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와 통하는 정치학 - 고성국 박사가 들려주는 정치와 민주주의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1
고성국 지음, 배인완 그림 / 철수와영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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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대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광우병 걸린 소를 먹기 싫다며 그들이 직접 거리로 나왔다. 한쪽에서는 좌익반동세력들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고 말하고, 한쪽에서는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 말한다. 나는 후자의 입장이다. 어떤 이는 둘 다 아니고, 소비자가 잘못 산 상품에 대해 리콜 운동을 벌이는 것이라고도 했지만, 그렇게본다 하더라도 희망적이다. 최근 백분토론에 전화참여한 양선생님은 지금 촛불집회와 이명박 대통령 발언 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전 생략) 국민은 소비자인거죠. 국민의 건강과 관련된 서비스를 정부에서 해줘야 하는거죠. (중략) 반대를 하면 어린애들이 몰라서 그런다, 정치세력이 뒤에 있다, 그러면서 국민들을 말 잘 못알아듣는 어린애들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까. (중략) 자동차 회사로 예를 들면요, 우리국민인 소비자가 자동차를 샀단 말입니다. 근데 의자가 좀 불편해요, 그게 고소영 강부자 내각에요, 핸들링이 좀 안좋아요, 영어몰입교육이에요, 근데 참았어요, 엔진이 힘이 없어요, 대운하 정책이에요, 그래도 참았단 말이에요, 근데 이 차가 브레이크가 안들어요, 이게 소고기 문제에요, 소비자 입장에서 지금까지는 그래도 다 참겠는데 더 이상은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하자를 발견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소비자인 국민이 이 자동차를 리콜을 시키려는데 회사에서는 뭘 모르는 소비자가 좋은 상품 모른다고 말을 해왔단 말이죠. (이하 생략)"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CEO(이명박)와 그 직원들(공무원, 한나라당)이 소비자(국민)의 불만을 제대로 듣지 않고, 좋은 상품을 못 알아본다고 큰소리 치는 형국이라는 말인데, 지금 상황을 아주 재밌게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십대들을 소비자의 일부로 본다면 상품이 맘에 안들고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해서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는데 회사는 물대포를 쏘고 강제연행하고 있다. 어제 본 동영상에도 중학생 한 녀석이 경찰에게 맞아 아파하는 모습이 보였다.

  무엇이 십대들을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을까. 학생들이 집회에 나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대로 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렇다. 그들은 학교에서 배운대로 하고 있을 뿐이다. 선생님은 그렇게 가르쳤고, 학생들은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선생님은 배운대로 실천하는 학생들을 잡아들인다고 거리로 나왔고, 학생들은 배운 것을 실천하겠다고 거리로 나왔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잘못된 건 그렇게 가르치고도 하지말라고 말하는 선생들이다. 그리고 이 나라 정부다.  

  <10대와 통하는 정치학>은 철수와영희에서 나온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1권이다. 이 책은 중고생이라면 알고 있을 정치에 관한 기본 상식들을 쉽고 재미나게 친절하게 풀어놓고 있다. 정치가 뭐에요,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 뭐가 다른가요, 좋은 정치 어디서부터 시작하나요, 민주주의가 뭐에요, 민주 정치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어요, 기본권이 뭐에요, 기타 등등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져놓고 저자가 쉽게 답해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책은 전혀 정치적이지 않다. 좌편향도 우편향도 아니며, 객관적인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이 책의 가르침은, 교과서의 그것과도 어긋나지 않아 보이는데, 여기 적혀 있는대로라면 지금의 십대들의 행보는 문제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왜 그들을 문제삼는가. 수능공부해야 할 녀석들이 도서관에 안가고, 야자 빼먹고 거리로 나온 것이 문제인가. 학원다니라고 열심히 벌어다 학원비 매달 채워주고 있는데, 그거 한 번 빼먹어서 문제인건가. 그렇지 않다. 학생들이 두려운게다. 시민단체가 들고일어나면, 노동자가 들고일어나면, 에이 또 이 녀석들이네 하면서 무시하면 되는데, 전혀 나오지도 않던 머리에 피도 안마른 새파란 녀석들이 거리에 나와 "미친소는 너나 쳐드삼" 이러고 있으니 그들이 두려운게다. 그러니 교육청 직원과 교감이 토요일날 자리배치까지 다 짜가면서 거리에 나와있지.  

  이 책의 장점은 매우 친절하고 쉽게 풀어썼다는데 있으며, 단점은 너무 문답형식에 따르려다보니 화면구성이 지루하다는 것이다. 중간중간 만화와 곁들여진 본문 서술이 끝나고 나면 뒤에 문답형식의 장이 계속 나오는데, 계속 단조로운 같은 구성이 반복되어 지루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게 또 이 책의 특징이라면 특징이기도 하다. 알고싶은 질문을 찾아서 해당 부분만 찾아 읽으면 되는. 마치 각종 사이트 고객센터란에 있는 '자주 하는 질문' 코너 같은 느낌이랄까. 왜 그런 코너들 보면 알고 싶은, 궁금한 부분을 깔끔하게 설명해주지 않나.

  청소년용 서적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중고생이 읽을 마땅한 정치입문서격인 책이 없는 차에 이 책은 괜찮은 교과서 역할을 해줄 수 있을 듯 하다. 다 알고 있고, 나도 오래전 배운 내용이지만, 읽으면서 머리 속이 말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이 읽어도 신선한 책이다. 당연한 것을 모르고 살면 피해보게 마련이다. 다음은 보너스 밑줄.

