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 프라미스 - 아빠와 함께한 3218일간의 독서 마라톤
앨리스 오즈마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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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딸바보'라는 말이 흔해졌지만 아빠와 딸이란 왠지 어색하고 어정쩡한 관계이다.물론 정말 좋은 부녀지간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빠들은 딸과는 거리가 멀다. 아빠와 아들이라면 모를까 아빠와 딸이 오랜시간 동안 무언가 함께 지켜나간다는 것은 힘들다.그리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준다는 것은 대부분 엄마 담당이면서 아이들이 어릴 때인 글씨를 읽지 못하는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을 하지 글씨를 읽고 글을 쓸 줄 아는 시기에도 읽어준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질 못했다.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들이 드문 것일까.탈무드에도 분명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이 아이의 성장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을 끝까지 실천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나 또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었던 것은 어린시절 잠깐 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함께 마이크에 대고 책을 읽어가면서 녹음도 하고 아이들 노래도 녹음하던 것이 있다. 이십여년이 지났지만 그 테이트를 듣다 보면 아이들은 정말 좋아한다.자신들의 목소리가 자신들의 성장 한 부분을 만날 수 있어서인지 정말 고마워하고 다음에 자신들도 꼭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 분명 가보처럼 여겨야 할 듯 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읽으니 많이 읽어주지 못했다.아니 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듯 하다.

 

그런데 그것도 아빠가 딸이 글씨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고 아빠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찾다보니 '책읽기'여서 딸과 '100일 독서마라톤' 약속을 한다. 하루에 단 십분이라도 꼭 뭔가 읽어주기를.아빠는 초등학교에서 도서관에 근무를 하고 책을 읽는 것을 무척 좋아하기도 하지만 책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자신처럼 아낀다. 학교 도서관에 없는 책은 사비를 들여서라도 들여 놓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기도 하며 도서관을 내집처럼 편안하게 그리고 정말 애지중지 한다. 어느 날 엄마가 독립을 하여 나갔다. 딸 둘을 맡아야 하는데 아빠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냉장고를 뒤져서 뚝딱뚝딱 요리를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무언가를 정말 잘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딱 한가지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책읽기' 그것을 백일만 해보자고 한다.

 

처음엔 힘들 줄 알았는데 하다보니 아빠의 열정이 보태져서일까 어디서든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그날 읽어야 할 책을 읽고 하루를 넘겼다.그렇게 백일을 맞이하고 둘은 동네 음식점에 가서 조촐한 파티도 하는데 딸이 제안을 한다. 독서마라톤을 좀더 연장해 보자고. 아빠는 딸이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좇아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서라도 이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그런 딸이 늘 9살 꼬마가 아니라는 것, 사춘기도 오고 아빠가 그냥 아빠가 아닌 이성이란 것을 느끼는 나이가 오기도 했고 점점 성장을 해나가고 아빠는 특히나 누가 자신을 터치하는 것을 싫어하기에 딸은 아빠가 책을 읽어 줄 때는 버릇이 하나 생겼다. 머리를 입에 가져가서 잘근잘근. 그렇다고 책 읽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오히려 딸은 아빠와 독서마라톤을 하면서 점점 자신감이 붙어 나가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명확해졌다.

 

