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없는 세상에서 나만의 길을 묻다

-정답 없음(김상욱 외 5명, 밀리로드, 2026) 리뷰



물리학 교수이면서 독자에게 감성적으로 다가가는 김상욱 교수를 비롯하여 문화 평론가, 심리상담사, 역사학자, 기자, 에세이스트가 함께 쓴 책이다. 각 장마다 요즘 사람들의 고민이 담긴 질문 하나로 시작하고, 그 질문에 대해 각 필자들이 답을 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제목이 ‘정답 없음’인가 보다.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질문을 설정하고 이에 대해 필자들이 답을 주지만, 정답은 아니며 여러 답 중 하나다, 이런 메시지일 것이다.


나답게 살기 위해 나를 찾고 싶지만 쉽지 않다, 나이가 들면서 내 성격이 변하는 것 같다, 흔들리는 자존감을 지켜낼 방법이 있을까, 나는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은데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등의 고민은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 고민이다.


시대를 불문한 인간의 숙제, 철학


참 살아가기 힘든 시절이다. 요즘, 또는 현대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고대에도, 중세에도, 삼국 시대에도, 조선 시대에도,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은 그 시대를 살아가면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삶은 이렇게 늘 마음 같지 않고 매 순간 스스로 길을 찾고 풀어나가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철학을 찾는지도 모른다.


초중고 학창 시절에 우리는 철학을 배우지 않는다. 서양에서는 철학 교육이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한국은 이념 전쟁, 반공, 국가주의에서 출발했기에 공동체가 늘 우선이었고, 공동체에 나를 어떻게 끼워 맞추며 모나지 않게 살아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왔기에 철학 교육과는 상반된 길을 걸어왔다 생각한다.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초중고 학생들, 그리고 성인들 모두 힘들다. 자존감을 지켜내며 내가 잘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나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쓴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40살이 됐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숙제를 안고 있다. 죽을 때까지도 안 풀리는 어려운 숙제다.


먹고사니즘이 아닌 자아의 문제


돈이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돈을 벌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지만(물론 돈이 많은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맞다), 위와 같은 문제들은 돈으로 해결이 안 된다. 우리는 먹고사니즘의 문제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먹고사니즘이 아닌 자아의 문제이다. 그래서 요즘 10~20대 사이에서 “나답게”가 키워드인지 모른다. 그들은 접근법을 알고 있다.


평균의 함정과 서열 의식에 대하여


이 책에 여러 꼭지가 있는데 가볍게 읽을 수 있다. 그중 제일 마지막 꼭지 심리상담가 최재훈이 쓴 글은 모든 글에 밑줄을 그었다. 예전에 비해 덜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국 사회는 아직도 한 가지 기준으로 욕망을 재단한다. 평균의 함정에 빠져 살고, 평균에 도달하지 못하면 실패자인 것 같고, 평균을 넘으면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한다. 직업에서도 서열이 존재하고, 심지어 이제는 이과가 문과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지니기까지 하고 면전에서 “저런 책이나 읽으니 문과를 갔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SNS에서 모르는 서울대 이과생으로부터 서울대 문과생이 위와 같은 말을 들었다고 올린 글을 봤다).


중소기업 다니면서 삼성을 비판하면 삼성 못 간 사람이 되고, 출판사에서 문학 책을 편집하면 문인이 되지 못한 사람 취급받거나, 사범대를 졸업하고 교육출판 편집자나 강사로 일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교사가 되지 못한 사람들로 여기는 이상한 우월감과 서열 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삼성 비판한 사람 중에 삼성 지원했던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문인이 되고 싶었지만 문학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거고, 임용 시험에 응시했다가 시험이 안 돼서 다른 길을 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들이 실패자인 것은 아니다. 이러한 그들을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주 이상한 우월 의식에 빠진 못난 사람들일 뿐이다. SNS에 달린 댓글을 보면 이런 의식에 빠진 못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삶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서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 달리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길을 만들어놓고 상황에 따라 그중 한 가지 길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가 달성한 한 가지 목표에 후자가 들어가지 못했다고 해도 전자가 후자보다 우월할 것도 없다. 또는 후자의 여러 가지 길에는 애초에 전자의 목표가 들어 있지도 않았을 수 있는데, 전자는 이를 가정하고 후자를 바라볼 필요도 없다. 다 쓸데없는 짓이다.


