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신현승 옮김 / 시공사 / 2002년 1월
장바구니담기


고기는 각 군주의 만찬에 초대된 손님들의 적절한 지위와 신분을 명확히 구분해 주는 정치적, 사회적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주빈석은 언제나 가장 윗사람에게 제공되었으며, 그 옆으로 지위를 따라 차례차례 자리가 정해졌다. 최고 부위의 고기는 가장 윗사람의 몫이었고, 질이 좀 떨어지는 부위는 아랫사람들 차지였다. 예컨대 사슴 고기가 나왔을 때 꼬리나 내장은 늘 가장 아랫사람에게 제공되었다. 흔히 사용하는 ‘굴욕을 참다’라는 표현도 실은 ‘사슴 내장을 먹다’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67쪽

음식은 특별히 적합한 ‘중개자’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면 우리 자신(문화)과 음식(자연)에 직접적인 동일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앤 머콧)
-280-281쪽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문화가 생물들을 수용하는 방식, 문화가 섭취하는 생물들의 유형, 생물들이 준비되고 주문되는 방식은 고도로 조직화된 의사소통의 형태이다. 그리고 그것이 문화 전반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가치, 믿음, 시행 원칙들을 전달한다.
-281쪽

한쪽은 태워지고 다른 쪽은 날것인 구운 고기, 혹은 바깥쪽은 석쇠로 구워지고 안쪽은 붉은 빛이 그대로 남아 있는 구운 고기는 날 것과 요리된 것, 자연과 문화의 두 가지 의미를 나타낸다. (레비스트로스)
-284쪽

스테이크의 명성은 …… 설익힌 것에서 나온다. 고기 속으로 비치는 붉은 피는 자연 그대로인 듯하고, 오밀조밀하며 동시에 촘촘하고 매끄럽게 잘릴 것처럼 보인다. 입 안에서 감지되는 이런 풍부한 맛은 고대 신들의 음식을 떠올리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스테이크 원래의 원기와 특성이 인간의 혈액 속으로 녹아드는 듯한 미묘한 느낌도 맛볼 수 있다. 이런 붉은 피야말로 스테이크의 존재 이유인 것이다. (레비스트로스)
-296쪽

도처에 존재하는 햄버거는 현대적인 육류의 마지막 해체를 보여준다. 소는 구별이 되지 않는 물질로 해체되고 고도로 기계화된 과정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탈바꿈된다. 황소는 베이컨이 최초로 자연을 해체하고 변형시켰던 것과 동일한 방식에 의해 ‘타고난 속성을 잃어버리고 강제적으로 다른 형태를 갖게 되었다.’ 소는 사지가 절단되고, 내장이 제거되고, 다시 개조되고, 평평하게 다져진다. 그리고는 급속 냉동되고, 운송되고, 차곡차곡 쌓이고, 석쇠에 구워지고, 최소한의 불편함으로 소비될 수 있도록 가지런하게 포장 가능한 크기로 다듬어진다. 소를 사육하고 비육하고 도살하고 포장하는 과정은 매우 합리적이고 실용적이고 편리하다. 또한 이런 전체 과정은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기계화되어 있다.

-338-339쪽

개인의 범죄에는 여전히 도덕적 분노가 뒤따른다. 사회의 구성원이 폭력을 행사하거나 살인을 범하거나 타인의 재산이나 자유를 침해하면, 보편적으로 그 사람과 그의 행동은 비난을 받는다. 이런 악은 심판을 통해 명백하게 밝혀지고 직접적인 제재를 받는다. 현대 세계는 개인의 악을 타인의 신체에 직접적인 해를 입히는 것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더욱 위험한 새로운 형태의 악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것은 기술적 전제와 제도적 필요성, 시장의 목적에 의해 탄생했다. 만약 우리 사회가 계속해서 개인의 악에 대한 방비에만 급급해 한다면, 제도적으로 인정된 폭력에 대한 도덕적 반발과 정의로운 분노와 같은 윤리적 틀 속에 포함되는 데 실패하고 말 것이다.

-341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이달 2021-10-13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