그런 가운데 언니도 독립을 하여 해외로 나가게 되고 그녀는 외로움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아빠와 책읽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 시간들을 어떻게 채우 나갔을까? 엄마도 없고 언니도 없는 시간들,혼자 성장해 가야 하는 그 시간들 속에서 사춘기며 그에 따른 모든 것들을 아빠는 책으로 설명을 하려 하지만 책도 좋지만 엄마처럼 다정하게 자신에게 설명해줄 수 있는 부분도 필요함을 느낀다.아빠와 독서마라톤을 하는 사이 엄마의 독립과 언니의 독립 할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자신의 사춘기, 성장의 한 과정을 경험하며 그 모든 것들이 성장과정임을,충분히 방황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아빠와 독서마라톤을 하였기에 삐뚫어 나가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꿈을 똑바로 볼 수 있었고 그 속에 또한 꿈도 찾게 된 그녀의 성장일기. 그리고 아빠는 뜻하지 않게 그  좋아하던 일에서 물러나야 했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아빠가 할 수 있는 찾아 나선다. 딸도 독서마라톤과 함께 성장을 했다면 아빠도 또한 한 뼘 성장한 인생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성장을 하고 부모와 자식 간에 부대끼며 살아간다. 그렇다고 모두가 앨리스의 아빠처럼 자신의 약속을 긴 시간동안 지켜나가지는 못한다. 어찌보면 정말 대단한 부녀지간이다. 책이 늘 일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긴시간동안 둘이 함께 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면서도 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왔을까 생각이 든다. 책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알고 아끼고 사랑했던 아빠의 사교육이라면 사교육일 수 있는 아빠의 사랑의 사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딸의 성장일기는 우리가 간과하고 지나쳤던 것을 한번 더 생각해보게 한다.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편견을 깨는 그들 부녀의 3218일간의 독서마라톤은 정말 부럽기도 하고 내 아이들에게 해주지 못함이 미안하고 아쉽고 하지만 늦었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방법으로 책을 통한 교감을 충분히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분명히 남아 있다. 아빠가 책을 통하여 딸과 소통하고 딸은 아빠의 책읽기를 통하여 세상과 인생과 소통을 한 부러운 이야기, 서로 좌충우돌 하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 서로의 꿈을 찾았다는 것이 더욱 감동적이다. 책읽기는 혼자서도 평생을 해야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일도 흥미롭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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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 한국의 미를 세계 속에 꽃피운 최순우의 삶과 우리 국보 이야기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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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읽고 그의 이야기를 책으로 접하는 것이 얼마만이지,이런 책은 정말 모두가 읽어줘야할 듯 하다. 우리 문화에 대하여 그만큼 애착을 가지고 지키고 보존하려고 노력한 사람이 있을까,그것도 평생 한우물만 파며서 만년 과장으로 학력을 극복하면서 자신의 길에서 누구보다 노력으로 인정받는 자리까지 올라 생을 마감한 헤곡 최순우,정말 책을 잡은 순간부터 놓을 수가 없었다. 어떤 추리소설 보다도 재밌고 감동적이었던 그의 삶,단지 몇 사람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우리것을 지키는 지킴이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 괜히 미안하기만 하다.

 

내가 문화재와 역사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읽고나서부터인 듯 하다. 그냥 지나치며 보았던 것들을 하나라도 더 들여다보기 위하여 만져 보고 읽어보고 그리고 관찰하고 담으며 점점 우리것을 담아 나가고 애착을 갖게 되었다. 돌 하나에도 나무기둥 하나에도 역사가 깃들어 있고 조상들의 손길과 숨결이 담겨 있고 그렇게 한발짝 한발짝 다가가다보니 자연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나아가 우리나라를 더 생각하게 된 듯 하다. 해외여행을 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곳곳의 숨겨진 곳들을 찾아 조상의 숨결과 그 속에서 살아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싶어졌다. 우리 문화재들은 가만히 보면 인공적인 가공의 미보다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해학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미가 담겨 있다. 그것이 기와조각 하나에도 돌덩이 하나에도 모두 담겨 있는 것을.

 

헤곡 최순우,그의 삶을 조명하기 위하여 저자는 정말 방대한 양의 자료들을 정성스럽게 맞추어 나갔음을 알 수 있다.이야기에 맞는 사진자료들 또한 너무 값진 것들이 많고 처음보는 것도 많아 한참을 눈을 뗄 수가 없게 만들었다. 고보를 졸업하고 집안사정으로 인해 앞날이 막막하던 그가 박물관으로 우연하게 발길을 돌린 것이 그의 인생을 평생 외길만 걷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박물관이란 관심이 있는 사람은 재미가 있지만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재미 없는 곳이기도 하다. 그가 박물관에 처음 들어서며서 문화재에도 끌렸지만 우선은 그의 스승이 된  고유섭 선생 때문에 더욱 빨려들게 되지 않았나.살아가면서 멘토가 얼마나 중요한지 또 한번 느껴본다. 앞에서 끌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마차는 더욱 쉽게 갈 수 있다.물론 누군가 뒤에서 밀어주면 더욱 빨리 가겠지만 그것은 자신의 힘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불을 밝혀주면서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알려주는 길라집이인 스승이 있었기에 박봉에도 견디면서 점점 박물관에 빠져들고 문화재에 빨려 들고 한국미에 빠져 들게 된 최순우, 박물관의 역사와 그의 인생 역사가 함께 하는듯 하여 정말 재밌게 읽었다.

