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y by the sea』는 2022년에, 한글판 『바닷가의 루시』는 2024년에 출간되었다. 내용 중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도 쓰려고 해서 스포일러 싫어하시는 분이시라면, 이 글의 패쓰를 권한다.
『오, 윌리엄!』에서 윌리엄은 71세, 루시는 7살 어리니깐, 64세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들의 가족이 살고 있는 뉴욕에까지 퍼지려는 상황. 윌리엄은 두 딸에게 뉴욕 탈출을 권고 및 지시한다. 그리고 자신은 루시와 함께 북쪽의 메인 주로 이사한다. 당시의 상황이라면, 전 세계가 모두 처음 겪는 일이었고, 그 진행과 변화의 과정이 역동적이어서 사람들은 그들의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게 될지 알지 못했지만, 대학교수이자 과학자였던 윌리엄은 상황을 간파하고 있었다.
나름 환경이 안정화되고 있을 무렵, 일이 생긴다. 첫째 딸인 크리시와 남편 마이클은 마이클의 부모가 살고 있던 집으로 이사한 상태였는데, 플로리다에서 골프를 즐기던 마이클의 부모가 골프가 지겨워서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당연히 가져야 할 '자가 격리' 시간을 무시한 채, 아들, 며느리와 행복한 시간을 기대하며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마이클의 아버지. 크리시를 통해 상황을 듣게 된 윌리엄은 마이클의 아버지와의 전화 통화를 시도하지만, 연결이 되지 않는다.
마이클의 부모가 그들의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한 그 바로 전날, 윌리엄은 루시에게 다음날 마이클 부모의 집으로 함께 가자고 말한다. 사위인 마이클이 천식을 앓고 있는데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마이클의 아버지를 직접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크리시는 변호사이고, 마이클은 뉴욕 금융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긴급하고 중요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70대의 아버지가 나선다. 유력한 변호사인 마이클의 아버지가 아들의 말을 진중하게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윌리엄의 끈질긴 권유와 약간의 협박을 더해 마이클의 아버지는 다른 장소에서 2주를 보내기로 한다. 그 기간 중에 마이클의 부모 두 사람 모두 코로나에 감염된 것이 밝혀져 마이클의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한다. 말 그대로, 윌리엄이 마이클을 구한 것이다.
두 딸 모두 결혼을 해 새로운 가정을 이뤘음에도 윌리엄은 자녀들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데, 이와 비슷하게 루시는 두 딸들에 대한 정서적인 지원을 계속해왔다. 한편으로 두 딸들과의 이러한 끈끈한 접합은 루시에게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서로 간의 직접적 접촉이 불가능해졌을 때, 눈앞에 닥친 혼란과 어려움에 힘들어하면서 루시의 두 딸은 그제야 비로소 루시에게서 독립을 하게 된다. 심정적으로 더 이상 엄마에게 기대지 않게 된다. 결혼 생활의 큰 변화와 부침 속에서 두 딸은 울고, 절망하고, 슬퍼하지만, 그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서서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간다.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지만, 이것에 대해 루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루시는 결국 이 상황을 현재의 상태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나는 잠시 서서 아이들이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이들이 아이들의 삶이 내가 기대한 것과 지금 얼마나 달라졌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아이들의 삶이라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고, 혹은 필요한 대로.
그리고 나는 예전에 내가 크리시를 가졌을 때 내 커진 배를 내려다보며 그 위에 손을 얹고 이렇게 생각한 것을 떠올렸다. 네가 누구든 너는 내 소유가 아니야. 내 일은 네가 세상에 나오는 걸 돕는 것이고, 너는 내 소유가 아니야. (『바닷가의 루시』, 369쪽)
이 책을 반복해서 여러 번 읽으면서 내 감상은 그랬던 것 같다. 아니, 다 큰 자식들이 변호사이고, 사회 활동가이고, 둘 다 결혼했는데, 왜 루씨는 이렇게 두 딸에게 집착하는 걸까. 루시가 '그래, 이건 아이들의 삶이야.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하면 돼.'라고 말했을 때, 너무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요,라고 생각했더란다. 내 이야기는 아니고, 내 경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욕망해도 괜찮아』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사춘기 자녀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주위의 가정을 돌아보면서 저자는 생각했더란다. 부모가 좋은 사람들인 것 같고,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실은 저 가정에 말 못 한 무슨 사정이 있는 거라고. 그래서 가정 내에, 혹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갈등이 있는 거라고. 저자가 그 생각이 틀렸음을 확인하게 된 건, 그의 딸이 사춘기에 돌입했을 때다. 그게, 그게 아니었구나. 꼭 그래서 그랬던 게 아니었구나.
