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선인장 - 사랑에 빠졌을 때 1초는 10년보다 길다
원태연.아메바피쉬.이철원 지음 / 시루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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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랑,이제 막 시작했다면 그들처럼 아닐까.여기 이제 막 첫사랑에 눈을 뜬 새카만 도둑 고양이 한마리와 누군가에게 버림받고 다시 누군가에게 선택되었지만 늘 외로운 '선인장' 그들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쓸쓸이' 또한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지만 자신의 모든것을 내어주듯 상대를 사랑하면 할 수록 자신은 닳아 없어진다, 그리곤 흉측한 몰골이 되어 상대에게 버림받듯 버려진다. 사랑은 그 어떤 감정이나 모습이어도 행복과 아픔이 함께 동반되는 인생의 성장판과 같다.

'사랑에 빠졌을 때 1초는 10년보다 길다.' 아 정말 멋진 맛이다. 정말 그런 때가 있었다. 너무 빨리 잊어서 탈이지만 말이다. 그 순간이 너무 찰나와 같기 때문에,빛의 속도로 사라지고 말기에 눈이 내린 그 순간부터 순수함을 잃어버리듯 녹는 순간의 그 흉측함만을 더 많이 보아서일까, 왜 사랑하면 씁쓸함이 더 기억되고 남는 것인지. 사랑은 행복보다는 애증이 더 빠라온다. 그렇지만 그들은 어울리지 않는 듯 하면서도 서로를 간절히 그리고 애절하고 원하고 있다. 삶의 시간을 얼마 갖지 않은 소년이 선인장에게 지어 준 이름은 '땡큐', 물을 주었을 때 아는 척을 했다고 반가워 했다고 '땡큐' 라고 하지만 선인장은 늘 외롭다. 외로움이 가시처럼 돋아 나 있는 움직이지 못하는 선인장에게 밖의 세상은 그야말로 '상상속' 그의 상상속에서는 못하는 것이, 안되는 것이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선인장 땡큐가 있는 창가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살금살금 왔다. 이름도 없는 도둑고양이, 땡큐는 너무 외로워 그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하는데 그만 자신의 외로움을 밖으로 내뱉고 만다. '외로워' 그래서 고양이 이름은 '외로워' 가 되었다. 하지만 무척이나 소심쟁이다. 무슨 소리만 나도 얼른 달아나 버린다. 그런 외로워가 땡큐는 너무 부럽다. 어디든 갈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린 자신이 가지지 못한 '남의 것' 에 대한 동경이나 그외 욕심을 부린다. 땡큐는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외로워가 부러운 반면 외로워는 집이 있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는 땡큐가 부럽다. 그는 늘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비를 피해야 한다. 먹는것조차 눈치를 보며 훔쳐 먹어야 하니 얼마나 땡큐가 부러운가. 땡큐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누가 나타날까봐 혹은 그가 가지고 있는 가시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다. 그저 가까이서 바라볼 뿐. 그렇다고 땡큐가 외로워를 안아 줄 수도 없다. 자신이 가진 가시 때문에,그렇다고 외로워가 땡큐를 안을 수도 없다,가시 때문에.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사랑한다. 땡큐의 외로움을 나누어 가진 외로워, 자신의 마음을 알아 준 땡큐, 그들에게는 다가갈 수 없는 거리가 있다. 제일 먼 거리는 '마음에서 머리' 라고 하지만 이들은 바로 눈 앞에 있지만 '유리창' 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땡큐의 상상속에서는 안되는게 없다.

몰래 몰래 사랑을 키운 그들 곁에서 누군가를 애타가 그리워 하는 비누조각 '쓸쓸이' 가 있다. 자신을 늘 만져주는 소설가를 기쁘게 하고 사랑하기에 자신의 그런 마음을 비누거품을 풍부하게 내어 그에게 다가가지만 그럴수록 자신은 초라하고 점점 없어져 버린다.그는 비누가 아닌 '거울' 이 되어 그의 모습을 온전히 담고 싶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어떤지 모른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향기'를 가졌다는 것을. 그런 그들에게 일대 사건이 일어난다. 소설가가 집을 옮기게 된 것이다. 방하나 욕실하나에거 벗어나 새로운 거처를 마련한 그는 전자파를 잡아 먹는 땡큐도 늘 소설을 쓰기 전 손을 닦던 향기나는 비누 쓸쓸이도 그대로 두고 떠난다. 새로운 주인인 신혼부부가 그들을 찾아 오지만 그들 역시나 새로운 살림에 그들이 필요하지 않다. 가차없이 쓰레기 봉투에 집어 던져져 처량한 신세가 되는 땡큐와 쓸쓸이, 사랑의 설레임고 기다림도 모두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런 땡큐를 그냥 돌려 보낼 수 없는 외로워는 끝까지 땡큐는 찾아 가지만 그들은 사랑은 거기까지인가 보다.

