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으로 들어간 소녀]의 서평을 써주세요
그림 속으로 들어간 소녀 - 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대필 작가의 독백
배홍진 지음 / 멘토프레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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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수요일이면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을 위안부 할머니들. 그들은 모두 꾸미지 않아도 이쁜 소녀에서 주름을 감출 수 없는 할머니가 되었고, 일부는 세상을 떴다. 이 책의 주인공인 강덕경 할머니 또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분이다. 그러나, 그녀의 육신은 떠났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마음은 아직도 수요일이면 일본 대사관 앞을 지키고 있다. 마음 편히 가셨으면 좋으련만 일본의 제대로된 사과조차 받아보지 못하고 그렇게, 한스럽고, 외로운 세월을 보내다 가셨다. 일본 정부뿐 아니라 한국 정부도, 그리고 그 분들의 아픔에 공감해주지는 않고 외면하는 사람들도 많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몰랐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와 그 분들의 이야기는 뉴스나 기사를 통해서 들어왔지만, 내가 아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신문이나 티비 뉴스 등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단편적인 사실, 딱 그만큼만 알고 있었다. 그 분들 개개인이 수십년 걸어온 삶길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었다. 어쩌면 티비 다큐멘터리나 인생극장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공개됐을지도 모르겠다. 연이 없었던지, 아니,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게 솔직할게다, 그 분들의 삶을 들여다 볼 기회는 없었다.

  몇 해 전 일본계 미국인(?) 하원 의원의 노력으로 위안부 사건이 크게 보도된 적이 있었다. 미국의 행정부가 압박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보도는 일본에게 상당한 부담감을 주었을 것이다. 일본군이 위안부를 운용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곳에 갇힌 여자들은 한국과 동남아 등의 여러 국가에서 강제로 차출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이후에도 일본은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故 강덕경 할머니. 할머니가 아닌 소녀다. 이제 막 세상을 배울 나이에, 일본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만 믿고 배를 탔고, 그곳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탈출을 시도, 알 수 없는 산길에서 한 일본 헌병대 군인에게 잡혀가 강간을 당했다. 그리고 우리가 '위안소'라고 부르는 그곳으로 끌려갔다. 그녀는 매일밤 문앞에 길게 줄을 선 일본군인들을 제 몸으로 열 명 이상씩 받아내야 했다. 수치심이나 모멸감 등의 감정은 당장 중요하지 않았다. 몸이 너무 아팠다고 한다. 몸이 느끼는 고통은 마음이 느끼는 고통에 앞섰다. 당장 한 명이라도 덜 왔으면 하고 바랐다.  

  이 책은 강덕경 할머니 개인의 삶을 들여다본다.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떻게 위안부가 되었으며,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슨 생각으로 세상 밖으로 나와 자신을 드러내야 했는지, 그리고 왜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을, 정확히는 강덕경 할머니를 포함한 위안부 할머니들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기를 바랐는지, 글을 읽을 줄 모르고, 글을 쓸 줄 모르는, 안다해도 더 이상 말할 수도, 쓸 수도 없는 할머니를 대신해, 한 대필 작가의 손을 빌려, 말한다. 대필 작가의 손으로 쓰여진 이 글을 통해 할머니의 삶은 당신의 바람대로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다. 

  얼마 전,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 논란 때 뉴라이트 진영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향해 자발적 매춘을 한 창녀라는 망언을 한 적이 있다. 어디 이런 발언이 한두번 있었던 것도 아니라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소위 이름있는 학자라는 사람들이 이따위 막말이나 하고 다니니 할머니들 마음이 어땠을까. 국회의원들과 학자, 정부가 힘을 합쳐 일본에게 사죄를 요청해도 일본이 들어줄까 말까한 마당에 내부에서 이런 말이 나오니, 일본이 어찌 한국 정부를, 위안부 할머니들을 우습게 보지 않을 수 있으랴. 소녀에서 할머니가 된 분들이 점점 나이를 먹고 늙어,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있는 시점에서, 이 분들의 작은 목소리는 너무나 외롭다. 현 정부에서는 더더욱.  

  에세이도 소설도 아닌 이 책의 형식은 처음엔 불편했다. 강덕경 할머니가 된 1인칭 시점에서 글을 써내려가다가도 어느 순간 작가 자신으로 돌아와 할머니가 경험한 것들에 대해 작가의 말을 늘어놓는다. 각각의 꼭지들이 각각의 다른 서술 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읽어야 그 불편함으로부터 조금 벗어날 수 있을 듯 하다. 또, 할머니가 경험한 상황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오히려 작가의 감정과 마음이 반영된 어떤 수식어들로 인해 당시의 상황이 고스란히 전달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할머니가 경험한 것들을 작가의 시각에서 한번 걸러내 전달해주는 듯 했달까.

