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튈지 모르는 중학생의 멘토 부모 되기 - 사춘기 자녀의 4대 변화 관리법 소리치지 않고 때리지 않고 아이를 변화시키는 비결 2
고봉익.이정아 지음 / 명진출판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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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춘기,그런 녀석들이 둘이나 있고 지금 한참 세여자의 사춘기는 계속 되고 있는게 우리집 현실이다. 딸들은 사춘기라고 이해해 달라고 하지만 난 '그럼 엄마는 갱년기가 다가오는데 너희들이 이해할 수 있어' 하면 녀석들 말을 못한다. 분명히 나도 사춘기를 지났고 그렇게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며 부모가 되었지만 정말 요즘 아이들은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힘들다고 한다. 그만큼 각박해져 가고 IT기가는 발달하여 공부가 아닌 그들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관심을 쏟은 곳이 주위에는 너무도 많다. 그러가 하면 대한민국 사회는 성적과 대학을 중요시 한다. 그런다고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사회생활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 말로 잉여세대라 그런지 취업보다는 언저리를 헤맨다는 이야기가 더 많이 들려 오기도 하고 힘들게 대학 보내 놓고 가르쳤더니 또 고생이라는 말도 번번히 듣게 된다. 왜 이렇게 변해나고 우리의 아이들은 점점 삭막하게 변한 것인지,어른들의 탓이겠지만 그래도 그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려고 해도 끝이 없다는 것을 지금도 여전히 느끼고 있고 마주치고 있다.

 

우리집 딸들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는 공부를 할까 아님 다른 길을 선택할까 갈림길에 서면서 갈등을 많이 빚었다. 둘 다 피아노를 하고 있었고 성적도 좋았으니 두마리 토끼를 잡기는 힘들듯 하여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부모의 입장에서는 피아노는 어느 정도 쳤으니 공부를 하는게 낫겠다고 하여 포기를 시키는 그 단계도 힘들었지만 사춘기가 온 것이다. 요즘의 아이들은 사춘기가 늦게 오는 경우도 있고 오랫동안 사춘기인 경우도 있다는데 딸들은 사춘기가 그야말로 오래가는 듯 했다. 그렇다고 어디 풀어 놓지도 못한다. 서로 부딪히며 해결해 나가야지 막상 당해보지 않았다면 이해하지 못하고 건성 건상 듣고 만다. 하물며 함께 생활하는 옆지기 또한 이해를 못한다.날마다 싸운다고. 관심 밖에 있으니 딸들과 사소한 무슨 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왜 싸우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딸들과 점점 애증의 관계로 변해 가면서 문을 닫는 녀석들과 똑같이 내가 문을 닫으면 안될 듯 하여 자식이 애교를 부리는게 아니라 부모가 애교를 부리며 녀석들의 마음을 풀어 주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정말 상전과 같은 위치의 아이들.

 

부모가 하는 이야기는 모두 자신들을 정말 '엄친아'와 비교하는 말로 오해를 하기 일쑤이면서 자신들이 말하는 '누구는 이런것은..' 라고 하는 말은 비교하는 말인줄을 모른다. 몸이 먼저 커버린 애늙이라 이해해줘야지 하다가도 뒤돌아 서면 서럽고 안타까운 것이 자식일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말이 잘못된 말인줄 잘 모른다. 내 뱉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안다.그걸 알았다면 다행한 일이라 생각하고 나중에 풀리면 그럴 때는 꼭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해.' 하고 웃으면서 몇 번 이야기 했더니 말하기 껄끄러우면 문자로 보내주곤 했다. 그런 녀석들을 보면 천상 '어린애'다. 덩치는 부모만하지만 아직 머리가 영글지 않은 '어린애'처럼 어른 흉내를 싶었는데 딱 걸린 것이다. 아이들이란 부모가 저희들 성적이나 그외 교우관계나 학교이야기를 묻지 않으면 관심이 없는 줄 안다. 너무 드러내 놓고 이야기를 하면 부딪히기에 뒤에서만 신경을 써주면 '엄마는 나한테 통 관심이 없어'라고 취급해 버린다. 그럴 때는 가끔 한번씩 엄마가 어떻게 지지를 하고 있는지 '알파맘인지 베타맘'인지 인식 시켜 주면 틈새를 좁힌다. 자신의 성적표에 관심을 보이면 서로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학원에 전화하여 메일로 보내달라고 하여 상담을 하던지 전화로 상담을 하여 모두 알고 있는데도 녀석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관심 밖인줄 알고 불안해 한다. 우리나라처럼 '성적'에 민감한 학생과 부모는 없을 것이다. 사춘기 아이들 앞에서 '성적'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정말 금기처럼 해야한다.

