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 Issue & Thinking 01
토머스 슈뢰터 지음, 유동환 옮김 / 푸른나무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이달의 읽을만한 책'으로 선정된 바 있는 <세계화?>. 세계화에 대해 전혀 모르는 청소년과 일반인들이 접하기 딱 좋은 눈높이의 책이다. 독일연방의회의 개발정책행동그룹 산하 경제협력위원회 등에서 정책 개발에 참여한 바 있는 다름슈타트 전문대학 초빙교수 토머스 슈뢰터가 쓰고, 한국노동운동연구소, 통일시대 민주주의 국민회의 등을 거치며 활동을 한 유동환이 번역했다.

  이 책은 세계화의 처음으로 돌아가 출발한다. 근대 초기 상업의 중심지에서 후추를 실은 배가 재고를 빨리 처분하기 위해 어딘가로 가고 있다. 향신료와 비단, 설탕, 담배 등을 실은 배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정보만으로도 상인들은 엄청난 이윤을 남길 수도 쫄딱 망할 수도 있었다. 원거리 무역이 발달하자 해적과 노상강도에 대비하기 위한 보험이 생겨났고, 이것이 금융업의 시작이었다. 상업의 발달과 화폐의 활발한 이동은 곡물량이 15000-1600년 사이에 네 배나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빈부의 격차는 훨씬 커졌다. 

  한편에선 정의로운 전쟁이 시작됐다. 그들은 원주민에게 가톨릭으로의 개종과 복종을 요구했다. 반항하면 정의로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며. 수십만의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이 죽어갔고, 정복자들의 병균으로 더 많은 이들이 희생됐다. 노예제는 식민지의 자원 착취로도 모자라 사람까지 착취하는 강제 이민이었으며, 그들이 끌려간 나라에서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반면 그들이 떠나온 나라의 토착 경제는 배고픔과 빈곤이 그들을 대신했다.

  이 책이 제시하는 장을 순차적으로 따라오다보면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화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도달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동시에 아주 오래 전 세계화의 출발점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그 모습만 달리해 오늘날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엔 언급한 근대 초기의 모습들은 모두 지금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식량은 증가했지만 지구 한 쪽에선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고, 지구 한 쪽에선 매 끼니마다 음식을 버리고 있다. 버리는 쪽의 음식을 굶어죽는 쪽에 전달하면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지만 불행히도 현실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많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내가 요구하는 것을 위해 정의로운 전쟁도 불사한다. 언제나 평화를 추구하고, 평화를 원한다고 말하는 미국이 최근 수십년간 가장 많은 전쟁을 벌여온 국가임을 부인할 수 없다. 중국, 한국, 과테말라, 인도네시아, 쿠바, 콩코, 페루,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그레나다, 리비아,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파나마, 이라크, 보스니아, 수단, 유고슬라비아, 아프가니스탄까지 미국이 전쟁을 벌인 국가는 놀라울 정도로 많다. 그 무엇을 위해, 자유와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인권을 위해 불가피한 전쟁을 했다고 말한다면 세계가 웃을 것이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세계를 재편성한 미국의 다음 목표가 어디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자원을 최대한 안 가지고 있는 국가일수록 안전하다.

  정의로운 전쟁은 꼭 무기를 들고 벌어지진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브로커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타국으로 가서 굳을 일을 해가며 본국으로 돈을 부칠 수밖에 없는 이주노동자들은 근대 초기의 원주민 노예의 다른 얼굴이다. 원주민이 강제로, 이들이 자발적으로 대륙간 이동을 했다고 해서, 강제이주가 잘못이고, 자발적 이주가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긴 어렵다. 이들이 타국으로밖에 올 수 없었던 원인을 제공한, 구조를 만든 이들이 잘못이다.  자원을 착취하기 위해 정의와 평화를 외치며 타국을 침공하는 이들과 자발적으로 건너온 이주 노동자들을 부릴대로 부려먹고 내팽개치는 이들의 모습은 다르지 않다.