  작가 배홍진의 첫 책이다. 이 책의 맨 뒤에는 무경계 문화 펄프 연구소 '츄리닝바람'의 또다른 구성원인 김경주 시인의 글이 실려있다. 배홍진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글이다. 주인공은 강덕경 할머니이지만, '유령 대필 작가'가 아닌 '실명 대필 작가'로 '배홍진'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첫 책이라는 점에서, 배홍진 또한 이 책의 또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지금껏 누군가를 대신해 글을 써왔고, 다른 대필 작가들처럼 제 이름을 밝힐 수 없었다. 대필 작가가 끊임없이 일거리를 받아내기 위해선 '대필'했다는 사실을 드러내선 안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한 사람의 인생을 '대필'했다. 그러나 이전과 차이점은 자신을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대필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는 때로 유령 작가로 제 이름을 숨긴채 누군가를 대신해 글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으로 그는 작가로서 세상에 신고를 마친 셈이며, 앞으로 나올 그의 온전한 작품 <내 슬픈 상대성 이론 저편의 방콕>을 통해 '실명 대필 작가' 딱지 또한 뗄 것이다. 10년간 글을 써왔다고 한다. 글만을 위해서 삶을 살아온 사람 같다. 글이 안써지면 훌쩍 어디론가 떠났다고 한다. 그의 예정작을 읽겠다고 약속할 순 없지만, 작가로서의 첫 작품 괜찮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 숙제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한 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메세지를 전달한 점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
<봉선화가 필 무렵>(윤정모) - 위안부 할머니들의 그림과 함께 쓴 역사 동화
<위안부 리포트1>(정경아) - 위안부 할머니들의 체험을 비롯 피해 사실을 종합적으로 전달한다.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이명박 이하 행정부, 한나라당 모두, 뉴라이트, 경찰, 검찰, 조중동 기자들+조갑제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연민이란 타인에게 있을지도 모르는 슬픔에 대한 우리들의 상상력이다. 동정이 계급적 의식을 전제한, 타인의 불행에 대한 제도적이고 고양된 슬픔의 베풂이라면 연민은 너와 내가 같은 인간이란 사실에 대한 슬픔이다. 그러므로 동정엔 실천이 따르지만 연민엔 실천이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연민은 사람을 주저앉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혐오를 낳기도 한다. 까닭에 연민은 너와 내가 같은 슬픔을 지니고 있다는 비극적 이야기에 끊임없이 경도되고 싶어하는 자아의 상상력이다. 나는 지금 강덕경 할머니를 연민하고 있다."(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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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살라 인디아]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맛살라 인디아 - 현직 외교관의 생생한 인도 보고서
김승호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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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시절, 지금은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여자 선배 하나가 방학에 인도를 다녀왔다고 했다. 동기 하나도 인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했다. 그 맘때쯤 나이면 한번씩 해외여행을 꿈꿔보는 시절, 나는 여행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있으면서, 한번도 실천에 옮겨보지 않았다. 여행을 위해 특별히 알바를 하지도 않았고, 돈이 야금야금 생기는 족족 음반과 책을 사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는데 썼다. 만약 내가 여행을 간다면 인도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철학의 나라 독일과 그리스, 예술의 나라 프랑스, 음악의 나라 영국, 그리고 인도와 북유럽 국가 중 한 곳에 가보고 싶었다.  

  인도에 다녀온 선배가 그 때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절대로 가방을 들어주겠다는 호의를 받아들여선 안된다고. 그네들은 사유재산의 개념이 희박해서인지 일단 제 손에 들어간 물건은 자기 것으로 간주한다고 했다. 그래서 살짝 무섭기도 했다. 여행지에서 가방을 잃어버리면 국제 노숙자가 되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 어이쿠. 그러나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삶의 여유를 느꼈고, 참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 때 직접 들은 이야기 외에 내가 인도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별로 없다. 그럼에도 가고픈 여행지 중 하나로 인도를 손꼽은 것은, 인도가 또한 철학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선배가 느꼈던 그들의 삶의 여유란 그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인도 철학은 동국대 말고는 정규 교과로 개설하지 않는 것 같다. 정규 교과도 아니다보니 접할 기회가 없었고, 한번쯤 접해보고 싶다 막연하게 생각하면서도 늘 주변부에서만 맴돌았던 탓에, 아직까지 인도 철학은 모른다. 인도 철학이 정리되어 나온 단행본 책은 있기는 하다. <인도철학>(민족사)나 <인도 철학 산책>(정우 서적), <인도 철학 입문>(동문선), <인도 철학사>(이문출판), <인도 철학사>(민음사), <인도 철학사>(한길사)와 같은.  

