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 - 세계은행 총재 김용의 마음 습관
백지연 지음 / 알마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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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꿈'이 무엇이다.혹은 무엇이 되고 싶다,무엇이 될것인가를 묻곤 한다. 결과물에 취중한 나머지 아이들에게도 그런 삶을 혹은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한참 진로를 결정해야 할 중고등학생들은 대학을 선택하고 과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되기 위해' 그 과를 가야한다거나 그렇게 되기 위하여 공부를 한다. 하지만 요즘은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라고 한다. 무엇이 되기 위한 삶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사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런데 정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무엇이 되기 위해'가 아니라 '무엇을 하며' 사는 삶인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며 산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인듯 하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인 우리나라,하지만 세계 경영인을 두 명이나 배출한 나라다. 유엔 사무총장인 '반기문'을 비롯하여 세계은행 총재에 오른 '김용'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듯 하다. 그가 세계은행 총재가 되기 전에도 두번이나 백지연은 인터뷰어가 되어 그를 인터뷰 했고 그가 세계은행 총재가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긴박하게 그와 또 한번의 인터뷰를 가졌다. 그의 삶이 청소년들에게 전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좋은 집안에서 자라서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것보다 그가 무엇이 되기 위해 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며 살 것인가를 하다보니 지금의 위치에 오르고 그 전에 아시아인 최초로 다트머스 대학 총장의 자리에까지도 올랐다는 이야기다.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직은 확실한 꿈을 정하기에 힘든 청소년기, 꿈을 정했다고 해도 그 길이 내 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언제 어떻게 또 변할 수 있을지 아님 다른 변수에 의하여 꿈이 변할지 모르기에 아직은 미지수이지만 꿈을 빨리 이루기 보다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 그 길의 삶에 대하여 논하는 듯 하여 지금의 입장에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그가 인턴을 마치기도 전에 다른 철학이나 그외 공부를 하기 위하여 인턴생활을 접겠다고 아버지께 말씀 드렸을 때 아버지는 인턴을 마치고 다른 것을 해도 늦지 않다고 말씀 하신다. 분명 아버지는 인생 선배이시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며 느꼈던 것을 고스란히 아들에게 전해주는 말이었을 것이다. 젊은 패기로 앞에 보이는 길만 선택하려 했지만 좀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을 보여준 아버지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의 인생 행로는 더욱 탄탄하게 걸어갈 수 있었지 않았을까. 물론 충고도 받아 들이는 사람 나름이다 자신에게 충고를 달갑게 받아 들이면 정말 득이 될 수 있는데 '충고따윈 필요없어 내 인생은 나의 것' 이라며 패기로 몰아 부치다 보면 난관에 봉착할 때가 있다.그런 길을 잘 헤쳐나갈 수 있게 아버지는 인생의 답을 주신 것이다.

 