 과거에 비해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은 없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 부드러운 모습으로 더 악랄하게 침투하고 있다. 자본은 한곳으로 흡입되고, 가난한 국가는 착취 당하고, 사람들은 버려진다. 한편으로 세계화는 교류가 없던 사람들 간의 문화적, 인적 교류를 활성화시키고, 사물과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지구 전체가 하나의 마을과 같은 느낌이 들도록 해주기도 했지만, 그건 세계화의 아주 작은 단면일 뿐이다. 문화가 교류된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결국 문화는 다른 문화를 침식하고 들어갔고, 뒤이어 자본이 들어왔다. 다양한 문화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통합되는 흐름이 세계화의 본질적인 모습이라 할 것이다.

  세계화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 아니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살 길을 찾아야되지 않겠느냐고. 세계화를 거부하고 막는다면 결국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렇게 죽는 것보다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부당하지만 조금이나마 착취하며 우리가 취할 것은 취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알면서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을까.

  큰 자본이 작은 자본을 잡아먹고, 큰 국가가 작은 국가를 잡어먹는 건 어쩌면 자연스럽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이라 하더라도. 그러나, 우리가 적어도 '다함께' 살고자 한다면 그것을 불가피한 선택이라 말해선 안된다. 세계화의 흐름을 막을 수 있는, 세계화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논의하고 개선시켜야 한다. 국가와 각 지역이 담을 쌓고 자급자족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이다. 그러면 담을 쌓지 않고 문을 열고 살면서 한쪽이 다른 한쪽을 착취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윤 극대화라는 명제와 목표를 내세우는 세계화에 대한 반세계화 저항 운동은 단지 '힘 있는 자들'에게 항의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다자간 투자 협정에 대한 반대 운동처럼, 일단 작은 성공을 거두면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게 되고 그럼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반대 운동에 참여한다. 결국 반세계화 운동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차이를 제대로 평가해서 그것을 하나의 비전으로 발전시키는 능력에 그 성패가 달려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선 세계화의 대안으로 몇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유엔의 권한을 강화하고 개혁하는 것이다. 유엔은 국제통화기금 IMF와는 달리 1국가 1표 라는 평등권이 주어지는 대표적인 국제기구 때문이라 한다. 둘째, 코스모폴리탄 민주주의를 제안하는데, 여기서 요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국제기구인 유엔의 민주화(제 3세계 발언권 강화 등), 강제적 사법권을 갖는 국제재판소, 국제인권법원의 설립, 유럽공동체와 같은 지역통합정부, 국제군대 창설, 글로벌 의회 수립, 권리와 의무에 관한 신헌장 제정, 글로벌 법 체계 정립 등이다. 셋째, IMF의 지배구조 개혁이다. 현재 IMF, 세계은행, WTO가 강대국의 이익을 대변해 힘을 행사하고 있으므로, 이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이런 말을 한다. "유럽의 소는 하루 2달러의 정부 보조금을 받는다. 그리고 후발 산업국 주민의 절반 이상은 그보다 적은 소득으로 살고 있다."

  넷째, 국제청산은행의 설립이다. 케인즈가 주장한 바 있는 전 지구적 중앙은행인 국제청산은행을 설립해 통화를 발행하지는 않지만 달러가 아닌 자국의 통화로 무역이나 금융 거래를 할 수 있게 하는 기구이다. 이 기구는 외국에 빚을 갚을 때 꼭 수출을 해서 외국환을 확보할 필요가 없이, 자국환으로 해결할 수 있다. 다섯째, 토빈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197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이 제안한 개념으로 "토빈세가 단기적으로 투자했다가 회수해 가는 자본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세금을 부과하여 상품 무역이나 장기간의 자본 투자를 훼손하지 않고, 환율 안정으로 오히려 세계 무역을 촉진하며, 금융 위기 발생 가능성을 줄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강제적인 제도의 개선을 통해 세계화의 악랄한 면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세계화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 말하겠는가. 노력조차 하지 않고 지레 겁먹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면,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논하면 된다. 대안은 찾으면 많다.

p.s. 이 책은 주의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역사적 실례를 하나하나 객관적으로 살펴보면서 오늘날의 세계화에 도달한다. 그리고 대안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큰 틀에서는 주장하고자 하는 방향이 설정되어 주관적이지만, 각각의 꼭지는 역사의 현장에 멈추어 살펴본다는 점에서 객관적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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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
폴 콜먼 지음, 마용운 옮김 / 그물코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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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폴 콜먼.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나 1988년에 환경운동가로 변신해 유엔 평화문화대사와 영국 '리빙 레인포리스트'의 홍보대사 등 여러 직책을 맡고 있는 그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영국 이튼스쿨, 캠브리지 대학 강연을 비롯해 지금까지 3천 여회의 강연을 했다고 하며, 최근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영화 <지구>의 해설을 맡기도 했다. 지난 18년 동안 39개국 47,000 킬로미터를 걸으며 11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그는, 돈도 없고 집도 없지만 행복하다.

