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전설은 창비아동문고 268
한윤섭 지음, 홍정선 그림 / 창비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의 다른 책으로 <봉주르,뚜르>를 만났고 그 다음으로 만난 책이 읽으면 가슴 따뜻해지는 <해리엇>과 역사동화 <서찰을 전하는 아이>였다. 모두가 다 다른 이야기인데 읽을 때마다 새롭고 어린이 책이라기 보다는 '어른을 위한' 동화나 책처럼 더 찾아서 읽게 되었던 책들인데 이번 <우리 동네 전설은>은  책소개를 간략하게 보다가 낯익은 '동네 이름'을 발견했다.고향 시골로 가는 길에 있는 동네,분명 그 동네가 맞는데 내가 아는 동네 이름이 동화속에 주인이 되어 나온다니 더 반갑고 친근하고 얼른 읽어봐야 할 것 같은 궁금증이 폭발하여 얼른 읽게 되었다. '득산리' 고향 동네와 가까운 곳이라 그런지 그가 구사해 낸 '동네 전설'이 내가 어릴적 겪은 동네 전설과 비슷하면서도 재밌고 따듯하여 더 깊이 빠져 들며 읽게 되었다.

 

그렇다 나도 어릴적 학교를 가려면 동네를 몇 개는 거쳐서 가고 산도 들도 저수지도 지나서 가야 학교에 당도했다.그러니 가며가며 친구도 많이 만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듣기도 했지만 등하교 길에는 친구들과 동네마다 전설을 들어가며 얼마나 재밌게 다녔던지. 친구네 집에 가려면 '헐떡고개'를 지나야만 했다. 지금은 그저 얕은 동산도 아니고 언덕길과 같았는데 그땐 이름이 '헐떡고개' 그 고개를 넘다보면 작은 무덤이 하나 있었다. '애기무덤' 그곳에도 무서운 이야기가 전해져 우린 그곳을 지나려면 헐떡고개라 힘이 든는데 마구 달려가야만 했다.괜히 애기무덤에서 귀신이라도 나오는것 아닌가 하고는 그곳을 뛰어가다가 한참 만에 뒤돌아 보고는 모두가 깔깔 거리고 웃던 생각도 난다.

 

그런가하면 오고가는 길에는 과수나무를 심은 집도 많았고 작은 과수원도 있었고 논과 밭,그야말로 시골이니 철마나 밭과 나무에는 먹거리가 넘쳐났다. 한번은 이쁘장한 옆집 여자아이가 함께 가다가 사과나무에 작은 사과가 달려 있는 것을 보고는 땄다. 올망졸망 매달려 있는 것이 신기했던가 보다. 난 멀리서 지켜 보고 있었는데 그 친구 주인아줌마에게 붙잡혀 집안으로 끌려 들어가 한참을 혼나고 나왔다. 엉엉 울며 나오는 친구,집에 가서 엄마에게 이르지 말라는 신신당부.아니 왜 빨갛게 익은 사과도 아니고 먹지도 못하는 풋사과를 따서 들켰는지.철마다 시골아이들은 윗대부터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처럼 여름엔 참외나 수박밭에 들어가 서리를 하고 감이 익는 계절에는 감서리를 밤이 익으면 밤서리를 과수원에 사과가 빨갛게 익으면 사과서리를 하기도 했다.그것이 꼭 먹으려고 해서가 아니라 장난으로 재미삼아 했는데 동네분들은 알면서도 눈감아 주기도 하고 어떤 주인들은 도둑을 잡기 위하여 망을 서다가 도둑을 잡아 집을 찾아 오기도 했다. 그런 일들이 심심하면 한번씩 있었으니 그런 일들이 학교에 알려져도 담임선생님들은 웃으면서 훈계조치하고는 친구들과 한번 웃고 지나갔다. 시골에서 학교를 다녀서 그런 추억들이 있기에 이 책의 내용은 정말 더 내 어린시절로 돌아가는,내 추억의 동굴에 등불 하나를 밝히는 것처럼 미소를 지으며 읽게 되었다.

 

득산리 한적한 시골 마을의 교회에 할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가 보게 된 복사꽃이 핀 풍경을 보고 엄마와 아빠는 '무릉도원'이라고 한다. 그 정확한 뜻은 모르겠지만 분명 아름다운 풍경으로 각인된 곳인데 할아버지가 건강이 안좋으셔서 아빠가 그곳의 목사를 맡게 되어 시골 학교로 전학을 가데 된 나, 그럼 학원은 어떻하고 내려갈까.자신만 빼고 엄마와 아빠는 시골에 가는 일이 무척 즐거운가보다.걱정거리가 하나도 없는 듯이 이야기를 한다. 그곳에 이사를 가고 전학을 가 삼일정도는 엄마가 데리러 왔지만 그 다음날은 선생님이 친구들과 함께 집에 가라고 한다. 득산리에는 동네에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면서 친구들은 운동장에서 그의 발목을 꼭 붙잡는 이야기를 해준다. '혼자 가볼테면 가봐.'라고 엄포를 놓는것 같기도 하고 도시 아이의 기를 꺾는 듯한 말이기도 한데 도통 발이 땅에서 떨어지질 않아 좋아하는 축구인데 함께 끼지도 못하고 한귀퉁이에서 동네 아이들을 기다려 함께 집으로 가게 된다.

