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 루니를 두 권 읽었다. 첫 번째는 『친구들과의 대화』였고, 두 번째가 『노멀 피플』이었는데, 『친구들과의 대화』를 더 좋아한다. 첫 번째 샐리 루니를 읽고는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런 여주와 남주를 본 적이 없어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두 번째 샐리 루니를 읽고서는 불쾌하다는 감정이 주요했기에 한동안 샐리 루니는 읽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했다. 세 권의 샐리 루니 중에 나는 이 책이 제일 좋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을 것 같다. (나는 항상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둥지 비기 전에 먼저 떠나왔으나 빈둥지 증후군 유사 증세를 호소했던 사람답게 아일린의 엄마 메리와 아일린의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딸에게 자신의 인생을 토로하는 엄마에 대해 쓸 수 있겠다. 앨리스가 펠릭스에게 아일린을 소개하는 장면도 그렇다. 예쁘다는 것에 대해 앨리스가 아일린에 대해 설명하는 문장 사이사이에서 느껴지는 뾰족함에 대해서도.
앨리스와 아일린 두 사람의 이메일에 대해서도 쓸 수 있겠다.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앨리스와 아일린은 두 사람이라기보다는 한 사람이다. 한 사람의 내면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말을 건다. 서로에 대한 편지는 물음과 답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두 사람의 말은 동시적이지 않고, 당연히 그 사이에는 시간성이 존재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내가 좋아했던 알라딘의 '먼 댓글' 기능이 생각난다. 질문에 대한 답이고, 답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겠지만, 결국 서로에 대한 완벽한 이해나 그 이해를 통한 '합의된 의견'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제 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혼자 말할 뿐이고, 듣는 사람은 후에 듣고, 나중에 듣는다.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일부만 이해한 경우라도 매우 희귀한 경우다. 들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중요한 건 오직, 말하는 것이다. 특히, 1976년, 플라스틱 상용화에 대한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나는 작가가 이렇게 전면으로 나서서 특정 사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는 소설을 좋아한다. 그려내는 배경, 전하고자 하는 감상이 모두 작가의 것이겠지만, 작가의 생각을 읽을 때 특히나 좋다.
하지만 제일 먼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역시나 아일린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영어로 챕터 9까지 읽었고, 한글로 앞부분을 다시 읽었다. 한글책으로는 챕터 10까지 읽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아일린은 챕터 10까지의 아일린이다.


그가 그녀를 보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오자, 그녀는 의자를 발로 차며 그가 자신이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내 평생에 딱 한 사람이라고요.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식구들은 내가 당신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더니, 이제 당신은 가려고 해요. 죽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반쯤 열린 문을 등지고 서 있었다. 조용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아일린, 그런 말 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내가 약속할게. 너랑 나는 우리의 남은 평생 동안 친구로 지낼 거야. (39쪽)
내가 이해하는 아일린, 더 정확히 챕터 10까지의 아일린에게 사이먼은 전부다. 성을 sex로만 이해하지 않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 수 있게 하는 그 무엇이라고 할 때, 15살의 아일린에게 사이먼은 가장 성적인 존재다. 이때 15살의 아일린은 사이먼을 상대로 로맨틱한 감정을 상상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의 아일린, 15살의 아일린에게 사이먼은 살아갈 수 있는 이유, 유일한 이유가 되는 사람이다.
5살 혹은 6살의 자아라면, 내가 좋아하는 동네 오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커서, 오빠랑 결혼할 거야. 하지만, 15살의 자아는 이렇게 말할 수 없다. 오빠를 좋아한다고도 말할 수 없고, 가지 말라고도 말할 수 없다. 15살의 자아는, 15살처럼 말한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요.
아일린의 이 절박한 외침에 사이먼이 응답한 필요는 없다. 그는 모범생답게 모범답안을 말한다. 너랑 나는 우리의 남은 평생 동안 친구로 지낼 거야. 사이먼의 이 말이 아일린에게 위로가 되었을지 혹은 상처가 되었을지 잘 모르겠다. 예언이 되었을지 저주가 되었을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냥 아일린의 간절함이 뭔지 알 것 같다. 15살짜리가 '내 평생에'라고 말할 때, 15살의 치기로 여겨질지도 모를 이 상황 속 아일린의 그 마음을 나는 쪼금 알 것도 같다. 그래서 괴롭다. 이 소설은 좋은 소설이 맞다. 나는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