  2005년엔 일본에서 만나 그에 관한 책을 쓴 작가 고노미 기쿠치와 결혼도 했고, 2006년에는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을 걸으며 평화의 메세지를 보내기도 했다. 최근엔 중국 베이징 올림픽에 환경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홍콩에서 중국 텐진까지 걸었다 한다. 이렇게 화제가 되는 곳마다 항상 걸어다니는 그를 왜 여태껏 몰랐을까. 신문이나 티비 뉴스를 통해서도 접한 적이 없다. 이번에 그물코에서 나온 이 책을 통해, 그가 18년 간 걸어온 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함께 걸었다.

  처음부터 환경운동가는 아니었다. 해군에 복무하면서 배 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마다 쓰레기더미를 버리며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지구상의 모든 배에서 매일마다 이렇게 쓰레기를 바다에 버린다면 바다는 어떻게 될까? 아주 사소한 의문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의심에 의심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끝에, 그는 환경운동가가 되었다. 부잣집 노인의 운전기사 역할을 한 적도 있었다. 남부러울 것 없는 호화로운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자연에 대한 사랑과 환경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운동가의 길을 택했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아도, 생사가 달려있는 아마존 정글이나 험한 사막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걸었다. 걷고 걷다보면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고, 언론이 주목할 거라 보았다. 단순히 주목받고 싶은 욕구라고 보기엔 그의 삶 자체가 너무나 헌신적이었다. 그는 단지 주목받기 위해서, 유명해지기 위해서 이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기왕이면 자신이 하는 일을 많은 이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야 당연히 있다. 그래서 국제 회의가 개최되는 곳마다, 전쟁이 벌어지는 곳마다 찾아가 나무를 심으며 평화의 메세지를 전달했다. 

  이 책은 그가 걸어온 여정을 처음부터 함께 걸으며 그가 발 디디는 곳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바를 풀어놨다. 크게는 마치 여행서, 기행문 같은 형태를 취하지만, 그가 겪고 느낀 것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놓다보면 한 인물의 자서전 같은 느낌이 든다. 대중을 향한 연설문이자, 자서전으로 봐도 무방하다. 책의 말미에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할 수 있다. 평화로운 시대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 있다면 우리는 평화를 이룰 수 있다. 우리가 가진 가장 큰 힘은 신념이다. 전쟁이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면 이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중략) 지구의 생명을 보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처럼 전쟁을 중단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러한 신념이 더욱 큰 힘이 되어 평화로운 세상을 실제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믿게 되면 우리는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게 된다."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그러므로 집착을 버리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 어떤 문제 자체나 행동의 결과에 지나치게 사로잡히지 말고, 날마다 차근차근 꾸준히 행동해야 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우리의 행동은 좀 더 강력해질 수 있다. 우리도 우리가 하는 일이나 우리의 삶에 대해 만족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감정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 된다. 우리의 열정은 다른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영감을 주며, 미래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만들 수 있다. 바로 당신이 변화의 주역이다."

  그렇다. 우리가 변화의 주역이다. 우리 개개인이 변화의 주역이다. 전쟁을 멈출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내가 먼저 그렇게 행동하면 된다. 평화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이 있다면, 환경을 지킬 수 있다는 신념이 있다면, 내가 먼저 그렇게 행동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개인과 개인과 개인이 모여 결국 우리는 우리가 꿈꾸는 바,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우리는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폴 콜먼은 실제로 그로부터 시작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많은 이들이 동참하고, 지원하고, 그들의 생각을 바꿈으로써 변화를 일구어내고 있다.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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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16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생 나무를 심어 사막을 푸른 숲으로 만든 엘제에르 부피에 노인의 실화를 담은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책도 있는데, 이렇게 걸어 다니며 나무를 심은 사람이 또 있군요~~ 변화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쉽지만, 또한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실천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해요~~ 감동과 감탄!

