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출판마케팅연구소 요청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출판 격주간지 "기획회의" 325호(2012.8.5.)에 실렸습니다. 분량을 맞추느라 두 배 이상의 글을 압축하여 줄였습니다. 실린 글에는 조사가 바뀌면서 주어가 달라져 잘못된 부분이 있으니 아래 글을 참고해주세요.



편집자론 논쟁에 관하여: 편집자로 산다는 것, 그리고 편집자로 일한다는 것    



  지난 5월 김학원, 정은숙, 이홍, 변정수, 강주헌, 정민영 님이 쓴 "편집자로 산다는 것"이 출간되었고, 이 책에 대한 김류미 님의 서평과 그에 대한 변정수 님의 답, 1년차 편집자의 글, 민음사 장은수 대표의 서평에 이어 북에디터, 트위터 등을 통해 편집자론 논쟁이 산발적으로 벌어졌다. 여기서는 ‘편집자로 사는 것’을 주장하는 변정수 님과 ‘편집자로 일하는 것’을 말하는 장은수 님의 편집자론을 살펴보려 한다.


  변정수 그리고 장은수 님의 편집자론


  "이제 편집자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자신의 삶도 제대로 편집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정신이 담긴 텍스트를 감히 편집할 엄두인들 낼 수 있을까.", "편집자로 살고 있지 못한 사람이라면, 정작 책을 만들 기회를 아무리 많이 주어도 아까운 종이로 '책'이 아니라 '폐지'만을 만들어내는 게 고작일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편집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편집자로 사는 것'이다."


  변정수 님은 편집자는 책이 탄생하기까지의 모든 과정과 이후의 판매량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편집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사업 단위"라는 것.


  반면, 장은수 님은 "편집자는 지식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직업 중 하나”이며, “출판 자본에 고용되어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전문가일 뿐"이라며, "출판사가 편집자에게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출판사의 잘못이지 스스로 브랜드가 되지 못한 편집자의 잘못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아가 개개인이 모두 브랜드인 편집자로 이루어진 출판사는 공상에 불과하다고 덧붙인다. 그에게 편집 노동은 "높은 학습 능력과 시행착오의 축적을 통해 숙련되는 일상의 여러 노동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장은수 님은 ‘편집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편집자로 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편집자로 산다는 것과 편집자로 일한다는 것의 차이: 변정수 님을 중심으로


  편집자로 사는 것과 편집자로 일하는 것. 후자가 회사에 취직하여 일하는 다른 직업인과 같다면, 전자는 그 이상을 요구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장은수 님의 글을 비판하는 분들이 안 보이는 반면, 변정수 님의 글을 비판하는 이들은 많다. 변정수 님은 이상적인 편집자상이 이렇다,라고 말하지 않고, 편집자는 이러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나는 변정수 님의 주장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이때의 동의는 그것이 '이상적인 편집자상'임을 전제했을 때이다. 모든 편집자가 변정수 님의 말대로 '편집자로 살' 수는 없으며, 다수의 편집자들은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감수하면서 제 임무를 다한다.


  변정수 님은 '제 임무를 다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고 되묻지 않을까 싶다. 그분의 입장에서 편집자가 제 임무를 다하는 것은 오탈자를 찾거나 비문을 바로 잡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편집자의 총체적 인격을 책에 실을 것인가’와 관련이 깊다. 그러나 인정하자. 다수의 편집자들은 쏟아지는 원고를 짧은 일정에 맞추어 '생산해내야' 한다. 보통 직업인으로서의 역할만 하기도 버겁다. 책에 치명적 오류가 있고, 왜 이 원고를 이렇게밖에 다듬지 못했을까 의문이 생겨도 이는 편집자가 아닌 출판사 대표의 책임이다.


  변정수 님은 대표의 책임인 동시에 편집자의 책임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편집자가 원고를 장악하지 못했고, 엉망인 제품을 생산했다고. 그렇다. 하지만 편집자가 처한 조건이 나아지지 않는 한 결과물에 대해 책임질 수는 없으며, 편집자가 자신이 만든 책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해도 이는 그가 처한 현실에 기인한다. 또한 편집자가 만든 제품에 책임을 물으려면, 기획과 저자 섭외부터 일련의 모든 과정을 자신의 판단대로 진행했을 경우여야 한다.


  소비자는 질 좋은 제품을 사고 싶고, 편집자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 출판사 대표도 그렇다. 그런데 일정에 맞추어 급하게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현실이다. 내용 오류가 없으면 다행이고 문장이 거칠거나 오탈자가 있어도 애교로 넘어가야 한다. 독자는 불만을 표하고, 대표는 편집자를 혼낸다. 편집자는 토로할 곳이 없다.


  어떤 편집자들은 괜찮은 노동 환경에서 일하겠지만, 어떤 편집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면접 자리에서 연봉 1,500만 원을 불렀다는 인문 출판사, 표정이 어둡다며 또는 출산 예정이라며 해고하는 출판사가 있다. 연차가 없거나 있어도 못 쓰는 출판사는 수두룩하고, 작업 속도가 느리다며 해고하는 출판사도 있다. 다른 출판사로 이직한 뒤에도 전 출판사의 관계자로부터 말이 전해지며 재차 해고 당하는 사례도 있다.