 

성적 뿐만이 아니라 사춘기 아이들과 말을 할 때는 '단어'하나에도 신경을 써야한다.저희들은 '짜증나'를 밥 먹듯 이야기 하면서 엄마의 입에서 '짜증'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지. 하지만 어떤 상처라도 그냥 곪게 놔두기 보다는 터쳐서 아물게 해야 한다. 그냥 놔두면 옹이가 박힐 수 있다. 아이들과 제일 많이 하는 스트레스 해소법은 함께 영화를 보러 간다던가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러 건다던가 엄마의 정ㅅ이 가득 담긴 선물을 한다던가 그리곤 책으로 소통을 하려고 많이 노력한다.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쩍 청소년과 관계 되는 책을 찾아서 읽게 되고 화를 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큰소리 보다는 가만히 안아주던가 먼저 토닥여 주고 이야기를 하게 하면 저희들도 어디에 스트레스를 쏟아내지 못하고 갇혀 있기에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초등학교 때야 집에 오면 엄마 꽁무니를 쫒아 다니며 쫑알쫑알 이야기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점점 서로 교감하는 시간이 줄어 들고 대화가 줄어드니 서로의 마음을 전부 알고 있지를 못한다. 자신 혼자 힘들고 불안한 시기라고 생각을 한다. 그럴수록 부딪히며 진로도 교우관계도 물어봐야 한다.

 

우리 아이들만 동굴에 갇힌 것이 아니고 나 혼자만 지금 힘든 시기에 빠진 것이 아니다.모두가 다 똑같은 시가를 지나고 있고 힘든 상황인데 그냥 무시해 버리거나 방관한다면 더욱 큰 문제로 불거질 수도 있다. 내가 지나 온 시대와 지금 시대의 아이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그만큼 시대가 많이 발전했고 아이들은 어려운것을 모르고 자라는 물질만능주의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만 못하다는 것을,남과 다른다는 것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남이 하면 나도 따라야해 하는것처럼 여긴다. 남과 똑같아 지기 보다는 남과 다른 개성과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해주면서 내 주머니를 채우기 보다는 '나눔과 봉사'에 관심을 가지게 하면 보다 넓은 시야를 갖게 되기도 한다. 딸이 잘 하는 말이 있다. '엄마 내가 힘들다고 하면 그냥 힘드니라고만 해줘' 제 말에 맞장구를 쳐주길 바란 것인데 부모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주면 정말 짜증을 내고 싫어한다. 힘들어서 푸념을 하는 것을 가만히 들어주기 보다는 부모의 잣대로 이야기 하다가는 정말 본전도 못 건진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사춘기가 되면서 아이들은 '생활의 변화' '관계 변화' '성적 변화' 거기에 '미래 설계'까지 해야 한다. 공부만 강요받은 아이들이 자신의 적성을 찾고 자신들의 진로를 정한다는 것은 정말 거짓말처럼 보이는데 정해진 기간내에 정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성적에 따라 선택된 적성으로 대학을 다니다보면 자신과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되늦은 후회가 된다.

 

모든 시가는 다 지나가겠지만 서로가 마음의 문을 닫기 전에 문을 열고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힘들다고 혼자 문을 꼭꼭 닫고 있다면 그 자신이 힘든지 누가 알겠는가. 말로 열지 못하는 문이라면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그런 현명한 방법들을 제시해 준다. 정말 가끔 나도 딸들에게 '외계인' 같다는 말을 하지만 서로의 언어가 다른 것처럼 '소통'이 안될 때가 있다. 회피하기 보다는 부딪히거나 좀더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이런 책을 한 권 읽어 보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혼자 끙끙거리기 보다는 '문제는 문제로 꺼내 놓을 때' 해결책이 나온다.내가 읽었으니 다음에 시간이 난다면 딸들에게도 읽어보라고 슬며시 권해봐야겠다. 가끔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이런 책으로 서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거리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속시원하게 읽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터널을 지나고 있는 시간이라 좀더 기다려야 이 시간이 지날 듯 하다. 아이와 같이 감정을 터뜨리기 보다는 한발짝 뒤로 물러나 문제를 볼 수 있는 이성적이고 현명한 부모가 되길.그리고 유명인을 아이의 멘토로 삼기 보다는 '부모'가 멘토가 되고 롤모델이 되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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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릴리 블레이크 지음, 정윤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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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형제의 <백설공주>를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다던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림형제의 '백설공주'가 벌써 200년이 되었단다.그리고 시대는 변했다.오래전 백설공주는 마녀의 독사과를 먹고 잠들어 백마탄 왕자님을 기다렸다면 이시대의 '백설공주'는 어떻게 변신을 해야 할까? 요즘은 3D영화도 많이 나오고 '여전사' 이미지 환타지물도 많다. 고전은 왕자와 공주는 결혼을 하여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로 끝났기 때문에 아직도 그들은 죽지 않고 우리들 가슴에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들은 불멸의 삶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오래도록 '백설공주'는 그렇게 대를 거듭하며 읽히고 또 읽혔다. 그렇다면 21세기 백설공주는 무언가 변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탄생한 백설공주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이다.영화로도 한참 주목을 받고 있는 영화의 '원작'이다.

