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남겨진 자가 유명을 달리한 사람에게 해야 할 마지막 의무다. 반면 조문의 행위는 관 뚜껑을 닫고 장례를 치르는 행위이다.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우리가 관 뚜껑을 닫으며 조문하려는 것은, 죽은 자들의 사인이 명백해졌기 때문인가, 아니면 세월호 비극을 가능하게 했던 자본주의의 냉정한 논리와 그것을 비호하는 정권에 무기력을 느껴 세월호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빨리 뇌리에서 잊으려는 무의식적인 자기 보호 본능 때문인가. 사인이 명확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죽은 자보다는 살아 있는 자의 자기 보호 본능이 작동한 것이라면, 결단코 장례도 조문도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다. (195)

  

  

 

 

 

 

 

 

 

그러나 1018분 해경 100t급 경비정인 123정 부정장 김종인은 어선들을 향해 확성기를 틀었다. “어선들 철수해, 어선들 철수하라고!” 빵빵 기적을 울리며 어선들이 세월호에 다가가는 것을 막았다. 그럼에도 어선들을 세월호에 이물(배의 앞부분)을 그냥 무조건 들이대고승개들을 끄집어냈. 뱃머리가 세월호 난간에 걸려 함께 빨려들어갈 뻔한 위기도 넘기면서 수십 명의 목숨을 구했다.

1030분쯤까지 50여 척의 어선이 현장에 도착해 대기했다. 당시 해역 수온은 12.6. 최악의 경우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입은 채 바다에 떠 있기만 해도 최대 6시간까지 버틸 수 있었다. 공중에 떠 있는 항공기 703호와 헬기 3대가 표류하는 승객들을 추적할 수 있었다.

구조할 시간도, 구조할 세력도 부족하지 않았다.

<한겨레 21, 1105,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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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30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ㅠㅠㅠㅠㅠ

단발머리 2016-03-30 21:24   좋아요 0 | URL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정황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할 수가 없어요.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왜 구조를 막았는지...

순오기 2016-04-01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천벌 받을 자들!!!
결코 그대로 묻혀서는 안되지요~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야죠!!

단발머리 2016-04-01 09:42   좋아요 0 | URL
이번 정부에서 어렵다면 다음 정부에서라도 꼭 밝혀내서 그 사람들을 혼내줘야할텐데...
시간이 흘러 사람들에게 잊힐까 가끔 두려운 마음이 들어요.
진실을 밝히는 건, 희생된 사람들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를 위한 메시지일수도 있는데요.

진실을 밝혀야죠, 반드시!!!
 

 

 

 

 

 

 

 

 

 

 

멋대가리 없이 말한다면 이런 식이다.

똑같은 듯하지만, 조금 더 예쁜 쌍둥이 같은 여동생에 대한 상처 때문에 자신의 딸을 질투하고 시기했던 어머니를 가졌던 저자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머니는 기억을 잃어가고, 가까이 살고 있는 남동생들을 차치하고 다리 건너 살고 있는 딸에게만 전화한다. 도와주고 돌봐주는 그녀에게 화를 낸다. 짜증을 낸다.

레베카 솔닛식으로 말한다면 이렇다.

어머니는 금발이 거의 초자연적인 선물이라고 여겼다. 당신이 금발이 아니므로 나 역시 금발이라는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어머니는 오랫동안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불행한 방식으로 나의 머리를 길들이려 했다. (38)

... she had always hidden her trobles from them. They were the audience for her best self, for whom she wished to be seen as, I was stationed backstage, where things were messier. (5)

One day I asked her why she always called me and not them. “Well, you’re the girl,” she said, then added, “and you’re just sitting around the house all day doing nothing anyway.” That was one way to describe the life of a writer. (6)

나는 그녀가 말하는 방식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책 표지에 [A] brilliant, genre-refuting book이라는 수식은 그래서 아주 적확하다. 알라딘에서는 이 책을 이렇게 분류한다.

외국도서 > 역사 > 역사 지리학

외국도서 > 전기/자서전 > 개인 회고록

외국도서 > 전기/자서전 > 문학

맞다. 이 책은 세계의 특정 지역에 관한 책이고, 자서전이며, 문학책이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이며, 익히 알려진 책들에 대한 잘 정돈된 서평이다. 그녀의 이야기이며,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는 아주 간단하게 말하고, 아주 길게 말한다. 그녀가 지시하는 것은 그녀가 말하는 바로 그것이며 또한 그 외의 어떤 것을 의미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의 작가 배열에 그녀를 올려두고 싶다. 강신주-필립 로스-정희진의 라인업에 말이다.

