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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이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평점 :
어린시절 위로 오빠 둘이 있어 겨울에는 늘 들에서 노느라 집에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 시골에서 겨울에 논이나 들판은 그야말로 놀이터,집 앞 논부터 해서 크고 맘에 드는 논에 개울 물을 끌여 들여 얼음판을 만들어 놓고 그 논에서 종일 썰매도 타고 팽이도 돌리고 연도 날리고 하루종일 밖에서 놀며 발이 시렵고 동상에 걸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날이 밖으며 다시 밖으로 나가곤 했다. 그때 오빠들은 나무를 깎아서 밑에는 쇠구슬을 박고 위에는 색연필로 여러가지 색을 칠해 멋진 팽이를 만들어 주었다. 팽이채로 팽이를 돌리다면 색칠을 해 놓은 것이 돌아가면서 얼마나 멋진 무늬를 보여주는지 그 맛에 얼음판에서 팽이싸움도 하고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때 팽이를 돌려보고 성장하면서 팽이를 만났던 기억은 아이들이 어릴 때 내 어린시절을 생각하며 팽이 볼리는 법을 알려주었지만 아이들은 재미를 몰랐다. 잘 돌려 놓으면 한자리에서 팽이는 오래도록 팽팽 팽팽 잘 돌아간다. 거기에 그만큼의 힘을 가해줘야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것이 팽이다.
저자의 작품은 이 책이 처음이다. 받아 놓고 얼마동안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읽게 되었다. 고민하기 보다는 다른 책들에 밀려 있었다. 읽고 싶었지만 먼저 읽어줘야 하는 책들이 있어 읽다가 잡게 되었는데 이 책은 저자의 단편집이다. 십여편의 단편은 결핍과 고통에 시달리는 서민이나 여성 청소년등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들을 세심하게 그녀만의 색으로 그림을 그린다. 깨지지 않게 알맞은 힘을 가하며 멈추지 않고 잘 돌아가게 조절하면서 어린시절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여 놀던 놀이판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이지 않은 그 속에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한다.
<돈가방> 형 동수가 어머니 산소에 가자는 아야기에 두수네는 고물 아반떼를 간식히 끓고 산소가 있는 곳에 도착을 한다. 끌고 오는 것도 힘겨웠지만 가는 것도 걱정인데 돈이 없다고 늘 어렵다는 말을 달고 사는 형은 아우디를 끌고 나타난다. 빚을 져가면서 집을 장만하고 애들 가르치고 차를 바꾼다는 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와 같은 상황에서 그들은 묘지에서 현금 3억이 든 '돈가방'을 발견하게 된다. 현금이다. 누가 본 사람도 없이 두수네와 동수네가 발견한 돈가방인데 그들은 돈가방앞에 서로 어렵다는 것을 나타내며 돈가방을 가져야 한다고 상대에게 주입시킨다. 동수보다는 두수가 더 양심이 있어 형에게 양보를 하면서도 동생이 걸린다. 형은 각서를 써 놓고 돈가방을 가져가 버리고는 나중에서야 돈가장을 잃어 버렸다고 한다. 공짜로 주운 돈에 형제애도 없고 양심도 없는 형,정말 자신이 믿고 의지하던 형이 맞는가? 두수는 그런 형을 신고하기에 이르른다. 돈 앞에서는 정말 부모도 형제도 없다는 말이 요즘 세간을 떠들썩 하게 하는 사건들이 말해준다. 돈 때문에 부모나 형제의 목숨을 파리목숨여기듯 하는 사건들,정말 안타깝다. 만약에 정말 이런 상황이라면 나라면 어떻게 할까? 내가 정말 힘든 상황이라면 남의 돈을 내돈처럼 여길까? 99개를 가진이는 1개를 더 가져 100개를 채우우려고 한다더니 그래도 모자라게 사는 두수가 더 양심적인 듯 하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참 힘들게 사는 부부가 있다. <남편>,그들은 아직은 돈이 없어 아이도 포기하고 산다. 아니 아이를 가졌었지만 아내는 월세도 올려줘야 하는데 아직은 남의 이야기인듯 하여 아이를 지운다. 그리곤 남편한테 얼마나 혼이 났는지.아내는 마트에서 일하고 남편은 직장에 다니지만 그들에게 여유란 하나도 없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이 찾아 오고 회사와 집 밖에 몰랐던,아니 요즘 남편은 늦게 오기도 했고 소주를 마셨다.그런데 그가 미성년자 성폭행 후 살인이라는 누명을 쓰게 되었다. 아니 그가 살인범으로 완전히 지목이 되고 말았다. 주변에서 그들에게 쏟아지는 심한 비난에 그녀마져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정말 내 편이라고 믿었던 남편이 '살인범'일까? 그는 살인을 저지를만한 인물이 아니다. 적어도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그런데 그가 왜 그가 만져보지도 않는 수표와 아내에겐 전화도 안하는데 살해된 소녀에게 전화통화를 했을까? 자신은 그동안 뭘 믿고 살아 온 것일까? 내가 믿고 있는 믿음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절대 아니야' 라고 부인하는 남편의 말을 둘째치고 유리창처럼 와장창 깨져버린 믿음 때문에 더이상 그는 남편이 아닌 남의 편이 되고 말았다.