 

자신이 남들보다 모자란다는 것을 알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스승이 바른 길을 인도해 주었기에 '정도'를 걷게 된 듯 하다. 정말 인생 자체가 '우보의 걸음으로 천리를 간 듯' 우직하게 걸어가면서 자신의 욕심보다는 문화재를 지키고 발굴하고 하나라도 더 알리려 애쓴 정말 우리문화 길라잡이 같은 분이다. 한조각의 비석에서 천년의 역사를 읽고 청자조각 하나에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청자가마터를 찾아 내고 누구보다도 더 열정을 가지고 일선에서 발굴을 하고 흙먼지를 묻히면서 최선을 다했던 그,하지만 그에게 핸디켑은 학력, 누구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으면서 학력이라는 벽 때문에 망설였지만 누구보다 당당하게 대학강단에서 강의도 하고 해외 우리문화 전시회도 성공적으로 일궈내면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사람,하지만 큰 그릇은 늦게 되는 법인가. 20년 만년과장이라는 자리가 그를 회의에 빠지게 할수도 있었겠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오직 소신것 자신의 일에 일관했던 분,정말 대단하신 듯 하다.

 

스승 고유섭이 해내지 못한 그 마무리를 제자인 그가 맡아서 갈무리를 잘 하지 않았나,아니 앞으로 우리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 그가 온 몸으로 말해주고 간 듯 하다. 그와 간송과의 인연도 참 재밌게 읽고 간송에 대하여 더 관심을 갖게 만들어 저자의 다른 책인 <간송 전형필>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봤다. 그거 미술관으로만 조금 알고 있을 뿐이었던 인물 간송 전형필,그가 혜곡 최순우의 삶에 얼마나 큰 그늘이 되어 주었는지 서로 이끌어 주고 다시 또 다른 사람을 이끌어 주면서 그렇게 우리 문화 지킴이로서 이어 나가는 삶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많이 가져서라기 보다는 우리것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국립박물관및 우리 문화에 대한 역사를 다시 쓰듯 오늘날에 이르게 한 사람들.그가 스승 고유섭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니 박물관에 발을 들여 놓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찔함, 찬란한 문화가 있어도 그 가치를 알지 못한다면 빛을 발하지 못하는데 누군가 그 놀라운 가치를 알아주고 알아봐주면서 널리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우리 문화와 박물관 100년 역사에서도 참 다행한 일이다.

 