현빈의 <시크릿가든>은 다음회가 궁금해 일상이 엉켜버렸던 내 인생 최초의 드라마였다. 나는 이 세상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현빈을 좋아할거라 생각했다. 다짐은 필요 없었는데, 그건 그 일이 너무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간사한지, 서인국을 지나 김수현에 이르러서는 네가 진짜 마지막이다.”를 나에게, 그리고 김수현에게 진심으로 고백하곤 했다. 박보검을 찍고, 이젠 송중기. 송중기에게는 네가 정말, 진짜, 완전 마지막이다.”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럽다. 한국의 드라마는 얼마나 훌륭한가. 드라마의 영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들은 얼마나 완벽한가. 그들의 젊음은 얼마나 눈부신가. 나는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포기하기로 했고, 지금 이 순간, 그냥 송중기를 좋아하기로 했다.

 

 

 

 

사랑은 변한다. 좋아하는 배우도 변하고, 좋아하는 작품도 변한다. 좋아하는 작가도 변한다. 물론이다.       

 

여기 오신 분들은 책을 사랑하는 분들이니 이런 느낌 잘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책을 사랑하는 것이지 특정한 어떤 책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책에 대한 사랑은 변합니다. 때로는 이런 작가를 사랑했으나 곧 다른 작가에게 빠져듭니다. 프랑스 소설을 막 읽다가 일본 소설에 탐닉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아예 소설은 안 읽고 역사서만 읽기도 합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는 영화 대사도 있지만 변해야 사랑입니다. 책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평생 한 작가 혹은 특정 작품만 줄창 읽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요? 저는 믿지 않습니다. (179

 

 

 

 

강신주-필립 로스-정희진의 바로 뒷자리를 그녀에게 권한다. 리베카 솔닛에게 권한다.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1961624~)은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 거주 중인 작가이다. 예술평론과 문화비평을 비롯한 다양한 저술로 주목받는 작가이자 역사가이며, 1980년대부터 환경·반핵·인권운동에 열렬히 동참한 현장운동가다. 대한민국에 출간된 저서로 『어둠 속의 희망』, 『이 폐허를 응시하라』, 『걷기의 역사』가 있으며, 『그림자의 강』으로 전미도서비평가상, 래넌 문학상, 마크 린턴 역사상 등을 받았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작가다. 그녀의 어머니가 질투했던 금발에 그녀의 어머니가 가지지 못했던 둥근 눈썹. 당당해 보이고, 깐깐해 보이는 그녀.

그녀가, 지금 내가 사랑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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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6-03-27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드라마따라 좋아하는 남자배우가 변했 듯 책도 작가도 변하죠.ㅎㅎ 영원히 사랑할 것 같았던 작가들의 책이 지금은 어딨는지 들춰보지도 않았는데 오늘밤엔 다시한번 쓰담쓰담이라도 해줄까봐요.ㅎ

단발머리 2016-03-27 21:5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제가 톨스토이랑 도스토예프스키, 카뮈를 읽고 까불대던 시간들이 떠오르네요.
밀란 쿤데라를 처음 읽었을 때 또 얼마나 촐랑거렸는지...
그러게요. 지나간 사랑도 소중하니까 오늘밤엔 진짜 <사랑 복습편> 같은 거 해야할까봐요. ㅎㅎ

유월 2016-03-27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배우 취향이 90%일치하는 분이 추천하시니...솔닛의 책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단발머리 2016-03-28 09:18   좋아요 1 | URL
레베카 솔닛만의 특별한 매력에 빠지실거라 장담합니다.
그나저나 일치하지 않는 배우 취향 10 퍼센트가 궁금하네요.

누군가요, 그 사람은... ㅎㅎㅎ

다락방 2016-03-28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아직도 레베카 솔닛을 구입하지 못했어요. ㅠㅠ 그렇게 줄기차게 책을 샀는데, 왜 이 책은 아직 .. 없는걸까요? 저는 대체 뭘 산걸까요,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16-03-28 09:30   좋아요 0 | URL
아... 아직 레베카 솔닛이 다락방님께까지 닿지 못했군요.
저는, 쉽게 마음이 변하고, 팔랑귀이며, 열정이 금방이나 식어버리는 저는...
지금은 레베카에게 빠져있어요.