마늘빵 2008-09-16 08:52   좋아요 0 | URL
아 그 분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데, 찾아봐야겠네요. 요 책은 나온지 얼마 안됐어요. 이주전쯤 신간소개에서 보고 산건데. 대단하죠.

아라리요 2008-09-17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아프님이 소개한 것 보고 사려고 찜만 해두었답니다.^^
언제 사서 읽게 될지는;;

마늘빵 2008-09-18 09:01   좋아요 0 | URL
^^ 요고 살짝 지루할 수도 있어요. 살짝. 이 사람이 걸어온 길을 쭉 훑어보는건데 괜찮습니다.

숲노래 2008-11-19 0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책을 읽고서 지루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 책을 읽다가 지루하다면, 지금 자기 삶이 얼마나 지루한지를 먼저 깨달아야 할 테고, 책은 곧바로 덮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쉰이나 예순쯤 되어서 다시 펼쳐 본다면, 비로소 이 책이 무엇을 말하는 줄 몸으로 재미를 느끼리라 봅니다. 이 책은 적어도 두 달이나 석 달, 으레 여섯 달이나 한 해에 걸쳐서 조금씩 읽지 않고서는 참뜻을 받아들일 수 없도록 꾸며 놓았습니다.

마늘빵 2008-11-19 09:13   좋아요 0 | URL
바로 윗 댓글에 "지루할 수도 있"다는 말에 대한 댓글 같군요. :) 이 책 읽으며 아직 이 세상엔 꿈을 꾸는 이들이 많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꿈을 꾸는 이들이 모이다보면 세상이 변화하죠. 지루할 수 있다는 건 이 사람이 걸어온 여정이 지루하다는 것이 아니라, 책이 두껍고 판형도 크게 때문에, 그리고 대략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를 미리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지루할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
 
보랏빛 소가 온다 - 광고는 죽었다
세스 고딘 지음, 이주형 외 옮김 / 재인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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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무슨 뜻일까 참 궁금했다. 마케팅 서적이라는 건 알겠는데, 보랏빛 소는 뭘까. 생각보다 매우 간단하고 단순한 개념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소들은 생김새나 모양이 다 비슷하다. 차를 타고 가면서 드넓은 초원을 누비는 소들을 보면 처음에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평온함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루해진다. 그런데 갑자기 보라색 소가 무리 중에 끼어있다고 생각해보자. 아마도 슬슬 감기던 눈이 휭둥그레 커지면서 놀랄 것이다.

  광고는 죽었다. 광고에 관해서는 나올 만한 아이디어는 다 나왔고, 기존의 것을 조금씩 변형시켜 응용하거나 아니면 기존의 방식대로 밀고 나가는 방법 밖에는 없다. 시내 한 복판의 건물 옥상에 광고 전광판을 세우고, 신문이나 잡지에 광고를 끼워넣고, 거액을 줘가면서 티비 인기 프로그램 앞뒤로 30초짜리 광고를 집어넣는다. 심지어는 지하철 외관을 아예 한 가지 광고로 도배하는 경우도 있고, 지하철 역사 에스컬레이터 주변이나 계단을 광고로 도배하기도 한다. 하지만 돈만 들고 효과가 없었는지 몇번 시도하더니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이 책에서 예로 든 '보랏빛 소'들은 저자가 그렇게 지적하니 매우 신선해보이지만 알기 전에는 '당연한거 아냐?' 하고 생각했던 것들이었다. 페인트 회사가 매출을 올리기 위해 페인트를 쉽게 부을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 교체했고, 마우스를 만드는 로지텍은 더 좋은 칩을 개발하려고 하기보다는 마우스 하나에 기능을 첨가하거나 인체공학적 디자인을 적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신들을 특화시켰다. 크리스피 도넛은 새로운 지점을 설립하고나면 이곳에 지점이 세워졌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한동안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공짜로 도넛을 선물한다. 공짜 도넛을 먹기 위해서라도 줄을 선다.