큰아이가 한국 나이 4살이었을 때, 백화점 6층 한쪽 모퉁이의 장난감 코너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한 아이가 떼를 쓰다 못해 바닥에 눕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아이는 원하는 장난감을 얻기 위해 힘겨운 투쟁 중이었다. 큰아이의 손을 잡고 백화점 바닥에 누워 있는 아이를 지나가면서, 속으로 생각했더란다. 아니, 얘들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밖에서 저런 난장판을, 쯧쯧. 정확히 3년 뒤, 그 자리에 누워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떼를 쓰는 한 아이가 있었으니. 이번에는 쯧쯧거리며 지나칠 수 없었는데, 그 아이는 내 아이였던 것이며. 기나긴 실랑이 끝에 나는 만 원이 조금 넘는 미니카를 하나 사서 아이 손에 쥐여 주고 나서야 간신히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내 일은 아닐 거라 생각하는 일들이, 그렇게 가끔 아니 자주 일어났고.
이제 진짜 하려고 하는 이야기에 도착했다.
『바닷가의 루시』에서 루시가 딸들의 일상에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될 때, 나는 저건 아닌데...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아, 미국에서도 중산층은 이렇구나. 자식 나이가 40이 넘었는데도, 그들의 일상에 부모가 이렇게 깊이 관여하는구나. 우리나라와 비슷하네. 우리나라는 예전에도 그랬고, 요즘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 같은데. 마지막에 루시가 자신의 딸들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될 거라 말하는 대목에서도 그랬다. 당연하지 않나요. 그게 당연하지 않아요?
이번 여름이었다. 특별한 말없이, 별다른 사건 없이 큰애가 우리 부부에게서, 나에게서 멀어져 간다고 느꼈다. 그렇게 느껴졌다.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지만. 유난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그 애의 시원한 그늘막이 되어 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꼭꼭 싸서 키운 건 아니지만, 학원을 안 다녔기에 저녁 시간에 항상 함께 했던 큰애가 대학에 들어가서는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됐다. 아침마다 톡을 보내고, 전신 거울에 서서 '등교룩'을 찍어 보내던 아이였다. 같은 방을 쓰는 친구가 없는 시간에는 밥을 먹으며, 화장을 지우며 먼저 영상 통화를 걸어왔던 아이였다. 실사판 고슴도치 부모가 되어 전화기 앞에 고개를 들이밀던 때, 그때 나는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자주 웃었던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다. 빈둥지 증후군이라면, 자식의 성적에 온 신경을 기울이는 사람이나, 자식을 과보호하는 사람이나, 자식 말고 자신의 삶을 꾸려갈 줄 모르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세라고. 나는 아니라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하지만, 역시나 내가 그런 사람이었고.
깊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으나, 나쁜 인상을 남긴 일과 빈둥지 증후군 유사 증세는 같은 시기에 왔다. 외로움과 슬픔, 절망과 분노의 순간마다 책이 유일한 위로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쌓여 있는 책을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는 나 역시 루시처럼 이 상황을, 이 상황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하고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다시 생각에 잠긴 후에 다시 기다렸다. 그러고 나서 조금 기운이 나면 맥파든을 읽었고, 그다음에 또 맥파든을 읽었다.
간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빈둥지 증후군에 대해 쓰려고 그래. 다정하면서 솔직한 친구가 답했다.
참... 빈둥지 증후군이라니요. 둥지가 비기 전에 먼저 나가신 분...
샤워를 하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잠들기 전에도 큭큭. 나는 총 12,738번을 웃었다. 둥지에서 먼저 나갔는데, 무슨 빈둥지 증후군이라고...... 그렇다. 그랬던 것이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일들이 내 일로 착착 등장하는 순간들이 있다. 멈칫하고 꿀꿀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건강하게 잘 자라 둥지를 떠나 훨훨 날아가겠다면 이 역시 환영할 만한 일이다.
둥지가 비기 전에 먼저 나가신 분은 빈둥지 증후군 유사 증세를 호소하는 일이랑 그만두고 맥파든이나 읽어야겠다. 내내 나쁜 사람으로 찍어두었던 사람이 알고 보니 착한 사람인 것으로 밝혀지기 직전이다. 나쁜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 궁금하고, 함정에 빠진 사람이 이 어려움에서 어떻게 벗어날지 궁금해진다. 신난다.
이틀이 지났다. 나쁜 사람은 정체가 드러나고, 함정에 빠진 사람은 구출되었다. 역시나, 신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