다락방님은 어떤 책을 사셨을까요? 알라딘 특별관리 들어가야겠어요.
다락방님의 장바구니를 잘 챙겨드려라, 알라딘^^

수이 2016-03-28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 복습편_도 좋지만 사랑 예습편이 더 신나는_ :)
레베카 솔닛_ 저도 장바구니에 담아놓았습니다, 한가득.

단발머리 2016-03-30 08:47   좋아요 0 | URL
ㅎㅎ 한가득 담으셨다니 겁나게 반갑네요.
이제 읽는 일이 남았네요. ^^

유월 2016-03-30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인국은 그닥ㅋ 북플은 대댓글을 허락하지 않는군요 :(

단발머리 2016-03-30 08:49   좋아요 0 | URL
아하... 님의 글에 댓글달기를 하면 대댓글이 됩니다요.

저도... 서인국은 아주 잠시... ㅎㅎㅎ
 

믿고 읽는 정희진, 믿고 보는 정희진의 한겨레 칼럼

<정희진의 어떤 메모> 2016. 3. 26. 토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각 당의 비례대표 공천이 끝났고 4월 13일까지는 모두 `착한 국회의원`, `국민의 심부름꾼`을 자처하는, 악수를 청하는, 한 표를 부탁하는 어떤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어쩔수 없이 보아야 할테다.

모두 나쁜 사람들이라, 거짓말쟁이라 밀쳐내기에 내 일상에 미치는 그들의 영향력이 너무 크기에, 다시 한 번 살펴본다.
우리 지역구에 누가 나왔는지 찾아보고, 내가 지지하는 의원의 전과가 무엇때문인지 생각해본다.

희망을 품어도 되는지, 기대를 가져도 되는지 가늠해본다.
녹색당의 이야기, 이들의 이야기가 그런 희망의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 기대해본다.

부활의 아침....
희망을 가져본다, 소심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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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음사입니다.

신간 도서 『공부할 권리』의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진정한 자존감을 지키는 공부의 힘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인문학 강의


헤세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진짜 내가 원하는 걸 찾는 여정이 삶의 공부라고 말한다. 『안티고네』는 인간이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가치들, 이것들을 위대한 작가들은 모두 공부를 통해 실천했다. 공부는 읽기와 글쓰기를 넘어서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공부는 시인 네루다의 질문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우리는 사회학자들의 관찰과 인문학자들의 감수성을 통해 이 공부를 실천해야 한다. 『공부할 권리』는 이제 진짜 공부를 시작하려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프레임을 제공하는 인문학 선언이 될 것이다.

긴 이력서는 진짜 나를 가리는 분장이 아니었을까? 인생의 문제 해결을 학벌에서만 찾으려고 한 것은 아닐까? 지금도 돈(실용성)과 가치(품위)라는 선택지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생의 갈림길마다 때로는 처절하게 인생의 의미를 찾고, 때로는 아프게 삶의 가치를 고민하면서 그 해답을 책에서 찾아 온 작가의 혜안을 집약한 우리 시대 인문학자의 대표작!


 

 

"제게 공부란 ‘과거와 현재의 내 문제를 깨닫고, 미래의 내 삶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책들을 만나면 꼭 ‘과거의 자신’에게 선물해 주고 싶어지지요. 그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나는 좀 더 힘을 내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좋은 책을 읽을 때마다 저는 ‘문제가 주는 고통에 짓눌려 문제의 핵심을 발견하지 못한 나약한 나’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당시의 나에게로 다가가 ‘지금의 나에게 용기를 주는 이 책’을 선물해 주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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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눔의 세계

옮긴이 김화영씨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눔의 세계 알베르 카뮈의 여정은 카뮈 개인의 생애보다는 작가 카뮈의 작품과 행동, 그리고 그의 지향을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공간적 차원에서 정리, 배열하여 작가의 삶과 창조의 여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카뮈 자신과 관련된 사진, 작품, 원고, 서한문 뿐 아니라 지중해(알제리,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유럽, 러시아와 동구진영, 아메리카의 아름다운 풍광 뿐 아니라, 카뮈가 사랑한 작가와 그들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엮여 있다. (284)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들도 눈길을 끌지만,

 

 

 

 

<스페인 메노르카의 비니베카 풍경>

 

<시에나 지방의 몬테풀치아노>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언제나 카뮈, 인간 카뮈를 볼 수 있는 사진이다.

