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추억 전당포 스토리콜렉터 11
요시노 마리코 지음, 박선영 옮김 / 북로드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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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생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기도 하고 그리움이 있어 인간이 존재하다고 하기도 한다. 삶에 있어 추억이란 무엇일까? 추억과 기억의 차이란,기억과 사실의 차이란 무엇일까.추억이란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일다.그러면 기억이란 이전의 의식에서 있던 것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그렇다면 사실이란 '실제로 있었던 일안 현재에 있는 일' 사전적 의미가 약간씩 다르다. 바닷가 절벽에 위치한 '추억전당포' 이곳은 어른들은 모르는 20세 생일이 되기전까지 기억되고 드나들 수 있는 아이들만의 공간이다. 이 곳에서 행복했거나 슬펐거나 가족이나 친구 그외 모든 것에 대한 '추억'을 마녀가 사고 그에 대응하는 값을 돈으로 지불한다. 하지만 한번 판 추억은 판사람에게는 기억만 남아 있고 추억은 없다. 하지만 20세가 되기전 자신이 가져간 돈을 지불하면 모두 다시 되찾아 올 수 있다.

 

추억에서 좋고 나쁜 것이 있을까? 좋은 추억도 나쁜 추억도 모두가 더해져서 인생을 살아가는 영양분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아이들은 막상 지금 당장 사고 싶은 게임기나 그외것들을 사기 위하여 필요한 돈을 아르바이트로 버는 것보다 이곳에서 추억을 팔고 받는 돈이 더 많이게 이곳에 와서 자신들의 추억을 판다. 지금 당장은 필요 없는 '추억'으로 여겨지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팔고 받은 돈으로 게임기도 사고 필요한 돈을 충당한다. 이곳에 드나들며 자신이 차남이라는 이유로 엄마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하루토는 '엄마에 대한 추억'을 팔고 돈을 받아 게임기를 산다. 그런가하면 신문부 기자인 리카는 이곳에 대한 취재를 하여 학교신문에 쓰려고 했는데 친구들의 반대로 자신들 기억속에 묻어 두기로 한다.아니 어른들은 이런 것을 믿지 않을 것이란 말에 더 무게를 두지만 그녀도 한 두번 바닷가 절벽의 추억전당포를 드나들다보니 그곳에 오는 사람드르이 이야기도 그리고 추억전당포의 마녀하고도 친해지게 되기도 하고 점점 기자정신을 발휘하여 세상사 문제가 되고 있는 점을 밝혀 내고 싶은 마음도 있는가하면 점점 마녀하고도 친해지게되기도 하여 이곳에 오면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들은 대부분 불만을 가지고 있는데 그 불만을 자신의 가족중에 엄마나 그외 형제들에게 털어 놓고 해결하기 보다는,아니 가족들은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안좋은 것들은 모두 마녀에게 팔고 돈으로 환산하여 지금 당장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쓰기 때문에 이것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을 한다. 과연 그럴까? 이야기는 리카의 초등시절부터 20세 생일을 맞이하는 날까지 추억전당포와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녀와 관계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살아가면서 어떻게 좋은 추억만 가지고 살아갈까? 그 속에는 좋은 일도 있겠지만 삶 속에는 분명 죽음도 있고 친구와의 나쁜 관계도 있으며 마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잡다한 일들이 무한히 존재한다. 서로 엇갈리는 감정 속에서 가졌던 미움도 어느 사이 다시 사랑으로 변하기도 하고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을 하게 되기도 하고 나이를 먹어 가면서 감정도 어쩌면 성장을 해 가고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아법사 이야기와 재밌게 얽혀 그들의 성장이야기를 들려준다. 학창시절을 부모의 갈등과 친구와 이성의 갈등을 겪으며 보내게 되지만 그것이 다 인생이다. 슬픈 일도 기쁜 일도 성장의 한 과정일 뿐이다. 그것을 마법으로 없던 일처럼 깨끗하게 처리한다면 산다는 것의 의미가 있을까.