한편 어떤 분야에서는 제로섬 게임의 장이라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여 이겨야만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같은 경기에 임하는 동일한 링 안에 들어온 선수들은 그들이 서로 동료이자 경쟁자다. 이 링 안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분명히 있고, 내가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를 넘어서야 한다.


우리 삶은 대개는 이런 제로섬 게임이 아니며, 우리가 하는 일이나 직업에서도 이런 제로섬 게임의 장이 아닌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삶을 제로섬 게임의 장으로 보고, 일이나 직업에서는 그렇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 밀리의 서재에서만 있고 인터넷 서점에서는 판매하지 않는 책이다. 책의 발행처도 밀리로 되어 있다. 요즘 이렇게 밀리에서만 있는 기획성 글이나 책이 가끔 보인다. 출판사들이 발행하는 책들 중에도 밀리에서 먼저 선보이거나 연재되는 책들도 있다. 아마도 콘텐츠를 먼저 접할 있다는 점으로 매니아들을 붙잡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밀리는 특별하다이런 느낌을 주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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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출판마케팅연구소 요청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출판 격주간지 "기획회의" 325호(2012.8.5.)에 실렸습니다. 분량을 맞추느라 두 배 이상의 글을 압축하여 줄였습니다. 실린 글에는 조사가 바뀌면서 주어가 달라져 잘못된 부분이 있으니 아래 글을 참고해주세요.



편집자론 논쟁에 관하여: 편집자로 산다는 것, 그리고 편집자로 일한다는 것    



  지난 5월 김학원, 정은숙, 이홍, 변정수, 강주헌, 정민영 님이 쓴 "편집자로 산다는 것"이 출간되었고, 이 책에 대한 김류미 님의 서평과 그에 대한 변정수 님의 답, 1년차 편집자의 글, 민음사 장은수 대표의 서평에 이어 북에디터, 트위터 등을 통해 편집자론 논쟁이 산발적으로 벌어졌다. 여기서는 ‘편집자로 사는 것’을 주장하는 변정수 님과 ‘편집자로 일하는 것’을 말하는 장은수 님의 편집자론을 살펴보려 한다.


  변정수 그리고 장은수 님의 편집자론


  "이제 편집자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자신의 삶도 제대로 편집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정신이 담긴 텍스트를 감히 편집할 엄두인들 낼 수 있을까.", "편집자로 살고 있지 못한 사람이라면, 정작 책을 만들 기회를 아무리 많이 주어도 아까운 종이로 '책'이 아니라 '폐지'만을 만들어내는 게 고작일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편집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편집자로 사는 것'이다."


  변정수 님은 편집자는 책이 탄생하기까지의 모든 과정과 이후의 판매량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편집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사업 단위"라는 것.


  반면, 장은수 님은 "편집자는 지식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직업 중 하나”이며, “출판 자본에 고용되어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전문가일 뿐"이라며, "출판사가 편집자에게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출판사의 잘못이지 스스로 브랜드가 되지 못한 편집자의 잘못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아가 개개인이 모두 브랜드인 편집자로 이루어진 출판사는 공상에 불과하다고 덧붙인다. 그에게 편집 노동은 "높은 학습 능력과 시행착오의 축적을 통해 숙련되는 일상의 여러 노동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장은수 님은 ‘편집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편집자로 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편집자로 산다는 것과 편집자로 일한다는 것의 차이: 변정수 님을 중심으로


  편집자로 사는 것과 편집자로 일하는 것. 후자가 회사에 취직하여 일하는 다른 직업인과 같다면, 전자는 그 이상을 요구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장은수 님의 글을 비판하는 분들이 안 보이는 반면, 변정수 님의 글을 비판하는 이들은 많다. 변정수 님은 이상적인 편집자상이 이렇다,라고 말하지 않고, 편집자는 이러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나는 변정수 님의 주장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이때의 동의는 그것이 '이상적인 편집자상'임을 전제했을 때이다. 모든 편집자가 변정수 님의 말대로 '편집자로 살' 수는 없으며, 다수의 편집자들은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감수하면서 제 임무를 다한다.