 "집회, 시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권이란다. 양심, 사상의 자유가 기본권으로 인정된다면 그것을 표현하는 집회, 시위, 출판, 언론의 자유 또한 인정되어야 완전한 기본권이 된다는 생각에서란다. 그러므로 시위는 타인에게 심각한 손해를 끼칠 위험성이 없는 한 허용되어야 하는 거란다. 그것이 민주주의 정신이야." 그렇다면 질문.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일까? 답은 각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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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미로 2008-06-19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태에 딱 맞춰서 잘 나온 책 같네요^^ 어린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권해야 겠군요^^

마늘빵 2008-06-19 22:19   좋아요 0 | URL
네 지금 딱 아이들이 읽어야 할 책입니다. 교과서에 뭐라 쓰여있는지 어떻게 배웠는지 기억한다면 그들이 거리로 나오는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죽음의 밥상 - 농장에서 식탁까지, 그 길고 잔인한 여정에 대한 논쟁적 탐험
피터 싱어.짐 메이슨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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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초부터 시작된 광우병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다음주면 한 달이다. 참으로 질기게도 국민의 머슴이기를 자처한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들의 재협상 요구를 무시하고 있고, 단지 소통의 문제로 치환해 그간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내가 잘 알려주마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니들이 잘몰라서 그랬으니깐 내가 알려주겠다고. 근데 내가 보기엔 현실을 잘 파악하고 있는 건 국민들이고, 잘 모르고 - 아니면 모르는 척 하거나 - 있는 건 정부다. 정부가 잘 모르는 내용을 시민단체와 언론, 국민이 제대로 알도록 알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단지 소통의 문제로 치환해 대충 얼버무리겠다는 것에 화가 난다. 

  출판사들은 나날이 새로운 광우병 관련 서적을 내놓고 있다. 벌써 5월 한 달 사이에 신간 소개에서 본 것만 해도 너댓가지는 되는 듯 하다. 그만큼 국가 전체의 관심이 광우병 미국소 수입에 쏠려있다는 것이고, 예전같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출판사들이 속속 번역해 내놓는 관련 서적들은 꽤나 잘 팔리고 있는 듯 하다. 광우병 관련 서적과 함께 또 주목받는 것이 채식주의에 관한 책인데, 가장 적절한 시기에 나온 - 예상하고 때를 맞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 피터 싱어의 <죽음의 밥상>이다. 피터 싱어는 오래전부터 채식주의와 동물해방을 주장해왔고, 많은 이들에게 익히 그의 주장은 알려져있다. 그런 그가 농부 변호사와 함께 내놓은 <죽음의 밥상>은 전혀 철학책 같지 않게 쉽게 왜 우리가 채식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보여준다.

  그래 이것은 철학책이 아니다. 철학자가 쓴 책이라고 다 철학책은 아니다. 매우 쉽다. 왜냐하면 싱어와 메이슨은 최대한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자기들과 같은 채식주의자가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렵게 쓰면 많은 이들을 동참시키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주장과 그에 이어지는 근거'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그들이 직접 농장에서 경험하고 보고 느낀 바를 풀어놓으며 그냥 보여주기만 한다. 보여주는 모습이 많아질수록, 책장이 뒤로 넘어갈수록, 독자는 육식을 혐오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채식주의를 선택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역자 함규진은 이 책의 '옮긴이의 말'에서 자신은 결국 육식을 포기하지 못했음을 고백했지만, 이 책을 읽은 나는 최소한 육식을 피하려는 노력은 하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타인들보다 육식을 '자주' '많이' '다양하게' 즐기지는 않는 것도 어느 정도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나는 고기를 매우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어느 정도 즐기는 사람이기는 했고, 소불고기와 돼지갈비, 소갈비, 소시지 안주 등을 즐겨왔다. 닭은 무슨 기억 때문인지 원래 잘 먹지 않았고, 기껏 먹어봐야 계란과 닭갈비 정도다. 닭도리탕이니 삼계탕이니 양념통닭이니 하는 것들은 나에겐 기피대상이었다. 기타 오리나 개 등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AI 때문이 아니라. 그러니 내가 즐기는 육식은 소와 돼지에 국한되는데 이 책을 읽고 난 뒤로 난 식탁에 오르는 반찬 중 소와 돼지에 관한 품목들에도 젓가락을 대지 않고 있다. 나의 이러한 결단은 '육식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 그랬으면 더 좋겠지만 - 먹거리의 윤리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건 자연의 약육강식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다.  

  피터 싱어는 오래전부터 그렇게 주장해왔다. 윤리의 대상을 인간이 아닌 살아있는 동식물에게까지 적용할 것을. 그것을 생물학적으로 내가 속한 인간종과 가까운 것에서부터 먼 것으로 점차 범위를 넓혀가며 상대적으로 윤리를 적용해가는데 인간, 그리고 인간과 닮은 영장류뿐 아니라 인간과 닮은데라고는 찾아 볼 수 없고, 오래전부터 인간에 의해 먹거리로 간주되어왔던 동물들에게까지도 윤리를 적용해 그들을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개체로서 바라보자는 시각이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육식을 멀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내가 식단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난 육식을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가령 회사에서 다 같이 고기 먹으러 가자고 했을 때 나의 견해를 피력해가며 모두의 식단을 바꾸어버리기엔 너무 피곤하다. 사실 그래야 하겠지만 나의 충분한 의견 피력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나에게 돌아오는 건 별종취급뿐일 것이다.