어찌보면 한편의 그림동화를 보는 듯 하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쓸쓸이처럼 자신의 모두를 다 내어 주어도 이루어지지 않고 땡큐처럼 그 자리에서 오래도록 설레임을 안고 기다린다고 해도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글허다고 외로워처럼 사랑을 간직하고 있지만 소심함에 다가가지 못하고 겉만 맴돌아도 사랑은 표현이 안되기에 이루어지기 힘들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서로의 가시에 찔리지 않고 다가가서 안을 수 있을까.'병신들은 잘 안다. 자신이 병신이라는 것을.병신들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자신이고, 병신들이 제일 보기 싫어하는 것은 거울이다.' 다가가고 싶지만 다가갈 수 없는 그 무엇, '일 초도 길다. 사랑 앞에서. 언어가 얼마나 쓸데없는 원시적인 유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사랑에는 무엇이 제일 우선적일까,언어보다 더 빠른 몸짓일까,눈빛일까,마음일까.'사랑을 하는 데 어떤 자격이 필요하다면 전 완전한 자겨 미달인 셈이죠. 하지만 이런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저도 한 가지는 당신께 해드릴 수 있어요. 전 외로워봤고 지금도 충분히 외롭기 때문에 당신의 외로움을 같이 공감할 수 있을 거에요. 당신만 좋다면요.' 상처가 있는 사람이 남의 상처를 볼 줄 아는 것처럼 '동병상련' 이다. 외로움을 충분히 느꼈기에 그 외로움을 아는데 서로에게 다가서질 못한다. 사랑이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내사랑 이었음을 알게 된다. 뒤늦은 후회는 그러나 소용이 없다. 10년만에 복귀작으로 낸 한 편의 동화같은 이야기가 이쁜 그림과 함께 가슴으로 쏙 쏙 들어와 박혀 별이 된다. '사랑에 빠졌을 때 1초는 10년보다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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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베이커 자서전 : 성장
러셀 베이커 지음, 송제훈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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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의 연세로 어머니의 적적함은 끝이 났다. 그래 가을 이후로 어머니의 정신은 시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 첫 줄에서 눈물이 왈칵, 지난달에 우리곁을 떠나가신 아버지의 마지막이 생각나 한 줄을 읽고 잠시 책을 덮었다. 울아버지는 칠십칠세로 생을 마감하셨다. 폐암 판정을 작년에 받으시고 정말 건강하게 농사일을 모두 마치시고는 거짓말처럼 편안하게 주무시다 이승의 손을 놓아버리셨다. 막된말로 가족에게 똥오줌 한 번 받아내게 하지 않시고 그렇다고 치매기 또한 없으시게 정말 말끔한 모습으로 전날까지 움직이시고 이야기 하시고 드실것 다 드신후에 주무시는 동안 그렇게 영원한 잠에 빠지시고 말았다. 그래서였을까 첫 줄이 날 울렸다. 여든의 연세로 러셀의 어머니는 치매를 앓으시다 가셨나보다. 

강인한 여전사 같았던 러셀의 어머니, 교사시절에 차가 고장나 차를 수리하면서 술병을 가지고 있던 그를 고쳐보겠다고 곁에 다가갔던 것이 그만 그와 인연을 맺게 되고 남편의 짧은 생으로 인해 대공황시절에 아이들과 구호품으로 타며 어렵게 살아야만 했던 여인. 러셀의 아버지는 그가 네살에 돌아가셨다. 러셀의 아버지가 결혼승낙을 받기 위하여 어머니를 데리고 할머니에게 간 날, 두 여인은 강하게 부딪혔다. 할머니도 강한 여인이었지만 어머니 또한 할머니만큼 강했던 것이다. 서로를 받아 들일 수 없었기에 그들은 할머니의 힘이 닿지 않은 곳에서 살 듯 가까운 곳에서 떨어져 살았지만 손자를 무척 이뻐하셨던 할머니,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들에게 빚만 남기듯 가난을 남겨 놓고 가셨다. 할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듯 외삼촌을 찾아가 더부살이를 하게 된 러셀의 가족, 어쩔 수 없이 막내 여동생은 자식이 없는 집에 주고 돌아서야만 했다.

