늘 옳지만 그에 따른 행동까지 옳은 건 아니다. 별개다.- P167

모든 사람과 원만하게 지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에게 공감적인 사람도 불가능하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공감자가 아니라 혹독한 감정 노동으로 웃으며 스러지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 P170

자신의 경계가 뚫려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내가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내가 타인의 경계를 침범해서 마구 짓밟고 훼손하고 있으면서도 그걸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사랑해서 그랬다는 등 진심을 몰라줘서 답답하다는 등 자신이 피해자인 줄 착각하는 경우도 흔하다. 본인이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사람 사이의 경계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다. 사람 사이의 경계를 지킬 수 있으려면 경계를 인식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P178

상대방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는 경계를 침범하는 행위다. 주권이 훼손되면 사람은 모욕감, 모멸감, 수치심과 함께 그로 인한 분노가 생긴다. 이런 감정들이 올라온다면 내 경계가 침범당하고 있다는 신호다.- P179

사랑 욕구가 일생 동안 쉬지 않고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피폐해지지 않고 살 수 있다. 차의 성능이 좋아져도 휘발유나 전기 등의 동력 없이는 1밀리미터도 움직일 수 없다. 몸이 산소와 음식이라는 동력원으로 움직이듯 마음은 사랑 욕구가 채워져야 움직인다. 사랑과 인정 없이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나이, 지식, 경륜, 성찰이 아무리 깊은 사람도 사랑을 받지 못하면 마음이 뒤틀린다. 그가 가진 경륜이나 지식, 성찰도 무용지물이 된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일종의 법칙이다.- P222

사랑하는 사람들일수록 공감에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사람은 더 많이 오해하고 실망하고 그렇게 서로를 상처투성이로 만든다. 서로에 대한 정서적 욕구, 욕망이 더 많아서 그렇다.
옆집 사는 이웃에게는 친절하고 배려심 있게 대해도 내 배우자에게 그렇게 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 어렵다. 남에게는 특별한 기대나 개인적 욕망이 덜해서다. 그러나 내 배우자나 가족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로부터 받고 싶은 나의 개별적 욕구와 욕망이 있다. 그 욕구만큼이나 좌절과 결핍이 쌓인다. 그래서 배우자나 가족에겐 너그럽기가 더 어렵다.- P226

비가 바람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밀어붙여 나는 퍼부을 테니.’
-로버트 프로스트, ‘쓰러져 있다’ 중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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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
김하나.황선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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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온도와 습도를 가진 기후대처럼, 사람은 같이 사는 사람을 둘러싼 총체적 환경이 된다.- P26

어떤 차이는 이해의 영역 밖에 존재한다. (중략) 사람이 같이 살아가는 데 있어 꼭 같은 걸 좋아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을 이해한다고 해서 꼭 가까워지지 않듯,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곁에 두며 같이 살아갈 수 있다. 자신과 다르다 해서 이상하게 바라보거나 평가 내리지 않는 건 공존의 첫 단계다.- P34

서로 굳건하게 다르다고 생각했던 차이의 테두리는 함께 살면서 부딪쳐 깎여나가기도 하고 서로를 침범하며 약간은 형질 변화가 일어난다.
다른 사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같이 생활하는 일은 여러모로 가르침을 준다. 세상에는 나와 아주 다른 성향과 선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내던 나의 성격과 특질의 도드라진 부분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큰 배움은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도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 P35

20대 때의 나, 그러니까 때가 되면 밥을 먹듯, 졸업하면 취직하듯 결혼도 그렇게 하는 거라 믿었던 예전의 나 같은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그들의 특징은 자신의 성격이 결혼 생활에 잘 맞는지 혹은 자신이 살고 싶은 방식이 정말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생활이 맞는지 고민해보지 않는다는 거다.- P49

사람은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지만 자신의 세계에 누군가를 들이기로 결정한 이상은, 서로의 감정과 안녕을 살피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우고, 곧 화해하고 다시 싸운다. 반복해서 용서했다가 또 실망하지만 여전히 큰 기대를 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준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지는 교전 상태가, 전혀 싸우지 않을 때의 허약한 평화보다 훨씬 건강함을 나는 안다.- P114