 

영화를 보지 않아서 영화에서는 어떻게 표현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다보니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와 '반지의 제왕'을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 난다. 그래도 고전의 그 줄기는 그대로 가져오면서 판타지적 요소가 잘 결합했다는,고전에서는 백설공주가 왕자를 기다렸다면 21세기의 백설공주는 능동적이 인물이면서 여전사가 되어 왕자격인 '윌리엄'을 찾아 가기도 하지만 도움과 시중을 받는 공주가 아니라 맞서 싸우는 백설공주다.고전 비틀기를 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고 고전물이 현대물로 바뀌어도 어색하지 않고 재미를 더해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공주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기는 했지만 매그너스 왕이 결혼을 한다고 할 때까지는 왕국도 그렇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매그너스 왕이 어둠의 병사들로부터 구해 낸 '라벤나' 라는 짚시 여자와 결혼을 한다고 한 후 결혼식날 모두의 운명은 바뀐다. 그녀 라벤나는 누구일까? 매그너스 왕에게 어머니를 잃었지만 어머니가 죽기 전에 오빠 핀과 그녀에게 신성한 피로 영혼이 연결되게 마법을 걸어 놓았다. 신성한 피를 마시면 다시금 젊음을 유지할 수 있고 다시 힘을 가질 수 있는 라벤타와 핀,그들은 결혼식날 매그너스 왕의 가슴에 칼을 꽂고 공주는 탑의 감옥에 가두고 왕국은 어둠에 잠식되어 황폐해졌다. 공주와 친구처럼 지내던 윌리엄과 그의 아버지 해먼드 경은 다행히 도망쳤지만 공주는 붙잡혀 감옥에 갇혀 십여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라벤나에게 공주의 신성한 피가 지금 필요하다. 팔딱팔딱 뛰는 공주의 심장이 필요하다. 오빠 핀이 그녀의 심장을 가지러 들어간 사이 그녀는 까치 두마리의 도움으로 핀을 공격하고 탈출에 성공,하지만 라벤나는 어둠의 숲으로 도망친 공주를 잡기 위하여 어둠의 숲에 대하여 잘 아는 사냥꾼 에릭을 끌어 들인다. 그는 아내 사라가 처참하게 죽은 뒤로 술병만 끼고 사는 주정뱅이나 같지만 어둠의 숲을 몇 번 들어갔다 나왔기에 안내자로 적합했던 것.

 

사냥꾼 에릭이 어둠의 숲에서 핀의 부대와 함께 공주를 찾아 라벤나에게 넘길까? 어느 순간 사냥꾼은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공주를 도와주고 그녀에게 무술도 가르쳐 주는 동조자가 된다는 것이다. 사냥꾼과 함께 윌리엄을 찾아 가는 길에 라벤나를 피해 살기 위하여 자신의 아름다움을 버린 여인들도 만나게 되고 황폐한 숲도 보게 되고 사냥꾼에게 무술도 배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을 키우게 되는 공주, 그녀가 무사히 윌리엄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신성의 숲에서 만난 난장이들은 그녀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 어둠의 숲을 지나 신성의 숲에서의 이야기는 영화 아바타를 연상케 한다. 어둠의 숲은 '반지의 제왕'을 생각하며 읽었다. 느낌이 딱 그렇다. 라벤나를 벗어나 달아나려 하지만 그녀는 마법을 이용하여 그녀를 찾아 내게 되고 핀은 사냥꾼의 손에 무참하게 죽게 된다. 핀과 라벤나를 떼어 놓아 라벤나의 힘이 약해졌을까? 그녀는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소녀들의 신성한 피로 힘을 키워 공주와 대적한다.