  

 

 

  

 

나는 오로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성취하는 직업, 혹은 일에

파묻혀 있을 때에야 비로소 행복했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었다. 내게 직업이란 없다.

오로지 소명받은 천직이 있을 뿐. 그리고 나의 일은 외로운 일이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값하는 인물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의 나는 그렇지 못하지만. 그런데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며 행복해하고 있는

이 사람들을 앞에 두고 나는 왠지 울적한 기분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작가수첩Ⅲ』, 218, 107)

 

카뮈가 도스토예프스키에 바치는 헌사를 보면서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읽다 포기했던 옛날을 생각한다.

  

  

나는 스무 살 때 이 작품을 처음 만났는데

그때 받은 충격은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나는 악령오디세우스

전쟁과 평화, 돈키호테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연극처럼 인간정신이 창조하여 쌓아올린

어마어마한 업적의 최고봉을 장식하는 서넛의

가장 위대한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생각한다.

(『도스토옙스키를 위하여, 1957, 플레이아드 전집, 590)

    

 

2. 나는 누구인가

 

 

 

 

 

 

 

 

부제는 인문학 최고의 공부이다. 강사는 강신주/고미숙/김상근/슬라보예 지젝/이태수/정용석/최진석. 2013년 가을 학기에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개최된 제3회 인문학 공개강좌의 강연 내용을 담고 있다. 강연을 묶어 출간되는 비슷한 유형의 책들이 많은데, 아무렴, 당연히, 물론 나는 강신주라는 이름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강신주-고미숙-지젝-정용석으로 이어지는 환상 조합에, 목소리가 익숙한 강신주님은 음성 지원을 받으면서, 다른 분들의 강의는 나름대로 상상해가며 즐겁게 강연을 들었다

 

그러면 오늘날 현대인들이 봉착한 몸의 소외, 욕망과 능력의 이 간극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요. 동의보감은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합니다. 바로 마이너스 건강법입니다. 동의보감이 만들어지던 때는 지금 우리처럼 잘 먹고 많은 것을 즐기던 시대가 아니었음에도 거기에 기술된 양생술을 보면 기본적으로 마이너스 건강법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조건 덜 먹고 덜 쓰고 모든 것을 덜어내고 배설해야 합니다. 배설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익숙한 것과의 결별입니다. 이 결별을 잘하지 못하면 숱한 과거를 질질 끌고 다녀야만 합니다. 미련과 집착으로 현재를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는 것이 현대인들이 앓는 공통의 질병입니다. (고미숙, <현대인을 이해하는 세 가지 화두: , , 사랑>, 58)

 

각 정자와 난자의 주인들이 이처럼 무작위하게 서로를 선택하여 한 아이가 탄생하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이 아이가 지니게 되는 유전정보의 고유성은 10²²분의 1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이 고유함이 곧 여러분들 각 사람이 지닌 정보의 정체성입니다. (정용석, <나는 이미 기적이다>, 261)

  

  

3.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

 

 

 

 

 

 

 

 

저자는 조한별. 초등학생 때 한 번, 중학생 때 한 번 학교를 휴학하고 가족들과 세계여행을 다녔고, 세인트존스 대학교를 졸업했다. 부잣집 딸도 아니고, 영어를 잘하지도 않는다는 그녀가 어떻게 세인트존스 대학교 수업을 잘 마칠수 있었는지 자세히 보여준다. 내가 실제로 관심있었던 건 당연히 세인트존스 도서 목록인데 생각보다 어마무시하다.

1학년 세미나 리딩 리스트.

  

  

3학년 도서인 걸리버 여행기, 오만과 편견, 주홍글씨는 무척이나 반갑지만, 라이프니츠의 철학 논문집, 흄의 도덕 원리에 관한 연구, 루소의 사회계약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함께라니, 보기만 해도 겁나는 도서 리스트다. 한글로도 읽기 어려운 책들을 원서로 읽는다는 건 얼마나 힘들까. 그녀는 나름의 해결책을 가지고 있었다.

