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성을 떠올릴 때의 그 범주와 한계를 벗어나 더 포괄적(?)인 혹은 근원적인 의미에서의 성에 대한 서술은 푸코의 『성의 역사』일텐데, 4권짜리이고 2권 읽었지만, 여전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고.










『왓 이즈 섹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 저는 섹스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섹스를 할 때와 똑같은 만족을 느낄 수 있지요."(7쪽)

강의를 하면서 느끼는 섹스의 만족. 라캉은 말할 때, 청중을 대상으로 말하고 있을 때, 섹스할 때와 똑같은 만족을 느낀다고 말한다. 라캉이 본인만의 성적 취향이나 선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건 섹스가 무엇인가 혹은 어떠한가에 대한 가장 쉬운 설명이 될 수 있다. 나는 뭐할 때 섹스할 때와 똑같은 만족을 느끼는가. 뭐할 때, 그리고 뭐할 때.










『에이스』의 부제는 <무성애로 다시 읽는 관계와 욕망, 로맨스>이다. 이 책은 일반적인 ‘성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모든 사람이 섹스를 좋아할 거라는 생각, 진짜 남자는 섹스를 많이 할 거라는 생각, 새로운 시대를 맞는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은 원나잇에 개의치 않는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저자의 이야기는 오늘 이 시대 알라딘 서재의 라이징 스타 아일린과 사이먼의 이야기와 겹쳐 보인다. 저자의 남자친구 헨리는 5년간 개방 연애(open relationship)를 하자고 졸랐다. 애인이나 배우자를 두고 자유롭게 다른 사람을 만나자는 거였다. 오랜 갈등의 시간 끝에 두 사람은 헤어졌고, 일대일 관계에 목을 매는 구식의 생활을 버리고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관계로 나아가자는 헨리의 말을 기억하며, 스물 둘의 저자는 데이트 사이트 '오케이큐피드'에 로그인해 괜찮아 보이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그를 만나 아프고 형식적인 섹스를 한다. 이제 자기는 한 남자에게만 목매는 찰거머리도 아니고, 충분히 진보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느낀 그녀는 헨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헨리에게 이야기하자 헨리는 축하한다며, 자기가 다 기쁘다고 했다. 그런데 그 여름이 더 지난 어느 컴컴한 밤, 헨리는 마음 한구석에서 모든 게 이상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내 행동이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벌이자 불신의 신호라는 직감이 들었다고. 헨리는 정확하게 짚었다. 헨리의 기분이 이상했던 건 자기가 내게 1순위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어쩌면 아주 작게나마 있었기 때문이었다.(『에이스』, 114쪽)

두 사람의 끝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나는 두 사람간의 합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계에 만족할 수 있다면, 이 관계 속에서 행복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오케이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현실판이 존재할 것이다. 다만, 한 사람이라도 그만큼에 만족할 수 없다면, 그렇다면 그 관계는 존속 자체가 불가능하다. 나는 열 다섯살의 아일린이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자신의 진의를 사이먼에게 전했다고 생각한다.

내 평생에, 딱 한 사람이라고요.(39쪽)

독서괭님의 정확한 관측에 의해 '전반적으로 개새가 아닌 것으로 밝혀진' 사이먼은 '전반적으로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 진지하게 임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를 괴씸하게 여기는 대목은 바로 여기이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런 배경 때문에 아일린은 그렇게나 오랜 시간 '친구 타령'을 입에 달고 살지 않았나 싶다. 사이먼은 반성하고, 아일린은 행복하길.