  이들에게 '편집자로 산다는 것'은, 출근 시간부터 퇴근 시간까지 위에 언급한 삶을 견디는 것에서 나아가 삶 전체를 '살아내야' 하는 것이 된다. 변정수 님이 말한 '편집자로 산다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해도, 그게 현실이다. 물론 변정수 님도 편집자가 처한 현실을 알고 있다. 변정수 님은 "편집자들이 수도 없이 저지르는 실무적인 판단 착오의 이면을 꼼꼼히 들춰보면, 바로 이런 식(동네 구멍가게만도 못한 주먹구구식 경영)의 대책 없는 낙관이 안일한 판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하며 편집자들이 처한 환경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시, 편집자로 산다는 것


  변정수 님의 편집자론은 편집자들을 불편하게 한다. (이 불편함은 나쁘지 않다. 사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장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편집자들의 부족한 부분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때문에 편집자들은 자신들을 월급 도둑 취급한다거나 대우는 제대로 안 해주는 현실을 무시하고 요구만 많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변정수 님의 글에 내가 생각하는 편집자상이 들어 있다. 그런데 어떤 직업인도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나는 변정수 님이 주장한 바를 '편집자로서의 정체성'이 아닌 '이상적인 편집자상'에 맞추면 어떨까 싶다. 장은수 님과 변정수 님의 말대로 편집자는 '만들어진다'. 변정수 님은 편집자는 타고난다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편집자가 되기 이전에 축적한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논쟁 글에서 변정수 님은 다시 이렇게 서술했다.


  "편집자는 오로지, 자신의 삶에 대한 치열한 긴장과 근본적으로 낯설고 새로운 세계일 수밖에 없는 타인에 대한 존중어린 관심이 체화되고 내면화되는 지속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신입 직원이 편집자로서 축적한 경험과 노력으로 변정수 님이 말한 '편집자'로 성장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본다면 편집자로 일하는 것과 편집자로 사는 것은 결국 같은 지점을 향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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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사람 님께 드리는 편지,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들


  빵가게 재습격 님을 향해 쓰셨지만 저 역시 많이 언급되어 있어 한 마디 붙입니다. ^^ 우선, 잘 읽었습니다. 굉장히 긴 글이지만 천천히 차분히 읽었습니다.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바로 이전에 쓰신 글에는 동의도, 공감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좀 전에 빵가게재습격 님이 쓰신 글에서와 같이 그 글은 '알라딘의 적립급 제도'에 대해서 언급하는 글이 아니라, 그 제도를 재료로 삼아 '이전의 상처'를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적립금 제도가 아닌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이후 일이 커지겠다 싶었습니다. 


  제가 많이 언급되어 있어 그냥 보고만 지나가지는 못하네요. ^^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글에 상처를 입는다는 이전 글의 표현 안에는, 저도 포함되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누군가 개인적인 서운함을 부당함으로 치환하여 생각하고, 공공의 문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합니다. 이번에만 해당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문제제기자는 무엇 때문인지 화가 많이 나 있고, 감정 표현을 격하게 합니다. 위로를 하고 어루만지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만 있으면 그 분의 문제제기에 잘못된 점이 없고, 옳다는 결론으로 끝나게 됩니다. 때문에, 위로를 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 그 문제를 따져보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제 판단이 옳고 그름을 떠나 후자의 역할을 그간 이 공간에서 주로 했고, 어떤 사명감이나 내가 이 문제를 끝내버리겠어, 라는 마음이 아니라, 그렇다면 한번 문제가 무엇이고, 원인이 무엇인지 따져보자, 하는 생각으로 정리를 해나갑니다. 


  제 분석과 판단만이 옳다고는 말 못합니다. 하지만 백지 상태에서 생각해보려고 애씁니다. 내가 그 대상을 싫어하는가, 그에게 서운한 마음이 있는가, 그 사람과 친한가, 여부를 떠나서 생각하고 판단하려고 애씁니다. 물론 그렇게 보지 않는 분도 계시겠지요.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어느 한 쪽에게 도움이 되기 마련입니다. 이번의 경우 알라딘 사측이 되겠지요. 사측에서 뭘 받아 먹은 적도 없고, 특별히 저를 챙겨주는 것도 아닌데 -지니의 램프를 수십번 문질렀지만 어제서야 비로소 알사탕 100개를 받았을 뿐입니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지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문제제기는 실체가 없는데 희미한 느낌을 잡아 선명하게 칠하고, 실체를 만들어, 이에 대해 분노하는 것 같았습니다. 백지 상태로 돌아가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그 문제에 대해 살펴본 거지요. 


  매 논쟁에서 제가 개입하게 되는 지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뭔가에 대해 불만이 있고 못마땅하다면, 그 뭔가가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알아봤는데 문제가 있다면 개선점을 제안하면 되고, 아니라면 왜 아닌지를 이야기하자는 것. 지난 번 마녀고양이 님에 대한 글도 개인적으로 마녀고양이 님께 무슨 서운함이 있거나 못마땅해서 쓴 글은 아닙니다. 교류가 아예 없었거나 댓글 한두 차례 왔다갔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있다 해도 없다시피하거나 하니까요. 모르던 사람이 쓴 글에 결과적으로 상처를 받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럴 의도는 없다 해도 가능성을 점쳐볼 수는 있는 부분이죠. 하지만, 그런 글을 안 썼다면-겨냥해서 공격하거나 하지 않고 문제제기한 부분에 대해 따져보는 글이었죠- 그대로 "알라딘은 못된 기업이다." 는 결론으로 끝났을 겁니다. 알라딘을 옹호하려고 한 게 아닌데 본의 아니게 이번까지 두 차례나 옹호하는 셈이 됐네요. 


  글을 쓸 때 조심하는 점이, 내 글에 오해할 부분이 있거나 내 의도와 달리 해석할 부분이 있는가 입니다. 이 부분을 아예 없애기 위해 분명하게 서술하는 편이고, 쓰고 나서도 재차 읽어보며 잘못 해석할 만한 요소를 없앱니다. 그런 부분이 생기면 논쟁이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니까요. 그래서 이번에도 서두에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사측을 옹호하려는 글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는 표현을 썼죠. 물론 그렇게 쓰고 한쪽을 공격하거나 한쪽을 옹호하는 글을 쓴다면 쓰나마나한 문장이 되겠죠. 실제로 누군가를 공격하려 했거나 누군가를 옹호하려고 했는지는 뒤에 이어지는 글을 끝까지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판단은 독자가 하면 되겠죠. 


