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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의 함정 - 금태섭 변호사의 딜레마에 빠진 법과 정의 이야기
금태섭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6월
평점 :
* '딜레마에 빠진 법과 정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에서, 작가의 주된 메세지는, '누구나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사법 시험에 합격했으며, 검사로 임용된 그는, 검사에서 변호사로 신분을 바꾸기 전까지 수많은 사건을 접했고, 사건에 연루된 피의자들을 만났다. 이 사람이 범인인가 싶었는데 아닌 경우도 있고, 이 사람이 범인이라는 심증은 있는데 물증을 대지 못해 미제 사건으로 남은 경우도 있었다. 결론이 확실하다면 그나마 나은데 뭐가 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는 건들도 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이야기에는 양면성이 있다. 진실은 그 어느 지점엔가 존재하고, 우리는 양쪽에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
* 책에는 많은 사건들이 글의 재료로 쓰였고, 중간중간 읽으면서 평소 정리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었다. 가령, 아동 성폭행 범죄 사건이 터지면 일부 네티즌들이 '화학적 거세'를 해결 방안으로 내놓는데, 사실 이렇게 실시한다고 해도 그의 성기를 이용해서 성범죄를 저지르지 못할 뿐이지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손이나 눈, 입으로도 충분히 범죄를 저지를 수가 있다. 범죄는 '성기의 꼴림'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범행 대상을 눈으로 목격'하면서 시작된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화학적 거세가 아니라 인위적 시각 장애를 주장해야 하는 걸까? 성기를 제거하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학생 인권에 관한 부분도 나오는데 1974년 4월 3일 시행 대통령 긴급조치 4호 5항에 따르면, "학생의 부당한 이유 없는 출석, 수업 또는 시험의 거부, 학교 관계자 지도, 감독하의 정당한 수업, 연구 활동을 제외한 학교 내외의 집회, 시위, 성토, 농성 기타 일체의 개별적, 집단적 행위를 금한다. (...) 위반한 자 및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해야 한다. 그 시절의 대통령과 정부가 얼마나 악랄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정희 시대에는 고려대학교 교내에서 시위하면 징역 10년에 처할 수 있다는 법조문도 있었다고.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이들은 이 사실을 알까? 이 책이 아니면 계속 모르고 지나갔을 것.
이슈거리를 두고 다른 근거와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준다는 것, 몰랐던 사실을 알게 해준다는 것은 이 책에서 내가 얻은 부분이다. 그러나 딜레마적 상황을 던져주고, 금태섭 변호사가 자신의 대답을 명확히 하지 않거나 두루두루 누구나 답할 수 있는 결론을 내리고 넘어가는 부분에서는 조금 아쉽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의 주장을 명확히 했지만, (나도 계속 고민하고 있는) 그 문제의 근거가 논리적으로, 이론적으로 약해 고민을 해소하지 못하기도 했다. 관련된 주제로 글을 썼기에 '혹시나' 하고 기대를 했지만, '역시나'가 되었던 것이다.
* 몇 년 전부터 계속 생각해오던 이 문제에 대한 나름의 근거를 생각했지만, 이 근거를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사람이 있다는 점을 알고 일단 놀랐고, 또 나와 입장이 다른 그쪽의 입장을 들어보면 그것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내내 마음속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성매매'와 '성매매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인데, 진보적 여성 운동가들-그들은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다- 중 일부는 성기를 이용해 노동하는 것과 손이나 팔, 다리를 이용해 노동하는 것이 무엇이 다른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며, 성매매를 옹호하기도 한다. 듣고보면 신체의 일부를 이용해 노동하는 것이니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 이건 뭔가 아닌데 하고 생각하면서, 그 두 행위의 차이로 생각해 본 것이 일종의 '인격권'이라는 것.
말하자면 이는, 성기는 신체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이용해 노동한다는 것은 애초 어불성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다지 강력하지는 않다.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건데, 금태섭 변호사 또한 이 책 중간에 성매매 여성을 언급하면서 그들은 "다른 사람을 위한 도구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또 "정말 돈을 내고 자신을 고르는 사람과 섹스를 하는 행위에 '자발적인' 경우와 '비자발적인' 경우가 구별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을 던지며 "우리에게 최소한의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성매매는 범죄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라고 답한다. 이 글에서 금태섭 변호사가 '최소한의 지켜야 할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 내가 생각한 일종의 인격권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이를 통해서는 그와 나의 입장이 비슷하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깔끔하게 내리기는 어렵다.
* 이 책에 대해 어느 독자는 고등학생이 논술 답안으로 작성한 수준의 글이라고 평했지만, 글을 쉽게 썼다고, 글이 쉽게 읽힌다고, 내용에 대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책은 금태섭 변호사의 검사 시절부터 변호사인 지금까지 경험한 직간접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법률 에세이라고 봐야 하고, 이 안에서 우리는 충분히 그의 경험을 빌려 생각을 넓힐 수 있다는 것. 독자는 그의 책을 재료로 삼아 '만일 나라면'이라는 의문을 가지고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면 될 것이다. 이 책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