아침에는 그가 커피를 만들었고, 밤에 아일린은 그의 침대에서 잤다. 그들이 사랑을 나눈 후, 그는 그녀를 오랫동안 안고 있는 것을 좋아했다. 더블린에 돌아온 날, 그녀는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녀는 사이먼이 크리스마스에 그녀의 가족이 사는 집에 들러 브랜디를 한잔하면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칭찬할 때까지 그로부터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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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9-14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선 제가 기대한 글보다 짧음에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언급하신 책중 푸코의 성의 역사는 4권까지 다 읽었지만, 사실 그건 제 읽기 능력의 부족함으로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고요, 왓 이즈 섹스와 에이스는 마침 가지고 있으니 저는 그것들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집에 있으니까 지금은 말고.. 그렇다면 섹스에 대해 좀 더 다른 방식으로의 이해가 가능해지겠죠. 저는 다른 방식의 이해,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음 저는 사실 사이먼과 아일린을 ‘각인‘된 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트와일라잇 읽으셨었죠, 단발머리 님? 거기 보면 나중에 제이콥이 벨라의 딸에게 각인되잖아요. 무조건 그 딸을 지켜야하고 평생 그 아이만 봐야 돼요. 사실 이건 아이에게 각인된거니 좀 징그러운 면이 있긴한데, 저는 이 ‘각인‘이 실제 생활에서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이먼의 아버지 기질이 제대로 발휘되고 유독 발휘되는 이유는 저는 사이먼이 아일린에게 각인됐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저는 누구에게나 이 각인이 일어나지 않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일어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게 꼭 연애감정에서뿐만은 아니고 어떤 관계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러나 모두에게 살면서 한 번 이상 꼭 일어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제가 어떤 운명적인 사랑 같은걸 믿는 걸지는 모르겠는데, 예전에 봤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에서 하림이 여옥에게 그랫던것도 각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 때 하림을 너무나 좋아하던 여자가 하림의 온 신경이 최대치 사랑하는 여옥에게 가있는 걸 보고, 그녀를 구하는 것에만 쏠린 걸 보고 ‘당신에게 여옥은 국가보다 더한 존재이군요‘ 라고 말하거든요. 하림은 부정하지 않고요. 물론 이건 드라마 캐릭터긴 하지만, 저는 이 각인이 실제로 어떤 경우에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있고, 저는 사이먼이 아일린에게 각인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른 얘긴데, 갑자기 생각나서 덧붙였습니다.

단발머리 2025-10-16 09:52   좋아요 0 | URL
간단한 정리여서 그렇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

푸코의 성의 역사는 해설서라도 찾아서 읽고 다시 읽어야겠어요. 저도 너무 어려웠구요. 그러나, 다시 읽어도 @@ 자신은 없구요.

저도 다락방님과 비슷하게 생각했는데!!! 아... 저는 그 ‘각인‘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제가 정확히는 기억 안 나는데, 다섯살의 사이먼이 갓 태어난 아일린 보겠다고, 보여달라고 그러잖아요. 그 순간이 각인의 순간일 수 있겠네요. 첫 만남. 태어나자마자. 그러고 보니 트와일라잇의 그 장면과 비슷하네요. 제이콥도 벨라의 갓난 아이에게 각인되죠.

운명적인 사랑이라. 저는 운명적인 사랑이 존재한다고 믿던 사람이었죠. 어디에선가, 나만의 그가.... 백마를 탔던가요? ㅋㅋㅋㅋㅋㅋㅋ정장 입은 거 확실하고요? 하지만, 이제는 그걸 믿지 않는 어떤 사람이 되었구요. 하지만, 다락방님 말씀처럼 ‘각인처럼 운명적인 일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어난다‘고 생각해요. 예상과 추측을 넘어선 인연과 만남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카를로 로벨리의 책에서 만난 문장, 과학자의 문장 속의 ‘대상‘에 인간들도 포함된다고 생각하니까요.

속성은 대상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대상 사이에 놓인 다리인 것입니다. 대상은 맥락 속에서만, 즉 다른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며 다리와 다리가 만나는 지점입니다. 이 세계는 거울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비쳐야만 존재하는 관점들의 게임인 것입니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111쪽)

인간은 맥락 속에 존재하죠. 그 사람이 의미있는 건 내가 존재하기 때문이고, 내가 존재하기에 비로소 그 사람도 의미를 ‘성취‘하는 거고요.

