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이해’라도 이해를 원한다면
올해 2021년에는 책읽기 습관을 좀 바꿔볼까 한다. 대 여섯 권 정도를 동시에 돌려가며 읽는 편인데, 3분의 2 지점에서 책의 존재를 잃어버리거나, 아예 책 자체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해 난감하다. 작년에 시작한 책들을 정리하고 있다. 올해의 새 책은, 올해의 열 번째 책이 될 듯 하다.
이 책에 대한 리뷰는 필요 없는데 알라딘 똑똑이 친구의 서재에 가면 아주 좋은 리뷰가 있다. (위에 먼댓글 참조) 덧붙일 말도 없고 뺄 말도 없다. 한국의 우치다 타츠루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다.
(134) 가치중립적인 어법 속에 그 사회집단 전원이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깃들어 있다는 바르트의 생각을 보다 교묘하게 활용한 것이 페미니즘 비평의 언어론입니다. ….. 교묘라는 번역을 ‘정밀’이라는 단어 쯤으로 교체했으면 어땠을까.
읽는 내내, 줄 친 부분과 친구가 인용한 부분이 완전 일치해서 무척 즐거웠는데, 특히 이 대목에서는 똑똑이 친구의 ‘정밀’이라는 제안에 물개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사르트르는 ‘역사’를 궁극적인 재판소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사는 미개로부터 문명으로, 정체에서 혁명으로 진행되는 단선적인 과정 위에서 모든 인간적 삶의 영위의 ‘옳고 그름’을 판정합니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사르트르가 ‘역사’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역사적으로 옳은 결단을 내리는 인간’과 ‘역사적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인간’을 구별하는 것은 ‘멜라네시아의 야만인’이 그들의 독자적인 잣대로 ‘자기들’과 ‘주변 사람들’을 구별하고 있는 것과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행위입니다. (163쪽)
책을 읽으며 4명의 철학자 중 제일 관심이 생긴 사람은, 실존주의의 살아있는 전설 사르트르를 박살냈다는 레비스트로스이고, 그래서 반 읽고 던져 둔 양자오의 『슬픈 열대를 읽다』를 다시 읽으려고 한다.
딱 100쪽 읽었다. 한 문장을 읽고 가슴에서 복받쳐 오르는 세 문장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중간에 포기했다. 『김대중 죽이기』로 20여년 전 강준만 교수님께 ‘평생 까방권’을 선사해 드렸으니, 더 길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일을 하고 싶기는 하다) 부패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고, 문재인 정부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의 자유일 터이나, 권력은 정치만의 것은 아니기에 그 역시 권력의 한 가지 형태로 존재하고 있음을 아셨으면 좋겠다. 정치권력, 문화권력, 언론권력에서 한참 떨어진 구석에서 그가 신랄하게 비판하는 힘없는 한 시민의 생각이다. 의견은 다르지만, 존경하고 애정하는 마음만은 변함 없다. 변함 없습니다, 선생님!
아이를 키워 보았든 혹은 직접 키워보지 않았든, 7-8개월 정도의 아이와 잠깐만 있어보면, 이 아이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놀라운 진화의 산물일지 모르는 초롱초롱한 눈빛의 아기, 아직 말하지 못하되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아이의 눈망울을 마주칠 때면 난 항상 확신한다. 이 아가는 알고 있다. 이미 알고 있다.
“따로 계산해 드릴까요?”
어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은 어린이에게 책을 받아 아빠와 계산을 마친 다음 다시 어린이에게 “따로 담아 드릴까요?”하고 물으셨다. 어린이 손님은 그렇게 해 달라고 했다….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이 앞에서만 그러면 연기가 들통나기 쉬우니까 평소에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감사를 자주 표현하고, 사려 깊은 말을 하고, 사회 예절을 지키는 사람. 세상이 혼란하고 떠들썩할 때일수록 더 많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45쪽)
이 세계의 소중한 일원이자 동료로서 어린이를 대하는 작가의 마음이 따뜻하게 전해진다.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저자의 소망 또한 마음 한가득 부럽다. 내 아이들이 이미 자라버린 것이 진심으로 아쉽다. 아니면, 이 책은 더 빨리 나왔어야 했다. 반 정도 읽었는데 줄어드는 책장이 아까울 따름이다.
엘리자베스 길버트 책은 이번이 세번째다. 이 작가와 내가 잘 맞는 것 같다는 (나만의) 생각이 든다. 쉬운 말로 쓰고, 적당한 순간에 등장하는 유머 포인트도 나랑 잘 맞는다. 겸사겸사 소설책도 한 권 구매했다. 창조 행위야말로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그녀의 주장에 더해, 그녀가 알고 있는(친한) 전 세계 예술가들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10월부터 조금씩 읽어서 12월 말이 되어서야 다 읽었으니 꽤 오래 걸린 셈이지만 ‘꾸준하게’에 방점을 찍는다. ‘꾸준하게’ 해도 안 되면. 안 되면… 나도 몰라.