사실 가장 든든한 건 이 컨설턴트가 그 어떤 경우에도 보여주는 나에 대한 믿음이다. 내가 충분히 능력이 있고, 성실한 품성을 지녔고, 전력을 다해 스스로를 발전시키려 한다는 그런 믿음은 아주 가끔 내 자존감이 쪼그라들 때조차도 티 없이 단단해서, 계속해나갈 힘을 준다. - P177

타인이라는 존재는 서로를 필연적으로 귀찮게 하게 마련이며 가끔은 타이어 파손으로 인한 항공편 지연같은 예측 불가능한 사고를 만들기도 한다. 동거인이 없는 일주일 동안 내 생활은 아주 매끄럽고 여유로웠으며 효율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상실은, 웃을 일이 사라졌다는 거다. (중략) 살면서 쌓이는 스트레스와 긴장, 걱정을 해소시켜주는 건 대단한 뭔가가 아니라 사소한 장난, 시시콜콜한 농담,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중략) 누구나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만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 쓸모없고 시시한 말을 서로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를 한 사람쯤은 갖고 싶은 것이다.-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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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S - EDITOR (잡스 - 에디터) - 에디터 :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 잡스 시리즈 1
매거진 B 편집부 지음 / REFERENCE BY B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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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가 어떤 사람이 만들어낸 상징적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그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은 실체에 가깝고, 우리가 그 사람을 조명하는 것은 본질로 한번 더 들어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브랜드의 이면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어떤 사람의 일, 직업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른 차원의 브랜드 이야기일 겁니다.(조수용)- P13

세상의 많은 창의적인 일들이 직업적 사고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전하고자 합니다. ‘어떤 직업을 가져야할까?’에 대한 답이라기보다는 ‘내 삶에서 어떤 직업적 사고를 취할 수 있을까?’에 대한 가이드가 될 수 있도록요.(조수용)- P15

직업이란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 즉 말 그대로 무엇을 위해 하루하루를 사는지 하는 정체성에 가깝다고 봅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인정이라는 사회적 효용의 관점에서 직업을 볼 수도 있고, 누군가가 세운 룰에 따라 직업이 규정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나 자신의 존재 의미에 가깝다고 저는 생각해요.(조수용)- P19

무엇 때문에 내가 이것을 하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라고 하면, 보통은 돈을 벌어서 먹고살아야 하니까라고 대답할 것 같은데요. 세상 속에서 내 역할은 이거다라고 존재의 의미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건강한 삶이 가능하고 회사 안에서든 밖에서든 그렇게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잘돼요.(조수용)- P22

에디터는 일반적으로 다양한 정보와 데이터를 수집해, 그중에서 전달할 가치가 있는 주제를 선별하고 그 주제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소재와 도구를 조합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을 합니다. 글과 이미지, 글과 소리를 결합하기도 하고 취재원의 음성과 객관적 사실, 에디터의 해석을 엮어서 매체의 목소리를 만들거나 사진가의 시선을 매체의 시선으로 바꾸기도 하죠. 때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에 뛰어들기도 하지만 대개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선별하고 조합하는 일의 연속입니다.(조수용)- P25

전 에디팅이 곧 크레에이티브와 같은 레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보통 창조한다, create 라는 것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걸로 많이 생각을 하는데 진짜 크리에이티브는 에디팅이라는 행위를 통해 나오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제 관점에서는 에디터=크리에이터라고 볼 수도 있어요.(조수용)- P27

기존의 ‘에디터’ 개념이 오늘날에는 ‘큐레이터’에 가까워지고 있어요.(재러미 랭미드)- P45

콘텐츠를 만들고 편집하는 일뿐 아니라 다른 출처에서 만들어지는 콘텐츠를 큐레이팅 하는 것까지도 에디터의 역할에 포함되는 중이죠. 에디터는 이야기를 발굴하고 공유하며, 그것이 사실에 근거한 정보인지 확인하고, 독자와 팔로워에게 해당 정보가 의제를 가지는지 여부를 알려야 합니다. 에디터는 콘텐츠의 ‘가이드’나 ‘양치기’라고 표현할 수 있어요.(재러미 랭미드)- P45

기본적으로 이야기꾼으로서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모아 큐레이팅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이고요. 미스터포터에서는 콘텐츠를 제작할 때 세 단어를 늘 염두에 둡니다. (이전 인터뷰에도 언급했지만) 정보를 알리고(inform), 마음을 움직이고(inspire), 보는 사람을 즐겁게(entertain) 해야 합니다.(재러미 랭미드)- P46