  싱어는 오히려 이걸 바라고 있다. 이 책을 읽은 이들이 육식을 멀리하기를 바라고, 그런 이들이 늘어나 다 함께 식사를 해야할 때 육식을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 다른 이들에게 설명하고, 그들까지 설득시켜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싱어의 입장에 동의하고 동참하는 나는 친한 이들 사이에서는 그런 견해를 피력할 수 있겠지만, 그 정도로 나를 별종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그러기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내가 육식을 멀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나의 일부 사적 영역에서뿐이지 모든 영역에서 실행할 수는 없음을. 이건 마치 내가 정치적인 이유에서 스타벅스를 가지 않는 것과 같다. 친한 이들에겐 간략히 설명해 함께 있는 이들이 최소한 그 자리에서 가지 않도록 할 수는 있지만, 이런 입장을 피력하기 어려운 이들과 있는데 스타벅스를 가자하면 가지 않을 수는 없는.  

  싱어는 이 책 곳곳에서 우리가 심지어 닭대가리라고 놀리는 그 닭이 그만큼 멍청하지도 않다는 것을, 소나 돼지나 기타 동물들이 인간과 같은 이성을 지니지는 못하지만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가 키우는 강아지가 토실토실하게 살쪘다고 그것을 먹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토실토실하게 살찐 돼지와 소를 맛있게 먹는다. 왜일까. 강아지는 나와 함께 세월을 함께 하며 교감을 나누었지만 소나 돼지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얼굴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먹거리의 대상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정도 차이에서 먹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면, 우리가 먹게 될지도 모르는 소나 돼지를 한번씩 농장에서 보고 오는 건 어떨까. 나중에 소나 돼지를 먹을 때 그 소나 돼지가 떠오르도록. 어쩌면 지금 내가 닭을 먹지 못하는 건 - 계란을 먹게 된 것도 고등학생 시절이었던 거 같은데 - 어릴 적 키운 병아리가 떠오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고양이에게 잡혀 먹혀버린.

  수요가 많으면 공급은 자연히 따라온다. 사람들이 육식을 많이 할수록 소나 돼지나 닭은 더 많이 키워지고, 도살되며,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소나 돼지나 닭은 좁고 더러운 공간에서 생명체가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것들마저 박탈당한 채 한낮 장난감처럼 다루어진다. A4용지 크기도 안되는 공간에 닭들은 부리를 잘린 채 옴싹달싹 못하고 자라며 도살장으로 끌려가고, 돼지는 새끼를 낳고 젖을 드러낸 채 눕혀져 움직이지 못한다. 그들은 서로의 사체로 만들어진 사료를 먹고 자라고, 그렇게 도살된 고기는 우리의 입으로 들어온다.

  AI니 광우병이니 하면서 닭, 오리, 소 등을 잔혹하게 집단학살하는데 그건, 그들이 자초한게 아니라 인간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내몬 것이다. 인간이 비상식적인 사육방식으로 동물을 키우고, 잘 키워지면 죽여서 먹고, 문제가 생기면 목숨을 끊어 파묻어버리는 방식으로, 그들을 대해왔다. 미친소, 미친소 하면서 나도 소에게 참 미안하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미친소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도 한다. 나는 '미친소'라는 말이 우리가 처한 현실을 부각시켜주니까 그렇게 계속 쓰고 있는데, 미안하긴 하다. 소에게. 소가 미친게 아니라 사람이 미쳐서 그렇게 된 건데 말이지.

  우리가 육식을 멀리 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여럿이 있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피해인데, 더 싼 고기를 소비자에게 팔기 위해 월마트 같은 대형 마트에서는 직원 월급을 줄이거나 해고시킴으로써 남아있는 직원들의 노동량을 증가시키고, 그 대신 제품 값을 싸게 매겨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러니 소비자는 싼 고기를 사는게 아니라 해고된 직원들의 임금을 착취하는 셈이다. 이것을 인식하고 싼 고기를 사는 소비자는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달리 다른 선택이 없는 것이 현실이긴 하다.) 많은 대형 마트들이 그렇다.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형 마트에도 나이 많은 아주머니들이 알바로 뛰고 있고, 우리 어머니도 그 중 하나다. 연세가 많으셔서 그나마도 구하기 힘든 형편인데 어떻게 쉬지 않고 옮겨다니면서 일을 계속 하시고 계시다. 월급 정확히 모르지만 100만원이나 될까. 사람에 대한 윤리 문제는 육식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다. 대형마트뿐 아니라 도살장이나 각종 고기 공장도 마찬가지일테니.

