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성을 떠올릴 때의 그 범주와 한계를 벗어나 더 포괄적(?)인 혹은 근원적인 의미에서의 성에 대한 서술은 푸코의 『성의 역사』일텐데, 4권짜리이고 2권 읽었지만, 여전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고.










『왓 이즈 섹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 저는 섹스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섹스를 할 때와 똑같은 만족을 느낄 수 있지요."(7쪽)

강의를 하면서 느끼는 섹스의 만족. 라캉은 말할 때, 청중을 대상으로 말하고 있을 때, 섹스할 때와 똑같은 만족을 느낀다고 말한다. 라캉이 본인만의 성적 취향이나 선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건 섹스가 무엇인가 혹은 어떠한가에 대한 가장 쉬운 설명이 될 수 있다. 나는 뭐할 때 섹스할 때와 똑같은 만족을 느끼는가. 뭐할 때, 그리고 뭐할 때.










『에이스』의 부제는 <무성애로 다시 읽는 관계와 욕망, 로맨스>이다. 이 책은 일반적인 ‘성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모든 사람이 섹스를 좋아할 거라는 생각, 진짜 남자는 섹스를 많이 할 거라는 생각, 새로운 시대를 맞는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은 원나잇에 개의치 않는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저자의 이야기는 오늘 이 시대 알라딘 서재의 라이징 스타 아일린과 사이먼의 이야기와 겹쳐 보인다. 저자의 남자친구 헨리는 5년간 개방 연애(open relationship)를 하자고 졸랐다. 애인이나 배우자를 두고 자유롭게 다른 사람을 만나자는 거였다. 오랜 갈등의 시간 끝에 두 사람은 헤어졌고, 일대일 관계에 목을 매는 구식의 생활을 버리고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관계로 나아가자는 헨리의 말을 기억하며, 스물 둘의 저자는 데이트 사이트 '오케이큐피드'에 로그인해 괜찮아 보이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그를 만나 아프고 형식적인 섹스를 한다. 이제 자기는 한 남자에게만 목매는 찰거머리도 아니고, 충분히 진보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느낀 그녀는 헨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헨리에게 이야기하자 헨리는 축하한다며, 자기가 다 기쁘다고 했다. 그런데 그 여름이 더 지난 어느 컴컴한 밤, 헨리는 마음 한구석에서 모든 게 이상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내 행동이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벌이자 불신의 신호라는 직감이 들었다고. 헨리는 정확하게 짚었다. 헨리의 기분이 이상했던 건 자기가 내게 1순위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어쩌면 아주 작게나마 있었기 때문이었다.(『에이스』, 114쪽)

두 사람의 끝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나는 두 사람간의 합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계에 만족할 수 있다면, 이 관계 속에서 행복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오케이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현실판이 존재할 것이다. 다만, 한 사람이라도 그만큼에 만족할 수 없다면, 그렇다면 그 관계는 존속 자체가 불가능하다. 나는 열 다섯살의 아일린이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자신의 진의를 사이먼에게 전했다고 생각한다.

내 평생에, 딱 한 사람이라고요.(39쪽)

독서괭님의 정확한 관측에 의해 '전반적으로 개새가 아닌 것으로 밝혀진' 사이먼은 '전반적으로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 진지하게 임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를 괴씸하게 여기는 대목은 바로 여기이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런 배경 때문에 아일린은 그렇게나 오랜 시간 '친구 타령'을 입에 달고 살지 않았나 싶다. 사이먼은 반성하고, 아일린은 행복하길.

아침에는 그가 커피를 만들었고, 밤에 아일린은 그의 침대에서 잤다. 그들이 사랑을 나눈 후, 그는 그녀를 오랫동안 안고 있는 것을 좋아했다. 더블린에 돌아온 날, 그녀는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녀는 사이먼이 크리스마스에 그녀의 가족이 사는 집에 들러 브랜디를 한잔하면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칭찬할 때까지 그로부터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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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9-14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선 제가 기대한 글보다 짧음에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언급하신 책중 푸코의 성의 역사는 4권까지 다 읽었지만, 사실 그건 제 읽기 능력의 부족함으로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고요, 왓 이즈 섹스와 에이스는 마침 가지고 있으니 저는 그것들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집에 있으니까 지금은 말고.. 그렇다면 섹스에 대해 좀 더 다른 방식으로의 이해가 가능해지겠죠. 저는 다른 방식의 이해,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음 저는 사실 사이먼과 아일린을 ‘각인‘된 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트와일라잇 읽으셨었죠, 단발머리 님? 거기 보면 나중에 제이콥이 벨라의 딸에게 각인되잖아요. 무조건 그 딸을 지켜야하고 평생 그 아이만 봐야 돼요. 사실 이건 아이에게 각인된거니 좀 징그러운 면이 있긴한데, 저는 이 ‘각인‘이 실제 생활에서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이먼의 아버지 기질이 제대로 발휘되고 유독 발휘되는 이유는 저는 사이먼이 아일린에게 각인됐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저는 누구에게나 이 각인이 일어나지 않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일어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게 꼭 연애감정에서뿐만은 아니고 어떤 관계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러나 모두에게 살면서 한 번 이상 꼭 일어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제가 어떤 운명적인 사랑 같은걸 믿는 걸지는 모르겠는데, 예전에 봤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에서 하림이 여옥에게 그랫던것도 각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 때 하림을 너무나 좋아하던 여자가 하림의 온 신경이 최대치 사랑하는 여옥에게 가있는 걸 보고, 그녀를 구하는 것에만 쏠린 걸 보고 ‘당신에게 여옥은 국가보다 더한 존재이군요‘ 라고 말하거든요. 하림은 부정하지 않고요. 물론 이건 드라마 캐릭터긴 하지만, 저는 이 각인이 실제로 어떤 경우에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있고, 저는 사이먼이 아일린에게 각인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른 얘긴데, 갑자기 생각나서 덧붙였습니다.

단발머리 2025-10-16 09:52   좋아요 0 | URL
간단한 정리여서 그렇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

푸코의 성의 역사는 해설서라도 찾아서 읽고 다시 읽어야겠어요. 저도 너무 어려웠구요. 그러나, 다시 읽어도 @@ 자신은 없구요.

저도 다락방님과 비슷하게 생각했는데!!! 아... 저는 그 ‘각인‘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제가 정확히는 기억 안 나는데, 다섯살의 사이먼이 갓 태어난 아일린 보겠다고, 보여달라고 그러잖아요. 그 순간이 각인의 순간일 수 있겠네요. 첫 만남. 태어나자마자. 그러고 보니 트와일라잇의 그 장면과 비슷하네요. 제이콥도 벨라의 갓난 아이에게 각인되죠.

운명적인 사랑이라. 저는 운명적인 사랑이 존재한다고 믿던 사람이었죠. 어디에선가, 나만의 그가.... 백마를 탔던가요? ㅋㅋㅋㅋㅋㅋㅋ정장 입은 거 확실하고요? 하지만, 이제는 그걸 믿지 않는 어떤 사람이 되었구요. 하지만, 다락방님 말씀처럼 ‘각인처럼 운명적인 일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어난다‘고 생각해요. 예상과 추측을 넘어선 인연과 만남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카를로 로벨리의 책에서 만난 문장, 과학자의 문장 속의 ‘대상‘에 인간들도 포함된다고 생각하니까요.

속성은 대상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대상 사이에 놓인 다리인 것입니다. 대상은 맥락 속에서만, 즉 다른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며 다리와 다리가 만나는 지점입니다. 이 세계는 거울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비쳐야만 존재하는 관점들의 게임인 것입니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111쪽)

인간은 맥락 속에 존재하죠. 그 사람이 의미있는 건 내가 존재하기 때문이고, 내가 존재하기에 비로소 그 사람도 의미를 ‘성취‘하는 거고요.