  알라딘에 머물면서 누군가를 향해 욕설을 내뱉거나 그 사람이 미워서 의도적으로 몰아내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혹 저와 하이드 님의 관계를 떠올리는 분이 계실지도. ^^ 하이드 님을 겨냥해서 글을 쓴 적은 있죠. 하이드 님이 개인적인 취향을 근거로 다른 사람을 못마땅해 하는 글을 자주 남긴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실제로 그 때문에 떠난 사람도 몇몇 있고요. 혹자는 하이드 님의 그런 말과 행동을 쿨하고 스타일리쉬하다고 여기는 것도 같습니다. 그때에도 하이드 님이 싫어서 몰아내려고 했던 건 아니죠. 다만, 반복되는 언행에 대해 지적을 하고 싶었을 뿐. 누군가가 누군가를 지적할 권리가 있는지 여부는 또 별개의 문제지만, 누군가가 누군가의 부당한 언사 때문에 남몰래 울거나 조용히 떠난다면 이는 문제가 있다고 봤기 때문에 개입했습니다. 이 일로 다시 하이드 님과 논쟁하고 싶지는 않고요. 하이드 님이 이 글을 보신다면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여겨주면 고맙겠습니다. 


  특정인을 겨냥하지 않아도 비판 글은 누군가를 아프게 합니다. 그 사람을 염두에 둔 것도 아닌데 읽고서 아파하는 경우도 있죠. 비판 글을 읽으며 자신의 과거 행태를 살펴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쓴 글을 읽고 저도 나는 과거에 그런 적이 없었나, 내가 이 때 이렇게 행동했던 건 잘못이 아니었나 살필 때가 있습니다. 명백히 그렇게 느낀다면 이 공간에서 대놓고 사과를 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떠난 바람구두 님께 제가 큰 실례를 했고, 사과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백번 잘못한 것입니다.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지난 번에 마녀고양이 님께서, 그리고 이번에 스텔라 님께서 제 글 때문에 아프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픔과 동시에 스스로 화를 내고 있는 이유가 올바른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도 제 글의 내용이 옳음을 전제하는 건 아닙니다. 제 글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고, 동의하지만 마음이 아플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제 글의 내용이 옳고 그름을 떠나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는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글로 상처를 받을 수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고자 한 글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싶고, 문제제기자와 이 공간에 함께 있는 분들이 해당 건에 대해 다시 돌아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랐을 뿐입니다. 


  상처를 어루만지는 글과 문제에 대한 비판 글은 함께 하기 어렵습니다. 성격이 맞지 않고, 논점이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위로하는 사람과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 비판하는 사람 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로는 가까운 분들의 몫으로 돌리고, 저는 후자의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이상 한사람 님이 쓰신 장문의 글을 읽고 생각해 본 바를 정리했습니다. ^^


덧) 


한사람 님 쓰신 글 중에,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 인문 엠디 님이 말하면 더 좋겠지만, 인문 엠디 님이 김상봉 샘의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나 기존에 한나 아렌트의 책을 미는 것은, 회사가 시키기 때문이 아닙니다. 회사 수익을 증대하고자 한다면 다른 자기계발서나 좀 더 팔릴 만한 책을 미는 게 낫습니다. 출판사에서 돈을 받은 것도 아닐 테고. 인문 엠디의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선택입니다. 다른 인터넷 서점 엠디들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알라딘 엠디들이 페이퍼를 써서 홍보하는 책은 개인의 취향이 기준이 아닌가 합니다. 


두 번째, 마이리뷰나 마이페이퍼는 알라딘 직원이 임의로 '알라딘 마을 메인'으로 보내지 않고, 추천 수나 댓글 수에 따라 자동으로 올라갑니다. 쓰신 글 중에 알라딘 직원이 글을 선택하여 보낸다고 서술하신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세 번째, 빵가게 재습격 님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하신 내용 중에 빵가게 재습격 님의 격앙된 말투나 단어 선택이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동감합니다. 쓰신 내용 중 성매매 여성들이 전세 버스에 탄 것을 위안부 할머니들에 비유한 김구라에 빗대 빵가게 재습격 님을 언급하신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비유가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사안의 크기와 심각성이 일단 많이 다르고, '표현의 문제'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 같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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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12-04-19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아프님을 좋아할수 밖에 없다니까요.잘 읽었어요. ^^

마늘빵 2012-04-19 21:21   좋아요 0 | URL
^^ 헤헤.

재는재로 2012-04-19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공감이 가는 글이네요

마늘빵 2012-04-19 21:21   좋아요 0 | URL
어제에 이어 오늘 또 뵙네요. ^^

하이드 2012-04-19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나도 잘 읽었어요. 그리고, 나는 아마 쿨하고 스타일리쉬한게 아니라, 냉소적이고(나쁜뜻으로), 할 말을 담아두지 않는 성격인게죠. 아주 가끔 하나 하나 따지면서 글을 쓰지만, 그 후의 일은 나몰라라. 하는 게으르거나 비겁할 포즈를 취할 뿐이고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니 변하는 것도 있네요. (나이들어서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구요 ㅡㅜ)


마늘빵 2012-04-19 21:22   좋아요 0 | URL
^^ 하하. 저도 뭐 나이 먹어서 변한다는 말 싫어합니다.

다락방 2012-04-20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는 예뻐. 예쁜 아프에요. ㅎㅎ

마늘빵 2012-04-21 08:07   좋아요 0 | URL
헤헤. ^^

Kir 2012-04-2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꾹, 잘 읽고 갑니다^^

마늘빵 2012-04-21 08:07   좋아요 0 | URL
넵, 감사.