오늘날의 그가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 어머니의 힘도 컸다고 보면서 그의 가정을 들여다 보았다. 치과의사였던 아버지와 철학을 공부한 어머니,그중에서도 이황의 학문에 깊은 적을 두고 있었던 어머니의 영향이 그에게 크게 미치지 않았을까.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과 뜻을 함께 했던 동문 '폴 파머'와의 뜻 깊은 일들이 그를 더욱 큰 인물로 만들지 않았을까. 그가 PIH에서 동료들과 함께 했던 '로빈후드식 행동'들이 다트머스 대학 총장시절에도 우려와는 다르게 학생들과 융합하여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이끌고 점점 어려움에 봉착하여 갈길이 먼 세계은행에도 뭔가 새로운 길을 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한국인이면서 세계은행의 총재가 된 그를 보면 '한국'이라는 우물에 갖혀 있기 보다는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글로벌리더쉽을 가르치기도 하고 나를 생각하며 살기 보다는 더 많은 문제들과 함께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나는 한번도 내가 어떤 자리에 오르거나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늘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관심을 두었습니다.'...'미국에는 이런 속담이 있는데,원래 니체가 한 말입니다. '죽을 만큼의 역경은 사람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유치원에서 고등학교 사이에 교사가 가르쳐야 할 것, 학생이 배워야 할 것은 과학이나 수학의 문제 풀이 기술이 아닙니다. 정말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은 '마음의 습관' 입니다. 물고기를 가져다주지 말고, 그물질을 가르쳐야 합니다.'  물가에 말을 끌고 가도 물을 먹는 것은 말의 뜻이고 말 자신이다.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이 혹은 물고기를 가져다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부모나 혹은 선생님이 가져다 주는 물고기만 받아 먹던 아이들이 물고기 잡는 방법을 몰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무엇보다 정말 가슴에 와 닿은 말은 그의 인생 전반을 놓고 볼 때, 다트머스 대학 총장이 되기 위하여 세계은행 총재가 되기 위하여 노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하며 살까? 어떻게 살아갈까 하고는 자신의 소신껏 살아오다 보다 우리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지금의 위치에 자연스럽게 그가 오게 되었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은 물론 거져 얻어진 것들이 아닌 그가 로빈후드식 행동이라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진실을 밀고 나가는 용기도 있었고 자신이 믿는 것에는 불의와 타협하기 보다는 한사람이라도 더 결핵과 에이즈에서 구해내기 위하여 선의와 가난과 타협하였기에 오늘의 그가 있는 듯 하다. 꿈이 보이지 않을 때는 지금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또한 바른 길인듯 하다. 한 발 한 발 최선을 다하여 나아가다 보면 안개에 휩싸인 자신의 길을 마주하게 되기도 하고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는듯 하다. 무엇이 되어 빨리 하산하기 보다는 한 발 한 발 주위의 나무를 살피며 하는 산행을 하듯 어떻게 산을 오를 것인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마음 습관을 배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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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만찬 - 공선옥 음식 산문집
공선옥 지음 / 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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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만찬'은 어떤 밥상을 가지고 행복한 만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음식이란 맛에 담긴 어릴적 추억이나 엄마에 대한 혹은 가족에 대한 추억이 함께 하면 더욱 행복한 음식,맛있는 음식,잊을 수 없는 음식이 되곤 한다. 나 또한 어릴적 시골에서 넉넉하지 못한 생활이지만 그때는 너무 질리도록 먹어서 싫었던 음식들이 성장을 하고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나서부터는 어릴적 기억속에 머문 그 음식과 맛을 찾아 요리를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수제비를 하나 해도 어릴적 친정엄마는 이것을 이렇게 해주었고 또 어떻게 함께 모여 먹게 되었는가,그 모든 것들은 음식에 가미되는 복합적인 맛이 되어 맛이 없던 것들도 더 맛있게 기억되는,기억속의 맛을 요즘은 자주 되새겨보곤 한다.

 