 

백설공주를 염두해 두지 않고 읽는다면 딱 판타지소설이다. 백설공주라기 하기 보다는 공주에서 여전사로 거듭난 공주의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 드는데 영화적 요소를 생각하며 읽으면 재밌기도 하다. 영상으로 만난다면 더욱 재밌을 듯 하다. 새어머니인 왕비가 마귀할멈으로 변신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마녀로 변신을 했고 공주 또한 강인한 여전사로 변신을 한다. 그런가 하면 난쟁이 들은 그냥 광부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의 아름다움까지 들여다보는 존재로 표현이 된다. '전설에 따르면,난쟁이들은 땅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서 창조되었다고 해.금은 보화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아름다움까지도 찾아낼 수 있다는 말이 있지.' 그런가하면 공주와 사냥꾼 에릭과 윌리엄은 약간은 삼각관계와 같은 뉘앙스도 풍긴다. 윌리엄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사냥꾼을 맘에 품고 있는 공주, 공주를 놓고 윌리엄과 사냥꾼 에릭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듯 서로의 감정을 나타내지만 사냥꾼이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님을 알고는 떠난다. 그런 사냥꾼의 뒷모습을 눈에 담는 공주, 무언가 여운이 남는다.이야기가 이어질 듯 하다.

 

우리는 가끔 고전을 비틀어서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낸다. 이 이야기도 그렇게 볼 수 있는데 판타지물로 거듭나서일가 더욱 강인해 보이는 공주의 모습과 고전의 뼈대에 판타지적 요소들이 가미되어 더욱 웅장한 느낌도 들고 그녀가 공주라서가 아니라 현대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과 마주해 싸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녀가 라벤나의 손에 붙잡혀 그냥 탐의 감옥에 갇혀 허송세월을 다 보낸 후 라벤나의 먹잇감으로 죽어 갔다면 이야기는 정말 재미가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마지막 순간인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아무도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어둠의 숲에서도 벗어나고 트롤을 만나서도 강인하게 나가 그를 돌아서게 한다. 그동안 탐의 감옥에 갇혀 있던 그녀에게 어디서 이런 힘이 솟아 나왔을까? 매그너스 왕에게 물려 받은 힘이 내재하고 있었을까? 그것이 라벤나로 인해 폐허가 되듯 한 아버지의 왕국을 보게 됨으로 하여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아버지의 보호아래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자신의 삶이 이제는 그 누구의 힘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것을 깨우친 순간,그야말로 불굴의 여전사가 되어 자신의 왕국을 다스리게 되는 공주,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게 된 것이다. 원작을 읽었으니 영화를 보면 더욱 재밌을 듯 하다. 영상과 글이 어떻게 다른지. 백설공주가 되었건 아니건 간에 인생이란 굴복하기 보다는 막 부딪혀서 싸워나가야 한다. 부딪혀야 무언가 새로운 것을 얻지 그냥 주어진 대로 받아 들이고만 있다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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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각류 크리스천 : 레드 편 - 딱딱한 형식의 껍질 속에 불안한 속살을 감춘 갑각류 크리스천
옥성호 지음 / 테리토스(Teritos)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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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딱히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의지가 되고 그나마 믿는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불교쪽인듯 하다.그렇다고 불교 또한 진실되게 찾아 다니며 믿는 것이 아니라 오다가다 들르는 산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문화와 역사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그쪽으로 기우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그렇다고 특정 종교에 대하여 뭐라 말 할 정도의 그런 믿음이나 그외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나 그외 종교에 대하여 비판의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갑각류 크리스천' 은 현시대 기독교에 대하여 누구보다 부조리를 말해주는 듯 하여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려고 선택한 책이다. 믿음이 없다고 이런 서적을 읽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뉴스에서 불교계 사람들이 하지 말야 할 행동을 하여 뉴스를 타거나 혹은 기독교인으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으로 뉴스를 타는 그런 사건과 사고속의 사람들을 종종 접하기도 했다. 기독교의 문제점을 들추면 꼭 불교와 비교를 한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비교하듯 불교가 뉴스감이 되면 기독교가 타깃이 되고 꼭 대립되는 종교가 기독교와 불교인 듯 하다. 하지만 저자는 '기독교' 크리스천에 대한 부조리를 찾고 있다. 아니 짚어내고 있다. 그런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어제 오늘일은 분명 아닐진데 믿음이라는 것이 그리고 문명사회로 발전해 나가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이익'을 위하여 종교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내 주위에서도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직접 접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종교를 타인이게 혹은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에게 믿음을 강요한다. 그럴 경우 몇 번은 경험해 본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혹은 더욱 난처한 것은 아파트에 일찍부터 찾아와 강요를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동네에도 무척 많은 교회가 있고 그들은 큰 차를 이용하여 아파트를 순회하며 믿음을 강요한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

 