  <맛살라 인디아>는 현직 외교관이 직접 인도에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바탕으로 쓴 현장 보고서다. '지금 인도'를 보여주는 가장 현장감있는 책이라고 할까. ('가장'이라는 말은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관련 서적을 널리 읽어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럼에도 '가장'이라는 말을 붙이는 건 그만큼 오늘의 인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책은 인도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인도의 고유의 전통 문화와 그들의 삶의 가치관을 빠뜨리지 않으면서 깊이를 더해주고, 더불어 인도 속의 한국, 한국 속의 인도를 가로지르며 보여주기도 한다. 단순히 인도의 역사나 시대적 배경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책이 아닌, 굳이 분류하자면 여행서나 여행 안내서, 혹은 에세이쯤이 되겠다.  

  여기 '맛살라'라는 말은 인도의 향신료에서 나온 말로, "단순한 향신료의 의미를 넘어 인도 문화를 대표하는 용어가 되고 있다." 오늘날의 인도를 지칭하는 용어라고나 할까. 전통 인도 음악과 서구의 팝이 어우러지고, 끊인 우유에 짜이 잎을 우려내 설탕과 생강즙을 적당히 가미한 짜이도 있다고 한다. 그들이 먹는 음식이나 즐기는 음악, 또 건축 공학, 정치 등에 이와 같은 인도 특유의 '맛살라' 문화가 있다는 말이다. 책은 크게 1부 인도를 움직이는 힘, 2부 인도는 지금, 3부 인도 이모저모, 4부 인도에서 한국을 만나다, 로 나누어져 있다.

  '인도를 움직이는 힘'에서는 자동차 시장에서의 인도와 문화 사업, IT와 BT, 우주 산업 등을 이야기 하면서, 왜 인도가 이 분야들에 강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한다. 또 더불어 한국 사람들이 가장 관심있어 할 영어 교육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2부에서는 인도의 카스트 계급과, 그들의 연애와 결혼관, 일본과 인도의 외교 관계를 이야기하고, 3부에서는 인도의 영화와 종교, 음식 등에 대해서, 4부에서는 인도에서 자리잡은 한국 기업과 한국 전쟁, 한국 문화를 이야기한다. 각각의 작은 장에서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나 모습이 있어 글 한편, 한편이 흥미롭게 읽힌다.  

  인상적인 부분은, 인도 안에서도 힌두계와 무슬림계가 대립하며 힌두계의 무슬림에 대한 잔인한 학살극이 장기간 지속되었다는 것, 그로 인해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을 경찰이 모른 척하거나 심지어는 폭도에게 넘겨주었다는 부분이다. 마치 지난 촛불 정국 때 우리네 경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단지 죽거나 강간 당한 자가 없었을 뿐. 죽지는 않아도 멀쩡한 대낮에 회칼에 맞아 피 흘렸던 사람은 있었다. 그 잔인한 현장에 경찰들이 있었다고. 그네들은 인종으로, 우리는 당파성 혹은 명령으로 그 같은 일을 겪었다.  

  교육 측면에서는 "2006년에는 인도 정부가 23.5%로 되어 있던 하위 카스트의 대학입학 특례 비율을 49.5%로 확대하려는 과정에서 큰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다"고 한다. 사실상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하위 카스트들에게 그네들이 인도에서 차지하는 비율만큼 대학 입학 비율을 할당해주려고 한 것인데, 상위 카스트들이 크게 반발했던 것이다. 그때 극렬히 반대한 이들은 인도 유명 대학의 의과와 공과 대학생들이었다고. 교육의 정도에 따라 향후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현격히 다르고, 빈부의 격차가 큰 만큼, 그들은 기득권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것을 내놓는 데 인색하다. 반면 없는 자들은 내놓을 것이 없고 그들이 의당 받아야 할 것을 받으려 한다. 한편 이 부분에서 부러운 것은 정부가 나서서 그 비율을 할당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상황을 잘은 모르겠다만 개념이 제대로 박힌 정부다. 소위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정부에 몸담고 있을텐데, 그들이 나서서 하위 카스트들을 위해 비율 조정을 하려 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한국의 공직자들에게서는 절대로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정부에 서민이 없다보니 서민을 위해 정책을 만들고 현실을 바꾸려 노력하는 이들도 없다. 그들은 그들이 보는 것만이 현실이라고 믿으니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마라톤 경주에서 상위 카스트나 좋은 가문 출신의 자녀들이 이미 반환점에 서 있다고 한다면, 소외계층 자녀들은 출발선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불공정 게임과 같은 이치이다. 인도 교육 불공정 게임의 근저에는 대부분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소수 상류계급이 독점하고, 이를 대를 이어 세습하려는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현재 상황은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근본적인 대책이나 치유책이 없는 상황이다." 만약 롤즈가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역시 저자와 같이 말했을 것이다. 출발이 다른 불공정 게임에서는, 공정한 게임을 위해 약자들의 출발선을 앞당겨주는 등의 별도의 조치가 필요하다. 무지의 베일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생각해본다면 그들에게 그 정도의 '배려'를 해주는 것을 '혜택'이라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또 그 시작점이 다르다고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급제 사회인 인도가 한국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은 계급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계급이 눈으로 보이게끔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작점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데에 쓸데 없는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인식이 되어야 그 다음에 그럼 우리 약자들을 위해 출발선에서 배려를 좀 해주자, 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텐데,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아니 왜 출발선이 다르냐고 묻는다. 교육의 기회를 똑같이 주었고, 똑같이 공부하는 데 왜 출발선이 문제냐고. 이러니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차라리 인도처럼 계급제였다면 인식 논란은 불필요할텐데 말이다.