  이 책을 읽고나면 당장 내일 아침에 밥상에 오르는 각종 고기성분이 들어간 반찬들이 달라 보일 것이다. 정말 그랬다 나는. 정말 고기성분이 들어간 반찬을 빼면 먹을 게 없을 정도로 고기는 식료품 곳곳에 숨어 들어가 있다. 하다못해 짜장면이나 볶음밥을 먹으려고 해도 그렇고, 미역국을 먹어도 그렇다. 육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다. 그러나 최소한 주재료가 되는 고기반찬들을 멀리함으로써 조금이나마 싱어와 함께 할 수 있다면 나는 그런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참, 싱어는 물고기까지도 윤리의 범주 안에 넣고 있지만, 차마 물고기까지는 내가 어찌 하질 못하겠다. 지금 현실에서 고기 들어간 먹거리를 피하는 것만도 내겐 너무 벅차다. 물고기는 일단 보류하기로 한다. 

  베건 식단은 동물에 대한 기본적인 삶과 윤리뿐 아니라 지구 환경 변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다음 밑줄은 보너스다.  

  "시카고 대학교의 기든 에셸과 파멜라 마틴은 동물성 식품 생산 과정에서 방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을 조사했으며, 전형적인 미국의 식단(그중 28퍼센트가 동물성인)은 같은 양의 칼로리가 포함된 베건 식단에 비해 한 명이 1년에 약 1.5톤의 이산화탄소를 더 배출시킨다는 결과를 얻었다. 대조적으로, 보통의 운전자가 미국의 전형적인 자동차 대신 좀 더 연비가 좋은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바꾸었을 때 1년에 줄일 수 있는 이산화탄소 방출량은 1톤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억제하는 데는 차를 바꾸기보다 베건 식단으로 바꾸는 편이 더 효과적인 것이다.(물론 두 가지 다 하면 더 좋겠지만.)"

p.s. 이 책의 주장은 엄밀히 말하면 피터 싱어와 짐 메이슨 둘 다의 것이지만, 편의상 저자의 이름을 이야기해야 할 때 싱어만을 언급했음을 알린다. 이건 둘 다 언급하기엔 문장이 너무 난삽해지고 길어지기 때문이며, 하나 더, 싱어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싱어를 좋아함)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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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6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6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여우 2008-05-26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리문제 좋은데요, 저는 동물성을 마치 독약보듯하는 시선은 반댑니다.
축산업자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니까 마치 내 밥그릇을 옹호하려는 발언으로
왜곡하시는 분들도 있지만(그들 대부분이 도시 월급 생활자들)
대규모의 공장식 농장은 저도 반댑니다. 그건 사육하는 동물과 인간, 자연생태,
사회적 시스템 모두에게 치명적인 악순환만 거듭하는 결과를 낳아요.
실제로 염소를 2백여마리까지 포화상태로 사육했던 2년전 경험에 의하면
염소출산율에 있어 사산되거나 질병에 걸리는 확률이 훨씬 높았답니다.
사료값을 포함한 원가 생산량이 더 높냐면 감가상각비도 별로 기대할 것은 없었지요.
더불어 제 노동량은 과중한 스트레스와 함께 동물을 그저 하나의 물건으로
인식하는 차원까지 진행되었는데 그걸 감지한 어느 날, 저 자신이 충격을 받았어요.
경제적 이유와 체력적 한계로 소규모의 농장으로 전환된 지금은
염소들의 성장과정은 지극히 안정적이며, 저 역시 마음의 진통을 훨씬 적게 경험합니다.
아무래도 숫자가 적다보니 한 마리 한 마리 애정의 손길이 더 가고
관심폭이 넓어지면서 동물들도 저와의 교감을 충분히 느끼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런 방식의 소규모 농장이라면 지금처럼 육식을 독약먹듯 대하진 않겠지요.
그런데 이 결론은 다들 알고 있는 사안입니다.
문제는 축산업자들에게 다른 현실적인 대안을 제공해서 그들의 생계기반을
어떤 방식으로 형성해 줄것이며, 사회가 어떤 경제시스템으로 순환되어야 하냐는
난제가 있어요. 생산부터, 유통, 산업까지 모두 아우르는 문제죠.
즉, 종합체계를 더듬고 동물농장에 관한 모색을 시도해야한다는 말입니다.
동물성이 단순히 밥상위에 올라가는 음식만 해당된다고 보는 건 아니시겠죠?
동물성은 공산품과, 의약품, 산업의 전반에 걸쳐 관통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축산업의 문제라거나, 정서의 문제, 음식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해요.
어떤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치닫는 채식주의 열풍은
반드시 이 사회 구조에서 한 부분을 또 찌그러뜨릴것입니다.

아프님 리뷰는 논의 대상으로 잘 읽었습니다.
댓글 길게 다는 거 싫은 사람인데 오늘은 뭔 일?ㅎㅎㅎ

마늘빵 2008-05-26 19:42   좋아요 0 | URL
동물성을 독약보는듯한 시선은 아니랍니다. 싱어의 입장은. 동물성이 문제가 아니라 비윤리성이 문제입니다. ^^ 싱어가 반대하는 것 역시 대규모의 비윤리적인 가축사육과 도살이고 그런 면에서 파란여우님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싱어 또한 동물성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가축을 윤리적으로 길러서 윤리적으로 도살하고, 그 고기를 먹는다면 그건 문제될 것이 없을 겁니다. 싱어가 반대하는 것은, 그런 고기가 아니라 그렇지 못한 고기랍니다. 그가 채식주의를 주장하는 것도, 그렇지 못한 고기들을 전제로 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크게는 동물 전체에 적용할 수 있겠지만. 싱어의 채식주의는 아마도 그것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채식을 선택함으로써 - 마치 이러니깐 제가 채식주의자 같습니다 흡 - 문제를 널리 알릴 수 있고, 시정할 수 있다 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파란여우님 이렇게 긴 댓글은 처음 받아봅니다. :)