 

하교길에 만나는 '허름한 방앗간' 그 방앗간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사시는데 할머니는 어린아이의 간을 빼 먹어야 낫는 병에 걸렸단다. 그래서 며느리와 손녀딸도 그들을 떠나고 방앗간은 점점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풍파에 무너지고 시들해져 간다. 그곳을 지나는 바람마져 으시시 하듯 그들은 그곳을 지날 때 마구마구 달려간다.누군가 나와서 그들의 뒷덜미를 잡아 다닐것만 같다. 그런가 하면 다른 길에는 돼지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데 이 할아버지 또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밤나무를 돌보며 사시는 할아버지,하지만 아이들은 가을만 되면 이곳 밤농장의 철조망을 넘어 밤을 주으러 들어간다.이곳 밤이 제일 맛있다며. 그리고 애기무덤이 있는 곳의 이야기며 동네 전설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어보니 도저히 혼자서는 빠져나갈 길이 없다.그렇게 하여 동네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게 되는 준영은 그날부터 아이들과 함께 하교길을 함께 한다. 등교길은 괜찮지만 하교 길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길,정말 여기저기 귀신이 나타나고 살아 있는 사람들이지만 귀신처럼 나타나 사람을 헤할까.

 

돼지할아버지가 있는 밤나무 농장에 친구들이 밤을 주우러 들어가면 준영은 철조망 바깥에서 망을 보고 있다가 친구들이 나타나면 함께 가방을 들고 달아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친구들이 나누어 주는 생밤을 입으로 껍질을 까고는 뜹뜨름한 맛이 남아 있는 생밤을 오도독 오도독 씹어 먹는다. 도시에서 먹던 밤맛하고는 완전히 다른,엄마가 삶아서 까주는 밤맛이 아닌 정말 맛있는 밤맛을 이곳 득산라에 오고나서 준영은 친구들에게 선물처럼 받은 것이다. 시골에 오니 학원을 다니는 것보다 더 재밌는 일들이 곳곳에 많다는 것을 친구들과 어울리며 하나 둘 배워가면서 점점 시골아이로 거듭나는 준영, 그들이 무서워 하는 돼지할어버지네 집으로 아빠가 어느날 떡을 가기고 갔지만 그는 무서워 차 안에서 그 풍경만 멀리서 보지만 다음날 친구들과 밤을 주우러 갔다가 준영은 발이 땅에 얼어 붙은 듯 딱 달라 붙어 도망을 할 수 없게 되고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하게 되고 할어버지는 다음날 새벽에 밤을 주우러 오라고 한다.그리곤 커다란 밤나무 밑에서 할아버지와 앉아서 밤이 조용한 새벽을 가르며 떨어지는 소리를 듣게 되고 돼지할아버지가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갑자기 방앗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방송이 나오고 아빠를 따라 간 장례식장에서 방앗간 할아버지와 돼지할아버지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는 그들이 무서운 전설속의 할아버지들이 아닌 인자하고 외롭고 쓸쓸한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토록 무섭게만 보였던 돼지할아버지가 사시는 곳이 방앗간 할머니의 수목장 장소가 되고 멋진 풍경을 곳이란 것을 알게 된다.

 

득산리 어린 꼬마들은 분명 서울에서 내려 온 깍쟁이 친구를 어떻게 자신들의 친구로 끌어 들일까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을 '동네 전설' 속으로 함께 하면서 추억도 쌓고 친구도 만들고 서로 스스럼없이 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면서 점점 시골 아이들 속으로 동화 되어가는 준영,그도 이젠 어엿한 '득산리 소년'으로 성장을 한다. 그리고 그 다음해는 그도 그 속임수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단단한 소년으로 성장을 한다는 참 따뜻한 이야기다. 단단하고 차돌처럼 짱짱한 시골 소년들이 도시 깍쟁이 소년을 단번에 '전설'로 그들의 친구로 만들어 버리는 정말 읽으며 웃음을 참을 수 없는 말투들이 '애늙이'들처럼 재밌다. 학원을 많이 다녔지만 어딘지 모르게 온실속의 화초처럼 연약할 것만 같은 준영이 햇빛에 그을리며 사계절을 동네 소년들과 들로 산으로 뛰어 다니며 시커멓게 그을리고 단단해져 그도 신작로에 구르는 '짱돌'처럼 단단해져 이제 누가봐도 득산리 소년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을 지리에 대하여서도 마을 사람들에 대해서도 모두 다 꾀고 있는 소년,그 소년이 다시 간직하게 되는 전설은 또 다시 구전 되고 구전 되고 전해 내려가 어느 소년의 입을 통해 나오게 될 것이다.

 