콘텐츠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왜’ 만들어져야 하는지 모두가 수긍하고 동의해야 합니다.(재러미 랭미드)- P55

호기심은 에디터의 필수 자질이에요. 호기심이 없으면 새로운 걸 발견할 수 없으니까요.(재러미 랭미드)- P62

에디터란 다양한 것을 모으고 또 모아서, 그 안에서 좋은 정보를 골라 정리하고, 알기 쉽게 전달하는 직업입니다. 동시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주어진 기획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찾아내고 팀을 만드는 능력도 필요하고요. 0에서 1을 만드는 게 아니라, 1을 10으로 만드는 것이 에디터죠.(니시다 젠타)- P254

에디터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호기심을 남에게 전가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본인의 취향과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쓸데없는 걸 잔뜩 그러모을 수 있는 인내력과 집중력이 필요하죠. 여기에서 말하는 ‘모은다’는 행위는 단순한 수집을 넘어, 최대한 많은 것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많이 알아야 그 안에서 중요한 것만 골라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이 알수록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흥미로운 이야기인지, 틀린 점은 없는지 판단하는 기준이 늘어나고요. 많이 공부하고, 사방팔방으로 손을 뻗어 ‘잡식’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니시다 젠타)- P255

요즘 인터넷에서 남을 깎아내리는 말로 자신의 위치를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보가 많이 보입니다. 권위가 있거나, 인기가 많은 사람을 비판하면서 잠깐이나마 우월감을 느끼는 거겠죠. 그런 못난 마음에 미래란 없습니다.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에게는 지루할 틈이 없거든요. 동시에 지루한 사람만큼 이 세상에서 지루한 존재도 없습니다.(니시다 젠타)-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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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칼이 될 때 -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홍성수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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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는 그냥 감정적으로 싫은 것을 넘어서 어떤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차별하고 배제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P24

우에노 치즈코의 정의에 따르면, 미소지니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결코 인정하지 않는, 여성의 객체화, 타자화,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여성 멸시”를 뜻한다. 즉 미소지니는 비교적 넓은 범위의 여성차별을 뜻하는데, 이를 ‘여성혐오’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P25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소수자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을 리는 없다. 대개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자연스럽게 학습된다. “번식 방식을 보면 여성은 태생적으로 종속된 존재다.”(아리스토텔레스), “카고는 나병환자의 후손으로서 나병 보유자다.”, “아리아인이 인종적으로 표준이다.”(고비노와 골턴)라는 식의 그럴듯한 설명이 붙으면서 그것은 어느 순간 사실로 둔갑한다. 별 근거가 없어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P29

혐오표현이란 “소수자에 대한 편견 또는 차별을 확산시키거나 조장하는 행위 또는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해 그들이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 모욕, 위협하거나 그들에 대한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 정도로 그 개념을 정의해볼 수 있다.- P31

핵심은 남혐이나 개독이라는 표현이 소수자 혐오의 경우처럼 ‘차별’을 재생산하고 있는지의 여부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남성이나 기독교도와 같은 다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은 성립하기 어렵다. 소수자들처럼 차별받아온 ‘과거’와 차별받고 있는 ‘현재’와 차별받을 가능성이 있는 ‘미래’라는 맥락이 없기 때문이다.- P43

[괴롭힘] 성별 등을 이유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하여 존엄성을 해치거나 수치심, 모욕감, 두려움을 야기하거나 적대적, 위협적, 모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의 방법으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일체의 행위- P60

모욕형 혐오표현은 이렇게 소수자(개인, 집단)에 대한 멸시, 모욕, 위협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P64

연구자들은 혐오표현의 해악을 대략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혐오표현에 노출된 소수자 개인 또는 집단이 ‘정신적 고통’을 당한다. 둘째, 혐오표현은 누구나 평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공존의 조건’을 파괴한다. 셋째, 혐오표현은 그 자체로 차별이며, 실제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P75

혐오표현이 공존의 조건을 파괴한다면 이것은 헌법적 가치인 ‘인간 존엄’, ‘평등’,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연대성’ 등을 훼손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표현이 이러한 가치들을 파괴한다면 표현의 자유가 우선시될 수는 없다. 만약 혐오표현이 소수자를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배제하고 청중들을 차별과 배제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등의 현실적 해악을 가지고 있다면 평등과 인간 존엄 등 다른 헌법적 가치의 수호를 위해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할 것이다.- P81