 

바닷가 절벽 추억전당포에 가서 엄마에 대한 추억을 모두 팔았던 하루토는 갑자기 자신 때문에 엄마가 돌아가시게 되자 다시 자신이 받았던 만큼의 돈을 들고 가서 '엄마에 대한 추억'을 고스란히 찾아 온다.비로소 그 모든 지난 추억들이 자신에게 값진 시간이었음을 엄마가 돌아가시고나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리카는 오랜시간 자신과 친한 친구이며 사랑하는 사이라고 알고 지내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된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아니 성장의 한 과정이라는 알게 되고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사람이 나타나길 바란다. 늘 왕따로 지내던 메이는 리카와 친구와 되면서 그늘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찾는다. 그들이 찾아간 '추억전당포'는 어쩌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그들의 등을 토닥여 준 따듯한 '사랑방'과 역할을 하여 그들의 삶을 지켜본다. 마녀는 자신의 마법을 그들의 삶에 하나 적용하지 않고 그저 들어주고 찾아가지 않은 추억은 반짝반짝 바닷속 불가사리를 만들정도로 인간의 삶에 무관심한 척 하지만 그들의 등을 늘 두드려주고 따듯한 차로 그들을 위로한다.

 

어쩌면 우리 살아가는 동안 '위로'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런 공간이 제일 필요할 때가 자아가 성립하기 전인 시기인 사춘기인지도 모른다. 부모님과는 소통이 안되고 친구하고는 소통이 잘 된다고 하는 사춘기시절, 그들의 통을 토닥여주면서 슬프거나 나쁜 추억도 인생의 소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마녀는 가르쳐 주고 있는 듯 하다. 추억을 돈으로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추억에 가격으로 환산할 수 있는 그런 기준도 없다. 삶에도 죽음에도 모든 시간들은 다 필요하고 내 주위에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 하루토에겐 엄마가 아픔만 주고 간 것 같지만 실은 그의 모든 추억속에 과거에도 미래에도 살아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거기에 있어. 왠지 그런 기분이 들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마녀가 아닌 친군감이 넘치고 달팽이 세마리가 유리창 청소를 하고 다람쥐까 따듯한 차를 끓여주는 바닷가 절벽에 위치한 추억전당포, 멋진 경관만큼이나 따듯하게 아이들을 감싸주면서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전당포가 아닐까.

 

처음 시작은 가볍다고 할 수 있었는데 다 읽고 나니 그렇지가 않다. 바닷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불가사리처럼 인생을 담고 있는 이야기라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지만 왠지 멋진 환타지속 이야기 같아 달콤하게 별사탕이라도 먹어가면서 인생의 의미를,삶에서 추억이 차지하는 의미를 되새기며 친구도 가족도 그리고 그들과 함께 했던 모든 추억들도 삶에는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좀더 가족애와 우정에 관하여 무관심보다는 관심으로 기울게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이런 추억전당포가 있다면 어른들은 누구에 관한 이야기를 추억전당포에 맡길까? 돈도 아이들보다 더 필요하고 맡길 추억도 많을텐데 정말 이런 곳이 있다면 대박날 듯 하다. 하지만 추억은 내 안에 존재할 때 비로소 그 값어치를 갖는 것 같다. 빈껍데게뿐인 기억을 가지고 있기 보다는 추억으로 간직되어질 때 비로소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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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우드 클리닉 아이들 마음이 자라는 나무 30
테레사 토튼 지음, 김충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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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은 정말 뉴스를 접하는 것이 두렵다. 너무도 세상이 무섭고 인간의 존엄성이 땅에 떨어진 것처럼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식들이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하는가 하면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마음을 놓고 아이들을 밖에 내보내기가 정말 무섭다,그것도 딸들인데.왜 이렇게 사회가 삭막해져 가고 묻지마 살인에 위아래를 무시한 성폭행이나 그외 일들이 왜 이렇게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지.마이클 샌덜 교수는 '정의와 도덕'에 대하여 논하고 있지만 정말 정의와 도덕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처럼 뉴스속 사건들이 자꾸만 마음을 상하게 한다. 얼마전에 본 어느 프로의 이야기 속 이야기, 새아빠가 딸을 범하여 자식을 낳고 그런 남편을 잡아갔다고,아니 자신의 딸이 재혼 남편의 애를 낳았는데도 무엇이 옳고 그른것인지 판단을 못하고 남편을 원하고 처벌을 한 경찰을 욕하는 엄마,그런 부모 밑에서 새아빠의 아이의 손을 잡고 양쪽으로 부모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이상한 가족의 뒷모습이 자꾸만 맘을 아프게 했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그리고 주위 사람들 또한 왜 그 사건을 이슈화 한 프로를 뭐라 하는지.도덕이 도대체 어디로 이탈을 해 간 것인지.