나 또한 시골에서 자라서 늘 먹거리는 주변에서 충당하고는 했다. 냉장고나 마트에서 혹은 시장에서 구매하는 먹거리가 아닌 직접 가꾸고 뜯거나 채취한 것들을 가지고 그자리에서 직접 엄마가 해주신 음식들을 넉넉하진 못해도 가족이 모두 모여 혹은 이웃과 함께 모여 먹는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무얼 먹어도 꼭 나누어 주고 받고 그렇게 정을 나누며 함께 먹는 음식은 맛도 그렇지만 모두의 정이 담겨 있어 더욱 맛있었다.우리집은 시골 동네에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 늘 사람들이 붐볐다. 그러면 엄마는 울집 막내인 나에게 가마솥에 고구마를 한 솥 닦아서 넣고 불을 때라고 했다. 그렇게 삶아진 고구마를 이웃이 모두 모여 뜨듯한 아랫목에 모여 앉아 김치 한사발과 함께 나누어 먹는 맛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우리집은 다른 집보다 고구마 농사를 더욱 많이졌다. 아버지는 산밭 황토흙에 고구마를 심고 가꾸고 늘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개금이며 산딸기며 가을엔 알밤을 주우며 함께 한 기억들이 더욱 고구마를 맛있게 하기도 한다. 고구마를 캘 때 쯤이면 아버지는 보릿대로 커다란 발을 만들어 건넌방에 고구마도가니를 만들듯 하여 그곳에 저장을 했다. 무척 많은 고구마는 팔려고 하는 목적이 아니라 식구들이 겨울을 나는 요긴한 것이었던 것, 모두가 모이면 가마솥에 쪄먹기도 했지만 고구마밥에 찐고구마를 말린 것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아궁이에 구운 고구마,늘 아버지가 군불을 때면 날 위해서 고구마를 구워 주시곤 하셨다. 그 고구마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그런 시골에서의 행복한 생장을 한 먹거리들로 없던 시절을 배곯지 않게 보내기 위하여 먹었던 '행복한 음식'들에 대한 '행복한 추억'이 가득 담긴 저자의 지난 시절 이야기들은 음식과 먹거리에 담긴 이야기라 그런가 내 지난 시절을 들여다 볼 수도 있고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다. 나 또한 어린시절 책가방을 툇마루에 놓기가 무섭게 바구니와 무딘 칼을 들고 들로 나가 논두렁에서 나물을 캐는 것이 일과였다. 그것이 놀이였고 저녁 한끼 배부른 밥상을 위한,아니 들일로 늘 바쁜 부모님을 도와 내 일을 찾아 하는 한가지 임무이기도 했다. 철마다 바구니에 철철 나물을 뜯고 텃밭에 나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렇게 함께 모두 모여 먹는 저녁은 맛있었다. 여름엔 늘 앞마당에 멍석을 펴고는 두레반에 갖은 반찬과 금방 가마솥에 한 밥과 음식들로 가득 차려 놓고 먹다보면 모기가 달겨 들어도 맛있는 만찬이었다. 그런 시간들은 다시 오지 않기에 뒤돌아보면 더욱 맛있고 행복하고 정말 행복한 만찬이었다.

 

그때의 습관들이 몸에 베어 있어서일까 시골에 가면 먼저 밭에 들어가 무슨 먹거리가 없는지 아니면 밭에서 뜯을 나물이 혹시나 없는지 살피고는 한다. 지난번 시골에 내려가서는 텃밭에 몇 개 있는 비름나물을 뜯겠다고 했더니 친정엄마가 그런것도 예전에는 많았는데 지금은 얼마 없다면서 뜯어도 한줌도 나오지 않을 거라며 그만두란다. 넉넉한 인심에 밥 때만 되면 마당에서 놀던 아이들은 자신들의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이 있는 곳에서 해결하고 다시 놀기도 하던 그때, 지금은 그럴 아이들도 없다.저자의 기억속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내가 놀던 동네의 골목골목 아이들과 그리고 먹거리들 맛있는 냄새,삶의 경쟁보다는 하루하루가 가진것보다 더 행복함에 젖어 보내던 그때가 그립고 친구들이 그립고 그때의 시간들이 그립고 지금은 곁에 없는 아버지가 그립고.넉넉하지 않아도 양푼에 보리밥 넣고 텃밭에서 뜯은 푸성귀 넣고 고추장 한 숟갈에 쓱쓱 비며 모두가 숟가락 하나씩 들고 달겨 들어 먹어도 정말 맛있는 시간이었다. 우린 모이면 가끔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며 엄마가 텃밭에서 뜯어서 금방 무쳐준 먹거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런 음식들을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하고 있다. 추억속에서 끄집어 낸 음식들은 내 아이의 밥상에서 다시금 추억으로 이어지고 있다.하지만 그때 느꼈던 행복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먹는 것도 무언가에 쫒기듯 허덕이며 먹어야 하고 성인병이나 그외 영양적인 것이나 재료의 믿음에 대하여 골똘하게 생각해 봐야 하는 지금과 그 시절은 많은 차이가 있다.