바람돌이 2025-09-15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포괄적이고 근원적인 의미의 성에 대해서 생각할 때 푸코라니요. 저 어려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누가 하냐구요. ㅎㅎ(저는 1권 읽고 나가떨어진 사람입니다.)
사랑이나 연애의 형태는 정말 여러가지일 수 있는데 서로가 합의한다면 그 형태가 어떻든 상관없을거 같아요. 그런데 참 쉽지 않은게 사람에게는 이성으로 이런게 좋아라는게 있는 반면 의식 아래 밑바닥에는 또 다른 원초적인 감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독점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벗어나면 정신병이 되는 거지만 연인관계라고 할 때 저 사람이 나에게만 특별하게 대해주는게 뭐 하나는 있어야 연인관계가 성립되는 거잖아요. 그 특별한 뭔가가 저는 독점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특별한 뭔가가 많은 사람에게는 섹스라고도 생각하고요.(아 무성애자는 제외입니다. 무성애자는 그 무성애를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게 특별함이겠죠.) 그래서 너와 내가 연애를 하고 섹스도 하는데, 오픈 마인드로 다른 사람하고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관계를 지향한다고 했을 때 사실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지 않을까? 너는 나에게 특별하지 않은데 언젠가 그 오픈 마인드로 만나는 다른 사람 중에 특별한 사람이 나타날 가능성이 많으니까요. 샤르트르로 보바리의 계약결혼 얘기도 하지만 저는 그 두 사람의 관계는 연인이라기 보다는 친구관계였을 가능성이 많을거 같거든요. 하여튼 그래서인지 저는 개방 연애 잘 될거 같지 않아요. ㅎㅎ

우리의 주인공 사이먼과 아일린에 대해서는 저도 단발머리님이 인용하신 대목 읽으면서 이런 바보같은 놈 했었거든요. 하지만 사이먼의 저 마음도 이해가 갔어요. 저 때 당시 아일린은 남친이 있었고, 아일린은 그에 대해서 어떤 말도 하지 않죠. 제가 사이먼이라면 많이 힘들었을거 같아요. 아일린은 내가 보호해줘야 하는 아이인데, 아일린은 그 남친을 정말 좋아하고, 나와의 일은 일시적인 일탈일 뿐일지도 모르는데 나이 먹은 내가 아직은 자유롭게 살아야 할 아일린의 세계를 망가뜨린느거 아닌가 뭐 이런 수많은 고민이 있었을거라는거죠. 물론 쓸데 없는 고민이지만, 사이먼은 아빠 모드잖아요. 저기서 아일린이 확실하게 물어봤다면 뭔가 달라졌겠지만 저 때의 사이먼은 먼저 물어보거나 다가갈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대화를 하고 살아야 한다? 역시 저의 결론은 평범합니다. ^^

단발머리 2025-10-16 09:53   좋아요 1 | URL
저에게도 푸코는 항상 아픈 기억이지요 ㅎㅎㅎ차라리 <감시와 처벌>이 나았습니다.

바람돌이님이 말씀해주신 의식 아래 원초적인 감정에 대한 부분이 제 생각과도 많이 비슷합니다. 바람돌이님은 그걸 독점욕이라고 쓰셨는데, 저는 그걸 사랑의 ‘배타적 속성‘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그렇지 않은 연인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구요. 하지만 이차저차 이쪽저쪽 상황이 복잡해지는 건 사실이구요. <에이스> 저자의 남친 헨리가 그렇게나 ‘오픈된 관계‘를 주창하더니만 자기의 여친이었던 저자에게 일어난 일에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던 건, 의식 아래, 자신의 말 아래, 자신의 주장 아래, 도사리고 있는 원초적인 감정(출처:바람돌이님)을 모른척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처음에는 연인 관계였을 테지만, 후에는 ‘섹스 없는‘ 결혼관계였을거라 생각됩니다. 연애사를 굳이 공유했던 이유를 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경우에는 서로에게 비밀을 가졌다는 점에서, 결국 두 사람간의 계약결혼보다 더 중요한 사람, 연인이 생겼다는 것이구요. 하지만, 말이 통하는 사이였으니까요. 그만큼이라도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요.

바람돌이님이 사이먼의 고민을 이해해 주셔서 사이먼에게는 다행입니다. 저는 저 때가, 사이먼이 제일 뻘짓했을 때라 생각하고요. 물어봤어야 한다고, 고백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먼저 사랑한다 말하는 사람이 아일린이어서 저는 기분이 나쁘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화할 수 있어야 인간이죠. 바람돌이님 결론이 바로 저의 결론!!
 









샐리 루니의 화제작 『노멀 피플』보다 그녀의 데뷔작 『친구들과의 대화』가 더 좋았던 이유는 오로지 주인공 때문이었다. 나는 좀처럼 아니 도저히, 『노멀 피플』의 코넬을 좋아할 수 없었는데, 물론 마리앤에게도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화살은 주로 코넬에게로 향했다. 『친구들과의 대화』가 좋았던 건 닉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처음 샐리 루니를 읽었을 때는, 내가 느끼는 감정과 혼란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제일 정확하게는 당혹스럽다고 해야겠는데, 닉에 대한 내 감정이 그랬다. 폭력적이고 타인을 억압하는 남성은 모두가 싫어한다. 그건 여성이나 남성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을 '남성적 성향'이라고 찬양하고 숭배하는 문화에서는 물론 다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닉은 너무 가냘픈 그대여서, 유약하고 다정하며, 배려심이 가득하지만... 아, 생각만 해도 지친다. 프랜시스가 그랬다. 당신은 날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 식물은 건강하고, 깨끗하고, 활력으로 가득 차 있지만, 초식남 닉은 그냥 매가리가 없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는데 그렇게나 소극적이었다. 먼저 키스해 주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는 남자였다. 근데 내가 프랜시스가 되어 그렇게나 매가리 없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니, 소설을 읽는 내내, 다 읽은 후에도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구야.









아름다운 세상으로 돌아와서.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한데, 그래도 한 번 써보자. 아일린과 사이먼이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네가 우리를 만나러 파리에 올 예정이었는데 내가 그 뭐랄까, 네가 비행기를 타는 거며 뭐 그런 일에 대해서 걱정을 했어. 그러자 나탈리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아. 이런, 아빠의 어린 딸이 아무도 없이 혼자군. 뭐 그 비슷한 말이었어. 웃겼어. 내 말은 그녀가 농담한 것 같다는 거야.

그 순간 아일린이 두 눈을 가리며, 웃음을 터뜨리고는 말했다. 나도 얘기 하나 해줄게. 어느 날 밤 당신이 문자를 보냈는데, 마침 에이든이 내 전화기 바로 근처에 있어서 대신 그 메시지를 확인해 줬어. 누구냐고 물었더니 나한테 화면을 보여주면서 '네 아빠야'라고 하더라. (183쪽)

둘 사이의 나이 차이가 5살이니 20대 초반이라면 나이 차이가 크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언제든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는 두 사람 사이에서 '아빠 같은' 이라니. 꺼림칙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 사이먼은 아일린을 그렇게 대했다. 아일린의 남자친구도, 사이먼의 여자친구도, 사이먼이 아일린에 대해 그런 태도를 보이는 걸 알고 있었다. 여기에 sexual한 의미만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아일린의 언니 롤라가 사이먼을 험담할 때 말했듯이 사이먼은 이상한 사람이다. 하지만, 생존과 자기 보존, 그리고 보호의 의지는 당연히 sexual 할 수밖에 없다. 그게 생존의 조건, 생명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참 좋아하는 『Lucy by the sea』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루시는 인터넷 쇼핑을 못하나요. 루시는 쿠팡 아이디가 없나요. 루시는 앱카드가 없나요. 아니요, 아닙니다, 아닌데... 윌리엄은 그런 사람이다. 루시에게 필요한 걸 기억해 두었다가 사 주는 사람이다. 윌리엄이 주문해 준 겨울 코트가, 가디건이, 운동화가 맘에 든다고 크게 소리쳐 부르는 루시에게 '손 씻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물건을 담아둔 상자를 루시 대신 밖에 내다 놓는 사람이다.

젠더가 우리 삶 속에 자리 잡은 양태는 다른 어떤 사회적 양식보다 견고하고 은밀하다. 남자답다 혹은 여자답다,는 말이 주는 힘은 공기처럼 무게감 없이, 저항감 없이 우리를 지배한다. 사람들에게 여성다움 혹은 남성다움은 '규범'으로 작동하고, 그러한 규범은 자연스레 '이상화'된다. 나는 지금, 샐리 루니가, 혹은 샐리 루니마저도 '강한 남성', 나를 보호해 주는 남성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고 말하는 중이다. 나는, 아일린과 사이먼이 '아빠 같은'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편안하게 마주 보며 웃는 장면에서 그렇게 느꼈다. 아일린을 걱정하는 사이먼, 아일린이 혹시 어려움을 겪을까 안절부절못하는 사이먼. 그런 자신의 행동에 대해 들으면서 적잖이 놀라는 사이먼. 사이먼은 그런 남성이길 원하고,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하고 있으며, 아일린은 그런 사이먼의 행동을 받아들인다. 그의 보호를, 간섭을, 침입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지점은. 이것이 아일린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이먼을 위한 것이라는 데 있다.

다시 루시에게로 간다. 이 장면은 예전에 페이퍼로도 한 번 썼다. 코비드 상황에 비교적 안전한 바닷가 외딴 마을로 이사를 간 윌리엄과 루시. 간만에 두 사람이 함께 마트에 갔는데, 주차장에 혼자 남아있던 루시의 자동차 번호판을 보고 어떤 여자가 '뉴욕 사람들은 뉴욕으로 돌아가라!'라며 욕을 한다. 황망해하는 루시와 달리 윌리엄은 별다른 말이 없다. "윌리엄, 나는 누가 나한테 소리지르는 게 싫어!" 루시의 말에 윌리엄은 자기한테 소리지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답한다. 며칠이 지나 아직도 화가 안 풀린 루시가 윌리엄에게 묻는다. 당신은 심지어 그 여자가 내게 소리를 지른 뒤에도 왜 나한테 다정하게 하지 않는 거야? 윌리엄이 답한다.