모두가 다 힘든 대공황시절이었기에 어머니는 러셀에게 여덟 살 때부터 밥벌이로 신문을 팔게 했다. '네가 부지런을 떠느니 차라리 장작에 새순이 돋겠다. 당장 부엌으로 가서 도리스가 설거지 하는 것을 거들어!' 하지만 그 일이 싫었던 러셀, 그런 반면에 그의 여동생 도리스는 그와는 너무도 반대다. 그가 신문을 팔지 못하여 어머니가 도리스를 딸려 보낸 날 도리스는 그에게 보란듯이 '한방' 먹인다. '그 애는 가방에서 신문 한 부를 빼들고 있다가, 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뀌자마자 가장 가까이에 서 있는 차로 뛰어가 그 조그만 주먹으로 닫혀 있는 창문을 쾅쾅 두들겼다. 운전자는, 아마 그의 차를 급습한 꼬마의 행동에 당황해서인지 창문을 황급히 내렸다. 그러자 도리스는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한 부를 차 안에 던져 넣었다. '아저씨, 이 신물이 필요하실 거에요. 5센트밖에 안 해요.' 여기서 나 또한 '빵'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소심하고 소극적인 오빠 러셀에 비해 적극적이며 모든 일에 활달하고 어려서부터 자기몫을 단단히 해내는 도리스, 그녀의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도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도리스도 그렇고 여성이 강한 집안이다. 그런 속에서 꿋꿋이 자신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그가 거쳐야 했던 아픔들과 대공황의 가난은 고스란히 담겨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하다.

어린시절부터 미미라는 고아나 마찬가지인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기 까지 스물 다섯 정도의 생까지 그려지며 앞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어머니의 마지막으로 써 놓아 가슴 뭉클한 감동까지 전해준다. 대공황시절 비록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가난하긴 했지만 자존심을 절대 굽히지 않고 반듯하게 아들을 키워 출세시키기 위하여 모질게 스스로 강해져야만 했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러셀 또한 삐뚫어 나가지 않고 오로지 공부에 매달리며 신문팔이라는 밥벌이까지 하면서 성장기를 보내야 했던 그가 어려서 그토록 싫어했던 신문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성장을 했다는 것은 아마도 어머니의 힘이 크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그는 여전사와 같은 강한 어머니가 만들어낸 '작품' 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외삼촌 집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어머니처럼 강인한 팻 외숙모와 살면서 좌충우돌하는 이야기 또한 재밌으면서도 감동을 준다. '팻 외숙모 역시 점차 온전한 자기 집에서 살기를 원했다. 우리가 공황 초기에 앨런 외삼촌 집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어머니는 기껏해야 세를 얻기 전까지 서너 달만 신세를 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황의 수렁 속에서 서너 달은 어느덧 3년이 되었고, 세상 돌아가는 형편은 팻 외숙모와 앨런 외삼촌에게 이전의 사생활을 되찾기까지 50년이 걸릴지도 모를 일로 보였다.' 자신들 뿐만이 아니라 다른 외삼촌들까지 모이게 되는 팻 외숙모네서 독립을 하여 자신들만 살게 되고 그곳에서 구호품을 받아 살 정도로 바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던 그에게 어머니는 '허브아저씨' 와 결혼을 선택하여 그들의 대공황시절에 막을 내리게 되지만 대학 또한 망설이게 되는데 친구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타고 갈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고 행운의 여신의 미소를 보듯 장학생으로 발탁이 되고 대학에 들어가 자신보다 더 대단한 친구들을 보고 좌절할즈음 해군에 입대를 하게 되고 그토록 어렵고 무서워 하던 수영을 간단하게 배우게 되면서 그는 삶의 자신을 가지게 되었다. '수영은 놀라울 정도로 쉬웠다. 두려움은 다루는 해군의 원칙은 그것을 아예 무시해 버리는 것이었다.훈련 교관은 내가 물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했다.' 자신이 물을 무서워 한다는 것을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하여 못하던 수영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술 덕분이지만 비행술이 없다고 생각하던 그가 '최고' 라는 소리를 듣게 되면서 그의 삶은 활짝 피었지만 여자만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오랜 시간동안 미미와 밀고 당기면서 서로를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알게 된 그들이 마침내 결혼에 이르게 되고 어머니 또한 그녀를 좋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어린시절부터 외삼촌내 집에서의 더부살이며 학교에서의 이야기며 여동생 도리스와의 이야기가 소설보다 더 재미와 감동을 준다. 자서전이라고 생각되기 보다는 '소설 한 편' 을 읽고 있는 기분이고 대공황시절을 잘 견디어내는 한 가족사의 영화를 한 편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의 이야기가 약간 지루하가 싶을 때 도리스의 이야기는 웃음을 '빵' 터지게 하니 정말 웃음과 감동이 있는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다. ' 하루는 <세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를 팔아야 하는 신세를 한탄하며 내가 투덜댔다. '엄마의 아빠가 그 재산만 찾았어도 내가 이 고생을 안 해도 될 텐데.' '오빤 그런 헛소리를 믿어?' 정말 현실적인 동생이다. 감성적이며 소심한 오빠 러셀에 비해 현실적이며 그녀 또한 어머니처럼 강인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늘 ' 에드윈 아저씨처럼 네 이름이 이렇게 또렷이 인쇄되어 나오면 그땐 너도 출세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야.' 러셀의 출세를 위해서는 모든 다 할 수 있는 '모성애' 를 보여 주었다. 