  변정수 님은 '제 임무를 다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고 되묻지 않을까 싶다. 그분의 입장에서 편집자가 제 임무를 다하는 것은 오탈자를 찾거나 비문을 바로 잡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편집자의 총체적 인격을 책에 실을 것인가’와 관련이 깊다. 그러나 인정하자. 다수의 편집자들은 쏟아지는 원고를 짧은 일정에 맞추어 '생산해내야' 한다. 보통 직업인으로서의 역할만 하기도 버겁다. 책에 치명적 오류가 있고, 왜 이 원고를 이렇게밖에 다듬지 못했을까 의문이 생겨도 이는 편집자가 아닌 출판사 대표의 책임이다.


  변정수 님은 대표의 책임인 동시에 편집자의 책임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편집자가 원고를 장악하지 못했고, 엉망인 제품을 생산했다고. 그렇다. 하지만 편집자가 처한 조건이 나아지지 않는 한 결과물에 대해 책임질 수는 없으며, 편집자가 자신이 만든 책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해도 이는 그가 처한 현실에 기인한다. 또한 편집자가 만든 제품에 책임을 물으려면, 기획과 저자 섭외부터 일련의 모든 과정을 자신의 판단대로 진행했을 경우여야 한다.


  소비자는 질 좋은 제품을 사고 싶고, 편집자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 출판사 대표도 그렇다. 그런데 일정에 맞추어 급하게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현실이다. 내용 오류가 없으면 다행이고 문장이 거칠거나 오탈자가 있어도 애교로 넘어가야 한다. 독자는 불만을 표하고, 대표는 편집자를 혼낸다. 편집자는 토로할 곳이 없다.


  어떤 편집자들은 괜찮은 노동 환경에서 일하겠지만, 어떤 편집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면접 자리에서 연봉 1,500만 원을 불렀다는 인문 출판사, 표정이 어둡다며 또는 출산 예정이라며 해고하는 출판사가 있다. 연차가 없거나 있어도 못 쓰는 출판사는 수두룩하고, 작업 속도가 느리다며 해고하는 출판사도 있다. 다른 출판사로 이직한 뒤에도 전 출판사의 관계자로부터 말이 전해지며 재차 해고 당하는 사례도 있다.


  이들에게 '편집자로 산다는 것'은, 출근 시간부터 퇴근 시간까지 위에 언급한 삶을 견디는 것에서 나아가 삶 전체를 '살아내야' 하는 것이 된다. 변정수 님이 말한 '편집자로 산다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해도, 그게 현실이다. 물론 변정수 님도 편집자가 처한 현실을 알고 있다. 변정수 님은 "편집자들이 수도 없이 저지르는 실무적인 판단 착오의 이면을 꼼꼼히 들춰보면, 바로 이런 식(동네 구멍가게만도 못한 주먹구구식 경영)의 대책 없는 낙관이 안일한 판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하며 편집자들이 처한 환경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시, 편집자로 산다는 것


  변정수 님의 편집자론은 편집자들을 불편하게 한다. (이 불편함은 나쁘지 않다. 사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장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편집자들의 부족한 부분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때문에 편집자들은 자신들을 월급 도둑 취급한다거나 대우는 제대로 안 해주는 현실을 무시하고 요구만 많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변정수 님의 글에 내가 생각하는 편집자상이 들어 있다. 그런데 어떤 직업인도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나는 변정수 님이 주장한 바를 '편집자로서의 정체성'이 아닌 '이상적인 편집자상'에 맞추면 어떨까 싶다. 장은수 님과 변정수 님의 말대로 편집자는 '만들어진다'. 변정수 님은 편집자는 타고난다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편집자가 되기 이전에 축적한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논쟁 글에서 변정수 님은 다시 이렇게 서술했다.


  "편집자는 오로지, 자신의 삶에 대한 치열한 긴장과 근본적으로 낯설고 새로운 세계일 수밖에 없는 타인에 대한 존중어린 관심이 체화되고 내면화되는 지속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신입 직원이 편집자로서 축적한 경험과 노력으로 변정수 님이 말한 '편집자'로 성장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본다면 편집자로 일하는 것과 편집자로 사는 것은 결국 같은 지점을 향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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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내용은 6월 1일 연세대 노천 극장에서 있었던 샌델의 강연을 발췌한 것이다. 

 


오늘 주제는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당면한 문제이다. 많은 것들을 돈으로 사고 있는 현실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있는가, 돈으로 사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것이다. 