  저자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인도는 물론 한국에서도 교육의 균등한 기회 보장을 위해 국가의 책임, 사회의 책임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교육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는 국가와 사회라는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교육과 대학 발전을 이유로 고등학교까지 서열을 매겨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일부 한국 대학들의 태도는 인도의 비인간적인 교육 양극화를 연상시켜 씁쓸한 심경을 금할 수 없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있는 계급도 모자라 그 계급차를 더 벌이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정부는 상위 5%가 전체를 지배하는 사회를 바라는 듯 하다. 거기에 그 하위 95%가 적극적으로 동조해주고 있으니 어찌 속 터지지 않으랴.

  다른 나라의 모습을 빌어 우리네 모습을 관찰하는 건 필요하다. 그 나라가 비록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못살거나, 정치적으로 후진 국가라 하더라도 말이다. <100분 토론>에서 진중권이 사이버 모욕죄 이야기를 하면서 짐바브웨 사례를 꺼내려 하자 전원책 변호사가 아니 왜 다른 나라의 예를 비교하려 드느냐고 '호통'을 쳤는데, 납득이 안가더라. 왜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면 안되는건가. 진중권은 한국의 오늘이 짐바브웨의 과거보다 못하다는 걸 말하려는 데, 그게 짐바브웨 국민들을 모욕하는 거란다. 얼마나 기분 나쁘겠냐고. 진중권은 짐바브웨를 칭찬하려 했는데. 비교 국가가 어떤 대상이건 그게 꼭 소위 말하는 OECD 경제 선진국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한국의 교육을 인도와 비교하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앞에 인용했듯 인도는 적어도 정부가 나서서 그 격차를 줄이려 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이런 모습을 제발 좀 보고 싶다.

  

* 숙제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오늘날의 인도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것.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 관련 도서를 안 읽어봐서 패스.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인도 여행을 계획중인 이들, 오늘날의 인도에 대해 알고픈 이들.
마음에 남는 '책 속에서' 한 구절 :  위 리뷰에 인용했음. (별도로 올린 밑줄긋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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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1-18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민족분쟁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인도 하면 힌두교도와 무슬림의 유혈참극이 떠오릅니다.특히 펀잡 지방의 시크교도들이 힌두교도와 사이가 안 좋지요.네루의 딸인 인디라 간디도 시크교도인 자기 경호원에게 암살당했고 그 소식을 듣고 격분한 힌두교도들이 무고한 시크교도들까지 살해했구요.
그리고 우리는 걸핏하면 서구,미국,일본의 사례를 거론하는데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면 제3세계 나라들의 사례도 많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마늘빵 2009-01-18 23:02   좋아요 0 | URL
아 인도도 생각보다 민족 분쟁이 심각한 것 같더라고요. 이 책에서도 인도의 정치 상황에 관해서 상당 부분 할애하고 있는데, 그쵸 인디라 간디 얘기도 나왔어요. 간디 얘기는 전에 한겨레21 구독할 때 접했는데... 무섭군요.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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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만약 이 세상 모두가 눈이 멀어, 단 한 사람만 볼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유일하게 눈 뜬 자는 눈 먼 자들의 왕이 되거나 눈 먼자들의 노예가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눈 뜬 여자는 그들이 갇힌 수용소에서 이같은 고민을 한다. 지금 나만이 앞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나는 그들의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하여, 그들의 더러운 몸을 씻기고, 빨래하고, 때마다 먹을 것을 받아다 갖다 바치고, 그들이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는 등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여야 할 때 그녀는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들에게 꼭 말해야 할 순간이 올 때까지 남편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나는 앞이 보여요, 라고. 꼭 말해야 할 순간이란, 그녀 자신도 생각지 못했지만, 어쨌든 그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잠시 눈이 먼 적이 있었다. 몇년 전 라섹 수술을 했을 때인데, 그게 그렇게 고통스러운 건지 몰랐다. (지금은 수술 방법이 개선되어 나와 같은 고통을 느끼는 이가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나의 고통은 눈이 멀었다, 는 것으로부터뿐 아니라, 수술 이후에 겪어야 할 고통까지 첨가된 것인지만, 눈을 뜰 수 없다는 것, 앞을 볼 수 없다는 건, 그 자체로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올 때까지, 집에 와서 화장실에 가거나 밥을 먹거나, 듣고픈 음악을 들으려하거나, 이불을 펴거나 하는 등 이전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사소한 행위들이 내게는 하나의 과제였다. 잠시 눈이 멀어 - 눈을 뜬 이후에는 세상을 더 선명하게 밝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눈이 멀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아보이지만 - 책도 읽을 수 없었고, 티비도 볼 수 없었던 것은 물론, 내 앞에 차려진 한 끼 식사를 끝내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어떤 반찬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음식이 차려져 있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눈이 먼다는 것은,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없음과 동시에 세상의 추악한 모습도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지 않음이 경험하지 않음과 같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설 속에서 각자 운전을 하다가, 남의 차를 훔치다가, 눈에 문제가 있는 이들을 돌보다가, 약을 팔다가, 돈을 벌기 위해 어떤 남자에게 자신의 몸을 팔다가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 이들은, 비록 그들이 수용소에 갇혀있지 않다 하더라도, 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어 국가와 사회의 모든 기능이 일시에 멈춰버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경험하게 됐을 것이다.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 모두. 그들이 처한 상황은, 단지 어느 한 개인이 눈이 먼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서서히 눈이 멀고, 그들이 하던 모든 일들이 정지했다는데서 더욱 심각해진다.