 

요즘 맛집기행이나 소문난 맛집들을 보면 추억의 먹거리들이 많다.음식은 그 음식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맛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하는 '추억과 사람'도 참 중요하다. 싫은 사람과 먹는 맛있는 음식은 결코 맛있지가 않듯이 음식은 좋은 사람과 함께 할 때 더 맛있고 시너지효과가 더 있다. 어린시절은 넉넉하진 않지만 모두가 함께 모여 함께 맛을 나누고 정을 나누었기 때문에 더 맛있고 그것이 텃밭에서 직접 가끈 행복한 생장을 한 재료들이기 때문에 더욱 맛있는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올 수 없는 시간속에 있기 때문에 기억속에서만 있기 때문에 더 맛있는 음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도 변했지만 먹거리도 변했다.지금 아이들이 보리개떡을 알까? 지난주에 친정엄마를 만나고 왔는데 엄마는 '보릿가루'이야기를 하신다. 지금은 선식 혹은 미싯가루라고 하지만 그때는 순전히 보리가루였다. 꺼끌꺼끌한 가루가 잘 넘어가고 맛있게 하기 위하여 설탕을 듬뿍 넣어서 시원하게 타 먹기도 하고 그냥 가루를 입에 넣고 먹기도 하던 보릿가루,추억의 음식들은 지금은 많이 해먹지 않기에 더욱 맛있는 추억으로 간직된 것이 아닐까.내가 직접 가꾸거나 직접 하지 않고 사먹기에 더욱 그 맛이 그리운 것이다. 그런가하면 넉넉하진 않았어도 그 많은 기억과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다면 충분히 행복한 것이다.오늘 난 무엇을 먹어야 훗날 행복한 만찬으로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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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극단 사계절 1318 문고 77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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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책으로 <침묵의 시간>을 읽었는데 짧으면서 강렬한 이야기에 빠져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 작품 또한 짧으면서 인생이란 무엇인지 한번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생각해 보게 한다. 인생은 한판 연극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막이 오르면 언젠가는 막이 내리고 지나간 시간들은 다시 오지 않는다. 연극과 같은 인생이 미로에 갇혀 허우적 거리고 있다. 한치앞도 모르는 인생,미로에 갇힌 인생처럼 들어갔던 문으로 다시 나오게 되고 한번 빠져들면 어떤 길이 존재하는지 전혀 모른다. 그렇게 유랑극단의 연극 <미로>와 함께 감방 동료로 만난 대학교수 클레멘스와 사기꾼 하네스의 연극은 시작되었다. 부적절한 관계를 했던 여제자에게 차등의 점수를 주었다는 이유로 감방에 오게 된 '슈투름 운트 드랑'의 교수 클레멘스는 길에서 가짜 교통경찰을 하며 돈을 받던 하네스라는 사기꾼과 함께 감방 동료가 되는데 그는 도통 아무일에도 흥미가 없는 듯하다가 감방에 유랑극단이 오고 나서부터 생기를 찾는다.

 

유랑극단이 감방에서 행할 연극은 <미로>이다. 한번 들어가면 빠져 나오는 사람이 없다는 미로, 들어가고 나오는 문이 같은 미로에서 벗어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단다. 연극이 상연되고 십여분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그 시간에 하네스와 그의 친구들은 바쁘게 움직여 모두 유랑극단 버스에 올라탄다. 하네스를 따라 클레멘스 교수도 올라타게 되고 그들은 유유히 감옥의 문을 벗어나게 된다.유랑극단 단원이라도 된 듯 말이다. 그들이 탈출한 것을 감옥에서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자유를 느끼며 달리고 달리고 그러다 패랭이꽃 축제가 한창인 '그뤼나우'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은 패랭이꽃으로 유명해진 도시이며 거기에 발맞춰 문화적으로 함께 발전하려고 발돋움하고 있는 중인데 마침 '유랑극단'이 마을을 찾아와 준 것이다.그러니 얼마나 대환영이겠는가.그들은 죄수들이지만 그뤼나우마을에서는 '유랑극단' 단원이 되어 합창도 하고 그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대접을 받게 된다.그런가 하면 그동안 조용하던 하네스의 지휘아래 그들은 하나가 되어 그 마을에 안착하여 저마다 능력을 발휘하기로 한다. 클레멘스는 강의를 하고 하네스는 박물관을 맡게 되고,그런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정말 연극처럼 가능하게 되고 마을은 더욱 그들로 인해 활기를 찾게 된다.