시장 경제와 시장 사회의 차이는 무엇인가. 시장 경제는 시장 경제라는 도구를 이용하는 것. 하지만 시장 사회에서는 우리의 정체성, 타인과의 관계, 가족 생활, 건강, 교육, 시민으로서의 삶 등 모든 것이 시장에 의해 지배받는다. 우리는 이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시장에서는 상품과 재화를 사고 판다. 인기 있는 강좌의 티켓이 인터넷 상에서 거래가 된다. 


레이디 가가의 콘서트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실제 레이디 가가의 공연이라면 암표를 거래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느냐. 안 된다면 왜 안 되느냐. 누군가 말해달라. 


발언자 “원칙적으로 레이디 가가의 티켓을 암거래 해서는 안 된다.”

다른 발언자 “레이디 가가의 표를 누구나 사고팔 수 있다. 이것은 오락이다. 가고 싶은 사람은 사고, 팔고 싶은 사람은 팔면 된다.” 


중국의 예를 들어보겠다. 중국의 어느 곳에서는 치료를 받기 위해 하루종일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의사를 만나기 위해서. 그런데 기업이 노숙자를 고용하여 그 줄을 서게 한다면, 예약진찰권을 받아서 더 높은 가격에 원하는 이들에게 판다면 어떤가. 이 상황이 적절하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그것은 민주주의가 수호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레이디 가가의 콘서트이든, 의사의 진찰권이든,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B: “헌법상에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샌델:  "레이디 가가의 티켓 값을 지불할 수 없는 사람의 인권은 침해당한 것인가? 레이디 가가의 티켓 암거래는 괜찮지만 의사의 진찰권은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 달라." 

C: “레이디 가가의 공연은 선택의 문제이다. 기본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진찰권은 기본권에 해당하는 것이다.” 


시장의 권리가 적절한 곳과 적절하지 않은 곳을 구별해주었다(전자는 공연, 후자는 진료권). 인간의 기본권에 해당하는 것인가 아닌가. 이는 논란이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예를 들어 보겠다. 철학 강연에 오기 위해 암표를 거래하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하느냐.(청중 웃음)


D: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가격을 결정하도록 한다면 부유한 이들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지만, 가난한 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가난한 이들이 그 표값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샌델: "이 분과 생각을 달리하시는 분?"

E: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마이크 같은 것. 공공재는 다르다. 장기 매매가 암적으로 거래되고 있다면 어떨까.” (이하 생략)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의 기준, 원칙이 있는가. 교육에 대한 접근권은 어떤가. 명문대 입학 사례를 보자. 내가 그 명문대 총장이라고 생각해 보자. 연세대 총장. 대학 입학을 지원한 이들이 많다. 그런데 대학은 돈이 필요하다. 돈이 있어야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제안을 해 보자. 전체 정원의 10%를 가장 높은 입찰가를 제시한 사람한테 파는 것이다. 우선 입학 정원의 90%는 그 학업능력에 기반을 두고 받고, 나머지는 성적이 뛰어나지 않아도 졸업까지 할 수 있다. 최고의 학생은 아니지만 낙제할 만한 학생들은 아니라고 생각해 보자. 어떤가. 


F: “해당 재화의 원래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기준은 부모님이 얼마나 부자인지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학생의 열정과 능력에 따라 나눠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의 가치가 퇴색한다. 대학의, 교육의 본래 목적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G: “기부를 받으면 돈을 활용해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30~40%는 안 되지만, 10% 정도는 괜찮다고 본다.” 

샌델: “왜 퍼센트에 따라 달리지는가.” 

G: “10%는 그다지 큰 규모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샌델: "그렇다면 50%는 어떤가. 퍼센트에 따라 달라지는가?"


대학 교육에 대한 접근성이 매매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대학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반대자 중 다른 이유를 말하실 분?


H: “부유한 사람들만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공정하지 않기 때문” 


이번에는 현금으로 보상을 해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학업 성취 능력이 낮은 어린이에게 공부에 대한 동기 부여를 위해 돈을 주고 있다. 좋은 성적을 내는 학생들에게는 현금을 주는 것이다. 또 책을 읽으면 이에 대해서도 현금으로 보상해주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에이 학점 50달러, 책을 읽으면 2달러씩 준다. 이 제도를 시행해보겠는가. 


I: “돈으로 보상을 할 때에는 그 행위가 무척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또한 교육의 기본 취지에 맞지 않는다.”

샌델: “어떤 교육의 목적을 위배하는가.”