마녀고양이 2012-04-21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안녕하세요.
지난번 건에 대해서 해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틀림없이 제 입장에서는 오해의 부분이 있었다 생각합니다.
글의 전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의견 수긍을 했는데, 글의 앞부분에 있어, 제가 좋은 말 들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악플이 들어가니 알라딘 회사측에 문제 제기를 했다는 부분이 속이 상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좋은 말 듣는게 좋습니다. 그 부분이야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처음 알라딘의 뉴스레터에 메인으로 올라갈 때는 아무 반응이 없다가 그다음 '곽노현' 교육감 관련 글이 메인으로 올라갈 때 모르는 분들의 비방글이 올라오기 시작하여 그제서야 제가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는 것과 이후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들, 그리고 저작권의 범위 관련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솔직하게 두려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프님의 첫 가정 사항은 마치 제가 객관적이지 못 하고 중심을 잡지 못 하는 이미지로써 보여질 가능성이 크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는 다른 글들로 인해 이미 정신을 차리지 못 하는 상황인지라, 아프님께 그것을 문의하고 말씀드릴 여력이 없었습니다. 솔직하게 서운하기도 했지요..

또 한가지, 그 글이 이달의 당선작에 선정되었을 때,
제 입장으로 본다면 이미 해결되어 잊고 싶은 일에 대해서 다른 분들이 더욱 많이 볼 수 있는 당선글로써 한달을 띄워지게 되는 상황이 되었고 너무 불편했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해서 아프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으셔서 그 역시 서운했습니다. 친한 입장이 아니니 어떤 기대를 하면 안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많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시는 분이라고 생각했기에 제 입장에 대한 고려해주실지도 모른다고 내심 기대가 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이제 아프님의 의도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했기에
용기를 내어 제 입장을 뒤늦게나마 전달드리며, 페이퍼의 내용도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2012-04-23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이 글은 최초 문제제기자를 공격하거나 알라딘 사측을 옹호하기 위한 글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나는 최초 문제제기자가 던진 질문들을 중심으로 이곳에서 8년 정도 활동한 서재인으로서 생각을 정리하였다. 동조하고 공감하고 따뜻하게 덧붙이는 글도 좋겠지만,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합리적으로 따져보고 생각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 글의 목적은 후자에 있다. 


  나는 왜 책을 읽고 (알라딘에서) 글을 쓰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이 공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자신이 어떤 책을 읽은 후의 소감을 남길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다. 책을 읽고 난 뒤 스스로 정리할 곳이 필요했거나 나처럼 기억을 보존하고자 글 창고처럼 쓰려고 들어오지 않았을까. 자신과 같이 책을 읽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하기 위해 자리를 잡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서재를 개설하고 글을 썼는데 어느날 내 계정에 적립금이 들어왔다. 함께 메일도 왔는데 보니 '이주의 당선작'에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서재 활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주간 서재의 달인'에 올랐다고 또 적립금을 줬다. 기분이 좋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그저 했을 뿐인데 우연찮게 그 활동이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돈도 버니 얼마나 좋은가. 


  주간 서재의 달인, 왜 폐지되었나?  


  어느 날, 알라딘에서 주간 서재의 달인을 폐지하겠다고 하였다. 리뷰나 페이퍼 등을 올려 점수를 쌓고-각각의 점수가 어떻게 산정되는지는 모른다- 열심히 활동한 30명에게 5천 원인가를 지급했었는데-이 공간의 사람들은 그 돈을 두고 '주급'이라고 표현했다- 사라진 것이다. TTB 시스템을 도입했을 때였는지 기억이 정확하진 않은데, 당시 주급을 타기 위해 광고성 글을 올려 점수를 쌓아 30인 안에 들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연예인 사진을 퍼와 페이퍼 수를 늘린다거나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자신이 쓴 것인양 옮겨 놓는 사람들도 있었다. 기타 등등의 부작용으로 알라딘은 아예 폐지하기로 했던 것. 


  이후 적립금을 주는 제도가 몇 차례 바뀌었고, 사실상 주급이 사라지고 당선작에 주는 적립금의 액수가 적어지면서, 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줄어들었다(고 생각한다). 돈이 적어지니 관심이 줄고, 관심이 주니 논란도 사그라들었다. 이후 적립금을 타기 위해 부정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지지 않았나 싶다. 예전엔 다른 인터넷 서점의 블로그를 함께 운영하는 사람들 중에는 같은 글로 적립금을 동시에 타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각 서점마다 타 서점과의 중복 글은 후보에서 제외하겠다고 했지만, 담당자도 모든 인터넷 서점을 돌아다니며 중복된 글인지 아닌지 여부를 확인하기 힘들기에 중복해서 당선된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왜 지금 알라딘의 적립금 제도가 논란이 되는가? 


  심사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제기, 알라딘의 매출이 증가한 데 비해 이용자들에게 돌아가는 적립금이 적어진 것에 대한 불만이 있는 것 같다. 심사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처음 있는 건 아니다. 예전에도 비슷한 문제제기를 본 적이 있고, 누가 심사하는지 알라딘 측은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략 엠디들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누가 누구의 글을 심사하고, 그 글을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해볼 수는 있다. 이건 백일장도 아니고, 내신 점수에 들어가는 논술형 수행 평가, 인생을 좌우하는 대학 입시 논술이 아니지만 글에 대한 애착이 있고, 뽑히기를 희망하며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글이 당선작에서 제외됨으로써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학 입시 논술도 마찬가지지만 아무리 객관적 잣대를 내놓는다고 해도 글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다시 처음의 질문을 던져 보자. 나는 왜 책을 읽고 알라딘에서 글을 쓰는가? 질문을 좀 더 분명하게 해보자. 내가 이곳에서 글을 쓰는 목적은 무엇인가? 물론 그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함께 책을 읽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교류하고 싶어서, 이곳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그동안 알아왔던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기타 등등. 주제에 부합하게 좀 더 좁혀서 질문해 보자. 내가 이곳에서 '리뷰를 쓰는' 목적은 무엇인가? 앞의 다른 이유 때문이라면 리뷰를 쓰지 않고 페이퍼로 수다를 떨면서 놀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리뷰를 쓰는가? 각자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왜 알라딘은 특정 서재인들을 중복 당선시키는가? 


