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 호스피스 의사가 먼저 떠난 이들에게 받은 인생 수업
김여환 지음 / 청림출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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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날 때는 다른 모습이나 환경에서 태언다고 해도 가는 길은 하나, 다 똑같은 '죽음'이라는 길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그것의 주체가 '나'이거나 나와 가까운 사람의 경우가 되면 받아 들이려 하지 않고 부정을 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의 5단계를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이라고 한단다. 부정, 정말 그렇다. 갑자기 사고를 당하거나 벗어날 수 없는 암과 같은 병에 걸리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왜 나야..잘못됐을거야..그럴리가 없어.' 라고 부정해 버린다. 받아 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 많고 많은 사람중에 죽음의 주체가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 들일 수 있는,죽음을 초월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 또한 친정아버지에게 온 '폐암'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정말 오진이기를 그리고 아버지가 아니기를,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몇 번이나 부정하고 부정해 보았지만 그럴수록 시간만 간다는 것을 알았다.

 

시계를 되돌려 놓고 싶지만 그럴수 없는 것이 '죽음'에 이르는 길인듯 하다. 그리고 그 길은 결코 누구와 함께 갈 수 없는 혼자서 가는 길이다. 내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했거나 함께 했다면 다음에는 조금 담담해질 수 있다.당연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아버지의 암판정이후 일년 삼개월이란 시간은 정말 어떻게 간 줄 모르게 금방 흘러가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많이 아프셔서 병원에 오랜 시간을 있거나 항암치료를 따로 하지 않았다. 처음에 발병을 알고 검사한 일주일과 가시기 전 두달 전에 일주일,그렇게 이주일 겨우 병원생활을 하셨다. 본인이 병원생활을 원치 않으셨고 엄마와 아버지께 우선은 암이라는 사실을 알려드리지 않기로 했다. 아버지는 워낙에 폐가 조금 않좋으셨기에 그 상황으로 말씀을 드렸는데 두분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계신 듯 하다. 워낙에 가시기 얼마 전까지 농사일을 힘들어도 하셨으니 믿고 싶지 않으셨는지도,아니면 오래전 이미 알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알려드리려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가시는 날까지 평범한 날처럼 보내시다가 많이 힘드실 때 말씀드리기로 했는데 아버지는 그 상황이 오지 않은 시간에 주무시다 가셨다.편안한 모습으로. 어쩌면 아버지도 우리도 복을 받았다고 생각을 한다. 편안한 마지막을 맞으셨으니.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받아 들이는 것도 힘든데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 하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란 것을 아버지를 보내 드리며 느꼈다. 아버지가 암선고를 받으신 후에 몇 개월 후 갑자기 작은아버지를 사고로 보내드려야 했다. 생각도 못한 죽음이었고 아버지 또한 그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하셨다. 왜 아니겠는가 당신이 아프셨는데 동생이 먼저 사고로 가게 되었으니. 당신의 죽음도 동생의 죽음도 그리고 마지막 화장도 인정하지 않으려했지만 작은아버지를 그렇게 보내드렸더니 당신도 인정을 하셨다. 엄마도 반대하던 화장을 해드렸는데 나중에는 잘해드린것 같다고 말씀하시며 엄마도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물론 아버지가 큰 병이라는 소리를 듣고 모두 모여 의논을 한 것이다. 큰소리가 오가기 보다는 그저 평상시처럼 그렇게 보내는 속에서 큰 병이 아닌 듯 아버지 앞에서 웃어야 할 때가 가장 힘들었지만 아버지도 아셨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를 입관하는 그 시간들까지 모두 기억에 담아 놓으니 친구들이 부모님들이 아프다며 하루 하루가 긴장속이라며 마음나누기 수다를 신청해 오면 많이 들어주고 이야기 해준다. 이젠 부모님을 보내드릴 준비를 해야 한다고.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도 어쩌면 부모님께 불효인지도 모른다고,편하게 해드리라고 한다. 죽음이란 무엇이기에.