자서전이라기 보다 다르게 보면 어머니의 성공한 아들을 키워낸 소설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아버지없이 대공황시절을 견디어 내야 했던 가족 이야기와 그의 성장기는 자신은 철저하게 외로웠지만 자식을 위하여는 '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되고야 만다는 믿음으로 반평생을 살아오셨다.' 늘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또 그렇게 살아 오셨기에 러셀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 없다는 말처럼 꿈을 꾸면서 노력한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음을 보여주는 '러셀의 성장기' 는 자식을 키우는 내게도 '지침서' 와 같은 책이 되어 주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느 어머니가 그러하지 않을까만은 오로지 자식만 바라보며 한 길을 가듯 하셨던 반듯한 어머니가 있어 그의 미래는 보장되지 않았을까.대공황인 어려운 시절을 살아 오면서 어른들에게서 일찍부터 세상을 배운 러셀, 지금의 아이들이라면 흔들릴 수 있는 환경인데도 자신의 꿈을 향햐여 올라 갈 수 있는 조력자인 어머니의 힘을 바탕으로 흔들림없이 성장기를 잘 극복한 그의 이야기는 꼭 딸들에게도 읽어보라 권하고 싶어졌다. 자서전이 아닌 '성장기' 를 극복해 나간 그와 가족들의 감동과 재미가 있는 이야기는 모든 힘의 근본은 '가정과 가족' 에서 온다는 것을 한번 더 느끼게 해준 책이다. 어렵다고 그 상황을 회피하거나 포기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가 되어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미래는 꿈 꾸는 자의 것이 될 수 있다. 그런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좋은 책이다. 그 후의 이야기가 <좋은 시절>이라는 후속편으로 나와 있다니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다. 삶이란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개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러셀 베이커의 자서전,새해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듯 연말에 읽게 됨이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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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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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둠으로써 제일 큰 것을 얻은 거예요. .. 세상의 작은 것들을 버리고 제일 큰 것을 얻었으니 더 바랄 게 없지요. 처음 불란서에 와서 이 수도원 저 수도원을 다녀보다가 이곳에 오게 됐어요... 제가 소개를 받아 이곳에 도착하지 전날 한 수녀님이 돌아겼는가 봐요. 장례미사를 드리는데 참석했다가 돌아가신 그 분의 얼굴을 뵙게 되었죠. 관 속에 들어가 계신 그 늙은 수녀님의 얼굴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바로 원장수녀님께 면회를 신청했어요. 그러고는 말씀 드렸죠. 제발 여기서 죽게 해주세요.. 그때 원장수녀님이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그래요 좋아요. 하지만 지금 당장 죽는 건 안 돼요.' 이 부분을 읽으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지난 달에 소풍을 떠나신 아버지가 생각나 한참을 울었다. 편않게 주무시듯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이 글과 오버랩 되어 책을 덮고 한참을 울었다. 창살로 막힌 곳에서 갇혀 지내면서도 아이처럼 행복한 미소를 짓는 노수녀님들의 얼굴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었던 아르정탱 수녀원 이야기는 여고시절 기억도 떠오르게 했다.

꿈 많은 여고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는 천주교학교였다. 원장수녀님이 연세가 있으신데 정말 꽃처럼 고아서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종교담당을 하는 도서관 수녀님은 얼마나 해박하신지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이었고 미술수녀님은 또 얼마나 유머있고 재밌으셨는지 모른다. 내가 알던 종교와 수녀님에 대한 생각은 그 시절에 모두 바뀌고 말았다. 그렇다고 내가 천주교 신자도 아니었고 종교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종교를 부정하지도 않았고 수녀님이라는 거리감 보다는 그들도 '여자이고 인간' 으로 보게 되었다. 그시절에 수녀님들을 통해 갇힌 생활에 대하여 남들보다 좀더 많이 듣게 되고 '믿음' 에 대하여 다른 눈을 가지게 된 듯 하다. 좀더 폭 넓게 모든 것을 아우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수도원 기행' 은 좀더 그 시절을 떠오르게 하여 잔잔한 감동으로 읽게 되었다.
유럽의 수도원은 중세 건물들로 그림과 같기도 하고 무척 아름다웠다. 그렇다고 그속에 갇혀 있다고 하여 결코 그들이 불행한 삶은 사는 것은 아니기에, 그들이 선택한 오롯한 삶을 살고 있기에 더 경건하게 읽을 수 있었다.

수도원이나 성당을 가면 괜히 경건해지고 숙연해진다. 여고시절에도 종교시간에 성당에 가면 죄를 짓지 않았는데 괜히 무겁게 무언가 고해성사를 해야 할것만 같은 불안함이 엄습해 오기도 했다. 그곳이 다른 곳이 아닌 신을 모시고 신앙생활을 하는 곳이라 좀더 다르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 곳을 여행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을 비우고 다른 모습의 자신으로 채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자신안에 채증처럼 쌓여 있던 것들을 18년 만에 놓아 버리듯 하면서 새로운 자신으로 채워 나가는 모습이 잔잔하니 '나도 그런 여행 하고 싶다' 라는 여운을 남겨 주었다. 세상과는 어느정도 거리가 있는 곳이라 더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자신 안에 발견되지 않은 믿음을 발견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게 한다.