I: “돈을 줘서 책을 읽게 하고 성적을 올리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더 많은 지식을 얻고자 그런 꿈을 가져야 하기 때문. 아이가 진정으로 독서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필요도 있다. 그 자체를 좋아하게 해야.”

J: “나는 반대한다. 처음에는 돈을 줘서 읽게 해도 나중에는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도록 할 수 있다.” 


현금 보상 제도가 중단되는 시점이 올 것이다. 그때 학생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독서를 한 것일까? 습관이 형성되어 더 큰 가치가 발생했을까. 아이들은 압박을 당해서 그것을 할 경우 나는 그것을 알 수 있다. 그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감사카드를 쓸 때마다 돈을 받았을 경우 이런 습관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감사에 대한 중요성을 느낄 수 있을지. 하나의 시나리오이다. 중요한 것은 태도와 규범.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스위스의 경우이다. 핵폐기물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논란이 되었다. 산에 아주 작은 마을이 있었다. 적합한 부지가 될 거라고 생각했고, 사람들이 동의를 해야 했다. 주민에게 질문을 했다. 의회에서 핵폐기물을 이곳에 두겠다고 결정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51%가 받아들였다. 재무적 보상을 한다면 매년 모든  주민들에게 6천 유로까지 지급한다면 이 핵폐기장이 이곳에 있는 것에 동의하느냐 물었다. 25%로 반이나 낮아졌다. 경제적 논리에 따르면 이것은 모순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돈을 더 많이 주면 더 예스라고 답할 거라 생각하지만, 수용도가 더 낮아졌다. 뭐라고 설명할까. 


K: “의회의 결정은 의무라고 생각했겠지만, 인센티브를 준다고 할 때에는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을이 그곳이 적합한 곳이 아니라, 돈을 받았기 때문에 그 마을에 설치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샌델: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경제적 논리가 통하지 않는 케이스다."


이스라엘의 사례를 보자. 어린이집. 아이들은 부모님이 올 때까지 어린이집에서 기다려야 한다. 어린이집에서는 늦게 온 부모님한테 벌금을 물게 했다. 더 많은 부모가 늦게 왔다. 원래 더 적게 와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에 왜 그랬을까. 이 또한 역설이다. 이전에는 어린이집에 늦게 오면 부모가 죄책감을 느꼈지만, 벌금 제도가 시행되자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생각한 것이다. 후자의 경우 죄책감이 수반되지 않는다. 인센티브 때문에 다른 가치들이 밀려난 것이다. 어린이집에서는 이 제도를 없앴다. 그런데 늦게 오는 사태는 계속되었다. 의도와 정반대로 된 것.


 의무감이 돈으로 변질되거나 침해되면 한번 부여받은 의무감은 다시 형성하기 어렵다. 정통 경제학은 인간 경험의 중요한 부분을 간과한 것.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중립적이라고 말한다. 물질적 재화에 대해선 그게 맞다. 하지만 비물질적인 재화, 즉 인간관계, 시민으로서 의무, 교육 등은 비시장적 가치이다. 현금적 보상은 해당 재화들의 가치가 변질되고 변형된다. 


미국 내전이 있었을 때 북쪽에서는 징병제를 도입했다. 링컨대통령이. 법에 따르면 남북전쟁에 참전해야 했다.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낼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있었다. 다른 법 조항에서는 일정 금액을 정부에 지불하고 의무를 면제받을 수도 있었다. 이런 경우 괜찮다고 생각하느냐. 


한국의 유명 연예인이 한국과 외국에서 인기가 많다. 그는 공연을 통해 큰 행복을 준다. 엄청 돈을 번다. 만약 유명한 스타이고, 경력이 중단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수익의 반을 정부에 내고 군을 면제 받을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수입이 올라간다. 그는 계속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준다. 이런 경우 어떤가? 찬성하는 분 손들어 달라. 반대하는 분 손들어 달라. (청중을 보며) 조금 전(미국 남북전쟁 사례)과 같네요. 


L: “국위선양을 누군가 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국민들은 똑같은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얼마나 찬성할지 모르겠다.” 

샌델: "그 수익이 빈곤 계층 사람들에게 돌아간다고 생각해 보자. 그래도 반대할 거냐. 누구 의견 있으신가"

M: “모두가 국민이다. 연예인이전에 국민이다. 국민으로서 가지고 있는 가치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발언자 “각자의 위치에서 국위 선양을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공연이든, 축구든 뭐든 그것으로 나라를 알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스럽다고 생각한다.” 