준영의 시골생활 적응기를 읽다보니 내 어릴적 추억의 동굴에 갇혀 있던 이야기들에 정말 등불 하나 밝혀 놓고 들추어 보듯 즐거운 시간이었고 행복한 시간 이었다. 추억속의 동무들을 만나 하교길에 장난을 치며 하교 하던 추억이며 친구네 집에서 놀며 놀며 가던 일들 정말 어제일처럼 새롭게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는 추억이 밝게 빛을 발하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도 곧장 집으로 가는 일은 절대 없었다. 가는 길에 친구네 집 마당에서 땅따먹기를 하고 말뚝박기를 하닥 목이 마르면 우물에 담가 놓은 수박도 깨서 먹기도 하고 밭에서 무를 뽑아 먹기로 하고 고구마를 쪄 먹기도 하고 열무김치를 넣고 밥을 비벼 먹기도 하고는 해질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가는 일은 다반사였다. 하교길은 정말 '보물창고'와 같은 놀거리 먹거리 모든 것이 풍성한 곳이었다. 그것을 도시 아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은 비슷한 추억을 하나 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시간들이 준영을 통하여 내 어린시절로 다시 돌아간듯 그와 함께 동화된 시간이 참 따뜻하니 좋았다. 이야기 속의 두 할아버지들이 의지가 된 것이며 분명 준영에게는 득산리가 무서운 전설의 동네가 아닌 엄마 아빠가 말씀하신 '무릉도원'은 아닐까? 그 뜻은 잘 모르지만 말이다. 그 시절 그 친구들이 그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따뜻함을 드세요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난 우리 외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막걸리와 매운탕'이 생각난다. 외할아버지는 천렵도 잘하셨지만 그것으로 끓인 '매운탕'을 즐겨 드시기도 했고 우리집에 오면 꼭 엄마는 내게 노란주전자를 들고 가서 막걸리를 받아 오게 했다. 그리곤 오빠들에게는 마을 앞 뒤 개울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 오게 하여 매운탕에 막걸리를 대접해 드렸다. 그러니 마을 어귀에서 한복을 정갈하게 차려 입으신 외할아버지가 나타나면 난 얼른 노란주전자를 들고 뛰었다. 그래서였을까 외할아버니는 다른 손주들보다 나를 무척이나 이뻐하셨다. 돌아가시기 일주일전에는 물 한 모금 넘기시지 못하며 내가 보고 싶다고 해서 가서 뵙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또한 물한모금 넘기지 못하다가 내가 왔다는 말에 할아버지는 물을 한모금 한모금 넘기셨다. 여름방학만 주면 외가댁에 가서 할아버지와 함께 그물을 들고 난 양동이를 들고 물고길르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난 매운탕을 먹지를 않았지만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그 시간이 좋았다. 할아버지는 그래서였는지 영면하시고 다른 식구들 꿈에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으셨는데 내 꿈에는 두어번 다녀가셨다. 엄마는 외손녀딸을 아끼긴 아꼈나보라며 말씀 하시곤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매운탕과 막걸리가 생각이 난다면 친정아버지는 아버지가 늘 아궁이 잔불에 끓여 주시던,물론 엄마가 다 준비하셔서 아궁이에 안쳐 놓았지만 보글브글 잔불에 끓어 넘치지도 않고 맛있게 끓었던 된장찌개와 잔불에 석쇠를 올리고 구워 주셨던 '고등어구이'가 생각난다.아버지는 막내딸 입에 가시가 들어갈까봐 늘 조심조심 살을 발라 주시고는 했다. 말로는 잘 표현하지 않으셔도 지금으로 말하면 '딸바보'쯤 되는 울아버지는 그렇게 막내딸을 아끼셨다. 그런 아버지가 폐암으로 병원에 계실 때 난 일주일 동안 엄마와 아버지 밥반찬을 해서 병원으로 날랐다. 아버지가 아궁이 잔불에 끓여 주시던 된장찌개의 맛은 아니어도 국물멸치와 콩나물 바지락 두부를 넣어 시원하고 담백하게 끓인 된장국을 끓여 가면 좋아하셨다. 밥을 잘 드시지는 못했지만 국에 말아서 떠먹기 좋았던 것, 병원밥을 맛이 없는데 내가 해 가는 반찬들을 올려 놓아 드리면 그래도 한그릇 뚝딱 드셨던 아버지, 그때 간식거리로 과자를 사다 드렸는데 그중에서 '새우깡'과 '커스타드'인가 하는 것을 참 좋아하셨다. 새우깡은 안드신다고 하시면서 한봉지를 혼자서 맛있게 다 드시는 것이다.그래서 날마다 과자를 사다드렸는데 병실 아저씨들께 막내딸이 사왔다고 자랑도 하시고 당신도 한봉지씩 드시면서 '아버지는 과자 싫어하는데...' 그 말씀을 꼭 하셨다.다음엔 사오지 말라고. 아마도 그 말씀에는 내가 돈을 많이 쓸까봐 걱정이셨던 것 같다.그래도 날마다 맛나게 드셨던 생각이 난다.

 

오가와 이토의 <달팽이 식당>을 가지고 있는데 난 아직 읽지를 못했는데 큰딸이 지난 겨울방학에 읽고는 '엄마, 이 책은 꼭 읽어보세요.정말 감동이에요.' 했던 기억이 있어 언젠가 읽어야지 했는데 못 읽고 있었다.그런데 이 책을 보니 얼른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책을 읽고나니 더 읽고 싶어졌다. 이 책에는 7가지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이 삶의 한 부분인 약속,이별,죽음등과 함께 하는 이야기와 연결이 되어 있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거나 추억할 때 거기에 '음식'이 함께 하면 과거의 추억은 더욱 진하게 맛이 나고 그 기억을 잊을수가 없다. 나 또한 외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음식과 연관이 되어 더욱 생각이 난다. 한동안 아버지가 맛있게 드시던 과자를 먹을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날 나도 아버지처럼 맛있게 먹어볼까 하며 먹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들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아버지와 떨어져 엄마와 살고 있는 나,할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시게 되고 밥을 드시지 않아 엄마는 걱정이 많다.엄마가 그렇다고 음식솜씨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갖은 솜씨를 부려서 음식을 해가지고 가 할머니 앞에서 어린애같은 말로 할머니께 음식을 드려도 할머니는 금쩍하지 않았다.그런 할머니가 우연히 열은 창문밖 후지산에 반응을 하고 언젠가 아빠와 엄마와 함께 모두 모여 먹었던 후지산을 닮은 '빙수'를 찾는 다는 것을 알고는 얼른 빙수를 사러 가서 할머니 사정을 이야기하고는 후지산을 닮은 빙수를 사가지고 와서 할머니께 드렸는데 할머니는 맛있게 드신다.그리곤 할머니가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빙수를 건네 주신다. 빙수를 먹고 곤히 잠든 할머니와 엄마, 할머니의 입술에 묻는 빙수맛을 보며 '할머니는 부패하고 있는 건지,아니면 발효하고 있는 건지.'에 대하여 생각을 하다가 할머니는 빙수맛처럼 맛있게 '발효'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을 한다. 소녀는 아버지로부터 외면당하고 할머니 또한 나이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고 나니 '삶과 죽음'에 대하여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그것이 음식과 함께 하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아버지와 삼겹살 덮밥,아버지는 미식가였다.한곳에서 밥을 다 먹는 경우가 없을 정도로 어느 가게에 무엇이 맛있는지 맛순례를 하듯 엄마와 나를 데리고 다니며 먹곤 하셨다.그러던 아버지도 인정한 맛집이 있다. 요코하마 주카가이의 허름한 중국집,그곳에서는 미식가였던 아버지도 한곳에서 식사를 코스별로 다 마치셨다.아버지가 가시고 나서 나는 애인을 데리고 이곳에 왔다.그녀는 이곳에서 나오는 요리마다 맛있다며 정말 맛있게 먹기도 하고 그릇을 싹싹 비운다. 마지막까지 배부르게 먹는 애인,너무 먹어서 헤어지자고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순간 그는 프로포즈를 한다.아버지는 이곳에서 맛있게 먹는 사람과 결혼을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는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지금 자신의 인생을 바뀌 놓고 있다. 음식이라 정말 마음이 맞는 사람과 먹으면 더욱 맛이 배가 되는 겨우가 있다.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먹는 사람과 상황이 좋지 않으면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맛있는 음식과 그 맛을 알아주는 사람,그런 사람이라면 인생을 함께 해도 된다는 가슴 따듯한 이야기.