저자는 아버지가 목사이고 그 또한 기독교인이라 할 수 있으니 자신이 속한 믿음에 대한 잘못된 점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맹목적으로 따라 가고 있었지만 점점 불어나는 교회의 몸뚱이는 목사가 아니고 교회 CEO라고 해야 하는지. 성경보다는 다른 이야기에 감동을 하고 말발이 강한 목사의 설교가 먹혀 드는, 무언가 진실과 짐심이 배제되고 알맹이 빠져 버린 듯한 믿음과 크리스천이라는 '갑각' 밑에 숨어 술과 담배를 안하기나 십일조나 새벽기도 큐티등 겉으로 들어나는 것에만 치중하는 갑각류들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날카롭게 잡아 내고 있다. '우리나라 크리스천들은 다 갑각류야. 겉모습은 엄청 단단하고 흔들림이 없어 보이는데,실상 그 속은 연약한 살로 가득 채워진 갑각류...... 그러다 보니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에 더 집착해. 새벽기도,십일조,술 담배 안하기,등등... 속이 허할수록 밖으로 드러내는 이런 신앙 행동 양태에 더 집착하지.왜 그런지 알아? 겉이 무너지면 속까지 다 무너지기 때문이야.'

 

단단한 겁껍질 속에 숨은 여리디 여린 영혼을 가진 사람들을 나 또한 주위에서 많이 보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믿음에 대하여 무어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궁지에 몰리면 내세우는 것은 결국 '믿음'이다. 하지만 일상을 들여다보면 믿음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경우가 더 많다. 저자는 일례로 '책을 많이 읽어라' 그만큼 공부를 많이 하라는 것이다. '공부하고 생각하고 질문하고 회의하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이 아멘한다고 따라서 '아멘' 할 것이 아니라 좀더 생각하고 질문하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겉모습에만 치중하는 크리스천이기도 하지만 두번째로 그가 문제점으로 들고 있는 것은 '유명인'에 취약하고 성공한 사람을 숭배한다는 것. 이 부분에는 많이 공감한다. 매체에서도 정말 민망할 정도로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는 연애인이나 그외 유명인들이 있다. 셋째로는 내용보다 효과를 중시한다는 것.전시효과처럼 은혜에 집착하는 크리스천과 신앙에 민감하게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 내 종교가 소중하면 타인의 믿음도 소중하다는 것을 존중해줄 줄 하는 그런 아량 넓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자신의 믿음을 강요는 해도 타인의 믿음을 이해하고 넓게 받아 들이며 포용해주는 그런 크리스천 있을까.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하여 여행하면서 절에 가게 된 사람들,결코 절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절이란 믿음이기 이전에 문화재이고 역사라고 본다. 내 땅만 밟으며 어떻게 살것인가.

 

무엇이든 털어서 먼지 안나는 것이 없다.그것이 종교여도 마찬가지고 사람이어도 마찬가지다. 성경말씀의 효과와 기도에 대한 응답을 기대하면서 정작 성경에 무엇을 말하나는지 관심이 없는 사람들, 술 담배는 죄악시 하면서 그보다 더한 부도덕한 잘못들에 대하여는 슬며시 눈 감는 크리스천들의 '갑각' 을 드드리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등잔 밑이 어두워서 자신들의 현재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옳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야 훤하게 무엇이 잘못인지 보이지만 당사자들은 종교라는 겁껍질 밑에 숨을 수도 있고 미쳐 잡아내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 종교의 오류 아닐까 한다. 믿음보다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읽어 보았다. 뻔한 문제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제목의 비유가 참 신선함에 그리고 그 또한 믿음의 길을 걷고 있으면서 내뱉는 쓴소리라 더 와닿은 듯 하다. 닥치고 아멘이 아닌 이유 있는 아멘이라는 말이 와 닿는다.믿음이든 무엇이든 생각이 깨어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남이 간다고 나도 따라서 무작정 갈 수는 없는 것이 종교에서는 더욱 확연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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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2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2
초(정솔) 글.그림 / 북폴리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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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된 애견 낭낙이와 2살이 된 고양이 순대를 키우면서 녀석들과 부딪히면서 접하게 되는 '반려동물과 사람' 에 대한 성찰을 갖게 하는 초양의 웹툰을 먼저 전작으로 1권을 읽었는데 참 좋았다.나도 애견을 12년째 키우고 있고 지난 해에는 11살이 된 치와와 호야가 갑자기 호흡곤란이 오면서 어떻게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보내야 했다. 그 아픔이란. 오랜시간동안 식구처럼 함께 하던 반려동물을 보내는 아픔은 가족을 보내는 아픔과 같다. 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녀석들은 정말 사람보다 더 살갑게 사람과 사람의 빈자리를 차지하며 집안에서 온갖 재롱을 다 부린다. 녀석들이 차지하는 공간은 얼마 안되는 듯 하지만 그 빈자리는 얼마나 큰지. 지금도 키우고 있는 11살 치와와 여시도 갑자기 죽을 고비가 와 새벽에 택시를 타고 뛰어 다니고 급기야 서울 큰 병원에 입원시켜 간신히 소생시켜 놓았다. 그렇게 하여 녀석은 더욱 내겐 애지중지 먼저 간 호야몫까지 집안에서 관심을 차지하고 있지만 한 해 한 해 나이가 먹어가고 있어 걱정이다.