 

나이 마흔에 등단을 한 박완서 작가를 좋아하는 대구의료원 평온관에서 늦은 나이에 의사의 길로 접어 든 호스피스 여의사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인 그녀가 평온관에서 말기암 환자들과 함께 하며 맞이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누가 그랬던가 '죽음도 삶의 일부'라고. 죽음은 삶의 연장선의 한 부분인 것이다. 다른 삶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죽음 가까이 온 사람들 곁에 가면 그 집안의 이야기가 고구마줄기에 달려 나오는 고구마들처럼 집안 구석구석의 모든 이야기들이 다 나온다. 가시는 분을 어떻게 대접해 드리느냐에 따라 자식들이며 집안 사정을 모두 읽게 된다. 돈과 연관이 있으면 죽음은 뒷전이며 돈에 연연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시끄러움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에 임박한 이를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은 조용하면서 평온하다. 인간의 욕심은 마지막 그 순간에는 모두 가져갈 수 없음음,누구나 빈 손으로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평생 왜 그리 끊지 못하는 오욕에 갇혀 살아 온 것인지.

 

'호스피스는 마지막 묵어가는 여관이다.여관의 시설이 아무리 좋아도 주인의 마음이 따듯하지 않으면 손님들이 불편한 텐데. 훌륭한 여관에 '죽이는 수녀들'까지 있으니 모현은 완벽한 호스피스임에 분명하다. 모현 호스피스의 '죽이는 수녀들'과 대구의료원의 '죽이는 의사' 인 나의 공통점은 죽음을 밟게 만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죽음을 밝게' 서양에서는 탄생이 축제이듯이 죽음도 축제라는 말을 하기도 하도 또 그렇게 하는 것도 있다. 어느 시인의 그 길이 '소풍'이라고 했듯이 소풍 왔다가 소풍가는 길이나 얼마나 설레겠는가.과연 그럴까? 두려움을 먼저 만나게 되는 '죽음'이라는 길, 그 길을 밝게 편안하게 해주는 여의사는 갖가지 죽음에 이르는 환자들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과연 죽음이란 무엇인지 묻고 그녀 나름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과연 죽음이란 무엇일까,소풍 떠나는 길일까? 나이를 불문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는 길이다. 그 길을 가는 분들에게 그녀는 좀더 편안하게 가시게 도와준다. 냄새나고 더럽고 추악하여 남에게 감추고 싶은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하며 밝고 편안하게 보내드리도록 노력하기도 하고 죽음 또한 삶의 일부이기를 받아 들이는 그런 이야기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별거 아닌 인생인데 우리는 참 많이 아둥다웅하며 할퀴고 물어 뜯고 욕심을 낸다. '싸우는 동안 우리는 지치고 상처투성이가 되겠지만,싸움을 멈추면 삶이 보인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도 아버지가 암판정을 받고 나서부터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고 그 시간들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긴 수믈 내쉬고 담담하게 받아 들이자고 하고 나서부터 들숨고 날숨도 쉴 수 있었다. 그래도 막상 아버지의 부음을 맞이하는 날에는 받아 들이기가 정말 힘들도 들숨도 날숨도 안되는 그런 순간이 왔다. 팔십여 평생을 살아 오신 분의 일생을 한순간 그 존재를 지운다는 것은 힘들다. 서서히 지워 나가야지 한번에 하기란 정말 힘들다. 하지만 모두 지난간다. 살아 있기에 밥을 먹어야 하고 살아 있기에 숨을 쉬어야 한다. 그것이 삶과 죽음의 차이다. '저... 김00선생님은 조종사였으니까 잘 아실 거에요. 어떤 등산가가 그러는데 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는 아래를 보지 말래요. 아래를 보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무섭다고.하지만 위로 올려다봐도 까마득하기는 마찬가지니까 그냥 지금 머물러 있는 자리만 보라고 하더군요.김 선생님, 죽음이라는 끝도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시고 지나온 세월도 많이는 돌아보지 마세요. 그저 오늘 하루, 가족과 또 저희와 편하게 지내시면 어떨까요?' 내일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위해서 살아라 그리고 지금 현재를 보라는 의미로 다가오는 이야기.산다는 것도 죽음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오늘,지금' 일어나는 '삶'의 연장선의 이야기들이다. 그 길이 두렵고 무섭은 길이 아닌 좀더 편안한 길이 되기 위하여는 본인도 그렇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받아 들여야 한다. 어떻게 말을 해도 산다는 것도 힘들지만 '죽음'이라는 것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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