 

리버우드 클리닉에 오게 된 대니,그는 자신이 왜 알콜중독이 되었는지 왜 이곳에 왔는지 기억이 없다. 끔찍이 아기는,자신이 보호자라도 되는 듯 늘 감싸던 동생 켈리가 어떻게 된 줄도 모르고 동생과 함께 하던 놀이만 떠올리는 그녀의 기억속 아빠는 사회적으로는 반듯한 변호사이고 어디 흠하나 없는 듯 하지만 완전무결,늘 최고를 외치는 그는 자식들의 흐트러진 모습을 용서 못하고 폭력을 사용한다. 그런 아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엄마였다면 대니와 켈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자신이 왜 알콜중독이 되었는지 그토록 보고 싶은 켈리의 소식을 늘 궁금해 하면서 리버우드 클리닉에서 새로운 친구인 룸메이트 스크래치와 케빈을 친구로 클리닉 생활에 점점 적응해 가는 대니,그녀가 점점 병원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마주하는 과거는 놀랍다. 아버지의 폭력과 어쩌면 아버지의 폭력과 잣대로 인해 동생 켈리가 죽은것,교통사고라고 하지만 그 밑에는 아버지의 폭력이 자리하고 있다.그런가하면 스크래치는 새아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그 끔찍함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만의 룰이 있고 그 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스크래치도 점점 대니와 가까운 친구가 되어간다.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또 다른 친구 케빈,그는 동성애자라는 말에 부모로부터 등떠밀려 이곳에 오게 되었다. 그의 집안은 광적인 기독교집안,하지만 그는 동성애자다 부모는 그런 아들을 받아 들일 수가 없어서 클리닉에 넣은 것이다. 무슨 병이라도 걸린양.클리닉에 온 아이들은 자신들의 잘못도 있지만 그 밑바탕을 들여다보면 부모들,어른들의 잘못이 깔려 있다. 어른들의 잣대로 아이들을 평가하여 병들게 하고 아프게 하여 그들의 영혼에 상처를 내고도 자신들의 잘못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어른들,그런 부모 밑에서 아이들이 병들어 가고 아픔에 허우적 거리지만 그들은 리버우드 클리닉에서 또 다른 가족이 되어 서로 울타리를 만들어 상처 치유에 나선다. 점점 과거 기억을 찾아 가는 대니,하지만 켈리의 기억에 와서는 막힌다. 사람은 너무도 큰 충격을 받으면 자기 스스로 자신에게서 기억을 지워 버린다. 대니가 그렇다.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아 그 아픔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기억에서 지워 버린 것이다. 실은 켈리가 아버지와 함께 타고 집으로 오다가 교통사고로 그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분명 자신도 모든 것을 지켜 보았지만 받아 들이지 못하고 기억을 삭제해 버리고 아직 동생 켈리가 살아 있다고 기억은 받아 들이고 있다. 그런 켈리가 아버지의 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대니, 스크래치와 케빈은 그런 그녀의 아픔을 토해내고 받아 들이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나름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성장하고 아픔을 치유할 장소를 찾아낸다.