여행은 어쩌면 '다른 사람과의 만남' 이다. 익숙한 것을 떠나서 낯선 것과의 만남이 여행이라지만 익숙한 사람들을 떠나 낯선 사람에게서 새로운 '따듯함' 을 얻을 수 있는, 얻고 오는 것이 여행이 아닌가 한다. 수도원 기행이지만 수도원에 있는 그와 관계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새로운 삶을 통해 나 자신의 현재를 다시 들여다 볼 수 있음이 아니었나 한다. 여행에 많은 도움을 주신분들, 생각지도 못했던 아님 그에게 가졌던 고정관념이 여행으로 인해 무너져 내리고 새로운 인물을 담을 수 있음도 여행인듯 하다. 한 분 한 분 수도원에서 만난 분들은 비록 갇힌 인생을 선택했지만 자신들의 '최고의 안식처' 를 찾은 듯 행복해 보였다. 욕심을 부리며 현대 문명속에서 산다고 모두가 행복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자신을 비우며 자신을 낮출때 비로소 여유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꽃은 곧 시들어 버릴 것이라 언제나 마음속에서 아름답고 사람은 짧게 스쳐갈수록 오래도록 기억이 나는 것인지... 아름다운 풍경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 때문에 다시 꼭 찾아가고 싶은 곳, 프리부... 그러고 보니 이제껏 세 번의 유럽 여행이 헛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을 여행하면서 나는 한 번도 '사람들' 을 만난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본 것은 사람 없는 풍경과 역무원들과 장사꾼들뿐, 사람은 없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비로소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진정한 이야기에 귀 기울였기에 그 속에서 '나' 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중세의 아름답거나 고풍스러운 수도원과 진솔한 수도자들의 이야기가 있었기에 그리고 자신의 속내를 숨김없이 글 속에 담아 냈기에 그녀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다친 달팽이를 도와주지 말고 그냥 놔두라는 말처럼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 스스로 단단해 지고 있는 노수녀님들이 이야기는 뭉클하면서도 처연해진다.하지만 그 길이 다른 길이 아닌 '믿음' 을 향한 길이기에 아름다워 보인다. 그들을 통해 자신과 타협하듯 하는 작가, 어쩌면 독자에게도 자신을 좀더 비울 기회를 주는 여행서인지도 모른다. 갑자기 이 책을 읽으면서 여고시절 친구들과 수녀님들과 함께 했던 그 성당에 가고 싶어졌다. 추억은 빛 바래서 가물가물 하지만 그 곳에 가서 앉아 있으면 지난날의 내 자신과 조우할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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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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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작가는 내게는 처음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구매해 놓고 읽지 않아 뒤로 쳐져 있어 잊기전에 읽어야지 해야한 것이 벌써 한 해가 다 가고 있다.그러다 만나게 된 그의 단편소설집 <더블>은 '동전의 양면을 보듯 작가의 깊은 속 헤엄쳐가기' 라고 해야 하나 좀더 작가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작품인듯 하다. 단편소설은 장편과는 다르게 그 작가의 글쓰기 저력을 볼 수 있어 에세이와 더불어 많이 읽어보려고 노력한다. 장편보다 어찌보면 글쓰기 저력 뿐만이 아니라 그 속내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 좋다. 그런면에서 그를 장편이 아닌 단편으로 먼저 만난 것을 어쩌면 행운이라 여긴다.