 

안녕 송이버섯, 10년을 함께 했지만 그들은 이제 이별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송이버섯 요리를 먹으러 가는 온천여행,애인의 생일날 여행을 그들은 취소할 수가 없어 마지막이지만 함께 한다. 따듯한 온천과 정말 맛있는 송이버섯 요리들, 송이버섯 철에 오면 더욱 맛있는 아침에 먹는 송이버섯 요리는 최고인듯 하다. 왜 그들은 십년을 사귀었는데 결혼을 못하고 이별여행을 오게 된 것일까.아무리 남자가 다른 여자가 있는듯 하다고 하지만 자신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마지막까지 난 그들이 해피엔딩이 될 줄 알았는데 애인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진심을 알게 되는 여자, 인생은 그렇게 엇박자인듯 하다.엇박자라고 비난하거나 자책할 것이 아니라 서로 합일점을 찾아서 마음을 나누어 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남자는 왜 진심을 표현하지 않았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왜 잡으려고 안했을까? 이별을 앞에 두고 그들은 이별과는 별개처럼 맛있는 음식들을 함께 한다.맛있는 음식들로 인해 그들의 이별의 감정이 녹아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보다. 맛있는 음식과 삶은 별개이기도 하다.아니 그런 와중에 삶은 진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코짱의 된장국, 엄마는 그녀를 남겨 두고 암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만약에 그녀를 임심하지 않았다면 엄마는 아빠와 오래도록 살 수 있었던것 아닐까? 자신의 탄생이 괜히 자책감이 들어 아빠에게 물어보지만 아빠는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그녀가 있어서 엄마와 아빠는 더 행복했다고 이야기 한다. 엄마는 그녀가 아주 어린 나이부터 그녀에게 '된장국' 끓이는 법을 알려 주었다. 엄마가 빨리 갈 것을 알고 어린 그녀에게 된장국 끓이는 법을 알려준 것일까?이제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아빠에게 마지막 된장국을 끓여주고 있다.그녀가 떠나면 아빠는 혼자서 된장국을 끓여 먹어야 한다. 아빠의 프로포즈와 같던 말에 엄마는 평생 맛있는 된장국을 아빠에게도 끓여 주었고 그녀에게도 가르쳐 주었다. 엄마는 떠났지만 엄마와 함께 했던 맛있는 된장국은 오래도록 남아 있다. 인생도 그런것 같다. 삶은 소멸하고 탄생하고를 반복하는 가운데 음식이라 이어지고 이어져 누군가의 기억에 오래도록 추억을 남겨 놓는다. 엄마는 분명 떠났고 이제 그녀도 아빠의 곁을 떠나야 하지만 그들의 기억속에는 모두 함께 했던 된장국에 대한 행복한 기억이 존재한다. 그 따스함을 전해주고 있다.

 