 매우 간단하고 단순한 아이디어 하나로 이들은 막대한 이익을 얻었고, 해당 분야의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는 성공한 기업들의 전략을 보면서 당연히 그건 통할 만한 것라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지만, 그 아이디어가 나오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저자는 말한다. "진정한 퍼플 카우의 정의는 딱 들어맞는 방식으로 리마커블한 어떤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백미러에서 시선을 돌리면, 퍼플 카우 만들기가 갑자기 훨씬 더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보랏빛 소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건 저자가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라 보랏빛 소의 존재를 안다면 우리가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 하지만 멈춰 서서 생각해보면 사실 놀라운 아이디어들로 가득하다. 시장에서 성공하는 방법은, 선두업체의 제품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앞서 작은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광고를 하고, 판로가 확충되고, 매출이 증가하니 이윤이 창출되고, 다시 또 광고를 하고, 판로가 확충되고, 매출이 증가하고, 이윤이 창출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잘해야 현상유지 정도 할 수 있을 뿐이다.

  저자는 스니저를 잡으라 말한다. 스니저는 신제품을 먼저 사용하고, 입소문을 내는 이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무엇보다 신제품에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자신이 사용한 제품의 장단점을 많은 사람들에게 퍼뜨리는 역할을 한다. 전자제품 쪽에서 특히나 두드러지는 데, 사실 생각해보면 지금 많은 업체들이 이러한 방법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빠른 광고 효과를 노리고 있다. 이 책이 2004년에 나왔으니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테고, 꼭 이 책을 통해서 '스니저 잡기'가 시도됐다고 보기도 힘들다. 

 출판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나오면 어차피 사보는 사람만 사본다는 어려운 인문/사회 전문서들을 제외하고는, 좀 더 쉽게 쓰여진 대중적인 책은 서평단을 꾸려서 책을 보내주고 제한된 시일 내에 책에 대한 감상평을 올리도록 하는 방식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어차피 살 계획이 있던 책이라면 기왕에 서평단 책을 받아 읽고 리뷰를 올리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어서 별로 읽고 싶지 않았는데 공짜책이라고 그냥 신청했다가 읽지도 않고 리뷰도 안올리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또, 출판사의 의도와는 달리 호평이 아닌 악평이 올라오는 경우도 가끔 있어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그치만 대개는 독자들이 본인이 읽고 싶었던, 관심이 많았던 책을 신청해서 읽으니 자연스레 호평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책에 자신이 없다면 출판사는 해당 책으로 아예 서평단을 꾸리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고, 이미 그 전에 자신 없는 책은 아예 출판을 안하는 것이 경영에 도움이 되니 그네들 딴에는 책을 내놓지 않을 이유가 없게 된다.

 출판사건 냉장고 회사건 일단 자신들이 만든 상품에 대해 입소문을 내 줄 사람들이 필요하고, 그들을 찾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티비 광고를 내보내거나 신문, 잡지에 광고를 싣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저자의 마케팅 기법은 얼리 어댑터와 스니저 집단을 잡아 이들에게서 이야기 거리가 될 만한 요소를 개발하고 흘리며, 그들이 손쉽게 전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퍼지고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실 이것도 지금은 너무 널리 뻔하게 사용되는 기법이라 보랏빛 소로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팔기 위해서 이제는 식상한 이런 보랏빛 소를 파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그의  홈페이지에 또다른 보랏빛 소를 준비해뒀다. 참 탁월한 기법으로 자기 책을 광고하는데 이러니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지 않을 수 없겠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하면 많이 팔아먹을까, 를 고민하는 저자와 그의 메세지가 슬프기도 하다. 오히려 그가 홈페이지에 제시한 팔아먹기 기법보다는 진실된 콘텐츠만으로 접근하는 게 보랏빛 소에 더 가깝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 보랏빛 소는 특별한 마케팅 기법보다 알찬 콘텐츠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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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3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3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이제는 전국민 교양 시리즈 정도로 인식되는 <지식e> 세번째 책이 나왔다. 앞서 나왔던 두 권의 책은 독자들의 마음과 머리를 오가며 삶에 지쳐 인식하지 못했던 진실을 느끼도록 해줬다. 3권도 그 연장선에 있으나 좀 더 무겁게 가슴을 조인다. 슬픔보다는 차라리 분노. 3권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은 슬픔보다 분노였다. 여기서 머무를 순 없다, 마음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굳은 의지 때문에 눈물은 끝내 떨어지지 않았다. 분노 뒤에 오는 무력함은 나를 더 슬프게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묻지는 않는다. 더이상. 이미 진실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이 세상엔 내가 알지 못하는 있을 수 없는 아픈 진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해직기자의 이야기는 뜨거웠고, 버튼을 누르지 않는 이유는 무서웠다. 블루골드는 우리의 현실이요, Y공작 프로젝트는 우리 사회의 아이러니와 비극이었다. 1968년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이며, 올림픽 정신은 사회는 개인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는 증거였다. 차마 침착하게 읽어내기 힘들었던 그르바비차,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진실' 17년 후, 그리고 그 밖에 일일히 다 언급하지 못한 우리의 현실. 