더블 A에서 처음 만난 <근처>는 40세 말기암 환자가 고향으로 내려가 자신의 지난날과 그리고 친구들과 마주치면서 자신은 삶이 혹은 생이 절박한데 비해 친구들은 그의 생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고 남에겐 자신의 삶이 다르게 이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어려움에 처한것을 남에게 말하지 않으면 타인은 내 어려움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현대인의 삶은 성냥갑처럼 네모로 나뉘어진 아파트의 현관문만 닫으면 타인과 단절이다. 그런 삶에서 자신이 비로소 절실할때만 타인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있다. 어린시절 동심을 간직한 삶도 세월의 때가 묻어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현재의 모습에서 어린시절의 그사람을 읽는 다는 것은 어렵다.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가면 겨우 때묻지 않은 자신들을 발견할 수 있지만 결국 삶은 홀로 가는 길이다. '누군가 무단횡단을 하고, 멈칫 중앙선에 서 있던 낯선 얼굴이 다가왔다 사라진다. 나도 사라진다, 사라질 것이다.정말 다 온 것인가. 나는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정말 다 왔다니까, 아직 모북의 푯말을 보지도 못했는데 아픈 육신이 서둘러 대꾸를 한다.달그락, 흔들리는 상자 속에서 30년 전의 소년 하나가 소릴 죽여 울고 있다. 나를 넣어둔 것은 누구였을까. 나를 꺼내려는 것은 또 누구일까. 나는 왜 이곳에 무단으로 놓여 있었던가. 스스럼없이, 하여 스스럼없이.' 결국 죽음앞에서 모든 것을 체념하듯 '<나>의 근처를 배회할 인간일 뿐이다.' 라는 말처럼 자신의 근처만 서성이다 갈 인생인데 우린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 아픈 자신을 위하여 병간호를 하듯 정성을 다 하듯 아이들마져 떼어 놓고 왔던 순임이마져 '나 돈 좀 빌려줘' 자신이 살길을 헤쳐나가기 위하여 죽어가는 자신을 발판으로 삼는 현실, 인생의 깊은 속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언저리만 배회하다 가는 삶은 아닌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에서는 읽고 한참 머물러 생각하게 한다. 과연 삶은, 인생은 어떤것일까? 어떻게 나 잘살고 있나요? 누군가에게 물어야 될 것만 같다. 더블B의 <낮잠>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자신의 아내에게 많은 것을 해주지 못했는데 그가 먼저 가고 자신은 열심히 살았다고 했는데 자식들은 자신의 모든것을 갉아 먹고 또 다른 객체로 나오는 우렁이처럼 자신이 모든것을 다 파먹으려 한다. 자기가 가진 재산을 모두 처분하여 요양원에 갈 돈만 남겨 놓고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고 요양원에 들어간 남자, 그곳에서 첫사랑 여인을 만난다. 그시절에 그녀는 문학소녀이었고 모두가 그녀를 갈망했다. 하지만 그녀의 지금 모습은 치매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초라한 모습이다. 그 모습에서 오래전 소녀시절의 그녀를 연상한다는 것은 그가 가진 추억뿐이다. 그 요양원에서 만날 줄도 몰랐지만 그녀가 행복한 삶이 아닌 질곡의 삶을 살아 왔음을 알고는 연민의 마음을 가지는 그, 그리고 그녀를 사모했던 동창생이 또 한 명 있다. 그와 라이벌이 되어 그녀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듯 하여 그에게는 친구가 아닌 웬수가 될 판에 그가 그만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고 만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뜻하지 않게 다른 길을 걸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타난 그녀의 아들이 쏟아 내는 비루한 삶, 그는 그녀와 결혼을 하기로 결심하고 그녀를 아들에게서 인수인계를 받는 것처럼 혼인신고를 한다. 먼저 간 아내에게 못한 것들을 이제 잘 해보려는, 하지만 그들에게 내일은 없다. 언제 어떤 삶이 그들에게 닥칠지 모른다. 인생은 어쩌면 낮잠 한 번 잘못 자고 일어나면 변하듯 할 수 있다. 아님 자신의 간절하게 원하던 것을 가졌을때 자신도 모르게 비로소 낮잠에, 단잠에 빠질 수도 있다. 

인생이 무언지 생각해 보게 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이런 단편도 좋았지만 단편집엔 SF도 있다. 다양한 장르의 단편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읽고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마구마구 부딪혀 오는 눈보라처럼 달려온다. 그의 소설들에서는 다양한 욕들도 참 많이 나온다. 리얼하다. 한국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망설임없이 쏟아내는 욕들이 '통쾌한 배설' 처럼 속 시원하게 변기물을 내리듯 흘러 내려간다. 그렇다고 깊이가 없는 것이 아니다. <누런 강 배 한 척>에서는 노년의 삶이 또한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화단에선가, 가로수에선가 꽃잎 몇 장 떨어진다, 떨어졌다. 왜 인생에선 낙법이 통하지 않는 것인가.' 한때 잘나가던 선배, 하지만 그는 밀려나고 사회에서는 그야말로 바닥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그에게 가시오가피를 팔러 왔지만 그 또한 여의치 않으면서 선배가 안되 보여서 할 수 없이 자신이 생활비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줄 알면서 가시오가피를 받아 들고 오지만 치매에 걸린 아내를 낮시간 돌보아준 맘도 없는 며느리에게 던지듯 주고 만다. 그리곤 자신의 알맹이를 빼먹으려는 딸에게 자신의 전재산을 정리하여 주듯 하고는 그들은 동반자살을 하려고 결심하고는 떠난다. '아내의 손을 잡고 백화점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무작정 아내는 기뻐했고, 분별없이 일곱 벌의 옷을 닥치는 대로 골랐다. 모두가, 강렬한 원색의 옷이었다. 피처럼 빨간 원피스가 있었는데, 예전의 아내라면 공짜로 줘도 입지 못할 옷이었다. 그 옷을 입고, 아내는 소녀처럼 기뻐했다. 소년처럼, 나는 눈물이 나왔다.' 인생은 정말 무얼까? 자식을 위해 마지막까지 속을 다 파내어 주고는 빈껍데기로 돌아서 죽음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치매에 걸려 아무것도 자각할 수 없는 아내가 눈에 들어오고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는 남자의 눈에 어린 눈물, 하지만 꽃이 지고 있다. 