그외 이야기로 동성연애를 하여 딸과 아내에게 소외된 남자가 돼지와 함께 프랑스 여행을 간다. 아사를 하겠다고 하다가 맛있는 것을 앞에 놓고 그들은 마지막 음식으라며 먹고는 하는데 그들이 과연 죽을 수는 있을까. 그런가하면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맛있는 고르케에 대한 추억을 잊을 수 없어 찾아 왔지만 맛있는 음식은 있는데 사람이 없다. 삶은 또 그렇게 흘러 가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먹어야 한다. 사는 것이 먼저인지 먹는 것이 먼저인지 한참 그런 질문이 돌았지만 먹어야 살 수 있는 것 아닐까? 그것이 맛 없는 음식보다는 보다 더 맛있고 한때의 기억속에 행복했던 사람과 나누었던 음식은 그것이 맛이 없어도 더욱 맛있게 기억된다. 돌아가신 아빠가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기리탄포'를 아빠 49제에 함께 나누기 위하여 엄마와 하지만 실패를 한다.왜 갑자기 그 맛이 변했을까? 간장을 넣어야 하는데 직원이 가져다 준 약초물을 잘못 넣은 것이다. 그리곤 다른 요리를 하여 먹는 모녀, 아빠와 함께 했던 기억이 있기에 기리탄포가 더 맛있게 기억되고 마지막까지 아빠가 그 음식을 먹고 싶어했기에 더 기억되는 음식인데 지금 그들이 만들어 낸 맛은 그 맛이 아니다. 맛이란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도 있다. 추억이란 것도 시간이 흐르면 퇴색해 간다. 삶 또한 영원하지 않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사랑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일상적인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음식과 나누는 일상적인 맛 이야기는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것처럼 목울대를 막히게 한다. 나이가 들어가니 점점 음식과 함께 한 '행복한 만찬'이나 '행복한 기억'들 속의 음식들을 찾게 된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는가 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머니 공부 - 치매 어머니와 시장터에서 느리게 살기
이동현 지음 / 필로소픽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보통 부모님이 연로하시고 치매와 그외 중병에 걸리면 요즘은 대부분 '요양병원'이나 그외 시설에 많이 가시게 한다.그리곤 시간을 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병원비나 대는 것이지 정말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나 또한 아버지를 폐암으로 보내드리게 되었지만 아버지가 폐암이라는 소리를 듣고나니 덜컥 이제 아버지를 누가 맡아야 하나하는 생각부터 들게 되었다. 병원에라도 모시고 가게 된다면 아니면 병원에 입원을 하시게 된다면 그 뒷일을 누가 다 맡아서 할 것인가? 분명 혼자서는 하기 힘들다. 자식들이 있으니 모두 모여 상의를 해야했고 모두 모여 의견을 내지만 이유 없는 자식이 없다. 모두 이래저래서 안된다는 말뿐이지 선뜻 나서서 맡아서 자신이 모두 멍에를 짊어지겠다는 자식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가 할 수 있는 일을 나누어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서일까 그래도 보내 드리고 너무 많이 못한 일들이 사뭇쳐 아버지 생각을 하면 눈물이 앞서지만 그래도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 내가 함께 아버지 옆에서 수발을 들었던 그 귀한 시간들이 내 삶에 영양분처럼 날 지탱하게 해 준다. 그렇다고 홀로 계신 엄마를 좀더 챙겨 드리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인간의 마음이 간사하다 뒤돌아 서면 잊고 만다. 직접적인 내 일이 아니기에.

 

그런데 저자는 70중반에 치매가 온 어머니를 출퇴근 길에 함께 하면 극진히 봉양을 한다. 정말 부모님은 낳으실 제 괴로움을 다 잊은신듯 자식을 위해 허리가 휘도록 젊은 시절 열심히 두 손에 지문이 다 닳도록 하숙일을 하시며 그렇게 자식들을 키우셨다. 그런 어머니의 인생을 어쩌면 다시금 반추해 보는,어머니의 치매로 인해 자신이 어머니 인생을 통해 인생이란 것을 다시 배우고 있음을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고 모두 담아 놓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백프로 모두를 담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지난날의 과거의 모든 것들,치매를 앓으시는 어머니가 잊어가고 있는 그 기억들은 아들인 장자는 다시금 불씨를 되살려내듯 하나하나 다시금 불씨를 집히고 있다. 우리 친정엄마고 그러지시만 다른 병은 걸려도 치매는 걸리지 말아야 한다며 엄마는 늘 말씀하신다. 시골동네에 엄마와 연세가 같으신 분이 치매에 걸리신 분이 계셨다. 날마다 동네가 떠들썩 하기도 하고 자식들은 어머니를 찾아 온통 동네를 휘젓고 다니기도 그 넓은 들로 찾아 다니기를 밥먹듯 하니 나중에는 어머니께 점점 험한 말도 하고 어머님이 알아 듣지도 못하는데 하지 말아야 말과 행동을 일쌈는 것을 보았다. 그 어머님 울집 밭에서도 늘 고추며 콩이며 한참 수확을 하려면 따가서 엄나도 나중에는 혼잣말로 속상하다고 하시면서도 가슴 한 켠에는 불쌍한지 '치매는 걸리지 말아야혀.' 하고 늘쌍 하셨다.

 

그렇게 치매는 자신 뿐만이 아니라 옆의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다른 병 또한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존재가치를 점점 잃어간다는 것은 정말 슬픈일인듯 하다. 그런데 저자는 부모님의 과거가 모두 저장되어 있고 할머니와 외할머니까지 함께 사시다 가셨던 북아현동의 저잣거리 집을 다시 수리를 하여 부모님과 함께 한다. 어머니의 치매가 좀더 깊어진 다음에는 아예 출퇴근도 함께 하고 그동안 부모님과 함께 하지 못한 연극을 보러 가기도 하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기도 하고 함께 여행을 하기도 한다. 어머님이 치매에 걸리고 좋은 것이 있다면 그가 운전을 하게 된 것이다. 어머님의 치매가 아니었다면 평생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것이란 말이 와 닿는다.그런 어떻게 보며 고지식하고 세상과 소통이 그리 많이 않았던 아들이 어머니의 치매로 인해 많은 돈을 들여 집도 수리하고 마당에 감나무며 매화나무며 대추나무도 심어 사계절을 느끼고 집안에 새로운 가구와 가전제품을 들여 놓는다. 어머니의 치매로 인한 변화였는데 무엇보다 큰 것은 차를 장만한 것이다. 운전도 못하면서 차를 장만하여 평생 여행한번 제대로 못하고 맛난것 한번 사드시지 못한 부모님과 함께 드라이브를 한다는,새로운 세상을 보여드린다는 마음으로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 큰 기쁨이 되지 않았을까.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중병에 걸리면 물론 요양기관에 맡기면 잘 알아서 돌봐드리겠지만 무엇보다 더 안정감을 갖고 환자와 소통할 수 있는 것은 가족인듯 하다. 우리 부모님들도 병원에만 가시면 하시는 말씀이 '집에 가야지 여기에 못 있는다.밭에도 가봐야하고 수확도 해야 하고..' 늘 집걱정이셨다. 그렇다고 옆에 다른 사람을 시켜 돌봐드리라고 할수도 없는 처지, 그럴정도가 아니었기에 내가 시간을 내어 함께 했는데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난 정말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평생 후회하며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병간호를 한다는 것은 '문병인'이 아니고 '간병인'이라면 누구나 힘들다. 문병인들은 알지 못하는 환자와 나누는 세세한 것들을 나 또한 알고 있었고 처음엔 서로 맞지 않는듯 하면서도 가족이기에 서로가 잘 통하고 금세 우린 어느 누구도 부러워하는 짝이 되어 아버지를 돌봐드렸다. 저자 또한 요양병원에 맡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아버지가 그 말씀을 한번 꺼냈지만 정말 본전도 찾지 못하고 아들에게 혼자고 마셨다. 남이 못하는 부분을 가족이기에 어머니이기에 더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고 느꼈겠지만 남이 보는 시선에서는 또 그렇지가 않다.요즘은 모두 돈으로 해결하려는 세상이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면서 우린 자식에게 나중에 어떤 거울이 될지 생각도 못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그가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것은 어머니가 할머니와 외할머니를 모셨기 때문에 자신도 모셔야 된다고 당연하게 생각을 했는데 그 일로 그는 상을 받기도 한다. 안받겠다고 하지만 어머니가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받게 되는 효자상, 그 앞에서 해맑게 웃으시는 어머니가 평안한 모습이다.