 

좋은 것은 때가 있는 법,미리 떠났어야 했는데 그만 발목을 잡히고 만다. 그들의 노고에 상을 수여하기로 한 것, 그들은 이왕에 상까지 받고 멋지게 다른 곳으로 떠나자고 의견을 일치한다. 그런데 상을 받는 자리에 교도소장도 있고 자신들이 떠나온 곳의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뭐야 이곳 그렇다면 교도소와 연관이 있는 것인가. 그래도 주는 상을 받고는 떠나려 하는데 그들을 기다리는 버스,유랑극단이 되어 그뤼나우 마을에 왔듯이 유랑극단의 버스를 타고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야 했던 것,그렇다면 지금까지 그들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은 교도소측과 그뤼나우 마을이 함께 쓴 각본이었을까. 누군가에 의해 쓰여진 시나리오에서 자신들은 그것이 교도소를 떠나 정말 자신들이 쟁취할 수 있는 자유를 찾은 듯 그렇게 누군가가 지켜보는지도 모르고 트루먼 쇼를 하듯 가뤼나우 마을에서 한판 연극을 벌였던 것인지.

 

그뤼나우에서 만끽했던 자유 때문인지 하네스는 다시 잠잠한 생활로 돌아가고 누군가는 적응을 하지 못해 자살을 하기도 하고 탈출을 하기도 한다. 탈출을 할거라고 생각한 대장격 '사기꾼 하네스'는 탈출 대신 클레멘스와 함께 남은 시간을 감옥에서 보낼 것을 택한다.그가 왜 남은 시간을 '견뎌내려고 하는 것일까?' 그들이 다시 돌아간 감옥에 다시금 유랑극단이 찾아 오고 감옥에서 상연한 연극은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그렇다,미로와 같은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것. 지금까지 빨리빨리 결과를 얻어내기 위하여 사기를 치며 살았다면 클레멘스 교수와 함께 하면서 하네스는 '인생은 견디어 내는 것,고도를 기다리듯 기다리며 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의 시간들도 잘 견디어 왔다.탈출과 다시 감옥행을 반복하고 세상에 나아가서는 자신의 자리 하나 번듯하게 없이 '사기꾼'이라는 말을 듣지만 클레멘스와 함께 하면서 그는 '인생'이란 것을 배우게 되고 들여다 보는 눈을 가지게 된다. 인생은 아무리 발버둥치려고 해도 '미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신의 고도를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희망'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비록 세상밖에 자유가 있다가 해도 그 또한 연극과 같은 세상이다.

 