현대사회는 획일적이며 일률적인 건축물이나 또한 그런 것들을 원하고 이룩하려고 한다. 옛것을 오늘에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옛것을 없애고 그 위에 현대물을 건축하려고 불도저로 밀어 버리거나 파헤치고 깎아 내린다. 그런 현장을 보면 참 안타까울 때가 많다. 아무리 낡고 헐고 값어치가 없어 보여도 예전 그대로 보존하거나 받아 들이기 보이다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우리들, 역사는 외면할 수 없는 우리 것이며 우리의 얼굴이고 삶이다. 버리고 비우는 삶이 점점 강조되기는 하지만 오래된 것 속에 깃든 역사를 볼 줄 아는 안목뿐 아니라 지킬 줄 아는 포용력도 때론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 것에 대한 진정한 가치와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더욱 남의 것에 현혹되기 쉽다. 잘못되고 우리가 미쳐 깨닫지 못한 부분들을 그의 삶을 읽다보면 많이 뉘우치게 된다. 그가 우리의 조각난 역사를 꿰맞추기 위하여 평생을 얼마나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며 살아 왔는지 그의 한옥이 보여주고 그의 삶이 보여준다. 그런 삶을 뒤에서 묵묵히 내조하며 그가 좀더 밖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늘 배려해 준 아내분의 힘 또한 대단함을 느낀다. 부창부수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멘토 또한 중요함을 느끼며 우리 문화재와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강하게 느낀다. 우리 것이지만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교과서적 지식에만 갇혀 있는 단편적인 역사를 세상 밖의 역사로 관심을 돌리게 한다. 우리 것은 정말 소중하면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한번 더 실감하면서 그의 삶을 들여다 볼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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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왜 부조리한가 - 경제학.철학.통계학.정치학으로 풀어낸 법의 모순
레오 카츠 지음, 이주만 옮김, 금태섭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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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먼저 부조리란 무슨 뜻인지 사전을 찾아 보았다.부조리란 '이치에 맞지 아니하거나 도리에 어긋남 또는 그런 일.' 그렇다면 법이 부조리하다고 하면 법에도 그런 부조리한 구석이 있다는 말인데 정말 법에도 어긋나는 구석이 있단 말인가? 이 책을 읽기전에 읽은 <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 에 보면 저자는 미국에서 로스쿨에 들어가는데 지금까지 알고 있던 법은 모두 버리듯 다시 머리를 채워나가야 하는 공부법이 이채로웠다. 그 소개에 의한 글을 읽다보니 이 책의 내용과도 상응하겠다는 생각을 가져봤다. '머리를 비워라' 에서 스승이 했던 공부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어찌보면 궤변이라고 할 수 있는 예를 들어가며 법이 부조리한가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고 내가 법을 잘 알거나 법의 어떤 영향속에 있는 것도 전문적으로 법과 관련된 사람도 아니니 다소 힘들게 읽힐 수 있다. 그렇다 내겐 법이 벅차고 정말 '먼나라'이야기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보통사람들이라면 모두 그렇게 느낄 것이다. '내게도 법이 영향을 미칠까?' 물론 법의 영향이 미치지만 우린 법의 완전한 해석이나 법과는 거리가 멀게 살고 있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현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응급실의 상황'을 예로 들어가며 '응급 순위 순환론'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함께 차를 타고 가던 부부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남편은 두 다리를 잃게 될 상황이고 여자는 검지 손가락 하나만 사고를 당했다. 그렇다면 응급 의사는 어떤 환자를 먼저 선택해야 할까? 거기에 남편은 극구 아내의 검지 손가락을 먼저 봐달라고 한다. 자신은 두 다리를 잃게 될 상황인데 말이다. 우리가 보기엔 분명 남편의 두다리가 응급상황인데 남편의 배려로 아내의 검지손가락을 선택하려던 순간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다리 하나를 지금 수술하지 않으면 다리 하나를 잃게 될 상황이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먼저 하라고 미루고 있으니 나중에 나타난 삼자는 자신이 먼저 수술하게 한다. 이 상황을 예로 들어가며 제1부 '법은 왜 상생 거래를 거부하는가' 그리고 제2부 '법은 왜 허점투성이인가' 제3부 법은 왜 그렇게 이분법적인가' 제4부 '우리는 왜 악행을 모두 처벌하지 않는가' 라는 그의 궤변과 같은 이론을 펼쳐나간다.

 