나는 윌리엄이 루시를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무언가를 내놓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루시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혹 그 과정에서 자신이 겪게 될 불이익이나 불편, 혹은 바로 이전 가족에게서 멀어지는 경우까지라도. 윌리엄은 단지 그녀가 먼저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행동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윌리엄 자신이 살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코비드 때문에 루시가 죽게 된다면, 삶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살기 위해 루시를 살리려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파스텔 연분홍 펜으로 이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내가 너를 위해 뭔가 해준 적이 있다면, 그건 정말로 나 자신을 위해서였어.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거든. 게다가 솔직히 말하자면 너한테 내가 필요하다고, 너는 나 없이는 안 된다고 느끼고 싶었어. 내 말 이해하겠어? 내가 쉽게 말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네. 내가 너를 위해 해준 것보다 네가 나를 위해 해준 게 정말 훨씬 더 많다는 뜻이지. 그리고 네가 나한테 더 필요했어. 너한테 내가 필요한 것보다 나한테 네가 더 필요해. 그는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잠자코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마치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두서없이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틀린 말만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나는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무척 어렵거든. 다시 한번 그는 한숨 쉬듯 숨을 내쉬고 자기 이마에 손을 갖다 댔다. 그녀는 그를 계속 지켜보면서, 말없이 귀 기울여 듣기만 했다. 마침내 그가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겁먹은 거 알아. 그리고 네가 우리 우정에 대해 한 모든 말, 친구로 지내고 싶을 뿐이라는 말도 진심이었을 수 있어. 만약 진심이었다면 받아들일게. ... (381쪽)

사이먼도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네게 내가 필요한 것보다, 내게 네가 더 필요하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렇게 느꼈다. 다만.... 다만, 그는 너무 소극적이었고, 느렸고, 그리고 정중했으며. 이 모든 사이먼'적' 요소는 아일린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보호받고 싶은 마음이 보호하고자 하는 남성과 겹칠 때, 그 '이상화' 작업이 성공적으로 이어질 때, 그 남성이 그 수행을 성실히 해나갈 때, 나는 가끔 서로를 구원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이먼이 원하는 대로 된 것 같지만, 그건 아일린을 위한 것이고. 아일린이 원하는 그것이 바로 사이먼이 원하던 그것이었으니까. 그 수행을 허락한 사람은 아일린이니, 최후의 승자는 아일린인 것으로. 사이먼도 그 결과를 좋아할 테다.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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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5-09-11 2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전 닉 별로였는데…… 단발머리님이 좋아하신다니.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가…..

사실 두 권 읽었는데 아직 샐리 루니의 매력을 잘 모르겠어요.

루시는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읽고 더 읽어야지 하고선 잊어버리고 있었네요. 그래서 이 글은 나중에 와서 다시 읽기로…

단발머리 2025-09-13 07:34   좋아요 0 | URL
저도 닉을 좋아하는 제가 싫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깐 내 마음이 왜 이러냐구요ㅋㅋㅋㅋㅋㅋ

어느 지점에서 샐리 루니가 탁 저를 건들때가 있더라구요. 전 <노멀 피플> 읽고 한동안 안 읽어야지 했는데, 이번 책은 마음에 들어요.

나중에 다시 꼬옥~~~~~~~ 오셔야 됩니다!!

다락방 2025-09-11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단발머리 님의 이 페이퍼를 읽으니 사이먼과 닉이 비슷한가 싶기도 하네요. 물론 저는 닉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이먼이 무조건 이긴다고 보지만 말예요. 뭐에서 이기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매력?

‘생존과 자기 보존, 그리고 보호의 의지는 당연히 sexual 할 수밖에 없다. 그게 생존의 조건, 생명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라는 단발머리 님의 이 구절이 너무나 인상깊은데요, 이건 저도 좀 생각을 깊게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생존과 자기 보존 그리고 보호의 의지는 당연히 sexual 한것인가.. 음, 잘 모르겠어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건 계속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아버지처럼 아일린을 돌보는 것을 사이먼이 좋아했고 또 사이먼이 그러는 것을 아일린이 좋아햇다는 것 자체가 이들을 이어주는 거겠죠. 저는 아일린의 마음을 언제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사이먼을 사랑하고, 이 책속의 사이먼이라면 사랑하지만, 오늘 이 페이퍼를 읽고 누군가 저를 아버지처럼 돌보아주려고 한다면 어떨것인가, 를 떠올려보면, 음, 지금 한 명이 떠오르는데, 영 별로였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건 아마 그가 그라서 그랬던걸지도... 흠흠.

저는 그동안 샐리 루니의 소설을 읽으면서 어느 캐릭터도 좋아한 적이 없었어요. 저한테 매력 있는캐릭터가 아니었죠. 이번 소설에서의 사이먼을 제외하고는요. 그런데 노멀 피플에서 코넬은 성장하는 캐릭터였다고 생각해요. 전 그 지점에서 노멀 피플이 좋았어요. 처음의 코넬과 나중의 코넬은 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거든요. 이번 소설에서도 그래요. 어릴 적의 펠릭스는 형편없었죠. 지금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그 때 형편없었다는 걸 인지하고 죄책감을 갖는 어른이 되었잖아요.

오늘 이 페이퍼 읽으니 저도 어쩐치 친구들과의 대화를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단발머리 님이 좋아하신다하니 닉에 대해서도 좀 달리 보일까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책은 읽으면서 제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가지고 ㅠㅠ 다른 사람들도 함께 있는데, 어쨌든 저 방에 있고 저 방에 있고 그런데 유부남하고 섹스하는 장면 같은거 제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가지고요 ㅠㅠ

소중한 페이퍼 감사합니다. 이 책은 참, 계속 사람들을 글쓰게 하는 책이네요!!

단발머리 2025-09-13 08:01   좋아요 1 | URL
섹스를 성행위를 넘어서는 범위로 볼 수 있다는게 제가 읽었던 ‘섹스‘ 관련 책에서의 결론인데, 이걸 제가 잘 표현을 못하겠네요. 제가 이해한 바로는.... 뭔가를 하게 하고, 하고 싶게 하는(욕망, 욕구, 정동을 포함한) 그 모든 걸 섹스라는 범주 속에 넣을 수 있다고 보는 거거든요.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람을 만났을 때, 내가 그 사람을 발견했을 때 (이건 그 사람이 그걸 알아챘느냐 혹은 알아채지 못했느냐와 상관 없이요)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동요. 저는 이거 자체를 섹슈얼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동성일수도 이성일 수 있겠지요. 제가 앨리스의 말을 그대로 가져올게요.

그러니까 섹스란게 대체 뭐야? 나한테는 실제로 사람들과 성관계를 갖지 않아도 그들을 만나고 그들에 대해 성적인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평범한 일이야. 아니, 더 중요한 것은, 심지어 그들과 성관계를 갖는 것을 상상할 생각조차 하지 않아도 그렇다는 거야. 이것은 섹슈얼리티에 성행위에 관한 것이 아닌, 어떤 ‘다른‘ 개념이 포함된다는 것을 암시해. 우리의 성적 경험의 대부분이 이런 ‘다른‘ 개념의 영역일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이 다른 개념은 무엇일까? 그러니까 내가 펠릭스에게(그나저나 나를 육체적으로 건드린 적조차 없는 이 사람에게) 느끼는 것,우리의 관계를 성적인 관계라고 여기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 113쪽)

저는 옆방에서의 유부남과의 섹스는 진짜 별로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압도적인 잘생김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았다. 닉의 얼굴은 아주 일반적인 의미에서 잘생겼다. 깨끗한 피부, 두드러진 뼈대, 약간 부드러워 보이는 입. 하지만 미묘하고 지적인 표정이 잘생김을 압도하는 것 같았고, 그래서 그와 눈이 마주치면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닉이 나를 바라보면 나는 그에게 약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과의 대화>, 58쪽)

다락방 2025-09-13 09:45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 님이 읽으셨다는 그 섹스 관련 책에 대한 공유 부탁드립니다. 저도 읽고 깨닫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제가 이미 가진 책일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단발머리 2025-09-13 10:49   좋아요 0 | URL
그런 책이 여러권이긴 한데요.
일단 <섹스할 권리>, <왓이즈섹스> 그리고 <에이스>요. 푸코의 <성의 역사>도 맞기는 한데 제가 거기까지는 닿지 않고요 ㅋㅋㅋ 지금 외출하는 길이라 돌아와서 간단 페이퍼 써볼게요. 🤗

바람돌이 2025-09-11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루시는 인터넷 쇼핑을 못하나요? 쿠팡 아이디가 없나요?라는 대목에서 막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집 남편이 다 못하고 다 없어서 쿠팡 아이디오 제걸로 폰에 넣어주고 이제 제발 나한테 사달라고 하지만했거든요. 그래서 남편이 뭘 사든지 저한테 바로 문자옵니다. ㅎㅎ 우리집에서는 윌리엄이 하는 역할을 제가 하는거같군요. 그럼 아빠 마음 아닌 엄마 마음? ㅋㅋ

샐리 루니의 작품을 이 한 작품 밖에 안 봣는데 어쨌든 이 소설에서는 강한 남성, 여성을 보호해주는 남성이라는 젠더 역할 고정에 빠져있다는데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런 앨리스와 펠릭스의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돈도 더 잘 벌고 더 똑똑한 앨리스지만 결국 앨리스를 구원하는건 펠릭스거든요. 심지어 앨리스와 아일린의 갈등에서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중재자의 역할을 하죠. 펠릭스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가 구체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상태에서도 펠릭스는 넷의 관계에서 가장 객관적인 조정자의 역할을 합니다. 다 모자란데 약물중독자인 펠릭스는 안 모자라요. 심지어 약물중독인데도 말이죠.