  수용소는 하나의 사회와 같다. 먼저 온 자들과 나중에 온 자들, 주어진 좁은 공간과 이 안에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려드는 많은 사람들, 맛은 차치하고라도 부족한 식량과 배고픔에 굶주리는 많은 사람들, 무기를 지닌 자와 그렇지 않은 자, 남자와 여자, 늙은이와 젊은이, 원래 장님이었던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 기타 등등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을 여러 기준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때론 여러 기준이 한데 묶여 상황이 발생한다. 수용소 안에서나 밖에서나, 눈이 멀었을 때나 그러지 않을 때나, 무기를 지닌 자는 언제나 왕이 되고, 그가 무기를 잃는 순간, 그는 더이상 왕이 될 수 없다. 눈이 멀었다 하여 성욕이 감퇴하는 것이 아니며, 그들에게 닦친 혼란을 다스리고 일상적인 평온함을 되찾은 뒤에는, 우리들이 느끼는 모든 기본적인 욕구들이 뒤따라 온다는 사실, 힘을 가진 자들은 힘이 없는 자들의 재산과 몸을 빼앗을 수 있다는 사실, 그건 변하지 않다.

  현실에서 눈 먼 자들은 약자로서 대우받아야 하지만,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눈 먼 자들은 현실에서 눈을 뜬 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이 정상으로, 눈을 뜬 자가 비정상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눈 뜬 자가 비정상이라고 하여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는 주인이 되거나 노예가 되길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쪽을 택할 수도 있다. "사모님은 눈이 멀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사모님이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고 우리를 조직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거잖아요, 나는 명령을 내리지 않아요, 그저 최선을 다해 조직하려 할 뿐이죠, 나는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눈일 뿐이에요, 자연스러운 지도자지, 장님의 나라에서는 눈을 가진 사람이 왕이니까, 검은안대를 한 노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눈이 보일 때까지는 내 안내를 받도록 하세요."  

  눈 먼 자들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모욕의 단계를 내려갔다. 그걸 다 내려가서 마침내 타락에 이르렀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제 개인의 생존일 뿐이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그들은 지금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겪을 수 있는 온갖 수치와 모욕을 경험했고, 그들이 누리던 사회적 지위는 물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스스로 짓밟았다. 더이상 인간이 되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오로지 눈 뜬 한 사람만이 그 모든 것을 눈으로 경험했다. 그리고 아파했다. 눈을 뜬 것은 더 이상 그에겐 '특별한 혜택'이 아니다. 그것은 그에게 더해진 고통이다. "어떤 면에서는 나도 눈이 멀었지, 당신들의 먼 눈이 내 눈도 멀게 한 거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면 나도 더 잘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  

  소설에서 눈 먼 자들이 보이는 모든 행동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바를 상징한다.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에요." 라는 의사의 말은, 진리다. 사라마구는 두 눈 멀쩡히 뜨고 있으면서 보이는 것을 보지 않으려 하는 세상 사람들을, 현대인들을 풍자하고 있다. 진짜 눈이 먼 사람들은 우리들이다. 소설이니까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단 한 명의 눈 뜬 이는 다른 이들을 지배하지 않고 그들을 돕는다. 현실에서 대다수의 눈 뜬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고통 받는 이들에게 관심이 없다. 지금도, 곳곳에서는 추위에 떨고, 굶주리고, 목적을 알 수 없는 전쟁으로 고통받는다.  