 

'어머니를 찾아 가는 길은 나를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자신들을 돌보고 키웠지만 그것을 외면하고 살아오듯 부모님에게 못한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어머니의 치매로 인해 세상공부 인생공부를 하게 되는 그의 이야기는 진솔해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물론 극진히 봉양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점점 드문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우리 또한 나이를 먹을 것이고 인간의 수명은 점점 길어지고 있고 우리도 그런 병에 걸리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금 세상은 병이란 것이 나이를 따라 오는 것이 아니고 젊은 사람도 노인들이 걸리는 병에 걸리는 것이 보통의 일이 된 세상이다. 자신의 뿌리가 박힌 곳에서 어머니의 인생을 그리고 아버지의 인생을 함께 지켜가며 지천명이라는 나이에 비로소 어머니로 인해 세상을 다시 보는 인생 공부를 하는 그의 담담한 이야기가 우리가 잊고 있던 무언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당연한 것이 외면 당하는 세상,난 부모님을 모시지 않으면서 내 자식은 우리를 모셔주길 원한다면 그것이 생각처럼 될까. 본대로 배우고 익히게 되어 있는데 과연 자식에게 무엇을 보여주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치매환자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평안하신 어머님의 얼굴이 좋다. 좀더 오래 아드님의 곁에서 평안하시고 아프시지 않고 오래사시길 바라며 많이 가져서 부자가 아니라 그는 어머니의 모든 것을 품고 있어서 부자로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계절이 통째로 찢어져 사라진 후의 일임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한번이라도 사랑의 실패는 맛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것이 남녀간 이성간의 사랑이건 혹은 가족이나 형제 그 외의 사람들간의 사랑이어도 좋다. 누구에게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실연은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가 있다.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지혜롭게 잘 이겨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이후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혹은 그 시간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픔 속에 평생을 방황하는 사람도 있고 실연의 아픔을 트라우마처럼 간직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그 시간을 이겨내는 것이 잘 이겨내는 것이고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을까? 있다면 그들의 슬픔의 깊이와 모양은 나와는 어떻게 다를까? 인간은 내가 처한 아픔이나 슬픔은 무척 크게 느낀다.하지만 그것이 내가 아닌 타인일 경우에는 '별거 아니네.' 하고 나와 비교하게 되고 타인의 슬픔이나 아픔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내 것의 깊이가 점점 사그라지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빛을 잃어가게 마련이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실연 당한 사람들이 아침 일곱시부터 밥이 넘어갈까. 평범한 삶이 이어지지 못하고 있을텐데 남들처럼 일곱시에 아침을 먹을 수 있을까.내가 아픔에 처하면 세상에 그런 상황은 나하나처럼 여겨지지만 여기 모인 21명의 사람들만 봐도 이별이나 슬픔은 평범한 것,살아가다 보면 우연하게 만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조찬 일곱시 조찬 모임에 온 사강과 미도 지훈, 그들은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고 깊이는 얼마나 될까? 자신의 슬픔을 제대로 자신 안에서 끄집어 내지 못하고 가두어 두었던 그들이 모임에 참석하여 앞자기의 빈 의자를 보는 순간,사강은 그동안 담아 두었던 눈물을 쏟아내듯 진심으로 자신 안에 갇혀 있던 눈물을 쏟아 낸다. 봇물처럼 가두고만 있던 슬픔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게 되고 자신의 슬픔 뿐만이 아니라 상흔이 어린 이별의 물건들을 보면서 타인의 슬픔까지 보게 된다.

 