 

여시 엄마는 15살 지금도 건강하게 살아 있지만 동물들도 나이가 들어가면 사람과 마찬가지로 성인병도 오고 노안이 온다. 여시 엄마는 지금 눈을 잃었다. 백내장이 와서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라 후각과 청각으로만 살아 가고 있다.눈이 보일 때는 가끔 보는 우리들을 보면 무척이나 짖어대고 살벌하던 녀석이었는데 눈이 멀고 나서는 안아주어도 가만히 있고 사람의 손을 더 그리워하고 찾는다. 사람도 나이들면 애처럼 변하듯이 동물도 만찬가지가 되어 간다. 그런 이야기들을 저자는 세시한 부분까지 그림과 글고 채워 놓았다. 낭낙이와 이별을 준비하는 작업으로 시작한 웹툰이 책 두 권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리고 동물보호소에서 선천적으로 각막백반증에 걸렸다고 사람들에게 버려진 고양이 순대가 그녀와 함께 하면서 건강하게 '어린고양이'가 아니라 '2살'의 어른 고양이가 되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다 보면 정말 '수다쟁이'가 된다. 할 이야기가 많다. 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 못하는 부분이지만 자식을 키우는 사람들과 똑같다.자식자랑을 하듯 자신이 키우는 반려동물 자랑에 정말 수다쟁이 되어 끝도 없이 이야기를 풀어낸다.날마다 똑같은 일상인 듯 하면서도 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사랑과 감정을 배우게 된다. 우리도 두마리가 있을 때에는 내 무릎을 차지하기 위하여 늘 두녀석이 싸우고 먹을 것을 주어도 먼저 먹으려고 다투는가 하면 물을 먹을 때는 호야가 먼저 먹으면 여시는 뒤에 서 있다 먹기도 했다. 얼마나 웃긴지.사람도 세치기를 하는데 이녀석들은 세차기를 몰랐는지 꼭 줄을 서서 물을 먹어 너무 웃겨서 사진을 찍어 두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주인들이 벨소리에는 가만히 있는데 타인들의 벨소리에는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녀석들, 집안에 공기 흐름을 녀석들이 잘 바꾸어 놓아 싸워서 기분이 나쁘다가도 녀석들만 보면 풀어지곤 하던 때도 있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정말 끝까지 책임질 마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 누구보다 눈으로 말하는 녀석들,사람의 감정을 얼마나 잘 읽는지 그날 기분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애교를 부리는 녀석들이다. 그런가하면 한번 크게 아프고 나서는 가끔 잠자는 녀석의 몸에 살짝 손을 대본다.심장이 뛰고 있나 안 뛰고 있나.작고 연약한 심장이 '발딱발딱' 삶의 신호로 움직이고 있으면 '휴' 하고는 한 숨을 뱉어 내기도 한다.그것이 녀석들이 나이가 더 들어가면서 더욱 자주 발생하게 된다.그만큼 말도 못하는 녀석들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사람이라면 어디가 아파요 하고 말을 할 것을 동물들은 아파도 사료를 먹고 물을 먹고 주인 무릎에 앉아 애교를 부리고 할 짓을 다한단다.그러다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숨이 멎기도 하고 큰 일이 닥치기도 하고.정말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애를 하나 키우는 것과 같은 정성을 들일 각오를 해야 하고 그만큼 부지런해져야하며 생명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

 