  그들은 그들이고, 우리는 우리다. 이게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내 고통은 고통이지만, 타인의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오로지 내가 경험하는 것만이 내게 고통으로 다가올 뿐이다. 커다란 국가적, 사회적 문제뿐 아니라 아주 가까운 주변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상처받고 고통받으며 말 못하는 이들이 있다. 크건 작건 이들은 우리 주위에 분명히 있으며, 그들을 보지 않는 한, 우리는 두 눈을 뜨고 있지만 눈이 멀었다. 한편, 눈이 뜬 자들은 눈이 먼 자들보다 더 고통스럽다. 우리가 봐야 할 것들이 단지 눈을 뜨고 있다고 해서 언제나 보이는대로 믿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두 눈으로 사물을 제대로 보려면 우리는 알고, 깨닫고, 느껴야 한다. 

  "우리가 대체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사물의 질서가 뒤집혀 있어요, 늘 죽음을 나타내던 상징이 삶의 상징이 되어버렸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다. "자 이제 철학과 마법은 그만하면 됐으니, 손을 잡고 계속 살아가도록 해요."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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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 2009-01-18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책은 반복해서 자주 보는 편이지만, 이 책은 그럴 수가 없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다를 게 없어서 너무 무섭고 우울하거든요...

마늘빵 2009-01-18 01:44   좋아요 0 | URL
아, 이 책은 단순히 소설로 재미삼아 읽어도 재밌지만, 작가가 드러내는 메시지가 참으로 마음에 와닿고, 그걸 눈 앞에서 경험하는 듯이 보여주는 게 더 아프게 하더군요. 오웰의 1984년, 카프카의 심판, 카뮈의 페스트와 비교를 하는데, 오웰 빼고는 읽어보지 못했어요. 나머지 심판과 페스트도 읽어보려고 보관함에 넣어놨답니다. ^^ 이어서 눈뜬 자들의 도시도 읽고 있어요.

드팀전 2009-01-18 0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보일 적에 나는 오히려 헛디뎌 넘어지곤 했다....세익스피어 <리어왕>
'두 눈을 온전히 뜨고 살아가기 위하여'에 비하면 재미없지요 ^^ 두 눈을 뜨려면 눈을 감고 오히려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될 지도 모르지요. 말장난같지요..^^ 역설은 진리를 만드는 한 방법중에 하나일겝니다.doxa와는 다른 어떤 진리의 조각이 있어요.

제가 요즘 정신병 증상이 아닌가 심하게 걱정되고 있답니다.자가진단하면 분명히 초기 증상은 있는 것 같습니다.그러려니 하시구,,,푹 쉬어야되는데...

마늘빵 2009-01-18 09:21   좋아요 0 | URL
새벽에 깨어계셨군요. 아직 주무시지 않으신건지, 아니면 일찌감치 깨신건지. ^^ 저는 내내 자다가 밤에 깨서 새벽에 잤습니다. 이런 시간도 아주 오랫만이었죠. 얼마전 세익스피어 <햄릿>을 읽으셨더라고요. 햄릿의 그 대목은 제가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쵸, 때로 역설은 진리를 드러나게 해주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인 건 맞습니다.

요새 직장 안팎에서 많이 힘드실 줄 압니다. 결국 KBS에서 몇몇을 징계하기에 이르렀는데, 부디 몸 조심하시길...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아무리 내 가족 이외의 것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 하더라도 세계의 절반, 좀더 엄밀하게는 지구의 남반구 국가들에 가난하고 먹지 못해 죽어가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다 알지만 역시, 내 문제가 아니고, 내 가족, 나아가 내 친구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별다른 관심을 쏟지 않을 뿐이다. 솔직히, 나도 '부정의'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 하면서도 관련된 신문기사나 책을 읽거나, 뉴스를 보지 않으면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범인 중 한명이다. 그러나 누가 물으면 나는 대답할 수 있다. 지구의 남반구, 특히 아프리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고.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분명 지구 반대편에는 먹다 남긴 음식이 산더미 같이 쌓여만 가고, 음식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왜 지구 반대편에서는 못 먹어서 죽어가는 이들이 그 반대편의 음식쓰레기만큼이나 많을까. 유엔이며, 세계식량기구며, 기타 등등의 온갖 NGO단체들이 활약하고 있는 이 시점에도 왜 아프리카에서는 사람들이 굶어죽어갈까.