  먼저, 알라딘이 특정 서재인들을 중복 당선시킨다는 명제는 진실인가?  '이달의 당선작'에 들어가보면 당선되는 사람들이 중복되는 경향이 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다른 글을 쓰더라도 어느 정도 질적 수준을 유지하는 편이고, 때문에 이달에 됐던 사람이 다시 당선될 수도 있다. '이주의 당선작'이 '이달의 당선작'으로 바뀌면서 기회는 일 년에 열두 번으로 바뀌었고, 열두 번 중 두 번만 당선되어도 사실상 중복이다. 진실이다. 


  알라딘이 특정 서재인들을 중복 당선시키는 것은 의도적인가, 그렇다면 편애하는 것인가? 특정 서재인들이 여러 번 당선되는 경향은 있지만, 그건 알라딘 서재에서 엉덩이 붙이고 꾸준히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라졌고, 남은 이들과 또 새로 들어온 이들 중 활동파들이 그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글을 많이 쓰고, 어느 정도의 질적 수준을 담보한다면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겠나. 의도적으로 특정인을 편애하여 뽑아주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열심히 쓰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소수일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이주의 당선작' 제도가 있던 시절에 알라딘 측은, 일부러 한 번 당선됐던 사람은 다음 주에 좋은 글을 내놓더라도 제외하곤 했다(고 한다). 목격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누구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관계자의 말이었다. 된 사람을 또 뽑아주면 다른 좋은 글을 썼던 사람들이 제외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괜찮은 글임에도 제외하고, 뽑히지 않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이를 두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뽑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때에는 일년에 56번을 주기 때문에 두 번 이상 중복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뽑히는 숫자가 많아 여러번 당선되더라도 별로 티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떠한가? 매주 뽑던 시스템에서 일년에 열두 번 뽑는 시스템으로 바뀌었으니 그 횟수가 확연하게 줄었다. 일년에 열두 번이고, 매번 스무 편 가까이 되는 글을 뽑는다. 기회는 줄었고, 다음 당선 때까지는 한 주가 아닌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린다'는 표현이 적합한지는 모르겠다. 자신의 글이 뽑히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테고, 뽑던지 말던지 무심한 사람도 있을 테니까. 이번 달에 당선된 사람이 한 달 동안 열심히 글을 쓰면 등록한 글의 갯수와 관련 없이 좋은 글 한 편이 또 나올 수 있다. 그러면 또 당선된다. 한 사람이 일 년 열두 번 중 열두 번 모두 뽑히거나 여섯 번 이상을 연속해서 뽑히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이를 문제삼을 수 있을까? 


  알라딘은 알라디너 위에 군림하는가? 


  당선과 적립금을 빌미로 알라딘 사측은 알라디너 개인 위에 군림하는가? 월별로 글을 취합하여 당선작을 뽑는 것이 부당한가? 심사 대상에 오르지 않는 글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인가? 이러한 문제제기라면 당선작을 뽑는 시스템을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심사를 한다는 것이 부당해 보이니까. 심사 대상에 오른 글을 쓴 사람들이 자신의 글이 뽑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심사자가 간택해주기를 바랄 때에야 심사 대상자들 위에 심사자가 군림한다는 표현이 그나마 비슷하게라도 꼴을 갖추게 된다. 이때에도 군림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군림은 특정인이 어떤 분야에서 절대적인 세력을 가지고 남을 압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경우가 그 사례라고 보기는 어렵다. 


  * 전체적으로 제기된 여러 물음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다. 내가 머무는 공간을 만든 회사에 문제제기를 하고, 이 공간에 둥지를 틀고 활동하는 이들의 글에 반응하는 것은 모두 이 공간과 사람들에게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애정과 관심이 지나쳐 없는 실체를 만들거나 희미한 어떤 느낌을 부풀려 확대 해석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알라딘은 책을 팔고 문화를 팔며 장사를 하는 서점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알라딘과 알라디너를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로 보았을 때, 매출이 높아졌으니 사측은 이용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말할 수 있다. 매출과 서재 활동과의 상관관계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추측은 해볼 수 있는데, 아무래도 서재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올리는 밑줄긋기, 리뷰, 페이퍼 등이 서로에게 ‘지름신’을 불러올 테고, 서로가 서로에게 구입하게끔 자극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서재에 머무는 시간이 늘다보면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되고, 반드시 눈에 들어오는 책을 발견하고 구매 버튼까지 누르게 된다. 책 정보를 보러 들어왔다가 그 책에 달린 리뷰와 페이퍼를 보고 충동 구매할 수도 있다. 어떤 출판사는 직원들에게 리뷰나 페이퍼를 쓰라고 종용하기도 한다는 것으로 미루어 어쨌든 그 책에 대한 악평이 아닌 다음에야 흔적을 남기면 구매로 이어지기는 하는 것 같다. 이를 통해 적립금의 금액을 늘리라거나 매달 좀 더 많은 인원을 뽑아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초 문제제기가 순수하게 이 부분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이쯤에서 마무리하겠다. 


  덧) 이용자들의 충성(?)은 알라딘에게 득이 되기도 하고, 실이 되기도 한다. 득이 되는 것은, 알라딘만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것. 그 안에는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서재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나름의 이미지가 구축된 것도 있다. 혹자는 진보적인 블로거들이 많다면서 알라딘 서점 자체에 진보적 색깔을 씌우기도 한다. (알라딘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진보적인 것, 알라딘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진보적인 것, 알라딘 회사가 진보적인 것은 별개이다. 첫번째에 대해서는 그렇게들 많이 말하고, 두번째는 검증되지 않았으며, 세번째는 모르겠다.) 


  이런 이미지는 알라딘이 매출을 높이는 데 특별히 도움이 될 것 같지는 같다. 책을 구입하는 사람들 중 다수가 진보적이고 인문학적 취향을 지닌 사람일 것 같지만 매출 면에서는 그들의 폭이 크지 않을 것. 여러 인터넷 서점이 경쟁하는 가운데 ‘진보’와 ‘인문학’ 콘셉트는 나름의 독특한 브랜드를 형성할 수는 있지만, 기업에게 브랜드는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 한 쓸모가 없다. 물론 매출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그 브랜드는 매니아들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는 알라딘 경영자에게 달려 있다. 이용자들은 그 선택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정하고 움직이면 된다. 매출 증대와 브랜드 구축의 어느 중간을 찾아 균형을 잘 유지했으면 하고 바라본다. 