드팀전 2008-05-26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전 파란여우님 생각에 동의합니다.유기농의 근본적 세계관은 '자연과 병행하는 총체적인 순환론'입니다.마이클 폴란이 잘 정리해 놓았던데 유기농의 3가지 버팀목은 '생산방식-유통방식-소비 방식'의 결합이지요. 의외로 생산방식의 친환경요소만 강조하다보니 나머지 두 기둥을 홀대하는 경향이 아주 높습니다. 곧 리뷰를 올리겠지만...여러모로 한살림운동은 그런 면에서 선구적이고 의미있습니다.아...저는 부산 한살림 회원입지요.^^ 이 참에 홍보라도 좀 합시다.

마늘빵 2008-05-26 19:44   좋아요 0 | URL
마이클 폴란은 누구에요? -_-a 검색들어갑니다. 친환경적 윤리적 환경에서 생산된 동물을 먹는 것에 대해서는 아마도 싱어는 관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가 이 책을 통해서, 그리고 그 전에도 꾸준히 문제제기하고 비판해왔던 것은, 그보다는 비윤리적인 방식의 사육과 도축이었으니까요. 한살림운동은 뭐에요? 처음 듣는건데.

파란여우 2008-05-26 20:45   좋아요 0 | URL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주창하셨던 먹거리 기반 운동입니다.
홈피 한번 들어가 보셔요.

순오기 2008-05-27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탱스투하고 구입했습니다. 꼭 봐야할 책인거 같아서요.

마늘빵 2008-05-27 16:15   좋아요 0 | URL
^^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
하재근 지음 / 포럼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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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에는 진보와 보수와 색깔 없는 모든 국민이 다 동의한다. 그래 불과 이십년전만해도 개천에서 용은 나왔다. 하지만 이제 개천에서는 더 이상 용은 나올 수 없다. 왜 일까. 불과 몇년전에 외고를 졸업한 지인도 동의한다. 더이상 외고엔 공부는 잘하지만 가난한 학생은 갈 수 없다는 것에. 지인은 평준화 반대 입장에 서있지만 더이상 공부 잘하면서 가난한 학생이 외고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엔 동의한다. 사실 '공부 잘하면서 가난한 학생'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공부를 잘하려면 가난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현실이다.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하재근은 444쪽 분량의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을 통해 끊임없이 말한다. 지금 이대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음을. 대한민국의 미래가 지금보다 나아지려면 결국 문제의 해답은 교육에 있고, 입시경쟁이 아닌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서는 고교평준화는 물론 대학평준화까지 이룩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이상적인 교육강국은 프랑스로 보인다. (이 책에선 중부유럽보다는 북부유럽국가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프랑스처럼 파리1, 파리2, 파리3대학 등 이름을 붙이고 - 이름을 이렇게 붙이든 저렇게 붙이든 그건 중요한게 아니고 - 대학 전체를 평준화시키고 학문을 특성화시키길 바란다. 그건 학벌사회를 비판하는 많은 이들이 이미 내놓은 주장이기도 하다.  

  정부는 일류대를 여럿 만들어서 돈 없는 자식도 그곳에 보낼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수많은 특목고와 지방 입시 명문고, 국제고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이미 특목고에 자리잡은 학부모들은 더이상 특목고를 만들기를 거부하고, 아직 특목고에 들어가지 못한 '꿈많은' 학부모들은 더 많이 만들기를 바란다. 어떻게든 제 자식에게 일류딱지를 붙이고 싶어서. 하지만 일류딱지는 그들에게 꿈일 뿐이다. 그들의 자식들 중 다수는 꿈만 꾸다 말 것이고, 운좋은 소수는 많은 특목고 중 한 곳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뿐이다. 일류딱지는 '서울대'딱지를 얻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싸움은 더 치열해진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자살하고, 다수는 정서불안에 시달린다. (실제로 우리나라 다수의 학생들이 정서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부모들이 알지 못할 뿐. 아니면 알면서 모른척하거나.)

  나이를 먹을수록, 학년이 올라갈수록, 싸움은 치열해진다. 싸움이 치열해짐에 따라 금액도 상승한다. 일부는 열의에 넘치지만 쩐이 없어 포기해야 하고, 일부는 쩐이 없음에도 과도하게 베팅하다 파산하고 만다. 처음에 10만원씩 들어가던 돈이 어느새 200만원이 되어있고, 1000만원을 퍼붓는 자신을 발견한다. 미친 짓이다. 가난한 자는 미친 짓에 동참하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깨달았어야했다. 내가 뛰어들 싸움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싸움에 끼어들수밖에 없는 건 다른 자식들 못지 않게 내 자식에게도 좋은 교육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남은 것은 은행잔고와 눈물과 패배감 뿐. 부담없이 쩐을 투입한 승자는 서울대 간판을 획득하며 지배계층으로 올라서고, 부담 팍팍 가지며 쩐을 투입하다 만 패자는 지방사립대 간판을 손에 쥐고 앞으로 살 60년의 인생을 받아들여야 한다. 현실을 부정하지 말자. 이게 현실이다.