'응급 순위 순환론'도 그렇고 '사회선택이론'고 그렇고 도통 그 말이 그말 같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의 이야기를 재밌게 읽긴 하는데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그동안 법과 너무 멀리 살아와서인가. '법의 경계' 를 탐구하는 하는 부분에서 분쟁 가능성이 높아 범주를 구분하지 어려운 사건들을 다루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한 사내가 잠자는 여인에게 입을 맞췄다면 폭행인가? 사냥꾼이 총을 쏘아 맞힌 동몰이 다른 사냥꾼의 덫에 걸려들었다면 그는 자신의 총알이 동물의 몸속에 있다는 이유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정말 괴상한 것을 가지고 법적인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어제 뉴스에서는 6만원어치 사서 선물한 로또에서 1등이 나왔다면 그 상금은 누구의 것일까? 법은 현재 로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것이라 했지만 시민배심원들의 판결은 50:50으로 나누어야 한다고 했다. 나 생각도 그것이 정당하다고 본다. 만약에 6만원어치가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의 로또를 구매해서 선물했다고 해도 거기에서 1등이 나오지 않았다면 그들은 법 앞에서 싸우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돈'그것도 거액의 돈이 관련되었기에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정말 이분법적이고 허점투성이다. 법이 다 옳다고만 볼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는 아이,섹스등은 돈으로 거해해서는 안된다는 법을 가지고 또한 열띤 이야기를 펼친다. 하지만 얼마전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리모가 합법'인 인도의 대리모 사업에 대하여 나오는 것을 보았다. 세계가 모두 인간 존업성을 들어서일까 대리모를 불법으로 하고 있지만 인도는 틈새시장처럼 대리모사업을 합법화 하기도 했지만 그로 인한 수입및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세계에서 불임인 부부들이 인도관광을 하러 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대리모로 자신들의 아이를 얻기도 하는데 양쪽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불법'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합법화 하고 국가에서 관리를 해서인가 뒷골목에서 성행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이면서도 그로 인해 서로가 윈윈하고 있다. 이걸 불법이라고 봐야 하나. 법이 아이가 없는 부부의 맘을 알까? 아니면 평생을 벌어도 가난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한 자궁으로 합법적인 대리모가 되어 가난에서 벗어났다면 그것을 법적으로 비난해야 하나? 도덕적인 문제가 있긴 하지만 나도 아이를 낳고 키워 봤기에 내 입장에서는 불임인 부부들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결코 나쁜 방향으로 볼 수가 없었다. 법으로 해석하기 난해한 부분들이 분명 존재한다.

 

법도 제대로 모르는데 법의 허점이며 이분법적인 면이며 다루는 모든 이야기들이 조금은 거리가 멀게 느껴졌지만 분명 우리 생활속 이야기들이다. 그가 마지막에 인용한 '콩 한 접시 이야기' 에서도 앞에서 언급한 '응급 순위 순환론'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대입을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을 말해 주는데 그래도 어렵다. 콩을 먹지 않는 아들이 있다. 그 아들과 엄마 그리고 할머니가 함께 식사를 하러 나갔는데 '콩 한 접시' 가 음식과 함께 나왔다.당연히 아들은 콩을 먹지 않으니 콩에 손도 대지 않는 것을 알기에 엄마는 권하지 않는데 그때 할머니가 '5달러'를 꺼내며 먹으면 준다고 한다. 아들은 콩 한 접시를 모두 비우고 5달러를 비운다. 그렇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을까? 콩이 나올 때마다 엄마는 5달러에 콩을 먹었는데 엄마의 사랑으로 먹으라고 강요를 한다. 법의 부조리한 면이며 허점을 위 이야기 속에서 예를 들며 설명해 주지만 그래도 약간은 갸웃뚱이다.왜 그동안 법적으로 해석을 하며 살지 않았기에 거리감이 있다.그래도 법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재밌게 읽을 책이다. 법의 허점을 이야기 하며 들은 예에서 '변호사가 하는 일은 사람들이 스테이크가 아닌 닭 요리를 선택하려는 찰나, 메뉴에 생선 요리도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사람들이 닭 요리 대신에 스테이크를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변호사는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라는 한마디에 허점이 받아 들여지기도 하지만 내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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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 갈색 눈 - 세상을 놀라게 한 차별 수업 이야기
윌리엄 피터스 지음, 김희경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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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차별에 대하여 대항하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8년 4월 4일 살해 되었다. 이 이야기를 접한 초등학교 교사였던 '제인 엘리어트'는 이 이야기와 접목할 수 있는 실험극을 하나 생각해 내고는 아이들과 함께 해보기로 한다. 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야만 하는가? 피부색이 다르다고 뭐가 다르기에 흑인은 '깜둥이'라 놀리면서 백인들과 함께 하면 안되고 그들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걸까. 정말 백인은 우월할까? 어른들의 세대가 그렇게 받아 들이고 있기에 아이들 또한 당연한 듯이 대물림받고 있는 '인종차별' 엘리어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녀의 수업은 <푸른 눈>과 <갈색 눈>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하루는 <푸른 눈>이 우월한 그룹이다. 백인에 비유할 수 있는 그들은 푸른 눈이기에 모든지 잘하고 주목을 받고 먼저 할 수 있다. 그리고 쉬는 시간도 5분 더 주어지는가 하면 운동장에서 놀 수 있다. 하지만 열성인 <갈색 눈>그룹은 무엇을 해도 푸른 눈에 뒤진다. 쉬는 시간도 줄어 들었고 푸른 눈이 먼저 해야 나중에 할 수 있고 무얼 해도 못한다는 선생님의 핀잔을 받는다. 그런가 하면 푸른 눈 그룹이 놀자고 하지 않으면 함께 놀 수가 없다. 운동자에서도 물론 운동기구를 가지고 놀 수 없다. 모든 것에서 선을 완벽하게 긋듯 <푸른 눈>과 <갈색 눈>을 나누어 놓는다. 그리고 아이들의 반응을 지켜 보고 그들과 하루 공감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림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보기도 한다. 자신들이 갈색 눈을 가졌다는 이유로 푸른 눈보다 뒤쳐진다고 한다면 공부에 의욕이 생길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칭찬은 못할망정 '못한다,못한다' 하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반응은 정말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났다. 우월하다는 열성그룹이라는 소리만으로도 희비가 엇갈리는데 거기에 칭찬은 못할망정 모든 것에서 뒤쳐지고 함께 어울리지도 못한다고 한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각양각색의 반응들, 그 반응은 정말 놀라웠다. 그리고 다음엔 두 그룹이 위치를 바꾸어 보는 것이다. 처음 실험과 두번째 실험날은 어떻게 다를까? 아이들은 '흑인'을 그동안 '깜둥이'라고 불렀다면 이 실험극을 통해 '깜둥이'에서 '흑인'으로 바뀌었는가 하면 어느 곳에서나 '차별'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며 자신들이 그 상황을 바꾸려 한다는 것. 한 반이 실험극에 참여를 했는데 그 파급효가는 실로 컸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아이들 자세가 그동안과는 백팔십도 변화하고 성적도 쑥쑥 올라갔던 것, 강요를 한 것도 아니고 부모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닌데 모든 면에서 향상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는가 하면 자신들이 변하는 것은 물론 주위 사람들까지 변하게 만든 것이다.