샌델: "누구 반대하시는 분?"

N: “비가 수익금을 나라에 내는 것은 시장적 가치이다. 그러나 국민으로서의 군복무는 비시장적 가치이다. 그렇다면 군에 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군에 가는 의무감이 약화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전체의 의무감을 낮춤으로써 나라에 해가 되는 것.” 

L: “의식의 문제다. 자기 입장에서 이기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극소수다. 그 사람의 기여가 돌아돌아서 나에게 돌아온다면 내가 좀 더 양해를 하면 되는 것 아닐까?” 

N: “삼성 이재용이 전투기 20억짜리를 샀다. 그리고 면제를 받는다면. 군에게는 더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 행위가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공공재는 많은 사람들의 기여에 따르는 것, 비시장적 가치는 시민으로서의 정치성, 의무. 시장 논리에 의해 좌우될 수 없는 것, 사회가 돈으로 혜택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은 모두의 의무라는 것이다. 시장 원리와 돈이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 분별해야 한다. 어떤 경우 시장이 거래되는 재화의 성격을 변형시키고 몰아내기도 한다. 중요한 비시장적 가치를 보면 시장과 돈이 위협하는 가치가 있다. 최근 돈으로 더 많은 것을 사고, 빈부의 격차도 심해지고 있다. 많은 민주주의 국가가 그렇다. 부자와 가난한 이들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만나며 교류하는 기회는 줄어들고 있다. 부자들의 영여과 가난한 이들의 영역이 다르고,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민주주의는 완벽한 평등을 주지는 않지만,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공공의 장소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논쟁하고 관용하고, 존중할 수 있다. 어떤 사회를 만들기를 바라는가 라는 질문과 관련 있다. 공정성에 대한 사람들의 논의가, 정의가 다를 수 있다. 공정 사회가 무엇이냐 하는 것. 그러나 이를 중요하게 논의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징표라고 생각한다. 돈과 시장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돈이 무척 소중하다고 말한다. 돈의 가치가 왜 이렇게 커졌는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어떤 영역에서 위협이 되는지도 논의되지 않는다. 여기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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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만인가.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 출간 이후 한국을 방문해 한 차례 강연을 한 바 있다. 이 날 누군의 말에 따르면, "정의란 무엇인가"는 미국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팔렸다. 인구 수로 보자면 한참 차이가 나는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당시, 언론과 지식인들은 이명박 정부의 부정의한 행태에 대한 분노와 정의감에 대한 결핍에서 이러한 현상이 벌어졌다고 했다. 그도  무시할 순 없지만 그의 하버드대 간판과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에 베스트셀러를 사는 사람들의 구매 패턴도 무시 못할 것. 


  이번 책은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 출간되었다. 김영사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판권을 사올 때에는 매우 싸게 들여왔다고 했는데, 샌델 인기가 높아진 이후 그의 판권은 얼마나 비싸졌을까. 한 예로 무라까미 하루끼의 "1Q84" 판권을 최근 문학동네에서 큰 돈 주고 들여왔다는 이야기(선인세를 준 만큼 팔기는 했지만 수익이 많이 남진 않았다고 들었다), 또 스티븐 잡스의 자서전을 민음사에서 큰 돈 주고 사왔다는 이야기(민음사에서는 정확하게 말하진 않았지만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등을 참조해봤을 때-이 때문에 한국으로 들여오는 판권의 가격대가 무척 높아졌다고 들었다-, 이번 건은 과연 얼마일까 궁금하다. 


  강연 행사는 아산재단과 연세대, 와이즈베리가 주관했다. 와이즈베리는 신생 출판사임에도 샌델의 판권을 따올 수 있었던 건, 미래엔이라는 큰 회사에 소속된 출판 브랜드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 한 달 전부터 신청자를 받았고, 듣기로는 초대장이 만오천 장 발송되었다고 했다. 연세대 노천 극장의 수용 인원은 만 명이다. 신청하고서 안 오는 사람들을 고려하여 더 많이 초대한 것 같은데, 이 날 강연장에서 관계자가 샌델 강연의 티켓이 온라인에서 3~4만 원에 거래가 되었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그냥 버려지는 티켓이 많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들리기도. 만 명인지 만오천 명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날 노천 극장은 빼곡히 찼다. 