  하재근은 이 책의 상당 분량을 교육 이야기보다는 자유주의와 시장 이야기에 할애하고 있다. 처음엔 서론격인 이야기려니 하고 읽었는데 이건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것이다. 언제 교육 이야기가 나오려나 하고 읽는데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러나 처음에 나는 의아해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의 교육 문제는 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가치와 동떨어질수 없고, 시장과 자유주의를 논하지 않고는 교육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은 시장과 자유주의의 일부 영역에 불과하므로.

  이명박이 광우병 쇠고기를 거부하는 국민들을 향해 그런 말을 날렸다. "먹기 싫으면 사먹지마." 이 말에 국민은 분노했으나 저 한마디는 이명박 정부가 지향하고자 하는 사회를 한 눈에 보여주었다. 자유주의. 시장주의. 사 먹을 놈은 사먹고, 사먹기 싫은 놈은 사먹지마라.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과 함께 가자고 한 방법이다. 선택지를 마음껏 열어놓을테니 선택은 니들이 알아서 하라는. 그러니까 교육 역시도 이렇게 많은 선택지를 줄테니 가고픈대로 알아서 골라가라는. 썩을. 그것은 '자유로운 거래'라는 이름으로 미화되어 아름답게(?) 이루어진다. 선택지는 널렸다. 근데 선택할 수가 없으니 문제지. 선택지를 많이 주면 뭐하냐. 서민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 뿐인데. 광우병 걸린 30개월 이상 쇠고기와 지방대, 그리고 앞으로 남은 삼류 인생.

  많은 국민들이 최근 3개월 동안 민주주의의 실종을 말했다. 5공을 넘어 박정희 정권으로까지 회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실종은 어젯밤 강제연행과 폭력사태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사익이 아닌 공익을 추구할 때, 자신의 사적 이익을 버리고 공적 이익을 추구할 때에야 인간 정신은 존엄성의 경지에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에겐 이런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일단 존엄하다고 치고, 악독해질 가능성보단 존엄해질 가능성을 끊임없이 조금씩이라도 높여가는 것이 인간사회의 발달입니다. 오직 이런 사회에서만 민주주의가 가능해집니다." 그래 그런때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현실을 보면 그렇지 않다. 고로 민주주의가 실종되었다고 말하는 건 헛소리가 아니다.

  국가는 국민들이 아무런 걱정없이 잘 살 수 있도록, 그 누구로부터도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불평등하게 살지 않도록, 개인의 자유를 억압받지 않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가 국민에게 해주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국민들 대다수는 매일 같이 애새끼 대학보낼 때까지 들어가는 - 대학 등록금은 차치하고라도 - 비용을 계산하며 한숨쉬고 있다. 이천원짜리 떡볶이 팔아가면서, 새벽까지 택시 운전해가면서, 부잣집 파출부 다니면서, 새벽녁에 일어나 우유배달하면서, 노래방에서 엉덩이 만져지며 애새끼 학원비를 벌고 있다. 왜. 돈이 많이 드니까. 이렇게라도 해야 남들 뒤꽁무니라고 따라가니까. 그게 현실이다. 그게 사실이다.

  나는 적어도 '다양화'만큼은 동의했었다. 다양한 학교를 만들어 학교의 선택지를 늘리는 것에만큼은 적극 동의했었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아이들이 자기 적성대로 학교를 찾아가야 한다고. 그러나 헛된 믿음이었다. 다양한 학교가 만들어져도 아이들은 자기 적성을 따라가지 않는다. 아니 따라가지 '못'한다. 그건 지난 3년간 공교육에 몸담으며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진로선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고 깨달은 바다. 내가 학생으로서 다닌 10여년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선생으로서 다닌 지난 3년간의 현실 이야기다. 선생짓 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이들은 자기 적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들은 자기 적성을 고려해서 학교를 선택할 수 있을 만큼 높은 성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택은 상위 1%에게나 가능하다. 그러니 다양화는 헛소리다.  

  하재근은 대부분의 사회 문제가 학벌을 없앰으로써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건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대학평준화. 그것이 해결방안이다. 정진상이 이미 말한바 있는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그것이 가장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소한의 방법이고, 사립대학들은 그 다음 일이다. 국립대가 평준화되면 사립대는 알아서 따라올 수밖에 없다. 서울대와 제주대, 전주대, 전남대, 경북대, 강원대 등이 공동으로 학생을 뽑고, 학생의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오가게 한다. 이건 하재근의 주장이 아니라 정진상의 주장이다. 하재근의 책엔 큰 그림은 있으나 작은 그림이 없다. 그게 이 책에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이미 나온 해결방안에 그가 동의하고 이 책을 썼다면 같은 주장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결국 우리가 주장해야 할 바는 학벌을 없애달라는 것이다. 과거처럼 박정희식으로 위에서부터 명령해 모든 체제가 뒤바뀔 수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바람직하지도 않다. 하지만, 정부가 교육을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쥐어싸고 학벌없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려고만 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가지고 깔짝댈게 아니라 대학을 손봐야 한다. 대학을 평준화해 아해들이 단지 학점을 어떻게 하면 잘 받을 수 있을까 따위를 고민하지 않고 제대로 학문에 관심갖고 자유롭게 - 자유롭다는 말은 이때 쓰는 것이다 - 공부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졸업도 좀 까다롭게 하고 말이지. 토익 점수 몇 점, 컴퓨터 자격증 뭐 따야만 졸업시킨다는 짓은 좀 하지 말고.