사강,그녀는 아버지와 정수로부터 두번의 아픔을 겪는다. 어린시절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을 딸에게 남겨 놓고 아버지는 그렇게 모녀를 떠나갔다. 기쁨이나 즐거움보다는 아픔만 남겨 놓은 아버지,그 아버지의 빈자리에 함께 비행을 하는 조종사 정수가 들어오게 된다. 강인하고 굳건할 것만 같던 정수에게서 아픔을 보게 되고 나약함을 보고는 둘은 서로의 가슴에 오게 된다.하지만 그는 사강과 함께 하기엔 너무 먼 거리에 있다. 가정이 있는 남자,이혼을 하고 그녀에게 오겠다지만 그렇게까지 가정을 깨면서 자신의 사랑으로 안고 싶지 않다.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아버지의 삶을 그에게 던져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곤 그녀는 정수를 품었던 그 시간들을 쏟아내듯 그들의 아이를 잃고 만다. 그 공허함으로 그녀는 어쩌면 이 모임에 오게 되었는지 모른다.그런가하면 지훈은 현정과 오랜시간 친구로 지내다가 헤어졌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지 못하는,현정은 지훈의 가정사를,그중에서도 자폐를 가진 형의 아픔을 안아주지 못했던 것. 사랑이면 서로의 모든 것을 감싸주고 토닥여줄줄 알아야 하는데 그저 바라다 보이는 자신들만 보았던 것. 지훈 또한 현정이 어머니를 품지 못한다. 딸의 일이라면 너무도 나서서 딸의 길 앞에 먼지를 쓸어주는 엄마,그녀는 어쩌면 마마걸처럼 늘 엄마의 그림자 뒤에 숨으려고 한 것은 아닐까.그렇게 그들 또한 이별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미도는 조찬 모임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처림 아픔이 없는 듯 보이지만 그녀 또한 어린 시절에 부모님 때문에 소녀가장처럼 가정을 책임지며 살았다. 그녀에게 남겨진 동생 미우를 책임지며 그녀는 악착같이 살아 왔다. 그런 그녀가 밝히는 '조찬 모임'의 본 취지는 지훈을 잊지 못한 현정이 그를 다시 만나고 싶어 이 모임을 만들게 된 것이다. 잘짜여진 각본처럼 완벽하게 모임은 성사되어지만 그들이 나중에 나누어 갖게 된 이별의 상흔이 묻은 '물건'인 지훈이 가져 온 '로모 카메라'와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 해외판 때문에 지훈과 사강은 다시 만나게 되고 타인에게 쏟아내지 못했던 자신들의 아픔을 이야기 함으로 인해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게 되고 다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자신들의 아픔을 보느라 타인의 아픔 따위 보이지도 않았고 귀굴이게 되지도 않았는데 로모카메라속 사진과 슬픔이여 안녕에 담긴 진실이 전해지면서 그들은 '과거'와 화해를 하게 되고 '슬픔이여 안녕!' 처럼 정말 슬픔과는 이제 작별을 하고 밝은 미래와 악수를 하게 된다.

 

사랑과 이별 그리고 실연이라는 평범한 듯 하면서도 아픔의 그 진공된 시간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직 세상에 '실연'만 있는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마음을 풀어 주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의 임의에 의해 결속된 모임이라고 해도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처럼 '일곱시 조찬 모임'을 하게 되기 까지는 분명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그런 이별연습이나 슬픔을 보내는 연습이 모자랐던 그들은 타인의 아픔으로 인해 내 슬픔과 아픔이 희서되면서 평범한 일곱시 조찬을 맞을 그런 마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중국 고사에 자신의 아이를 잃은 여인이 현자를 찾아가 아이를 살려달라고 한다. 그는 여인에게 슬픔이 한가지도 없는 집의 오얏씨를 가져 오면 살려주겠다고 한다. 여인은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슬픔이 없는 집의 오얏씨를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정녕 그런 집이 존재할까. 내 슬픔만 보고 타인의 슬픔을 보지 못했기에 다른 집에도 그런 아픔이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다니는 집집마다 다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다. 비로소 깨닫는 여인,삶이란 그런 것이다. 어떻게 행복만 사랑만 계속 되는 그런 시간속을 살겠는가.그렇다면 너무 재미가 없을 듯 하다. 망망대해에 바람과 파도가 없다면 항해는 어떠할까? 삶 또한 사랑도 이별도 실연도 모든 것은 삶이라는 연장선속의 한 점에 불과하다. 그 시간을 잘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어른이 되는 속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지훈을 다시 만난 현정 또한 자신의 과거의 시간과 안녕을 고하고 미래의 시간속으로 달려 갔듯이 정수 또한 비록 잘 안되는 식당을 하고 있고 아내에겐 엄격하지만 그의 딸에겐 딸바보 아빠처럼 다정하다. 그 또한 그의 삶 속으로 힘차게 아내와 함께 걸어 갔다. 지훈과 사강은 어떨까? 그들도 과거와 화해를 하고 트라우마처럼 자신 안에 존재하고 있는 '슬픔과 실연'에서 일곱시 조찬 모임을 통하여 또 다른 슬픔으로 인해 자신의 슬픔과 실연을 희석시킴으로 인해 둘은 서로를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실연의 아픔이 떠나고 그 자리에 대신 사랑의 봇물을 가두게 되었다. 인생이 늘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고 불행만 있는 것이 아닌 그들은 모두 '행복'속으로 '사랑' 속으로 다시 힘차게 달려간다. 그것이 저자가 독자들에게 주는 메세지다. 스스로 그들의 아픔을 읽어나가며 내 안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던 슬픔과 아픔의 찌꺼지를 모두 흘러가 버리고 화해와 용서 그리고 다시 사랑하게 만든다. 사족처럼 영원할 것 같았던 스티브 잡스 또한 우리의 곁을 너무 바람처럼 떠나가가 버리고 말았다.영원한 이별도 영원한 슬픔도 영원한 실연도 없다. 모두것은 지나가게 되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타임 콜렉터 : 시간을 찾으면 인생도 찾는다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미숙 옮김 / 명진출판사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두 딸들이 대학을 눈 앞에 두고 있기도 하지만 내 나이 또한 마흔 중반을 넘어서고 있고 옆지기 또한 쉰 고개를 넘어서니 이제 우리의 '노년' 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남자들은 직장에서 슬슬 밀려나는 시기이고 아이들은 돈이 제일 들어가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수명이 연장되어 지금까지 살아 온 만큼의 시간을 더 살게 될지 모르는 인생인데 저축보다는 지출이 늘 더 많은 삶에서 과연 나중에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친구들과 모여도 옆지기와 함께 해도 늘 화두로 떠오르는 문제이다. 부모님들의 삶을 보아도 노년이라고 돈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이 커서 떨어져 나가도 늘 지출은 여전하고 거기에 어디 한 곳 중한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가족이 모두 힘에 부쳐한다. 그만큼 준비없는 맞는 노후가 되어서는 안되는데 현대사회는 저축보다는 지출이 더 많다. 그렇다고 시간적으로 여유있는 것도 아니다.우리가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시간 없어서..' 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시간은 금이다' 라는 말을 어릴적부터 정말 많이 들어 왔지만 생각해보면 시간의 주인이 되어 살아 온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늘 시간의 노예처럼 24시간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처럼 늘 힘겹게 '시간 없어'를 연발하고 살아도 늘 사는 것은 거기가 거기다. 그리고 우리 나이 정도가 되면 하나 둘 친구들의 소식들을 접하게 된다. 큰 병에 걸렸다거나 혹은 사고로 인한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는,불의의 일들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다치게 된다. '언제 밥 한번 먹자' '시간 없는데 나중에 봐.' 라고 했던 사람들의 말은 영원처럼 지켜지지 않고 그저 말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삶의 속에 정말 시간이 없을까? 시간은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잠시 잠깐 기다리는 시간에도 요즘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하는 시간은 무척 많다. 그런 시간을 종합해 본다면 내가 허투로 보내는 시간은 정말 많다. 하지만 하릴없이 메일을 확인하거나 SNS의 소식들을 검색하고 클릭하느라 정말 내게 귀중한 시간을 감지하지 못하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모래알처럼 시간을 허투루 버려 버리는 것은 아닌지.