 

동생의 죽음을 받아 들이고 그제서 지금까지 억눌려 있던 울음을 토해내는 대니,너무 슬프면 눈물샘도 막히나 보다. 그리곤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픔을 겪고 있는 엄마를 비로소 받아 들이게 된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가족에게 버림받지 않고 그 울타리 안에 함께 할 수 있음이 행복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정말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스크래치와 케빈 그외 친구들과도 서로의 아픔을 받아 들이며 타인의 아픔을 보듬으며 자신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청소년들,그들을 아픔으로 내 몬 것은 분명 어른들이다. 어른들의 편견에 의해 상처를 입고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그런 아이들이 서로 토닥이며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이야기는 요즘 사회를 떠들썩 하게 하는 가슴 사건들과 맞물려 좀더 현실에 눈뜨게 한다. 분명 죄를 사람들은 처벌을 받겠지만 죄를 지은 사람보다도 한참 여린 아이들의 상처가 덧나지 않고 잘 아물 수 있도록 상처 치유가 더 큰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나몰라라 하는 어른들, 그런 속에서 스스로 힘을 키우는 아이들이 대견하다. 아이들이 더 나쁜 길로 삐뚫어지지 않고 올바른 길을 모색하여 어른들의 편견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음이,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반란이 눈물겨우면서도 가슴이 아린다.상처를 준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는지 잘 모른다.정당하다가고 생각한다.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상처가 다 나았다고 해도 그 상흔은 오래도록 남아 있다. 더이상 아이들이 멍들지 않고 자랄 수 있는 사회가 되길,그런 부모가 되길.분명 부모노릇도 힘들고 자식노릇도 힘들다. 그렇다고 자신의 본분을 잊고 탈선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의와 도덕이 메말라 버린 행동으로 평생 아픔을 남기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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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끝날 무렵의 라 트라비아타
이부키 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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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예전에 어떤 손님이 그렇게 말했어요. 인간에게는 네 가지 계절이 있다고.푸른 봄,붉은 여름,하얀 가을,검은 겨울. 10대가 푸른 봄,즉 청춘이고,20대부터 30대가 붉은 여름, 마흔 쉰이 하얀 가을,마지막이 검은 겨울이죠.' 미와시 바다에 피아노를 치던 아들을 잃었고 아내가 있는 마을로 돌아오고 싶어하던 남편은 객사를 하여 마음감기를 앓았던 키미코,지금은 누구보다 씩씩하고 밝게 살아가고 있다.그런가 하면 두달전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찾아 온 마음감기로 인해 더이상 직장생활을 할 수 없어 미와시 해변에 있는 별장과 같은 어머니의 집에 찾아 온 남자 테쓰지는 어쩌면 이곳을 그의 마지막 죽음의 장소로 여기고 찾아 왔다. 아내와는 이혼이 오가고 그런 이유로 딸과도 떨어져 지내며 갑자기 목이 오른쪽으로 돌아가질 않는다. 그가 여름휴가를 받듯 하여 어머니의 집을 찾아가던 중에 키미코를 태우게 되면서 둘은 운명처럼 만나게 된다.

 

'산은 저편 하늘 멀리 '행복'이 산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키미코는 자신 또한 어린 아들과 남편을 먼저 보내고 심한 마음감기를 앓았기에 테쓰지의 마음감기를 알아보았지만 우연히 해변가를 걷다가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테쓰야를 구해줌으로 인해 둘은 다시 조우하게 된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 놓으니 보따리를 내 놓으라는 것처럼 테쓰야는 키미코를 이상하게 생각을 하지만 그녀는 패스트푸드만 잔뜩 실고 갔던 그가 안쓰럽기도 하고 테쓰야의 어머니의 집이 너무도 근사한,여자들의 로망인 보물로 가득한 집이지만 방치되어 황폐해 있음을 알고는 자신이 집을 손질도 하고 자신이 듣고 싶었던 음악도 듣기 위하여 도우미를 자처한다. 오로지 그녀는 아들이 그토록 듣고 싶었던,혹은 아들이 들었던 음악들을 듣는 것이었는데 테쓰의 어머니가 남긴 수많은 책과 음반은 그녀를 황홀한 유혹에 빠뜨렸던 것이다.