바람돌이 2025-09-15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포괄적이고 근원적인 의미의 성에 대해서 생각할 때 푸코라니요. 저 어려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누가 하냐구요. ㅎㅎ(저는 1권 읽고 나가떨어진 사람입니다.)
사랑이나 연애의 형태는 정말 여러가지일 수 있는데 서로가 합의한다면 그 형태가 어떻든 상관없을거 같아요. 그런데 참 쉽지 않은게 사람에게는 이성으로 이런게 좋아라는게 있는 반면 의식 아래 밑바닥에는 또 다른 원초적인 감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독점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벗어나면 정신병이 되는 거지만 연인관계라고 할 때 저 사람이 나에게만 특별하게 대해주는게 뭐 하나는 있어야 연인관계가 성립되는 거잖아요. 그 특별한 뭔가가 저는 독점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특별한 뭔가가 많은 사람에게는 섹스라고도 생각하고요.(아 무성애자는 제외입니다. 무성애자는 그 무성애를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게 특별함이겠죠.) 그래서 너와 내가 연애를 하고 섹스도 하는데, 오픈 마인드로 다른 사람하고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관계를 지향한다고 했을 때 사실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지 않을까? 너는 나에게 특별하지 않은데 언젠가 그 오픈 마인드로 만나는 다른 사람 중에 특별한 사람이 나타날 가능성이 많으니까요. 샤르트르로 보바리의 계약결혼 얘기도 하지만 저는 그 두 사람의 관계는 연인이라기 보다는 친구관계였을 가능성이 많을거 같거든요. 하여튼 그래서인지 저는 개방 연애 잘 될거 같지 않아요. ㅎㅎ

우리의 주인공 사이먼과 아일린에 대해서는 저도 단발머리님이 인용하신 대목 읽으면서 이런 바보같은 놈 했었거든요. 하지만 사이먼의 저 마음도 이해가 갔어요. 저 때 당시 아일린은 남친이 있었고, 아일린은 그에 대해서 어떤 말도 하지 않죠. 제가 사이먼이라면 많이 힘들었을거 같아요. 아일린은 내가 보호해줘야 하는 아이인데, 아일린은 그 남친을 정말 좋아하고, 나와의 일은 일시적인 일탈일 뿐일지도 모르는데 나이 먹은 내가 아직은 자유롭게 살아야 할 아일린의 세계를 망가뜨린느거 아닌가 뭐 이런 수많은 고민이 있었을거라는거죠. 물론 쓸데 없는 고민이지만, 사이먼은 아빠 모드잖아요. 저기서 아일린이 확실하게 물어봤다면 뭔가 달라졌겠지만 저 때의 사이먼은 먼저 물어보거나 다가갈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대화를 하고 살아야 한다? 역시 저의 결론은 평범합니다. ^^

단발머리 2025-10-16 09:53   좋아요 1 | URL
저에게도 푸코는 항상 아픈 기억이지요 ㅎㅎㅎ차라리 <감시와 처벌>이 나았습니다.

바람돌이님이 말씀해주신 의식 아래 원초적인 감정에 대한 부분이 제 생각과도 많이 비슷합니다. 바람돌이님은 그걸 독점욕이라고 쓰셨는데, 저는 그걸 사랑의 ‘배타적 속성‘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그렇지 않은 연인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구요. 하지만 이차저차 이쪽저쪽 상황이 복잡해지는 건 사실이구요. <에이스> 저자의 남친 헨리가 그렇게나 ‘오픈된 관계‘를 주창하더니만 자기의 여친이었던 저자에게 일어난 일에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던 건, 의식 아래, 자신의 말 아래, 자신의 주장 아래, 도사리고 있는 원초적인 감정(출처:바람돌이님)을 모른척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처음에는 연인 관계였을 테지만, 후에는 ‘섹스 없는‘ 결혼관계였을거라 생각됩니다. 연애사를 굳이 공유했던 이유를 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경우에는 서로에게 비밀을 가졌다는 점에서, 결국 두 사람간의 계약결혼보다 더 중요한 사람, 연인이 생겼다는 것이구요. 하지만, 말이 통하는 사이였으니까요. 그만큼이라도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요.

바람돌이님이 사이먼의 고민을 이해해 주셔서 사이먼에게는 다행입니다. 저는 저 때가, 사이먼이 제일 뻘짓했을 때라 생각하고요. 물어봤어야 한다고, 고백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먼저 사랑한다 말하는 사람이 아일린이어서 저는 기분이 나쁘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화할 수 있어야 인간이죠. 바람돌이님 결론이 바로 저의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