  <지식e>는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애써 어려운 책 읽어가며 알고 싶어하지 않는 귀차니스트들에게 가장 경제적으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상식'을 전달하는 도구다. 나아가 더 알고 싶은 욕구, 더 파헤치고 싶은 욕구를 불러와 이 안에 수록된 이야기들과 관련된 다른 책들을 뒤적이게 만든다. 묵묵히 바라만 보면 되는 그 짧은 5분에, 한 꼭지에 5분도 안 걸리는 독서 시간을 할애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진실을 전달한다. 지식e는 앞으로 계속 되어야 하고, 이 책도 시리즈로 계속 나와야 한다. 분노해야 할 것들에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분노와 눈물을 선물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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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돌이 2008-09-15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진혁 PD를 타부서로 전출시켰고, YTN 돌발영상 담당 PD도 다른 곳으로 보냈다지요. 이런 얘기들을 언제까지 공중파에게 우리가 계속 들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수상한 시절입니다.

마늘빵 2008-09-15 21:22   좋아요 0 | URL
수상한 시절이 맞죠. 이미 시사프로그램 피디들도 다 전출명령 내렸다고 하던데요. 대놓고 탄압하는데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있죠. 독재입니다.

yamoo 2010-03-14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지식 시리즈는 정말 아닌 거 같습니다. 별 내용도 없고 텍스트만으로 보면 50여 페이지도 채 안될 책을 두껍게 편집해서 1만원 이상 책정하여 팔아 먹는 출판사가 괘씸해보입니다. 뭐, 트렌드에 영합하는 책이라고 생각해도 역시나 이런 생각은 지울 수 없네요..

마늘빵 2010-03-15 09:42   좋아요 0 | URL
5분 짜리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어내면서 양쪽 다 시너지 효과가 났죠. 책도 대박나고, 프로그램 홍보도 제대로 되고. 좀 관심 갖고 읽기엔 많이 부족하지만, 학생이나 선생들이 교육용으로 보기엔 괜찮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5분 프로그램 가지고 수업도 많이 하는 거 같고요.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 라면 교양 2
하승우 지음 / 뜨인돌 / 200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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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 복무 제도가 작년까지 긍정적으로 논의되다가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이후에 '전면재검토'로 그간의 노력이 싸그리 무너졌다. 유엔 회원국인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유엔으로부터 대체복무 제도를 만들 것을 권고 받았으나 철저하게 무시했다. 기껏해야 몇몇 학자들이나 인권위원회 정도에서 목소리를 냈을 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인정하는 것과 대체복무제 도입이 마냥 멀어졌다. 전면재검토 기사가 나가자 각종 포털 사이트에는 명박이가 유일하게 잘한 결정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그들은 명박이에 대항해 촛불을 든 네티즌들이다. 촛불에 들은 의제들이 워낙 많으니 각각 사안에 따라 갈릴 수 있다지만, 촛불은 지지하되 병역거부는 지지하지 않는 것이 다수의 뜻인 듯하다.