 

그동안 아내와는 소원하게 지냈던 테쓰야는 키미코의 따듯한 치유의 손길과 마음 덕분에 나날이 건강을 되찾아 가고 키미코 또한 먼저 간 사람들에게 가졌던 미안함을 테쓰야로 인해 상처 치유를 한다. 서로의 아픔을 상대의 아픔을 보면서 다독이고 약이 되듯 상처에 새록새록 새살을 키워 나가던 그들, 그들에겐 테쓰지의 어머니의 집은 그만큼 특별한 곳이기도 하고 미와시가 특별한 곳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왜 이곳을 떠나지 않으려 했던 것일까? 어머니를 이해하기 보다는 그동안의 간극으로 인해 모든 것을 그저 처분하기만 하려던 그는 키미코 덕분에 '어머니'를 다시 보게 되고 자신의 삶도 되돌아 보는 계기를 갖게 된다.하지만 그것이 꼭 키미코가 테쓰지에게만 약이 된 것일까? 아니다. 분명 키미코에게도 테쓰지는 약이 되었다. 서로가 서로의 상처에 충분한 처방전이고 약이 되었던 것이다.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배움의 기회도 놓치고 사회에 던져졌던 키미코,하지만 좋은 스승들을 만나 예절도 배우게 되고 험한 일들을 하게도 되었지만 그녀가 가는 곳은 그녀를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행운이 따를 정도로 그녀는 모두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는 여인이다. 그렇다면 키미코 당사자에게는 언제 행운이 찾아 올까. 둘은 망설이고 있다.테쓰지는 아직 아내와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이고 키미코는 그런 그녀를 보내준다. 원만한 가정을 원하기 때문이다. 자신 또한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자신의 인생이 흔들린것을 알기에 테쓰지는 꼭 부부사이의 문제를 해결하여 자신의 엘리트 삶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테쓰지의 마음은 키미코에게 완전히 기울어져 있다. 자신의 상처도 낫게 해 주었지만 아내에게서 혹은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따사로움,모성애를 그녀에게서 받은 것이다. 자신의 안식처와 같은 그녀를 놓아 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버린다는 것과 같다. 그 둘을 하나로 연결해 준 것은 '음악',그 중에서도 '라 트라비아타' 춘희가 있었다. 아들이 듣던 음악이기도 하고 테쓰지의 엄마가 즐기던 음악이기도 한 춘희, 30대 마지막 붉은 여름의 끝에서 만난 붉은 사랑,동백의 열정과도 같은 사랑을 다시금 피워 올리는 그녀,그리고 그리고 그 사랑을 보듬어 주고 토닥여줄 테쓰지가 있다.

 