어쨌든 연애나 결혼이라는 것은 사실 둘 사이의 문제이고 둘이 캐미가 어떻게 맞느냐 하는거죠. 서로가 맞으면 뭐가 문제겠어요. 아마 아일린과 사이먼은 저 사이먼이 돌봐주는 역할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는 한 둘이 행복할겁니다. 하지만 저런 관계를 사실 저는 예전에 한번 본적이 있는데요. 문제가 생기더라구요. 아이요. 아들이 크면서 엄마를 똑같이 지가 돌봐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아빠와 자기를 동격화해요. 그게 다른 생활에서는 굉장히 타인을 자기 생각대로 휘두르려고 하는 걸로 나타나더군요.

뭐 산다는게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없을 수 없지만 그래도 사이먼과 아일린은 아직은 어울리고 둘이 행복해져서 일단은 다행입니다. 그 뒤는 뭐 둘이서 알아서 할 문제죠. 그쵸.

단발머리 2025-09-13 10:51   좋아요 0 | URL
<노멀 피플>에서도 앨리스, 펠릭스와 비슷한 구성의 남녀가 나오거든요. 거기에서도 여주가 남주보다 돈이 많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위력은 어마어마하니깐요. 연약하고 유약한 여주는 남주의 접근을, 친밀함을, 사랑을 기다리죠. 앨리스는 대놓고 내가 널 좋아한다... 너에게 빠졌다... 이렇게 말하잖아요. 저는 나름 펠릭스라는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는데, 좀 위축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안 그래요. 그게 20대의 치기인지 20대 남성의 특징인지 저는 잘 모르겠고요.

저는 사이먼이 아일린을 돌봐주는 역할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을 거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 아이 낳고 아일린 돌변! 사이먼 왈. 나는 왜 맨날 혼나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구성, 이런 미래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너무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같이 읽고 같이 쓰는 기쁨을 바람돌이님과 나누는 이 시간이요!!!

다락방 2025-09-13 0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 영어로 아직도 절반 밖에 읽지 못했다는 사실을 굳이 알려드립니다..

단발머리 2025-09-13 08:07   좋아요 0 | URL
저는 반 정도 왔는데요. 일단 이메일 저도 건너뛰기로 결정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했음을 굳이 알려드립니다.

다락방 2025-09-13 09:44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 님의 이메일 건너뛰기에 저도 편승함을 굳이 알려드립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9-13 10:50   좋아요 0 | URL
제가 다락방님을 따라 이메일을 건너뛰고 있음을 재차 확인드립니다🫣

독서괭 2025-09-24 21:52   좋아요 1 | URL
😂😂😂😂😂 저도 읽지않고 보기만 했음을 고백합니다…

독서괭 2025-09-24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가리없는 닉 ㅋㅋㅋㅋㅋㅋㅋㅋ 빵 터졌네요 ㅋㅋㅋㅋㅋ 매가리없..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9-26 18:50   좋아요 1 | URL
매가리가 없어요, 그 사람이 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내가 좋아했으 ㅋㅋㅋㅋㅋㅋㅋㅋ 매가리 하나 없는 닉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이 책을 샀다고 생각했다. 혹은 집에 이 책이 있다고 생각했다. 8월 초에 독서괭님 서재에서 글자 크기 관련 이슈가 있어서, 하드커버로 사야겠다 생각하고 장바구니에 책을 담아 두었더랬다. 그러다가, 아마존에서 이북을 저렴하게(1.91달러) 판매하기에 킨들도 가지고 있겠다, 그냥 구입해 버렸다.

다락방님의 페이퍼를 읽고 난 후에, 책을 이리저리 돌려보던 중..... (이북도 슥슥 넘겨볼 수 있습니다, 물론 한 쪽씩이지만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어느 페이지에선가 느껴지는 이유 있는 기시감.

이 문장을 읽었던 것이다.

이 책을 샀던 것이다.

이 책은 집에 있었던 것이다.

아닌데...... 이틀을 찾았는데, 분명 없었는데. 알라딘 구매 내역에도 교보 구매 내역에도 없었는데. 비밀 창고 <사 놓고 아직 안 읽은 영어책>에도 없었는데... 그럼 이 책은 지금 어디에.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하여, 지난 주말은 땀을 뻘뻘 흘리며 책장 뒤쪽까지 샅샅이 뒤져보는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찾. 았. 다. 이 책을. 내 책을. 샐리 루니를. 뷰티풀 월드를. 이 책을 보고 나서야, 나는 이 책을 교보문고에서(알라딘에서는 판매하지 않는 표지), 책을 너~~무 많이 사 주는 친구가 선물해 준 책임을 알게 됐다. 그랬다. 그랬던 것이다.


이북이랑 나란히 두고 사진을 한 장 찍는다. 킨들이 꼭 컬러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표지는 컬러가 예쁘고. 힘겨운 숨박꼭질 끝에 책을 찾아냈지만, 내가 읽는 책은 이 책이다.









이 페이퍼 왜 썼냐면.... 다음 페이퍼 진지할 예정이어서. 그래서 썼다. 그래도 좋아하는 문단은 하나 적어 두자. 너무 많은데.... 제일 좋아하는 문단은. 아니 그 중에 하나는 여기.

꼭 물에 빠진 생쥐 같아. 가자. 그는 자매가 함께 걸어가게 했다. 그는 말없이 자전거 바퀴만 쳐다보면서 기도했다. 하느님, 저 애가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시옵소서. 제가 무슨 일이든 다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다. 간절히 바랍니다. (290쪽)

새벽의 기도, 잠들기 전의 기도. 하나님, 저 애가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세요. 저 애의 삶을 축복해 주세요. 행복하게 해주세요. 제게 주시려고 하는 좋은 것이 있다면, 하나님... 그걸 저 애에게 주세요. 저 애에게, 그 좋은 것을 주세요.


저 애에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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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9-10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술을 부르는 문장이네요. 세상에, 저렇다니까요.
(인용해주신 문장에 새벽 세시가 떠올랐는데 이건 나중에 기회되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다음 페이퍼, 진지한 다음 페이퍼를 내놓으시죠. 기다리기 초조합니다. 얼른 내놓으시죠.

단발머리 2025-09-10 17:31   좋아요 0 | URL
초조한 심정이야 십분 이해갑니다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바쁩니다. 일단 청소기 한 판 돌리구요.
커피 한 잔 때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오늘은 안 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9-10 17:52   좋아요 1 | URL
네?? 오늘은 안된다고요? 😭

단발머리 2025-09-10 19:52   좋아요 0 | URL
네네네~~ 차분히 마음 가라앉히시구요. 저 좀만 더 사이먼 만나고요. 아일린하고 진지한 대화 좀 나눠보고요. 앨리스 왜 그런지 좀 들어보고. 펠릭스하고도 시간 좀 보내 보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망고 2025-09-10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노멀피플만 읽었는데 좋은 인상을 못 받아서 이 작가는 다 패스했는데 요즘 서재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한권 더 읽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어요 😆

단발머리 2025-09-10 19:53   좋아요 1 | URL
저도 노멀피플은 별로였어요. 지금 이 책이 좋아서 ㅋㅋㅋㅋㅋㅋㅋ참 좋아라 하고 있습니다.
망고님도 컴온!!

바람돌이 2025-09-10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가끔 생기는 일이죠. 자책하지 마세요. 책을 사다보면 뭐...
사이먼의 사랑이 저 때부터 꼬이는거죠. 저건 사랑하는 남자의 기도가 아니라 아빠의 기도 아닌가요? ㅎㅎ

단발머리 2025-09-10 19:54   좋아요 1 | URL
아주 잘 되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이먼의 사랑이 저 때부터 꼬이죠 ㅋㅋㅋㅋㅋㅋ 근데 저도... 남사친 아닌 애인 아닌 어떤 사람을 위해 저렇게 기도했다는 거 아닙니까? 엄마도 아니면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5-09-10 21:14   좋아요 1 | URL
오 그럼 이번 페이퍼에는 엄마기도 얘기도 나오는겁니까?

단발머리 2025-09-10 21:28   좋아요 0 | URL
아니요~~~~~~~ 엄마는 날라리 신자라서 기도 많이 못 하는 엄마입니다. 주님, 용서해 주소서~~
이번 페이퍼의 주인공은 사이먼이죠. 아니, 아일린. 아니 사이먼. 아니네요. 아일린.........