그의 소설들을 읽다보니 어쩌면 그의 소설의 그 깊은 속은 '소통' 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자식과 소통을 하지 못하거나 혹은 아내와 소통을 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과거와 소통을 못하거나 혹은 친구와 사회와 소통을 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모두 담겨 있다. 그들이 만약에 소통을 했다면 삶은 인생은 어떻게 변하였을까. <굿바이,제플린> 에서 처럼 우린 에드벌룬과 같은 '공기 비행기' 와 같은 큰 꿈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 것은 한낱 허상일 수도 있다. 늘 쳐다만 보고 달려 간다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가 결혼을 결심한 미려에게 단한마디 언질이라도 주었더라면 아님 자신의 가슴에만 품고 있지 말고 그녀와 '소통' 이 되었다면 총에 맞고 땅에 떨어진 공기가 빠진 비행기처럼 되진 않을 것이다. 자신의 꿈을 쫓아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가기 보다는 가끔 앉아서 다리쉼을 하듯 '인생' 을 들여다 보는 눈을 가지라는 것처럼 무언가와의 '소통' 을 말해준다. 책 표지처럼 가면을 벗고 가면 속에 숨어 있는 자신과 만나듯 소통을 한다면 현재의 오늘은 어떻게 달라질까. 그 오늘과 만나는 연습을 할 수 있는 '더블' 의 단편들은 한번에 모두를 읽고 덮었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 편씩 다시 꺼내어 읽어 보고 싶은 소설들이다. 추억의 서랍을 열고 한개씩 추억의 물건들의 그 속을 들여다보듯 단편들의 속을 다시금 되새김질 하고 싶은 소설들이다. 이 단편집을 계기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프로필의 이상스런 모습으로 그가 내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 하다. '소설 어떠셨어요.' 하면서 말이다. 한사람의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 하기도 어렵지만 지구의 미래를 정의하기도 어렵듯이 여기저기서 서로 다른 언어로 쌓아 올리는 바벨탑과 같은 그의 울림은 잠시, 나의 오늘을 들여다보게 한다. '오늘은 내일이 남아 있는 유일한 오늘이군요. 이제 곧 모든 어제도 사라지겠죠.' 라면서 말이다.소통을 하지 못하고 막혀 있는 누군에게 비타민처럼 지금 바로 상처 치료가 되는 '치유제' 와 같은 기회를 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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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내게로 왔다 3 - 내가 사랑하는 젊은 시 시가 내게로 왔다 3
김용택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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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선생님 김용택이 읽은 '젊은 시' 들을 모아 놓은 시집이다. 거기에 시인이 나름 시에서 느낀 느낌등이나 그외 인간적인 면까지 써 놓아 좀더 시의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볼 수 있음이 좋았다. 올해는 시집을 많이 읽어보리라 다짐을 했는데 시집을 구매한다거나 읽은 것은 몇 편 되지 않는다. 자꾸만 뒤로 밀리고 있는 시집 아니 詩, 그래서 난 더더욱 영화 '詩' 를 혼자 보러 갔다. 영화 중간에 나오는 시강좌편에 물론 김용택선생님이 '김용탁' 시인으로 나와 우리들의 시가 지금 걸어가는 길에 대하여 솔직하게 털어 놓듯 하는 장면들이 너무도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다른 문학들에 비하여 등한시 되고 있는 시와 시인들, 하지만 분명히 시는 우리속에 존재하고 지금도 시인들은 시를 쓰고 있다. 나 또한 한때는 내 나름의 시를 쓰는것에서 행복감을 느낀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에 떼가 묻었는지 그 시심을 잃고 살아가고 있다. 나를 보듯 영화 '시'  에서 시의 추락처럼 한 인간의 삶이 저물어 가고 있다. 그 잔잔한 감동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난 좀더 올해는 지났지만 밝아오는 새해에는 좀더 많은 시집을 읽어보리라 다시 다짐을 해 본다.