낭낙이와 순대와 함께 하면서 그녀의 일상과 함께 하는 반려동물들과의 생활 속에서 잔잔한 감동도 전해주고 반려동물에 대하여 어떻게 열린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 좀더 세심함 배려를 해야 하는 그녀의 마음을 전해 받는 듯 하다. 난 가끔 녀석들을 안고는 '사랑한다' 라고 말해준다.사람과 똑같다.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좋아한다. 사람도 빈말이라도 '사랑해'라고 말해주면 기분이 좋아지듯이 동물들도 똑같다. 그리고 가끔 쓰다듬어 주고 안아주고 정말 사랑을 표현해 주어야 한다. 함께 살면서 남남처럼 대한다면 동물도 사람에게 대면대면한다. 자신을 사랑해주고 이뻐해주고 더 많이 안아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있다. 작은 녀석이지만 외출했다 돌아 왔을 때 빈집을 지키는 누군가 반갑게 뛰어 나와 '멍멍' 하고 짖어 주면 얼마나 좋은지. 갈수록 커가는 아이들도 뛰어 나오지 않는데 녀석들은 무얼 바라고 그러는것도 아니면서 주인을 얼마나 반기는지.그런 이유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가 보다. 그렇다면 키우다 반려동물들이 아프다고 혹은 잠깐의 실수로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할 듯 하다. 순간의 잘못으로 집을 나가 영영 찾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 때는 자식을 잃어 버렸을 때처럼 눈 앞이 아찔하다. 거기에 말을 못하고 집도 모르니 더 찾을 길이 없다.

 

저자인 초양은 대학 재학생이다. 낭낙이와 순대를 만남으로 하여 자신의 진로가 더욱 확고해졌고 녀석들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그녀 뿐만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라 그외 생명을 가진 것을 키우다 보면 보는 눈과 생각이 좀더 넓어진다. 무작정 '동물을 왜 키워. 털 날려서 좋지도 않은데..' 하며 반대하기 보다는 한번 키워 보고 그들과 나눌 수 있는 교감이나 생명에 대한 생각을 가져보길.생명을 가진 것들은 다 소중하다.그리고 무언가 한가지는 꼭 남겨 주는 것이 있다. 꽃이 괜히 피겠는가. 키우는 사람의 정성과 관심이 없다면 꽃이 피지 않는다. 동물도 마찬가지로 내가 베풀어야 사랑을 준다. 그저 무작정 재롱을 보려고만 하지 않고 먼저 준다면 동물들도 다가온다. 그리고 내사 한번 선택한 동물에 대하여는 끝까지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오랜 시간 함께 하다 보면 가족과 같은데 병들고 늙었다고 갖다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녀의 낭낙이와 순대를 보면서 울집 여시에게도 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보며 한번 더 쓰다듬어 주어야 할 듯 하다. 사는 동안 그리고 건강하게 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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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
전성철 지음 / 아이지엠세계경영연구원(IGMbooks)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꿈'이란 것은 정말 대단하다. 꿈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람에게 나아갈 길과 속도가 달라진다. 그렇다면 나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꿈도 나이에 따라 다르고 어릴적 꿈과 그리고 결혼 전과 결혼 후에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작게는 이룬 꿈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꿈들은 꿈으로 그쳤다고 볼 수 있고 지금도 어쩌면 가슴 한 켠에 '꿈'이란 것을 간직하고 있기에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기 위하여 숨을 쉬고 있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꿈을 '생생하게 꾸면 이루어진다'라고 했고 누군가는 '꿈이 없는 자는 죽은 자와 같다'라고도 하고 꿈이 없이도,현재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요즘은 '꿈'을 강조하고 나 뿐만이 아니라 내 아래 세대인 아이들에게도 '꿈을 가져라' 라고 늘 말을 하지만 아이들이 가지는 꿈에 대하여 찬성 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부모의 꿈과 아이들은 꿈은 전혀 다르다. 세대가 달라서인지 부모는 안정적인 꿈을 지향하지만 자식들은 그렇지가 않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꿈'을 꾸기도 하고 그런 일을 직업으로 갖기를 원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욕망이 다르고 꿈이 달라 부모와 자식간의 마찰이 빚어 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

 

'한 권의 책에서 비롯된 '법적인 사고'가 그를 변화시키다'

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고 한 저자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처음부터 로스쿨에 가고 싶고 변호사가 되고 싶은 꿈을 꾸었을까? 아니다.13명이나 되는 형제들 속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그, 성적표도 서랍속에 넣고 잊어 버리듯 하고 지냈던 그지만 그래도 일류의 학교를 모두 거쳤다. 하지만 어렵게 혼자서 모든 것을 책임지듯 자신의 수입으로 그달 그달을 넘겨야 했던 어려운 고학생 신분으로 무엇을 꿈꿀 수 있었을까?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하지 않다고 했듯이 우연히 보게 된 한 권의 책 '법적인 사고'를 통해 법적인 사고의 생활로 접어들게 되고 꿈 또한 법적인 사고로 통하게 되었다. 로마로 통하는 길은 많다. 그 길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 다는 것은 힘들기도 하고 또한 우연히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역사는 '우연과 필연'의 연속이라고 했듯이 한사람의 역사 또한 우연으로 시작하여 필연으로 그의 삶이 되었다.