 

나비효과,한마리의 나비가 날개를 퍼득인것 같았는데 그 파급효과는 실로 놀라워 점점 퍼져 나가 방송및 다큐로도 제작이 되고 책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엘리어트가 그것을 처음부터 생각을 하고 실험극을 한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단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받아가며 살해되는 그 일련의 일들이 그녀를 변하게 만들었고 자신의 아이들에게 실험극을 통해 반대입장이 되어 본다는 개념에서 시작한 실험극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변화'하게 된 것이다. 차별이란 무엇인가?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에서 '차별'은 너무도 많이 일어나고 있고 지금도 차별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본다면 차별이 있을 수 있을까? 눈에 보이는 차별도 많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 또한 너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

 

엘리어트의 '실험극'을 했던 아이들은 성장을 하여 오랜시간이 흐른 후에 '미니동창회'를 가지게 된다. 사고로 동창회에 참여할 수 없는 친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모두 다 참여를 했다. 그들은 그룹은 남들보다 뒤쳐졌던 그룹인데 교사도 있는가 하면 자신만의 위치에서 그 때 받았던 차별수업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지금도 몸에 잊지 않고 실천을 하며 살고 있는 것. 그들은 차별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어른이 되었든 아이가 되었든 자신들이 받았던 '실험극'을 해봐야 안다고 한다. 남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사회에서 그런 '차별'에 대한 일을 많이 접하게 되지만 가정에서도 '차별' 이 많다. 형제간에도 그렇고 어느 부분에서나 차별은 존재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차별'에 노출되어 살아 왔는지 이 책을 읽다보면 뉘우치게 된다. 40여년 전보다 분명히 지금은 더 많은 차별이 존재하고 우리 안에 누적된 차별 제도 속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어느 순간 지배자의 입장이 아닌 피지배자의 입장이 되어 보는 '편견과 차별'의 선입견에서 한걸음 벗어날 수 있는 제인 엘리어트의 '차별 수업' 지금 우리가 처한 시대에 더 많이 필요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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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 호스피스 의사가 먼저 떠난 이들에게 받은 인생 수업
김여환 지음 / 청림출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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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날 때는 다른 모습이나 환경에서 태언다고 해도 가는 길은 하나, 다 똑같은 '죽음'이라는 길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그것의 주체가 '나'이거나 나와 가까운 사람의 경우가 되면 받아 들이려 하지 않고 부정을 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의 5단계를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이라고 한단다. 부정, 정말 그렇다. 갑자기 사고를 당하거나 벗어날 수 없는 암과 같은 병에 걸리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왜 나야..잘못됐을거야..그럴리가 없어.' 라고 부정해 버린다. 받아 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 많고 많은 사람중에 죽음의 주체가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 들일 수 있는,죽음을 초월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 또한 친정아버지에게 온 '폐암'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정말 오진이기를 그리고 아버지가 아니기를,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몇 번이나 부정하고 부정해 보았지만 그럴수록 시간만 간다는 것을 알았다.