 < 출판사와 편집부 이름이 알라딘인데, 알라딘 직원들이 편집하고 알라딘에서 낸 건가요? 에이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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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2-04-17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알라딘을 결국 떠날 수 없는 이유는 ㅋㅋ 이런 글을 공짜로 볼 수 있기 때문^^

마늘빵 2012-04-18 10:28   좋아요 0 | URL
^^ 요즘은 어찌 지내시나요?

다락방 2012-04-17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 검색해봤는데 진짜 알라딘에 낸 거 아니에요? 왜 낸건지는 모르겠지만. ㅎㅎ
이 알라딘이 그 알라딘이 아닌걸까요? ( '')

마늘빵 2012-04-18 10:29   좋아요 0 | URL
'알라딘'이란 출판사가 있는 거 같아요. 주로 어린이 책 위주로 내는. 음, 검색해보니 책이 많이 나와요.

감은빛 2012-04-18 15:06   좋아요 0 | URL
알라딘이란 출판사 책 저도 가끔 보곤 합니다.
맨 처음엔 저도 이 알라딘을 떠올렸는데,
책을 내는 규모로 봤을때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saint236 2012-04-17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어떤 분이 이야기하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이달의 당선작은 알라딘에서 주는 용돈 같은 것이라고. 기준도 없고 투명하지도 않지만 받으면 기쁘고 못받아도 상관없고.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합니다.

마늘빵 2012-04-18 10:30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말을 오래 전에 본 거 같아요. 누가 한 말인지는 기억 안 나는데. 주급에 목 맨 적은 있었는데-게임 같았죠.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당선되기를 기대하고 글을 쓴 적은 없어서.

2012-04-17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8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7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8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재는재로 2012-04-17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저도 떳떳한 입장은 아니지만 예전에 읽지도 않을 책을 읽었다고 한적도 있고 책 읽다 중간에 포기한 책도 많죠 가끔 생각하죠 나는 왜 리뷰를 남기나 리뷰를 남긴다고 많은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시간을 써 가며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가끔 책을 읽고나서 그감동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을때도 있고 이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으면 하는 마음으로 적기도 하는데 요새도 꾸준히 책을 읽고 있지만 그렇게 리뷰를 남기지는 않네요 서재의 글은 알라디너와의 소통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자신의 글을 읽고 다른사람이 댓글을 남겨준다면 그만큼 뿌듯하지 않을까여 하지만 단순한 욕설은 자제해 주시기를 저도 다른사람의 글을 읽다 욕이 나오는 적도 있지만 이공간은 여러사람의 위한 장소이니까요
책은 처음보는대 궁금하네요

마늘빵 2012-04-18 10:37   좋아요 0 | URL
저도 책은 계속 읽는데 리뷰를 잘 안 쓰게 되네요. 이것도 습관이라서 한 번 안 하면 계속 안 하게 되나봅니다. 다시 시동 걸기도 힘들고. 사건, 현상, 논란 등이 있으면 건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정리하는 글을 거의 쓰죠. 책은 알라딘이라는 출판사에서 만든 것 같고, 음, 전 8년 가량 활동하면서 단순한 욕설을 한 적은 없습니다. :)

울보 2012-04-18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아직도 이곳에 남아 글도 쓰고 리뷰도 남기는저,,
그냥 저는 이곳이 좋았어요, 내 마음을 풀어 놓을 수있는곳,,
그리고 아직도 좋아요, 다른곳에 블로그를 가지고 있지만 글은 이상하게 이곳에만 쓰게 되더라구요, 그냥 좋아서 제가 좋아했던 많은 분들이 계셨던곳인데 모두가 떠나시고 바쁘시고,그냥 홀로 전 놀고 있습니다,,가끔 이렇게 반갑게 달려오기도 하고요,,ㅎㅎ

마늘빵 2012-04-19 16:41   좋아요 0 | URL
^^ 전 매일 오기는 하는데, 글은 잘 안 쓰게 되네요. 한두 번 안 쓰니 계속 안 쓰고. 다른 블로그도 만들어 봤지만 여기만한 곳이 없네요. 저도 여기 계속 붙어 있으렵니다. 따뜻한 봄날, 바람 맞으세요. :)

2012-04-18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9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2-04-18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오오, 여름을 바라보는 이 봄날에 겨울 배경이라니! 어여 배경화면 바꿔주세욧!!^^

마늘빵 2012-04-19 16:42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겨울을 걷어내고 봄을 맞이해야겠습니다.

stella.K 2012-04-23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그것도 이제야...
솔직히 아프님이나 저나 평소 그렇게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물론 우린 처음에 가깝게 지내려다 말았죠?ㅋ)
내가 그다지 알라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스타일이 아니라
아프님이 이런 글을 쓰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뭐 그다지 상처 받았다거나 아프님 생각을 반박할 생각도 없습니다.
아프님 생각하시는 것이 틀린 것도 아닌데.
근데 내가 아쉬운 건 그런 겁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던 분들이 알라딘에 대해 뭐라고 하면
귀를 쫑긋 세우고 어제 누구의 표현대로 심판관 역할을 자처하더라는 거죠.
물론 아프님은 전혀 그럴 생각이 아니라고 하시겠죠.
그저 생각하는 바를 썼을 뿐이라고. 암튼.