 

누구나 한 권의 책에서 한 줄의 '명언'에서 인생을 찾고 삶의 길을 찾는 것은 아니다. 그런 예는 흔하지 않지만 '법적인 사고'를 통하여 지석 호기심처럼 자신의 꿈에 불을 사르게 되고 남보다 늦게 시작했다 싶을 꿈이 활활 타올랐으니 그것엔 분명 그의 '노력과 실패에 굴하지 않는 도전' 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시험에서 좋지 않은 점수로 떨어지기도 했고 미국에 갈 방법이 없다고 한다면 포기했을 것이다.거기다 주머니 사정 또한 좋지 않다. 그래도 그는 '꿈'만 향하여 달려갈줄만 알았지 멈출줄을 모르는 사람처럼 현실에 안주하질 않았다. 그의 꿈 앞에 늘 승승장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 갔다고 해도 자신을 지탱해줄 경제력도 없었고 영어도 남들보다 뒤졌다.하지만 모든 것에 굴하지 않고 뚫고 나갈 방법을 늘 찾고 있었다는 것,'깊이 생각하여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성의를 다해 접근하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다.'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었다면 그의 이름앞에 붙는 모든 수식어들이 남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닥을 짚고 다시 일어나 뛸 준비를 늘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항상 꿈을 꾸어라. 사람의 몸은 심장이 멎을 때 죽지만 사람의 영혼은 꿈을 잃을 때 죽는다.'

동양인이 로스쿨에 들어간다는 것도 힘들겠지만 우리와는 다른 법체계를 가지고 있는 미국법에 적응한다는 것 또한 생소했을 터인데 굴하지 않고 MBA에 로스쿨에 그의 꿈의 끝은 어딘지 정말 지칠줄 모르고 전진을 하는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내가 너무 나약해 보인다.저자처럼 자신을 혹독하게 꿈을 향해 나아가게 해 보았을까. 노력도 해보지 않고 '안돼'를 먼저 외치고 살아 온 것은 아닌가 하고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항상 꿈을 꾸어라' 꿈만 꾸고 노력과 도전은 하지 않았나 이루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없다. 날마다 새로운 꿈으로 충전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지만 나이가 들어가고 아이들이 커갈수록 꿈과는 점점 멀어져가는 느낌이 드는 요즘이다. 하지만 언젠가는,언젠가는 한번쯤 꼭 이루고 싶다는 그 '꿈'이 가슴에 있어 오늘을 숨 쉬고 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하여 택시운전사도 수위도 웨이터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 들이며 했다. 가고자 하는 길이 있었기에 오늘의 노력을 기꺼이 감수하며 '가슴이 시키는 일'을 향하여 늘 노력과 도전을 하고 현재를 투자했다. 무엇이든 거져 얻어지는 것은 없다. 꽃이 없이 열매가 없듯이 그리고 지난 과거와 과오마져 훗날에는 좋은 자양분이 되어 스스로 커나갈 수 있기도 했지만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사람'들을 잘 만났다. 꿈을 포기하듯 들어갔던 대기업의 일이 훗날 변호사의 일에 도움이 되고 일을 하며 혹은 학교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그를 더욱 성장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모든 것들이 그의 노력없이 얻어졌을까. '새옹지마'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한사람의 인생을 '꿈'과 연관지어 보니 실패라고 했던 일들이 먼훗날에 밑거름이 되고 직장에서 해고되었다고 실망했던 일이 더 좋은 일을 얻을 수 있는 기회로 돌아 오기도 하는 그의 새옹지마 인생을 읽다보니 불행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고 느끼고 있던 먹구름이 걷혀 버리는 듯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대,지금 꿈 꾸고 있는가' '항상 꿈을 꾸어라' 그러면 전진할 것이고 꿈과 함께 자신의 삶이 성장을 할 것일진데 그 꿈조차 꾸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게 만든다. 어디에든 길은 반드시 열려 있다.노력하면 문이 닫혔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다른 열려 있는 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처럼 밀려나는 세대이며 자식들이 부모의 등에 빨대를 꽂는 시대에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은 사치처럼 여겨지지만 작은 꿈이라도 꾸고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무언가 노력을 하고 꿈을 향해 나아갈 길을 찾아보면 어제보다 다른 자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영혼이 늘 깨어 있기 위하여 '꿈'을 꾸어야 할텐데 지금 안주하고 있는 현실이 각박하다. 그렇다고 꿈이 첫 술에 이루어지고 첫 술에 배가 부르진 않을 것이다.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올라가다 보면 근사치의 꿈에,가슴이 시키는 일에 가까워지며 현재의 고난이 행복이 될 것이다. 항상 꿈을 꾸어라,오늘 나의 꿈은 무엇인가. 지금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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