다락방 2025-09-10 21:34   좋아요 1 | URL
아일린이든 사이먼이든 둘다이든 어서요, 어서!!

단발머리 2025-09-10 21:37   좋아요 0 | URL
워워~~ 싱가폴은 8:36분이죠?ㅋㅋㅋㅋㅋㅋㅋㅋ우린 9:36분이에요~~ 일단 기다려 보시고요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5-09-24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제 봤네요.! 무려 네권의 책이 좌르륵? ㅋㅋㅋ 다 달라서 보는 맛이 있군요 ㅎㅎ 단발님에게도 산책어플이 필요합니다. 있어도 안 쓰는 다.. 님이 있다는 건 안비밀.

단발머리 2025-10-16 09:57   좋아요 1 | URL
에궁 ㅋㅋㅋㅋㅋㅋㅋ 이 댓글 지금 봤어요. 알라딘에서 놀다가요 ㅋㅋㅋㅋㅋㅋ 산 책 어플 뭐 쓰시는지 알려주고 가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기에다 놓고 가세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5-10-16 11:36   좋아요 0 | URL
산책어플은.. “산책”어플 쓰는디요 ㅋㅋㅋ
 
















샐리 루니를 두 권 읽었다. 첫 번째는 『친구들과의 대화』였고, 두 번째가 『노멀 피플』이었는데, 『친구들과의 대화』를 더 좋아한다. 첫 번째 샐리 루니를 읽고는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런 여주와 남주를 본 적이 없어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두 번째 샐리 루니를 읽고서는 불쾌하다는 감정이 주요했기에 한동안 샐리 루니는 읽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했다. 세 권의 샐리 루니 중에 나는 이 책이 제일 좋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을 것 같다. (나는 항상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둥지 비기 전에 먼저 떠나왔으나 빈둥지 증후군 유사 증세를 호소했던 사람답게 아일린의 엄마 메리와 아일린의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딸에게 자신의 인생을 토로하는 엄마에 대해 쓸 수 있겠다. 앨리스가 펠릭스에게 아일린을 소개하는 장면도 그렇다. 예쁘다는 것에 대해 앨리스가 아일린에 대해 설명하는 문장 사이사이에서 느껴지는 뾰족함에 대해서도.

앨리스와 아일린 두 사람의 이메일에 대해서도 쓸 수 있겠다.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앨리스와 아일린은 두 사람이라기보다는 한 사람이다. 한 사람의 내면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말을 건다. 서로에 대한 편지는 물음과 답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두 사람의 말은 동시적이지 않고, 당연히 그 사이에는 시간성이 존재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내가 좋아했던 알라딘의 '먼 댓글' 기능이 생각난다. 질문에 대한 답이고, 답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겠지만, 결국 서로에 대한 완벽한 이해나 그 이해를 통한 '합의된 의견'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제 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혼자 말할 뿐이고, 듣는 사람은 후에 듣고, 나중에 듣는다.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일부만 이해한 경우라도 매우 희귀한 경우다. 들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중요한 건 오직, 말하는 것이다. 특히, 1976년, 플라스틱 상용화에 대한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나는 작가가 이렇게 전면으로 나서서 특정 사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는 소설을 좋아한다. 그려내는 배경, 전하고자 하는 감상이 모두 작가의 것이겠지만, 작가의 생각을 읽을 때 특히나 좋다.

하지만 제일 먼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역시나 아일린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영어로 챕터 9까지 읽었고, 한글로 앞부분을 다시 읽었다. 한글책으로는 챕터 10까지 읽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아일린은 챕터 10까지의 아일린이다.





그가 그녀를 보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오자, 그녀는 의자를 발로 차며 그가 자신이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내 평생에 딱 한 사람이라고요.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식구들은 내가 당신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더니, 이제 당신은 가려고 해요. 죽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반쯤 열린 문을 등지고 서 있었다. 조용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아일린, 그런 말 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내가 약속할게. 너랑 나는 우리의 남은 평생 동안 친구로 지낼 거야. (39쪽)

내가 이해하는 아일린, 더 정확히 챕터 10까지의 아일린에게 사이먼은 전부다. 성을 sex로만 이해하지 않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 수 있게 하는 그 무엇이라고 할 때, 15살의 아일린에게 사이먼은 가장 성적인 존재다. 이때 15살의 아일린은 사이먼을 상대로 로맨틱한 감정을 상상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의 아일린, 15살의 아일린에게 사이먼은 살아갈 수 있는 이유, 유일한 이유가 되는 사람이다.

5살 혹은 6살의 자아라면, 내가 좋아하는 동네 오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커서, 오빠랑 결혼할 거야. 하지만, 15살의 자아는 이렇게 말할 수 없다. 오빠를 좋아한다고도 말할 수 없고, 가지 말라고도 말할 수 없다. 15살의 자아는, 15살처럼 말한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요.

아일린의 이 절박한 외침에 사이먼이 응답한 필요는 없다. 그는 모범생답게 모범답안을 말한다. 너랑 나는 우리의 남은 평생 동안 친구로 지낼 거야. 사이먼의 이 말이 아일린에게 위로가 되었을지 혹은 상처가 되었을지 잘 모르겠다. 예언이 되었을지 저주가 되었을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냥 아일린의 간절함이 뭔지 알 것 같다. 15살짜리가 '내 평생에'라고 말할 때, 15살의 치기로 여겨질지도 모를 이 상황 속 아일린의 그 마음을 나는 쪼금 알 것도 같다. 그래서 괴롭다. 이 소설은 좋은 소설이 맞다. 나는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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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9-09 1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서 우리는 서로 다른 이유로 괴롭네요. 그러나 괴롭게 하는 것이 좋은 소설이라고, 저 역시도 생각합니다. 저는 얼마나 괴로웠던가요. 저는 열다섯의 아일린보다 스물아홉 아일린에 더 아파했습니다. 저 말, 우리는 남은 평생 친구가 될거라는 사이먼의 저 말은 그 말을 들었던 바로 저 당시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의미를 갖게 된 말일거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순전히 제 입장에서 아일린이 되어본 후에 말이지요.
사이먼은 열다섯 아일린에게 전부였죠. 아 저도 갑자기 괴롭습니다.

역시 같은 책을 읽으니 너무 좋네요. 단발머리 님의 감상을 볼 수 있어 너무나 좋습니다.

참고로 저는 노멀 피플-친구들과의 대화-아름다운 세상 순으로 읽었는데, 처음 노멀 피플 읽었을 때는 별로였거든요? 그런데 여러분과 영어로 다시 읽었을 때, 그 때는 노멀피플이 확 좋아졌었어요. 결국 저는 샐리 루니를 계속 읽자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 아름다운 세상도 참 좋아서요. 플라스틱 부분도 그렇지만-친구들끼리 이런 대화를 하다뇨!- 저는 언급했지만, 어릴 적에 철 없을 때 저질렀던 잘못을 끌어안고 사는 대화에 대해서도 그랬어요. 그 부분도 아팠습니다.

단발머리 2025-09-09 17:00   좋아요 0 | URL
완전 동의합니다. 괴롭게 하는 것이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저도요. 좋은 기억과 아픈 기억 모두요.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담을 수 있는 게 바로 소설이구요. 저는 <패니와 애니>를 생각할 때, 가슴 한 쪽이 찌릿하거든요. 그 소설을 읽을 때의 감정이 제목을 생각만 해도 소환되구요. 그런 의미에서 <친구들과의 대화>는 참 좋은 소설이구요. 읽으면서 괴로웠던 이유가, 제가 닉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걸, 전 한참 뒤에야 알았어요. 나는 막.... 매달리고 싶었거든요.

이 소설도 참 좋구요. 저는 세 권 중에는 이 책이 제일 좋아요. 전반적으로 개새인줄 예상되었던 사이먼이 나름 괜찮은 사람이어서 그럴까요? 물론 쥐어 패주고 싶은 순간은 있구요. 사이먼, 아일린한테 잘 하자~~~~~~~~

수이 2025-09-09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은 제가 먼저 휘릭 ㅎㅎ

단발머리 2025-09-09 17:02   좋아요 0 | URL
왜요~~~~~~~~~~ 왜, 왜, 왜~~~~~~~~~~~ 왜케 빨리 읽어요~~~~~~~~~~~~~~~~~~~~~~~

바람돌이 2025-09-09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한글로 이 책 읽고있는데 영어로ㅜ읽기 문장들이 쉽지 않을거 같던데요. 훌륭하셔요 다들. 조금 생각해보니까 영어로 책을 읽으면 직관적으로 문장이 들어오지 않으니 느리지만 계속 한 문장 한 문장을 보듬듯이 읽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독서도 괜찮겠다 싶어지네요. 물론 제가 하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누누히 말했지만 영어 울렁증이 극심해서.... ㅠㅠ

저도 아일린이 엄마 메리와 얘기하는 장면에서 깜짝 놀랐어요. 엄마 메리 때문에... 와 무슨 엄마가 그렇게 귀찮다면 잊어버려 하면서 전화를 끊나요? 소설 초반에 저는 아일린이 사이먼을 대하는 태도를 이해하기 좀 어려웠는데요. 아일린의 가족관계를 보면서 점점 이해가 가요. 아일린에게 사이먼은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이고 나를 있는 그대로ㅠ인정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두변이도 그게 보이죠. 사이먼을 아일린의 아빠라고 부르잖아요. 이런 결핍은 보통 이상 집착을 가지게 되는게 맞는거같아요. 연인이나 부부로 나아갔을 때 유일한 지지다를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좀 이하가 되더라구요. 사이먼은? 돔 더 읽고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이 책 읽으면서 저는 괴롭지는 않고, -아마 나이가 너무 먹어서겠죠-좀 신선하게 읽고 있어요. 젊은 세대가 결혼과 섹스, 연애에 대해서 느끼는 불안 이런게 좀 흥미롭게 읽혀요.