새장에 갇혀 있던 새가 새장을 벗어나 잘 살 수 있을까.감옥생활을 하면서 익숙해진 감옥,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많겠지만 지금까지 무척 많은 미로속을 거닐어 왔다. 답이 없는 듯한 미로 속에서 희망도 없이 길도 없이 그저 허우적 거리며 살아 왔다면 이젠 미로가 안개가 걷히듯 무언가 살짝 보이기 시작이다. 클레멘스 교수가 그뤼나우 마을에서 택한 강연은 '판타지'이다. 이 이야기 또한 판타지적이면서도 연극적이고 그런가 하면 인생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심오함이 함께 하는 이야기다. 대학교수 였던 클레멘스도 참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견디어 내고 있다. 그렇게 하는 속에서 제자들이 그를 찾아 오기도 하고 그는 자신이 결코 잘못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되기도 하는데 사기꾼 하네스는 인생에서 무엇을 기다리고 견디어 내야 할까. 그래도 인생은 견디어 내야 한다. 그것이 혼자라면 힘들겠지만 누군가와 함께 의지하면서라면 좀더 쉽지 않을까,그렇다 하네스는 인생을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일장춘몽과 같았던 유랑극단을 타고 그뤼나우 마을에서 느꼈던 시간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남은 시간들 새로운 희망을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듯 이겨낼 것이다. 길지 않은 삶을 살아왔지만 인생이란 그런것 같다. 견디어 내고 기다리고,그러다보면 뜻하지 않은 희망도 만나게 되고 좀더 둥글둥글 세월을 받아 들이게 되는 너그러움과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속도위반을 하여 먼저 간다고 해도 모두가 가는 끝은 똑같은 인생인데 지금 희망이 보이지 않고 길이 보이지 않는 미로속과 같다 해도 견디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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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통 탐험가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박승희 옮김 / 부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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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통 탐험가' 제목을 보고는 '아하,나도 요통인데'하며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다 기회를 얻었다. 요통,난 언제부터 요통을 앓게 되었을까? 내가 '요통'아라고 할 수 있는 통증에 시달린것은 언제부터일까 생각을 해보니 아이를 가지면서부터인다.아이를 갖기 전에는 비쩍 말랐다는 말을 늘 듣던 나,임신중독증으로 인해 몸무게가 무척 많이 늘면서 요통은 시작되고 아이를 낳고도 허리가 아파 업어주질 못했다. 업으려 하면 정말 '아이고 허리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병으로 생각지 않고 병원을 한번도 찾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내 요통은 긴 시간동안 함께 했다.그렇다고 덜한적도 없었고 더 심하지도 않았는데 몇 해 전에 산행사고를 당하면서 심해졌고 이년 후 다시 심한 교통사고로 허리뼈도 하나가 부러지고 암튼 움직이질 못하여 교통사고덕에 허리 MRI를 찍게 되었다. 그리곤 '허리디스크'라는 것을 알았다.뼈도 부스러지고 디스크까지 있어 한동안 움직이지도 못하고 가만히 누워만 있으니 겉으로는 멀쩡하면서 병원생활을 하는 것처럼 남들은 내 고통을 몰랐다. 교통사고는 고만고만 하여 병원을 나오게 되었지만 일상생활에 접하려하니 허리가 너무 아픈 것이다. 병원에서보다 더 심하게 느껴지는 요통, 왜 그럴까.허리뼈가 부러진 부분도 통증이 오고,정말 뇌는 통증을 기억하는지 왜 다친부분이 더 심하게 통증을 느끼는지.

 

정형외과와 한방병원을 오가며 그렇게 물리치료를 하고 침도 맞으며 차도를 느끼려 해도 치료를 받고 온 날은 괜찮은 듯 하여 '내일은 가지 말아야지' 하고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면 아침에 다시 아픈 것이다. 요통으로 인해 잠도 잘 못자고 일어나지도 못하고,정말 저자의 심정을 고스란히 느끼던 때가 있었다.그때는 정말 요통에서 벗어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것만 같았다. 젊은 사람이 집에서 빈둥빈둥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허리가 아프다면 '벌써 허리가 아파서 어쩌냐'는 주위의 말들에 아프다는 말도 못하고 혼자서 낑낑,정말 몸에 중간인 허리가 아프면 아무것도 못한다. 일상생활은 물론 누워 있는 것도 힘든 그런 시간이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요통에서 말끔히 벗어난것도 아니다. 좀더 통증에 완만해졌다고 해야할까? 정말 집중하면 더 아픈듯 하고 더 빠져들게 되어 워낙에 아프니까 하고 생각을 달리하니 심하게 아플때만 누워 있게 되지 요통을 생각하지 않게 되니 스스로 벗어나게 된 듯 하다.