사실 제가 그전부터 간간히 얘기는 했었지만 그렇게 써 보기는 그때가 또 처음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그때도 정리되지 못한 글을 썼던지라 써놓고도 찜찜했고 개운치 않았습니다. 뭔가 할 말이 더 남았는데 이미 많은 글을 썼던지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군요.
단지 아프님 쓰셨던, "그건 알라딘 서재에서 엉덩이 붙이고 꾸준히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라졌고, 남은 이들과 또 새로 들어온 이들 중 활동파들이 그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글을 많이 쓰고, 어느 정도의 질적 수준을 담보한다면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겠나."
라고 하신 말씀 알라딘이 꼭 기억해 줬으면 좋겠군요.
참고로 저는 여전히 엉덩이 붙이고 남이 알아주건 못 알아주건 열심히 리뷰를 쓰고 있는데 당선이 안되는 일이 더 많더군요. 물론 그게 수준이나 함량 미달이어서 그런가 보다고 이젠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낫지 싶어요. 그래도 사람이 인지상정이라는 게 있지. 어떻게 그렇게 수준이나 함량만 생각할 수 있어요. 왜 수준이 조금은 떨어져도 글의 진정성이 보이면 뽑아 주고 싶은 마음 안 생길까요? 저는요, 남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리뷰 쓰는 열의는 개편 전이나 개편 후나 변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고 정말 작정하고 쓴 글에 한해서는 말입니다. 오히려 지금이 옛날 보다 훨씬 잘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꼭 줄어든 적립금 떡밥 어떻게든 받아먹기 위해서만이었을까요? 아뇨.
제 주위에 정말 글을 진진하게 잘 쓰는 이웃분들이 계셔서예요. 물론 적립금 때문에 그분들의 글을 벤치마킹하는 거라고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면 섭섭합니다. 적립금 저도 쿨하게 생각 안할 수도 있어요. 그까짓거 그돈 없다고 책 못 사 보는 거 아니라고 밝힌 거 아프님도 읽어보셔서 아실텐데요.
"당선과 적립금을 빌미로 알라딘 사측은 알라디너 개인 위에 군림하는가? 월별로 글을 취합하여 당선작을 뽑는 것이 부당한가? 심사 대상에 오르지 않는 글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인가? 이러한 문제제기라면 당선작을 뽑는 시스템을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 말 저한테 하는 말씀인가요? 알라딘에겐가요? 아니할 말로 폐지한다고 해 보십시오.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건가?
누구는 이런 말씀도 하시더군요. 전에 적립금 받은 것 있으면 빨리 쓰라고. 알라딘이 적립금 사용실적 없으면 당선에서 제외시킨다고. 물론 그냥 농담하신 거겠죠. 근데 저는 순진해서 실험해봤거든요.ㅋ 그랬더니 정말 그 다음 달 적립금 받았어요. 요는 자사의 책을 많이 구매를 해야 적립금도 받을 확률이 높다는 말인데 일견 타당성이 있는 말 같기도 하지만 그건 둘째치고, 알라딘이 그렇게 한가한가? 알라디너들 계정도 사찰하고 돌아다니게? 근데 설마 그러겠습니까?
제가 그날 썼던 건 알라딘이 알라디너를 위해 하는 일들이 정당한가를 묻고 있던 겁니다. 이렇게 의문만 증폭시키고 뭐라 말이 없잖아요. 그럴바엔 차라리 옛날이 좋았다는 겁니다.
적어도 저의 글은 그때가 훨씬 못 썼는데 알라딘이 가상히 봐 주는 게 있었더라는 거죠. 그리고 그런 사람이 저만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추천 많이 받고, 뉴스레터나 화재의 글 그런데 노출되면 받더라는 말도 있던데 저는 지난 달 노출 세례 정말 많이 받았는데도 당선에서는 보기 좋게 떨어졌습니다.
이런 얘기 차마 저의 그 글에 다 쓰지 못했습니다. 그것까지 시시콜콜 쓰면 나만 우스운 꼴 날 것 같아서. 그런데 아프님도 인정하셨죠? 당선작 어떻게 산출하는지 모르겠다고.
알라딘이 저만 미워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동안 알라딘을 살살 거드렸던 것도 사실이니까.
그리고 이 글이 참 의미가 없는 게, 댓글이나 동감도 친분 관계가 있는 사람만 해요. 저의 서재도 마찬가지구요. 그래서 제가 그 글 마지막에 이 글 가지고 말 나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한건데...
암튼 긴 글 쓰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나머지는 알라딘이 알아서 하겠죠.^^
(한가지 양해를 구하는 건, 저의 이 댓글 제 페이퍼에 동시등록 하겠습니다.)



 


 

 

 

 

 

 

  힘든 나날의 연속이다. 인간 관계에서 비롯되는 문제인데, 나의 의도가 상대에게 왜곡되어 받아들여진다는 것. 상대를 생각해서 한 말이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되고, 받아들여진다는 것.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면서 발화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발언을 하는 이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는 서로 다르게 이해를 하고 있다. 이미 다르게 해석하여 화가 난 이에게 본래 의도를 다시 설명하거나 첨언하는 건 불필요해보인다. 그냥 그대로 두고 있자니 답답하고, 말하자니 둘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말할 수 없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은, 하나의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각기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여러 사람들이 얽혀 있고, 그들의 능력치가 어떠하든 최대치로 발휘되게끔 해야 한다. 능력이 5인 사람이 있고, 능력이 10인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5인 사람에게서는 5가 제대로 다 나올 수 있도록 하고, 10인 사람이 있다면 10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 없으며, 같은 일을 하더라도 각기 재능이 있어보이는 영역이 달라 그 재능을 극대화하여 하나의 완성된 조합을 이루게 해야 한다. 그 조합 안에는 나 또한 포함되어 있다. 나에 대해서는 자기 객관화를 계속 해야 한다.