똑같이 '마음감기'를 앓았기에 그들의 사랑은 어느 누구보다 더 단단하다. 붉은 여름이 끝에서 만나 사랑이고 여름이라는 계절에 해변 마을에서 만난 조건 없는 사랑이라 더 애틋한가 보다. 산다는 것이 정말 우여곡절을 겪고 힘든 파고를 넘어야 하는 것처럼 둘의 여정을 보면 힘겹다. 그래도 사랑은 아름답다.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둘이 공감하고 아픔을 알아 주고 그 아픔을 감싸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아름답다. 어찌보면 우린 무늬만 부부이고 무늬만 사랑인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사랑이라고 하여 하나가 되었는데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이혼이라는 것은 이제 상식처럼 된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다시 사랑을 꿈꾼다는 것은 힘든 일인듯 하면서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 생각을 했는데 젊어서의 사랑은 능력이나 환경을 따지지만 나이가 먹거나 아픔을 한 번 겪어 본 후의 사랑은 '마음'을 선택한다. 서로 다른 두사람이 만나 산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서로 틀린 것을 나에게 맞추어 나가기 보다는 서로 한발짝씩 양보하고 배려해 주면 좋을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한다. 무조건적으로 안맞는 옷이라도 입히려고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런 과정에서 마찰음이 나고 아픔으로 이르는,왜 사람들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 주지 않으려고 하는지. '행복이라는 건 그때, 그 사람, 그 저마다의 것이 아닐까요? ' 우린 파랑새를 너무 멀리에서만 찾으려고 한다.바로 지금 그대 곁에 파랑새가 있다는 것을 볼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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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 자연학자 이브 파칼레의 생명에 관한 철학 에세이
이브 파칼레 지음, 이세진 옮김 / 해나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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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며 과학이라는 것은 나하고는 너무 멀게 살아 왔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지만 학창시절 그 이후로는 과학서며 그외 관한 것에 귀를 닫고 살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그래도 철마다 바뀌는 별자리는 찾는 것은 정말 좋아했다. 시골에 가면 내가 살고 있는 곳보다는 정말 밤하늘에 별들이 너무도 많다. 분명 똑같은 하늘인데 시골에 가면 왜 그리 별이 쏟아져 내릴듯이 많고 반짝반짝이는지. 울집 막내는 언젠가부터인지 모르게 별자리며 과학에 관심이 많아 방학기간중에는 꼭 과학특강을 받고는 했다. 그렇다고 딱히 과학적인 것을 하기 보다는 물로켓 만들기,밤하늘 별자리 관찰하기,비누 만들기 등등 그리고 자연관찰을 하러 생태공원에 다녀오기도 했는데 일부러 관심을 가지게 해서 된것이 아니라 시골에 가면 별자리가 많다며 관심을 갔더니만 벼랒리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 점점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이어지질 않았다. 수능이라는 벽에 부딪혀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들을 못하게 되니 자연 관심이 사라져 버린듯 하다. 나와 막내가 보았던 별자리,수 많은 별들의 생성과 소멸에 대하여 궁금함을 가졌던 적이 있을까.문득 책을 읽다보니 너무 관심밖으로 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자연과학자이자 생태철학자인 이브 파칼레의 무신론적 이야기는 때론 시와 같기도 하고 때론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드는 과학 철학 에세이다. 내가 따라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의 지식들이라 그냥 읽는 것으로 만족을 하며 읽었는데 단번에 읽어서는 안될 듯 하여 야금야금 읽게 되었다.그렇다고 그 모든 지식을 모두 꿰뚫게 된 것은 아니다. 한번 읽는다고 모두 둘 그런 그릇은 못 되니 그저 소설 한 편을 읽듯 재밋게 읽어 나갔다.우주 나이가 137억 년,그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분명 아무것도 없었지만 무언가 생겨나고 소멸하고 그렇게 이어언 우주에 대한 이야기들이 철학적이면서도 시적이면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라는 책을 그나름 그의 생각을 플러스 하여 좀더 현대의 책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정말 재밌게 읽을 책이다.

 

137억 년 전에 우주의 기원이 있었다면 130년 전,별들의 전쟁이 있었다는 것. 우리가 늘 바라보는 하늘에 별들은 늘 그자리에 그 별이 박혀 있는 듯 보이는데 그것이 생성과 소멸을 거치며 오늘날에 이르렀으니 별들의 생명 또한 인간의 생명과 무엇이 다를까. 이제 겨우 몇 십년 산 인간이기에 몇 백억년이란 어감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억겁의 시간 속에 별들이 별로 이어지고 아버지의 아버지로 아버지에 아버지로 이어졌는가 하면 어머니의 어머니로 이어져온 시간 속에 생성과 소멸을 거치 모든 것들이 소멸로 그친 것이 아니라 진화의 역사를 거듭한 장편 소설이 철학자의 논증에 의하여 그나름 과학적인 답을 주었는데 내겐 정말 어렵다. '우주는 어디에서 왔을까?' '생명은 어디에서 왔을까?' 거슬러 올라가면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또 어머니 쯤으로 대략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무에서 생겨난 유의 이야기가 흥미로우면서도 유물론적으로 나타나 있다.