  개인적으로는 경희대 평화의 전당(?) 보다는 교통편이 더 편리했고, 대학 정문부터 강연장까지의 거리도 경희대보다 더 가깝지 않았나 생각한다. 노천 극장 계단 입구부터 사람들이 가득 줄을 서 있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지인을 기다리는 이들도 많았고, 줄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이 대단한 열기. 경희대 강연 때와 같은 뜨거운 인기를 실감한다. 노천 극장이고, 계단에 앉아야 했기에 경희대 보다는 불편했지만, 샌델 식 토론 수업은 여전히 재밌었다. 그는 사람들을 자극하고, 발언하게 하고, 맞붙이고, 정리하는 방식으로 강연을 이끌어 나갔다. 


  처음에는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는 사람들만이 발언했는데, 샌델이 한국어나 영어 중 아무거나 상관이 없고, 자신에게 편한 것으로 말하라고 하자, 후반부로 갈수록 용기를 낸 사람들이 영어와 한국어를 병행하거나 한국어로 말하는 경우가 늘었다. 발언자 중에는 외국어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도 있었고, 초등학교 교사라고 신분을 밝힌 이도 있었다. 경희대 때와 이번 강연을 봤을 때, 영어로 말하는 이들은 대개 자신감에 넘쳤고, 한국어로 말하는 이들은 약간은 주눅들고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영어권 강연자를 앞에 놓고 있어서라고만 보기엔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는 묘한 풍경이다. 분명 통역자와 자막 번역자가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청자가 모두 한국인인 점을 감안하면, 발언자는 한국어로 발언했어야 했다. 그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 청자가 아닌 샌델을 배려한 걸로 보이진 않는다. 

  

  경희대 때보다 샌델은 느리게 말을 했고, 자막 번역자는 그때와 동일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타가 훨씬 적었다. 사실, 경희대 강연 때 번역자가 오타를 내면서라도 발언 내용을 번역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보여 강연을 재밌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했는데. 이번 번역자는 오타는 줄었고, 샌델의 말을 어조를 살려 잘 번역해서 또다른 재미를 주기도 했다. 번역자는 강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손이 바빴겠지만, 샌델의 통역자는 한국어로 발언하는 이들이 나온 후반부 때에서야 비로소 일을 좀 했을 것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 강연과 이번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강연의 패턴은 같았고, 샌델은 자신이 책에 쓴 내용의 시작부터 끝까지 주요한 부분을 위주로 토론을 이끌었다. 즉, 강연은 책의 요약본이라고 볼 수 있다. 발언자들이 책을 읽고 왔는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샌델은 책에서 다룬 부딪히는 주장들을 발언자들에게서 직접 끌어내려 했고,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추가로 발언하게 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대답을 얻었다. 그는 강연 도중 미국인보다 한국인들이 사회가 부정의하다고 답변한 비율이 높았으며, 올바른 행동을 이끌기 위해 돈으로 보상하거나 유인하는 방식이 괜찮은가에 대한 질문에는 한국인보다 미국인이 압도적으로 찬성한다는 통계 자료 결과를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이 통계는 강연에 앞서 아산재단과 미국의 서베이가 각각 천 명 이상의 시민들을 상대로 조사한 것이다. 


  샌델이 출연한 시점을 기준으로, 강연은 일곱시 반 정도에 시작하여 아홉시 반 정도에 끝났으니 약 두 시간 가량 진행되었고,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샌델을 보냈다. 노천 극장을 빠져 나오며 입구에 마련된 와이즈베리의 책 판매대에서 책을 구입하는 중년 아저씨도 있었다. 청자의 나이대는 주로 20대가 많았고, 어린아이부터 노부부까지 다양했다. 아무래도 평일 일곱시라는 시간의 제약, 연세대 노천극장이라는 거리의 제약으로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한 분들이 많을 것. 근거리에 있는 나도 퇴근하고 택시타고 바로 갔는데. 그의 강연은 그 스타일이나 내용, 청중의 분위기 등 이곳까지 와서 들을 가치가 있었다. 


  오늘 트위터에서 본 이야기다. 샌델은 이후 박원순 시장과 만나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에 들렀다고 한다. 그는 행동으로 끝나지 않은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샌델의 근래 저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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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6-03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강연소식 듣고 아프님 거기 갔으려나 싶었는데 역시 들었네요. 잘 읽었어요.