단발머리 2025-09-09 19:02   좋아요 1 | URL
저는 영어로 읽다가 얼른 읽고 싶어서 한글로 읽는데.... 놀라운 일입니다. 한글로도 빨리 안 읽혀요. 아~~~~~~

아일린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주는 사이먼에게 집착하지 않기 위해, ‘쿨‘하기 위해 아일린은 얼마나 애쓰는지요. 이 부분이 바람돌이님이 위 댓글에 적어주신 결혼과 섹스, 연애에 대해서 느끼는 불안이라고 느껴져요. 당연한 것으로 알고 연애하고 연애하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아이를 낳았던 대부분의 과거 세대 사람들과는 구별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되구요. 소설 자체에서 젊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서, 제가 좀 늙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많습니다. 하하하.
바람돌이님과 감상 나눌 수 있어서 좋아요~~ 바람돌이님의 페이퍼도 기다려집니다!!!

바람돌이 2025-09-09 17:27   좋아요 1 | URL
저는 지금 막 다 읽었습니다 ㅎㅎ

단발머리 2025-09-09 17:28   좋아요 1 | URL
227쪽이라고요!!! 😟😣🥺🥵🫣

바람돌이 2025-09-09 17:53   좋아요 1 | URL
스포일러를 잔뜩 넣어서 페이퍼를 쓸지도 모릅니다. ㅋㅋ 나는야 심술돌이 ㅋㅋ

다락방 2025-09-09 20:47   좋아요 2 | URL
와 두 분의 댓글이 오늘 저를 또 찌릅니다. 책 읽다가 아일린 보면서 괴로웠는데 여러분 댓글에 또 괴로워집니다. 네, 맞습니다. 사이먼에 대해 집착하지 않으려고 쿨하기 위해 애를 쓰는 거요. 제가 딱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집착할까봐, 집착하는게 들킬까봐 어찌나 쿨하려고 노력했었는지. 그러면서 속으로 끙끙 앓고요. 사람은 사랑 앞에 쿨할 수 없습니다. 쿨하려고 애를 쓰고 쿨하게 보이려고 가장할 순 있어도 정말 쿨할 순 없어요. 그러니 쿨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런 모습을 아일린에게서 보고 저를 보는것 같아 괴로웠는데, 여러분이 그걸 구체적으로 딱 말씀해주시네요. 하- 이 책이 저를 너무나 여러번 찌르네요. 책 읽으면서도 찔리고 여러분의 댓글로도 찔리고. 독서란 무엇이란 말입니까!

영어로 읽는데 진도 너무 안나가고요 특히 이메일 부분은 대환장 입니다. ㅎㅎㅎㅎ

바람돌이 님의 페이퍼도 기다리겠습니다.

바람돌이 2025-09-09 18:32   좋아요 1 | URL
이런 다락방님의 마음이 뭔지 너무 다가와서 좀 찔립니다. ㅎㅎ 연애할 때 우리 다 그럴걸요?

단발머리 2025-09-09 22:12   좋아요 1 | URL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요. 그 사람과 헤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저도 그게 맞다고 보거든요. 너 아니면 안 된다.... 나는 너 아니면 안 돼... 이건 아니잖아요. 그럴 수 없고요.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나는 너여야만 한다고. 나한테 필요한 건 너 뿐이라고요. 인간의 대체 불가능성을, 그 독특함을, 다른 어떤 것으로, 다른 어떤 사람으로 대신할 수 없잖아요. 그리고 동시에 내가 그 사람에게... 그런 사람이 되길 원하고요.

근데 왜!!!!!! 저는 한글로 읽는데도 빨리 못 읽냐고요~~~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님 만석입니다. 페이퍼 서둘러 주세요!

독서괭 2025-09-09 22:05   좋아요 0 | URL
이메일 대환장.. 제말이 그말입니다…
대화에 끼고 싶다.. 지금 좀 취한 채 집에 가는데 막 주정부리듯 끼고 싶네요 ㅋㅋㅋ

다락방 2025-09-09 22:10   좋아요 0 | URL
얼른 끼어들어요, 독서괭 님!!

단발머리 2025-09-09 22:13   좋아요 0 | URL
독서괭님, 컴 온!!!!

그레이스 2025-09-09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나이 모든 시점에서 사랑은 전부이니,,, 사이먼의 말은 상처가 되었겠죠. 시간이 흐른 뒤 달라질지 모르지만!^^

단발머리 2025-09-09 21:17   좋아요 1 | URL
시간이 흐른 뒤에 달라져야 한다고........ 이 연사 강력하게 부르짖습니다!!!!!!!!!!!

책읽는나무 2025-09-09 22: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샐리 루니. 종종 느꼈지만 이번 댓글에서도 한글 번역서 책이라도 읽고 싶은…
궁금한데…한글 번역서도 진도가 안 나간다구요? 뭘까요?ㅋㅋㅋ

바람돌이 2025-09-09 22:47   좋아요 2 | URL
여자 주인공 둘이 이메일로 소통하는게 그 이메일이 무지 길어요. 수다를 있는대로 떠는데 그냥 자기가 관심있는 책, 정치, 환경 뭐 이런걸 중구난방으로 얘기해요. 그러다가 결국은 연애고민 상담으로 끝나는.... 전 이메일은 업무용도로밖에 써본적이 없어서 참 당황스럽달까요? ㅎㅎ 하여튼 대학 토론하듯이 이메일을 씁니다. 그래서 진도가 안나가요
그리고 이 작가 특징인거 같은데 대화 따옴표를 안쓰요
그래서 이거 누가 한 말이지 자꾸 신경써서봐야하는... 그래서 가독성이 떨어집니다.

다락방 2025-09-09 22:57   좋아요 2 | URL
책나무 님, 이참에 한 번 이 책으로 도전하시죠!!

단발머리 2025-09-09 23:02   좋아요 1 | URL
우아~~ 바람돌이님 설명 완전 요점만 똭똭! 저는 그 부분이 힘들었어요. 누구 말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상형 문자 미스테리, 플라스틱 이야기는 흥미롭구요.

책나무님, 저희랑 같이 가시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5-09-10 10:58   좋아요 2 | URL
ㅋㅋㅋ
이렇게 또 팔랑귀 소지자는 팔랑팔랑…
한국 소설 읽기의 해가 좀 빨리 저물고 외국 소설로 바로 넘어가겠군요.ㅋㅋㅋ
샐리 루니.✍🏻
아름다운 세상이여..✍🏻✍🏻
일단 제목 기억했습니다.
이메일 부분은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그리고 따옴표!✍🏻
저는 따옴표가 있어도 한 번씩 누가 한 말인지 다시 앞 뒤 문장 찾아 읽느라 혼자서 바쁜데..
이게 완전 홀로 미스테리로 남겠군요.ㅋㅋ
그리고 사랑 부분..더 집중해서…✍🏻✍🏻

대충 댓글들을 읽어보곤 있는데 대충 알 것도 같은데 누가 누군지 막 헷갈리고..책을 읽지 않아서인지 정확도가 떨어져서…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하고.ㅋㅋㅋ
근데 친구끼리 이메일로 상형 문자 미스테리, 플라스틱 환경 이야기가 가능하다니…
애들이 참 똑똑한 친구들이로군요.
저는 메일을 거들떠 보질 않아 한 번 들어가 보면 죄다 광고, 스팸 메일 위주던데…
애들이 참.^^

단발머리 2025-09-13 08:59   좋아요 1 | URL
책나무님~~ 메모 열심히도 하셨어요. 알라딘 서재 노트왕으로 임명합니다!!
같이 읽으시면서 댓글 읽으시면 훨씬 더 재미있고요. 또 글 쓰시면 책나무님 버전 샐리 루니를 만날 수 있어서 저도 좋아요!
얼른 들어오세요, 컴온 컴온!!!!!!!!!!