“진리의 논박이야말로 거짓에 대한 최선의 가장 확실한 억압”(존 밀턴, “아레오파기티카: 언론 자유의 경전”)- P150

표현의 자유는 원래 ‘소수자’의 권리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수자나 강자는 자유자재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소수자에게 표현의 자유는 자신의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적 가치다.- P150

김치녀로 표상되는 여성에 관한 부정적 인식이 직장에서 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실제 차별을 낳을 가능성이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거꾸로 한남충이라는 말이 남성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확산하고 직장에서 남성들을 차별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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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1-09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로 남을 험담한다면 그게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겠지요.마늘빵님 늦었지만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마늘빵 2020-01-10 09:10   좋아요 0 | URL
네 안녕하세요. 카스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느 사회, 어느 집단에 가도 타인을 깎아내려 자신이 우위에 설 수 있다고 여기는 바보들이 참 많습니다.
 
내가 있는 곳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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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를 옮길 때마다
나는 너무나 큰 슬픔을 느낀다.
추억이나 고통, 즐거움이 있던 곳을 떠날 때
그 슬픔이 더 크지는 않다.
충격을 받을 때마다 출렁이는 단지 속 액체처럼
이동 자체가 날 흔든다.
-이탈로 스베보, “에세이와 흐트러진 페이지”- P5

그러다가 한밤중 언제나 같은 시간에 잠을 깬다.
쥐 죽은 듯한 고요 때문이다.
그 순간 거리를 달리는 차도,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도 없다.
잠이 점점 가늘어지면서 날 떠난다.
누구라도 좋으니 어떤 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P11

나는 나이면서 그렇지 않아요.
떠나지만 늘 이곳에 남아 있어요.- P13

이따금 내가 사는 동네 길거리에서 함께 어떤 이야기, 어쩌면 인생을 같이 만들어나갈 수도 있었을 한 남자를 만난다. - P17

어른이 돼서도, 지금 기억나는 또 다른 중요한 순간이 있다. 새 집으로 이사하기 전에 우리가 사랑을 나눴던, 내 처녀성을 잃었던 방을 청소하던 첫 남자친구와의 일이다. 그는 바닥에, 침대 아래, 안락의자 쿠션 사이에 떨어져 잊고 있던 동전을 버리고 싶어 했다. “아무 가치가 없어, 그걸 주워봐야 아무 소용 없어.”라고 그가 말했다. 그는 몇 년 동안 가구 뒤에 쌓인 먼지 더미와 함께 그 동전들을 모두 쓸어 버렸다. 순간 나는 우리의 관계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가슴 아프지만 명확히 깨달았다. - P102

그가 집까지 날 데려다준다. 난 장 본 봉투를 들고 고맙다고 인사하며 보통 때처럼 그의 양 뺨에 입 맞춘다.
“뭐 다른 것 필요하지 않아, 우리 것 좀 줄까? 반은 저장식품이야.”
“재난이 일어나면 집에서 나가는 게 더 좋아.”
“으음, 그래”
사실이다. 다른 건 필요 없다. 그가 날 위해 마음 한쪽에 간직해둔 애정이면 충분하다.- P117

파라솔들이 켜진 뜨거운 모래사장 위에서 빛나던 오후가 생각난다. 마을 전체가 물속에 있는 것 같았다. - P140

내겐 그녀가 가진 평온이 없었지만 그녀 가까이에 있음으로써 조금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미안하긴 했으나 그 때문에 나 역시 다른 사람의 그늘 속에서 잠이 들었다.
잠을 깼을 때 여자가 누웠던 의자는 비어 있었다. 해가 지고 금방 어둑어둑해진 하늘에 난 우울해졌다.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는 그 그늘은 구출이라기보다 패배였다. 생각해보면 바다는 늘 감수해야 할 혹은 넘어가야 할 야생의 요소, 열망하는 또는 증오하는 요소다.
비교당할 똑똑한 남자 형제나 아름다운 자매가 없음에도 난 그늘에 있지 않도록 조심한다.
이 계절의 냉혹한 그늘 또는 자신 가족의 그늘을 피할 수 없다. 동시에 내겐 누군가의 친절한 그늘이 없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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