그런 가운데 만난 젊은 시는 느낌이 좋았다. 익히 아는 기형도의 '안개' 도 그렇고 내가 모르는 시들이 정말 많이 수록되어 그만의 느낌과 함께 인간적인 시인의 생활상까지 약간 들추어 놓아서 더 정감이 가는 시집이었다. 시만 한 번 쫙 읽어 본 후에 다시 처음부터 시와 함께 김용택님의 느낌을 곁들어 읽어보면 남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나는 문학과 사회, 역사를 논리적으로 해석하고 논할 만한 식견이 없다. 시문학을 평가할 능력이 애초에 내게는 없다. 그런 일들은 문학평론가들이 할 일이다. 나는 그저 이 시집을 엮으며 간간히 떠오르는 생각들을 여기 쓸 뿐이다. 나는 몇몇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 자전거를 타고 두 손을 놓아버린 손의 자유를 느꼈다. 손을 놓고 자전거를 타며 두 손으로 바람을 잡아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손가락 사이를 지나는 상쾌한 바람을 온 몸으로 들이켜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의 말처럼 시는 어디라고 딱히 정해놓지 않은 시공간을 자유롭게 비행하듯 젊은 시들은 사랑이나 이별등에 갇혀 있지 않고 어느 곳에서나 만나는 느낌과 언어이듯 불쑥 불쑥 솟아 나온다. 한때 사랑과 이별시가 유행했다면 이제 '시' 도 우리 일상 생활로 들어온듯 자유롭다. 느낌도 자유롭고 표현방식도 자유롭고 언어 또한 자유로워졌다. 어떤 시는 한 편의 영화를 보듯 하는 느낌의 것도 있고 어느 시는 짧막하지만 모든것을 아우르듯 하는 깊음이 숨겨져 있다. 

'이 야만의 시대에 낯선 시들이 내게로 찾아와 나를, 내 온몸을 떨게 한다.'
그 떨림을 나 또한 느끼고 싶어진다. 소설이 아닌 짧은 언어들의 그 행간을 읽으며 '떨림' 을 느끼고 싶다. 그 느낌을 느꼈던 것이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너무도 멀리 나와는 동떨어져 있는 시, 시가 내게로 올 수 있게 하는 길은 더 많은 시와 시집을 읽는 것일 터인데 그 또한 내겐 너무 먼 일이다. '돌부처는/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래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 -더딘 사랑 이정록...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그런 시간들이 내게서 흘러간듯 하다. 내 안의 것들이 눈 한 번 감았다 뜨는 시간에 모래가 되어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 나간듯 너무 무감각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언가 잃어 버리고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자꾸만 문명의 이기들에 길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신없이 호박꽃 속으로 들어간 꿀벌 한 마리/ 나는 짓궂게 호박꽃을 오므려 입구를 닫아버린다/ 꿀의 주막이 금세 환멸의 지옥으로 뒤바뀌었는가/ 노란 꽃잎의 진동이 그 잉잉거림이/ 내 손끝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친다// 그대여, 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나가지도 더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랑/ 이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 난 지금 그대 황홀의 캄캄한 감옥에 갇혀 운다/ 사랑의 지옥, 유하... <말죽거리 잔혹사>의 유하 감독의 시다. 호바꽃 속에 벌을 가두는 장난을 어릴적엔 무척 많이 했다. 노란 호박꽃 속에 벌이 들어가길 앉아서 기다리다가 벌이 들어가고 나면 꽃을 얼른 오므려 벌이 나오지 못하도록 가두어 두었었다. 그렇게 한참을 꽃을 오르리고 있으면 속에서 벌이 '윙 윙 윙윙' 난리가 난다. 비상구를 찾지 못한 벌은 한껏 성이 난다. 그러다 얼른 꽃을 놓아 주면 가해자를 찾듯 주위를 '윙윙' 소리를 내며 날던 꿀벌이 생각이 난다. 그 황홀한 감옥에 갇힌 듯한 것이 사랑일까 지옥일까. 우린 어쩌면 모두 자신만의 '황홀한 감옥' 에 갇혀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조정래 작가는 자신의 글쓰기를 '황홀한 글감옥' 이라 했듯 우린 그 황홀한 감옥에서 어쩌면 일탈을 꿈 꾸고 있는지 모르겠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겠지만 난 '읽는 사람의 것' 이라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 또한 몇 편의 시를 써보기도 했지만 해석은 읽는 자의 맘이다. 내가 정말 좌절하는 기분으로 썼던 시는 다른 이에게는 힘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느낌을 가져다 준다. 꼭 형식에 맞추어 혹은 평론가적인 해석을 하며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그렇게 쓰는것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유롭게 자신이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이 최고인듯 하다. 꼭 어려운 말로, 그런 언어로 쓴다고 해서 모두가 좋은 글이 되지는 않는다. 쉽게 자유롭게 표현을 해도 받아 들이는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으면 그것이 제일이라 생각을 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시인이나 그외 시들을 읽으며 왜 자꾸만 이런 시심을 잃어버리고 사는지, 지금이라도 한 편의 시를 영화 속의 '미자' 처럼 쓰고 싶어졌다. 시집을 읽는 다는 것은 나도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하여 더 좋다. 구수한 김용택님의 느낌으로 좀더 가깝게 수혈할 수 있었던 '젊은 시' 는 저물어 가는 한 해, 꺼져가던 나의 시심에 불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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