독서괭 2025-09-09 2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일린같이 사랑하지 않아서인지 많이 이입은 못했어요. 전 그냥 좋으면 좋고 결혼까지 생각하는 사람이라 ㅋㅋㅋ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 너무 좋은 사람이라 친구로 남고 싶다? 그정도로 좋은 사람을 못 만난 건지 몰라도 암튼 저는 남자는 남자로 만나는 게 좋더라구요ㅋㅋㅋ
전 펠릭스가 인상적이었는데 육체노동자 펠릭스와 달리 다른 세사람은 내가 이 세상에 무슨 쓸모가 있는가 고민하는 지점이 재밌었어요. 펠릭스가 질문을 막 직접적으로 해서 무례해보이기도 하는데 그덕에 다들 가까워진 것 같기도 하고~

다락방 2025-09-09 22:56   좋아요 1 | URL
조금 다른 지점이긴한데 저는 펠릭스가 인상적이었던게 코로나 상황에도 계속 일하려고 하잖아요. 여자친구가 돈이 그렇게 많다는거 알면서도 자기는 자기가 할 수 있능거 계속하는게 당연한것 같아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데 굉장히 자존감 있달까요? 여자친구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친구가 쓴 책엔 딱히 관심 없어서 안읽음 ㅋㅋ 그 지점이 독특하더라고요.

단발머리 2025-09-09 23:06   좋아요 0 | URL
독서괭님/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 너무 적절한 선곡이었습니다. 저 역시 좋은 남사친 없어서 말이지요. 그 세계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구요. 펠릭스에 대한 부분, 저도 동의합니다.

다락방님 / 여자친구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그 책에 딱히 관심 없어서 안 읽음 ㅋㅋㅋㅋㅋㅋ대목에 빵! 터졌스빈다.

독서괭 2025-09-09 23:06   좋아요 0 | URL
ㅋㅋㅋ맞아요. 근데 앨리스가 그점에서 펠릭스를 편안해 할 것 같아요. 사람들이 작가의 글만 보고 작가를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얘기했었는데, 펠릭스는 그럴 걱정이 아예 없으니까! 자기를 더 있는 그대로 보는 느낌?

다락방 2025-09-09 23:31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유명한 작가고 그 작가의 책 읽었다고 그 작가에게 뭐가 더 나은지 자기들이 충고하려 하는데 펠릭스에겐 앨리스의 책이 안중에도 없으니 그래서 더 편할 것 같아요. 그 지점에서 가장 많이 끌린게 아닐까 싶어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 나를 그냥 나로 대하는 사람이요.

단발머리 님/펠릭스는 그냥 무독서자 입니다. 책 따위 걍 안읽는 사람, 아무리 여자친구가 작가여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9-13 09:02   좋아요 0 | URL
여기 마지막 두 댓글. 독서괭님과 다락방님의 댓글이 다락방님 데이팅앱 페이퍼와 만나는 거 같아요. 앨리스가 펠릭스를 편안해 할 수 있는건 책을 안 읽으니깐 그렇다는 말이잖아요. 근데 어떻게 펠릭스가 그럴 수 있는가. 아예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니깐요.
책읽기, 고전, 작가에 대한 로망이나 환상은 어디까지나 글을 읽는 사람들,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만 한정되니까요. 그런 환상이 아예 없음이요. 책을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으니깐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에게 사람들은 끌리나 봅니다. 하지만, 나중에 보면 그게 부부싸움의 제1원인이며 ㅋㅋㅋㅋㅋㅋㅋ
 















『Lucy by the sea』는 2022년에, 한글판 『바닷가의 루시』는 2024년에 출간되었다. 내용 중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도 쓰려고 해서 스포일러 싫어하시는 분이시라면, 이 글의 패쓰를 권한다.










『오, 윌리엄!』에서 윌리엄은 71세, 루시는 7살 어리니깐, 64세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들의 가족이 살고 있는 뉴욕에까지 퍼지려는 상황. 윌리엄은 두 딸에게 뉴욕 탈출을 권고 및 지시한다. 그리고 자신은 루시와 함께 북쪽의 메인 주로 이사한다. 당시의 상황이라면, 전 세계가 모두 처음 겪는 일이었고, 그 진행과 변화의 과정이 역동적이어서 사람들은 그들의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게 될지 알지 못했지만, 대학교수이자 과학자였던 윌리엄은 상황을 간파하고 있었다.

나름 환경이 안정화되고 있을 무렵, 일이 생긴다. 첫째 딸인 크리시와 남편 마이클은 마이클의 부모가 살고 있던 집으로 이사한 상태였는데, 플로리다에서 골프를 즐기던 마이클의 부모가 골프가 지겨워서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당연히 가져야 할 '자가 격리' 시간을 무시한 채, 아들, 며느리와 행복한 시간을 기대하며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마이클의 아버지. 크리시를 통해 상황을 듣게 된 윌리엄은 마이클의 아버지와의 전화 통화를 시도하지만, 연결이 되지 않는다.

마이클의 부모가 그들의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한 그 바로 전날, 윌리엄은 루시에게 다음날 마이클 부모의 집으로 함께 가자고 말한다. 사위인 마이클이 천식을 앓고 있는데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마이클의 아버지를 직접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크리시는 변호사이고, 마이클은 뉴욕 금융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긴급하고 중요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70대의 아버지가 나선다. 유력한 변호사인 마이클의 아버지가 아들의 말을 진중하게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윌리엄의 끈질긴 권유와 약간의 협박을 더해 마이클의 아버지는 다른 장소에서 2주를 보내기로 한다. 그 기간 중에 마이클의 부모 두 사람 모두 코로나에 감염된 것이 밝혀져 마이클의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한다. 말 그대로, 윌리엄이 마이클을 구한 것이다.

두 딸 모두 결혼을 해 새로운 가정을 이뤘음에도 윌리엄은 자녀들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데, 이와 비슷하게 루시는 두 딸들에 대한 정서적인 지원을 계속해왔다. 한편으로 두 딸들과의 이러한 끈끈한 접합은 루시에게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서로 간의 직접적 접촉이 불가능해졌을 때, 눈앞에 닥친 혼란과 어려움에 힘들어하면서 루시의 두 딸은 그제야 비로소 루시에게서 독립을 하게 된다. 심정적으로 더 이상 엄마에게 기대지 않게 된다. 결혼 생활의 큰 변화와 부침 속에서 두 딸은 울고, 절망하고, 슬퍼하지만, 그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서서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간다.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지만, 이것에 대해 루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루시는 결국 이 상황을 현재의 상태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나는 잠시 서서 아이들이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이들이 아이들의 삶이 내가 기대한 것과 지금 얼마나 달라졌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아이들의 삶이라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고, 혹은 필요한 대로.

그리고 나는 예전에 내가 크리시를 가졌을 때 내 커진 배를 내려다보며 그 위에 손을 얹고 이렇게 생각한 것을 떠올렸다. 네가 누구든 너는 내 소유가 아니야. 내 일은 네가 세상에 나오는 걸 돕는 것이고, 너는 내 소유가 아니야. (『바닷가의 루시』, 369쪽)

이 책을 반복해서 여러 번 읽으면서 내 감상은 그랬던 것 같다. 아니, 다 큰 자식들이 변호사이고, 사회 활동가이고, 둘 다 결혼했는데, 왜 루씨는 이렇게 두 딸에게 집착하는 걸까. 루시가 '그래, 이건 아이들의 삶이야.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하면 돼.'라고 말했을 때, 너무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요,라고 생각했더란다. 내 이야기는 아니고, 내 경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욕망해도 괜찮아』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사춘기 자녀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주위의 가정을 돌아보면서 저자는 생각했더란다. 부모가 좋은 사람들인 것 같고,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실은 저 가정에 말 못 한 무슨 사정이 있는 거라고. 그래서 가정 내에, 혹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갈등이 있는 거라고. 저자가 그 생각이 틀렸음을 확인하게 된 건, 그의 딸이 사춘기에 돌입했을 때다. 그게, 그게 아니었구나. 꼭 그래서 그랬던 게 아니었구나.

큰아이가 한국 나이 4살이었을 때, 백화점 6층 한쪽 모퉁이의 장난감 코너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한 아이가 떼를 쓰다 못해 바닥에 눕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아이는 원하는 장난감을 얻기 위해 힘겨운 투쟁 중이었다. 큰아이의 손을 잡고 백화점 바닥에 누워 있는 아이를 지나가면서, 속으로 생각했더란다. 아니, 얘들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밖에서 저런 난장판을, 쯧쯧. 정확히 3년 뒤, 그 자리에 누워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떼를 쓰는 한 아이가 있었으니. 이번에는 쯧쯧거리며 지나칠 수 없었는데, 그 아이는 내 아이였던 것이며. 기나긴 실랑이 끝에 나는 만 원이 조금 넘는 미니카를 하나 사서 아이 손에 쥐여 주고 나서야 간신히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내 일은 아닐 거라 생각하는 일들이, 그렇게 가끔 아니 자주 일어났고.

이제 진짜 하려고 하는 이야기에 도착했다.