  문제를 인식하면 해결책이 나올거라 생각하지만, 이 책을 읽고는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그러면 한쪽의 남는 음식을 다른 한쪽에 가져다주면 되지 않느냐고 간단하게 말하겠지만, 이건 매우 무식한 발언이다. 서양사람들이 즐겨먹는 햄버거나 초코렛, 땅콩쨈 따위는 이들에게 트럭으로 가져다준다고 해도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하다못해 잠깐 체해서 몸이 안좋은 우리들도 다음 날 바로 밥을 먹기보다는 죽이나 따뜻한 국을 찾는데, 오랫동안 굶어 몸이 허약해진 이들에게 땅콩쨈이나 초콜릿 따위를 먹으라니. 이 책에서 저자는 영국(?)의 한 수송기가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 먹을 것을 잔뜩 떨궈주는 장면이 신문에 실렸는데, 당시 언론은 이 장면을 두고 "OO에도 구호의 손길이!"라는 멘트를 날렸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 꾸러미 안에 이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프리카는 오랜 식민지 생활을 했고, 독립국가로 선 지금은 부족 간의 피튀기는 싸움 때문에 국제기구가 그곳에 발을 디딜 수 없는 형편이다. 한 번은 그들을 도우러 간 어느 단체 직원들을 태운 비행기 한 대가 격추당해 전원 사망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을 비롯한 여러 기구들은 그들을 도우러 그곳에 간다. 목숨을 걸고. 

  식민지였던 아프리카는 당시 땅콩을 재배하는 곳은 땅콩만 재배하고 차를 재배하는 곳은 차만 재배하는 등 주로 한 가지 작물만을 집중 재배하고 있었다. 그들을 지배한 국가가 그런 환경을 강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먹으려야 먹을 음식이 없다. 썩은 물을 마시며 죽어가고, 먹을 작물을 생산할 수 없어 죽어가고, 바다 밖으로부터 여러 국가나 국제 기구가 도와주려고 해도 부족 간 전쟁으로 쉽게 도움의 손길을 주기 힘든 상황이다. 국제 기구가 도와준다고 해도 일시적일 뿐 이들이 스스로 기아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세계 식량 시장 또한 이들의 굶주림을 지속시키는 요인이다. 시장에서의 식량 가격은 절대 이들에게 우호적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부자 국가들과 거대 기업들은 돈이 없으면 남는 식량을 썩히거나 버리는 한이 있어도 절대 이들에게 공급해주지 않는다. 그들은 '구호천사'라는 수식어보다는 돈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 식량 시장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에 의해 움직이는데, 외견상 가장 많은 도움을 줄 것 같은 이들이 따지고 보면 가장 악랄하다.

  왜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지는, 먹을 것 없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 시대에 아직도 지구 반대편에서 굶어죽어가는 이들이 많은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되는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우리는 ARS 버튼을 눌러 천원씩 기부하거나, 아니면 좀 더 마음을 쓰는 이들은 국제 단체에 정기적으로 돈을 넣음으로써 스스로의 마음의 짐을 덜고 - 그나마 이 정도도 안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 있지만, 이 책을 보면 그들의 기아는 단순히 돈이나 먹거리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급자족 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 외에는 진정한 출구가 없다"고 말한다. 말은 쉽고, 누구나 동의하는 명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이어 말한다. "무엇보다도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못하게 된 살인적인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엎"고, "인간의 얼굴을 버린 채 사회윤리를 벗어난" 시장원리주의 경제(신자유주의)와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폭력적인 금융자본을 깨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 누가 할 수 있는가. 수렁에 빠진 88만원 세대를 구할 수 있는 건 결국 88만원 세대의 연대와 기득권 세대의 양보이듯, 이들을 구할 수 있는 것도 개념있는 거대국가들과 기업,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그들 자신의 연대로 수렴된다. 이 말은 곧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는 말과 동의어가 된다. 그들이 스스로 양보할리도 없거니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똘똘 뭉쳐 연대를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책엔 자립경제를 이룩한 한 인물이 등장한다. 결국 친구의 손에 살해당하고 일찌감치 생을 마감했지만 상카라는 인구 1000만으로 구성된 극도로 가난한 부르키나파소를 살려냈다.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자주관리정책을 채택해 자치제로 전환하고는 주민들이 스스로 관리도 뽑고 지역을 다스리게 했다. 도로건설, 수도건설, 보건의료 등의 서비스를 실시하도록 하고, 대규모 철도 사업을 벌였다. 주민들을 보수가 없는데도 쌀 몇 줌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또한 인두세를 폐지하여 가족 경제를 되살렸고, 토지를 국유화해 수요에 따라 재분배했다. 4년도 안되어 농업생산량이 크게 늘어나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경제체제가 되었다. 그러나 외국세력과 결탁한 군부세력에 의해 살해당했고, 그를 살해한 콤파오레가 대통령이 되었다. 부르키나파소는 그냥 보통의 아프리카로 돌아갔다고 한다. 