  하재근은 공화국으로 나아가자 한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은 봉건시대로 가는 것이라면서. "봉건시대야말로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자유를 누렸던 시대였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힘에 따라 자유롭게 살 수 있었습니다. 강자는 귀족의 삶을, 약자는 노예의 삶을. 그들 사이에 보편규제는 없었습니다. 그런 규제를 강제할 권력주체도 없었습니다. 완벽하게 분권화된 사회였지요. 각 분권화된 단위마다 강력한 리더십 주체(영주)가 있는 상태, 국가 전체로는 분권화 구조이지만 각 단위별로는 독재체제인 상태. 딱 자유화 개혁히 지금 추진하고 있는 자유시장의 구조입니다.공화국은 이런 질서를 거부해야 합니다. 모두에게 자유를 주면 결국 지배자까지 포함해 모두를 노예로 만들테니까요. 왜냐하면 본래적 의미의 공화국이란 예속당하지 않을 자유뿐만 아니라, 남을 예속시키지 않을 자유까지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견 자유롭게 보이는 지배자들마저 진정한 공화국의 시각에선 모두 노예들일 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노예가 되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막을 수 있다. 연대해야 한다. 연대해 우리의 '머슴'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머슴들에게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 웃기지만 머슴이 주인을 패기도 하는 현실인데.) 주인이 머슴의 노예가 되는 길을 자발적으로 선택하지 않으려면. 주인의 노예화를 막으려면. 학벌을 없애자. 학벌을 얻기 위해 구덩이 속에서 서로 나가겠다고 싸우며 서로를 할퀴지말고, 서로가 밀어주고 당겨주며 따뜻한 햇빛을 보고,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길을 택하자. 시장의 자유가 아닌 진짜 자유의 길을 택하자. "나 하나만의 자유뿐만 아니라 모두의 자유를 염두에 두는 것은, 나의 정신이 나라는 육체적 유한성, 개체성으로부터 해방되어 모두에게 확장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비로소 인간은 자유롭게 됩니다. 부자들이 제 자식만 귀족 만들겠다고 학교 선택권 요구하고, 입시 자율화 요구하는 것은 그들의 정신이 유한성, 개체성, 탐욕이란 감옥에 아직 갇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아무리 부자라 할지라도 그들은 노예입니다."

  "그대는 자유로운가.그렇다면 그대는 행복한 것이다.그대는 행복한가.그렇다해도 나는 그대가 자유로운지 아닌지 모르겠다."(김용석) 그대는 자유롭지 않으면서 그대만 행복한 길을 택하겠는가, 그대와 다른 이가 함께 행복하며 둘 다 자유로운 길을 택하겠는가. 전자라면 난 더이상 그대에게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후자라면 우리 함께 생각해보자. 우리 함께 자유인의 길을 걷자.  

p.s. 전체적으로 신문짜깁기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무턱대고 사면 실망하실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직접 서점에서 열어본 후에 구입하길 권한다. 학벌사회 문제에 깊숙히 들어가기 보다는 신자유주의라는 큰 틀에서 그것을 설명하고 있어, 구체적이지도 깊이있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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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0-03-14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재밌을거 같은데요...강준만의 <서울대의 나라>와 비스무리 할려나요??

마늘빵 2010-03-15 09:40   좋아요 0 | URL
섣불리 구입하시면 실망하실 수도 있는 책입니다. ^^ 저자의 글쓰기 방식에 좀 문제가 있어요. 그렇다고 드러내고자 하는 메세지가 잘못되었다는 건 아닙니다. 너무 본론을 이야기하기 앞서 한참을 에둘러 가는 경향이 있고, 두서없는 말과 반복이 많습니다.
 
책으로 세상을 편집하다 - 기획자노트 릴레이
기획회의 편집부 엮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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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온 동안 책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손에서 놓지 않고 꾸준히 읽고 있다. 책과 가까이 지내다보니 특정 저자에게 반해버려 그가 내놓은 책들을 모조리 사들여 탐독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자 저자에 대한 관심은 출판사에 대한 관심으로, 그리고 이제 출판사에 대한 관심은 편집자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책을 구입할 때 일일히 특정 편집자를 찾아다니며 그가 만든 책을 골라 읽는 건 아니다. 유일하게 그런 편집자가 있다면 휴머니스트의 선완규 주간이랄까.

  나는 꽤 오래전부터 휴머니스트의 팬이었다. 타 출판사 모임에 가서도 대놓고 가장 좋아하는 출판사가 휴머니스트라고 말해왔다. 그땐 선완규 주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었다. 그가 언제부터 휴머니스트에 몸담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책을 좋아하다가 - 그가 책임편집한 책을 애써 찾아 본 건 아니지만 - 속지(?)에 찍힌 그의 이름을 발견했고,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휴머니스트의 책은 신간이 나와도 껍데기 열어보지 않고도 산다. 이 책 괜찮을까 의심스러운데 하면서 오프라인 서점에서 일일히 벗겨(?)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책으로 세상을 편집하다>는 이런 나의 책에 대한 관심, 출판사에 대한 관심, 편집자에 대한 관심에서, 첫 장이 넘어갔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시리즈로 기획한 책 중 하나로 보이는데 - 다른 책으로는 <책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책으로 세상을 움직이다> 가 있다. - 출판사에서 몇 년씩 책밥을 먹어온, 이제는 어느 정도 '책 좀 만들 줄 아는' 중견(?) 편집자들의 '나의 책 만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획회의>라는 출판잡지에 연재된 글을 한데 모아 묶은 것인데, 이 책에 실린 많은 편집자들이 이 글을 시작할 때 어찌 써야할지,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난감해하는 듯한 표정을 엿볼 수 있었다.