 

저자 또한 그런 생활을 한 듯 하다. 심한 요통과 오지탐험에 나서야 하는데 통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더욱 그를 요통에 빠져 들게 한 듯 하다. 민간요법에서 부터 정형외과 침술원 동물병원등 눈에 띄이고 누가 좋다고 하면 귀가 솔깃하여 그곳으로 향하여 점점 '아니다'라고 속에서는 외치고 있지만 자신의 소리를 외면서도 그곳에서 하는 말에 말려 들어가며 믿는, '낫겠지,이번이 끝이야'를 외치면서도 늘 요통은 그자리인 저자, 어디로 가야만 정말 요통의 끝을 볼 수 있을까. 적잖은 돈을 내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이끌리는 자신을 보며 '라면집 사장은 자신의 라면이 제일 맛있다고 여긴다'라는 이치를 적용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나약한 여자에 비유하면서도 요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저자,요통이란 남이 대신 앓아줄 수도 없지만 타인이 그 통증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 다른 통증도 물론이겠지만 요통이란 정말 지긋지긋하다.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것이 또한 요통이지 싶다. 그런데 저자는 통증이 완화되는 것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니 민간요법에서 정형외과를 찾기도 하고 한 장의 사진을 놓고도 다른 병을 유추해 낸 것을 믿고 그것을 고치려 한다는, 의사도 못 믿는 상황이 오고 자신도 못 믿는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정말 자신의 요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병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치료를 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요통뿐만이 아니라 몸이 아프면 남이 말하는 것이 모두 내 병이 되는 것은 현대인이 가진 '아는 것이 병' 이라는 말처럼 너무 알아서 병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한 곳 한 곳을 거치면서 점점 자신의 통증에 전문화 되어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의사와 병원을 의학을 믿는 것이 아니라 기만하게 되고 맹신적이던 것이 점점 불신으로 보다 더 '확실'한 의사와 병원을 찾아 뫼비우스처럼 자꾸만 이어지는 그의 요통 탐험의 끝은 정말 어디일까? 그러다 그가 마지막에 접한 것은 '수영'이다. 그동안 생각나면 가끔 가던 수영을 하러 가면서 문득 지금까지 자신이 탐험한 요통에 관해 들은 말들의 결말은 '수영'임을 알게 되고 빠져든다. 그렇다고 수영을 하면서 요통이 씻은 듯이 나은것으 아니다. 심인성인가까지 의심하면서 약을 복용하게 되고 점점 나약해지는 자신을 보면서 깨달은 끝이 수영이고 밤과 낮이 바뀐 것을 바꾸려 한 것에서 어느정도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었다는 것.

 

병은 대부분 '마음이 병'이라고 말을 한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병을 이기게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하지만 정작 자신이 어느 병에 노출이 되면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다는 것은 힘들다. 어떤 병이라는 말을 듣고나서부터는 정말 시나리오를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별의별 생각을 다하게 된다. 자신의 병을 담담하게 받아 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만큼 현대인은 '건강' 에 많은 것을 쏟아 붓기에 몸과 마음의 병보다는 건강한 자신을 원하기 때문에 동양이든 서양의학이든 무엇으로라도 빨리 병에서 벗어나길 원하지 오랫동안 지고 다니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집착하는 것도 좋지 않다. 저자 또한 자신 안에서 '요통'이란 것을 내려 놓고 나서야 비로소 통증에서 조금 벗어나기도 한다. 손에 잡고 집착하면 그것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눈을 돌려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면 통증은 제2순위로 밀려나 조금 덜 느끼게 되기도 한다. 1년8개월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그 경지에 오른 그의 정말 요절복통 요통 탐험기에는 환자라면 누구가 느낄 수 있는 일들이 재밌게 그려져 있다. 요통이 있는 사람들이 요통에서 모두 벗어날 수 있는 그날까지 요통이여 물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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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코, 연애하다 노리코 3부작
다나베 세이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다나베 세이코는 책보다 난 영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로 만난 작가이다. 잔잔한 영화가 좋아서 잠깐 일본 영화에 빠져 들어 보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 작가의 <노리코 3부작>이라고 하는 그 첫 권이 바로 이 책 <노리코,연애하다>이다. <딸기를 으깨며>를 읽어볼까 했는데 기회를 놓쳤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아주 사적인 시간> 그리고 <딸기를 으깨며>로 이어지는 '노리코 3부작' 사랑과 연애 이야기가 주는 의미는 뭘까? 우리와는 문화적 차이가 많아서일까 내용에서 노리코의 '자유연애'에 대하여 낯설기도 했지만 삶은 시작과 끝의 연속이면서 사랑과 이별의 반복 순환이라는 것을 말해주기 위한 노리코의 사랑의 시작과 끝에서 잠깐 일본 젊은이들의 사랑에 젖어 들어가본다.