  그러나, 오늘 6일자 신문에서 기분 좋은 소식을 접했다. 춘천지법이 "대체복무 등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형사처벌만을 가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를 제한하고 약자의 기본권을 보호한다'는 헌법에 위배된다""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 수단 도입을 권고했고, 우리 사회 수준에 비춰 현역복무와의 형평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면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 모르겠지만, 이런 개념 법원, 개념 판사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다. 명박 정부 들어 모든 국가기관이 다 '개'가 된 줄 알았는데 말이다. 내가 볼 때 춘천지법 조심해야 할 듯 하다. 곧 국정원에서 개별 수사 들어간다. 후훗.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와 같은 도발적이고 직설적인 제목을 단 이 책은 뜨인돌에서 기획한 라면 시리즈 2권이다. 라면 시리즈 네 권 중 유일하게 '라면'이 안들어간 책이다. :) <희망의 사회 윤리 똘레랑스>로 간접적으로 만나고, 지행 네트워크에서 직접 만난 바 있는, 하승우씨가 썼다. 아무래도 그와 자주 만나는 걸 보면 관심사와 연구하고자 하는 바가 비슷한 듯 하다. 소개에 따르면 '풀뿌리 민주주의와 아나키즘, 자치와 공생의 삶'에 관심있다고 한다. 이 말이 참 맘에 든다. "사회의 모순과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날카롭고 까칠해야 하지만, 삶의 방향은 사랑과 우정을 향해야 한다." 이번 촛불 정국 기사에서도 그의 이름을 자주 접했다.

  책은 매우 쉽게 쓰여졌다. 지금까지는 김두식 교수가 쓴 <평화의 얼굴>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말하는 가장 널리 읽히는 책이었는데 앞으로는 어쩌면 이 책에 지위를 뺏길지도 모르겠다.  <평화의 얼굴>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기독교 측 입장을 비판하는데 주력하고 있고, 좀 더 자세하고 구체적인 논리를 들면서 조목조목 비판에 반박하고 있으니, 그보다 쉽게 쓰여진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를 먼저 읽고, 그 책을 읽는다면 대략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논의에 대해서는 알만큼 안다고 보면 된다. 더불어 병역거부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자 하면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을 읽으면 된다.

  하승우는 먼저 군대가 무엇이고, 평화는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이야기한다. 군대에 가서 총을 드는 사람들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총을 들지 않고 감옥행을 택하는 이들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도대체 이들이 목표하는 바는 모두 평화인데, 왜 실천 방법은 이렇게 다를까. 2001년으로 거슬러간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앞에 앉히고 오랜 동안의 내 결정을 통보했다. 병역거부하겠다고. 그때 아버지가 빨갱이 운운 하기 전에 내게 던진 물음이 그것이다. 군대 간다고 평화를 원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그래 맞다. 그들도 그렇게 말한다. 다만 나는 평화를 위해 군대에 가서 총을 들기보다 총을 들지 않고 평화를 외치길 원했던 것이다. 총을 들고 평화를 외치는 건 모순된 행동이라 생각했기에. 나는 군대에 갔고 나를 잃어버린지 2년 2개월 만에 다시 되찾았다.  

  하승우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잘못 인식하고 있는 부분을 파고 든다. 병역기피와 병역거부는 엄연히 다르다. 병역기피는 가기 싫어서 피하는 것이고, 병역거부는 시민불복종의 일환이다. 전자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후자는 보호받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이 부분을 나눠 보지 않는다. 병역거부는 곧 병역기피로 인식한다. 심지어는 때로는 불법으로 때로는 각종 사유를 들어가며 합법적으로 병역을 '기피'하는 방송사, 신문사, 국회의원, 대기업 회장 아들에게보다도 평화를 외치며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더 차갑다. 합법적인 신의 아들들에겐 참으로 관대하다. 왜 그럴까. 우리가 비난해야 할 것은 신과 그의 아들이지, 평화를 외치며 무기를 들지 않겠다는 이들이 아니다.