  

  관련된 이들은 많고, 여기저기서 문제가 생기다보니 정작 내가 직접 작업해야 할 일을 못하고, 그 관계의 문제에 에너지를 쏟게 된다. 그것도 내 일이라면 일이지만 굳이 에너지를 그쪽에 쏟지는 않아도 될 일이기에 더 답답하다. 관계의 문제가 나와 A, 나와 B, 나와 C 이런 식으로 일대일로 생기는 문제라면 차차리 낫겠는데, 나와 A와 B와 C와 기타 등등이 되다보니 이것을 풀어나가는 데에만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어떤 이가 그랬던가. 이 직업은 판단을 내리는 일이라고. 매 순간 그것을 체감하고 있다.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각각의 사람들이 어떻게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가, 어떻게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게 할 수 있는가, 어떻게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도 모두 판단과 관련이 깊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 발화 내용의 의도대로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상대가 그것을 왜곡해서 받아들였다면, 그리고 숨겨진 내 본래 의도를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역시 판단이다. 그 '어떻게' 때문에 다시 스트레스 돋는 상황. 나의 발화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서 내가 그 말을 안 해도 되는데 한 것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그렇지는 않다. 해야 할 말을 계속 미루고 있었고, 그 해야 할 말이 상대 개인에게나 지금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데나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한 것이다. 그러니 후회는 없다. 여러 차례 그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과 행동을 했지만, 번번히 빗나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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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01-30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론 나와 A가 아니라 나와 상관없이 A와 B의관계 때문에 머리가 복잡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차라리 혼자하는데 낫지하는 푸념을 늘어 놓기도 하죠.
 
김영하가 옳다
교과서 제작 과정 개선안 : 출판사와 편집자 편
나는 편집자다



 

 

 




  공동 저작물의 인세에 대해서는 어떻게 배분해야 할까? 이 일을 하면서 부당하고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오늘은 인세 문제를 얘기하겠다. 지난 번에 이어 앞으로 계속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말을 꺼내려 한다. 드러나지 않은 일들은 수면 위로 끄집어 내어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단행본의 공동 저작물은 대개 참여 저자들이 한 꼭지씩 출판사에 글을 보내 엮이는 경우가 많아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 줄 수 있겠지만, 교과서는 다르다. 교과서도 이제 단원 실명제라고 하여 각 단원의 집필자가 누구인지를 밝히도록 되어 있지만, 단원명과 집필자가 실제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니까 그냥 이름만 올리는 격. 한두 사람이 거의 대부분을 집필하는 교과서도 있지만 그때에도 신고한 집필자 중 안 쓴 사람의 이름을 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어디엔가 써주기는 한다. 그러니 청소년, 학부모, 교사 여러분께서는 교과서 맨뒤의 단원 실명제를 믿지 마시라.

 

  저자가 열 명이라고 치자. 이들 중 소수는 대학 교수이고, 나머지는 현장 교사이다. 교과서를 만드는 각 팀마다 상황은 다르다. 대학 교수들이 직접 집필을 하고 열정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또 반대로 대학 교수들은 계약서에 사인만 하고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교수와 교사 구분 없이 모두가 똑같이 집필에 참여하지만, 어느 한 쪽이 부실한 경우를 들자면 전자보다는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사인만 했다는 것은 계약금은 챙기고, 작업은 안 하되, 혹 교과서가 합격하고 채택율이 높은 경우 그 이익금을 공으로 가져가는 것을 의미한다.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어떻게 그런 경우가 발생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이 바닥이 그렇습니다, 하고 답변할 수밖에. 많은 경우 교과서 팀을 구성하는 주체는 대표 저자이다. 그는 대학 교수이기 마련이고, 그의 인맥으로 나머지 집필자들이 정해진다. 어쩌다 출판사에서 집필자를 집어 넣는 경우도 있지만 드물다. 대표 저자는 팀을 구성하였고, 팀을 꾸려 가야 할 책임이 있다. (대표 저자의 역할에 대해서는 일단 생략하자.) 팀이 이렇게 구성되다보니 능력이 천차만별인 사람들이 팀에 들어와 있다. 누구는 맡은 분량을 소화하지만, 누구는 시간만 잡아 먹고 검토 의견을 줘도 잘 반영하지 않고 결국 뒤늦게 쓸 수 없는 원고를 내놓는다.

 

  이미 현장에서 쓰고 있는 내가 만든 교과서 작업 때에도 이와 같은 일이 발생했고, 쓸 수 없는 원고를 내놓은 분의 분량을 한두 집필자가 재집필하여 완성하였다. 짧은 시간에 많은 분량을, 그것도 잘 모르는 분야의 원고를 집필한 분들은 엄청 고생한다. 고생의 결과 인세 배분은 어떤가. 상대적으로 더 받으신 분은 있지만 쓸 수 없는 원고를 내놓은 사람과 계약서에 사인하고 안 나온 사람들의 인세 또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연히 끝까지 고생한 몇몇 분들은 불만이 쌓일 수밖에. (오히려 덤탱이 쓴 분들에게는 위험 수당까지 배분해 드려야 마땅하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전혀 손도 안 댄 사람들도 당신들만큼은 아니더라도 비등비등하게 배분 받았으니 말이다. 이 모두가 대표 저자가 일방적으로 인세를 배분하기 때문이다.


    어떤 팀에서는 대표 저자와 다른 필자들이 교수와 제자의 관계였는데, 해당 교수는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음에도 인세의 50%를 독식했다고 한다. 대개는 서울대 판이라 선후배로 엮인 경우가 많은데, 교수와 제자 사이로 엮인 관계라면 선후배 관계에서보다 더 자유롭지 않을 것. 문제제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찍 소리 한 번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하고, 주는 대로 받아야 하는 형편일 것.

  내가 생각하는 대안은 이렇다. 모든 집필자가 작업을 완료한 후 함께 모여 인세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한다. 모두가 끄덕일 수 있는 비율을 도출한다. 이때 조심할 것은, 돈 문제 가지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인맥으로 연결된 이들이라 부당한 배분율을 제시하더라도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 후자의 난점을 보완하기 위해 그들의 공과를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편집자가 이 테이블에 함께 앉아 의견을 제시하고 적극 반영한다. 편집자의 의견이 단순 제시안이 아닌 하나의 기준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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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6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6 15: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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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6 18: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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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7 0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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