 

무엇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다. 길의 끝에서 뒤돌아보면 다시 시작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노리코는 어릴적부터 오빠 친구인 '고로'를 가슴에 담아 두고 있지만 그의 앞에 서기만 하면 작아지는 그런 무력한 존재가 되고 만다. 그녀는 프리랜서로 그림도 그리고 일러스트를 하는가 하면 디지인도 하고 인형도 만들고 한마디로 다재다능하지만 연애에는 별재주가 없다. 오랜시간 마음에 담은 고로와 잘되길 바라지만 늘 어긋날 뿐인데 그녀의 친구인 미미가 남자를 떼어 놓기 위하여 '임신'을 핑계로 돈을 뜯어 내자며 그녀와 함께 가길 바라고 그렇게 우연하게 자리한 곳에서 만나게 된 '고' 부자짓 도련님과 노리코의 연애는 시작된다.그자리는 미미와 그녀를 임신케 한 타짱과의 끝인 자리였다. 시작과 끝이 겹친 것이다. 그런가 하면 미미는 실제 임신을 하게 되고 가짜로 호적을 빌려 줄 남자가 필요했는데 그때 마침 고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호적을 빌려주겠다고 나서게 되면서 미미와 고로의 사랑이 시작된다.

 

노리코는 오랜시간동안 그렇게 노력을 해도 가질 수 없었던 고로를 미미는 '임신'이라는 하나만의 이유로 가뿐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가하면 노리코와 고는 그의 별장에 놀러갔다가 바다에 빠져  위험한 순간에 '미즈노'라는 고의 별장 옆에 사는 중년의 남자를 만나게 된다. 가슴에는 고로를 품고 있으면서 실제 사랑은 고와 나누는가 하면 저돌적인 고의 사랑보다는 중년의 미즈노의 사랑에 더 빠져들게 되는 노리코,그녀는 가슴과 머리가 따로인 사랑을 하게 되고 또한 미미와 고로가 가짜 결혼에서 진짜 결혼생활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너무 허무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진정한 사랑을 찾고 싶어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어긋나고 만다. 미즈노와의 사랑을 눈치챈 고의 폭력앞에 무참히 무너지는 노리코, 부잣집 도련님이지만 노리코에게 단단히 빠져 버린 고,과연 그의 선택은 누구를 향할까?

 

미미와 고로는 미미의 아이가 사산되면서 더 깊게 이어지고 만다. 이별에서 시작된 사랑이다. 노리코와 미즈노의 사랑의 끝에서 다시금 시작되는 노리코와 고의 사랑의 대반전, 그렇게 사랑은 순환되고 삶도 순환된다. 흘러가는 물처럼 정지하여 고이지 못하고 시작과 끝 그리고 사랑과 이별이라는 순환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조금은 낯선 풍경이라 처음엔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읽다보니 '아 이런게 삶인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린 하루에도 이런 '시작과 끝'그리고 '사랑과 이별'의 감정의 변이및 삶의 순환속에 살아가고 있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어느 광고의 글귀처럼 움직여야 사랑이겠지만 그렇다고 저울마다 사랑을 놓고 달아 보는 행동은 그리 좋지만은 않은 듯 하다. 이동하는 동안 '진실'성이 결여되는 듯 하면서도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연애 따로 결혼 따로처럼 너무 자신 입맛만 찾는 것 같은 왠지 '간본다'는 느낌이 강한 노리코식 사랑이 그래도 좋은 결실로 끝나 다행이기도 하고 운명은 정말 따로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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