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옛날 일이라고 하고 싶지만 막 그렇게 옛날은 아니고 네이버의 <지식인의 서재>를 자주 보던 때가 있었다. 제일 인상 깊었던 건 뭐니 뭐니 해도 압도적인 화면의 신경숙의 서재일 테고, ‘김훈의 서재는 막장이다’ 같은 ‘00에게 서재는 00이다’, 이런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저만 그랬나요?) 그 코너 마지막에는 작가가 고른 책 서너 권을 소개했는데 문학 쪽 책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에서야, 대다수의 책이 서구 유럽 지식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남성의 책들이라는 걸 눈치채게 됐지만, 아무튼 그때는 그랬다.
추천하는 책 중에 유명한 책들도 있었지만 처음 듣는 작가의 책들도 있었다. 온 국민이 알 것 같은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에서 시작해서 대강 알 듯한 쿤데라나 파묵도 있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니까, 내가 모르는, 전혀 모르는 소설이나 작가를 말하는 작가들이 근사해 보였다. 누군가 내게도 그렇게 물어봐 준다면 나도 그런 근사하면서도 사람들이 모르는 이름을 말하고 싶었는데. 내 인생의 책 1번이 <제인 에어>인지라 대략난감. 좋아하는 책이 뭐에요? <제인 에어>요. 아~~~~~~~~~~~ <제인 에어>? 나도 중학교 때 읽었는데. (문고판 아니에요?) 온 국민이 다 아는 <제인 에어>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아, 저도 사람들 모르는 작가를 좀 말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작가요. 훌륭한데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가요. 이런 아이 같은 마음이 있었더랜다.
요즘에 알라딘 서재에 빌레뜨 유행이구나, 이 생각을 하던 중에 몇 년 전 써 두었던 페이퍼를 발견했다. 2017년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인터뷰다.
이시구로는 2015년 뉴욕 타임스 북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평생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샬럿 브론테가 최근 도스토옙스키를 밀어냈다”고 했다. “도스토옙스키가 광기에 주목한 것은 광범위하고 심오해 보편적 인간 조건에 대해 성찰케 했지만, 나이 들어 다시 읽으니 그의 감상주의라든지 즉흥적이고 두서없이 긴 문장은 삭제됐어야 마땅했다. 나는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와 ‘빌레뜨’에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많은 빚을 지고 있다.” (<태생은 일본, 정신은 영국…. 인간의 망각을 캐묻다>, 2017.10.08. 조선일보)
도스토예프스키를 밀어버린 작가가 샬럿 브론테란다. 제인 에어와 빌레뜨가 그런 소설이란다. 우리가 읽는, 우리가 읽으려고 하는, 막 읽으려고 하는 그 소설, 이 소설이 바로 그 소설이란다. 그래, 이거야. 답은 빌레뜨야. 한없이 얇은 귀를 가진 나는 오늘 분량의 즐거운 결심을 야무지게 심는다. 근데 빌레뜨 진작에 꺼내 놓았는데 어디 갔을까. 어디 갔지? 내 빌레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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