<어디쯤>,우린 지금 어지쯤 가고 있는 것일까? 목적지가 보이지도 않고 현위치 파악도 되지 않고 있다면... 아버지가 약도를 그려주고 퇴근후에 그곳에 가보라고 한다. 좌회전 우회전 직진등 금방 찾아갈 수 있는 길인듯 했지만 지하철역을 빠져 나와서 한참 걸은 듯 하기도 하고 길 가는 이들에게 물어도 어딘지 알 수가 없다. 아버지는 왜 그곳을 찾아가라고 했을까? 자신이 왜 가야하는지 그곳이 어디인지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찾아가려 한다.가다보니 지갑도 없어지고 연인은 자신에게 오라고 하고 아버지는 갔느냐고 물어보고 엄마는 왜 돌아오지 않느냐고 묻는다. 왜 가고 있는 것이지. 자신의 의지가 아닌데도 억지로 가고 있으면서 모든 것을 잃으면서도 꼭 가야할것만 같은데 누군가는 그곳에 가지 말라고 한다.왜? 삶은 그렇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이나 그리움이 있지만 그 길로 향하면 일부는 가지 말라고 말린다. 자신이 노를 저어 가면서도 잘 가고 있는지 늘 의문이 든다.그게 삶이다.
<주단>,주와 단은 쌍둥이다 그런데 엄마 뱃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 명은 건강한데 한 명은 선천적인 병을 가지고 있다. 단 때문에 주는 자신이 엄마의 관심 밖을 벗어난 것을 받아 들이는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죽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그가 없었다면? 그렇다면 단은 또 어떨까? 자신이 주처럼 건강하게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서로 바뀌었더라면...한번뿐인 인생에 연습과 만약이 존재할 수 없지만 우린 그런 순간과 생각을 몇 번을 해 본다. 서로 가져 보지 못했거나 해보지 못한 것을 부러워 하면서도 다 가지려고 하지만 모든 것이 내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은 학교를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주의 친구들은 그가 쌍둥이라는 것을 알고는 놀란다. 그런 단이 건강하게 해달라고 늘 기도하지만 응급실을 가는 날도 많고 점점 그의 건강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듯 보인다.그래도 자신에게 그런 쌍둥이 동생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그는 그가 누려보지 못한 것을 해보라는 식으로 자신의 흙묻은 운동화와 공을 그의 발에 데코레이션을 해주고는 그가 공을 차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그들에게 건강하고 강인함은 돌아오지 않을지라고 마음은 주단이다.
<엘리>,아프리카의 초원에서 살아야 할 코끼리가 부족하다가 사회에서 외면당했다고 느끼는 젊은이와 살고 있다. 그의 꿈은 영화를 만드는 것,그 영화속 주인공은 자신과 함께 살고 있는 코끼리 '엘리'다. 그는 자신이 코끼리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숨기고 살아간다. 현실적일수가 없다.코끼를 키운다는 것, 하지만 '엘리'는 그의 꿈이라고 본다. 꿈이 없다고 사회나 가족에서 그를 바보취급 하는데 그에게도 분명 꿈이 있다. 이루어질지 모르는 허황된 꿈이라고 해도 분명 꿈을 가지고 있다. 아직 살아가야 할 시간이 더 많은 인생이기에 지켜봐야 한다. 우린 그 기다림을 해주지 못하고 당장의 결과에만 사람을 평가하려고 한다. <월드빌 401호> 엄마가 돌아 가시고 보상금이며 그외 모든 것은 남들이 채가고 나서 그에게 남겨진 것은 다 낡아빠진 월드빌 401호 뿐이다.그곳에서 온기라도 느끼고 살려고 개 한마리 데려다 죽지 않을 정도의 인스턴트만 먹이는데 바깥세상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그,이젠 이 생활에서 벗어나 바깥세상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팽이>,엄마는 남매를 남겨두고 미국으로 떠났다.자신의 삶을 찾아서.오빠 또한 성장하여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났지만 난 이곳에서 팽이처럼 뱅뱅 돌고 있다. 돈가방에 나온 가난이란 것도 '남편' 의 이야기의 밑바탕에 깔린 가난도 자신의 꿈을 찾고 있는 청년의 이야기도 월드빌 401호에 갇혀 사는 아이도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뱅뱅 돌고 있는 팽이같다. 그 자리를 벗어나서 어딘가로 가야하는데 아직 그들에게는 그럴 힘이 없다. 언젠가는 자신의 자리를 벗어날 힘을 얻겠지만 현재는 '제자리걸음' 이다. 제자리에서 맴 돌고 있는 팽이처럼 제자리걸음이다. 그런 그들이 희망을 향해 나아가길 부디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