어렵지만 배울 것이 많은 고전을 읽고 온 학생들은 수업 시간마다 자신들이 읽은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노력한다. 나는 언어의 장벽 때문에 그 소중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내용을 알고 수업에 가고 싶었다. 내용을 알면 토론의 주제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독 능력은 며칠 공부한다고 확 키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한국어판 책을 샀다. (189)

시간적 제한이 있는 환경에서, 짧은 시간에 읽기 능력을 키울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어판선택은 나름 최고의 선택이다. 오에 겐자부로도 선택한 방법 아닌가.

 

4. 계속 열리는 믿음

 

 

 

 

 

 

 

 

 

 

어제 시수업이 4주차다. 그냥 4주차가 아니라, 이야호! 4주차다. 4번 수업을 했고, 이제 4번 남았다. 다음 주에는 작품을 읽는 시간이라 숙제도 없다. 이야기하자면 A4 2장은 나오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원래부터 시수업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다, 시수업은 괜찮다.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가져와 같이 읽고, 감상을 말하고, ~ 정말 좋아요~ 이런 시수업 말이다. 수업 첫 날, 30분 정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나는 이 수업의 중심이 '시창작'임을, '시를 써서 제출'하는 것임을, '합평'하는 것임을, 이 수업은 정영효 시인과 함께 떠나는 시여행'이 아니라, '정영효 시인과 함께 떠나는 시창작 여행이라는 걸 이해했다. 숙제를 안 해가자며 굳은 다짐을 나눴던 야나님은 선생님의 가늘고 흰 손가락에 넘어가 배신을 때리고, 맞은편 좌우에 시 좀 읽으시는 분들의 시 사랑과 열정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이스 카페라떼, 딸기에이드 얼음이 단박에 녹아 버리곤 한다.

어제 수업에서는 저번 주에 배웠던 시에서의 상투성’, ‘기시감에 더해 사고의 획책에 대해 배웠는데, 선생님이 했던 말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래의 이 문장이다.

이게 좋다는 걸 아셔야 돼요!”

바로, 이거다. 바로 이게 문제다. 나는 님의 도 좋고, ㄲㅅ님의 바퀴도 좋다. S님의 숙제도 좋고, 야나님의 당신도 좋다. 나는 다 좋은데, 다 좋은 것 같은데,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그런 것 같은데, 선생님은 이게 좋고, 저게 좋지 않다 하시고, 시 사랑에 흠뻑 빠진 학생들은 정말 그러하다,고 탄성에 탄성을 더한다. ...

나는 산문적 인간이다.

나는 스스로를 산문적 인간이라 생각한다.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이고, 잘 줄이지 못하는 사람이다. 길게 쓰는 사람이고, 시는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 수업이 힘들다.

어제는 숙제를 생각하며, 숙제의 내용이 아니라 숙제 자체를 생각하다가, 시창작 숙제 때문에 시가 싫어지면 어쩌지, 하는 괜한 걱정이 들었다. 내가 추구하는 나는, 시를 읽는, 시를 읽을 줄 아는 우아한 1인인데, 지금의 나는 시를 두려워하고, 싫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또 다른 생각도 들었는데, 그건 내 평생에 다시는 시창작 수업을 들을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시창작 수업을 들을 기회도, 시간도, 여유도, 마음도 없을 거라는 생각말이다. 그렇다면, 일생일대의 이 기회, ‘시창작 수업에 참여하는 이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4주밖에 안 남았다. 다시는 시창작 수업을 들을 일이 없을테니, 남은 이 네 번의 수업을 야무지게 잘 마무리해야겠다, 나한테는 진짜 안 어울리는 말이지만, 최선을 다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솔솔 올라왔다.

숙제를 미리 해 놓으면 좋겠지만, 언감생심, 그건 좀 어려울 것 같고, 선생님의 시집을 다시 펼쳐봐야겠다.

이제 4주밖에 안 남았으니까. 한 번 해보지, . 후훗!

    

관람

                                                              정영효

    

우리는 극장에서, 극장보다 더 어두운 곳에서 많은 사람

들에 섞여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한쪽으로 바라보며 남의

말에 재빨리 수긍하면서 처음 보는 사람을 따라 혼자서는

사건이 되지 못하면서, 광장 같은 함성이 들리는 쪽으로 이

미 무서워진 응대와 찬성에 묻힌 채 모르는 사람들끼리 서

로의 이름을 도와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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