 

시계를 되돌려 놓고 싶지만 그럴수 없는 것이 '죽음'에 이르는 길인듯 하다. 그리고 그 길은 결코 누구와 함께 갈 수 없는 혼자서 가는 길이다. 내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했거나 함께 했다면 다음에는 조금 담담해질 수 있다.당연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아버지의 암판정이후 일년 삼개월이란 시간은 정말 어떻게 간 줄 모르게 금방 흘러가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많이 아프셔서 병원에 오랜 시간을 있거나 항암치료를 따로 하지 않았다. 처음에 발병을 알고 검사한 일주일과 가시기 전 두달 전에 일주일,그렇게 이주일 겨우 병원생활을 하셨다. 본인이 병원생활을 원치 않으셨고 엄마와 아버지께 우선은 암이라는 사실을 알려드리지 않기로 했다. 아버지는 워낙에 폐가 조금 않좋으셨기에 그 상황으로 말씀을 드렸는데 두분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계신 듯 하다. 워낙에 가시기 얼마 전까지 농사일을 힘들어도 하셨으니 믿고 싶지 않으셨는지도,아니면 오래전 이미 알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알려드리려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가시는 날까지 평범한 날처럼 보내시다가 많이 힘드실 때 말씀드리기로 했는데 아버지는 그 상황이 오지 않은 시간에 주무시다 가셨다.편안한 모습으로. 어쩌면 아버지도 우리도 복을 받았다고 생각을 한다. 편안한 마지막을 맞으셨으니.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받아 들이는 것도 힘든데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 하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란 것을 아버지를 보내 드리며 느꼈다. 아버지가 암선고를 받으신 후에 몇 개월 후 갑자기 작은아버지를 사고로 보내드려야 했다. 생각도 못한 죽음이었고 아버지 또한 그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하셨다. 왜 아니겠는가 당신이 아프셨는데 동생이 먼저 사고로 가게 되었으니. 당신의 죽음도 동생의 죽음도 그리고 마지막 화장도 인정하지 않으려했지만 작은아버지를 그렇게 보내드렸더니 당신도 인정을 하셨다. 엄마도 반대하던 화장을 해드렸는데 나중에는 잘해드린것 같다고 말씀하시며 엄마도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물론 아버지가 큰 병이라는 소리를 듣고 모두 모여 의논을 한 것이다. 큰소리가 오가기 보다는 그저 평상시처럼 그렇게 보내는 속에서 큰 병이 아닌 듯 아버지 앞에서 웃어야 할 때가 가장 힘들었지만 아버지도 아셨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를 입관하는 그 시간들까지 모두 기억에 담아 놓으니 친구들이 부모님들이 아프다며 하루 하루가 긴장속이라며 마음나누기 수다를 신청해 오면 많이 들어주고 이야기 해준다. 이젠 부모님을 보내드릴 준비를 해야 한다고.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도 어쩌면 부모님께 불효인지도 모른다고,편하게 해드리라고 한다. 죽음이란 무엇이기에.