  여기 글을 쓴 편집자 중 아는 이는 하나도 없다. 대신 여기 언급된 책들 중 읽은 책은 꽤 있다. 편집자도 모르고, 읽은 책도 없는 독자라면, 이 책이 그다지 재밌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순수하게 막연한 책에 대한 관심만으로도 이 책은 기존의 어떤 책에서도 보여주지 않은 출판 비하인드를 선사해 나름의 재미를 제공해주지만. 독자가 이들과 같이 책을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재밌는 책 에세이'를 넘어설지도 모르겠다. 

  내가 읽은 책들이 이렇게 만들어졌구나, 아 이런 과정을 거치는구나, 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읽은 책들이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그건 아마도 현장에서 책을 직접 만들며 애정을 쏟아부은 '책의 대리모'들이 느끼는 심정이 얼마간이라도 이 글을 통해서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소나무에서 나온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다>를 읽었고,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로서, 느리고 질긴 꼼꼼한 편집자와 저자가 조그만 사무실 공간에서 몇번이고 원고를 거듭 읽으며, 좀 더 좋은 책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책장에 꽂혀있는 '무수히 많은 책들 중 하나' 정도로 치부할 수 없어진다.  

  책 만든 이야기, 꽤나 재밌게 읽었고, 한 권의 책이 탄생하기까지의 보이지 않는 모습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유익했다. 하지만 이런 점은 지적하고 싶다. 출판잡지에 실린 글을 모아 엮은 책이라고는 하지만, 원고를 좀 더 다듬고 보완해 '뒷이야기'뿐 아니라 책과 출판에 대한 그들의 깊이있는 철학까지 체험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물론 이 글 안에도 그들이 책을 대하는, 출판사에서 책밥을 먹으며 생각하고 느낀 점들이 드러나 있지만, 2% 부족했다.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중후하고 무게감있는 표지와 꽤 무거운 책 무게는 그 안에 담긴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다. 내용은 한결 가볍고 짧은 에세이의 엮음이었지만, 책의 물리적, 시각적 무게감은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게 숨어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외형과 내용이 언발런스했달까.  

p.s. 책을 만든 편집자가 중심이 아닌, 초판 예상 판매량을 적게 잡았으나 예상 외의 선전을 한 인문서들을 중심으로, 책이 주인이 되어 그 책이 어떻게 기획되었고,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많은 독자를 사로잡았는가 등 책의 스토리를 책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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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학교 1
스티븐 로 지음, 하상용 옮김, 김태권 그림 / 창비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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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가해진 평점을 보면 네 개 내지는 다섯 개 가량인데, 나는 두 개 내지 세 개 이상은 못 주겠다. 글쎄 책을 분석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이 떨어지는건지 모르겠다. 이 책은 분명 철학사가 아닌 철학함을 가르치는 책이긴 하지만 그 의도를 제대로 표출해내지 못했단 생각이다. 참 많이 팔렸고 좋은 평가를 받는 책임에도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건, 내용서술이 산만하고 명확히 머리 속에 정리가 되지 않으며, 원어로 서술된 내용을 번역어로 맛깔나게 옮겨내지 못한 것 같기 때문이다. 그것이 번역의 문제인지 아니면 원어로 서술된 책 자체가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맛'에 문제가 있는 건 확실하다. 색상도 좀 더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붉은색과 검은색만을 사용했는데, 중간중간 나오는 그림에도 대충 색을 칠해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김태권의 삽화가 빛을 발하지 못했다.

  외국 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쉽게 재밌게 읽힐 것 같은 책이지만, 한국에 들어오면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책이 있다. 안에 수록된 내용들도 외국 학생들에겐 자연스럽게 읽힐 것이 한국 학생에겐 어느 정도의 지식을 요하는 것일 수도 있고, 서술 방식 또한 그럴 수 있다.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진 청소년 교양, 청소년 입문서적들은 책으로 만들 때 이런 점들을 유의해야 한다. 쉽고 재밌게 철학함에 입문시키자는 것이지 공부시키자는게 목적이 아니므로, 익숙치 않은 내용, 난감한 전달방식을 취해서는 안 된다. 그 동네서 모르면 이상한 내용도 이쪽에선 어려운 내용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학습을 요구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고, 한국 학생들에겐 마냥 쉽게 편하게 읽힐 것 같지는 않단 생각이다.

  이미 한국엔 한국 철학자들이 쓴 이보다 훨씬 좋은 철학 교양서적들이 널렸다. 대표적으로 철학자 김용규의 철학 통조림 시리즈가 그렇고, 좌백의 철학 환타지물, 디딤돌의 청소년 철학 소설 등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검증된 좋은 번역서로는 소피의 세계 같은 것들이 있다. 기대를 많이 했지만 이 책은 결론적으로 내겐 실패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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