 

'우리의 특별한 우주는 수많은 다른 우주들과 공존한다. 우리는 그 세계를 '고전적인'공간 3차원 더하기 시간 1차원이면서도 다른 6개 공간 차원들과 연결되는 '인터베이스'가 있는 '막'처럼 상상할 수 있다. 6개 공간 차원들의 존재는 계산을 통해 입증될 수 있으나 우리는 영원히 그 차원들에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구성된 우주는 빅뱅에 선행하는 실체를 지닌다. 우리는 영원히 존재하는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있을까? 모든 것은 흘러가고 생과 사의 끊없는 연결 고리 속에서 새롭게 혹은 또 다른 종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변화를 거치고 빅뱅 시리즈들이 태어나는 것 같다. ' 우주는 프랙털이다. 우주는 무한히 쪼갤 수 있다.....쪼갠 것을 다시 쪼개고, 그것을 다시 쪼개는 식으로 해안선을 얼마든지 늘려나갈 수 있다. 위성에서 촬영한 지구 영상에서 어느 나라의 지도로, 어느 지역의 지도로, 그 후에도 갑,바위, 모래알갱이, 결정,분자, 원자,소립자, 궁극의 쿼크까지 파고들 수 있다.'

 

태어남과 죽음으로 다시 또 다른 생으로 태어나는 우주를 과학적으로 노래한 장편소설은 ' 시와 사랑에 빠진 과학은 어쩌면 이리도 아름다운가!' 그렇다.그는 생과 사의 반복 속에 137억년의 삶을 이어 온 우주가 무에서 유가 창조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시처럼 혹은 소설처럼 과학을 논한 우주는 '아름다움' 이었다. 인간의 삶 또한 생만 있다면 그것이 아름다움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생과 사라는 삶과 죽음의 반복속에 거듭되는 서로 다른 삶 속에서 나와는 다른 삶에 깃든 무언가를 보며 우린 경이에 젖기도 하는데 그와 비슷한 것은 아닐까. 우주의 나이만큼이나 장대한 그의 우주 이야기는 한 편의 대서사를 읽는 것처럼 철학적이면서도 아름답기도 하고 무척 어려운 과학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소설과 같아 흥미롭다. 때론 시가 때론 소설속 이야기를 예로 들어서일까 무척 친근하게 읽을 수 있다. 한번으로 읽기 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날 때 몇 번 더 읽어보고 싶다. 우주장편소설을 마친 그가 인간 장편소설인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인간의 장편소설>을 집필하고 있다니 그 다음 책도 만나보면 재밌을 듯 하다. 우주를 좀더 거리감 있게 읽었다면 인간의 이야기는 좀더 가깝게 읽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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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찾는 힘'
구본형 지음 / 와이즈베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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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신화는 인간을 벗긴다. 아무것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인간의 원시를 보여 준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날것들을 신에게 뒤집어씌운 이야기다. 동시에 인간의 미덕과 통찰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신화는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며 상징을 통해 벌거벗은 인간이 무엇인지를 들여준다.' 내가 부족한 것은 신화이고 늘 읽어야겠다고 생각을 하는 것도 신화인데 잘 읽혀지지가 않는다. 손에 잡기가 참 힘든것이 신화이다. 하지만 늘 흥미롭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 <명화의 거짓말>에서 읽은 신화에 관한 것들이 감추어졌던 많은 것들을 들여다 보게 했다. 이 작품에도 '명화' 가 중간중간 나오고 신화에 대한 이야기와 저자의 생각이 함께 씨실과 날실로 연결되어 있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신화의 독법에 대하여 그는 첫째 신화는 은유라고 했다.그리고 두번째 신화는 자연과 우주를 반영한다. 나머지 세번째는 신화는 원시적 사고가 지어낸 어리석은 마신이 아니라 갖가지 문화에 의해 왜곡되기 전 인류의 원형 이미지를 그래도 보여주는 것이다. 그가 신화를 따라가는 시선은 '제우스의 비밀 병기인 '최초의 여인 판도라' 의 '판도라의 상자에서 나온 것들을 하나씩 신화와 연결지어 간다.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으로 나오지 못한 것은 '희망'이다.우리가 무슨 일에 닥쳤을 때 늘 바라고 기원하는 '희망' 그렇다면 나머지 것들은 세상에 나와 어떻게 신과 어울려 아니 인간과 어울려 살게 되었을까.