 

나이 마흔에 등단을 한 박완서 작가를 좋아하는 대구의료원 평온관에서 늦은 나이에 의사의 길로 접어 든 호스피스 여의사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인 그녀가 평온관에서 말기암 환자들과 함께 하며 맞이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누가 그랬던가 '죽음도 삶의 일부'라고. 죽음은 삶의 연장선의 한 부분인 것이다. 다른 삶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죽음 가까이 온 사람들 곁에 가면 그 집안의 이야기가 고구마줄기에 달려 나오는 고구마들처럼 집안 구석구석의 모든 이야기들이 다 나온다. 가시는 분을 어떻게 대접해 드리느냐에 따라 자식들이며 집안 사정을 모두 읽게 된다. 돈과 연관이 있으면 죽음은 뒷전이며 돈에 연연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시끄러움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에 임박한 이를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은 조용하면서 평온하다. 인간의 욕심은 마지막 그 순간에는 모두 가져갈 수 없음음,누구나 빈 손으로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평생 왜 그리 끊지 못하는 오욕에 갇혀 살아 온 것인지.

 

'호스피스는 마지막 묵어가는 여관이다.여관의 시설이 아무리 좋아도 주인의 마음이 따듯하지 않으면 손님들이 불편한 텐데. 훌륭한 여관에 '죽이는 수녀들'까지 있으니 모현은 완벽한 호스피스임에 분명하다. 모현 호스피스의 '죽이는 수녀들'과 대구의료원의 '죽이는 의사' 인 나의 공통점은 죽음을 밟게 만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죽음을 밝게' 서양에서는 탄생이 축제이듯이 죽음도 축제라는 말을 하기도 하도 또 그렇게 하는 것도 있다. 어느 시인의 그 길이 '소풍'이라고 했듯이 소풍 왔다가 소풍가는 길이나 얼마나 설레겠는가.과연 그럴까? 두려움을 먼저 만나게 되는 '죽음'이라는 길, 그 길을 밝게 편안하게 해주는 여의사는 갖가지 죽음에 이르는 환자들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과연 죽음이란 무엇인지 묻고 그녀 나름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과연 죽음이란 무엇일까,소풍 떠나는 길일까? 나이를 불문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는 길이다. 그 길을 가는 분들에게 그녀는 좀더 편안하게 가시게 도와준다. 냄새나고 더럽고 추악하여 남에게 감추고 싶은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하며 밝고 편안하게 보내드리도록 노력하기도 하고 죽음 또한 삶의 일부이기를 받아 들이는 그런 이야기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별거 아닌 인생인데 우리는 참 많이 아둥다웅하며 할퀴고 물어 뜯고 욕심을 낸다. '싸우는 동안 우리는 지치고 상처투성이가 되겠지만,싸움을 멈추면 삶이 보인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도 아버지가 암판정을 받고 나서부터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고 그 시간들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긴 수믈 내쉬고 담담하게 받아 들이자고 하고 나서부터 들숨고 날숨도 쉴 수 있었다. 그래도 막상 아버지의 부음을 맞이하는 날에는 받아 들이기가 정말 힘들도 들숨도 날숨도 안되는 그런 순간이 왔다. 팔십여 평생을 살아 오신 분의 일생을 한순간 그 존재를 지운다는 것은 힘들다. 서서히 지워 나가야지 한번에 하기란 정말 힘들다. 하지만 모두 지난간다. 살아 있기에 밥을 먹어야 하고 살아 있기에 숨을 쉬어야 한다. 그것이 삶과 죽음의 차이다. '저... 김00선생님은 조종사였으니까 잘 아실 거에요. 어떤 등산가가 그러는데 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는 아래를 보지 말래요. 아래를 보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무섭다고.하지만 위로 올려다봐도 까마득하기는 마찬가지니까 그냥 지금 머물러 있는 자리만 보라고 하더군요.김 선생님, 죽음이라는 끝도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시고 지나온 세월도 많이는 돌아보지 마세요. 그저 오늘 하루, 가족과 또 저희와 편하게 지내시면 어떨까요?' 내일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위해서 살아라 그리고 지금 현재를 보라는 의미로 다가오는 이야기.산다는 것도 죽음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오늘,지금' 일어나는 '삶'의 연장선의 이야기들이다. 그 길이 두렵고 무섭은 길이 아닌 좀더 편안한 길이 되기 위하여는 본인도 그렇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받아 들여야 한다. 어떻게 말을 해도 산다는 것도 힘들지만 '죽음'이라는 것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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