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대가리 없이 말한다면 이런 식이다.
똑같은 듯하지만, 조금 더 예쁜 쌍둥이 같은 여동생에 대한 상처 때문에 자신의 딸을 질투하고 시기했던 어머니를 가졌던 저자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머니는 기억을 잃어가고, 가까이 살고 있는 남동생들을 차치하고 다리 건너 살고 있는 딸에게만 전화한다. 도와주고 돌봐주는 그녀에게 화를 낸다. 짜증을 낸다.
레베카 솔닛식으로 말한다면 이렇다.
어머니는 금발이 거의 초자연적인 선물이라고 여겼다. 당신이 금발이 아니므로 나 역시 금발이라는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어머니는 오랫동안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불행한 방식으로 나의 머리를 길들이려 했다. (38쪽)
... she had always hidden her trobles from them. They were the audience for her best self, for whom she wished to be seen as, I was stationed backstage, where things were messier. (5쪽)
One day I asked her why she always called me and not them. “Well, you’re the girl,” she said, then added, “and you’re just sitting around the house all day doing nothing anyway.” That was one way to describe the life of a writer. (6쪽)
나는 그녀가 말하는 방식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책 표지에 [A] brilliant, genre-refuting book이라는 수식은 그래서 아주 적확하다. 알라딘에서는 이 책을 이렇게 분류한다.
외국도서 > 역사 > 역사 지리학
외국도서 > 전기/자서전 > 개인 회고록
외국도서 > 전기/자서전 > 문학
맞다. 이 책은 세계의 특정 지역에 관한 책이고, 자서전이며, 문학책이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이며, 익히 알려진 책들에 대한 잘 정돈된 서평이다. 그녀의 이야기이며,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는 아주 간단하게 말하고, 아주 길게 말한다. 그녀가 지시하는 것은 그녀가 말하는 바로 그것이며 또한 그 외의 어떤 것을 의미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의 작가 배열에 그녀를 올려두고 싶다. 강신주-필립 로스-정희진의 라인업에 말이다.
현빈의 <시크릿가든>은 다음회가 궁금해 일상이 엉켜버렸던 내 인생 최초의 드라마였다. 나는 이 세상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현빈을 좋아할거라 생각했다. 다짐은 필요 없었는데, 그건 그 일이 너무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간사한지, 서인국을 지나 김수현에 이르러서는 “네가 진짜 마지막이다.”를 나에게, 그리고 김수현에게 진심으로 고백하곤 했다. 박보검을 찍고, 이젠 송중기. 송중기에게는 “네가 정말, 진짜, 완전 마지막이다.”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럽다. 한국의 드라마는 얼마나 훌륭한가. 드라마의 영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들은 얼마나 완벽한가. 그들의 젊음은 얼마나 눈부신가. 나는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포기하기로 했고, 지금 이 순간, 그냥 송중기를 좋아하기로 했다.
사랑은 변한다. 좋아하는 배우도 변하고, 좋아하는 작품도 변한다. 좋아하는 작가도 변한다. 물론이다.
여기 오신 분들은 책을 사랑하는 분들이니 이런 느낌 잘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책을 사랑하는 것이지 특정한 어떤 책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책에 대한 사랑은 변합니다. 때로는 이런 작가를 사랑했으나 곧 다른 작가에게 빠져듭니다. 프랑스 소설을 막 읽다가 일본 소설에 탐닉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아예 소설은 안 읽고 역사서만 읽기도 합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는 영화 대사도 있지만 변해야 사랑입니다. 책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평생 한 작가 혹은 특정 작품만 줄창 읽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요? 저는 믿지 않습니다. (179쪽)
강신주-필립 로스-정희진의 바로 뒷자리를 그녀에게 권한다. 리베카 솔닛에게 권한다.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1961년 6월 24일~)은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 거주 중인 작가이다. 예술평론과 문화비평을 비롯한 다양한 저술로 주목받는 작가이자 역사가이며, 1980년대부터 환경·반핵·인권운동에 열렬히 동참한 현장운동가다. 대한민국에 출간된 저서로 『어둠 속의 희망』, 『이 폐허를 응시하라』, 『걷기의 역사』가 있으며, 『그림자의 강』으로 전미도서비평가상, 래넌 문학상, 마크 린턴 역사상 등을 받았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작가다. 그녀의 어머니가 질투했던 금발에 그녀의 어머니가 가지지 못했던 둥근 눈썹. 당당해 보이고, 깐깐해 보이는 그녀.
그녀가, 지금 내가 사랑하는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