 

'판도라는 여자가 아니라 바로 인간의 삶 자체를 상징한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나온 것중에 제일 먼저 나와 세상을 지배한 것은 '시간'이란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땅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 난 크로노스는 자신의아버지 성기를 자르고 권력을 얻었지만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다시 자식이 자신을 죽이는 일이 반복되었다고 한다. 이때 우라노스의 성기에서 나온 피는 흐르고 흘러 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시간,우린 늘 정해진 시간 속에서 살고 있고 늘 시간이 없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가 하면 요즘은 시테크를 잘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하기도 한다. 시간은 멈출 수도 없는데 점점 시간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시간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가 신화의 시작과 함께 이어지며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게 한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두번째로 나온 것은 '애욕'이라고 한다. 얼마전에 영화 '벨아미'를 보았다. 옴프파탈, 모두에게 좋은 남자로 비춰지는 한남자,그는 자신의 애욕을 바탕으로 하여 상류사회에 발을 들여 놓는가 하면 애욕으로 자신의 빈 영혼과 육체의 곳간을 채우듯 세 여자와의 스캔들에 휩쓸려 급류에 휘말리고 만다. 겉만 번지르하고 속은 텅빈 욕정, 그 욕정과 욕망으로 인해 파멸에 이르는 사람들, 인간의 감추어졌던 애욕이 하나 둘 벨아미를 통해 고개를 든다.  '시간과 욕정'은 모두 우라노스의 성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시간의 신 크로노스와 미의 신 아프로디테의 이야기가 재밌게 펼쳐진다. 아름다움도 시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욕정도 아름다움도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인간은 영원할 것처럼 아름다움에도 시간에도 매달린다. 다 부질없는 것인줄 알면서도 잠시 잠깐의 개화를 영원이라 믿는 사람들.

 

세번째 판도라의 상자에서 나온 것은 '변화'라고 한다. 살아가면서 '변화'를 겪지 않는 순간이 단 한순간이라도 있을까.늘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가고 있지만 누군가는 그 변화에 직격탄을 맞아 바닥에 쓰러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 변화 때문에 인생역전을 하기도 한다. 변화란 정말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같다. 그의 결론은 '인간은 신의 저주인 이 변화를 창조의 힘으로 변용시킴으로써 영웅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라고 했다.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가하면 누구보다 변화를 먼저 경험하려는 사람도 있다. 세상은 변화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 같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삶 또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외 판도라의 상자에서 나온 것은 '불행,자기애,배고픔,분노,혐오,무익하고도 희망이 없는 일을 매일 반복하도록 만드는 것,유혹,허영,거짓말,탐욕,사랑과 집착,과도함,오만....' 어느 것 하나 인간사에 없는 것이 없다. 신들의 세상을 통하여 보여지는 인간사,'이야기를 통해 한 사람만이 체득한 삶의 은밀함은 여러 사람이 겪은 더 넓은 경험의 장으로 나오면서 지혜의 빛이 된다.이야기는 여러 사람이 삶을 나누는 것이다. 인간은 이야기로 산다.' 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사를 접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판도라의 상자에서 나온 것들 중에 한가지라도 나를 빗겨갈 것들이 있을까. 어렵다고 생각했던 신화 속에서 오늘날의 현실을 본다. '우리 안에 신이 있다. 신은 우리 안에 신을 숨겨 두었다.인간은 신이 선물한 모든 것들을 자신 안에 담고 태어난 모순덩어리지만...' 오늘날에도 신화속의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인간의 날모습들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희망' 에 기대어 오늘도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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