  암울한 결론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어떤 문제점들이 시정되어야 하는가는 알 수 있었다. 이제 빈곤은 단순히 돈와 식량지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무엇을 할지는 세계 각국에 흩어진 아프리카에서 굶어죽는 이들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달렸다. 돈 한푼에 마음을 놓기보다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와 싸우는 쪽이 이들의 빈곤을, 기아를 해결하는 빠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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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4 00: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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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4 08: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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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4 07: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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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4 09: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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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4 15: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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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medusa 2009-01-07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ver Opencast의 "風林火山의 분야별 대표 도서 소개"(http://opencast.naver.com/BK175)라는 캐스트의 캐스터 風林火山이라고 합니다. 이 글을 제 캐스트에 발행했는데, 혹시라도 발행을 원치 않으시면 '캐스터에게 한마디'에 적어주시거나, itmedusa@gmail.com으로 메일 주세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마늘빵 2009-01-08 09:21   좋아요 0 | URL
아 아녀. 사이트 들어가봤는데 무슨 사이트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대충 봐서는 발행(?)하셔도 될 듯 합니다. ^^
 
거꾸로 생각해 봐! - 세상이 많이 달라 보일걸
홍세화 외 지음 / 낮은산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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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우 빠르게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출퇴근 길에 주로 책을 읽는 나는, 이 책 한 권이면 퇴근길까지는 충분하려니 생각했는데, 걸어가면서도, 버스에서 손잡이를 붙잡고도, 지하철에서 사람들 틈에 끼어서도 책장을 덮을 수 없었다. 몰입했다. 회사에 도착하기 전 결국 다 읽어버렸다. 이렇게 빨리 읽어도 되는 건가 싶었다. 그 바쁜 출근길 와중에도 가슴이 몇 번이나 먹먹해졌고 코끝이 찡해졌다. 세상이 어쩜 이럴 수가 있을까 싶었다. 부정하고 싶지만 현실이었다. 

  맨 처음 촛불을 든 여고생들과 그의 친구들에게 바치는 책이다. 비슷한 많은 청소년 서적이 나와있지만 - 우석훈은 <88만원 세대>와 <촌놈들의 제국주의>에서 10대 독자를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지만 청소년들이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 이만큼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승자독식, 공정무역, 기술과 행복, 시와 삶, 공동체, 평화 등 어려운 사회과학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핵심만 간략하게 추려서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이 책은 불온서적이다. 국방부 기준에 따르면. 아직까지 정신 못차리고 뻘소리 내뱉는 MB의 기준에 따르면, 이 책은 분명 불온서적이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아이들에게, 한창 공부해서 일류대학 가야할 아이들에게, 한창 공부해서 국가 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잠재적인 '인적자원'들에게, 이 책은 절대 읽어서는 안되는 불온서적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중고등학생들에게 강력히 추천하겠다. 그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 중 하나로, 그 중 으뜸으로 추천하겠다. 왜냐하면 이 책엔 우리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감추고자 하는 현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많이 달라보인다. 교과서가 의심스럽다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믿지 못하겠다면, 왠지 세상은 지금 우리가 달달 외우고 있는 지식과는 달리 전혀 딴판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면, 이 책이 만족스러운 답을 제시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00분 토론에서 활약을 펼친 수의사 우석균은 신자유주의와 FTA가 우리를 어떤 상황으로 몰고가는지를 깔끔하게, 그러나 처절하게 보여준다. 얼마 전 경제 대안 시리즈를 끝마친 우석훈은 그가 내놓은 네 권의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략히 줄였다. 강수돌은 우리가 먹고, 입고, 마시는 것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가를 알려준다.

  이른 아침부터 처 울고 싶었다. 여기 필자로 참여한 이들은 각기 다른 주제로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처절한지를 꼬집고 있었다. 너무 적나라해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나 많은 부정의와 부도덕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라니. 사람들은 이 땅이 싫으면 이민을 가야겠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미 진실을 안 이들마저 이 땅을 떠나버린다면 남은 이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 좋자고 피하기보다는 부정의의 시정을 함께 요구하며 하나씩 바꿔나가는 게 가장 현명하고 빠른 길이다.

  홍세화는 '추천하는 글'에서 간단한 명제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이게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 어른들이, 그리고 앞으로 세상에 나와 현실을 경험해야 할 아이들이 취해야 할 기본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주어지는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꾸 의심하고 거꾸로 생각해야 한다. 잠시 멍 때리고 있으면 순식간에 우리의 머리와 가슴은 세뇌되고 조종 당한다.

  "1) 나는 생각하는 동물이다. 2) 그렇지만 태어날 때 생각을 갖고 태어난 건 아니다. 3) 지금 나는 무척 많은 생각을 갖고 있다. 4) 그 생각들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진 게 아니며 내가 선택한 게 아닐 수 있다. 5) 그럼에도 나는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을 고집하면서 살아간다. 6) 더구나 내 생각 중에 잘못된 게 있어도 나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7) 그러므로, 나는 끊임없이 거꾸로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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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0-12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엔 10대가 둘이나 있으니 필독서로 꼽아야겠군요.
우리 현실이 구역질나게 싫어도 우리가 살아내야 할 나라고 세상이니까요.ㅜㅜ

마늘빵 2008-10-12 09:12   좋아요 0 | URL
^^ 저도 가르쳤던 애들 중 가끔 연락오는 애들이 있는데, 걔네들한테 선물해주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