『바닷가의 루시』에서 루시가 딸들의 일상에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될 때, 나는 저건 아닌데...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아, 미국에서도 중산층은 이렇구나. 자식 나이가 40이 넘었는데도, 그들의 일상에 부모가 이렇게 깊이 관여하는구나. 우리나라와 비슷하네. 우리나라는 예전에도 그랬고, 요즘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 같은데. 마지막에 루시가 자신의 딸들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될 거라 말하는 대목에서도 그랬다. 당연하지 않나요. 그게 당연하지 않아요?

이번 여름이었다. 특별한 말없이, 별다른 사건 없이 큰애가 우리 부부에게서, 나에게서 멀어져 간다고 느꼈다. 그렇게 느껴졌다.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지만. 유난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그 애의 시원한 그늘막이 되어 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꼭꼭 싸서 키운 건 아니지만, 학원을 안 다녔기에 저녁 시간에 항상 함께 했던 큰애가 대학에 들어가서는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됐다. 아침마다 톡을 보내고, 전신 거울에 서서 '등교룩'을 찍어 보내던 아이였다. 같은 방을 쓰는 친구가 없는 시간에는 밥을 먹으며, 화장을 지우며 먼저 영상 통화를 걸어왔던 아이였다. 실사판 고슴도치 부모가 되어 전화기 앞에 고개를 들이밀던 때, 그때 나는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자주 웃었던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다. 빈둥지 증후군이라면, 자식의 성적에 온 신경을 기울이는 사람이나, 자식을 과보호하는 사람이나, 자식 말고 자신의 삶을 꾸려갈 줄 모르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세라고. 나는 아니라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하지만, 역시나 내가 그런 사람이었고.

깊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으나, 나쁜 인상을 남긴 일과 빈둥지 증후군 유사 증세는 같은 시기에 왔다. 외로움과 슬픔, 절망과 분노의 순간마다 책이 유일한 위로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쌓여 있는 책을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는 나 역시 루시처럼 이 상황을, 이 상황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하고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다시 생각에 잠긴 후에 다시 기다렸다. 그러고 나서 조금 기운이 나면 맥파든을 읽었고, 그다음에 또 맥파든을 읽었다.

간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빈둥지 증후군에 대해 쓰려고 그래. 다정하면서 솔직한 친구가 답했다.

참... 빈둥지 증후군이라니요. 둥지가 비기 전에 먼저 나가신 분...

샤워를 하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잠들기 전에도 큭큭. 나는 총 12,738번을 웃었다. 둥지에서 먼저 나갔는데, 무슨 빈둥지 증후군이라고...... 그렇다. 그랬던 것이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일들이 내 일로 착착 등장하는 순간들이 있다. 멈칫하고 꿀꿀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건강하게 잘 자라 둥지를 떠나 훨훨 날아가겠다면 이 역시 환영할 만한 일이다.

둥지가 비기 전에 먼저 나가신 분은 빈둥지 증후군 유사 증세를 호소하는 일이랑 그만두고 맥파든이나 읽어야겠다. 내내 나쁜 사람으로 찍어두었던 사람이 알고 보니 착한 사람인 것으로 밝혀지기 직전이다. 나쁜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 궁금하고, 함정에 빠진 사람이 이 어려움에서 어떻게 벗어날지 궁금해진다. 신난다.

이틀이 지났다. 나쁜 사람은 정체가 드러나고, 함정에 빠진 사람은 구출되었다. 역시나,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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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03 2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학에 가서 등교룩을 찍어보내는 딸이라니.. 자랑이 너무 심하십니다. 우리집 딸래미들 초등학교 수학여행부터 집나가면 전화 한통 안합니다. 그래서 우리집에 제가 억지로 만든 규칙이 안 들어오는건 괜찮다. 하지만 하루 한번 생존신고는 해라인데 이것도 잘 안 지켜져요. 만약 기숙사 들어가면 일주일에 한번 통화하기도 힘들걸요. ㅎㅎ

둥지가 비기 전에 둥지에서 나갔다니 표현이 참 절묘하다 싶으면서도 사실 우리 그 둥지에 그대로 있잖아요. 다만 내가 있는 곳이기에 비지 않았을 따름이지요. 나만으로도 충만한곳, 그러다가 아이들이든 누구든 오면 조금 복잡해지다가 가고 나면 또 평안한곳. 제 둥지 목표입니다. ㅎㅎ

단발머리 2025-09-03 20:45   좋아요 2 | URL
그랬었는데 말입니다. 이제 모두 추억으로 지나쳐 가고, 오늘도 언제 들어올지 기약할 수 없는ㅋㅋㅋㅋㅋㅋㅋ

나만으로도 충만한 곳. 누구든 오면 조금 복잡해지다가 가고 나면 또 평안해지는 곳. 이 문장이 너무 좋네요. 혹 어떤 분이 빈둥지 증후군을 겪고 계시다면 이 문장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다만, 저는 ㅋㅋㅋㅋㅋㅋ 둥지가 비기 전에 나가신 분으로서 ㅋㅋㅋㅋㅋㅋ 둥지든 집이든 어디든 안 들어가고 신나게 놀고 싶습니다. 역시나 체력이 문제네요. 흠....

난티나무 2025-09-04 02: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9월 개학에 맞춰 작은넘을 기숙사에 던져넣으려고 6시간 넘게 달려갔다가 다시 긴 시간 돌아오는 길입니다. 짐은 뭐 왤케 많은 건지 @@ 집에서 출발하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었어요. 아 빨리 혼자 있고 싶다…
그 넘 2년 전만 해도 저랑 수다 떨던 그 넘 맞고요.ㅋㅋㅋㅋㅋㅋㅋ
여름방학 포함 석 달동안 집에 있었던 건 앞 일주일 뒤 일주일밖에 안 된다는 사실.ㅋㅋㅋ

루시 안 읽어서 한쪽 눈만 뜨고 읽었어요.^^

단발머리 2025-09-05 22:11   좋아요 0 | URL
아 빨리 혼자 있고 싶다.... 음성 지원이 가능하네요? 참 신기합니다. 난티나무님 프랑스에 계신데 음성 지원이 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숙사도 좋은 의견입니다. 안 그래도 이번에 지원했는데 떨어졌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에는 반드시!!

2025-09-04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9-05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9-09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9-09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부만두 2025-09-05 09: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희 집도 비슷합니다. 막내가 고등학생일 땐 그래도 챙겨야 할 아이라 여기고 제가 힘든 티를 냈어요. 이젠 둘 다 밖에 오래 있고 애들 집에 들어오기 전엔 노부부만 남아서 각자 책읽고 야구보고 그럽니다. 무슨 영화에서 보던 흔들의자 앉아서 옛날 얘기 하는 노부부 같은거에요. 하하. 이런 시간에 익숙해져야겠지요? 빈둥지, ... 우리 둥지는 애들이 죄다 어질러놔서 비지는 않았어요. ㅋㅋ

단발머리 2025-09-05 22:24   좋아요 0 | URL
이젠 둘 다 밖에 오래 있고 애들 집에 들어오기 전에 노부부만 남아서 각자 책읽고 야구보고 ㅋㅋㅋㅋㅋㅋ

에서 우리집인줄 알았어요. 이런 시간에 익숙해져야될텐데... 저는 철없는 신혼부부 컨셉으로 가고 싶은데, 나이상으로는 노부부가 가깝네요. 정말 큰일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5-09-05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9-05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5-09-06 2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곳에서 매일 엄마에게 제가 얼마나 잘 먹고 있는지를 보고하고 있어요. 밥 차려 먹을 때면 엄마에게 사진을 보냅니다. 엄마 걱정하실까봐서요. 전화도 자주 드리려고 노력하고요. 그런데 단발머리 님의 이 글을 읽으니, 저를 이곳에 보내놓고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싶네요. 제가 이 나이어도 엄마한테는 분명 딸이고, 아시다시피 저는 여태껏 엄마랑 함께 살았으니까요.

제가 방금 채경이에게 빈둥지증후군에 대해 물어봤거든요. 독서나 여행, 학습등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빈둥지증후군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대요. 이미 지나오신 것 같지만, 단발머리 님은 맥파든을 만나셨으니, 새로운 관계설정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더 단단해지실 것 같습니다.

단발머리 2025-09-08 08:41   좋아요 0 | URL
너무너무 잘하고 계신거에요. 얼마나 궁금하실까요. 공부하는 것보다 그곳에서의 생활보다 어쩌면 더.... 무얼 먹는지를 궁금해하실거에요. 전 오늘 아침에 새우양배추전 부쳤거든요. 생각보다 잘되었어요(무슨 일? ㅋㅋㅋㅋㅋㅋㅋㅋ) 사진 찍어 두었습니다. 이따 오후에 엄마 보내드리려고요 ㅋㅋㅋㅋㅋㅋ 엄마, 아침에 이거 해먹었어요.

독서나 여행, 학습이 빈둥지 증후군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거 같아요. 운동도 그렇구요, 물론 취미 생활도. 전 이제 운동쪽으로 가볼까 생각 중인데, 너무 안 해서 평생 미지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제게는 ㅋㅋㅋㅋㅋㅋ 맥파든이 있습니다. 아직 18권이 남아있다는 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하루도 굿데이, 다락방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