 

저자는 인생을 4단계로 나누고 있다. 제 1단계는 수렵기로 30~45세, 제2단계는 더블스텐더드기라고 하여 45~60세, 제3단계는 원숙기라고 하여 60~75세라고 보고 제4단계는 제로 출력기라고 75세 이상으로 나누고 있다. 제1단계는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할 시기임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효율성을 강조하였고 그가 이 책에서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제2단계인 더블스텐더드기인 45~60세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 시기에 딱 내가 놓여 있는 것이다. 자녀들에게도 경제적인 것이 제일 많이 들어갈 나이지만 본인들에게도 이 시기는 제일 중요한 시기이다. 회사에서 밀려나거나 혹은 노후를 위한 '시간 활용'을 좀더 짜임새 있게 활용해야 할 나이인데 '인생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다른 어떤 말보다 가슴에 와 닿은 말은 '쫓지 말고 찾아가라' 우리가 흔히 돈도 너무 매달려서 돈을 쫓아 가는 사람에게는 돈이 안붙는다고 말한다. 돈에 별 관심없듯이 하는 사람에게 더 돈이 온다고 한다. 시간도 그렇다고 너무 힘겹게 쫓아 가지 말고 찾아가라는 이 한마디가 왜 그리 가슴에 와서 콕 박히는지, 지금까지는 시간을 쫓아가며 살아 온 듯 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서 이젠 여유를 가지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할 시기인듯 하다.

 

시간을 찾아가는 방법으로는 여러가지가 나온다. 그동안 미루고 있던 것이나 시간 없다고 못해보았던 일들을 이젠 실천해 보는 것이다. 시간이 없어 누려보지 못한 카페를 찾는 다거나 책을 읽는 다던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했지만 못해 보았던 일들을 이루며 성취감에 빠져 들수도 있고 지금까지 누렸던 직업이 아닌 정말 가슴에 막혀 있는 일을 해보며 거기에서 얻는 성취감에 또 다른 인생의 맛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흔히 60부터 제2의 인생이라고 한다. 수명이 짧았던 시절에는 60만 되어도 많이 살았다고 하지만 모든 것이 발전한 지금은 '60은 청춘'이라고 한다. 얼마전에 읽은 < 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에서 80대 노부부의 건강한 삶에 대하여 나온다. 80대 노부부는 젊은 그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게 하루종일 움직이고 일하고 그리고 텃밭을 가꾸어 자식들에게 혹은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며 살아간다. 그들 또한 처음부터 농사를 지은것도 아니고 그런 삶을 살아 온 것도 아니었지만 젊은 시절에 누렸던 삶과는 전혀 다른 땅을 일구며 늘 일하면서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면서 젊은사람 못지 않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땅을 일구며 여유롭고 풍요로운 씨를 뿌린만큼 거두어 들이고 그것을 나누어 먹는 사람에서 행복을 느끼기에 더 건강한 삶으로 거듭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 노부부야말로 시간의 노예가 아닌 시간의 주인이 되어 하루 24시간을 살아가는듯 했다.

 

다른 어떤 시기도 분명 중요하지만 한참 활동하는 왕성한 젊은을 지나 완전한 노년으로 가기 전의 '징검다리'처럼 건너야 하는 중간에 낀 45~60이라는 나이는 결코 만만한 나이가 아니다. 가끔 그 나이를 견디지 못하고 험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종종 들려 오기도 하고 정말 조금만 달리 생각해 보면 인생을 달리 살아갈 수도 있는데 잘못된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종종 들려오는 것은 그만큼 힘든 나이라는 것이다. 한참 일하고 혀리를 펴려고 했는데 그 앞날이 더 힘든 비바람이 닥쳐 온다면,그렇게 되지 않기 위하여 시간의 주인이 되어 포기하지 않고 시간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이야기들은 쉽게 읽으며 공감해 나갈 수 있다. 우리 주변에도 '귀농'이라든가 제2의 삶을 위하여 젊은 시절과는 다른 대기업의 사장이 구멍가게를 창업했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데 인생은 준비하는 자의 것인듯 하다. 누구나 준비를 해야한다. 꿈을 그저 꿈으로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관리를 잘하여 좀더 멋진 인생 여유로운 인생 멋 있는 인생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잃어버리고 있는 시간을 찾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