  사람들은 강한 국가일수록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국방비를 늘리고 신무기를 구입함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한다. 미국에서는 이런 국민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쓰다남은 무기를 적절한(?) 값에 팔아넘긴다. 우리는 좋다고 무장한다. 북한보다 더 강한 화력을 자랑하고, 세계 10대 군사 강국으로 올라선다. 그렇게 평화를 유지한다. 과연 그럴까. 그렇게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가 무기를 사면, 중국과 일본도 무기를 산다. 중국이 무기를 사면 인도는 미국의 백으로 핵무장을 한다. 인도가 핵무장하면 파키스탄도 핵무장한다. 미국도 이에 질세라 최신식 무기로도 모자라 전 세계 우호국가와 MD체제를 편성한다. 그러다 펑펑! 전쟁 터진다. 한국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거나 한쪽 고래 편들다가 다른 고래한테 얻어 맞는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일어났던 커다란 전쟁은 모두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때보다 무기는 강해졌고, 한 발로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다. 언제나 사건은 터지게 마련이고, 불씨만 당겨지면 전 세계는 핏물로 가득 찰 것이다. 평화를 지키는 유일한 길은, 무기를 내려놓는 것이다. 내가 무기를 내려놓고, 내 친구가 무기를 내려놓고, 내 적이 무기를 내려놓으면 평화는 영원히 지킬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평화를 지키고자 무기를 내려놓는 이들을 감옥으로 보낸다. 전 세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수감율 1위. 유엔 대사를 낳은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솔직히 쪽팔린다. 티베트의 인권, 그루지아의 인권 좋다. 그들의 인권 지켜야 한다. 그런데 티베트의 인권을 말하는 이들은 이땅에서 촛불들다 얻어터지거나 평화를 위해 무기를 내려놓는 이들의 인권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찌 된 일?!

  결국 영원한 평화는 무기를 내려놓는 개인과 개인과 개인이 모여 이룰 수 있다. 왜 우리가 먼저 총을 내려놔야 하냐고 묻지 마라. 전쟁을 일으킨 독일은 평화가 무엇인지 안다. 그래서 그들은 기본법 제 4조에 이렇게 명시했다. "신앙과 양심의 자유, 그리고 종교적, 세계관적 고백의 자유는 불가침"이며 "누구도 양심에 반하여 무기를 드는 병역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라고. 그들의 대체복무 기간은 현역과 같다. "먼저 총을 내리면 상대방도 내 의지를 알게 된다. 먼저 평화를 택하는 건 바보나 겁쟁이의 선택이 아니라 용기 있는 선택이고 평화를 향한 강렬한 열망이다. 인류의 비극은 그런 선택과 열정을 비현실적이라거나 어리석은 것이라 무시하고 비웃을 때 시작된다." (하승우)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했다. "군대는 주로 국내에서 억압적 통치를 하기 위해 필요하고, 군대에 들어간 모든 사람은 국민에 대한 정부의 폭력에 동참하는 자가 된다." "정부 폭력을 없애 버리는 길은 단 한가지다. 사람들이 거기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전쟁을 없애고 평화를 지키는 길은 단 한가지다. 사람들이 거기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몸소 무기를 들길 거부하며 그 길을 걷는 이들 덕분에 우리는 평화를 지킬 수 있다. 어찌 이들을 감옥으로 보낼 수 있단 말인가. 허무맹랑한 이상론이라고 말하지 말자. 모든 이상은 꿈을 꿈과 동시에 그 길을 걷는 개인이 모여 이루어졌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복지, 인권 그 모든 것이 다 그렇게 이루어졌다. 이제 평화를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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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8-09-07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군요. 리뷰를 통해 새로운 책을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마늘빵 2008-09-07 00:08   좋아요 0 | URL
네! 이거 꼭 봐야하는 책이에요. 쉽고 재밌게 쓰였습니다. ^^

Jade 2008-09-07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이 책보다 김두식 평화의 헌법이 더 좋던데...

아 요새 책은 거의 안읽고 음악만 듣는답니다. ㅎㅎ 가을이어서 그런가.

마늘빵 2008-09-07 01:33   좋아요 0 | URL
나도 김두식 평화의 얼굴이 더 좋은데, 요 책은 그걸 먼저 집어들기 어려운 다수의 사람들에게 더 편할듯. 책을 잘 안읽거나 이 문제에 처음 관심갖거나 하는.

전에는 술과 함께 책을, 이제는 술과 함께 음악을?? =333

순오기 2008-09-07 11:01   좋아요 0 | URL
평화의 얼굴을 안 읽은 1인, 이 문제에 처음 관심을 갖는 1인에도 해당됨.ㅎㅎ 아들넘 군대 보내기 전에 봐야할 책이군요.

마늘빵 2008-09-07 11:27   좋아요 0 | URL
^^ 그러시다면 추천입니다. 이거 보시고 <평화의 얼굴> 보시면 대략 그간의 논의와 지금 현실이 눈에 들어오실 겁니다.

순오기 2008-09-07 23:15   좋아요 0 | URL
먼저 이 책부터 봐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