이잘코군 2012-06-03 13:11   좋아요 0 | URL
네, ^^ 경희대가 초큼 더 재밌었어요. 열기는 여전했고.

글샘 2012-06-04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쌍용차...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것들이 거기 있죠...
돈으로 얻을 게 있는 넘들과의 싸움... 거긴 정의도, 도덕도, 윤리도 없는... 괴물들이 살죠.ㅠㅜ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김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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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강의를 신청한 사람도,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도 많지 않았다. 알라딘과 출판사 측은 많은 사람들이 오리라 예상하고 연세대 안의 대강의실을 예약한 것 같은데, 강의실은 1/3 정도가 찼을 뿐이었다. 평일이고 연세대 안 깊숙이 있다 보니 시간에 맞춰 찾아오기 힘들다는 점 등도 작용했을 것. 


한 방향 강의 형식이 아닌 곽정수 한겨레21 기자, 장석준 전 진보신당 창준위, 그리고 책의 저자 김상봉 샘 이렇게 세 분이 함께 무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무대를 바라보는 자리에는 꾸리에 출판사 대표, 알라딘 인문 엠디, 도서 커뮤니티 리더스가이드 대표, 레디앙 마케터 등이 보였다. 강의 전 어떤 분께서는 김상봉 선생님께 사인을 받기도 했는데, 뒤에서 듣기로는 번역가였다. 


이 책은 김상봉 선생님의 젊은 시절부터의 고민에서 출발하였다. 자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라는 의문. 이 물음은 다시 기업의 경영권은 누구에게 가야 하는가, 라는 물음으로 전개되었다. 다음은 김상봉 선생님의 말씀을 부분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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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경영권은 누구에게 가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누가 답할 수 있는가? 궁금하지만 누구도 이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기업은 기업을 소유한 주주들의 도구일 뿐이다,라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기업은 토지와 같은 부동산도, 동산도 아닌 것이다. 


철학 앞에 어떤 단어를 붙이면 철학의 종류가 성립이 되는데, 경제 철학은 없다. 헤겔 이후의 철학은 무가치한 것, 잡다한 철학이다. 존재자로서의 존재자를 다루는 것이 형이상학인데, 그 대상에는 주식회사도 포함된다. 


주식회사는 사람들의 공동체이자 어떤 활동을 위해 결속한 단체이다. 소유할 수 없고, 소유주가 있을 수 없으며, 대표자가 있을 뿐이다. 대표자는 활동을 대표할 때에만 논리적으로 하자가 없다. 현재는 돈을 내는 사람들이 주식회사의 주주나 대표가 될 수 있는데, 그것이 아닌 활동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활동가인 노동자는 사물화되어 있고, 자본은 인격의 이름을 달고 이 사람들의 공동체인 주식회사의 주인이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삼성의 이건희는 주식의 1%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는 70여 개의 삼성 계열사 법인에 이름이 등록되어 있지도 않다.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개인 기업, 가족 기업, 동업자 기업이 주식회사로 넘어가는 과정은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과 닮았다. 자본주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나의 의문에 대해 성실하게 답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으며, 한국의 학자들에게 기대할 순 없기 때문에-그들은 외국의 경제학자 이론에 기대고 있다-해외에서 발표한 뒤 논쟁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 내가 (이 책을 한국에서 내놓은)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이다. 


왜 kbs, mbc 의 사장을 대통령이 임명해야 하는가? 왜 방송사의 노동자들이 뽑으면 안 되는가? 삼성, 현대 뿐만 아니라 공기업들도 해당한다. 공기업에서부터 이 운동(노동자 경영권)을 시작해볼 수 있다. 

“진리의 빛은 한 번 밝혀지면 꺼지질 않는다.”(김상봉) 가장 설득력 있는 진리의 기준은, 네가 말한 그 개념이 집을 지을 수 있는 설계도가 되느냐(스피노자)라고 묻는 것. 그게 된다면 막을 수 없다. 모든 제국, 모든 절대 권력은 그렇게 붕괴해왔다. 현실적 가능성 여부를 생각하지 말고 (일단) 상상 속에서 정합성을 가진다면 이야기하고 시작하면 된다. 마르크스조차도 자본주의의 ‘생산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외국인과 만났을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한국인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 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디비디를 틀어준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선물받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상상할 수 없는 처절함으로 얻은 민주주의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가? 경제의 민주화를 말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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